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309동1201호(김민섭) 지음 / 은행나무 / 201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교수가 아닌 시간강사가 돈을 얼마나 '못'버는지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왔지만 이정도일줄은 몰랐다.  학교라는 곳이 직장일 때는, 연구를 하며 공부를 하기에는 얼마나 열악한 곳인지 알게 되자 역겨웠다. 대학생 한 명 한 명에게 받아가는 돈이 그토록 어마어마하면서, 그곳에서 공부를 하며 '잡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돈 주기를 꺼려하는 곳. 게다가 매일 하루종일을 연구실에 묶여있어야 하는데 그것을 너무나 당연시하며, 교수와 선배의 부름에 만사 제치고 달려가야 하는 것들은 시스템이 너무나 병신같고 도둑같음을 증명한다. 게다가 시간강사로 일하는 저자는 4대보험을 보장받지도 못한다. 저자는 맥도날드에서 '알바'를 하면서 간신히 4대보험의 '혜택'을 받게 된다. 나이 서른이 넘어서 건강보험에 부모님을 피부양자로 넣을 수 없다는 것에 대해 쓸쓸해하는 저자의 글을 읽노라니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가 누군가에게는 '교수님'이라고 불릴 시간강사 라는 타이틀을 달기까지 말 그대로 '힘겹게' 살아왔으며 빚만 잔뜩 졌다는 걸 보고서는, 대체 이 나라는 뭔가, 하는 생각을 했다. 이 나라는... 뭐지?



석사과정과 박사과정을 밟는 내내 대출해서 생활비를 마련하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사람들과의 교류도 끊기게 된다. 그는 언젠가부터 다른 사람들에게 '얻어먹기만 하는 인간'이 되어있었다.



나는 세 번째 술자리를 대접하고 싶어서, 근처 치킨집에 자리를 만들고 지난번엔 사주셔서 정말 잘 먹었어요 오늘은 제가 살게요, 했다. 그들은 아이고 고맞지, 라면서 좋게 술자리를 가졌다. 그런데 나가면서 계산을 하려고 보니 이미 U가 계산을 했다면 먼저 나와 있었다. 어 제가 산다니까 왜 그러셨어요 형님, 하니 아냐 뭘……하고 웃고 서로 헤어졌다. 그런데 네 번째 술자리에서 직장에 대한 이야기를 가볍게 하다가 내가 대학교에서 강의를 한다고 하니 U 는 야 너는 뭘 가르치냐 혹시 뭐 공짜로 어디 가서 얻어먹고 그런 거 가르치냐, 라고 했다. 1년이 넘게 지난 일이지만 그 말이 아직도 토씨 그대로 머릿속을 맴돈다. 나는 화장실에 간다며 일어나서 술값을 계산했고, 한 번 더 술자리를 갖자고 해 먼저 계산하고 나왔다. 다음 날 단톡방에서 나오고, 그 뒤로 체육관에 가지 않았다. (p.65)



부모님께도 친구들에게도 그리고 체육관에서 운동하며 만난 사람들에게도 그는 당당히 설 수가 없었고, 그렇게 사회적인 인간에서 멀어졌다. 이게 그가 시간강사가 되기 위해 치러야 할 몫이었다. 







맥도날드에서도 해주는 걸 대학에서는 해주지 않는다. '교수님'이라 불리지만 먹고 살기가 힘이 든다. 그 힘든 과정을 거치면서 연구를 하는 즐거움, 논문을 쓰면서 느꼈던 짜릿함이 고스란히 담겨져있고, 첫 강의를 맡으면서 좋은 교수가 되기 위해 학생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도 담겨져있다. 나쁜 상사 밑에서 보고 배우는 건 나쁜 점들이 더 먼저인데, 내가 이렇게 당했으니 너도 이렇게 당해봐, 하는 것이 더 전달 속도가 빠르고 강한데, 저자는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려고 하고 자신이 뭔가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면 잘못했다고 사과할 줄 알며 혹여라도 내가 이들을 압박하고 있는건 아닌가 하고 수시로 돌아본다. 좋은 교수가 되었다. 이렇게 힘든 제도 속에서, 불합리한 시스템 속에서 이렇게 괜찮은 교수로 학생들과 소통할 수 있는 교수가 되어서 그저 감사한 마음뿐이다. 게다가 시종일관 그는 겸손한 문체를 써서, 그간 내가 읽어온 어떤 에세이보다 묵직하게 다가온다. 


어떤 사람들은 열심히 공부하고 그 공부에서 정말 신나는 재미를 찾는다. 그리고 열정을 가지고 학생들과 소통하는 좋은 교수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데 그렇게 되기까지 이토록이나 열악한 환경만 주어진다면, 많은 사람들이 중도에 포기할 거란 생각이 든다. 불합리한 시스템 때문에 병신같은 제도 때문에 우리는 학생들과 소통할 수 있는 또한 정말 재미있게 공부를 할 수 있는 많은 사람들을 놓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대학은 돌아봐야 할 일이다.



이 책을 아주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난주에 만난 친구에게는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며 이 책을 주었다. 일단 이 이야기가 널리 익혀서 대학 내의 불합리한 시스템이 밖으로 드러나 개선되었으면 하는 바람이고, 또 하나, 저자에게 어떻게든 이 책이 많이 팔려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이다. 물론 책의 인세라는 것이 그 사람이 먹고사는 데 그다지 도움이 되지는 않더라도 말이다. 저자는 책에서 '아파도 되는 청춘은 없다'고 하는데, 그 말은 맞다. 노력을 덜해서 젊은 세대들이 고생하는 게 아니라, 그간 어른들이 썩은 세상을 만들어놨기에 청춘들이 아파하고 있는 거다. 원래 이래왔어, 늘 이래왔어, 하고 악습을 계속 전달하는 것부터 뿌리 뽑을 일이다. 그리고 대학들이여. 등록금을 그렇게 받아 쳐먹으면서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돌보지 않는다니, 뭐하는 짓들인가! 그러고서도 당신들이 누군가를 '가르친다'고 할 수 있는가. 니네나 똑바로 살 일이다. 게다가 교수들도 똑똑히 현실을 보길 바란다. 당신들은 얼마를 받고 무슨 혜택을 받으며 살고 있는가. 자신들의 삶은 그러할진데 어떻게 한 '학기'에 육십만원 받는 사람에게 '지낼만하다'라고 말할 수 있는가. 



저자에게 그저 미안할 따름이다. 그런 환경인 것을 그간 몰라서, 관심이 없어서. 그리고 감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텨줘서'. 그렇게 버텨주고 겸손한 시선으로 학생들과 소통하고자 노력하는 사람이어서, 부끄럽지 않은 교수가 되기 위해 늘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이어서 고맙다고.

기회가 된다면 내가 술 한 잔 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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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는 자연인이다
    from 마지막 키스 2015-12-21 10:08 
    나이들면서 입맛이 바뀌는 것처럼 생각하는 바도 달라지는 것 같다. 그래서 사람은 '절대' 라는 말을 써서는 안되는 것 같다. 이십대 무렵, 내가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을 때는, 누군가를 욕하던 행위 그 자체를 나 스스로 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을 때였다. 아, 이런 사람 나는 욕했는데, 내가 그런 사람이 되었네... 하고.그래서 이제는 다른 사람이 한 행동에 대해서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사람은 그럴 만해서 그런 게 아닐까?
 
