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의 도서정가제 반대서명을 보고 내심 찜찜했었다. 그러니까 뭐랄까, 어어, 섣부른것 같은데, 이거 후회할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이 들었던거다. 나는 도서정가제 반대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쉽게 풀어쓰자면 잠정적 찬성에 가깝다고 볼 수 있을텐데, 우선 다른 여러사람들이 지적했듯이 도서정가제를 시행한다고 해서 작은 서점들이 살아날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에는 한 권의 도서를 반값으로 판매하는 것에 대해 이해는 되지만 좀 속상했었다. 이 좋은책이 고작 이 가격으로 덤핑처리되다니, 하는 생각때문에. 다시말하면 나는, 내가 읽고 싶은 책이라면 그게 얼마이든 구매하고 읽을 의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책을 구매하고 읽으면서도 그 책이 싸서 읽었던 건 아니다. 내가 읽기를 원했기 때문에 읽었던거다. 나는 정가제가 되는걸 찬성하는 쪽이다. 다만, 그것은 책을 만들고 또 그 책을 판매하는 사람들의 처우가 지금보다 나아진다는 전제를 해야했다. 그러나 이건 내가 혼자 여기서 전제한다고 되는게 아님을 알고 있다. 도서정가제가 시행된다고 대나무숲에서 울던 사람들이 웃게 될까? 아니, 나는 그렇지 않을거라고 본다. 정가제가 되도, 빛이 드는 곳은 원래 빛이 잘 드는 곳일거다. 어두운 곳은 빛이 채 닿지 못할 것이다. 회사가 이익을 낸다해도 그 이익이 반드시 직원에게 돌아가지는 않는다. 아니, 그 이익을 직원에게 돌려주는 회사는 극히 드물다. 그게 내가 반대도 아니면서 찬성이라고 단호히 말할 수 없는 나름의 이유다. 지금이라도 정가제가 영세출판사를 비롯하여 그 직원들을 살릴 수 있다는 확신만 있다면, 나는 찬성쪽에 손을 들 것이다.



그런데, 몇몇 출판사가 알라딘에 책 공급을 하지 않겠다는 기사를 읽었다. 하. 이건 뭐지. 엄청나게 당혹스러웠다. 알라딘의 반대서명이 찜찜했다면 이건 더 당혹스럽고 불쾌했다.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라고 생각하려고 해도 쉽질 않다. 그 출판사들은 알라딘에게 '니네가 아니면 안돼' 라고 말하지 않아도 되는걸로 보인다. 알라딘이 도서정가제 반대를 한다고 해서 지금 힘들어하는 작은 출판사들이, 유명 작가들과 계약되어 있지도 않고, 어쩌다 출판하는 책은 고작 이천부가 정도인 그런 출판사들이, '너네한테 책 안줘'를 말할 수 있었을까? 너네한테 책 안줘, 를 말할 때 거기에 소비자가 아닌 '독자'가, 또, 꿋꿋이 그러나 간신히 버티고있는 출판사가 있었을까? 아니, 독자를 생각했어야 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였던걸까? 



나는 한 달에 혹은 일 년에 읽는 책의 권수보다 사는 책의 권수가 훨씬 많다. 올해 1월에만 해도 스무권을 넘게 구입했다. 그중의 절반도 읽지 못했다. 그렇다면 우리 집에는 내가 사두고 아직 읽지 못한 책이 쌓여있다는 말이 된다. 이건 다시 말해, 나는 앞으로 몇 년간은 책을 '사지' 않아도 '읽기에' 충분하다는 말이다. '우리 책 읽고 싶은 사람들, 알라딘 말고 다른데서 사' 라고 한다면, 나도 똑같이 대응할 수 있다. '아 그래? 그럼 나는 니네 책 안살게' 하고 말이다(그렇게 하겠다는건 아니다). 알라딘의 반대서명이 섣불렀다면, 공급하지 않겠다는 출판사들도 역시 마찬가지다. 너무 섣불렀다. 마찬가지로, 내 생각에는, 그거, 후회하게 될 것 같다. 




아 씨..잭 리처 얘기하고 싶었는데....쓰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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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13-01-24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 톰 아저씨의 책 리처는 대체 어디에...??

다락방 2013-01-24 13:42   좋아요 0 | URL
(속닥속닥 .. 그러니까 잭 리처에 대해 할 말이 많은데 지금 제 상사가...그러니까 눈치 좀 보다가 잠시 후에.......)

