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손에 손가락 세 개가 없었다. 검지, 중지, 약지 손가락이 없었다. 엄지손가락과 새끼손가락은 그대로 있었다. 시체가 썩어가는 동안, 그 손은 악마의 뿔처럼 남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해리슨 벌판에서 빌리가 선물해 준 쌍안경을 통해 재즈가 본 바로는 시체의 손가락을 한 개밖에 찾지 못했다. 증거 봉투 안에 들어 잇던 바로 그 손가락 이었다.

살인자가 다른 손가락 두 개를 가져간 것이다. 한심할 정도로 얄팍한 보고서에 다르면 범인이 가져간 손가락은 검지와 약지였다. (p.47)

 

 

 

 

 

 

 

 

 

 

 

 

 

 

 

오늘 지하철 안에서 이 부분을 읽엇는데, 멘탈붕괴가 찾아왔다. 아니, 범인이 검지와 약지를 가져갔다니? 엄지손가락하고 새끼손가락은 남아있다며? 그런데 어떻게 검지랑 새끼손가락을 가져간단 거야? 나는 머릿속으로 엄지와 새끼만 남은 손을 그려보다가 살인자가 새끼손가락을 가지고 갔다고 하니 이게 뭔 말이야 하고 다시 읽다가, 검지,중지,약지, 란 말에 아니 둘째 셋째 새끼 손가락 이렇게 잘라간거면 첫번째랑 네번째만 남은건데 이게 대체 뭔 말이야, 하고 머리가 팽팽 돌았다.

 

 

그러니까 내가 알기론 그랬다. 다섯 손가락에 있어서 첫째는 엄지, 둘째는 검지, 셋째는 중지, 넷째는 장지, 다섯째는 약지. 나는 이렇게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저 책의 내용이 눈깔 돌아가는 내용이란 말인거다. 그래서 사무실에 출근하자마자 인터넷을 켜고 약지를 찾아보았다. 그런데, 아, 약지는 새끼손가락이 아니었다. 네번째 손가락이었다. 새끼와 가운데 손가락, 그 사이의 손가락. 헐. 그래서 어어, 그게 그러니까, 장지가 아니란 말이야? 싶어서 장지손가락을 찾아보니, 장지는 중지처럼 세번째 가운데 손가락을 일컫는 말이었다. 아 쉬바..언제부터 이랬던거야????? 대체 나는 어디서 이런 잘못된 정보를 습득해서 내것인듯 가지고 있었던거지? 혼란스러워. 이 세상은 내가 아는 세상이 아니야...

 

 

 

 

오늘 아침 식탁에는 구운 고등어와 양념갈비구이가 있었다. 하아- 엄마. 날더러 어쩌란 말예요. 고등어와 갈비를 한 상에 차리시다니, 이건 너무나 사치스러워요. 나는 일단 뜨거운 고등어를 호호 불어가며 발라 먹었다. 엄마는 그런 나를 보시더니 너 진짜 잘먹는다, 라고 하셨다. 고등어를 먹으면서 갈비를 먹을수는 없다. 그건 고등어와 갈비, 그 둘 다에 대한 예의가 아니잖은가. 나는 일단 고등어를 다 먹은 뒤에 남은 밥을 갈비와 먹었다. 틈틈이 김치찜도 먹었다. 김치 없이는 완벽한 밥상이 아니니까. 너무나 만족스런 밥상이라 출근하기가 싫었다. 내내 이렇게 하루종일 밥만 먹고 싶었다. 정말 그렇게 할 수도 있을것 같았다.

 

 

그리고 양재역에서 내려 버스정류장으로 가는데 마침 641 버스가 도착했다. 버스카드를 대고 기사님께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한 후 자리에 앉으려고 둘러보는데 저 쪽에서 과장님, 하는 소리가 들린다. 헐. 타부서의 L 대리다. 흐읍. 이렇게 버스 안에서 만나지는구나. 여튼 인사를 하고 앉았다. 그러자 L 대리는 다음정류장에서 내려 걸어가자고 한다. 그래서 알았다고 했다. 그리고 내렸는데 누가 뒤에서 과장님 안녕하세요, 한다. 돌아버니 그 버스에서 신입직원 K 가 내린다. 헐. 이 버스 탔어요? 네. 나 봤어요? 네. 아 쉬바..나는 못봤는데..나는 이제 내 옷차림이 신경쓰인다. 나는 정장 원피스 차림에 ...                    운동화를 신고 있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orz

 

운동화 신으니 키는 난쟁이똥자루가 되어 땅바닥에 붙어 다니고, 원피스 밑에 신었으니 스타일은 구겨지고 아놔..카리스마 있고 지적이고 차분하고 섹시한 여자과장의 이미지를 보여주려고 했는데, 그러고 싶었는데, 신입 직원에게 그런 과장으로 보여지고 싶었는데, 흑흑, 이건 만화캐릭터같아. 순정만화에 나오는 예쁜 여자주인공의 힘센 괴짜친구 캐릭터. ㅠㅠ 나는 몹시 기분이 나빠졌다. 출근길 버스안에서 이들 모두를 만나는 건 내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이 길은 다른 직원들이 잘 다니지 않는다는 확신이 내게 있었다. 나는 다른 직원이 더 먼길인것 같다고 했던 길을 골라 다녔다. 그 길을 걸어다니며 그동안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게다가 나는 다른 직원들이 나보다 좀 더 일찍 혹은 좀 더 늦게 나올거라 생각했다. 그러니 우리가 만날 일은 없어야 했다. 나는 중고샵에 팔 책을 몇 권 들고 와야 했기 때문에 가방이 무거웠고, 요즘엔 외근나갈 때나 결재 들어갈 때, 그리고 약속이 있을때만 힐을 신던터라 출퇴근길은 누가 보든말든 운동화를 신고 다녔는데-차림새야 어떻든!!- 하아, 이런식으로 만나다니. 나는 운동화를 신고 사람을 만나는 게 정말 싫다. 한없이 작아지는 느낌이야. 이건 늘상 렌즈를 끼고 사람을 만나다가 안경을 끼고 사람을 만나게 되는 것과 같다. 나는 안경을 끼고 누군가를 만나는 걸 너무 싫어해서-정말 작아진다구!!- 눈깔이 아파도 렌즈를 끼도 나가곤 했는데, 하아, 운동화를 들켜버렸어. 안그래도 토요일에 친구들 만날 때 운동화 신고 나갔다가 또 작아진 느낌이 들어서 뷁 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하아, 파릇파릇한 신입 남직원 앞에서 이런 .. 말도 안되는 모습을 보여주다니. 흑흑. 뭔가 한껏 차려입고 힐을 신고 다시 한 번 만나고 싶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L 대리가 같이 스벅가서 커피나 한 잔하자는데, 나는 걍 들어가겠다고 마시고들 오라고 하며 와버렸다. 운동화 신고 커피를 마실 자신이 없었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나랑 간혹 술을 마시던 남자가 자신보다 열 살 아래의 여자와 막 연애를 시작했다는 소식을 오늘 아침에 들었다. 나는 그를 좋아한 것도 아니었고, 그와 사귀고 싶다거나 한 것도 아니었지만, 헐, 열 살 아래의 여자라니, 뭐지, 이 무력한 느낌은....

 

빨리 점심시간 되서 점심이나 먹었으면 좋겠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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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07 09: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5-09 09: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Mephistopheles 2013-05-07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손가락은 원.래.부.터. 그.러.한. 이,름.으.로.불.려.졌.답.니.다.

2. 네꼬님이 다락방님의 아침밥상을 싫어하십니다.

3. 아니 저렇게 자세히 다락방님의 출근 노선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놓으시면....어쩌실렵니까?