 
기억의집 2015-12-21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란 대목에 대목에 맘이 아프네요. 얼마나 그 말에 상처가 되었으면...

다락방 2015-12-21 14:20   좋아요 0 | URL
네, 누군가에게 얻어먹기만 하는 사람으로 인식된다는 것에서 저자가 되게 씁쓸해하더라고요. 누구나 그렇겠지만, 저자는 돈벌이도 시원찮아 더 속이 쓰렸을 것 같아요. 그런 불합리한 제도속에 놓여서 살아가야 한다는 게 너무 속상했어요. 읽으면서 이 책 참 아프고 무섭구나, 했어요. 소설이 아니라서요. 소설이 아니라서 더 아팠어요..

단발머리 2015-12-21 1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사 친구가 있죠. 모교랑 여기 저기 몇 군데 강의를 나가는데 집이 지방이라 서울 왔다갔다 차비 빼고나면 딸애 어린이집 비용도 낼 수 없다고 하더라구요. 친구는 남편이 돈을 버니 그나마 다행이죠.
이게 취미생활도 아니고. 돈 내면서 가르쳐야 하다니....
그에 반해 교수님들, 진짜 교수님들은 많이 여유로우신것 같아요. 편안하죠~~ 경제적 여유로움이 뭐... 그대로 묻어나죠.

그런 면에서는 중학교 고등학교가 나은 것 같아요. 간단히 비교할 수는 없지만, 수업을 맡는 교사라고 한다면 시간당 강의료가 크게 차이나지 않아요. 그러니까 1년 기간제교사나 정규직 교사나 월급차이가 아주 크게 나지는 않는다는 거죠.

대학이 나쁘다,로 결론짓고요.

저도 이 분 신문에서 기사와 사진을 보았더니, 무척 가깝게 느껴지네요.
저자 분~~~ 이 글 보시면 연락주세요. 다락방님이 술 한 잔 사신답니다.
만나실 때 저도 꼭 불러주시구요~~~ ㅎㅎㅎ


다락방 2015-12-21 14:22   좋아요 0 | URL
네, 단발머리님. 대학 강사가 맥도날드 알바를 겸하고 있고, 심지어 건강보험증도 맥도날드에 다녔기 때문에 나올 수 있었어요. 대학은.. 뭔가요? 이놈의 대학, 대체 하는 일이 뭘까요? 대학이라는 곳이 참 역겹더라고요. 니네 대체 무슨 짓을 하는거냐, 싶고 말이지요. 등록금은 학생 한 명당 몇 백만원씩 뜯어가면서, 대체 그 돈으로 뭐하는 걸까요? 씁쓸했어요. 그렇게나 오래 공부해서 좋은 교수가 되고자 했지만, 그러기 위해서 계속 계속 대출을 받아야 한다는 게 말이지요. 강의를 나가는 지금도 계속 학자금 대출 갚느라 자기가 쓸 수 있는 돈이 얼마 없어요. 인생...

네, 저자랑 술 마실 기회가 있다면 단발머리님도 꼭!! 부르겠습니다. 흣.

transient-guest 2015-12-21 14: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로 보따리 장사가 따로 없어요 게다가 매번 재계약 하려면 피말리죠 정말 나쁜 제도에요

다락방 2015-12-23 10:15   좋아요 0 | URL
그렇게나 오랜 시간 열심히 공부했는데 돌아오는 게 너무 초라한 것 같아요. 아니, 돌아온다는 말 조차 적합한 단어가 아닌 것 같아요.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요?

살리미 2015-12-21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기사를 보니까 저자가 자신을 공개하고 대학강사직도 맥도날드 알바도 그만두었더라고요. 첨엔 자신을 밝히지 않으려고 309동 1201호라는 이름으로 책을 냈던데 그 책을 읽고 어떻게들 알았는지 `너 어쩌려고 그러느냐`며 협박조로 찾아오는 선배들이 많았다는 기사도 봤습니다. 이 책 나왔을때부터 저도 너무 놀랍고 관심이 가서 지켜보고 있었는데 이젠 당당히 이름을 밝히고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겠다 하더라고요. 저자의 이름이 마침 우리 오빠 이름이랑 같아서 더 마음이 쓰이더군요. 정말 잘됐으면 좋겠어요.
현실이 이런데 시간강사법이 시행되게되면 더 많은 시간강사들이 제대로된 처우를 받지 못한다더군요. ㅠㅠ
다락방님, 꼭 만나서 술한잔 하시게 되면 응원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전해주세요^^

다락방 2015-12-23 10:16   좋아요 0 | URL
저도 대학강사직 그만 두었다는 것만 건너건너 들었는데,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조금이라도 형편이 나아졌다면 좋을텐데요. 이 나라에서는 형편이 나아지기가 쉬운 일이 아니라서 안타까워요. 말그대로 젊은 사람들이 발붙이고 살기에 이 땅은 헬조선이죠.. ㅠㅠ

아애 2015-12-21 1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제목이 나는 시간강사다 가 아니고 지방대 시간강사다 라는 것도 참 가슴 아픕니다. 우리 사회에 있는 뿌리 깊은 편견이 그분들을 또 한 번 힘들게 하죠.

다락방 2015-12-23 10:16   좋아요 0 | URL
네, 책에서도 여러차례 지잡대에 대해 언급이 되더라고요. 어느순간부턴가 대학이 그저 허울 좋은 타이틀이 된 것 같아요. 그 안에서 누가 얼만큼 어떤 걸 공부하는지와는 완전히 상관없이 말이지요.

아애 2015-12-21 1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에 교수들 참 편하고 여유롭다는 말에 반은 공감하고 반은 그렇질 못하네요. 대학에 아직 살아있는 정신들이 많습니다. 다만 죽은 정신이 더 목소리 크고 힘 있는 게 안타까울 따름이죠.

다락방 2015-12-23 10:19   좋아요 0 | URL
네, 아애님 말씀대로 모든 교수들이 다 잘못된 생각과 행동을 갖고 있진 않겠죠. 가끔 언론에 보도되거나 혹은 그렇게 드러나진 않았어도 형편없는 교수들이 있는 반면에 성실히 연구하고 또 성실하게 가르치고자 하는 교수들도 있을 걸 압니다. 그런데 못된 교수들의 영향력이 너무 세요. 학생들을, 조교들을 비참하게 만들죠... ㅠㅠ

꼬마요정 2015-12-21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대학원 가서 선배님들 얘기 들어보니 참으로 갑갑하고 답답하고... 그래도 후배한테 머라도 사 줄라고 하시는 거 보면 마음이 짠합니다.

다락방 2015-12-23 10:19   좋아요 0 | URL
선배라고 후배들한테 잘해주고 싶어하는데 실상 베풀 수 있는 건 별로 없고... 마음이 얼마나 안좋을까요? ㅜㅜ
어쩌다 대학은 그런 곳이 되었을까요? ㅜㅜ

2015-12-21 16: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23 10: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Mephistopheles 2015-12-21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둘겨 패고 감금하고 고문하고 인분까지 먹이는 교수님도 있는데요 뭘...

