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자평] 목사의 딸들
















로렌스의 목사의 딸들이란 단편집에 수록된 단편 「목사의 딸들」에는 결혼 할 나이가 된 두 딸이 나온다. 이 두 딸은 각자가 원하는 바가 달랐다. 큰딸 메어리는 자신에게 일정한 지위와 권위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다른 식구들이 모두들 뭐 저런 사람이 다 있지? 라고 생각했던 사람을 자신의 남편감으로 받아들인다. 그와 결혼하면 그녀는 언제나 교양있고 지위있는 여성으로 머물 수 있으니까.


메어리가 매씨 옆을 따라 올더크로스를 걸어다니는 것을 보면 사람들은 수군대곤 하였다.

"아이고, 메어리가 상대를 잡긴 잡았구먼. 그런데 어디서 저렇게 작고 형편없는 난쟁이를 골랐담!" (p.70)


그녀라고 이를 몰랐던 것은 아니다. 그녀의 동생인 루이자는 그와 다니는 걸 수치스럽게 생각하기도 했으니까. 그러나 그녀는 그와 결혼하기로 결심한다.


메어리는 매씨 씨와 결혼하면서 자신도 남편처럼 감정이나 충동이 없는 순수한 이성이 되어보려고 노력했다. 그녀는 자신을 닫아걸었다. 그녀는 처음에 닥쳐온, 수치로 인한 고뇌와 침해당하는 공포감에 대해서도 완강하게 자신을 닫아걸었다. 그녀는 결코 감정을 느끼지 않으려 했다. 그녀는 그에게 묵묵히 따른는 하나의 순수한 의지로 자처했다. 그녀는 어떤 한 종류의 운명을 선택했다. 그녀는 선해지고 순수하게 정의로우며, 자신이 이미 알던 것보다 더 높은 자유 속에서 살아가고, 세속적 근심으로부터 자유로울 것이었다. 그녀는 의(義)를 향해 가는 하나의 순수한 의지였다. 그녀는 자신을 팔아넘겼지만, 덕분에 새로운 자유를 얻었다. (p.82)



이 결혼은 그녀의 의지였다. 그녀는 어떤것을 잃는대신 또 어떤것을 얻는다는 걸 깨닫고 있었다. 남편은 결혼하고 나니 무척 잘해주었고, 아이도 둘이나 낳았다. 그러나 그녀는 간혹 견딜 수 없을것 같은 마음이 생기기도 했다. 어느날 그녀는 그에게 온 식구가 다함께 친정에 가자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기차를 타고 간다.



"구석으로 들어앉아요." 그는 아내에게 말했다. "그리고 아기를 꼭 안아요."

아내는 그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고는 창밖을 응시했다. 그가 영원히 옆에 있다는 것이 그녀에게는 자신의 뇌를 누르는 쇳덩이와 같았다. 그러나 이제 며칠 동안 그것을 다소나마 피하게 될 것이었다. (p.90)



아, 도스트예프스키가 자신의 단편인 「영원한 남편」에서 '영원한 남편같은' 남자에 대해 묘사했던게 어렴풋이 생각나면서, 이 장면이 끔찍하게 여겨졌다. 순수하게 육체적인 면으로 보자면 경멸하고 싶기까지한 남자를, 그녀는 다른식의 욕구로 버텨가며 살고 있는데, 그러다가 문득 돌아본 그 남자가 영원히 나와 함께 살게 될 남자라는 걸 자각하게 되면, 그 순간은 얼마나 끔찍할까.


언니 메어리는 동생 루이자에게 우상과도 같은 존재였다. 자신은 아무리해도 언니처럼 고결할 수 없다고 느꼈다. 그러나 언니가 그런 남자와의 결혼을 선택하는 걸 보면서 루이자는 일종의 배신감마저 느꼈다. 그녀는 자신의 결혼은 반드시 '사랑'으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굳게 다짐한다.


"그들은 틀렸어-모두 틀렸어.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 때문에 자기 영혼을 갉아먹은 거야. 그들한테는 어디에도 손톱만큼의 사랑도 없어. 하지만 난 사랑을 차지할 거야. 그들은 우리가 사랑을 부정하기를 바라고 있어. 자기들은 한번도 사랑을 찾아내질 못했으니까 사랑이란 건 없다고 말하고 싶지. 하지만 난 사랑을 차지하고 말 거야. 난 사랑할거야- 이건 내가 타고난 권리야. 난 내가 결혼한 사람을 사랑할 거야-내게 중요한 것 이것뿐이야." (p.88)



루이자는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하기로 한다. 그녀가 다짐한대로, 그녀가 마음먹은대로 된 것이다. 그러나 루이자의 식구들은 루이자가 사랑한 남자를 받아들일 수가 없다. 저렇게 아무것도 가진게 없는 형편없는 남자와 루이자가 결혼한다는 게 챙피하기도 하다. 결국 루이자와 그는 캐나다로 이민을 가기로 하고 루이자의 식구들은 그것을 현명한 선택이라고 말한다. 루이자는 사랑을 원했고, 그것을 손에 얻었지만, 가족들로부터는 인정받지 못하고 먼 곳으로 떠나서 살아야 하는 것이다.



'결혼'에 대해서 각자가 가진 생각은 모두 다르다. 조건이 맞아야 편안한 결혼생활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야만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결국은 자신이 원하는 바대로 삶을 이끌어나가는게 아닌가 싶다. 이것 대신 저것을 선택한 건, 순간순간마다 내가 선택한대로 그 길이 열리는 거니까. 물론, 그때마다 다른 길은 닫히지만. 그 선택에 있어서 내가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게 될지는 내가 판단할 몫이고, 내가 감당해야 할 부분이다. 메어리는 사랑보다는 의를 택했고, 루이자는 다른건 다 필요없고 사랑을 택했다. 그건 모두 그녀들이 원하던 바였다. 앞으로의 날들이 어떻게 흘러가게 되든간에.




메어리가 기차안에서 이 남자와 영원히 함께 해야하다니, 하고 끔찍하게 생각할 때 이 소설이 굉장히 완벽하게 느껴졌는데, 로렌스는 이 소설에 달콤함도 잊지 않고 넣어두었다. 사랑을 차지하려는 루이자, 그녀는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서, 자신을 붙들지 않아서 초조하고 애가 탄다. 이에 그녀는 자신이 먼저 입을 연다.


"날 원하지 않아요?" (p.134)


절망적으로 이 말을 꺼낸것도 루이자였고,


"당신을 사랑해요." (p.135)


라고 먼저 흐느끼는 것도 루이자다.


하아! 멋지다. 자신의 사랑에게 자신의 사랑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여자라니, 그렇게 결국 그토록 원하던 사랑을 차지하다니. 사람은 역시 자신이 가장 원하는 것을 차지하기 위해서라면 그게 뭐든 하는것 같다. 물론, 그토록 열과 성의를 다하지 않았다면, 두려움을 무릅쓰고 용기를 내지 않았다면, 그건, '그렇게까지' 원한건 아니어서라는 말도 되겠다. 포기하는게 더 쉬웠다는 건, 그렇게까지 원한 건 아니었다는 게 아닐까.




