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일반적이지 않은 독자
앨런 베넷 지음, 조동섭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7월
평점 :
또한 여왕은 어떤 책을 읽으면 그 책이 길잡이가 되어 다른 책으로 이끈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고개를 돌리는 곳마다 문들이 계속 열렸고, 바라는 만큼 책을 읽기에는 하루가 너무 짧았다. (p.28)
내가 책을 읽으면서 그 책 속의 책 때문에 다른 책을 읽고 싶다고 생각했던건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가 처음이었다. 당연히 책을 읽다가 서점에 가서 『위대한 개츠비』를 달라고 말했고. 그때가 이십대 초반이었는데, 그 일은 내게 몹시도 신선하고 새로웠으며 즐거운 경험이었다. 당시에 읽었을 때 위대한 개츠비는 내게 재미있게 읽히지 않았고, 나는 내가 무언가 이해를 잘 못하고 있는것 같다며 그 책을 친구에게 빌려줬다. 친구는 다 읽고 재미있다며 돌려줬다. 나는 이 책이 대체 왜 재미있다는걸까 싶어서 다시 읽었지만, 두번째 읽었을 때도 역시 위대한 개츠비는 재미 없었다. 그리고 이십대 후반에 다시 한 번 위대한 개츠비를 읽었는데, 책은 만나야 할 때가 있는 것일까. 그때는 그 책에 엄청 빠져버리고 말았다. 이건 잠시후 다시 얘기하기로 하고.
책에서 또 다른 책을 만나게 된 경우는 그 뒤로 여러차례 생겼지만, 또 한 번의 인상깊은 경험은 작년에(아니, 재작년인가..) 있었다. '필립 로스'의 『울분』을 읽다가 '버트런트 러셀'이 궁금해졌던 것. 러셀의 이름을 들어보지 않은 건 아니지만 나에게 그는 그저 무심한 존재였다. 관심의 대상이 전혀 될 수 없는 존재. 그러나 필립 로스가 나로 하여금 러셀을 찾아 읽게 했고, 그렇게 만난 러셀은 정말 엄청나게 멋졌다!! 차근차근 러셀의 책을 죄다 읽어보겠다고 생각해서 여태 두 권의 책을 읽었고, 세번째 책을 사두었지만 아직 읽지는 않았다.
책이 가진 미덕은 여러가지가 있다. 내가 처음 책을 읽기 시작한건 한글을 깨치자마자였는데, 만화책이든 신문이든 나는 그저 마냥 글자를 읽는게 신기했고, 그것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는게 재미있었다. 가끔 동네 어른들은 너가 정말 책을 읽기는 하는거냐며 신기해하고 내게 글자를 읽어보라 했고, 나는 내가 정말로 책을 '읽고 있음'을 드러내 보여주기도 했다. 그래, 나는 '재미있어서' 책을 읽었다. 그 뿐이었다, 그 때는. 그러나 재미로 읽기 시작한 책읽기가 감동을 주기도 했고 지식을 주기도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지혜로 연결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가보지 않은 길을 가게 해주고 내가 경험해보지 않은 일들에 대해 경험하게 해준다. 내가 지금과는 다른 곳에서 다른 사람이 되어 다른 삶을 살아보는 것이 책 속에서 가능해진다.
몇 년 전만 해도 여왕은 노먼이 어떤지, 아니, 어느 누가 어떤지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제 여왕이 그것을 알아차릴 수 있게 되었다면, 그것은 여왕이 전보다 사람의 감정을 더 많이 알게 되었기 때문이며 자신과 다른 사람의 입장을 바꾸어 생각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p.122)
영국의 여왕이 오십년간 여왕 자리에 있었으면서 뒤늦게 책읽기의 재미를 알게 된다. 이제 여왕은 책을 손에서 놓는 일이 없다. 책읽기에 푹 빠진 여왕은, 예전에는 미처 몰랐던 다른 사람들에 대한 생각을 해볼 수 있게 된다. 다른 사람의 감정을 더 많이 알게되고 그 사람을 배려하게 되는일, 여왕에게 이것은 책읽기가 선물한 것이다. 그래, 책읽기의 유용함은 또있었다. 공감능력을 불어넣어 주는일.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 행복해도 해보고 슬퍼하기도 해보는 것, 상실감에 눈물 흘리고 짜릿함에 소름이 돋는것, 이 모두를 책읽기가 가능하게 해준다.
그래서 나는 어릴때부터 어린아이 스스로 책을 읽는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책이 아이에게 보여줄 수 있는 세계는 무한하고, 그 아이로 하여금 다른 사람의 입장을 생각해보게 하는 일은 그 아이의 '앞으로 만나게 될 사람과 맺게 될 관계'들에 있어서 중요하고 단단한 기반이 될 것이다. 물론, 그 책이 그 아이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는 아이 스스로 책을 찾아 읽고 스스로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책을 읽는건 좋으니까 읽어!' 라는 강제성은 오히려 책으로부터 멀어지게 할 것임이 틀림없다. 강제해서 잘 되는 꼴을 못봤다, 나는. 그게 뭐든.