다락방 2015-12-23 10:22   좋아요 0 | URL
하아- 그러게나 말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되었을까요, 메피스토님? 어쩌다 이지경이 된걸까요? 대학이 엉망이라 나라가 엉망인지 나라가 엉망이라 대학도 엉망인지... ㅠㅠ

Mephistopheles 2015-12-23 11:35   좋아요 0 | URL
사실 대학은 옛날부터 엉망이었던 터라....
이런 문제들이 요즘에야 수면으로 튀어나오는 것뿐이라고 생각됩니다.

몬스터 2015-12-22 0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쓰신 분의 신원(?)이 드러나 학교에서 쫒겨 났다는 글을 봤네요. 씁쓸합니다. 산다는 것이 어렵습니다. ㅎㅎㅎ

다락방 2015-12-23 10:22   좋아요 0 | URL
네 그러게요 산다는 게 쉽지가 않네요.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왜이렇게 어려운걸까요? 학교라는 일터에서 벗어난 그 다음의 삶은 그전보다 좀 나아졌기를 바랄 뿐입니다. ㅠㅠ

dd 2015-12-26 2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꼭 한번 읽어보고 싶어요..ㅜㅜ너무너무 슬퍼요...

다락방 2016-01-04 14:52   좋아요 0 | URL
네, 꼭 한 번 읽어보세요. 추천합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일들이라고 생각해요.
 

오래전일인데, 택시를 탔는데 기사님이 여자분이셨다. 이십대 딸을 둔 분이셨는데, 대화를 하다보니 남편을 굉장히 원망하고 계시더라. 사연인즉슨, 둘째 딸이 태어났을 때 옆에 있지도 않았던 신랑은, 집에 돌아오자마자 태어난 아이가 딸인 걸 보고는 또 딸이냐며 그 길로 바로 나가버렸다는 거다. 그 때 서운했던 감정이 평생을 가더라고 하셨다. 그래서 지금도 남편을 보면 그때 그 일이 생각난다 하셨다. 


어제 책을 읽다가 이런 부분을 보는데 딱 그때 택시기사님 생각이 났다.



"할머니는 잔치 구경 안 가셨어요?"

"이……꼬라지로……어디를……간다요……?"

끊어질 듯 이어지며 힘겹게 흘러나오는 할머니 목소리. 도란 할머니 목소리를 들을라 치면 나도 모르게 온몸에 힘이 들어간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알아들으려고 내 딴에 애를 쓰는 건데, 그럼에도 잘 알아듣지 못할 때가 많다. 왼쪽 다리와 팔, 얼굴까지 몸의 반쪽이 오그라들고 불편하시기에 발음마저 어눌해지신 게다. (할머니가 막 태어났을 때, 딸이라고 서운해서 밖으로 휙 집어던졌는데 그때 이후로 평생 장애를 안고 살게 되셨단다. 정말이지 안타깝고 서글픈 사연이 아닐 수 없다.) (p.71)



 















여성을 함부로 대하는 시절을 우리의 할머니들이 살았다. 딸이라고 자식 취급도 안하던 시절을. 그렇다보니 연세가 있으신 분들에게서는 생생한 증언들이 쏟아져 나온다. 증언 뿐이랴. 위 인용문의 도란할머니는 딸이라는 이유로 집어던져져서 장애까지 갖게 되시지 않았는가. 게다가 그 장애는 평생을 함께 안고 가야하는 부분이다. 딸이 왜그렇게 죄인 취급을 받았을까. 왜 내던져져야 하는 존재가 되었던걸까. 


이 책을 읽다보면 여성으로서 살아오는 삶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할머니들의 생생한 증언들이 쏟아진다. 어려운 시절을 살았으니 어렵게 사는 게 누군가의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해도, 남자들보다 더한 어려움을 안고 살아온 것만큼은 틀림없다. '딸'로서 일단 어렵게 시작하고 '아내'로서 '엄마'로서 고된 생활의 정점을 찍는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자식들도 떠나고 남편까지 떠나고나면 육체는 고생을 아는 몸이 되어 있다.. 광덕 할머니는 어떤가.



"말도 말어. 나나 되니께 그 시상을 살았제. 놈(남)은 살도 못해. 할아부지가 한량이라 일은 안 하고 평생 놀아. 내가 노가다 일을 25년을 해서 자석들 칠남매 먹이고 갈치고……여그 이사 들어와서도 겨울에는 대전으로 식모살이 나갔당께. 막내 대학 갈칠라고, 이 악물고 바락발락 살았응께 이 정도가 됐제 안 그러면 살도 못했어." (p.66)



이 책의 저자도 말했듯이 언젠가 할머니가 될 것이 자명하기에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접하는 것은 나쁘지 않았다. 직접 농사를 지어가며 생활을 해나가시는 모습을 보노라면 영화 [리틀 포레스트] 생각도 났다. 리틀 포레스트의 올드한 버젼 쯤이라고 할까. 많은 사람들이 나이들면 전원 생활을 꿈꾸고 귀농을 생각하던데, 나는 어떤가? 하고 스스로 되묻기도 했다. 나는 일단 도시에서 살아왔고 도시에 적응해있으며 심지어 도시를 사랑한다. 나이 들어 누구랑 함께 살든 혹은 혼자 살든, 가끔은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서 술을 마시며 도란도란 이야기 꽃을 피우며 살고 싶다. 책도 읽고 싶고 영화도 보고 싶고. 지금의 사는 패턴 그대로를 계속 유지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술집이 즐비한 도시가 최고다! 라고 생각하다가, 이내 다른 생각이 든다. 어차피 집에 술을 쟁여놓기만 한다면, 늘 부족하지 않게 술이 있다면, 굳이 술집이 즐비한 곳에 내 집이 있지 않아도 상관없잖아? 하고. 텃밭에서 내가 먹을 야채들이 자란다면, 일주일에 한 번씩 장을 봐서 집에다가 고기랑 빵이랑 과자랑 치즈랑 와인이랑 소주랑 맥주랑 한가득 쟁여놓고 산다면, 그렇다면 굳이 도시는 아니어도 상관없지 않을까? 뭐, 하릴없이 그냥 생각해봤다는 거다. 다시 할머니들의 '여성으로서의 삶'에 대한 증언으로 돌아가자.



다울이와 함께 광주에 다녀오느라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가고 있던 중이었다. 날은 서서히 저물어가는데 다울이 걸음은 한없이 느리고, 나는 다울이 손을 잡아끌다시피 하며 무거운 다리를 옮기고 있었다. 그때 밭에서 비닐 걷어내는 일을 하고 계시는 이장 할머니를 만났다.

"날이 어두워지는데 아직도 일하세요? 고생 많으시네요."

"고생 아니여. 할 만하니까 하제. 그나저나 어디 댕겨와?"

"광주에 볼 일 있어서 나갔다 오는 길이에요."

"아이고, 추운데 애기하고 어떻게 걸어갈라고……어서어서 가야겄네."

"네, 수고하세요."

이렇게 인사를 나누고 다시 힘겹게 집으로 향했다. 점점 더 어둠이 짙어지는 가운데 바람도 차가웠다. 이제 조금 있으면 달빛에 의지한 채 더듬더듬 길을 걸어야 하리라. 마음이 조급해져서 다울이에게 "빨리 빨리!"를 외쳐대며 서둘러 길을 걷고 있는데 뒤에서 차 오는 소리가 들렸다. 길 옆으로 비켜서서 우릴 태워줄 사람인가 눈치를 살피려는데, 아니 이장 할머니 차가 아닌가! 우리를 태워다주려고 일을 마치자마자 서둘러 달려오신 것이다.