이 단편소설집의 다른 단편인 「국화 냄새」와 「프로이쎈 장교」도 좋지만, 뭐니뭐니해도 압권은 「당신이 날 만졌잖아요」가 되시겠다. (그런데 지금 몇시지? 내가 이러고 있으면 안되는데?)


원제가 무려 You Touched Me 인 이 소설은, 218 페이지에 이르러서는 한 페이지 전체가 그저 예술이라고밖에 표현되질 않는다.



하아- 이 한 페이지를 읽는데 정말 미춰버릴 것 같다. 그녀는 아픈 아버지의 이마에 손을 대려고 했던거다. 그런데 아버지가 거실로 옮겨가고 아버지의 방에 헤이드리언이 누워 있었던 거였다. 그 사실을 그녀가 잠깐 잊었다. 그런데 ...그런데.....헤이드리언은 자신의 이마에 얹어졌던 마틸다의 손길을 잊지 못하고 마틸다는 헤이드리언의 고운 이마가 자꾸 생각난다. 히융.


헤이드리언은 그 손길 뒤로 자꾸 마틸다와 이야기를 해보고 싶지만 마틸다는 자꾸 헤이드리언을 피하기만한다. 하아. 이게 뭔지 너무 알겠어. 그래서 강한 느낌의 터치(결코 강한 터치가 아니다, 강한 느낌의 터치다)는 사람을 피말리게 한다. 잊지는 못하겠지, 하루종일 생각나지, 일상을 쥐고 흔들지. 이게 생활이 되겠는가 말이다. 키보드 치다가 멍때리고 책을 읽다가 멍때리고 지하철 안에서 손잡이를 쥐고 있다가 휘청이고. 아, 이래서 안돼 안돼. 갑자기 다리가 스르르 풀려버리면 대체 어쩌라고. 두 발로 굳건히 버티기 위해서는 이런 망측한(!)일은 일어나서는 안되는거야. 힘들어. 힘들고 싶지 않아. 흑흑.


나는 마틸다가 되어 헤이드리언을 피하다가, 결국 맞닥뜨리고 나서는 '너의 엄마뻘' 이라고 말했다가, 그러나, '내게 어머니가 아니었어요' 라는 헤이드리언의 말앞에 그저 무릎 꿇는다. 응, 아니야, 아니지. 대체 그게 무슨 상관이람. 날 네 마음대로 해. 흑흑. 난 어쩌자고 그 때 널 만졌을까. 내가 널 만진건 신의 섭리가 아니었을까.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널 만져도 될까. 물론, 마틸다는 이렇게 반응하지 않았지만, 마틸다는 내가 아니고 나도 마틸다가 아니니까. 킁.



여하튼 로렌스는 최고란 말이다. 난 로렌스의 『채털리 부인의 사랑』도 재미있게 읽긴 했지만, 정말이지 「당신이 날 만졌잖아요」가 최고다. 이 얘기를 스맛폰 메신저로 친구와 나누고 있는데 친구가 로렌스의 장편도 좋다고 하는거다. 그래서 검색해봤다.













『채털리 부인의 사랑』도 그렇지만 『무지개」와 『아들과 연인』도 출판사가 여러군데다. 나는 흐음, 민음사를 선택해서 읽어보기로 해야겠다. 일단 『아들과 연인』을 읽어봐야지. 뭔가 엄청난 작품일 것 같아서 막 가슴이 뛴다. 이 안에도 삶 속에서 느끼는 비참함과 비굴함과 한숨이 다 들어있겠지, 이 책 속에도 그러나 가슴 떨리는 느낌도 들어있겠지? 아, 너무 기대 되는구나. 흑흑. 내일 질러야지. 꺄울 >.<


로렌스의 단편집은 그토록 어렵게 구매할 가치가 있었다.




회사 빌딩에서 틀어주는 난방때문에 내내 건조한 느낌이었는데 비가 내리니 안심이 된다. 좀 촉촉하게 습기를 머금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나에겐 이게 필요했다. 비가, 습기가, 촉촉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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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2-12-14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때로는 몸의 기억의 머리의 기억을 압도 할때가 있어요.
저는 항상 그 사람의 검지 손가락만 잡고 다녔어요. 제가 손에 땀이 많아서 손 잡고 다니긴 좀 그랬거든요.
아...검지 손가락의 기억이여~ ㅎㅎㅎ

몸정이 더 무섭다고 누구누구가 그럽디다....

다락방 2012-12-14 13:40   좋아요 0 | URL
마중물님, 저도 알아요! 몸의 기억이 머리의 기억을 압도하는 그거요. 하아.
아, 저도 무엇이 기억난다고 구체적으로 쓰고 싶지만, 그랬다가는 남은 시간을 육체의 추억에서 허우적 거리며 빠져나오지 못할 것 같아서 꾸욱- 눌러 바깥으로 삐져나오지 못하게 하렵니다. 흑흑.

몸정이 더 무섭다고 제가 그러지 않던가요. ㅎㅎㅎㅎㅎ

레와 2012-12-14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우~! ㅎㅎ

다락방 2012-12-14 16:05   좋아요 0 | URL
팔딱팔딱 거리죠, 심장이? ㅎㅎㅎㅎㅎ

댈러웨이 2012-12-14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로렌스가 저 로렌스가 아닌 줄 알았어요. 다락방님이 읽는 로렌스는 분명히 다른 로렌스일거라고 생각... --; 또 주말이네요, 다락방님!

다락방 2012-12-14 16:06   좋아요 0 | URL
이 로렌스가 그 로렌스가 맞습니다, 댈러웨이님! 제가 요렇게 팔딱 거리는 부분만 발췌해서 그렇지 같이 실린 다른 단편 두개는 그렇지 않아요. 씁쓸합니다. 그나저나 댈러웨이님, 세상에 읽을 책이 어떻게 점점 더 많아질까요? 이건 좋아해야할지 싫어해야할지 모르겠어요. 흑흑.

여긴 지금 비가 와서 어두워요.

moonnight 2012-12-14 1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는 사람이 미국에서 학위를 땄는데 전공이 로렌스였다고 하더군요. 다락방님이 로렌스에 대해 훨씬 더 훌륭한 논문을 쓰실 수 있을 것 같아요. ^^ 저런 남녀의 심리를 묘사할 수 있다니. 참 대단한 작가란 생각 들어요. +_+;

다락방 2012-12-16 17:33   좋아요 0 | URL
ㅎㅎ 논문이라면 전 정말 자신없습니다, 문나잇님. 저는 워낙에 논리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인간이고 뭐랄까, 딱 꽂히는 부분에만 집중력을 발휘하기 때문에 논문을 쓴다고 생각하면 글은 딱- 멈춰지고 말거에요. ㅎㅎㅎㅎ

아, 정말 재미있게 읽었어요, 이 책을. 토요일 새벽에 일어나 책 주문 했습니다. 로렌스의 책을 포함해서요. 마냥 기다려져요. 히히히.

Mephistopheles 2012-12-14 1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 속에 "당신이 날 만졌잖아요!"가 현실로 튀어 나온다면.....아 범죄겠군요.