다락방 2013-05-09 09:04   좋아요 0 | URL
1. 누구도 내게 일러주질 않았네, 라는 이아립의 노래 가사가 생각납니다.

2. 인생은 어차피 홀로왔다 홀로 가는것, 이라고 했던 누군가의 노래 가사도 생각나는군요. 네꼬님은 네꼬님의 밥상을, 다락방은 다락방의 밥상을... ( ")

3. 너무....적나라했나요? 에이, 그래도 뭐, 제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니까, 설마 길에서 우연히 마주쳐도 그게 저인줄 알겠습니까?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아무개 2013-05-07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읭? 다락방님 작은 키도 아닌데 운동화 신어도 상관없겠던데 왜요???
그리고 뭐 저는 잘 모르지만 뉴요커들이 정장에 운동화 신고 다닌다던데요 뭐. 중요할때만 힐을 신고 나머지는
활동적인 운동화~~어디서 줏어들이 이야기라 정확성은 없지만 ㅋㅋ

혹시 광화문에 유명한 김찌찜 하는곳 가보셨나요? 가보고 싶은데 그런곳은 정말 혼자 갈수가 없어요ㅜ..ㅜ
한번 갑시다. 어디든 맛난거 묵으러~

다락방 2013-05-09 09:02   좋아요 0 | URL
작은 키는 아닌것 같긴하지만, 어, 음, 작은것도 같고...킁킁. 안그래도 아무개님의 이 댓글 읽고 어제 만나는 사람한테마다 내 스타일이 뉴요커 스타일이라고 하고 다녔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내가 이렇게 빠숑을 알아, 하면서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뉴요커 다락방 이라고 불러주세요. ㅋㅋㅋㅋ

광화문 김치찜..이라.. 그건 잘 모르겠네요. 네, 여튼 만나서 술 한 잔 합시다!!

Forgettable. 2013-05-07 15: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 보.

아무개 2013-05-07 15:37   좋아요 0 | URL
ㅋㅋㅋ 아이쿠야

Mephistopheles 2013-05-07 16:54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 이거 굉장히 공감하는.....댓글..이랄까..

다락방 2013-05-09 09:01   좋아요 0 | URL
아- 뭔가, 다락방에 대한 뽀의 절절한 애정이 느껴지네요. 뽀는 다락방을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가봐요.
=3=3=3=3=3=3=3=3=3=3=3=3=3=3=3

무스탕 2013-05-07 1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운동화밖에 안 신고 다니는데.. ㅠㅠ
원래 157을 달랑말랑하는 키에 운동화도 키높이는 절대사양이라서 제 키는 죽어도 160을 안 넘는데.. ㅠㅠ

건 글쿠, 점심은 맛나게 드셨어요? :)
저녁은 뭘 드실 계획이신가요? 아니, 지금쯤 드시고 계실까요?

다락방 2013-05-09 09:00   좋아요 0 | URL
운동화가 문제라기 보다는 정장스커트 아래의 운동화, 라서 문제가 되는거죠. 안어울리는 조합...그치만, 져스틴 팀버레이크도 수트에 운동화 신더라고요. (읭?) ㅎㅎㅎㅎㅎ

벌써 5월 9일이네요. 7일의 점심과 저녁은 건너뛰고 보자, 어제 저녁엔 황태구이정식과 매운갈비찜을 먹었어요. 집에 돌아와서는 간식으로 치킨을 먹었고요. 물론 모든 음식엔 술이 빠지질 않았습니다. ㅋㅋㅋㅋㅋ

잘 지내고 계신거에요, 무스탕님?

섬사이 2013-05-09 0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오랜만에 뜬금없이 와서 이렇게 웃고 가도 되죠? 잘 지내셨어요? 다락방님이라면 어쩐지 정장원피스에 운동화라도 자신있게 새로운 유행으로 만들어버릴 것 같은데...작아지지 마세요!

다락방 2013-05-09 08:59   좋아요 0 | URL
네, 작아지지 않겠습니다!
안그래도 계속 운동화 신고 다니고있어요. 에이 뭐, 그러든지말든지, 하면서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

정말 오랜만이에요, 섬사이님. 안그래도 어제였나, 섬사이님 페이퍼보고, 어어, 오랜만에 오셨네, 했거든요. 그런데 여기에서도 뵙네요. 반가워요.
:)
 

옆집에서는 여름 내내 밤마다 음악 소리가 흘러나왔다, 라는 문장이 내 옆의옆 자리에 앉은 남자의 책 속에서 보였다. 으악. 저건 개츠비잖아!! 나는 오늘 아침 갑자가 개츠비가 읽고 싶어 들고나온 터였다. 확인이 가능했다. 다사 그 남자의 책을 흘깃 보니 위에 3 이라는 숫자가 보였다. 나는 막 읽기 시작한 나의 개츠비의 3장을 찾았다.내 책에는 '3' 이 아니라 '제3장'이라고 쓰여져 있었다. 그리고 거기엔 이런 문장이 있었다.

여름 내내 밤마다 이웃집에서는 음악 소리가 흘러나왔다. (p.60)


저 남자의 책에서는 64페이지였다. 그는 막 책장을 다음장으로 넘겼고, 나는 책을 덮고 반가운 마음에 글을 쓴다. 지금 나는 양재로 가는 3호선 지하철 안에 있고 지금 시각은 오전 7시 13분이다.


개츠비 읽는 청년님아, 만약 님이 이 글을 본다면, 님의 옆의옆 자리에 앉은 여자가 나였어요.

 

 

 

 

 

 

 

 

 

 

 

 

 

 

 

나도 민음사 개츠비였는데 그도 민음사 개츠비였다. 나는 2005년도에 구입한 1판20쇄를 읽고 있었는데 그는 몇판면쇄의 책인데 나랑 이렇게나 많이 달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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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06 09: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5-06 09: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5-06 09: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세실 2013-05-06 1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우 개츠비 읽는 청년이라니..멋진걸요^^ 외모도 잘 생겼나? ㅎ
저 비밀댓글은 혹시 그 청년? ㅋㅋ
김영하 개츠비도 읽어보세용!!

다락방 2013-05-07 09:48   좋아요 0 | URL
저 비밀댓글은 혹시 그 청년,
이 아닙니다, 세실님. ㅎㅎㅎㅎㅎ

김영하 개츠비는 서점에서 제일 첫 장을 읽어봤거든요. 전 민음사가 더 좋더라고요. 흐흣

Mephistopheles 2013-05-06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개츠비가 절대 위대하진 않다고 보여집니다..

다락방 2013-05-07 09:49   좋아요 0 | URL
개츠비가 위대하다기 보다는 [위대한 개츠비]가 위대하지요. 게다가 디카프리오가 개츠비 역을 맡았잖습니까. 기대가 아주 큽니다. 감동이에요. ㅠㅠ

Mephistopheles 2013-05-07 16:03   좋아요 0 | URL
그래도 로버트 레드포드를 따라올 수는....

2013-05-06 10: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5-08 16: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기억의집 2013-05-06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저도 스맛폰으로 글을~ 다락방님의 능력에 감탄하며 댓글 읽었더니,,,,, 수정하신 거였군요.
저는 스맛폰으로 덧글 쓰는 것도 힘들어 그냥 읽기만 하게 되더군요. 스맛폰으로 읽으니 컴은 안 켜고! 일찍 회사 출근하시네요. 저의 애아빠는 7시 30분에 나가는데~
예전에 작은 아파트 단지에 7년 살았는데, 그 때 경비 아저씨가 저한테 그 집 아저씨는 하루도 빠지도 않고 그 시간에 나가데! 그런 말을 하신 적이 있는데, 다락방님도 언제나 그 시간에 출근 하시길~

다락방 2013-05-08 16:53   좋아요 0 | URL
스맛폰으로 쓰고나서 읽어보니 오타가 작렬하더라고요. 상품 추가도 안되고 말입니다. 하핫.

