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형이는 여러모로 나랑 비슷한 데가 많구나.
"지금 생각하고 있는 논문 제목은 이래요. '구조주의적 상상력-소쉬르에서 라캉까지'. 제목은 그럴듯하죠?"
"정말 그러네요. 그런데 소쉬르는 언어학자고 라캉은 정신분석학자 아녜요? 그게 인류학이랑 어떻게 관련이 있죠?"
"실제로 쓰게 된다면 레비스트로스를 중심으로 쓰게 될 거예요. 구조주의라는 게 원래 언어학에서 나왔잖아요. 레비스트로스가 구조라는 개념을 배운 것도 언어학자 로만 야콥슨한테서구. 그러니까 구조주의가 언어학에서 다른 분야로 퍼져나가는 과정을 살피면서, 인류학쪽에 비중을 두는 거죠. 만약에 그렇게 되면 일종의 지성사나 지식사회학 논문이 되는 건데, 지도교수가 그걸 흔쾌히 받아줄지 모르겠어요." (pp.135-36)
이 부분을 읽다가 눈이 팽팽 돌아갔다. 지금....뭐라는거야? 진짜 눈알 돌아간다는 거 말고는 다른 표현을 찾을 수가 없다. 내 무식을 자랑할 생각은 없지만, 내가 만나는 사람이 내 앞에서 저렇게 얘기했다면 나는 그저 앞에 있는 치킨이나 뜯었을 것 같다. 아니면 노가리를 뜯어 먹거나 아니면 멸치똥을 빼면서 집에 빨리 가고 싶다고 생각했겠지. 대체 뭔 말인지 알아먹을 수가 있나. 그런데 소쉬르에서 라캉을 말하는 남자와 함께 저녁을 먹는 여자는 소쉬르가 언어학자인 걸 알고 라캉은 정신분석학자인걸 안다. 그래서, 오, 그런 말이 있는가보다. 끼리끼리 어울려야 한다고. 만약 남자는 씐나서 소쉬르 라캉 운운하는데 나는 그런 남자의 말을 귓등으로도 안듣고 멸치 똥이나 빼면서 말하라고 하면 그들이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아마 없겠지. 남자는 남자대로 이 여자는 무식하군, 할테고 나는 나대로 멸치 똥도 못 빼는게...라고 혀를 차겠지. 암튼 이 책은 아주 빠르게 책장이 넘어가는 책이지만, 소쉬르와 라캉을 말하는 이대리 때문에 내가 잠깐 멈칫, 했다.
팜므파탈, 스릴러..라는 단어들 때문에 이 영화의 개봉을 기다렸고 그래서 개봉하자마자 후다닥 달려가서 봤는데, 하아 - 팜므파탈, 이라는 단어를 써서는 안되는 영화였다. 팜므파탈하고 별 상관 없는데? 게다가 중간까지는 지루하기도 하다. 그래서 뭐라는건지 좀 얘기해보라고, 하고 싶은 심정. 그리고 영화의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내가 제대로 이해한 게 맞나, 하는 뭔가 불확실한 느낌 때문에 이 영화는 좀 애매모호한 영화가 되고 말았다. 아, 되게 보고 싶었는데..내게는 설명이 충분치 않았던 영화였다. 여하튼 이 여자주인공을 어디서 봤더라, 하고 영화후에 검색해보니 내가 봤던 영화 [스위밍 풀]에 나왔던 여자였다. 게다가 이 영하 [아이, 애나]의 감독은 이 여자의 아들이란다!! 오!!!!!!! 이 사실이 더 재미있다, 영화보다.
영화속에서 여자는 손녀까지 봤을 정도로 나이가 있는 여자인데 남자를 처음 만나 전화번호를 가르쳐주고 그로부터 전화가 오기를 기다리는 장면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목욕탕에 들어가 목욕을 하는데도 전화기를 가지고 들어가 기다린다. 그 장면에서는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사랑이란 게, 연애라는 게, 그러니까 설레임이라는 게 국적과 성별과 나이를 가리지 않고 찾아간다는 게 무척 고마웠다. 다행이었다. 좋다. 희희.
토요일에는 이대에서 심규선 콘서트가 있었다. 정말이지 설레이는 마음을 안고 콘서트에 갔는데, 제 시간에 시작을 안하고 지연되서 짜증이 났었다. 20분이 지나고 심규선이 나왔는데 심규선은 노래의 첫 소절도 채 부르지 못한 채로 쓰러지고 말았다. 나는 사람이 맥없이 쓰러지는 모습을 내 눈앞에서 보게 되어 무척 놀랐다. 저래서 늦게 시작한거구나, 새삼 애틋해졌다. 관객도 기대했지만 가수도 역시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었을텐데. 잠시후 음반사 실장이 나와서 죄송하다고 말하며 사실은 심규선이 수액을 맞고 왔다고 했다. 그래서 공연을 말렸지만 오신 분들을 실망시킬 수 없다며 무대에 오른거라고. 그리고 오늘 공연에 대해 취소가 된 만큰 환불을 해주겠다고 했다. 저렇게 쓰러질 정도로 아픈 사람이었는데 나는 그것도 모르고 짜증을 냈다니, 씁쓸하고 미안해졌다. 조금만 더 참아볼걸, 사정이 있으니 지연된 걸텐데...그런데 나가면서 화를 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진작진작 취소했어야지 사람을 여기까지 와서 이렇게 황당하게 만드냐고...어쨌든 오늘 트윗을 보니 오늘 있을 콘서트는 예정대로 진행할거라 했다. 심규선이 많이 회복됐다고. 심규선이 공연할만큼 회복했다니 다행이지만, 그 공연을 정말 많이 기대했던 나로서는 이번에 보지 못해 무척 아쉽고 안타깝다. 규선씨, 앞으로는 너무 무리하지 말아요. 언젠가 제 친구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과잉이 결핍을 불러온다고요. 무리하지 말아요.
콘서트장을 나와서는 친구와 함께 우린 이제 어쩌지, 하다가 그동안 우리 중고샵에 오래 못들렸으니 신촌 중고샵에 가볼까, 해서 신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마침 친구가 나에게 빌렸던 책 세 권을 가져온터라 가방이 더럽게 무거웠다. 그래, 중고샵에 가서 이거 다 팔자, 싶어 중고샵에 가 책을 팔고 구경하다가 책 세권을 다시 사가지고 왔다. ㅠㅠㅠ 다시 무거워졌어 ㅠㅠㅠㅠㅠㅠㅠㅠ 암튼 신촌 알라딘 중고샵 직원들 캡 친절한데, 어제 내게 응대해준 여직원은 미모도 대박이다. 완전 반할만한 미모. 이쁘고 친절한 직원이라니. 흑흑.
그리고는 너무 덥고 목이 마르니 맥주나 한 잔 하자, 하고 친구와 치킨집엘 들렀다. 친구와 나는 둘다 배부르니 안주는 간단하게 먹고 가자, 하며 황도를 시켰다. 그런데 황도를 다 먹고 나자 나는 치킨이 먹고 싶어지는거다. 치킨이 먹고 싶은데 배불러서 시키면 곤란하겠죠? 라고 물으니 친구는 시켜요! 한다. 그래서 치킨을 또 시켰다. 제기랄. 이럴거면 황도 시키지 말고 처음부터 치킨을 시킬걸, 안먹을것처럼 황도를 시켜가지고 결국 황도도 먹고 치킨도 먹었네. -- 암튼 어제는 모든것들이 예정에 어긋난 하루였다.
그나저나 일요일이 또 가고있네. 아쉬운 마음에 치킨을 시켜먹을까..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