다락방 2012-12-16 17:33   좋아요 0 | URL
그게 그러니까, 음, 범죄일수도 아닐수도 있게 되겠지요. 흠흠.

dreamout 2012-12-14 1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두 딸들 모두.. 혼자 살 생각은 아예 안했군요. ㅋ

다락방 2012-12-16 17:34   좋아요 0 | URL
네, 저 두 딸들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ㅎㅎ

음, 저 남자와 결혼하면 어쩐지 나중엔 좀 불행해질 것 같아요. 만져서 흥분하고 잊지 못하고 하는 것이 평생 가지는 않을테니 말예요.
 
43번지 유령 저택 1 - 옥탑방에 유령이 산다! 456 Book 클럽
케이트 클리스 지음, M. 사라 클리스 그림, 노은정 옮김 / 시공주니어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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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유명한 어린이책 작가인 부루퉁 B. 그럼플리가 부동산업자인 다파라 세일에게 올여름 조용히 책을 쓸 만한 곳을 찾는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면서 시작된다. 부루퉁은 겁나라 시에 있는 ‘으슥한 공동묘지 길 43번지’의 유령 저택을 계약한다. -알라딘의 책 줄거리 中에서


나는 혹여라도 내가 글 쓰는 직업을 갖게 된다면 조용한 작업실을 당연히 원하지 않을까 하고 종종 생각하곤 한다. 그럴때 혼자 조용히 작업할 만한 곳을 찾는것은 찾아가는 과정에서도, 그리고 그 공간을 시간을 들여 나만의 공간으로 만든다는 것도 무척 낭만적으로 느껴지는거다. 내 공간. 그런데 이 책의 소개를 보니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책인데 조용한 저택을 찾는 작가가 나온다는 거다. 게다가 편지를 보내면서 시작하고, 유령이 나온다니. 유령이란 존재에 대해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나이지만, 으으, 이거 뭔가 괜찮을 것 같아, 하는 기대감이 생기는거다.


































그렇게 책의 표지를 여니 왼쪽에는 이 저택의 도면이 나오고 오른쪽에는 이 저택의 모습이 보인다. 옥탑방과 다락방이 무척 낭만적이고 은밀하게 느껴져서 나는 단번에 이 저택이 마음에 들었다. 내가 이 공간에 살게 된다면, 그러니까 작업실이 아니라 그냥 우리 가족이 사는 집이라도, 저 위, 옥탑방과 다락방 둘 중 한 곳을 내 방으로 차지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이내 생각이 바뀌었다. 부엌이 1층에 있는거다. 그렇다면 내가 배가 고플때마다 수시로 저 3층에서 1층까지 오르락내리락 해야하는가? 나는 돌아서면 배가 고픈 사람인데? 안되겠다. 옥탑방과 다락방은 무리겠어. 2층 어디쯤에 자리잡자, 라고 생각했다. 아, 그러나 이 책은 날더러 어디에 살거냐고 묻는 책이 아니다.




















이 이야기는 편지 한 통에서 비롯되었다는 이 책의 앞장을 읽는데 무척 신났다. 당연히, 누가 시키기 않아도 에미와 레오가 생각났다. 존 버거의 A가 X 에게도, 멕 케봇의 옆집 남자도, 쇼데를로 드 라클로의 위험한 관계도, 메리 앤 셰펴와 애니 배로스의 건지 아일랜드 감자껍질 파이 클럽도 모두 편지 형식으로 재미를 준 책이 아니던가. 어린이책이 편지 형식이라니, 그래, 그래야지, 하면서 막 신나는거다. 





작가의 벽에 갇혀 이십년간 더이상의 책을 쓰지 못한 작가가 출판사와 계약하여 책을 쓰기로 하고 이에 조용한 저택을 찾는 편지를 부동산에 보낸다. 그래서 부동산에서는 저택의 목록을 보내준다.





나는 오른쪽 페이지 위의 바닷가 저택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글을 쓰다가 뭔가 잘 풀리지 않으면 바깥으로 나와 모래사장을 거닐고...그렇게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다가 파도에 떠밀려오는 외국인 청년을 발견하고 인공호흡을 하여 생명을 구해주고 몸이 회복될 때까지 내 집에 머물게 하다가 그 청년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대단히 에로틱한 소설을 써내고, 그걸 출판해서 벼락부자가 되고................


는 동화책이 될 수 없으니 패쓰하고 우리의 주인공은 하필이면 그래, 유령이 나오는 주택을 선택한거다.






그러나 그 저택에는 그 저택의 주인이 버려두고 간 아이가 있었다. 아이와 고양이. 이에 작가는 이 아이를 내쫓고 싶어하지만, 계약서상에는 이 아이와 같이 산다고 되어 있어서 그럴수도 없다. 하는수없이 작가는 아이에게 편지를 쓴다. 지켜야할 규칙을 몇가지 적어서. 이에 아이도 작가에게 편지를 쓴다. 작가가 지켜야 할 규칙을 적어서. 그리고 아이는 이 집에 자신과 고양이 말고도 유령이 산다고 얘기해준다.





그림에 소질이 있는 아이가 저 화살표로 표시된 곳에 유령이 산다고 말해준 것. 당연히 작가는 아이의 말이 자신을 골탕먹이기 위한 말이라고 생각하고 믿지 않는다. 그런 그에게 정말 유령이 나타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유령.





작가가 컴퓨터로 글을 쓰는데 유령이 그 밑에 자신의 이야기로 글을 쓴다. 그래서 글자체가 다른 걸로 저 둘은 대화를 한다. 마치 메신저의 창처럼. 그리고 유령은, 자신의 존재를 믿지도 못하는 작가에게 데이트를 하자고 제안한다. 하아- 난 정말이지, 사랑이 이 세상의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데이트와 연애는 즐겁지 않은가 말이다. 그걸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 할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스무살 때 그랬던 것처럼 일흔살에도 사랑에 빠질 수 있다니, 그건 한 사람이 죽지 않고 계속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가장 뚜렷한 증거가 아닌가. 데이트란 말은 그리고 왜, 스무살에도 서른살에도 그리고 백아흔살에도 떨리는걸까.




작가와 유령은 데이트를 한다. 그리고 작가는 유령의 존재를 믿게 되고, 아이에 대해서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유령과 함께 좋은 아이들 책을 쓰고 작가는 그동안 닫아두었던 마음을 열고 유령을 사랑하게 된다.



































귀찮게만 여겼던 꼬마가 사랑스러운 존재가 되는것도, 닫아두었던 마음의 문을 여는것도, 글을 쓰지못했던 작가가 재미있는 소설을 결국은 써내게 된다는 것도, 예측가능한 결말이긴 하지만, 여기에 이르기까지 이 책은 빨리 다음책장을 넘기고 싶을만큼 빠르게 넘어간다. 내가 가장 흥미있었던 부분은 유령과 사랑에 빠지는 작가에 대한 부분이었는데, '마르크 레비'의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당신은 믿을 수 없겠지만』이란 소설에서도 '영혼'과 사랑하는 남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유령은 뱀파이어나 늑대인간 같은 초자연적인 존재와는 좀 더 다른 것 같다. 유령하고 사랑하는 일은 대체 어떤 일일까.