기억의집님, 저는 언제나 새벽 다섯시 사십분에 일어나서 출근한답니다. 강남역일 때는 여섯시에 일어났는데 이제는 다섯시 사십분에 일어나요. 늘 졸려요. 지금도 졸려요. 한 시간후면 퇴근할거라는 기대로 버티고 있습니다. 물론 해야할 일은 쌓여있고 말이지요. 엉엉.

감은빛 2013-05-06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갖고 있는 민음사판 [위대한 개츠비]가 딱 저 문장으로 시작해요.
마침 저도 개츠비를 갖고 나와서 찾아봤습니다.

제 책은 2010년에 나온 2판입니다.
맨 앞에 번역자가 '개정판에 부쳐' 라는 서문을 써놓았어요.
그 글에 따르면 초판을 내고 1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 생활언어가 바뀌었고,
그 사이 수많은 번역본이 나온 탓에 더욱 번역을 새로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부분적인 수정을 한 것이 아닌 전면적으로 재번역을 했다고 써놓았네요.

음. 이 글을 읽으면서 제가 그 청년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지만,
저는 이렇게 이른 시간에 저 머나먼 강남 땅에 가있었을 리가 없었겠죠.

다락방님 서재에 오랜만에 들렀는데(알라딘에 오랜만에 들렀군요.)
최근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신가봐요.
저 역시 몸이 바쁜 것과는 별개로 마음이 편치 않은 날들을 보내고 있어요.
제 위로가 별 도움이 되지는 못하겠지만,
부디 힘 내세요!

다락방 2013-05-08 16:52   좋아요 0 | URL
좀전까지도 힘든 시간을 보냈어요, 감은빛님. 저는 양재동으로 사무실 옮기고 나서 일에 너무 치이고 있는것 같아요. 더 예민해지고 더 일에 치이고. 과부하 걸린것 같아서 더이상은 아무것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지경에 이르렀어요. 한계에 다다른 느낌이랄까요. 그나마 이제는 좀 나아질 것 같다, 라고 생각하는데 글쎄요,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어요.

오랜만에 오셔서 이렇듯 댓글 남겨 주시니 좋은데요, 감은빛님. 왜 별 도움이 안되겠습니까. 읽으면서 따뜻해지고 웃었는걸요. 위대한 개츠비를 읽던 지하철남이 감은빛님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아쉽네요. 흐흣.

네꼬 2013-05-06 1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걸 넘보는(?) 다락님. ㅎㅎㅎ 아 웃겨. 그래, 몇 장인지 찾아보셨어요? 우쭈쭈. ㅋㅋ

다락방 2013-05-08 16:47   좋아요 0 | URL
우쭈쭈. 나 귀여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3-05-06 1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훗..... 갑자기 핀천의 < 제 49호 품목 > 이 생각나네요...ㅎㅎㅎㅎㅎㅎ.
그 청년 잘생겼던가요 ?

다락방 2013-05-08 16:46   좋아요 0 | URL
핀천의 [제 49호 품목]은 아직 읽어보지 못했는데, 오, 어떤 내용이길래 갑자기 그 책이 생각났을까요? 저도 읽어봐야겠네요.

그리고 킁킁, 그 청년은, 킁킁, 전혀 잘생기지 않았습니다. ( ")

2013-05-06 23: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5-08 16: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blanca 2013-05-07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완전 반가울 것 같아요. 저는 예전에 박완서 책 들고 있으니 어떤 아주머니가 좀 보자,고 덥썩 가져가서 깜놀했던 기억이--;; 나네요.

다락방 2013-05-08 16:45   좋아요 0 | URL
아, 저는 일전에 출근길에 젊은 여자가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읽는거 보고 어찌나 즐겁던지, 정말 말 걸고 싶더라고요. 물론 말을 걸지는 못했지만요. 다음에 그런 일이 또 있다면 말을 걸어볼까요? 희희

다크아이즈 2013-05-07 2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섬세한 눈썰미의 소유자 다락방님ㅋ
한 사람 건넌데 그게 다 보이다니 다락방님 청춘일쎄요~~~
남자 사람이 위대한 개츠비를 읽는다는 게 어쩜 상상이 잘 안 돼요.
이것도 제 편견이겠지요?

다락방 2013-05-08 16:44   좋아요 0 | URL
제가 라식 수술한 뒤로 시력이 1.2에요, 팜므느와르님. 옆의옆 자리 책장의 글씨가 보이더군요! 꺅 >.< 게다가 제가 본 문장이 마침 개츠비를 읽은 사람이면 누구나 다 알만한 문장 아니었겠습니까. 개츠비의 집에선 매일매일 파티가 열렸으니까요. 하핫.

저는 남자 사람이 위대한 개츠비를 읽는건 굉장히 자연스럽게 느껴져요.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 에서도 와타나베와 와타나베의 선배가 개츠비에 대해 계속 읽고 이야기했기 때문인가봐요. 흣.

2013-05-08 16: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5-08 16: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사랑할 때는 행복했다. 아름답고 찬란한 시간들만이 존재할 줄 알았다. 사랑이 깊어지고 남자는 여자에게 '우리의 아기를 갖고 싶어' 라고 말하고, 여자는 '아기를 갖게 해줘' 라고 속삭인다. 그리고 사랑은 끝나버렸다. 여자의 생활은 아기를 중심으로 바뀌어버리고 친구를 만나지도 못하고 일도 제대로 되질 않아 점점 스트레스가 쌓여간다. 우울하고 짜증만 늘어나는데, 남편이 야근한다고 늦게 돌아오면 사실 그게 야근을 하느라 늦는건지 바람이 난건지 궁금하고 초조하다. 외출도 못하고 일년쯤 됐을때 여자는 폭발하고 만다. 남편과 아기를 두고 집을 나가버린다. 잠시, 그들로부터 떠나있길 원한다.

 

 

그들이 사랑을 했고 그러다 지치게 되었지만, 다시 얘기를 하고 마음을 털어놓으면 그 사랑의 어느정도는 되찾을 수도 있고 또 제자리로 돌아갈 수도 있을것이다. 제자리로 돌아갔을 때 그들의 관계는 더 단단해져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나는 이 영화의 줄거리보다는 다른 부분에 더 큰 인상을 받았는데, 남자와 여자가 만나 사랑을 하고 함께 사는 장면들이 내게는 꽤, 음, 현실같지 않았다고 할까. 둘은 사랑하니까 함께 살고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낸다. 먹고 자고 놀러다니고 까르르 웃는 그들에게 현실의 잔혹함이 보이질 않는다. 무슨 말이냐하면, 여자는 아직 논문을 준비하는 '학생'이고 남자는 비디오가게의 점원일 뿐이다. 그런데 그들이 사는 집이 좋아보인다는 것. 비디오가게 점원이 돈을 벌면 얼마를 번다고 저렇게 유유자적한 생활을 할 수 있을까? 원래 돈 있는 집안 자식들인가? 설마 저거, 복지인거야? 그러니까, 저 나라에서는 비디오가게 점원으로 일을 해도 먹고사는 데 전혀 지장이 없는거야? 나는 이게 꽤 충격인거다. 게다가 아기를 낳고 나자 남자는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 '양복을 입고 출퇴근하는' 직장을 구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취업의 어려움 전혀 없이 그는 양복을 입고 출퇴근을 하는 직장남이 되었다. 집도 더 큰 데로 이사하고. 아니, 이들에게는 취업이 그렇게까지 어렵진 않은건가? 내가 사는 나라가 되게 짜증스럽게 느껴지는거다. 이 나라는 우리들에게 뭘 해주고 있는거지? 뭘 하고 있는거냐고!!