"어서 타. 보내놓고 나니께 마음이 쓰이잖여. 나도 젊어서 깜깜해질 무렵에 깻단 가지러 간다고 이 길을 걸었어. 딱 요만한 아들내미 데리고 말이여. 동네 할머니들이 지혜 없이 자식 고생시킨다고 야단이었는디 그래도 어째, 깻단이 보물인디……지금 생각하믄 지독헌디 그라고 살았당께."

"농사가 꽤 많으신 걸로 아는데……이제 이장 일까지 하시려면 몸이 열 개라도 모자라겠어요."

"그니까 말여. 내가 전부터 이장 한번 해보고 싶단 생각은 있었는디 내 일이 워낙 많은께 엄두를 못 냈거든. 근디 이번에 남자들이 서로 끝도 없이 다투는 걸 보니께 도저히 못 봐주겠더라고. 마침 누가 날 추천하기에 얼른 내가 하겠다고 했제. 그랬더만 암도 말을 못하데." (p.205-207)



그동안 해왔던 남자들을 제치고 할머니가 마을의 이장이 된다. 이 이장 할머니는 남자들이 다투는 걸 보고 못마땅하기도 했고 또 이장 한번 해봐야겠다 마음먹기도 해서 나섰다는데, 그간 남자들만 이장을 해오던 곳에서 나서기가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앞으로 나서서 내가 한번 해보겠다, 한것도 대단하지만, 무엇보다 그간의 삶의 경험에서 온 공감능력이 어마어마하다. 늦은 밤에 아이를 데리고 걸어가는 길이 쉽지 않을 거라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는 이장 할머니는 얼른 본인의 일을 마치시고 차를 몰고 저자와 저자의 아이들을 태우러 오지 않았는가. 이런 공감, 이런 배려를 실행에 옮기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다른 사람의 입장을 생각해볼 수 있고, 어려움이 있다면 도우려고 하시는 분이다보니 이장 역할도 매우 잘 해내실 거라고 믿는다. 다만, 그간 이장 뽑는 제도가 잘못됐다고 생각해서 그 다음 이장 선거엔 아예 나가려고 하지 않았던 저자의 태도는 내게는 영 못마땅했다. 그렇게 자신은 기권한 사이에 근사한 이장이 탄생하지 않았는가. 다른 사람들도 다 생각을 하고 살고 바꾸려고 하고 있는데 뭐랄까, '이런건 못마땅해' 하고 있는게, 사람 저마다의 성향이라 하겠지만 내게는 좀 별로인 타입이었다. 그래서일까,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읽는 것은 처음부터 호감가는 일이었고 또 즐겁기도 했지만 저자의 글 분위기 전체를 보면 묘하게도 나랑 어긋나는 기운이 있었던 것 같다. 이래서 에세이 읽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는다면 많은 사람들이 분명 좋은 부분들을 찾을 수 있을거라 생각하고 또 이 책을 읽고 좋아하겠구나 싶어 선물할 상대도 떠올랐지만, 나에게도 그렇게 적용되진 않았다.



[리틀 포레스트]영화를 아까도 언급했는데, 이 책에서 리틀 포레스트를 아주 강하게 떠오르게 하는 장면이 있다. 시래기를 만드는 장면인데, 그 장면이 얼마나 좋던지!!



"시래기 안 해? 빨리 해. 무시 잎싹 다 시들어버리겠네."

할 일은 제대로 못하면서 잔소리 듣는 건 지독히도 싫어하는 나는, 할머니가 가시자마자 무부터 정리하기로 했다. 다랑이를 들쳐 업은 채 쪼그리고 앉아 무 꽁지를 잘라 무는 무대로 이파리는 이파리대로 따로 모으고, 불을 때서 솥에 물을 끓였다. 그러고는 무 이파리를 넣어 숨이 죽을 때까지 삶는데, 양이 많은 터라 몇 번에 걸쳐 그 과정을 되풀이해야 했다.

마침내 모든 일을 마치고 데친 무 이파리의 물기를 꼭 짜서 빨랫줄에 널었다. 그제야 겨우 허리를 펴고 "아이구, 허리야" 하는데 이럴 수가! 내 눈앞에 한 폭의 그림이 펼쳐져 있는 거다. 빨랫줄에 가지런히 매달린 시래기가 어쩜 그렇게 아름다운지! 뿌듯함과 황홀함에 시래기에서 눈을 못 떼고 있는 그때, 어느 틈엔가 불쑥 찾아오신 한평 할머니가 흐뭇하게 시래기를 바라보며 말씀하셨다.

"아따, 보기 좋다. 그새 시래기 해서 널었네. 인자 다 마르면 한뻔에 먹을 만큼씩 살그머니 묶어서 뒀다가 시안에 두고두고 해먹어. 국도 끓이고 나물도 하고……징하게 맛나." (p.100-101)




이 장면을 읽는데, 이 책속의 다른 장면들까지 연달아 떠오르면서 영화로 만들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다. 내가 물론 그런 영화를 좋아해서 그런것 같은데, 처음에 등장하는 고사리 따는 장면이라든가 밤 줍는 장면 같은 것들.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집안에 있는 재료만으로 김밥을 만들고 과자를 만드는 장면 같은 것들, 메주를 만드는 것까지. [리틀 포레스트]처럼 영화로 만들면 기가 막힌 장면들이 나올 것 같은 거다! 특히나 이 시래기 장면은 정말 압권일듯!












 














나는 내가 먹는 것도 좋아하지만 다른 사람이 먹는 걸 보는 것도 되게 좋아하는 것 같다. 음식점에서의 상차림이 아닌, 자기가 먹을 밥상을 자기가 준비해 먹는 장면들. 아, 여행지에서의 먹을 거리를 보는 것도 좋다. [걸어서 세계속으로]를 정말 좋아하는 이유는 이국의 먹을 거리를 볼 수 있기 때문. 먹을 거 빼고는 잘 안본다는 게 함정...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티븨 프로그램에서도 누가 뭐 먹나 어떻게 먹나 보는 것도 너무 좋다. 역시 그 장면 말고는 안 본다는 게 함정...


갑자기 일년전쯤 칠봉이가 보내줬던 사진이 생각난다. 나는 국내 어딘가로 여행가서(어딘지 기억이 잘..) 여행지에서 족발을 먹고 있었는데(응?), 예상치 못하게 칠봉이로부터 사진이 한 장 전송됐다. 자신이 직접 만든 고기 안주에 양주를 곁들인 사진이었다. 아, 이 사람이 나한테 연락할 줄은 몰랐는데? 라고 깜짝 놀라고 어? 나한테 연락했네? 하면서 기쁘다가, 그것이 술과 안주의 사진이어서 몹시나 행복했던 기억...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잘 먹고 잘 지내는 게 진짜 너무너무 좋다.


그래서 먹을 거 챙겨주는 것도 너무 좋다.