이 책속에서는 그 존재를 믿는다면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러니 내가 믿는다면 내 앞에 유령이 나타날 수도 있다는 얘기가 되는데 그렇다고한들 내가 그 유령을 만지고 느낄 수 있을까? 그 유령과 사랑하는게 가능할까? 다만 나와 사랑하는 유령이 있다면 어쩐지 든든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게 나를 지켜줄 수도 있으니까. 이 책 속에서도 유령은 도서관에서 읽고 싶은 책을 훔치고(물론 다시 갖다둔다), 아이를 버려두고 간 부모를 난처한 상황에 처하게 만들기도 한다.


무엇보다 유령이 정말 존재한다면, 이 세상의 모든 어린아이들의 옆에 붙어 다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령은 아이를 사랑하도록 만들어진 존재였으면, 하는거다. 그래서 이제 이 아이는 내가 늘 붙어다니지 않아도 되겠군, 이라는 생각이 들 때 떠났으면 좋겠다. 그 전까지는 아이들 곁을 맴돌면서 그 아이를 위기에서 구해주었으면 좋겠다. 단순히 뛰는 아이가 넘어지지 않도록 돕는게 아니라, 나쁜 사람이 다가왔을 때 그 아이에게 경고해줄 수 있었으면, 하는거다. 아이는 넘어질 수도 있고 그래서 피가날 수도 있다. 아이들과 싸울수도 있다. 길을 걷다 쥐가 죽어있는 장면을 맞닥뜨릴 수도 있고 텔레비젼을 시청하다 폭력적인 장면을 보게될 수도 있다. 그런 상황들을 겪고 그 상황들로부터 무언가를 느끼는 것은 아이들의 몫이고 또 그 아이들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강한 어른이 되도록 돕는것은 물론 그 아이를 둘러싼 주변 어른들의 몫이다. 그러나 그 아이들을 향해 악의 기운이 다가오려고 할 때, 그때만큼은 유령이 나타나서 도울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그들로부터는 보호할 수 있는 투명 보호막이 되어줄 수 있으면 좋겠다.




예쁜 책을 읽어서일까, 왜 유령이 무섭다는 생각이 전혀 들질 않을까? 하긴 뱀파이어도 늑대인간도 나는 무섭다는 생각보다는 다른(?)생각만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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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헨 2012-12-14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카아이에게 선물한 책이에요.^^아주 좋아하더라구요.저는 아직 못읽었는데 보고 싶네요.^^

다락방 2012-12-14 13:33   좋아요 0 | URL
전 재미있더라구요. 그런데 저는 아이들의 시선을 잘 몰라서 아이들이 좋아할지에 대해서는 판단이 잘 안서요. 그저 이 나이의 제가 읽고 재미있더라, 라는 것 밖에는. ㅎㅎㅎㅎㅎ 메르헨님도 읽어보세요. 재미있어요. 2권도 있는데 그것도 읽어야겠어요. ㅋㅋ

아무개 2012-12-14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뱀파이어도 늑대인간도 나는 <만지고 싶다>는 생각만 한다. 라고 쓰신거죠? ^^

다락방 2012-12-14 13:32   좋아요 0 | URL
더 나아가셔도 되지만, 구체적으로 언급하진 않겠습니다. 에헴-

레와 2012-12-14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이 책 궁금하다..!!

다락방 2012-12-14 16:07   좋아요 0 | URL
으흐흐흐 난 2권도 있지롱~~ 메롱.

Mephistopheles 2012-12-14 1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다가 이내 생각이 바뀌었다. 부엌이 1층에 있는거다. 그렇다면 내가 배가 고플때마다 수시로 저 3층에서 1층까지 오르락내리락 해야하는가?" -- 걱정하지 마세요 덤웨이터가 있잖아요.(덤웨이터- 음식물 엘리베이터)

다락방 2012-12-16 17:35   좋아요 0 | URL
아, 저도 그생각을 안한건 아닌데요, 어쩐지 차려진 그 자리에서 먹어야 가장 맛있지 않을까 싶어지면서 ㅋㅋㅋㅋ 아마도 제가 옥탑방에 산다면 침대 밑에다가 과자나 빵 따위를 잔뜩 쟁여 놓았겠지요. 사발면도....흐음...200키로 찍겠군요. -_-

dreamout 2012-12-14 1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까 스마트폰으로 봤을 때.. 처음에 설계도면 나와서 건축책인줄 알았어요.
그래서 반가웠는데.. 동화책이군요. ㅋㅋ

다락방 2012-12-16 17:35   좋아요 0 | URL
네. 재미있게 읽은 어린이책 입니다. 희희.

카스피 2012-12-15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내용보다 저런 멋진 집에서 언제한번 살아보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드네요ㅜ.ㅜ

다락방 2012-12-16 17:36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옥탑방과 다락방이 있는 집이라니 말입니다. ㅎㅎ

올드미스c.스푸키 2014-05-08 2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 책 정말 엄청나게 재미있어요. 저 요즘 이 책에 푹 빠져있거든요.^^

드리미 호프 2014-05-08 2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는 4권까지 도서관에서 읽어봤어요.정말 재미있어요.^^
 
목사의 딸들
D. H. 로렌스 지음, 백낙청 옮김 / 창비 / 2001년 3월
평점 :
품절


아, 로렌스님. 당신은 정녕 연애소설의 대가란 말입니까. 한숨나는 사랑의 고통과 달콤한 말랑거림이 여기 다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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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제 너랑 안놀아!
    from 마지막 키스 2012-12-14 11:26 
    로렌스의 목사의 딸들이란 단편집에 수록된 단편 「목사의 딸들」에는 결혼 할 나이가 된 두 딸이 나온다. 이 두 딸은 각자가 원하는 바가 달랐다. 큰딸 메어리는 자신에게 일정한 지위와 권위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다른 식구들이 모두들 뭐 저런 사람이 다 있지? 라고 생각했던 사람을 자신의 남편감으로 받아들인다. 그와 결혼하면 그녀는 언제나 교양있고 지위있는 여성으로 머물 수 있으니까.메어리가 매씨 옆을 따라 올더크로스를 걸어다니는 것을 보면
 
 
다락방 2012-12-12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편중 두 편 읽고 이러고 있음.

다락방 2012-12-12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합니다! you touched me 라니. 하앍

다락방 2012-12-12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품절인데 난 있지롱.

다락방 2012-12-12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페이퍼에 쓸 말을 이렇게 댓글로 다 달아버리면 안돼. 그만하자.

