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리 비룡소의 그림동화 34
마이클 베다드 글, 바바라 쿠니 그림, 김명수 옮김 / 비룡소 / 199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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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아주 적절한 크리스마스 선물. 받고싶을 때에도, 주고싶을 때에도. 누구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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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아야할 전구가 너무 높은곳에 있어서 의자를 놓고 까치발을 들어도 손이 닿지 않는것도 참으로 무력하지만, 하아- 좋아하는 작가의 신작이 나왔을때도 나는 너무나 무력하다. 그냥 굴복할 수 밖에 없어. 차라리 장편이나 단편집이 나올것이지, 하아, 왜 다른 작가들하고 같이낸거야.
















오늘 아침 R 님으로 부터 줌파의 신간이 나왔다는 메일을 받았다는 문자를 받았다. 낼름 검색해보니 다른 작가들하고 함께 쓴거라서 흐음, 그런후 일단 패쓰했는데, 참여한 작가들이 또 쟁쟁하다고 R 님이 그런다. 그래서 참여 작가들을 다시 보았다.



병을 옮기는 남자 - 줌파 라히리
카우보이 - 토마스 맥구언
닥터를 위한 솔로 송 - 제임스 앨런 맥퍼슨
어떤 여인들 - 앨리스 먼로
하이 론섬 - 조이스 캐럴 오츠
거위들 - ZZ 패커
사나운 여자 - J. F. 파워스
직업 이력 - 애니 프루
친근한 경찰아저씨 - 루이스 로빈슨
이국의 해변 - 제임스 설터
미노타우로스 - 짐 셰퍼드
약국 -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외판원의 죽음 - 유도라 웰티
증언 - 토바이어스 울프
패배 중독자 - 리처드 예이츠



아...나는..줌파 라히리 만으로도 이 책을 살거였지만, 저기 저, 밑에서 네번째....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까지 있어. 세상에. 이렇게 모아놓을 수도 있는거구나.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여자 작가 둘을 한꺼번에 모아놓을 수도 있는거였어! 뭔가 패닉이고 멘붕이다. 그런데 이게 '블루칼라 화이트칼라 노칼라' 시리즈(전2권) 이란다. 그래서 아니, 그럼 1권도 있나? 하고 검색해봤더니 오, 이 책이 그 책이다.
















여기에 참여한 작가진을 보자.



사업 이야기 - 맥스 애플
걸리 - 러셀 뱅크스
나와 맨디블 양 - 도널드 바셀미
부당한 일 - 리처드 바우시
일하는 여자 - 앤 비티
자파토스 - 톰 코라게선 보일
(내 아버지가 프랭클린 D. 루스벨트처럼 생겼다고 생각했다) - 조지 챔버스
사과의 세상 - 존 치버
드러먼드와 아들 - 찰스 담브로시오
작가들이 하는 일 - 니컬라스 델반코
뉴저지, 에디슨 - 주노 디아스
배달 - 안드레 더뷰스
사워크라우트 수프 - 스튜어트 다이벡
설계의 결함 - 데보라 아이젠버그
위대한 실험 - 제프리 유제니디스
사각지대 - 리처드 포드
가게 - 에드워드 P. 존스


주노 디아스, 존 치버, 제프리 유제니디스가 눈에 띄고 다른 작가들은 잘 모르겠다. 그런데 「부당한 일」과 「일하는 여자」, 그리고 「배달」이 궁금해. 그렇다면 이 시리즈를 두 권 다 사야하는건가. 아니 그리고 이 시리즈가 두 권이 끝이 아니라면 어떡하지? 앞으로 또 나올거라면?



아!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지금 작가들만 본 게 아니라 그 옆의 제목도 봤다(역시 사람은 침착해야해. 흥분은 좀 가라앉힐 필요가 있어). 




혹시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약국」은 이 책의 그 약국인가? 같은 작가가 같은 제목으로 다른 단편을 쓸 리는 없을 것 같은데..그렇다면, 내가 이미 읽은 단편이잖아?






혹시 줌파 라히리의 「병을 옮기는 남자」는 이 책의 단편 「질병의 통역사」 인걸까? 책소개가 자세히 나와있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관광가이드' 라고 언급되어 있는걸 보면, 어쩐지 이 단편이..이 단편 같은데?





그러니까 새로 쓴 단편들이 아니라 이미 있는 단편들..인건가?





그런데 요즘 왜 이런책이 나오지? 사람 돌게 하는 책? 얼마전에 이 책을 사두었는데!!


















난 여기 작가진 보고 기절하는 줄 알았다.



닉 혼비… 안 그러면 아비규환 
엘모어 레너드… 카를로스 웹스터가 칼로 이름을 바꾸고 오클라호마의 유명 보안관이 된 저간의 사정 
댄 숀… 벌 
닐 게이먼… 폐점시간
데이브 에거스… 정상에서 천천히 내려오다 
셔먼 알렉시… 고스트 댄스 
스티븐 킹… 그레이 딕 이야기 
캐럴 엠시윌러… 사령관 
마이클 무어콕… 나치 카나리아 사건;명탐정 시턴 베그 경 시리즈 
마이클 크라이튼… 핏물이 빠지지 않는다
글렌 데이비드 골드… 스퀀크의 눈물, 다음에 일어난 일 
릭 무디… 앨버틴 노트 
크리스 오퍼트… 척의 버킷 
에이미 벤더… 소금후추통 살인사건 
할란 엘리슨… 다들 안녕이다 
켈리 링크… 고양이가죽 
짐 셰퍼드… 테드퍼드와 메갈로돈 
로리 킹… 어둠을 잣다 
커렌 조이 파울러… 개인 소유 무덤 9호
마이클 셰이본… 화성에서 온 요원;행성 로맨스



닉 혼비, 닐 게이먼, 스티븐 킹 만으로도 나는 이 책에 정신줄을 놓아버렸는데 무려 '에이미 벤더'가 있다. 이걸 어떻게 안 사? 에이미 벤더가 쓰는 단편이 너무 궁금하다. 대체 이 책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담겨있을까? 아, 요즘 왜이렇게 작가들이 무리를 지어서 나를 정신사납게 만드는거지?