칠봉이가 꼬리찜에서 고기 발라서 내 그릇에 놓아주던 것도 계속 생각나고, 복숭아를 박스째로 사준 것도 잊을 수 없다. 사소하게는 회식자리에서 내 앞에 앉은 남자직원이 나 고기랑 자리 멀다고 자꾸 고기 챙겨주던 것도 생각나고(소고기!!), 지지난주에 만난 여자사람친구들이 헤어질 무렵 이것도 얼른 먹고가, 하며 부산스레 치즈를 자꾸 챙겨 먹이던 것도 생각난다. 이런 것들은 진짜 너무 좋다. 언젠가 여섯살 조카가 우리집에 왔을 때 내가 삶은 계란을 주자 그걸 오물오물 맛있게 받아들고 먹던 모습도 눈에 아른아른하다. 아아, 그게 무슨 웹툰이었더라. '먹임은 사랑이다' 라는 것이 진정 삶의 진리임을 나는 안다!!



힛.

요즘에는 회사에서 업무차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해서 이 짓을 언제까지 해야하나 매순간 생각한다. 오늘 오전 동안 받은 스트레스도 어마어마하다. 오늘 함께 와인을 마시기로 한 친구에게 '나 오늘 진짜 많이 마실거야, 업고 가' 라고 했는데 그 친구도 '저도 오늘 많이 마실 거에요' 했다. 우리는 오늘 모두들 많이 마시겠구나. 

마셔서 나아진다면, 별 수 있나, 마셔야지. 

술로 나를 흠뻑 적셔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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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바 2015-12-18 12: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조금 뜬금없긴 하지만 다락방님 글을 읽으면서 영화 투스카니의 태양이 떠올랐어요. 작가의 자전 소설을 영화화한건데, 다이안 레인이 나오거든요. 보셨을까요? 이혼 후 투스카니에 여행 갔다가 낡은 빌라를 사고, 거기를 고쳐서 살면서 벌어지는 얘긴데... 저도 도시생활에 더 익숙하고 다락방님 말씀에 깊이 공감하면서도 왠지 시골생활에 대한 환상을 품게 되는거 있죠? 리틀 포레스트 처럼요 ㅎㅎ 삼시 세끼를 다 차려 먹기가 얼마나 힘든지 알면서도...

다락방 2015-12-18 12:40   좋아요 0 | URL
으앗 에이바님!! 말씀하신 영화는 제목도 처음 들어보는데 에이바님 댓글 읽고 너무 보고싶어져서 굿 다운로더 있나 찾아봤더니 있네요!! 꺅 >.< 아 보고싶어요. 조만간 시간되는 대로 봐야겠어요.

삼시 세끼 차려먹는게 힘들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저 역시 한적한 곳에 가서 매 끼니에 최선을 다하며 살고 싶은 마음도 생기더라고요. 저도 도시생활이 더 좋고 익숙한데, 그런데 뭔가 나이들수록 한적한 곳에서 사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리틀 포레스트 보면서 되게 좋았었거든요. 다음 계절에 먹을 식량을 미리 준비하는 것도 어찌보면 고된 노동인듯 싶지만 하고나면 뿌듯할 것 같고요. 그렇게 맛있게 만든 음식을 이웃의 다정한 이를 불러 함께 먹기도 하고...

낡은 빌라와 그걸 고치면서 살아가는 이야기라니, 투스카니의 태양, 빨리 보고싶어요! 알려주셔서 고마워요!
>.<

icaru 2015-12-18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이런 책이 있는 줄 몰랐어요!!! 덕분에,, 음 구매해야 겠어요!!!
이것이 바로 목소리문학이지 뭔가요!! ㅎ

다락방 2015-12-18 15:09   좋아요 0 | URL
저도 이런 책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잘 모르겠네요. ㅋㅋㅋㅋㅋㅋ 어쩌다 알게 됐지? ㅎㅎ

icaru 2015-12-18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최근 업무스트레스 만땅이라,, 고걸...집에 가서 아이들에게 삐질삐질 성질부리는 걸 자각하고,,,
이럴려면 회사는 왜 다니고 애는 왜 낳았니.. 했어요... 바로 어제도 ㅠ.ㅠ

다락방 2015-12-18 15:10   좋아요 0 | URL
언제까지 이 직장에 다녀야하나..하는 고민을 매일, 매순간 해요.
그렇지만 딱히 답이 없네요. 먹고 살아야 한다면 직장에 다녀야 하니까요... 이번 달엔 유독 가혹하게 느껴져요. 이번 달은 왜이러나, 자꾸 짜증만 나고 .. 스트레스가 너무 쌓여요. 신경이 너덜너덜해지는 것 같아요. ㅠㅠ
새해가 되면 나아지려나, 싶다가, 아니, 그렇다면 2주나 더 견뎌야 하나, 하다가
내일은 괜찮아질거야, 하면서 스스로를 다독다독 합니다. ㅠㅠ

비연 2015-12-18 1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랑 비슷하시군요.. 이눔의 먹고살기 위한 직장 스트레스 버티기라니요..ㅜㅜ
가다가 맥주나 사가야겠어요 저는..;;;;

다락방 2015-12-21 14:17   좋아요 0 | URL
주말동안 맥주 드시고 스트레스는 좀 푸셨나요, 비연님?
저는 스트레스 풀고 앞으로 더 잘 버티기 위해서 금요일에도 토요일에도 와인을 가득가득 마셨습니다.
그래도 어김없이 일요일 밤이 되자 잠이 오질 않더라고요 ㅠㅠ

transient-guest 2015-12-19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술로 흠뻑 적시는 건 매우 좋은 일입니다.ㅎㅎ 그런데 많이 마시면 와인도 필름 끊기고 다음날 머리가 아픕니다.ㅎㅎ 조직생활이 궁금하다가도 현재의 자영업자신분에 만족하고 사는 저는, 예전에 작은 직장인데도, 은근슬쩍 끼어들어온 회계사의 견제 때문에 꽤 머리가 아팠던 기억이 나네요. 직장의 스트레스를 다른 것으로 푸시는게 유일한 방법 같습니다. 갑자기 시골에 가서 리플포레스트를 실천하는건 무리잖아요.-_-:: 그나저나 감사합니다.ㅎ

다락방 2015-12-21 14:18   좋아요 0 | URL
네, 술이 없었으면 무슨 재미로 살았을까 싶어요..술은 진짜 좋은 친구에요. 술 좋아요!! >.<
네, 지금 당장은 제가 리틀 포레스트를 실천할 수가 없고요 ㅠㅠ 말씀하신 것처럼 스트레스를 푸는 다른 방법을 찾는 게 가장 현실적인 해결책인 것 같아요. 뭐, 그것이 제게는 음주.. 이지만 말입니다. 이 음주가 달콤한 건 스트레스 때문이 아닌가, 라고 생각해요.

그나저나, 어떻게, 제 땡투가 좀 많이 도움이 되었나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알라딘 굿즈로 무릎담요가 나왔을 때, 나는 무릎담요를 안쓰지만 도라에몽 받아서 조카 한 번 줘볼까? 하고 받았던 적이 있었다. 이걸 조카가 좋아할까? 갸웃하며 조카에게 내밀었을 때, 조카는 팔짝팔짝 뛰며 좋아하더라. 도라에몽이다, 도라에몽!! 하면서.. 아... 뽀로로만 아는 게 아니었어? 엘사만 아는 게 아니었어? 도라에몽.... 도 아는 거였어? 