하루 2012-12-12 12:26   좋아요 0 | URL
푸하하

다락방 2012-12-12 12:59   좋아요 0 | URL
업무중이라 페이퍼를 못 쓰겠어서 그런데 막 흥분은 되가지고(책 때문에) 이런 짓을.. ㅎㅎㅎㅎㅎ

야클 2012-12-12 1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편 '목사의 아들들'이 훨씬 더 재미있어요. 짜릿하고 감동적이고. 꼭 보세요. ^^

야클 2012-12-12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미출간인데 난 있지롱

다락방 2012-12-12 12:58   좋아요 0 | URL
목사의 아들들과 목사의 딸들 결혼시킵시다!! 조만간 상견례해요, 야클님. ㅎㅎㅎㅎㅎ

moonnight 2012-12-13 1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귀여워라. 다락방님. ^^
그나저나 정말 부럽네요. 품절도서소장. 다락님 노력의 결과십니다. ^^

다락방 2012-12-14 13:32   좋아요 0 | URL
노력할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었어요, 문나잇님. 므흐흣
 
착해도 망하지 않아 - 프랜차이즈는 따라할 수 없는 동네카페 이야기
강도현 지음 / 북인더갭 / 2012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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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프랜차이즈 까페를 싫어하지 않는다. 오히려 즐겨찾는 편이고, 그 안에서 안정감을 느낀다.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까페인만큼 다른 상호를 달고 있어도 프랜차이즈 까페안에 사람은 가득하지만, 그 사람 가득한 공간에서 가장 독립되게 있을 수 있음을 느낀다. 커피를 한 잔 시켜두고 책을 읽는 그 시간은 오롯이 나만의 시간인 것 같아 내게는 소중하다. 그때의 나를 누구도 방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언제부터인가 내게 프랜차이즈 까페는 내가 독립적일 수 있는 곳 이라는 인식이 강해지면서, 낯선 동네를 걷다가도 익숙한 상호를 발견하면 안심이 되곤 했다.


그러나 나같은 사람만 가득해서 그런 까페만 수두룩하다면 그 안에서 안심이 아닌 소외를 느끼는 사람들은 갈 곳을 잃을 것이다. 내가 혼자라서 안정적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공간이 누군가에게는 무관심하고 차갑고 외로운 곳으로 느껴질 수도 있으리라는 것을 안다. 세상엔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는가.



이 책은 '카페'라는 공간을 통해서 자신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실천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저자는 작은 동네까페가 가져야할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스토리가 스펙을 이깁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마케팅이 아닌, 존재의 이유이자 근거로서의 이야기여야 합니다. 그런데 이야기는 자의적으로 혹은 단기간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스토리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관심'의 무게중심을 옮겨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디에 관심을 두어야 할까요? 무엇이 스토리의 시작인가요? 정답은 '타인'입니다. '나'에게 집중돼 있는 관심을 '타인'으로 옮기기 시작하면 비로소 스토리가 시작됩니다. (pp.227-228)



스토리가 있는 까페는 내 개인적으로 원하는 카페는 아니다. 내가 가고 싶은 카페는 스토리가 있는 카페가 아니다. 가족적인 환경의 카페를 내가 가고 싶지는 않다. 생각해보니 내가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혼자이면서도 안정적임을 느꼈던건, 그 카페안의 모두가 다들 지나다가 그곳을 들른 사람들이란 것을 알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만약 그곳이 동네 카페라서 늘 친숙하게 오던 사람들만 그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면, 그곳에서 나는 내가 이방인임을 느끼며 소외감을 느꼈을 것이다. 내가 이방인이어서 편한건 다른이들도 이방인임을 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책속에서 저자가 찾아갔던 동네 까페들은 하나같이 이 저자가 주장하는 바대로 '스토리'를 가진 까페를 운영하고 있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이익이 까페 운영의 목적이 결코 아니다. 정신병원 의사로 근무하며 카페를 운영하고 그 카페에서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고용한 의사는 이렇게 얘기한다.


장애인이나 마음이 아픈 분들은 어떤 일자리를 원할 것 같아요? 답은 간단해요. 모두가 원하는 일자리, 당신이 일하고 싶은 그곳에서 그들도 일하고 싶어하죠. (p.79)



자폐증을 앓고 있는 청년에게 커피 만드는 법을 알려주고 같이 일하고 있는 [행복한 카페]의 진은영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아무래도 소통 가능한 직업이 서비스직이잖아요. 커피는, 즉 커피를 파는 것은 단순업무가 아니라 세상과 소통하는 매개잖아요. 그래서 세상에 장애인 친구들을 보여줄 수 있고 이 친구들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공간으로 까페를 만들게 됐죠. 저는 커피가 관계라고 생각해요. 카페에 혼자 갈 때조차 제 자신과의 관계를 위해 가거든요. 커피를 통해서 사람들은 더 깊은 관계를 맺게 돼요. 장애인 친구들에게 가장 주고 싶은 선물이 바로 그 관계였거든요. 세상과의 관계요. (p.200)



내가 까페에 가서 커피를 시키고 책을 읽고 앉아 있는 그 시간의 나는, 오로지 나만을 생각했다. 물론 나는 그 시간과 그 공간의 내가 특별히 못됐다거나 이기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골목의 카페들이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 알지못했음은 분명하다. 물론 우리동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카페들이기는 하지만, 그 카페라는 공간 안에서 그들이 다른 사람들과 섞이고 소통하기 위해서 커피를 내리고 있다고 생각하니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옳다고 생각하는 바가 같아도 그것에 이르는 과정은 모두 같지 않을 것이다. 카페는 그 과정중에 가장 친근한 과정이 아닐까.



호기롭게 카페를 시작했다가 생각대로 되지 않아 동네 카페를 찾아 돌아다녔던 저자는 이제 자신의 카페에 이야기를 만들기로 하고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카페를 시작한다. 그는 카페의 이야기 대신 자신의 이야기를 SNS 에 풀어놓는다. 저자가 운영하는 카페바인은 삼성카드 가맹을 해지하고 그 사실을 트윗에 알려 다른 카페와 식당들을 동참시킨다. 투표독려 캠페인을 하고 반값등록금 투쟁에 참여하고 온 학생들에게는 커피를 반값에 제공했다.



지금까지 가장 파급효과가 컸던 트윗은 얼음이 얼 정도로 추운 저녁, 경찰이 FTA 반대 시위대에 물대포를 마구 뿌리던 날이었습니다. 물대포 세례에 젖어 추운 시위대에게 혹 홍대까지 오실 수 있다면 따뜻한 커피를 그냥 드리겠다고 썼습니다. 이벤트는 아니었고 저희가 그 자리에 함께 있지 못해 죄송한 마음에 쓴 트윗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트윗이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습니다. 그날 하루에 팔로워가 거의 2천명이 늘었습니다. RT 횟수를 셀 수가 없었죠. 커피란 그런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몸을 녹여주는 따뜻함. 그날 경험을 통해 카페바인이  어떤 커피를 세상에 내놔야 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pp.239-240)



단순히 공짜 커피를 마실 수 있다고 많은 사람들이 그 트윗을 RT 한 건 아니었을거다. 세상 어딘가에서는 너희들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그게 이런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알리고 싶은 마음이 RT 를 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카페에서 커피를 나누어 줌으로써 그리고 그런 사실을 스마트폰 창으로 알리면서 사람들은 자신과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을 지지하고 응원한다.SNS 를 통해서 저자가 운영하는 [카페바인]은 자신의 스토리를 알릴 수 있었고, 그 스토리에 동참하는 사람들을 찾아낼 수 있었다.