음, 『안 그러면 아비규환』쪽이 훨씬 나은듯하다. 내가 읽어보지 않은 단편들이라서. 



원래는 지금 읽고 있는 책에 대한 페이퍼를 쓰려고 했는데(수리공....이 나와서 ㅎㅎ), 아침에 줌파 라히리랑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때문에 잠깐 정신을 놓아버렸다. 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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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12-09-25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세요.
어쩌란 말인지.. 하시길래, 떠밀어 드립니다. ^^

전 '애니 프루'가 눈에 쏘옥!

다락방 2012-09-26 12:05   좋아요 0 | URL
저도 애니 프루가 눈에 띄긴 했지만 줌파 라히리랑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때문에 뒤로 밀렸어요. ㅎㅎ
네, 답은 역시 사는것! 이죠. 후아-

레와 2012-09-25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뭐야, 이미 읽은 단편이였어요?!!
그래도 우선 정확한 확인 작업이 필요하니깐, 사야하지 않을까???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다락방 2012-09-26 12:06   좋아요 0 | URL
읽은 단편인건 맞는데(밑에 scott 님의 댓글 참고하세요~), 그래도 사야겠어요. 대체 왜 '그래도' 사야되는건지 스스로 모르겠지만 여튼 사야겠어요. ㅋㅋㅋ

turnleft 2012-09-25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민하느라 소진되는 다락방님 뇌세포의 가치를 고려하면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어요. 그냥 사세욧!

다락방 2012-09-26 12:06   좋아요 0 | URL
어휴, 제 뇌세포는 참 여기저기서 소진되네요. 지금도 머리가 터질것 같아요. 여튼 사야겠어욧. 불끈!

scott 2012-09-26 1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추측 대로 줌파 라히리의 '질병의 통역사('The Interpreter of Maladies)이고요.(조이스 캐롤 오츠가 편저한 단편집에는 '지옥 천국'이 최고단편으로 수록되었고요.)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약국'은 퓰리쳐상을 받은 단편집에 수록된거 맞아요. 이책 원래 제목은 Blue Collar, White Collar, No Collar: Stories인데 32개의 단편들이 실려 있어요.(한국어판은 두권으로 쪼개서 출판했네요.)
미국 문예창작과 학생들의 부교재로도 쓰이고 있는 책이랍니다.이책에 실린 작가들은 단편의 대가들이래요.

다락방 2012-09-26 12:08   좋아요 0 | URL
저도 [지옥 천국]을 가장 좋아해요, 줌파의 단편집에서는요. 무척 좋아서 그 단편집을 다 읽은뒤에 그 단편만 다시 한 번 읽었어요.

미국 문예창작과 학생들의 부교재로도 쓰이는 책이라니, 단편의 대가들이라니, 역시 답은 사는거네요. 좋은 정보 고맙습니다, 스콧님. 사야겠어요. 불끈.

heima 2012-09-25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그러면 아비규환' 장바구니에 넣었다 뺐다 중이었는데, 줌파 라히리까지..!! 다락방님 고민의 결과에 따라 저도 움직이렵니다. ㅋ ^ ^

다락방 2012-09-26 12:08   좋아요 0 | URL
안그러면 아비규환은 마려해두었어요, 이미. ㅎㅎ 읽고 있지도 않고 책장에 꽂혀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만족하고 있다능. ㅋㅋㅋㅋㅋ 전 저 책들 다 사버리겠어욧!!

아무개 2012-09-25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써 다 사버리신거 아닌가요? ^^ 저 위에 수많은 작가중에 아는 이름은 딱 둘뿐이군요 에구구구..........

전 어제부로 카씨형제들 완독했어요. 제가 좀 느리게 읽는 편이라 거의 삼주정도 걸렸네요.
여하튼 오늘 평일이지만 회사에서 일도 좀 있고 완독기념으로 퇴근길에 뼈해장국에 소주한잔 할 생각입니다. ^^

다락방 2012-09-26 12:09   좋아요 0 | URL
애초에 이런거 고민한다고 페이퍼 쓴 자체가 사겠다는 잠정적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겠죠? 사버려야겠어요. 사버려야 살까말까 고민을 안하죠...(응?)

Jeanne_Hebuterne 2012-09-25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핏물이 빠지지 않는다
제목 정말!!!

다락방 2012-09-26 12:09   좋아요 0 | URL
윽, 궁금하네요. 어떤 상황인건지. 핏물이 빠지지 않는다!

2012-09-25 16: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9-26 12: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12-09-25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독 잔뜩 들이고 침 발라놓고 가요~~~ 특히 안 그러면 아비규환^^

다락방 2012-09-26 12:10   좋아요 0 | URL
저도 아비규환 사놓고 완전 만족하고 있어요. 읽기도 전에 이미 만족 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12-09-26 0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벌써 다 사셨죠? ㅋㅎ 축하합니다. 즐겁고, 행복한 일독의 시간을 기원합니다~~~

다락방 2012-09-26 12:10   좋아요 0 | URL
쳇. 아직 안샀다구요!! 물론 이제 살 겁니다만. 후훗.