 

이 영화를 보는데 나는 이상하게 내가 사는 나라가 짜증나네.

 

 

 

 

 

 

여자는 돌고래 조련사다. 그 일을 사랑한다. 그런데 어느날 사고를 당해서 두 다리를 잃는다. 그녀는 세상을 보기도 싫고 햇빛 따위 꼴도 보기 싫다. 그런 그녀가 뒷골목의 복서인 남자를 만나 다시 바깥으로 나오고자 한다. 섹스가 될까, 걱정했던 그녀에게 남자는 해보자고 말한다. 다리를 잃기전에 여자로서 남자들을 만나 데이트를 했던 자신을 떠올렸던 그녀는, 초조한 마음으로 섹스에 임한다. 섹스가 끝난후에 남자는 또 하고 싶어지면 자신을 부르라고 말한다. 그가 떠나고 그녀는 휠체어에 앉아 자신의 팔을 움직이며 자신이 돌고래를 조련했던 그 순간을 기억한다. 그 때, 그녀의 귀에는 음악이 흐른다. 점점 더 자신감을 찾아가는 장면에서 음악은 점점 더 커지고, 그 장면이 나는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았다. 가장 벅차고 찬란했던 장면. 그녀가 다시 삶을 끌어안을 수 있게 된 장면. 그 음악이 뭔가 궁금해서 검색했는데 못찾겠더라. 팝송인데..

 

그런 생각을 했다. 사람은, 어느 정도의 생에 대한 의지만 있다면, 어떻게든 자기가 살 길을 찾아간다고. 그동안의 상황과 아주 달라져버려도, 그 상황에 맞게 자신이 살아갈 방법을 찾아가게 되어있다고. 그 상황에 맞게 사람들을 사귀고 그 상황에 맞게 앞으로 나아간다. 그 삶은 그 전의 삶과 달라서 내가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 라는 생각이 순간순간 찾아들지도 모르지만, 어떻게든 사람을 만나고 사랑을 하고 살아진다. 문득 [곰스크로 가는 기차]에서의 <럼주차> 생각이 났다. 그래, 삶은 그렇게 쉽게 끝장나진 않지.

 

이 영화속의 남자는 무뚝뚝한 남자의 전형이라고 볼 수도 있을텐데, 다정한 말 한마디 해주지 않던 그이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앞에 무너지고, 그 뒤에 사랑한다는 말을 입 밖에 낼 수 있게된다. 자신이 먼저 여자를 떠나왔지만 이제는 여자에게 내 곁에 있어달라고 말한다. 우리는 누군가를 만나서야 비로소 내 안의 약점을 고쳐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한 사람에에게 다른 사람이 필요한 것 같다.

 

 

 

오늘은 드디어 밀크셰이크를 만들어 먹었다. 며칠전에 사서 냉동실에 넣어두었던 콜드스톤의 아이스크림이 남아있다는 사실을 기억해내곤 뚜껑을 열었는데, 마침 내가 좋아하지 않는 맛인 체리맛 아이스크림이 남아있는거다. 그래, 이걸로 해보자. 나는 남은 체리아이스크림을 다 퍼서 믹서기에 넣고 우유를 따라 넣었다. 그리고 믹서기를 돌렸다. 오, 맛있다. 너무 맛있다. 이건 다른 걸 넣을게 없구나. 아무것도 필요없어, 맛있다!! 더 만들어 먹기 위해 당장이라도 아이스크림을 사러 가고 싶었다. 롯데리아에서 사 먹는 밀크셰이크보다 훨씬 훠어어어어어어어얼씬 더 맛있었다. 나는 아이스크림도 싫어하고 우유도 싫어하는데, 이렇게 먹으니 완전 짱이네? 움화화핫. 신난다!! 맛있어!! >.<

 

 

며칠전에 상사는 나를 불렀다. 그리고 내 앞에서 내 사직서를 구겨버렸다. 나는 그렇게 계속, 회사를 다니고 있다.

 

 

얼마전에 조카가 며칠간 머물렀는데, 함께 놀다가 조카가 웃는 모습을 보는 순간 내 마음에 행복이 가득 찼다. 아, 이런게 사랑이구나, 싶었다. 이런게 사랑이야. 웃는 모습을 보는 순간 내가 행복해지는 거, 내가 웃는게 아니라 다른 사람이 웃는데 내가 더 행복해지는 거, 이게 바로 내가 그 상대를 사랑한다는 증거구나, 싶었다. 그러고보면 순수하게 상대가 웃는것 만으로도 내가 행복해지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이 아이 말고 누가 그랬지, 누가 웃을 때 행복했지, 하고 떠올려보다가, 나는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퍼뜩 생각났다. 그가 내 앞에서 웃는 모습을 보일 때, 그리고 전화기를 통해서 그 웃음소리가 들려올 때, 그 때 가슴속이 꽉- 차오르던 느낌도 떠올랐다. 꽉, 꽈악-  그를 떠올리면 내 안에 불온한 욕망이 자리잡는다. 내가 내 뺨을 때리고 싶어.

 

 

 

 

4월, 거의 한 달간을 그리고 5월의 지금까지를 책을 읽지 않으며 살고 있다. 어제 만난 친구가 요즘 뭐 읽어요? 라고 묻는데 안 읽어요, 라고 답했다. 읽고 싶은 마음이 자연스레 생길때까지 나는 책을 놓을것이다. 이러면서 엊그제 또 책을 주문하긴 했지만. -_-

 

 

 

 

 

오늘은 문득 생각나서 줌파 라히리의 지옥 천국을 읽었다.

 

 

 

 

 

 

 

 

 

 

 

 

 

 

 

 

 

 

 

 

 

다 읽고 책장을 덮었을 때, 내 가슴속을 꽉- 채우던 그는, 내게 프라납삼촌 같은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핸드폰에 저장된 그의 이름을 지우고 프라납, 이라고 수정해서 넣을까, 하고 생각하다가 피식 웃고는 말았다.

 

 

 

아침에 일어나서 계란후라이를 해먹고 싶었는데 냉장고를 여니 계란이 없었다. 무척 서운하더라, 무척. 매우, 대단히. 점심때가 지나서 엄마는 시장에 다녀오셨고 계란을 사가지고 오셨다. 이제는 냉장고를 열면 계란이 가득 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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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06 08: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5-06 09: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5-06 09: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5-06 09: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5-06 09: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Mephistopheles 2013-05-06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한민국 헌법 1조는 이제 대한민국은 자유 민주주의 짜증 공화국입니다.라 바꿔야 할 듯.
(마리옹 꼬띠아르가 요즘 많은 영화에서 두각을 나타내는군요.)

다락방 2013-05-06 09:16   좋아요 0 | URL
진짜 짜증나요. 먹고 살기위해 일을 구하는 게 힘든 나라라니.. 아우씨...
(마리옹 꼬띠아르 매력적이에요!)

2013-05-06 10: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3-05-08 17:02   좋아요 0 | URL
아잉~ 몰라용~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013-05-06 11: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5-08 17: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5-06 14: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5-08 17: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테레사 2013-05-06 1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직서를 쓴 당신, 누구인가요? 상사가 구겨버린 그 사직서의 주인인 당신은 누구일까요? 갑자기, 즉흥적으로 한달을 쉬어버리기로 결정한 나란 여인에게, 문득 다락방님은 어떤 여인일까 하는 강렬한 궁금증이 일렁입니다....그래서..그래서 아직 다니고 있단 말이지요? 손이 닿았는데 올리버 키트리지였어요. ...다시 읽어도 재미있고, 좋았어요...그런ㄷ 피아노 연주자에서 좀 오래 머물렀어요...너무 늦었을 때엥 뭔가를 깨닫는 것이 인생일거라고 생각했다...이 구절....이 구절에서 이상하게 눈물이 솟구치네요....왜 인지 정말, 모르겠어요...앤절라 오미라.....