책 말미에는 인터뷰한 카페 말고도 다른 카페 몇 군데가 더 등장하는데, 그중에 나는 3층은 법률상담을 할 수 있고 2층은 카페로 꾸며놓고 있는 [동네변호사카페]가 인상적이었다. 동네에 위치한 법률상담소라 사람들은 뭔가 크게 각오하지 않아도 법률 상담을 받을 수 있다. 그게 애초에 이런 카페를 내게 된 변호사의 의도였다. 마지막에 실린 [책 읽는 고양이 카페]는 일회용품을 쓰지 않고 공정무역 커피를 내리고 있으며 길고양이를 포함해 총 열 두마리의 고양이들이 카페 안에 살고 있다고 한다. 이곳은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찾아가 보고 싶을것 같아 검색했더니 시사인에서 한 번 소개한 기사가 있었다.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9687




영화 [어바웃 어 보이]에서 말했던 것처럼 사람에게는 여분의 존재가 필요하다. 나에게 그 여분의 존재가 카페에서 필요한 건 아니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카페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누군가가 자신의 뜻에 맞게 그리고 타인과 함께 하는것을 고려해서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안심이 됐다. 어쩌면 나는 내가 하지 못하는 일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대신 맡기고 편하게 살고 있는건 아닐까.



마지막으로, 이 책에 나는 별 넷을 주지만, Arch님, 마중물님, 레와님이 읽는다면 아마 별 다섯을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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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와 2012-12-11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진짜??!!! ㅎㅎ
그 어떤 문장보다 마지막 문장에서 확고한(?) 지름신을 영접합니다.

다락방 2012-12-12 08:33   좋아요 0 | URL
응. 레와님은 이 책 좋아할 것 같아요. 동네 카페의 분위기라든가 그들의 의의라든가 하는점에 많이 공감하고 동의할 것 같구요. 뭐, 내 추측이죠. 훗.

웽스북스 2012-12-11 1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나는요? (이제 별게 다 궁금해 ㅋㅋㅋ)

다락방 2012-12-12 08:32   좋아요 0 | URL
뭔지 모르지만 이상하게 동네카페 좋아하는 웬디양님이지만, 별 넷을 줄 것 같더라구요. ㅎㅎㅎㅎㅎ

Mephistopheles 2012-12-11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4층짜리 건물 지어서 4층은 내 작업실 3층은 집 2층은 마님 학원, 1층엔 이런까페와 심야식당같은 밥집.....

다락방 2012-12-12 08:31   좋아요 0 | URL
제 남동생은 4층짜리 건물지어서 각 층에 우리 삼남매와 그에 딸린 식구들(이라고 해봤자 저는 딸린 식구가 없..;;)1층엔 부모님 이렇게 살자고 하더라구요. 제가 남동생에게 이제 그만 좀 붙어살자고 했어요. ㅋㅋㅋㅋㅋ

맥거핀 2012-12-11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이 얘기하고자 하는 바는 아닐 것이라 생각되지만, 저도 사실은 스토리있는 카페는 별로 가고 싶지가 않을 것 같네요. 다락방님이 말한 프랜차이즈 카페..거기는 모두가 이방인이다라는 말씀에 공감하며, 저도 그런 데가 더 편합니다. 더 나아가 그런 프랜차이즈 카페의 개수로 동네의 수준을 판단하는 돼먹지않는 습성이 생겼어요. 오..여기는 할리스도 있고, 스타벅스도 있는 좋은 동네..뭐 그런 식으로요.

다락방 2012-12-12 08:31   좋아요 0 | URL
네, 맥거핀님. 저는 모두와 친근해지고 싶은 생각도 없고 많은 사람들과 아는 사람이 되고 싶지도 않은 성향을 가졌기 때문인지 카페에서는 이방인들 틈 사이에서 혼자이고 싶어요. 사실 이런 성향의 제가 읽는거라 처음부터 좀 고개를 갸웃하긴 했거든요. 이런 카페는 나랑은 어울리지 않아, 하면서요. 그러나 동네 카페는 동네 카페 나름의 의의와 의미가 있다는 걸 알겠더라구요. 뭐, 여전히 저는 스타벅스를 가게 될테지만요.
하하하하, 프랜차이즈 카페의 개수로 동네의 수준을 판단한다뇨, ㅎㅎㅎㅎㅎ 웃었어요. 혼자 막 상상하면서요. 오, 여기는 할리스도 있고 스타벅스도 있군, 이런거. ㅎㅎㅎㅎㅎ

아무개 2012-12-12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읽는 고양이 카페 가보고 싶어서 검색했는데 역시나 회사에서는 접속이 안되는군요.
고양이 때문에 별 다섯개를 주리라 생각하신걸까요? (참고로 저는 커피전문점 일년에 한번도 잘 안가는데욤 ^^:::)

A가 Z에게도 그렇고 제게 추천해주신 이유가 궁금해요오오오오~~ @..@
아마 답변은 그냥 좋아할꺼 같아서, 뭐 이렇겠지만요 ㅋㅋ

10일부터 새 부서로 출근했어요. 지역도 바뀌고 사무실도 바뀌고 하는 일도 전혀 새로운 일이라
완전 엄청나게 긴장되요.....

다락방 2012-12-12 12:14   좋아요 0 | URL
고양이 카페는 맨 마지막에 추가적으로 짧게 나오는거라 그것 때문만은 아니구요, 그냥 느낌이죠 느낌. 뭐랄까, 이런 생각과 이런 분위기라면 좋아하실것 같다, 이런 느낌. 그런데 [A가 X 에게]는 어떠셨어요? 제 예상과는 달리 별로 재미 없으셨나요? ㅎㅎ (Z 가 아닙니다!!)

오, 새로 바뀐 일은 어떤 일일까 궁금하네요. 조만간 소주 일 잔 들이켜 가면서 새로운 일에 대해 들어봐야겠어요. ㅋㅋㅋㅋㅋ
전 같은일을 몇년째 하는데도 긴장돼요. 이 긴장이 싫어서 때려치고 싶어요. 뭔가 대안만 찾으면 때려쳐주겠어욧! 불끈!

아무개 2012-12-13 09:08   좋아요 0 | URL
크하하하하하하하하하핫
....아...민망하여라~ A의 편지글 보다 X의 메모에 더 많은 포스트 잇이 붙여져 있어요^^

감자탕에 소주마시러 갑시닷 후르르 짭짭 캬~~~~

네꼬 2012-12-12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천 년만에 들어와서 댓글 달려고 로그인하는 내 마음을 알아 주오.

moonnight 2012-12-13 18:16   좋아요 0 | URL
앜! 네꼬님이시다!!!! 반가와요. 네꼬님. 보고 싶었어요. >.<

다락방 2012-12-14 13:29   좋아요 0 | URL
무슨 마음? 안보이는데? 안보이는데요? ㅎㅎㅎㅎㅎ

풀칠아비 2012-12-12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내가 이방인어서 편한 것은 다른 사람들도 이방인인 것을 알기 때문이다."라는 말씀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지금도 프랜차이즈 커피집에 앉아 있지만, 여기 오는 사람들이 아는 척한다면 과연 이 자리를 다시 찾을 것인지
생각해보게 되네요. 말씀처럼 사람은 다 다르니까요.
즐거운 수요일 보내세요.

다락방 2012-12-14 13:29   좋아요 0 | URL
비오는 금요일입니다, 풀칠아비님. 이런때야말로 혼자 카페에 들어가앉아 책을 읽으며 따뜻한 커피를 마셔야죠. 음, 서점에 가도 좋을것 같아요.