재는재로 2012-09-26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비규환밖에 안샀는데 다른책들도 다사셨어요 대단하시네 닉혼비 스티븐킹 닐 게이먼(멋진 징조들)하고 에이미 벤더(치즈케이크의 슬픔 맞나 다른작가들은 좀)

다락방 2012-09-26 12:56   좋아요 0 | URL
저도 아직 아비규환밖에 안샀어요, 재는재로님. 다른 책들은 살 예정입니다. ㅎㅎ

2012-09-28 00: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9-28 10: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금요일밤에 『레 미제라블 5』를 읽고 자려고 했는데 정말이지 너무나 피곤했다. 술을 마실 수 없을 정도로 피곤했다. 그래서 열한시쯤이었나, 잤다. 그랬더니 새벽 세시에 눈이 떠지는거다. 다시 잘까 하다가 어차피 토요일이니 늦잠이 허락된 날, 나는 불을 켜고 읽지 못했던 레 미제라블을 들었다. 그리고 읽기 시작했다. 읽다가 졸리면 다시 자면 되니까, 라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웬걸, 도무지 잠들 수가 없었다. 책이 손에서 놓아지질 않았다. 그리고 중간쯤부터였나 눈물이 핑- 돌더니 이내 흐르기 시작했다. 훌쩍훌쩍 나는 자꾸 콧물을 삼켰고, 눈물 따위, 닦고 싶지 않았는데 눈앞이 흐려져 책을 보기 힘들었기 때문에 자꾸 눈물을 닦아야 했다. 마리우스가 미웠다. 이해는 되지만 용납은 되지 않는다고 해야할까. 흑흑. 입술까지 바르르 떨면서 눈물을 흘렸다. 이 책은 정말 대단한 책이야. 흑흑. 나는 이걸 매년 한 번씩 다시 읽어야겠어. 흑흑. 다 읽고나니 시간은 새벽 다섯시를 넘겨 있었다. 그래서 여섯시가 다 되어 잤고 당연히 열한 시가 다 되어 일어났다.



그리고 친구를 만나러 갔다. 약속시간보다 일찍 도착한 나는 준비해온 책을 꺼냈고 커피를 시켰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 이 책 재미있다. 이 책의 표지에는 이렇게 써있다. [친환경 SF 러브 로망] ㅋㅋㅋㅋㅋㅋㅋ정말 친환경 SF 러브 로망이다. 딱 그렇다. 

















무려 [레 미제라블]을 읽고 운 다음에 읽는 책인데, 너무 가벼워서 짜증나면 어쩌지 라는 걱정을 했었다. 그런데 재미있어서 키득키득 거렸다. 게다가 얇아서 금세 읽히기도 한다. 요즘 책을 통 읽지 않아 책을 읽은 권수로 실적을 얘기하기에 뭔가 좀 만족스럽지 않은 사람이라면 이 책을 선택하면 된다. 금세 한 권 추가할 수 있다. 하하하하.



한아가 예쁘냐, 예쁘지 않냐 묻는다면 물론 예쁘기는 하다. 어느 정도 예쁘냐면 ‥‥‥ 평일 오후 2시의 6호선 전철 한 칸에서 가장 예쁠 정도로 예쁘다. 다른 말로는 출퇴근 시간 2호선 한 칸에선 20위권에도 못 들 수준이라는 것이다. 한 번쯤 눈길을 던질 만큼의 외모는 되지만 말을 걸거나 번호를 따 갈 정도는 아닌, 딱 고 정도. (p.9)



하하하하. 한아의 미모는 나보단 덜한것 같다. 나는 어떤 날에는 출퇴근 시간 2호선 한 칸에서 제일 예쁜데. 정말 가끔 그렇게 느껴질때가 있다니깐. 이 칸에서 내가 제일 예뻐, 하고 나는 스스로 생각하게 되는 날이 몇 날쯤 있다는거다. 그러니까 한아는 나보다 미모가 좀 떨어지는 것 같다. 그런데 '한 번쯤 눈길을 던질 만큼의 외모' 라니, 그정도면 대단하다 싶은데 그런 외모로 2호선 에서 '가장' 예쁘지 않다고? 여튼 10년간 같은 코스로 출퇴근하는 내게 아무도 전화번호를 따지 않은걸 보면, 뭐, 나랑 비슷한 외모인가 싶기도 하고, 그렇다. 


"나도 저렇게 여기에 왔어. 2만 광년을, 너와 있기 위해 왔어." (p.96)



그렇다. 한아와 있기 위해 경민이 2만 광년을 날아왔다. 다른 별로부터. 한아만 예뻐보여서. 그런 한아와 함께 있기 위해. 아..귀여워. ㅋㅋㅋㅋㅋㅋㅋ 오랜 시간을 연인으로 지낸 경민의 몸을 빌어 나타난 외계인에게, 한아는 색다른 설레임을 느낀다. 그가 없을 때 보고싶다는 간절함도 생긴다.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달디 단 작품을 쓰고 싶었다고 했는데,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성공한게 아닌가 싶다. 너와 있기 위해 2만 광년을 왔다고 말하는 남자라니. 아우..부러워. 출근길 2호선 한 칸에서 가장 예쁜 내가, 출근길 2호선 한 칸에서 20위에도 못 들 외모의 여자를 부러워하다니. 행복은 그러니까 미모순이 아닌거다. 나는 여태 살면서 한 번도 나와 있기 위해 2만 광년을 날아왔다는 남자를 만난적이 없거등. 제기랄.



"아저씨, 아저씨가 이해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지만, 어떤 특별한 사람은 별 하나보다 더 큰 의미를 가질 때가 있어요. 나한텐 아폴로 오빠가 그래. 은하계건 어디건 난 따라갈 거야. 이해하지 못해도 어쩔 수 없어요." (p.119)



어떤이들에겐 간혹 그런 존재가 있는 모양이다. 경민이 한아를 만나기 위해 2만 광년을 날아 지구로 왔듯, 주영은 아폴로를 만나기 위해 이제 이 지구에서 살기를 포기한다. 그녀에게 별 하나보다 더 큰 의미를 가진 남자가 저기, 지구 밖에 있으니까. 별 하나보다 더 큰 의미, 그 의미는 대체 얼마만큼의 힘을 가진걸까. 얼마만큼의 영향력을 내게 휘두르는 걸까. 살면서 누구나 다 그런 존재를 만나는 건 아닌것 같다. 