다락방 2013-05-08 17:06   좋아요 0 | URL
저는 사직서를 썼지만 결국은 계속 회사를 다니기로 결심한 다락방 입니다. 즉흥적으로 한 달을 쉬는 건, 저희 직장에서는 좀 곤란한 일인지라, 쉬고 싶어도 쉬지는 못해요, 테레사님. 언제부터 쉬시는 거에요? 부디 쉬는 한 달 동안 마음껏 쉬고 마음껏 웃으시기를 바랍니다, 테레사님.

저는 올리브 키터리지에게 일흔살에 남자친구가 생기던 부분이 떠오르네요. 그의 전화를 기다렸을 때, 무지개처럼 그의 전화가 오던 그 일이요.


dreamout 2013-05-06 2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계란후라이 해 먹고 싶은데.. 제가 하면 맛이..
이번 주말에도 어김없이 출근을 했는데, 생산성이 바닥을 기었어요. 대신 백화점에서 좋아하는 수입맥주 사다가 실컷 마셨는데 그거 하나는 좋았네요. 줌파 라히리 소설.. 읽고 싶어졌어요.

다락방 2013-05-08 17:07   좋아요 0 | URL
ㅎㅎ 계란후라이는, 대체적으로 누가 해도 평범한 맛이나는거 ..아닌가요?

줌파 라히리 소설 읽어보세요, 드림아웃님. 드림아웃님도 분명 좋아하실거에요. 정말로요. 장담해요. 그나저나 드림아웃님.

보고싶었습니다. 흑흑 ㅠㅠ (뭔가 오랜만인 기분이네요..)

blanca 2013-05-07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다락방님 사직서를 상사가 구겨버릴 정도의 존재감이셨군요. 그리고 다락방님 밀크셰이크 저도 따라 만들어 먹어 볼랍니다. 냉동실에 저도 콜드스톤이 ㅋㅋ 있지요. 생각난 김에 <곰스크로 가는 기차>도 장바구니에 넣고요. 저는 지금 로렌스의 <아들과 연인>을 읽고 있어요. 다락방님의 추천 페이퍼도 있더라고요. 너무 좋아요. 막 울었어요. 첫조카는 첫사랑에 버금 간다고 하더라고요. 제 여동생 말로는 자기 아이를 낳아도 그렇대요.다락방님 음성이 저랑 닮은 데가 있어 놀라요.

다락방님이 나날이 조금씩 더 행복해지기를 바랍니다.

다락방 2013-05-09 08:57   좋아요 0 | URL
저는 아직 로렌스의 [아들과 연인] 은 사두기만 하고 읽진 않았어요. 어휴, 블랑카님 댓글 읽으니 어서 빨리 읽고 싶네요. 세상엔 읽고 싶은 책이 너무 많아요, 블랑카님. 그래서 기쁘기도 하고 절망스럽기도 합니다. 흑흑. [곰스크로 가는 기차]는 정말 좋아요, 블랑카님. 실망하지 않으실거에요.

제 음성이 블랑카님 음성이랑 닮았다고요? 블랑카님 목소리도 들려주세요! >.<

우리, 같이 행복해져요, 블랑카님. 그럽시다.
:)

프레이야 2013-05-07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아~~ 다락방님 목소리에요?!!! 너무 좋아요.^^
직장 옮기시고 육첵적으로 힘드신가봐요. 계란 후라이 실컷 드셨어요?ㅎㅎ
냉장고에 계란이 잔뜩 있어야 뭔가 꽉 찬 것 같더라구요.
다락방님 봄날은 가고 있는데 그날그날 누리고 으샤으샤 힘내자구요^^

다락방 2013-05-09 08:58   좋아요 0 | URL
이미 다른것들로 배를 가득 채운터라, 결국 꽉 채운 계란들을 꺼내먹진 않았어요. 헤헷.

봄날이 가고 있나요, 프레이야님? 저는 이제 막 봄날이 오는구나 싶은데, 아, 그러나 이런 느낌은 금세 사라지고 이제 여름이 오겠지요? 봄도 여름도 저는 무척 좋아해요. 문제는 제가 늘 미친여자처럼 실실거린다는거죠. 호홋 ^0^

transient-guest 2016-10-14 0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OMG!!! 목소리가 넘 좋으세요. 저자 사인회할 때 꼭 강독하셔야 할 듯...ㅎㅎㅎ

다락방 2016-10-14 08:02   좋아요 0 | URL
아니, 아침부터 이런 어마어마한 칭찬이라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좋구먼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양재역에서 내려 5번출구로 나가 버스정류장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혹시라도 641버스가 나보다 먼저 지나칠까, 자꾸 뒤를 돌아 확인하며 걸었다. 가방은 무거웠고 오늘다라 9센치 힐을 신었는데 우산까지 들고 걸어야 해서 이미 출근길이 힘겹게 느껴졌는데, 어어, 버스가 오는게 보인다. 아직 정류장은 멀었는데. 할 수 없다. 나는 저 버스를 타야한다, 냅다 뛰기 시작했다. 버스만 보느라 바닥을 볼 수가 없었고, 그렇기에 나는 두 번씩이나(!) 튀어나온 보도블럭을 밟았다. 잔뜩, 물이 튀었다. 종아리로 무릎으로 그리고 구두속으로. 철퍽철퍽 하는 구두를 신고 버스정류장에 도착했지만, 버스는 이미 출발한 뒤였다. 하아- 다음 버스는 11분 후에 온다는 안내문을 보았고, 나는 이미 흠뻑 젖어 만신창이가 되었다. 아, 너무 가혹한 출근길이다. 월요일인데 비가 오다니, 이런건 진짜 치사스러워.

 

어제는 엄마가 교회에 가셨다가 김밥을 가지고 돌아오셨다. 나는 이미 유부초밥을 만들어 먹고 배가 불러 양치도 한 뒤였지만, 김밥을 맛보고 싶었다. 그래서 맨 끝의 김밥을 하나 집었다. 단무지도 계란도 튀어나와 있어서 푸짐했고 컸다. 제일 맛있는 부분. 그걸 먹기 위해 입을 벌렸는데 아야, 아직 채 낫지 않아 딱지가 굳어있는 입술의 물집이 찢어지는 게 느껴졌다. 에잇, 또 찢어졌군, 하며 김밥을 씹는데, 어어, 뭔가 이상하다. 줄줄, 흐르는 느낌이야. 남동생에게 야, 나 혹시 피흐르냐? 라고 물으니 그렇다고 한다. 피가 줄줄 흐른다고. 얼른 휴지를 건네주길래 받아 입술에 대었다. 내 입술을 보고 조카는 놀랐다. 이모 피나? 왜그래? 그러더니 자기 엄마의 손을 잡고 엄마 어떡해, 이모 피나, 한다. 여동생과 남동생은 웃었다. 그러게 왜 제일 큰 김밥을 먹고 입 찢어지냐고. 하하하하하하하하. 그러게. 작은 거 먹지, 나는 왜 제일 큰 걸 집어가지고 입술에서 피가 줄줄... 아 삶이 치사스러워. 음..이건 삶이 치사스럽다기 보다는 내 욕심이 더 크겠지만.