그래서 나는 앞으로 보이는 도라에몽은 무조건 겟하여 조카에게 주기로 마음먹었는데, 알라딘 다이어리에 도라에몽이 나온 게 아닌가. 그래, 이거다! 나는 최근에 책지름을 참고 있었는데, 무려 다이어리 두 개를 받기 위해 책을 마구 지르기로 한다. 지를 책이야 쌓이고 쌓였으니, 문제는 그들 중 어떤 책을 선택하느냐였다. 그런데 내가 지르려고 할 때마다 내가 찜해둔 도라에몽 데일리가 없는 거다 ㅠㅠ



파란색 바탕에 큰 도라에몽이 조카들에게 더 좋을 것 같아서 또 양도 많을 것 같아서 이걸로 줘야지 마음 먹었는데, 내가 주문하려고 할 때마다 없어..하아-  여섯살 세살 조카가 싸우지 않게 하기 위해 똑같은 걸 두 개 받아야 하는데.. 없어...


번번이 놓치고야마니 이러다가는 도라에몽 위클리도 놓치겠다 싶어서 안돼, 위클리라도 겟해야해! 하고는 어제 두 차례에 걸쳐 주문을 완료, 도라에몽 위클리 두 개를 확보해놓았다. 한 건의 주문은 당일배송이었고 한 건의 주문은 다음주에야 온다고 해서 어쨌든 크리스마스 선물로 줄 수 있겠구나 싶어 기다리고 있는데,





어제 업무차 책을 사야 할 일이 생긴거다. 무려 열 권을! 우하하하. 다른 곳으로 갈 주문이라 여러차례에 걸쳐 했는데, 한 건의 주문은 오만원 이상! 나는 잽싸게 다음주 배송인 내 책의 주문을 취소했다. 그리고 업무차 주문한 책들에서 다이어리를 선택하려는데-짜릿해!!-, 어어? 이젠 도라에몽 위클리가 없고 데일리가.. 있네? 이게.. 뭐여? 흠... 




어쨌든 데일리를 선택해놓고보니,

아아,

도라에몽 위클리 하나, 데일리 하나..를 갖게 된 것이었다.

문제는,

여섯살 조카 세살 조카는 똑같은 게 아니면 싸운다는 건데, 색깔도 모양도 똑같은 걸 줘야 한다는 건데... 아무리 도라에몽이라도 하나는 위클리 하나는 데일리라 난감해져버리고 만거다. 그래서 또 고민이다.


한 명에겐 위클리를 주고 한 명에겐 데일리를 주느냐,

똑같은 걸 주기 위해 오늘 다시 오만원 주문을 하느냐....


어째야할까...

오늘 또 주문한다면 그야말로 다이어리를 받기 위한 주문이 되는건데.....

차라리 도라에몽 다이어리가 없었다면 좋았을 것을...



아, 고민이 깊다, 깊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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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15-12-17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깊은 공감...

다락방 2015-12-17 13:57   좋아요 0 | URL
지금 막 주문했어요..
인생...

단발머리 2015-12-17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략 난감...

다락방 2015-12-17 13:57   좋아요 0 | URL
선택이란 건 늘 어렵죠...
인생.....

단발머리 2015-12-17 14:10   좋아요 0 | URL
ㅎㅎㅎ 추가 주문하셨군요.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봅니다.

우리네 인생 이렇다는 거, 다 알지만요.
둘째조카가 다른 두 개의 다이어리 보면, 두 개 다 자기가 하겠다고 할거예요.
이 귀여운 떼쟁이들.... 이 둘째들이 세상을 사는 법이란*^^*

akardo 2015-12-17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제가 가지려고 배트맨 다이어리를 받았지만 이렇게 보니 도라에몽 다이어리도 상당히 탐나네요. 알라딘 사은품 중 노트류가 전 정말 좋더라고요. 튼튼해서....ㅎㅎ 원래 형제는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 사랑이든 선물이든 똑같이 받아야지 안 그럼 싸우게 되죠; 선물 주실 때 고민이 되시겠어요;;;

다락방 2015-12-17 13:58   좋아요 0 | URL
저는 제가 쓸 다이어리는 있기 때문에 사실 저를 위해서라면 책을 한 권도 안사도 돼요 ㅠㅠ 읽을 책은 쌓여있다능.. 조카들한테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도라에몽 다이어리를...아...저는 정말 조카들을 위하려는걸까요? 아니면 절 위한 걸까요? 잘 모르겠네요..
어쨌든 똑같은 거 하나 더 받기 위해 지금 추가주문했습니다.

인생은....뭘까요?

akardo 2015-12-17 15:42   좋아요 0 | URL
인생은....아이들 자라는 모습 보는 것도 위안이 되는 것 같아요. ㅎ 조카분들도 아마 그 마음을 알겁니다.

기억의집 2015-12-17 1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락방님처럼 똑같은 거 두 개 사던 때가 있었는데.... ㅎㅎ 락방님 너무 귀여운 고민이시네요. 이런 고민 하는 락방님도 귀여워요. 아, 다 큰 성인한테 이런 말 해도 될런지...

다락방 2015-12-17 17:42   좋아요 0 | URL
다 큰 성인한테 귀엽다고 말 해도 됩니다!! ㅎㅎㅎ
고민하다가 두 개 받을 수 있게 오늘 또 주문했어요. 인생 뭔지.. ㅎㅎ
돈을 쓰기 위해 태어난 건 아닌가 싶습니다. 하하하하하

hellas 2015-12-18 0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청난 고뇌의 시간을 지나오셨군요:) 해피엔딩이라 다행;ㅂ;

다락방 2015-12-18 15:10   좋아요 0 | URL
완벽한 해피엔딩은 아닌 것이 통장의 잔고는 줄어들었................Orz

뽈따구 2015-12-18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글을 읽고 저는, 무척 얄밉게도,,,,,,, `아들이 한 명이라 무척 다행이군! ` 이럽니다. ㅎㅎ

다락방 2015-12-18 15:11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한 명이면 다이어리도 하나만 받아도 되는데!! 그러나 제겐 운명적으로 두 명의 조카가 현재 와있고, 그러므로 이런 깊은 고민은 제가 끌어안고 가야하는 부분인 것입니다!! ㅎㅎㅎㅎㅎ

무스탕 2015-12-18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글을 읽고 저는, 무척 얄밉게도,,,,,,,, `아들 두 명이 다 커서 무척 다행이군!` 이럽니다. ㅎㅎ

다락방 2015-12-18 15:12   좋아요 0 | URL
음, 무스탕님의 이 댓글을 읽으니 언젠가 이 조카 둘도 자라서 내가 다이어리 줄 걱정을 안해도 되겠지만
그러나 남동생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다면 또다시 이런 고민이 찾아들거란 생각이 드네요. ㅎㅎㅎㅎㅎ
 