한아와 경민은 결혼식을 자신의 집 옥상에서 치른다. 쓰레기를 배출하지 않기 위해 일회용접시 대신 자신들이 가진 그릇으로 손님들에게 접대하고, 그것들을 설거지하는데에 있어서는 환경 오염을 시키지 않기 위하여 쌀뜨물과 베이킹파우더를 사용한다. 지구를 사랑하는 방법을 실천하는 데 있어서는 사실 보통의 사람들과 마찰을 일으키기가 쉽다. 쌀뜨물로 설거지하는 여자를 불편한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이 더 많을테니까. 종이컵대신 머그컵을 쓰겠다고 하면 가장 먼저 맞닥뜨리게 되는 말은 '그걸 설거지하면 어차피 물낭비고 세제로 오염되잖아' 인걸. 그때마다 일일이 반박하고 설득하고 하는 피곤한 과정을 거치며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은 좀 더 적극적인 사람들일테고 그런 사람들이 뭐라건 말건 걍 내 식대로 하는 나같은 사람의 경우에는 좀 소극적인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기본적인 생활패턴은 서로 일치하는 사람들이 함께 사는게 좋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한 명은 탄소를 배출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데 한 명은 그걸 불편하게 생각한다면, 한 명은 자연과 호흡하고 싶은데 다른 한명은 도시를 사랑한다면, 그들이 서로를 사랑하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해도 피곤해지는 순간이 온다. 설득과 타협은 어쩌다가 발생할 수 있는 부분이어야 하는거지, 기본적으로 추구하는 것에 있어서는 일치하는 쪽이 나을 것 같다. 어쨌든 경민은 한아를 어떻게 칭찬해야 한아가 가장 기뻐하는지 알고 있는 남자고(탄소를 정말 덜 만들어낸다고 해야한다), 쌀뜨물로 같이 그릇을 씻기를 주저하지 않는 남자다.






나는 예고편만 보고 이 영화를 보고 싶어 미칠것 같았는데, 나 같은 사람은 나 뿐이었나보다. ㅎㅎ 상영관도 별로 없고 상영시간도 참...거시기했다. 그리고 찾아간 극장 안. 관객은 나와 내 친구를 포함해서 총 아홉명 뿐이었다. 그리고 영화를 다 보고 생각했다. 이건 이대로 내리겠구나, 상영관이 더 많아지지도 않을것이고 이 관객들이 더 차지도 않겠구나, 하고. 


흥행할 수 없을 것 같은 영화이고, 내 친구도 이 영화를 썩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아으, 나는 정말 좋았다. ㅎㅎㅎㅎㅎ 나는 그러니까 이런식의 남자에게 무척 약한거다. 나에겐 어떤 트라우마가 있는걸까. 담을 넘어오는 사람들로부터 나를 지켜줄 수 있냐고 묻는 여자에게 '물론이죠' 라고 대답하는 남자를, 대체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 시골에서 나랑 사랑에 빠진다면 어떡할래요? 라고 묻는 여자에게 'anything' 이라고 답하고 잠시 후 다시 'everything'을 덧붙이는 남자인데. 게다가 그 남자가 양복을 입으면 정말이지 코피 쏟을 정도로 멋있다. 그리고 그가 지켜준다는 말은 헛말이 아닌것이, 싸움을 엄청 잘하는거다. 내 안의 모순된 감정은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 나는 폭력이 싫고, 폭력을 쓰는 장면을 볼때마다 끔찍하다고 생각하면서, 그런데 남자가 싸움을 잘 하는 게 좋은거다. 물론 여기엔 나만의 명분이 있다. 나를 포함해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혹은 약한 사람들을 보호해주기 위한 명분. 약해빠진 남자보다 강한 남자가 더 좋은건 나로서는 정말이지 어쩔 수가 없다. 난 기본적으로 체력이 약하고 정신력이 약하고 싸움도 못하는 남자들에 대해서는 좀처럼 애정이 생기질 않는다. 다른면들에 이끌려 좋아하게 됐다가도 약하다고 생각하면 ...좀......정이 ...............쿨럭.



이 남자는 충분히 강하고, 범죄로부터 빠져나오려고 노력하고, 충분히 멋지기 때문에 매력적이긴 하지만, 그러나 일단 범죄의 수렁에 발을 담갔던 이상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위험한 남자다. 덩달아 그를 사랑하고 그와 함께 있는건 나까지 위험해진다. 이 멋진 남자와 함께 있는건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라니. 제기랄. 왜이렇게 세상은 쉽지 않은걸까. 왜이렇게 어려운걸까. 그가 양복 입은 걸 보지 않기 위해 두 눈을 질끈 감아야 하나, 그래야 조금..멀어질 수 있으려나. 흑흑. ㅠㅠ






좀전에 사무실 형광등이 나가서 갈아 끼우기 위해 움직이지 않는 의자를 갖다 놓고 형광등을 막고 있는 뚜껑을 열었다. 긴 형광등이 아니라 내가 갈아끼우기에도 별 무리가 없는 것인데, 두 개를 갈아 끼우고 세 개째를 갈아끼우려는데, 이건 캡 부분이랑 램프 부분이 분리가 된거다. 그러니 램프 부분을 잡고 뺄 수 없고(그랬다간 끊어진다) 캡 부분을 잡고 빼야 하는데, 하아, 아무리 의자 위에서 까치발을 해봐도 캡 부분에 손이 닿질 않는거다. 이렇게 무력할수가. 형광등 갈아끼우는 걸로 남자 직원을 부르는일 따위는 하고 싶지 않았는데, 나는 어쩔 수 없이 다른 부서의 Y 대리를 불렀다. 키가 180이 훌쩍 넘는 Y대리는 너무나 손쉽게 캡 부분을 잡고 빼주었고, 끼는 것도 슝슝 한 방에 잘 껴주었다. 나처럼 고개를 쳐들고 하지 않아도 됐다. 아, 난 더욱더 무력해지고, 반면에 내가 하지 못하는 걸 그토록 손쉽게 하는 그 키 큰 Y 대리가 너무나 멋져보였다. 아, 멋져. 남자는 이래서 키가 커야 하는거구나. 형광등을 손쉽게 갈기 위해서. 그래서 나는 문득 생각했다.