 

 

사람이 자기의 주위에 있는 것들을 무시해 버리고 어떤 중립적인 영역 속에 담을 쌓고 들어앉아서 고립되거나 보호받을 수는 있다. 그것은 즉 자신을 몹시 사랑한다는 뜻이며 이기주의를 통해서 행복해질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자신을 세상만사 어느 것과도 다를 바 없는 높이에 두고 생각하며 세상의 텅 비어 있음을 느기는 경우라면 삶을 거쳐가는 갖가지 자질구레한 일들에 혐오를 느낄 소지를 충분히 갖추는 셈이다. 한 번의 상처쯤이야 그래도 견딜 수 있고 운명이라 여기고 체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날이면 날마다 바늘로 콕콕 찔리는 것 같은 상태야 참을 길이 없다. 대국적인 견지에서 보면 삶은 비극적인 것이다. 바싹 가까이에서 보면 삶은 터무니없을 만큼 치사스럽다. 삶을 살아가노라면 자연히 바로 그 삶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절대로 그런 것 따위는 느끼지 않고 지냈으면 싶었던 감정들 속으로 빠져들게 마련이다. 기것이 저것보다 더 낫다고 여겨지는 대도 있다. <이것>과 <저것> 둘 중에서 선택을 해야만 하는 경우도 있다. 아니라고 말해 보아야 소용이 없다. 그렇다라고 나는 말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이야말로 고문이 아니고 무엇인가? (空의 매혹, p.31)

 

 

 

 

 

 

 

 

 

 

 

 

 

삶이 정말 치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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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13-04-29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엑! 뭐 이런 글이 다 있담... 뭔가 우르르 쏟아지는 기분. 아침에 일찍 일어났는데 비가 와서 한숨 더 잤어요. 늦잠을 잔다고 해서 삶이 조금 더 나아지는 건 아닌 것 같아요. 힝

다락방 2013-05-05 22:42   좋아요 0 | URL
늦잠을 잔다고 해서 삶이 조금 더 나아지는 건 아니라니, 뽀님아, 굉장히 위로가 되는 말이에요. 힘이 되네요. ㅎㅎㅎㅎㅎ 그렇지만 늦잠을 자고 싶어요. 오늘은 일요일. 늦잠을 잤고 맛있는 것도 잔뜩 먹었고 낮잠도 잤어요. 헤헷

달사르 2013-04-29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늘에 대고 치사해! 치사해!
힘껏 외쳐보고 싶네요.

요새는 정말 날씨가 왜이리 치사할까요.
치사빤쓰..

근데 김밥은 맛있었어요? 피까지 흘렸는데 김밥이라도 맛있어야 덜 억울할텐데..

다락방 2013-05-05 22:43   좋아요 0 | URL
이게 벌써 일주일전의 일이 되어버렸네요, 달사르님. ㅎㅎ
네, 김밥은 먹을만 했습니다. 오늘은 유부초밥을 터지지 않게 잘 만들었어요. 맛있게 먹었답니다.
:)

당고 2013-04-30 0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토닥토닥 다락방 님......
괜찮아요?

다락방 2013-05-05 22:43   좋아요 0 | URL
네네, 괜찮아요. 마음 잡고 있어요, 당고님. 고마워요.
:)

2013-04-30 08: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5-05 22: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기억의집 2013-04-30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간적으로 사치스러운 삶으로 읽었다는~
다락방님의 장점은 힘든 시기임에도 유머 감각을 잃지 않는다는 점^^

다락방 2013-05-05 22:45   좋아요 0 | URL
유머감각은 저에게도 그리고 타인에게도 제가 가장 높이 사는 점 중의 하나지요. 잃어서는 안되는 소중한 감각이에요, 기억의집님.
늘 고맙습니다. 기억의집님 댓글 읽을 때마다 힘을 낼 수 있게돼요.

자작나무 2013-04-30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당신을 죽도록 사랑합니다 라는 말의 정체는
나는 당신을 죽도록 오해합니다 일지도 모릅니다.

누가 나를 추켜세운다고 해서 우쭐댈 것도 없고
헐뜯는다고 해서 화를 낼 일도 못 됩니다.
그건 모두가 한쪽만을 보고 성급하게 판단한 오해이기 때문입니다.

오해란 이해 이전의 상태가 아닌가요.
문제는 내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가에 달린 것이지요.

실상은 말 밖에 있는 것이고
진리는 누가 뭐라 하든 흔들리지 않습니다.

온전한 이해는 그 어떤 관념에서가 아니라
지혜의 눈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그 이전에는 모두가 오해일 뿐입니다.

법정 스님

다락방 2013-05-05 22:45   좋아요 0 | URL
올려주신 댓글과 관계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즐겁게 살도록 하겠습니다. 하핫;;

비로그인 2013-04-30 2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버스도 보도블럭도 빗물도 김밥도 진짜 다 너무 치사스럽네요 ㅠㅠ
다락방님한테 그러면 안되지! ㅠㅠ

다락방 2013-05-05 22:46   좋아요 0 | URL
내일이 월요일인데, 내일은 어떻게 보내게 될까요, 아른님? 내일부터는 좀 더 여유로운 시간들을 보낼 수 있게 되었으면 해요.

다크아이즈 2013-05-02 0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찍이 김훈이 말했어요. 삶은 치사스럽고 던적스럽다고.
근데 (글로) 볼 때마다 다락방님은 잘 견뎌내시는 것 같아요.
그러니 날마다 책 읽고 글 쓰고 또 관찰하고 쓰고 이러는 것 아닐까요?
아님 저처럼 견디고 버티기 위해 쓰고 읽고 관찰하시는 건가? ^^*

다락방 2013-05-05 22:49   좋아요 0 | URL
팜므느와르님, 저 잘 견디며 지내고 있는것 같다고 저도 생각해요. 어떻게 해야 버틸 수 있는지를 제가 잘 알아서 하고 있는것 같아요. 가끔은 제 머리를 제가 쓰다듬어 주고 싶어요.

팜므느와르님의 닉네임을 이렇게 보고있으려니, 책장에 사놓고 꽂아둔 김훈의 책이 생각나네요. 아, 그거 읽으려고 산건데, 하면서 말이지요. 하핫

단발머리 2013-05-02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괜찮은거지요? 궁금해서 들어왔어요
다락방님 씩씩한 여자사람이라 괜찮을거라 생각하지만, 그래도 생각나서요.

오늘은 날이 너무 좋아요. 다락방님 마음도 '날씨맑음'이기를.......... 그러길 바래요.

다락방 2013-05-05 22:50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님, 저 괜찮습니다!! 잘 지내고 있어요. 그리고 앞으로도 잘 지낼거고요.
전 씩씩해서 정말 잘 버티고 잘 지내고 있어요. 안부 물어주어 고마워요, 단발머리님.

오늘도 날이 무척 좋더라고요. 남동생과 나가서 비빔냉면 사 먹고 들어왔어요. 저녁엔 갈비도 먹었고요. 제 마음도 점차 날씨 맑음으로 돌아오고 있어요. 고맙습니다. :)
 

수리되지 않았지만 사직서를 냈다. 사직서를 낸 날, 펑펑 울었다. 이를 악물고 입술을 깨물었는데도 눈물이 흘렀다. 도망치듯 외근을 나갔는데, 택시 안에서 소리 내어 울었다. 어깨를 들썩였고 흐느꼈다.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두 택시기사님 모두 내게 어떤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왜 우냐고도, 무슨 일이냐고도 묻지 않으셨다. 그저 목적지에 데려다주시곤 영수증을 발급해주는게 전부였다. 우느라 이유를 물었어도 말하지 못했겠지만, 그래도 휴지는 좀 건네주셨다면 좋았을텐데. 급하게 나오느라 지갑과 핸드폰 밖에 들고 있질 않아 손으로 자꾸 눈물을 닦아야 했으니까.

 

그 날의 나는 엉망이었다.