프레이야 2013-01-24 1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 잭 리처는 다음에... 이런거죠? ㅎㅎㅎ
10개 출판사, 황당한 소식인데, 저도 이 문제는 참 헷갈리네요.
알라딘에서 거의 90%이상을 구매하는 저로서도
도서정가제에 반대하는 입장이긴 하지만... ㅜㅜ
다락방님, 저 지금 예가체프 한 잔 마셨는데 향이 오늘따라 더 좋아요.
오후시간도 잘 보내세요^^

다락방 2013-01-24 18:30   좋아요 0 | URL
요며칠 너무 바빠서 페이퍼 쓸 짬을 내기가 어려워요. 지금 업무시간 끝나고 나서 부랴부랴 잭 리처 페이퍼 썼습니다. 프레이야님도 잭 리처 보실건가요? 전 엄청 좋더라구요! ㅎㅎ

저는 굳이 따지면 도서정가제 찬성 쪽에 가깝지만, 지금의 상황으로서는 찬성이다 반대다 라고 입장 정리를 못하겠어요, 프레이야님.

벌써 오후가 지나 저녁이에요. 저녁 시간, 프레이야님도 잘 보내세요. 이따가 쭈욱- 밤까지요.

가연 2013-01-24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아..ㅎㅎ 아주 맘에 드는 글이네요. 요즘 거의 댓글도 활동도 안하는 중이긴 한데.. 슬슬 페이퍼 하나 쓰면서 도서정가제 이야기나 사족으로 끄적거릴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글이 제 마음을 거의 대변해주네요. 뭐, 저야 도서정가제가 시행안됬으면.. 하는 생각을 하고 있지만 결국 된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는 마음이구먼요. 도서정가제를 하겠다는 게 마치 게임할 때 너무 성능이 좋아서 사기캐릭터라고 불리는 캐릭터를 다음 번 패치때 하향시키겠다는 그런 공지를 보는 기분이랄까, 풋. 아, 미묘하게 다른가, 풋.

다락방 2013-01-24 18:31   좋아요 0 | URL
오, 스마트한 가연님의 마음에 드는 글을 쓰다니. 제 스스로가 뿌듯합니다. 사실 써두고 올릴까 말까 엄청 생각하고 고민했는데, 이걸 올리지 않으면 제가 계속 신경쓰고 답답해하고 찜찜하고 그럴것 같더라구요. 제 입장을, 아니 입장이라기보다는 제 생각을 한번 정리해 적고 싶었어요.

미묘하게 다르지만, 그렇게 많이 다르지는 않은듯한 비유인데요, 가연님. ㅎㅎ 아니 근데, 이제는 종종 돌아와 서재활동 하시겠다는...뜻입니까? 네? 제가 그렇게 알아도 되는겁니까?

레와 2013-01-24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효. 참.. 이건.. 아효.

다락방 2013-01-24 18:31   좋아요 0 | URL
여러가지로 마음이 안좋죠. 흐음..

이진 2013-01-24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쩜 제 마음을 이리도 잘 표현해주셨는지 몰라요.
지금 이렇게 부딪히는 것은 다 섣부르고 미숙한 판단에서 나온 행동들인 거 같아 안타깝네요.
저도 책을 안 사도 읽을 책이 산더미처럼 싸..ㅎ여있긴 하나 그래도 책을 더 사고 싶은 욕구는 매일 늘어나요.
학생이라 돈도 없고... 중고책방 뒤져도 없고... 그래서 도서정가제를 반대했는데, 곱씹을수록 꼭 그런 것만도 아니더라구요. 다락방님 생각하고 완전히 일치.

다락방 2013-01-24 18:33   좋아요 0 | URL
어려운 문제죠. 쉽게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인것 같아요. 좋은 대안이 있다면 좋겠지만, 저부터도 어떤 대안도 생각해내지 못하니, 그저 아니다 싶은것에 대해서만 아니라는 의견을 밝힐 수밖에 없네요. 위에도 썼듯이 이 문제에 대해서는 명쾌하지도 않고 마음도 안좋아요.

맥거핀 2013-01-24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적어도 알라딘이나 출판사들이나 모두 꽤 성급했다는 데에는 동의합니다.^^

다락방 2013-01-25 09:59   좋아요 0 | URL
네, 알라딘도 출판사도 성급했던건 사실이에요. 왜그렇게 서둘러서 서명을 받으려고 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더라구요.

단발머리 2013-01-25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의견에 찬성, 찬성합니다. 나도 이렇게 말해 버려야지~~~~~

'아 그래? 그럼 나는 니네 책 안 살게.'

아, 시원타~~

다락방 2013-01-28 11:38   좋아요 0 | URL
이거 참, 거시기한게 말이죠, 저는 시위 방법에 있어서 불매를 선택하고 싶지는 않거든요. 그래서 어째야 하나, 뭐 잠깐 생각하고 있어요. 계속 하던대로 하자니 야속하고 원망스러운데, 그렇다면 불매까진 아니어도 페이퍼나 리뷰로 언급하지 말까, 이런 생각도 들고 말이지요. 아직 마음을 정하질 못하겠어요. or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