너의 형광등을 갈아주기 위해 2만 광년을 날아왔어.



라고 말하는 키 큰 외계인이 있다면 거침없이 나를 맡기겠다고. 하아- 키 큰 남자가 멋있는 건, 형광등 때문이었어!!





마지막으로 이 책의 앞장에 실린, 이토록 애틋하고 귀여운 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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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2-09-24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친환경! SF러브로망이라니!!
나는 탄소 대사를 하지 않는데도 네가 내뿜는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싶었어. 촉각이 거의 퇴화했는데도 얼굴과 목을 만져보고 싶었어. 들을 수 있는 음역이 아예 다른데도 목소리가 듣고 싶었어……. 너를 위한, 너에게만 맞춘 감각 변환기를 마련하는 데 긴 시간이 들었어.
ㅠㅠ...

다락방 2012-09-24 11:12   좋아요 0 | URL
우앗, 아른님 이 책 읽으신거에요? 아니면 이 인용문은 어떻게 알고...책 소개 보신거에요? ㅎㅎ
아주 달콤하지만 전혀 유치하지는 않은 책이랍니다. 살면서 이토록 간질간질해지는 순간이 가끔은 필요한 것 같아요. 재미있어요. 헤헷 :)

비로그인 2012-09-24 15:43   좋아요 0 | URL
ㅎㅎ책소개에서 봤어요~전 이런 책이 있는 줄도 몰랐거든요~ ㅋㄷㅋㄷ하면서 볼 수 있는 깜찍한 책인 것 같아요. 누군가 내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싶었다고 말해준다면 전 망설임없이 직접적인 흡수경로를 제공할꺼에요!!ㅎㅎ물론 그 누군가가 누구냐에 따라 다르겠지만....ㅋ
뒤늦게 보았는데 저자소개에,"2011년 장편소설 『덧니가 보고 싶어』를 냈지만 덧니는 없다."ㅎㅎ

다락방 2012-09-26 12:13   좋아요 0 | URL
지금쯤이면 아른님은 조조영화를 관람중이실까요? 콜린 파렐에게 흠뻑 빠져계실까요?

저도 『덧니가 보고 싶어』를 장바구니에 넣어두었어요. 물론, 덧니는 없다, 는 소개글도 보았구요. 작가의 다른 작품도 궁금해지더라구요. 헤헷.
:)

moonnight 2012-09-24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첨 보는 책인데, 헌사에서 홀딱 반했어요. 너무 귀엽고 예쁘네요. ^^

저도 런던 블러버드 꼭 보고 말겠어. 생각했는데 정말.. 늘 가는 극장엔 개봉관도 하나밖에 없고, 시간은 밤 열두시 -_- 어쩌라는 건지. ㅠ_ㅠ 콜린 파렐 역시 멋지군요. 이 사람은 나쁜 남자임에 확실한데 참 매력적이에요. +_+;

다락방 2012-09-26 12:14   좋아요 0 | URL
저도 저 헌사가 무척 마음에 들어서 사진을 찍지 않을 수가 없더라구요. 책 내용만큼 예쁜 헌사에요.

콜린 파렐이 영화 [데어 데블]에서도 나오지 않았었나요? 연필이나 접시나 뭐 이런거 슝슝 던지는 남자로? 그때도 되게 멋지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아요. 아..멋진 남자...

Kir 2012-09-24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읽을 일은 없는 책이지만, 저 헌사는 정말 사랑스럽네요^^

다락방 2012-09-26 12:14   좋아요 0 | URL
저도 약간 불안한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재미있게 잘 읽었어요. 흣.

테레사 2012-09-24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그렇다면 이미 레미제라블은 다 읽으셨군요? 그쵸? 전 이제 3권...밤엔 책을 안읽으려고요..주말에만 읽으려 하는데 젠장,,,,사무실에 3권을 두고 와서 어쩔 수 없이, 1권을 다시 읽었다는...글고..솔직히 2권도 ...수도원은 넘 지루해서..건성건성 읽었어요.ㅠㅠ

다락방 2012-09-26 12:15   좋아요 0 | URL
네, 테레사님. 눈물 닦아가면서 레 미제라블을 다 읽었습니다. 레 미제라블은 다시 읽어도 좋을 책 같아요. 전 수도원 부분 보다는 워털루 전투 부분이 무척 지루했어요. 읽어도 제대로 이해 못한 느낌도 들고 말이죠.

지금쯤 테레사님은 3권을 열심히 읽고 계실까요?

조선인 2012-09-24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헌사문이라니, 엄마인 저로선 가슴이 찌르르 짜르르 마구 귀뚜라미가 웁니다.

다락방 2012-09-26 12:15   좋아요 0 | URL
혹시라도 제가 책을 내게 된다면 저 역시 한 번쯤 써보고 싶은 그런 헌사에요.

레와 2012-09-24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헌사에서 오십점 먹고 들어감. ㅎ

다락방 2012-09-26 12:16   좋아요 0 | URL
무려 친환경 로맨스라구요!! ㅎㅎ

감은빛 2012-09-24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출퇴근 시간 2호선 한 칸에서 제일 예쁜 다락방님.
출퇴근 시간에 제가 2호선을 탈 일이 없다는 것이 아쉽군요.

친환경 SF 러브 로망은 어떤 분위기인지 좀 궁금하지만,
소개해주신 내용으로는 별로 끌리지는 않네요.

월요일 오후 사장님 눈치보면서 딴 짓 하고 있어요.
정말 일하기 싫은 날이예요.
날씨는 왜 이리 화창하고 좋은지!