금요일도, 주말도 모두 즐겁게 보내세요, 풀칠아비님.
:)

단발머리 2012-12-13 0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쪼~~ 위에 네꼬님 누구셔요? 완전 웃기시다. ㅋㅎㅎㅎ 다락방님, 나는 로그인 상태로 돌아다니다 다락방님 페이퍼 잘~ 읽고 가요. 재미있어요.ㅎㅎㅎ

다락방 2012-12-14 13:30   좋아요 0 | URL
네꼬님은 제가 알라딘에서 사귄 아주 좋은 친구에요. 희희희희희. 알라딘에서 제게 준 선물중에 으뜸이라고나 할까요. 흣.

단발머리님이 제 글을 재미있게 읽으신다면, 저야말로 고맙지 뭡니까! ㅎㅎ

moonnight 2012-12-13 1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방인이 될 수 있는 곳이 좋아요. ㅠ_ㅠ 자주 가던 술집도 사장님이 막 아는 척 하시면 발길을 끊게 되더라구요. 특히 카페는 (제 경우에는) 늘 혼자서 가는데 스토리가 있고 거기에 공감도 해야 한다면 부, 부담스러워요. ㅠ_ㅠ

다락방 2012-12-14 13:32   좋아요 0 | URL
저도 저를 가만히 내버려둘 수 있는 곳이 좋아요. 회사의 경우에도 뭔가 가족같은 분위기 이런건 참 곤란해요. 업무시간에 업무하고 퇴근후에는 회사를 잊을 수 있는게 가장 최상의 환경이 아닐까 싶어요.

이방인이 될 수 있는 곳이 저는 가장 안락하게 느껴져요. 가장 편하고요. 그곳에 있을 때는 아무도 제게 아는척을 하지 않아줬으면 좋겠어요.
 

소설을 읽다가 다른 소설을 알게 되고 만나게 되는 일은 종종 있지만, 나는 내가 이 책을 읽다가 소설가를 그리고 그의 소설을 궁금해하게 될 줄은 몰랐다. 이건 예상외의 일인데, 오, 그러고보니 이 책은 예상외의 것들을 내게 참 많이도 가져다 주는구나.













60년 전 존 스타인벡과 그의 친구였던 생물학자 에드 독 리켓은 이 조석 간에 존재하는 생물의 다양성에 매료되었다. 당시 스타인벡은 《분노의 포도》집필을 막 끝내고 휴식이 필요했다. 그는 점점 현실로 다가오는 전쟁에 대해서 생각하고 싶지 않았고, 최근 문학적으로 성공한 것이나 실패로 끝난 결혼에 대해 받아들일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다. 1939년 10월 16일 일기에 스타인벡은 이런 글을 남겼다. "지금 내게는 확실한 것이 하나도 없다. 인생의 전부나 다름없던 《포도》를 탈고했다. 정부와 관련해 해야 하는 간단한 일이 하나 남았을 뿐이다. 그게 끝나면 나는 다시 태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새로운 곳으로 가서 새로운 뿌리를 찾아야 한다. ‥‥‥그게 무엇이 될지 나도 모른다. 다만 사람에게서가 아니라 조수웅덩이(해안의 조간대에서 간조시에 해수가 잔류하여 웅덩이에 괴어 있는 곳)와 현미경 슬라이드에서 찾아질 거라는 것만은 안다."

스타인벡은 세상에 변혁이 필요하다고 절실히 느꼈고, 과학이 해답을 줄 거라 믿었다. 그는 생물학자였던 친구 에드 독 리켓에게서 그 가능성을 엿보았다. 리켓은 세계를 조 더 가까이에서 연구하기 위해서라면 시카고에 있는 안정된 자리도 마다하고 미국 최남단으로 떠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또한 그는 독학으로 해양생물학자가 된 사람이기도 했다. 이제는 유명해진 '통조림 공장 골목(스타인벡의 소설 제목이기도 하다)'에 생물학 용품점을 세우기도 했던 그는 생태적 지위나 서식환경, 먹이사슬, 포식자와 먹이 관계 같은 개념들이 아직 생소했던 그 당시부터 벌써 생명을 생태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중략)


1940년, 몬테레에베이에서 캘리포니아 만을 향해 출발하면서 스타인벡과 리켓은 멕시코의 무척추동물에 관한 역사상 가장 방대하고도 객관적인 연구를 시행하기로 계획한다. (pp.73-74)



나는 존 스타인벡의 소설을 한 권도 읽어보질 못했다. 다만 그가 분노의 포도 작가라는 사실만을 알고 있을 뿐이다. 사실 그 책에 대해 별 관심도 없었는데, 나는 이 책의 이 부분을 읽고 분노의 포도를 사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의 작품이 궁금해졌다. 도대체 '독학으로 해양생물학자가 된 사람' 이라니, 그런 사람이 작가라니. 그런 작가는 작품으로 무슨 말을 할까? 생물의 다양성에 매료되는 사람이며, 무척추동물에 관한 연구를 시행하기로 하는, 그런 사람이 작가라니. 나는 그가 가지고 있는 생각과 더불어, 그가 작품을 빌어 하려는 말이 궁금하다.
















이제 이 책(거인을 바라보다)을 거의 다 읽어가는데, 이 책은 여러가지로 내게 영향을 미쳤다. [우리가 모르는 고래의 삶] 이라는 부제에서 드러나듯 나는 고래의 삶에 대해 그 전보다 더 알게 되기는 했지만, 그건 내가 이 책에서 얻은 소득이라 보기엔 극히 미미하다. 그러나 나는 이 세상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자기 나름의 깊은 생각을 가지고 산다는 것을 알게됐고, 그들이 저마다 선택한 방식은 달랐으나 그 방향이 한 곳으로 향한다는 것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고래의 몸에 위성위치추적장치를 다는 사람도, 헬기를 타고 바다 가까이 다가가는 사람도, 잠수를 해서 고래 곁으로 다가가 관찰하는 사람도 모두, 고래를 위해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줄 수 있기를 희망한다. 비단 고래때문만이 아니라, 해양생태계, 더 나아가서는 이 지구를 위해서도.








아주 젊었을 때 찾아올 수도 있지만 어쩌면 스스로가 더이상 사랑할 수 없을거라고 생각하며 사랑을 포기했을 때라도, 누구에게나 생에 한 번 잊지 못할 사랑은 찾아온다. 그 사랑은 일주일 낮과밤을 모두 발가벗고 함께 지내는 열정적 행위를 가져올 수도 있지만, 가벼운 입맞춤 한 번만이 행위의 전부일 수도 있다. 앞으로 더 얼마를 살게 되든, 그리고 어떤 사람을 만나 사랑하게 되든, 그 사랑은 잊지 못하는 법이다. 이 영화속에서 마릴린은 콜린에게 작별을 고하며 이렇게 말한다.


날 잊지 말아요.


이 말을 듣는 즉시 나는 콜린의 대답을 정확히 예측했고, 내 예측은 틀림이 없었다. 콜린은 이렇게 대답했다.


어떻게 잊겠어요.



콜린은 마릴린을 이해하는 남자였고, 짧은 시간 마릴린의 옆에 있어주었다. 그의 시선은 언제나 마릴린을 향했고, 마릴린은 그런 그에게 아낌없는 신뢰를 주었다. 그들은 한 침대에 눕기도 했고, 발가벗고 물가로 풍덩 들어가기도 했지만, 그러나 그들의 사랑은 그 몸이 엉키는 것으로 드러나진 않았다.