나는 언제나 옳다
길리언 플린 지음, 김희숙 옮김 / 푸른숲 / 2015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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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뭐여...........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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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저녁을 늦게 먹었다. 전날 먹은 쫄면순두부가 너무 맛있어서 남동생에게 그거 먹으러 가자, 해서는 여덟시에 출발하다보니 다 먹고 식당에서 나온 시간은 아홉시쯤이었다. 나는 대체적으로 큰 길로, 인도로 다니는데 골목길엔 차가 지나다니는 게 싫기도 하고 또 어두울 땐 사람들 별로 없는 것도 싫기 때문이다. 어제는 덩치 큰 남동생과 함께하다보니 부러 내 갈 길을 내가 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얘가 옆에 있으니까, 하고는 남동생이 가자는 길로 갔다. 남동생은 내가 평소에 잘 다니지 않던 길로 데리고갔는데, 주말 밤이어서인지 상점들은 문을 닫아 어두웠고 골목이라 음침한 곳들을 지나기도 했다. 사람들은 잘 다니지 않았고 전체적인 분위기가 으슥해서 아, 여기 혼자서는 이 시간에 못다니겠다, 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남동생에게도 말했다. 야, 내가 너랑 같이 가니까 여길 갈 수 있는 거지 여긴 나 혼자서는 쫄려서 못다니겠다, 하고는 종종걸음으로 남동생 옆에서 걸었다. 남동생 걸음이 좀 빠를라 치면 야, 천천히 걸어, 하면서 같이 걸었고, 너무 무섭게 느껴지는 곳에서는 남동생한테 팔짱도 꼈다. 야, 쫄려 쫄려, 하면서. 이 길을 이렇게 갈 수 있는게 다행이란 생각도 했다. 만약 내가 나 혼자 있을 때 뜬금없이 이 길을 선택했다면 울면서 뛰어갔을 것 같은 거다. 여기, 내가 예전에 살던 동네였는데, 여기 이렇게 무서웠었나? 분위기가 어쩜 이렇지? 하고 정말 두근거렸다. 그런데 이제 이 길이 이 시간에 무섭다는 걸 아니까 내가 혼자 갈 때는 선택하지 않을 수 있겠다. 여튼 엄청 쫄렸다. 휴.. 남동생은 내가 너무 쫄려하니까, 다른 길로 갈 걸 그랬다고, 원래 이 길로 오려던 게 아니었는데 걷다보니 이렇게 됐다고 했다. 정말 무섭고 정말 많이 쪼그라들어있던 나는, 만약 그때 혼자였고 뒤에서 걷는 남자가 있었다면, 정말 너무 큰 두려움으로 머리까지 아팠을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기 시작하자마자 '그만 읽을까'를 몇 번이나 고민했다. 아, 정말 고민했다. 어떤 책들은 시작하지 않는 게 좋을 수도 있는데, 이 책은 그런 책인걸까, 하고 초반부터 쪼그라들었다. 



그녀는 안개 자욱한 어둠 속에 서 있는 그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그녀가 누런 안개등 밑을 지날 때 그는 그녀의 얼굴을 다시 한 번 볼 수 있었다. 어둠과 안개와 혼자 걷는 길을 마뜩잖아 하는 얼굴이었다. 그녀는 캘리포니아 비탈길을 걸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런 소리를 내면 안심이 되는지 울퉁불퉁한 인도 위로 힘차게 내딛는 하이힐 소리가 들렸다. 

그는 그 길로 당장 그녀를 따라나서지 않았다. 사실은 그럴 생각도 없었다. 그가 구불구불한 비탈길을 걸어 내려가기 시작한 것은 자신의 의지와 아무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는 그녀처럼 힘차게 걷지도, 빨리 걷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그녀는 그가 뒤에서 걷는 소리를 들은 모양이었다. 휘청하기라도 한 것처럼 하이힐 소리가 유난히 한 번 크게 들리는가 싶더니 걸음이 빨라졌다. 그는 속도를 높이지 않고 계속 어슬렁어슬렁 걸었다. 살짝 미소를 지으며 보폭만 넓혔다. 그녀는 불안해하고 있었다.

그는 쉽사리 그녀를 따라잡을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너무 일렀다. 둥그런 혹이 솟아 있는 길 중간 지점에 도착할 때까지 기다렸다 간격을 좁히는 것이 보다 바람직한 선택이었다. 옆으로 다가가면 그녀는 살짝 비명을 지르거나 헉 하고 숨을 내뱉을 것이다. 그러면 그는 부드럽게 "안녕하세요"라고 말할 것이다. 한마디일 뿐인데 그녀는 전보다 더 불안해하겠지. (p.9-10)



안개와 어둠으로 이미 불안해있는 여자를 그는 알고있고 또 즐기고 있다. 게다가 어떻게 하면 그녀가 더 불아해할지도 안다. 그녀가 그 곳에서 얼마나 불안했을지를 생각하자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이 남자, 뭐지? 주인공이잖아? 그런데 밤에 혼자 걷는 여자의 불안을 즐겨? 게다가 더 불안하게 만들려고 해?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남자주인공인데.. 이걸 계속 읽어야하나? 혼자 걷는 여자에게 더 두려움을 주면서 만족하는 남자인데, 이런 남자가 앞으로 어떤 정의롭고 선한 일을 할 수 있단거지? 이 남자가 뒤에서 무슨 선한 행위를 한다해도 나는 이 하나의 행위만으로 그를 어떤 식으로든 이해를 할 수가 없는데? 일단 이 행위 하나를 던져놓고 그가 바뀌어가는 걸 보여주려는 걸까? 하아- 


그래서 고민했다. 이 두려움이 내게는 끔찍했으므로, 남자의 행동이 너무나 역겨웠으므로 그 다음을 읽는다는 게 망설여졌다. 결국 조금만 더 읽어보고 다시 고민하자, 하고 책장을 넘겼는데, 몇 장 넘기지도 않아서야 왜 저남자가 저런 행동을 했는지 이해하게 됐다. 이해라는 단어는 잘못 선택된 것일 수도 있겠다. 혼자 밤길에 두려워하는 여자를 더 두렵게 만들고 싶어하며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저 남자는, 주인공임과 동시에, 연쇄살인범 이었다. 이게 처음부터 나온다. 그 자신이 연쇄 살인범임이. 그러자 그가 여자의 두려움에 미소를 짓는 까닭이 수긍되었다. 정상적인 남자라면 여자를 더 두렵게 만들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여자를 두렵게 만들어놓고 미소짓지 않았을 것이다. 그걸 재미있어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는 여자를 한 달에 한 번씩 죽이는, 그런 남자였던 것이다. 



그런 남자가 옆 집에 사는 여자 '로렐'을 사랑하게 된다. 그녀와 단단히 사랑에 빠져 그녀와 늘 함께 있고 싶다는 욕망에 시달린다. 그래서 그녀에게 잘해주고 싶다.



그는 샤워를 마치고 문을 열었다. 그 사이 그녀가 빠져나갔으면 어쩌나 싶어 걱정했지만, 거의 욕실 문 바로 앞을 지키고 있었다.

"커피 좀 더 따라가지고 왔어요."

"고마워요. 시끄러울 텐데 면도 좀 해도 될까요?"