다락방 2012-09-26 12:18   좋아요 0 | URL
아..뭔가........내가 이러지 말았어야 했던건가, 하는 생각이 불쑥 드는 댓글이네요, 감은빛님. 출퇴근 시간 2호선 한 칸에서 제일 예쁜 다락방, 을 다른 사람으로부터 듣게 되다니..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대단히 부끄러워요!!

친환경 SF 러브 로망은 정말로 친환경적이며 SF 적이며 러브가 가득가득한 그런 로망입니다. 하핫.

오늘도 날씨가 무척 좋아요. 대체 옷을 어떻게 입어야 될지 모르겠어요. 오늘은 딴 짓 안하세요?


테레사 2012-09-27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네네...전..3권을 읽고 있어요. 헌데..주중에는 너무 몰입하면 담날 지장이 있어..삼가고 있어요 ㅠㅠ 추석연휴를 기다리고 있어요.(엉? 나 실향민?)아 생각만 해도 뿌듯뿌듯~ 다락방님도 추석 잘 보내세요^^

다락방 2012-10-08 15:06   좋아요 0 | URL
테레사님, 너무 늦은 댓글이라 참 민망한데요 ㅎㅎ (이제서야 봤지 뭡니까!)

지금은 어떤 책을 읽고 계세요?
 
엄마도 때론 사표 내고 싶다 - 대한민국에서 엄마로 산다는 것
문현아 지음 / 지식노마드 / 2012년 9월
평점 :
품절


"네가 세상에 태어나서 접하는 모든 것들이 다 처음이듯이, 나도 너를 통해서 엄마가 되는 게 처음인 거다. 네가 새롭게 하는 것을 보면서 나도 그런 아이를 가진 엄마로, 그렇게 처음 엄마가 되는 거니까." (p.58)



당연히 엄마도 엄마가 되는게 처음인데, 우리 모두는 마치 엄마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줄 아는 것 같다. 당연히 엄마의 역할로서. 결혼을 하고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고 육아를 하는 여동생을 옆에서 보아오면서 엄마라는게 정말 힘들다는 걸 깨달아가던 내게, 그래서 차마 그건 내가 못할 것 같은 엄청난 일이라고 인식하고 있던 내게 '나도 너를 통해서 엄마가 되는 게 처음인거다' 라는 문장은 구원처럼 다가왔다. 그래, 그렇지. 이 당연한 말을 왜 그동안 아무도 말하지 않았지? 너무 당연해서인가, 아니면 그들 모두 그걸 모르는채로 지내는 편이 더 편했기 때문인가?



여동생은 임신과 출산을 겪으면서 체력이 많이 약해졌고 몸무게도 많이 줄었다. 아이를 막 낳고 나서는 행복과 슬픔 사랑과 절망 그리고 분노까지 그 많은 감정들을 순식간에 왔다갔다했다. 몸 여기저기가 고장나서 육체적으로도 힘겨워했고 그런 복합적인 감정들을 이겨내느라 우울증까지 걸렸었다. 그토록 원하던 순간순간들이었는데, 그것들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 결코 쉽지 않았다. 아이가 자라면서 이제 동생은 많이 안정을 찾았고 어떻게 자신을 돌봐야 하는지도 알게 되었다. 아이가 잠든 후에 차를 마시고 책을 읽으면서 자기를 위한 시간을 갖기도 하고, 과외선생님을 하면서 자신이 녹슬지 않았음을 깨닫고 기뻐하기도 한다. 



여동생이 아이를 낳고 힘들어할 때 무엇보다 그런 여동생을 더 힘들게 한건 주변 어른들의 한마디 말이었다. 야, 옛날 엄마들은 애를 여럿 낳았다, 남들도 다 하는데 너는 왜 유난이냐, 하는 그런 말들. 세상에 그렇게 무식한 말이 어딨을까. 남들도 다 해낸 일이니 나 역시도 쉽게 해내야 한다는 건 대체 어디서 온 논리일까. 누구는 애를 열을 낳았고 누구는 하나를 낳았다고 해서 그게 힘들지 않은건 아니다. 열을 낳든 하나를 낳든 힘들다. 똑같이 둘을 낳았다 해도 누군가에겐 더 벅차고 힘겹게 느껴질 수도 있다. 우리가 같은 과정을 거치고 같은 경험을 하면서 받게 되는 고통의 강도는 다 다르다. 물론 기쁨의 강도도 다르고. 그걸 이겨내기 위해서 각자가 나름의 위치에서 애쓰고 있는데 거기에 '남들도 다 했어' 라는 말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지 그 힘겨움을 들어주고 이해하려는 태도를 보이는 쪽이 훨씬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남들도 다 했어, 라니. 그럼 못하는 나는 병신이란 말인가?



그런차에 이 책, 『엄마도 때론 사표 내고 싶다』는 꽤 반가웠다. 무엇보다 그런 엄마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 같아서 무척 안심이 됐다. 누군가는, 어딘가에서는 엄마가 처음인 사람들의 편에 서려고 한다는 것, 그들이 괜한 엄살을 하는게 아니라는 걸 알아주려고 하는 것 같아서 나도 한 편이 되어 응원해주고 싶었다.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새삼 깨닫게 될 수 있다는 것이 아마도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 될 것 같다. 아이를 임신하고 낳는 과정에서 당연히 아이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고 그 과정이 행복하기만 하다는 건 다른 사람들이 갖는 환상 아닐까. 그 과정이 왜 무섭지 않겠는가, 왜 두렵지 않겠는가. 나의 스케쥴이 내가 아니라 다른 생명으로 인해 정해져야 한다는 사실이, 내가 먹고 싶은걸 내가 아니라 다른 생명 때문에 먹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이, 정말이지 끔찍하게 두렵지 않은가 말이다. 내 생활이 그동안 몰랐던, 알지 못했던 '타인'에 의해 결정되어지다니, 그걸 마냥 환영하고 기뻐하기에는, 사실, 엄마인 당사자 말고 다른 사람들이 느끼는 고통은 없지 않은가 말이다. 먹지 않아야 하고, 자지 못하게 되고, 참아야 하는 것들이 왜 모두 엄마의 역할인걸까. 그런데 왜 그것들을 감당하는 것을 그토록 당연스럽게 여겨야 한단 말인가. 