책읽기가 즐거워지면서 좋아하는 작가가 생기게 된다. 모르는 작가의 작품을 처음 읽었을 때, 그리고 그 책이 몹시 좋았을 때, 그 즐거움을 온 몸으로 흡수하며 그 작가의 또다른 책을 찾아보게 되지 않는가. 게다가 그 작가의 책이 아직 많이 남아있고, 심지어 생존해 있다면, 또 나오기를 기대할 수 있지 않은가. 이 모든 것들이 짜릿한 기대가 아닌가. 여왕은 책읽기에 몰입하게 되면서, 이제 이런 기분도 느끼게 된다.
"책을 읽고 마음에 든 작가가 생겼는데, 그 작가가 쓴 책이 그 한 권만 있는 게 아니라, 알고 보니 적어도 열 권은 넘게 있는 거예요. 이보다 더 즐거운 일이 있을까요?' (p.79)
위에 언급했던 『위대한 개츠비』얘기로 돌아가자면, 조금 더 나이 들어서 읽는 위대한 개츠비는 처음 읽을 때와 달랐다. 도스트예프스키의 『죄와 벌』도 마찬가지. 고등학생때 나는 그 책을 읽기를 수차례 시도했으나 열장도 넘기질 못하고 다시 꽂아두어야 했다. 그러나 이십대 중반에 다시 읽는 죄와벌은 달랐다. 어떤 책을 언제 만나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그 책을 '다시' 만나기까지 읽었던 다른 책들이 나로 하여금 그 책을 읽게 도와준것일런지도 모른다.
여왕은 브론테 자매에 관한 책에서 자매의 힘겨운 어린 시절 부분을 읽고 있었다. 그 책을 읽어도 다시 잠이 올 것 같지 않아 다른 책을 찾던 중, 오래전 이동도서관에서 빌렸다가 허칭스에게 받았던 아이비 콤프턴버넷의 책이 서가 구석에 꽂혀 있는 것을 보았다. 당시 그 책의 책장을 쉬이 넘기지 못하고 잠들뻔했던 것을 떠올리며, 다시 그럴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전에는 느리다고 생각했던 그 소설이 이제 가슴 시원할 만큼 활기차게 느껴졌고, 여전히 건조하기는 하지만 신랄하게 건조했다. 아이비 경의 담백한 문체와 여왕 자신의 문체가 비슷해서 여왕은 자기 글에 자심감을 얻기도 했다. 그러자 여왕은 생각하게 되었다(그리고 이튿날 공책에 적었다). 독서는 근육과 같고, 자신은 그 근육을 발달시킨 것 같다고. (pp.115-116)
아, 진짜 근사하다! 나는 지금도 소설이 아닌 책을 거의 읽지 않고, 그것은 사실 내게 약간의 컴플렉스를 가져다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쩌다 한 권씩 읽을 수 있는건 다 그동안 소설을 읽어왔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만약 내가 소설을 읽지 않은채로 지내왔다면, 아마 비소설류의 책도 읽을 수 없었을 것이다.
책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생각을 하게 하고 느끼게 한다. 울게 하고 웃게 한다. 더 나은 삶과 더 나은 관계를 생각하게 한다. 더 나은 환경과 더 나은 사회를 꿈꾸게 한다. 그리고 책이 하는 역할은 여기까지다. 그 다음, 그 모든 것들을 실천해서 한 걸음 내딛게 하는건 책이 아니라 '책을 읽은 내'가 하는 일이다.
"아시는 분도 있겠지만,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열성적인 독자가 되었습니다. 책 덕분에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인생이 풍부해졌습니다. 그러나 책은 거기까지만 짐을 이끌 뿐이었죠. 그래서 이제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책을 읽는 사람에서 글을 쓰는, 아니 쓰려고 애쓰는 사람이 될 때가 말이죠." (p.128)
나야말로 이 책덕에 즐거운 책읽기를 할 수 있었다. 아는 작가의 이름이 언급될 때는 어찌나 기쁘고 흐뭇하던지. 게다가 나는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도 읽은터라, 이 책에서 언급되는 '해비셤 부인과 핍'에 대한 부분에서도 알아들을 수 있었다! 나이쓰!
책을 읽고 또 좋아하는 사람에게 즐거운 책읽기를 선사할 수 있는 책이다. 얇고 사랑스럽다. 처음부터 끝까지의 내용이 짐작한대로 특별할 것 없이 흘러가지만, 뭐, 그런들 어떠한가. 짐작한대로 흘러가지 않는 건 추리소설에서 해주고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