 

사직서를 내고 펑펑 울고, 회사 근처에 맛집이라 소문난 레스토랑을 찾아가 스테이크를 먹었다. 먹기전에 식전주라고 화이트와인도 시키고 스테이크와 함께 먹기 위해서 레드 와인도 시켰다. 신용카드로 그 어마어마한 금액을 긁어대면서, 오늘의 나는 충분히 이런 대접을 받을만하다고, 나는 나를 대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일에서 주는 압박이 쌓였고, 이제 결국 버틸 수 없다고 생각해서 사직서를 냈지만, 그렇지만, 나에게 남아있는 대출금과 이자 그리고 할부금들은 어떡하나. 퇴직금으로 그 중 일부를 갚을 수 있겠지만, 앞으로는 어떡하나. 스테이크 먹고 싶으면, 술 마시고 싶으면, 책을 또 사고 싶으면 그러면 또 어떡하나. 아르바이트를 구하겠지만, 그걸로 이 모든 게 감당이 될까. 이렇게 그만두는 건 별로 좋을 게 없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는 감정이 이기고 하루는 현실감각이 돌아왔다. 이런 내게 안부를 물어오는 친구들, 그들에게 나는 내 자신이 방황하는 늙은 영혼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올리브는 침대에 누우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외로움이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걸, 여러가지 방식으로 사람을 죽게 만들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올리브는 생이 그녀가 '큰 기쁨'과 '작은 기쁨' 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다. 큰 기쁨은 결혼이나 아이처럼 인생이라는 바다에서 삶을 지탱하게 해 주는 일이지만 여기에는 위험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해류가 있다. 바로 그 때문에 작은 기쁨도 필요한 것이다. 브래들리스의 친절한 점원이나, 내 커피 취향을 알고 있는 던킨 도너츠의 여종업원처럼. 정말 어려운 게 삶이다. (p.124)

 

 

 

엊그제 점심을 먹으러 가기 위해 계단을 내려가는데, 3층 직원들을 계단에서 만났다. 인사를 건네고 뭘 먹을거냐 묻는데, 내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 있었던 신입직원이 과장님, 하고 나를 부른다. 돌아보니 그가 내게 꾸벅,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한다. 네, 라고 대답을 하며 조금 웃었다. 타부서의 대리 역시 과장님 뭐 드시러 가세요, 살갑게 묻는다. 나는 잘 모르겠다고 말하며 이발했네요, 라고 말을 건넸다. 예뻐요, 라고. 그리고 몇몇 직원들과 점심을 함께한 후 회사 건물내의 까페로 갔다. 그곳은 이 빌딩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커피값을 30프로 할인해준다. 우리 커피나 한 잔씩 해요, 하고 까페로 들어갔는데 거기엔 타부서의 차장님과 부장님 그리고 다른 직원이 있었다. 인사를 하고 주문하기 위해 계산대 앞으로 가려는데, 차장님이 본인의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며 내게 내미신다. 이걸로 해, 라고. 나는 냉큼 차장님의 손에서 카드를 낚아챘다. 네, 라고 대답하면서. 그렇게 커피를 시켰다. 잘 먹겠습니다, 라고 말하고 차장님께 카드를 돌려드렸다.

 

금요일 밤엔 전체 회식이 있었다. 아주 맛있는 소고기를 구워 먹었다. 내가 앉은 자리엔 다른 부서의 신입 사원이 있었다. 사실 나는 아직 그의 이름을 정확히 외우지 못했다. 고기를 먹으며 어, 술이 없나? 라고 할라 치면 그는 어느틈에 소주를 주문했다. 어느정도 술이 돌았을 때, 나는 한 임원의 좋지 못한 광경을 보고 신경이 쓰였다. 내 성격을 아는 다른 직원은 제발 보지 말라고, 신경 쓰지 말라고 말했고 나는 온통 신경이 그쪽으로 쏠려 더불어 기분이 나빠지고 있었다. 그 때 내 앞에 앉았던 신입이 과장님 자리 바꿔드릴게요, 보지마세요, 했다. 내가 앉은 자리에선 보이지만 그가 앉은 자리에선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보이지 않아도 소리가 들릴 터. 나는 됐다고 말했지만, 이 모든 작은 일들이 고마웠다.

 

그리고 몇몇 사람들끼리 2차를 갔다. 거기엔 나와 함께 오래전부터 일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모두들 나에게 어떻게 버티느냐고 했고, 그 중에 한 명은 여기 입사해서 내가 우는 걸 처음 봤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또다시 울었다.  누군가는 내가 어떤 성격으로 어떤 것들을 힘들어하는 지 안다는 게 무척 감사했다. 작은 안부와 인사들이 소중했다. 며칠전에는 퇴근길을 동료와 함께 걸었다. 회사에서 양재역까지는 걸어서 십오분 이상이 걸린다. 천천히 걷는 그 길도 좋았다. 걷다보니 오른쪽에 갈비가게가 아주 많이 나왔다. 여기는 갈비촌인가봐, 하면서 걸었다. 집집마다 가르키며 우리 여기도 와보자, 여기도 와서 먹어보자, 했다. 동료는 내게 그만두지 말라고 말했다. 우리 양재동에 있는 맛있는 집 다 가보자고.

 

 

이런 모든일들이 나를 버티게 해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회사를 다니지 않는다면 이런 작은 기쁨을 어디서 얻을 수 있을까. 맛있는 음식점에 같이 가서 술을 마시자고 하는 동료를, 복도에서 마주치면 꾸벅, 인사해주는 후배들을, 까페에서 본인의 카드를 꺼내어주는 상사들을 내가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무엇보다, 내가 회사를 다니지 않는다면, 대체 어디서 어떻게, 이토록 많은 젊은이들과 함께 술을 마실 수 있단 말인가! 어쩌면 나는 조금 더 버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사한 새로운 주소로 친구가 핸드로션을 보내왔다. 이사할 때 그리고 짐을 정리할 때 장갑을 끼지 않아 손이 엉망이 되었는데, 이 선물은 무척 감사했다. 다음날에는 옛날 주소로 보내졌던 선물이 새 주소로 다시 왔다. 우체국 택배 기사님께 이사했다고 말하니 새 주소로 보내주신 것. 도착한 선물을 뜯어보니, 오, 거기엔 내가 읽고 싶어서 사야지, 라고 생각했던 책이 들어 있었다. 이 책일 거라곤 상상도 못했는데, 아니 대체 어떻게 이게 여기에 들어있는걸까.

 

 

 

 

 

 

 

 

 

 

 

 

 

 

 

 

 

이런게 바로 기적이 아닐까.

 

 

몇 주간 책을 읽지 않는 일상을 보냈다. 책을 도무지 읽을 수 없는 일상이었다. 아직 방황하는 마음이 잡히지 않았지만, 일상속에서 나는 버틸 이유를 찾아낼 수 있을것 같다. 나는 그런걸 꽤 잘해내는 사람이니까. 금요일 회식의 내 앞자리 신입 직원이 자꾸 신경쓰인다. 입사한 지 한 달도 안된 직원인데(한달은 됐나?) 회식의 끝무렵, 그 테이블에 그와 내가 단 둘이 남아서 나는 그에게 하소연을 하고야 말았다. 맙소사. 얼마나 진상이었을까, 그 때의 나는. 대체 왜 하필 나를 모르는 사람을 붙들고 하소연 한걸까. 하아- 너무 진상같은 밤을 보낸것 같다. 뭔가 만회하기 위해 기프티콘으로 커피라도 한 잔 보낼까 했지만, 하하, 나는 아직 그의 이름도 외우질 못했고(--) 당연히 전화번호도 모른다. 게다가, 그게 더 진상의 끝으로 향하는 길일것 같아, 차라리 가만있는 쪽을 택해야겠다. 술은 정말 얌전히 마셔야 해. ㅠㅠ

 

 

 

 

『올리브 키터리지』에는 낭독하고 싶은 아주 많은 부분이 있다. 골라내는 게 무척 힘들었지만, 나는 이 부분을 골랐다.