뒷부분에서는 아이들의 교육에 대한 부담도 나온다. 왜 강남 엄마는 있고 강남 아빠는 없는것일까. 왜 아빠의 무관심이 아이들 교육에 더 도움이 된다는 우스개 소리가 나와야 하는걸까. 왜 할아버지의 재력이 아이의 교육에 영향을 미친다는 농담아닌 농담이 돌아야 하는걸까. 왜 치맛바람을 일으키는 엄마만 존재하고 바짓바람을 일으키는 아빠는 존재하지 않는가. 그들은 돈을 벌기 때문에? 그렇다면 돈을 버는 엄마는 교육에서 무관심해도 좋은가? 엄마가 직장생활을 하든 하지 않든 가정과 사회는 아이들의 교육을 당연히 엄마가 책임지기를 바란다. 이 책에서 인터뷰한 몇몇 엄마들은 그것이 엄마들의 잘못이 아니라 이 사회의 잘못된 시스템 탓이라고 말한다. 나는 이렇게 말하는 엄마들을 보는것이 무엇보다 반가웠다. 지금 당장 그들이 액션을 취하는게 아니라도, 일단 그들은 '내 잘못' 혹은 '내가 엄마 역할을 못하기 때문이야' 라는 생각을 하지 않아서, 교육 시스템이 잘못됐다는 걸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다는 게 좋아서. 일류대를 보내려는, 인 서울을 하려는 엄마들을 만나는 건 당연할 수 밖에 없다. 이 사회가 그런 대학만을 위에 올려놓았으니까. 거기에 가야만 살아남는다고 말하고 있으니까. 그런데 이 책에서 인용된 신문기사들을 보더라도 끔찍한 교육으로 아이들을 몰아넣은건 모두 엄마들이라고 말한다. 참으로 멍청하기 짝이없다.



엄마가 아닌 저자가 엄마들에 대해 관심을 갖고 인터뷰를 하고 책을 쓰려는 의도도 좋았고, 무엇보다 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들이 반가워서 점수를 후하게 주고 싶지만, 오타가 지나치게 많다. 툭툭 어색한 문장도 튀어나온다. 게다가 재미도 없다. 육아서적도 그리고 엄마의 아이덴티티에 관한것도 읽고나서 위로가 될만하다 싶으면 여동생에게 건네주는데, 강남 엄마에 대한 부분부터는 의미는 있으되 재미는 없어서 책장을 넘기지 못할 것 같아 읽어보라 권하지를 못하겠다. 단어와 문장을 조금 더 손보았다면, 그리고 음, 좀 더 '재미있게' 썼다면 약간 찝찝한 별 넷이 아니라 확실한 별 넷을 줄 수 있었을텐데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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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2-09-24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짧게 쓸려 그랬는데 또 길어졌어..병인가..orz

비로그인 2012-09-24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읽은 육아관련서적이라곤 오직 베이비위스퍼 하나뿐인 엄마사람인데 이런 책도 읽으시는 다락방님 일단 존경합니다... 진작에 읽었더라면 좋았을걸 하는 육아서적을 앞으로 만나게 될지도 모를 일이지만...지금으로선 다 그 말이 그 말인 것 같은 자기계발서적과 마찬가지로 쉽게 손이 안가요...다른 사람들의 의견보다도 아이들 키우며 스스로 정립해나가는 걸 더 소중히 여기게 되네요. 아이들을 대하는 기본은 사랑임이 당연하고 같은 인간으로서 예의를 지키는 것, 그렇지만 엄마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 자신을 아이들보다 하찮게 여기지 말 것 등을 늘 마음에 새기고 있는데...가끔 불필요한 조언을 하는 사람들에겐 "그럼 니가 키워봐" 하고 당당하게 말하는 못된?? 엄마네요,저는.ㅎㅎㅎ

다락방 2012-09-24 11:16   좋아요 0 | URL
저도 몇 권 읽어보지 않았지만, 이 책에서도 육아서에 대한 언급이 있거든요. 아이들마다 다 다른데 육아서대로 어떻게 키우느냐는 거죠. 한 뱃속에서 나온 형제들조차도 성격과 취향이 다 다르잖아요. 그 애들한테 대응하는게 다 달라야 하고요. 육아서는 참고할 순 있어도 유일한 혹은 유능한 지침서는 결코 될 수 없는 것 같아요.

저는 만약 제가 엄마였다면, 혹은 제 여동생이 엄마가 아니었다면 아마 육아서를 읽지 않는 여자사람이었을 거에요. 그런데 제 여동생이 엄마가 되었고, 저는 여동생이 엄마라는 역할을 함에 있어서 좋은 친구가 되어주고 싶어요. 그래서 여동생보다 제가 더 많이 읽으려고 노력하고요. 읽는다고 다 되는 건 아니지만, 이왕 여동생에게 도움이 될 만한 책을 추천한다면 가급적 재미도 있었으면 좋겠구요. 좋은 친구가 되어주고 싶어요. 비혼이고 아이도 낳지 않았지만, 그런 언니지만, 아이를 가진 여동생의 훌륭한 동무가 되고 싶어요.