이 사랑을 떠나보내는 그에게, 누군가 이렇게 말한다. "몇 인치는 더 자란것 같군." 그래서 『스타킹 훔쳐보기』에서 엘리자베스 게이지도 주인공의 이름을 빌어 이렇게 얘기했는가 보다.


한 번도 사랑한 적이 없는 것보다 사랑을 잃는 쪽이 훨씬 낫다.


콜린은 한동안 아프겠지만, 그 기억으로 평생을 살 수도 있을것이다. 앞으로 다른 사람을 만나 사랑하든 안하든, 그녀와 보냈던 그 짧은 시간은 내내 가슴 한켠에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랑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콜린이 지금의 아픔을 겪을 가치가 있다. 아, 이 영화가 정말 너무 괜찮아서, 만약 내가 올해 『우리도 사랑일까』를 보지 않았다면 아마도 올해의 영화로 꼽게 됐을 것 같다. 올해 내게는 미쉘 윌리암스가 아주 새롭게 다가오는구나.





그나저나 『거인을 바라보다』를 다 읽으면 무슨책을 읽을까? 오늘 도착한 『목사의 딸들』을 읽을까, 쉽게 책장이 넘어갈 듯한 『착해도 망하지 않아』를 읽을까? 『늦여름』을 시작할까, 『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을 읽을까? 사두고 안 읽은 숱한 책들중 한 권을 골라 읽을 예정이긴 한데, 아, 어쩐지 아무래도, 오늘 장바구니 한 번 털고 그중에서 읽게 되는건 아닐까 하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아침부터 틈틈이 장바구니를 일단 다 비웠다가(너무 많이 넣어놔서), 다시 새롭게 구성했다가 다시 몇 개 삭제했다가 다시 또 다른 책 넣었다가 하고 있다. 내년까지 안지를라고 했는데, 하아, 모르겠다. 몸살기운이 있어 타이레놀을 한 알 먹었는데, 괜찮겠지?




토요일엔 드디어 커피소년 콘서트를 갔다왔다. 뜻밖의 위로를 받고왔는데, 그건 노래로 인한건 아니었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하나도 안 불러줘서 공연 자체로는 그렇게 대만족 이런건 아니었는데, 그가 거기서 자신의 나이를 밝혔다. 자신이 의외로 나이가 많다며, 늦은 나이에 데뷔를 했다고 했다. 그렇게 공개한 그의 나이는 삼십대 초반이었고, 물론 나보다 어렸지만, 나는 그가 '이 나이에 데뷔한 자신이 좋다'고 말하는데에서 위로가 됐다. 그러니까, 나는 물론 그보다 나이가 많다고 해도, 뭔가 시작해도 괜찮을 거란 생각이 들었던거다. 두려워하지 말고 시작하자고, 괜찮을거라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내가 이 나이에 시작했음을 좋아하게 될거라고. 진실된 위로는 억지로 위로하는 데서 오는건 아닌것 같다. 자연스럽게, 자신의 진심을 말하는 순간, 상대에게는 그것이 행복으로 다가가기도 하고 기쁨으로 다가가기도 하는 것처럼, 위로로 다가가기도 하는거다. 나는 그 날, 커피소년의 그 말이 참으로 위로가 됐다. 그러나, 실제 눈 앞에서 본 그는, youtube 영상에서 본 것처럼 훈남은 아니었다. 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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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2-12-10 14: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영화쿠폰 안쓰시는 분은 저 좀 주세요.

2012-12-10 16: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2-12-10 16:55   좋아요 0 | URL
땡큐 땡큐!!

2012-12-10 20: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2-12-11 11:12   좋아요 0 | URL
역시나 땡큐 땡큐!! ㅎㅎ

2012-12-10 17: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2-11 11: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Mephistopheles 2012-12-10 1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만큼은 다락방님 페이퍼가 미괄식이었군요. 책은 "미친 항해"를 읽으셔야죠. 그래야 합니다.

다락방 2012-12-11 11:13   좋아요 0 | URL
미친 항해를 읽어야 하는데 ㅎㅎㅎㅎㅎ 책은 내년에 살 거라 ( ")

커피소년이 글쎄, 제 생각만큼 훈남은 아니더라구요. 역시 옆모습과 앞모습은 좀 거리가 있어요. 쿨럭. --;;

dreamout 2012-12-11 0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낮에도 춥고 밤에도 추워요. 아우. @@

다락방 2012-12-11 11:14   좋아요 0 | URL
와, 드림아웃님. 저는 몇년만에 몸살에 걸려 앓아 누웠더랬습니다. 열이 펄펄 끓어서 눈 튀어나오는 줄 알았어요. 휴..

moonnight 2012-12-11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반가와요. 분노의 포도는 중학생 때 읽었다가 최근에 다시 읽기 시작했는데요. 내용이 새롭더군요. 쿨럭 ;; 1권 읽다가 접어놓고 레미제라블 읽습니다만은. ;; 독학으로 해양생물학자. 놀랍네요. (세상엔 역시 훌륭한 사람들이 많군요. -_-;;;;;)

브로크백마운틴 봤을 땐 미셸 윌리엄스가 예쁜 줄 몰랐는데 볼수록 매력적인 것 같아요. 저 영화는 못 봤지만 캐스팅만큼은 최고란 평을 읽었어요. 보고 싶네요. ^^ 그나저나, 내가 어떻게 잊겠어요. 라는 대사 맘을 파고들어요. 그 심정이 막 이해가 되네요. ㅠ_ㅠ
어제 라디오에서 <당신이 사랑하는 동안에> 에 대해 나왔어요. 콜드플레이의 음악도 함께. 문득 그 영화를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지더라구요. 조쉬 하트넷과 함께 시간을 보낼 기회가 있다면 정말, 내가 어떻게 잊겠어요. 라는 대사가 절로 나올 듯 ^^; 디비디나 사 봐야겠어요. (한숨;)

다락방 2012-12-12 08:36   좋아요 0 | URL
오, 문나잇님 역시 독서의 내공이 상당하시네요. 중학생때 분노의 포도라뇨! 저도 조만간 사둬야겠다(읽겠다가 아닌;;)고 생각하고 있어요.

저 역시 브로크백의 미쉘은 잘 기억도 나지 않아요. [블루 발렌타인] 보면서 저 여자를 어디서 봤더라 어디서 봤더라 했는데 필모그라피를 보니 브로크백 마운틴이 있더라구요. 그래서 아, 그여자구나 했을 정도에요. 그런데 제가 올해 본 좋은 영화 두 편 모두에 미쉘 윌리암스가 나오네요. 아, 아니구나, 세 편이구나. [블루 발렌타인], [우리도 사랑일까], [마릴린 먼로와 함께한 일주일]. 아 이 배우, 영화를 선택하는 눈이 있는걸까요?

[당신이 사랑하는 동안에]는 보면서 참 씁쓸했던 기억이 있어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도 역시 나를 사랑할 확률은 정말이지 높지 않아요. 그래서 그런일을 기적이라 부르는가봐요. 저는 평생 잊지 않게 제이슨 스태덤하고 함께 살고 싶어요. 오래오래 오래오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