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309동1201호(김민섭) 지음 / 은행나무 / 201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교수가 아닌 시간강사가 돈을 얼마나 '못'버는지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왔지만 이정도일줄은 몰랐다. 학교라는 곳이 직장일 때는, 연구를 하며 공부를 하기에는 얼마나 열악한 곳인지 알게 되자 역겨웠다. 대학생 한 명 한 명에게 받아가는 돈이 그토록 어마어마하면서, 그곳에서 공부를 하며 '잡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돈 주기를 꺼려하는 곳. 게다가 매일 하루종일을 연구실에 묶여있어야 하는데 그것을 너무나 당연시하며, 교수와 선배의 부름에 만사 제치고 달려가야 하는 것들은 시스템이 너무나 병신같고 도둑같음을 증명한다. 게다가 시간강사로 일하는 저자는 4대보험을 보장받지도 못한다. 저자는 맥도날드에서 '알바'를 하면서 간신히 4대보험의 '혜택'을 받게 된다. 나이 서른이 넘어서 건강보험에 부모님을 피부양자로 넣을 수 없다는 것에 대해 쓸쓸해하는 저자의 글을 읽노라니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가 누군가에게는 '교수님'이라고 불릴 시간강사 라는 타이틀을 달기까지 말 그대로 '힘겹게' 살아왔으며 빚만 잔뜩 졌다는 걸 보고서는, 대체 이 나라는 뭔가, 하는 생각을 했다. 이 나라는... 뭐지?
석사과정과 박사과정을 밟는 내내 대출해서 생활비를 마련하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사람들과의 교류도 끊기게 된다. 그는 언젠가부터 다른 사람들에게 '얻어먹기만 하는 인간'이 되어있었다.
나는 세 번째 술자리를 대접하고 싶어서, 근처 치킨집에 자리를 만들고 지난번엔 사주셔서 정말 잘 먹었어요 오늘은 제가 살게요, 했다. 그들은 아이고 고맞지, 라면서 좋게 술자리를 가졌다. 그런데 나가면서 계산을 하려고 보니 이미 U가 계산을 했다면 먼저 나와 있었다. 어 제가 산다니까 왜 그러셨어요 형님, 하니 아냐 뭘……하고 웃고 서로 헤어졌다. 그런데 네 번째 술자리에서 직장에 대한 이야기를 가볍게 하다가 내가 대학교에서 강의를 한다고 하니 U 는 야 너는 뭘 가르치냐 혹시 뭐 공짜로 어디 가서 얻어먹고 그런 거 가르치냐, 라고 했다. 1년이 넘게 지난 일이지만 그 말이 아직도 토씨 그대로 머릿속을 맴돈다. 나는 화장실에 간다며 일어나서 술값을 계산했고, 한 번 더 술자리를 갖자고 해 먼저 계산하고 나왔다. 다음 날 단톡방에서 나오고, 그 뒤로 체육관에 가지 않았다. (p.65)
부모님께도 친구들에게도 그리고 체육관에서 운동하며 만난 사람들에게도 그는 당당히 설 수가 없었고, 그렇게 사회적인 인간에서 멀어졌다. 이게 그가 시간강사가 되기 위해 치러야 할 몫이었다.
맥도날드에서도 해주는 걸 대학에서는 해주지 않는다. '교수님'이라 불리지만 먹고 살기가 힘이 든다. 그 힘든 과정을 거치면서 연구를 하는 즐거움, 논문을 쓰면서 느꼈던 짜릿함이 고스란히 담겨져있고, 첫 강의를 맡으면서 좋은 교수가 되기 위해 학생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도 담겨져있다. 나쁜 상사 밑에서 보고 배우는 건 나쁜 점들이 더 먼저인데, 내가 이렇게 당했으니 너도 이렇게 당해봐, 하는 것이 더 전달 속도가 빠르고 강한데, 저자는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려고 하고 자신이 뭔가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면 잘못했다고 사과할 줄 알며 혹여라도 내가 이들을 압박하고 있는건 아닌가 하고 수시로 돌아본다. 좋은 교수가 되었다. 이렇게 힘든 제도 속에서, 불합리한 시스템 속에서 이렇게 괜찮은 교수로 학생들과 소통할 수 있는 교수가 되어서 그저 감사한 마음뿐이다. 게다가 시종일관 그는 겸손한 문체를 써서, 그간 내가 읽어온 어떤 에세이보다 묵직하게 다가온다.
어떤 사람들은 열심히 공부하고 그 공부에서 정말 신나는 재미를 찾는다. 그리고 열정을 가지고 학생들과 소통하는 좋은 교수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데 그렇게 되기까지 이토록이나 열악한 환경만 주어진다면, 많은 사람들이 중도에 포기할 거란 생각이 든다. 불합리한 시스템 때문에 병신같은 제도 때문에 우리는 학생들과 소통할 수 있는 또한 정말 재미있게 공부를 할 수 있는 많은 사람들을 놓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대학은 돌아봐야 할 일이다.
이 책을 아주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난주에 만난 친구에게는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며 이 책을 주었다. 일단 이 이야기가 널리 익혀서 대학 내의 불합리한 시스템이 밖으로 드러나 개선되었으면 하는 바람이고, 또 하나, 저자에게 어떻게든 이 책이 많이 팔려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이다. 물론 책의 인세라는 것이 그 사람이 먹고사는 데 그다지 도움이 되지는 않더라도 말이다. 저자는 책에서 '아파도 되는 청춘은 없다'고 하는데, 그 말은 맞다. 노력을 덜해서 젊은 세대들이 고생하는 게 아니라, 그간 어른들이 썩은 세상을 만들어놨기에 청춘들이 아파하고 있는 거다. 원래 이래왔어, 늘 이래왔어, 하고 악습을 계속 전달하는 것부터 뿌리 뽑을 일이다. 그리고 대학들이여. 등록금을 그렇게 받아 쳐먹으면서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돌보지 않는다니, 뭐하는 짓들인가! 그러고서도 당신들이 누군가를 '가르친다'고 할 수 있는가. 니네나 똑바로 살 일이다. 게다가 교수들도 똑똑히 현실을 보길 바란다. 당신들은 얼마를 받고 무슨 혜택을 받으며 살고 있는가. 자신들의 삶은 그러할진데 어떻게 한 '학기'에 육십만원 받는 사람에게 '지낼만하다'라고 말할 수 있는가.
저자에게 그저 미안할 따름이다. 그런 환경인 것을 그간 몰라서, 관심이 없어서. 그리고 감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텨줘서'. 그렇게 버텨주고 겸손한 시선으로 학생들과 소통하고자 노력하는 사람이어서, 부끄럽지 않은 교수가 되기 위해 늘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이어서 고맙다고.
기회가 된다면 내가 술 한 잔 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