아른님 댓글중에 '같은 인간으로서 예의를 지키는 것'이 제 마음과 같아요. 아이들에게도 약속을 잘 지키는 어른이 되는것이 중요해요. 아이라고, 금세 까먹을거라고 말만 내뱉는 건 정말 나쁜것 같아요. 예의를 지키자고 생각하는 게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치니 2012-09-24 1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육아서와는 다른 맥락이지만, 제가 읽은 교육론(?) 중에는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 (박혜란 저, 이적 어머니죠)이 제일 마음에 와닿았던 기억이 있어요. 시대가 엄마를 너무 힘들게 하는 것도 있기는 하지만, 많은 엄마들이 엄마 역할에 대해서 너무 모르거나 너무 힘을 주는 오류에서 벗어나기 힘든데, 기본적으로 읽어두면 좋을 책이다 싶어요. 기억이 가물한데, 아무튼 박혜란 씨가 여성학자이자 세 아들의 엄마로서 주지한 것 역시, 엄마라고 다 해줄 필요는 없다, 일단 아이를 인격체로서 믿어라, 니까요. 이적이 이미 패닉으로서 성공한 이후 나왔다는 게 함정, 이긴 하지만. ㅎㅎ

윗분 말씀대로 다락방 님은 참 부지런하고 배움을 두려워 않는 미덕을 갖춘 분. 동생분이 든든할 것 같습니다. :)

다락방 2012-09-26 12:19   좋아요 0 | URL
치니님의 댓글을 읽고 검색해봤는데 품절이네요. '여성학자'라는 본인의 타이틀을 가진 사람이면서 이적의 어머니이기도 하군요.

부지런하다뇨..전 게으름의 화신인걸요!! 무언가를 배우기엔 노력하는 성향도 없고..부족한 인간인겁니다. 흑흑. 이제 점심 먹을거에요!

dreamout 2012-09-24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재 책꽂이엔 남편.이 놓여 있네요. 엄마,, 남편,, 아. 손님.도 있네요. ㅎㅎㅎ

다락방 2012-09-26 12:55   좋아요 0 | URL
ㅎㅎ 전 아직 엄마가 되지 않았고 남편도 없으며 절 찾아온 손님도 없네요. ㅎㅎㅎㅎㅎ 책들 다 갈아치워버렸어요. ㅎㅎ
 
레 미제라블 5 펭귄클래식 95
빅토르 위고 지음, 이형식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0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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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끝까지 읽기 위해서는 흐르는 눈물을 계속 닦아야했다. 콧물은 내버려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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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rnleft 2012-09-22 05: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드디어 다 읽었네요. 축하축하~

다락방 2012-09-22 05:54   좋아요 0 | URL
어휴 ㅠㅠ 이 새벽에 눈물 콧물 쏟아내서.. 잠은 다잤네요.

단발머리 2012-09-22 0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박수! 짝짝짝! 아,,, 정말 다락방님 눈물과 콧물 멘트에 안 읽을래야 안 읽을수가 없네요. 저도 눈물, 콧물 페이퍼로 돌아올께요. 완전 축하해요~~~~

다락방 2012-09-24 13:23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님, 정말 정말 푹 빠져서 읽게 되실거에요. 이 다섯 권이 책장에 나란히 꽂혀있는 것만 봐도 가슴 뻑뻑해질 수 있어요. 정말 빅토르 위고는 대단한 작가에요. 흑흑.

moonnight 2012-09-22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왓 다락방님 완전히 꽂혀서 질주하셨군요!!! 저도 얼른 시작하고 싶어요. (제인 에어 다 읽어가요. +_+;;)

다락방 2012-09-24 13:24   좋아요 0 | URL
제인 에어도 재미있죠. 당당한 로체스터!!
문나잇님, 레 미제라블 읽고 우리 함께 울어요!! 엉엉 ㅠㅠㅠㅠ

가넷 2012-09-23 0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언젠가 읽어야 겠지여. ㅎㅎ 우선 노르트담의 꼽추부터...

다락방 2012-09-24 13:24   좋아요 0 | URL
저는 몇 년전에 노틀담의 꼽추를 읽었는데요 콰지모도, 에스메랄다 등의 이름만 기억이 나지 내용이 가물가물해요. 그리고 그때는 감동을 받지 못했거든요. 레 미제라블 읽고 완전 좋아서 노틀담의 꼽추도 다시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가넷 2012-09-24 15:17   좋아요 0 | URL
음. 저는 작가정신판(성귀수 번역)으로 구입해두었는데, 벌써 몇년이 지나버렸네요. 올해 안에는 읽어봐야겠어요.ㅎㅎ

다락방 2012-09-24 17:44   좋아요 0 | URL
저는 몇 년전에 읽은게 청목출판사였거든요. 근데 기억도 안나고 재미있게 읽은것 같지도 않아서 이번에 민음사로 사볼까 했는데 번역이 안좋다는 평들이 더러 보이네요. 그래서 지금 망설이고 있어요. 흐음.

비로그인 2012-09-23 1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 가을을 레 미제라블과 함께 하겠어요 불끈!

다락방 2012-09-24 13:25   좋아요 0 | URL
전 이제 노틀담의 꼽추에 도전하겠어요. 불끈!

Kir 2012-09-24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완독 축하드려요!^^ 전 이런 상황이 닥치면 눈물은 쓱쓱 문질러 닦고, 코는 냅다 틀어막아버립니다;

다락방 2012-09-24 13:25   좋아요 0 | URL
어휴 눈물 콧물 책은 오랜만이라. 어휴. 막 속상하고 그랬어요. 이 사람, 이 외로운 사람, 왜이렇게 외롭게 내버려두는거야, 하고 소리를 지르고 싶기도 했구요. ㅠㅠ

2012-09-28 00: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9-28 10: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9-28 13: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9-28 14: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관찰자 2013-01-25 1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마뵈프 영감님이 제일 좋아요.
책장에서 끼니를 위해 팔아야 할 고서적을 고르는 장면은 정말 눈물 없인 볼 수 없어요.엉엉.
저처럼 소유욕 많은 인간은 정말이지 죽느냐 사느냐 하는 문제에요.
물론 살아야 하기 때문에 팔겠지만요.ㅠ
아무튼 저는 장발장보다도 마뵈프 영감님이 제일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