 

 

 

 

 

중간에 잠깐 삑사리(?) 가 있지만, 후훗, 그냥 가기로 한다.

 

 

 

 

어제 토요일, 엄마랑 둘이 부엌에서 막걸리를 마셨다. 떡볶이와 파인애플을 안주 삼아 먹었다. 식탁을 치우고 내 방으로 돌아와 책을 좀 오랜만에 읽어보려는데, 아, 너무 졸린거다. 자야겠다 싶을 때, 남동생이 집에 돌아와서는 내 방에 들어왔다. 무한도전을 보면서 캔맥주(500m)를 하지 않겠느냐 묻는다. 그러고 싶은데 너무 졸려, 어떡하지, 고민하는 내게 남동생은 '우리가 이러는게 우리 삶의 깨알같은 재미지 않냐' 란다. 그래서 나는 벌떡 일어나 남동생의 방으로 갔다. 컴퓨터로 무한도전을 보면서 육계장을 안주 삼아 맥주를 한 캔씩 마셨다. 다 마시고 둘 다 꾸벅꾸벅 졸았다. 무한도전을 다 못보고 우리 이제 자자, 하고는 나는 내 방으로 돌아와 잤다.

 

 

 

우리 삶의 깨알같은 재미, 일상의 작은 기쁨들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것은 그러나, 일어나는 게 아니라 느끼는 것이다. 내가 그것을 느낄 수 있을 때, 비로소 인생은 견딜만한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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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28 21: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4-28 21: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4-28 22: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Mephistopheles 2013-04-29 0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왠 비밀 댓글들이.....^^ 족쇄를 하나 풀으셨네요...그런데 다른 하나의 족쇄가 채워질지도 모릅니다.

마노아 2013-04-29 0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아, 폭풍같은 나날을 보냈군요. 오늘은 날씨가 꾸물거리며 하늘이 꼬물꼬물댑니다.
그래도 차분히 가라앉은 오늘의 날씨가 다락방님께는 기운을 북돋아 주었으면 해요.
잘 버텼어요. 잘 해냈어요. 그대로 회사에서 나와도, 그대로 회사를 계속 다녀도, 모두 다락방님을 응원해요.
곧 5월이에요. 우리 맛난 것 먹도록 해요. 다락방님 손을 꼭 잡아주고 싶어요. 우리 다락방님!

2013-04-29 09: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세실 2013-04-29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이 힘드셨구나..토닥토닥!
부서를 옮겨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 아닐까요?
나두 젊은 남자들 많은 곳에서 근무하고 싶어라.....여긴 제가 어린편이예요. ㅠㅠ

2013-04-29 10: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연 2013-04-29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많은 생각들이 난무하여 힘든 세월이셨을 듯....
회사를 그만두는 게, 그리고 그만둔 상태로 지내는 게 수월치는 않지만...
다락방님은 언제나처럼 다락방님이니까 잘 해내시리라 믿습니다~^^

비로그인 2013-04-29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장이 압권이예요... ㅠㅠ

우리 삶의 깨알같은 재미, 일상의 작은 기쁨들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것은 그러나, 일어나는 게 아니라 느끼는 것이다. 내가 그것을 느낄 수 있을 때, 비로소 인생은 견딜만한 것이 된다.

많은 생각을 하게 되어요....... 힘내세요...다락방님 ..ㅠㅠ

치니 2013-04-29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엇을 선택했건, 선택한 다음에는 그 선택이 가장 잘한 선택이라고, 그렇게 믿는 게 좋단 말 어디선가 들은 거 같아요. 다락방 님이 그만두면 그 회사엔 엄청 큰 타격이겠으나! 다락방 님에겐 또 좋은 일이 기다렸을 거에요. 말씀하신 그대로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삶의 깨알 재미를 찾아내기만 한다면 우린 잘 살 수 있을 거에요 ~ :)

마립간 2013-04-29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사직할 때의 제 모습이 떠오르는군요. 힘내시라는 말 밖에.

하루 2013-04-29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삶의 깨알같은 재미!

달사르 2013-04-29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고..토닥토닥..

버틴다, 라는 말에 공감이에요. 버티고 버티다가, 힘들면 한 번만 더 버텨보고, 그렇게 또 견뎌내고..
그럴 때 마주치는 소소한 깨알같은 기쁨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요.
가만 생각해보면,
그런 기쁨은 그렇게 버티고 난 이후에야 찾을 수 있을려나요? ^^

비 오는 날에 딱 어울리는 목소리로 들려주신 올리브 키터리지, 잘 들었어요. 고마워요.

blanca 2013-04-29 15: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오늘 아침에 이 페이퍼 읽고 글을 남기려다 비가 너무 내리고...이렇게 날이 갠 것을 보고 댓글 남겨요.
다락방님을 오프로는 모르지만 분명 이 순간을 잘 넘기고 도약하리라는 것을 믿어요.
다락방님의 글을 보면 알 수 있어요.

진부한 표현이지만 힘 내세요!

기억의집 2013-04-29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국 잘 다니시는 것으로 결론 난 거죠. 첫 문장 읽고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회사 생활이란 게 더럽고 치사함도 덤으로 따라오는 거라....아니꼽더라도 다니는 거죠.
카드로 결제하라도 내미는 상사나 눈꼴시려운 장면 보지 않도록 배려해주는 신입사원등
이런 사람들 어디 가서 만나겠어요.
물론 만날 수 있겠지만, 조직 생활은 사람 때문에 힘들고
또 사람때문에 견딜 수 있는 문화잖아요. 세실님 말씀대로 다른 부서로 이동 안 되나요?
더 이상 가슴철렁한 소리 안 들었으면 좋겠어요. 회사를 그만두었다는 소리요.
회사 떠난 자리에 가장 그리운 건 조직 생활 하는 동안 나를 지탱해 주었던 사람들과 그들과 함께 했던 시간이더라구요.
다락방님..... 홧팅~

네꼬 2013-04-29 1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님, 나 깜놀했네. 남거나 떠나거나 다 잘할 거예요. 어디서든 반짝이는 걸 찾아내는, 어디서나 반짝이는 우리 다락님.

네꼬 2013-04-29 16:24   좋아요 0 | URL
나 써놓고 보니까 이 댓글 맘에 들어요. (뭐래.)

이매지 2013-04-29 17: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길게 얘기하지 않을께요.


이진 2013-04-29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가슴이 철렁했다가 조금은 위로 올라왔어요.
시험이 코앞인데 직장의 신 보고 있어요. 김혜수의 연기를 보며 깔깔대다가도 어느 순간 엄숙해지곤 해요.
사람 관계, 인간 관계라는 것이 다 그렇게 엄숙한 자세로서 대해야 하는 걸 조금은 알아가는 거 같아요. (이 문장은 못 읽은 걸로 해줘요.)
계약직으로서 정유미와 김혜수가 받은 하대를 볼 때면 덩달아 마음이 아파서 엉엉 울고 싶었어요.
다락방님, 아무것도 모르는 저이지만, 어떻게든 위로가 된다면, 한 마디를 하고 싶어요.
파이팅, 힘내세요!

2013-04-30 18: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3-05-02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다락방님 목소리를 완전 접수한 터라 이번엔 떨지 않고 잘 들었어요~귀에 쏙쏙~희~
건지도 듣고 싶고 당연히 새벽도 파도도 듣고 싶고 줌파 라히리도 듣고 싶고요^^
그리고 전 다락방님이 울 때 손수건을 건네주는 손이 되고 싶었어요
다음에 또 눈물이 솟구쳐 오를 때면 제 손을 기억해 주세요..
물론 그럴 일이 없다면 더 좋겠지만 말예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