"그 정도는 참을 수 있어요." (p.124-125)



여자의 두려움을 즐기고 한 달에 한 번씩 여자를 죽이는 연쇄살인범이,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에게는 '시끄러울텐데 면도 좀 해도 될'지 묻는다. 지극히 사소한, 묻지 않았어도 괜찮았을 정도로 지나치게 사소한 것조차 그녀에게 묻는다. 이렇게 예의가 바르며 상대를 배려하는 사람인데, 로렐로서는 그 당시에 어떻게 이 남자, 내가 지금 막 관계를 맺게 된 남자가 연쇄살인범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로렐 뿐만이 아니다. 다른 세상의 모든 여자들도 마찬가지. 식당에 갈 때 문을 열어주고, 내 말에 귀를 기울여주고, 날 웃게 하기 위해 노력하고, 가끔은 토닥토닥 나를 다독여주기도 하는 남자인데, 그런 남자가 사실은 다른 여자들의 두려움을 즐기는 그런 남자라면.. 내 앞에서 너무나 정상적인 행동을 앞에 두고 어떻게 '이남자가 밤에는 다른 여자의 두려움을 즐기는 남자일지도 몰라'라는 생각을 할 수 있을까. 그게 너무나 절망적이다. 게다가 연쇄살인범의 애인이라면, 그녀도 그 살인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게 아닌가. 언제 살해당할지 모를 위험을 안고 있다. 나는 이 책의 주인공 딕스 스틸과, 소라넷에 자신의 발가벗은 여자친구 사진을 올려놓고 호응을 바라는 남자들의 모습이 겹쳐졌다. 나중에 본 게시물 중에는 '내 여친이 소라넷 한다고 하면 되게 싫어해서 사진 찍어 올리기가 힘든데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어서 술 취해 있을 때나 후배위때 찍었다(용어는 내가 자체 순화)'며 올린 사진도 있더라. 진심으로 탐지기 같은 게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남자가 소라넷을 하는지 안하는지 알 수 있는 탐지기. 머리에서부터 다리까지 쫙 훑어서 소라넷을 한다면 삑- 소리가 나는, 그런 탐지기. 그렇다면 그런 남자와는 연인 관계를 시작하지 않을 수 있을텐데. 저 게시물을 올린 남자를 보니 '여자친구가 싫어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남자였고, '그럼에도불구하고' 사진을 찍어 올리는 남자였다. 왜 싫어하는지에 귀를 기울이기보다는, 자신이 속한 단체-그러나 잘못인지 모르고, 알려들지도 않는-에서 인정받고 싶어하는 그런 남자였던 거다. 그래서 나는 딕스와 소라넷에 여자친구의 사진을 올리는 남자들의 모습이 겹쳐졌다. 이 책은 1940년대에 쓰여졌는데,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남자들은 별로 달라진 게 없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로렐에게 도망치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어서 도망치라고, 그 남자는 연쇄살인범이라고, 여자의 두려움을 즐기는 남자라고,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그러면서 얼마전에 읽은 '데이비드 버스'의 《이웃집 살인마》 생각도 났다. 그 책에 보면 여자가 두려움을 느끼고 도망가도 어떻게든 찾아내서 죽이는 전연인과 전남편이 등장하지 않던가. 로렐은 어디로 도망가야 할까, 도망간다한들 자유로울 수 있을까. 그러나 역시 《이웃집 살인마》에서는 여자들에게 말했었다. '네 직관을 믿으라'고. 로렐은 그와 함께하면서 그를 두려워한다. 무서워한다. 그녀는 자신의 직관을 믿는다. 








남성들이 자신을 버린 배우자를 살해한 반면, 여성들은 살인이 유일한 탈출구라고 생각될 만큼 심하게 자신을 격리하고 학대하며 위협한 배우자를 살해했다. (데이비드 버스, 이웃집 살인마, p.174)






자기 전에 이런 책(고독한 곳에)을 읽는 것은 확실히 도움될 게 없다. 아, 무서운데..하면서 잠들었더니, 아니나다를까 가위에 눌리고 악몽에 시달렸다. 자꾸만 낯선 남자가 내 방문을 열고 들어와서 나를 죽이려고 시도해서 내가 막 소리를 지르는데 소리도 안나오고 그러느라 몇 번이나 깨야했다. ㅠㅠ 그래서 계속 후회했다. 자기전에 이런 책 읽지 말걸, 이럴 줄 알았으면서.. 하고. 그러면서 생각했다. 야한 책 읽을 걸. 야한 책 읽었으면 야한 꿈 꿨을텐데 ㅠㅠ 괜히 무서운 책 읽어가지고 이게 뭐야 ㅠㅠ 


야한 책, 야한 영화 추천 받습니다.


아니, 지난주에 너무 야한 영화를 보고 싶어서 주변 사람들에게 추천을 부탁했더니 다들 아는 바가 없다고 추천을 못해주더라..아놔 이 사람들..그래서 네이버에 '야한 영화' 이렇게 검색어에 넣었는데 사람들이 야하다고 추천한 영화들이 있더라. 어떤 건 제목도 모르는 한국 영화들이기도 하고 그랬는데 그중에 누가 야하다고 추천한 게 [투 문 정션] 이었다. 오, 좋았어! 하고 봤더니 굿 다운로드가 안되는 영화였어...하아- 그래서 유튭에 검색했더니 자막이 없어........

아, 인생..지겨워...내 뜻대로 되는 게 없어.......



어쨌든 지금 개봉한 영화  [마담 보바리(소피 바르트 감독)]의 남자 주인공이 '아즈라 밀러' 인걸 보고 급 호기심이 생겨서, 사두고 계속 미뤄왔던 책인 《마담 보바리》를 다음 읽을 책으로 정했다. 우어엇- 기대된다! 다 읽고나서 영화 보고 싶은데, 독서력이 현저히 떨어진 내가 다 읽을 때쯤이면 아마도 상영관에서 내려지지 않았을까... 시무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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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5-12-14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기에 멀쩡한데 사실은 이상한 남자들이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는 생각을 요즘 하고 있어요. 무서워요-_-;

다락방 2015-12-14 16:58   좋아요 0 | URL
네, 알면 알수록 더 그런 것 같아요. 차라리 모르는 게 나았다는 생각도 들 정도에요. ㅠㅠ

dreamout 2015-12-14 2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NS에서 산만함에 중독되다.라는 기사를 읽었는데, 어느 정도는 그게 저더라구요. 독서력이 바닥을 기고 있습니다. ㅠㅡ

다락방 2015-12-15 08:34   좋아요 0 | URL
저는 이번 해에 책을 백 권도 못읽었더라고요. 아... 이건 뭐지..저는 백권은 깔고 가는 건줄로만 알았다가 아 진짜 독서력이 바닥을 기는구나, 했어요. Orz

감은빛 2015-12-15 2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쇄살인마 역시 평범한 사람일거라는 거,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 같아요. 그런데 그 평범의 기준이 문제인 거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드네요. 어쩌면 감추려드는 면을 쉽게 알 수는 없죠. 그저 평범한 척 하겠지만 실은 그렇지 않은거 아닌가 싶기도 하구요

다락방 2015-12-16 10:40   좋아요 0 | URL
대부분의 사람들이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쯤은 해봤을텐데요, 그걸 정말 저지르느냐는 또 다른 문제인것 같아요. 그리고 연쇄살인범일아면 그것과는 또 다를테고요. 결국 로렐도 딕시가 무서운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두려움을 느끼게 돼요. 그러니까 연쇄살인범 이라면, 아무리 평범한 척 하려고 해도 어떤 식으로든 바깥으로 표출되는 분위기가 있는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건 시간을 두고봐야 알지, 잠깐 봐서는 결코 알 수 없는 부분인 것 같기도 해요. 보자마자 알아볼 수 있다면 좋을텐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