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삼성동 포니정홀 에서 열린 [카르멘 갈라콘서트]에 다녀왔다. 나는 지구상에 포니정홀 이란게 존재하는지도 몰랐고 당연히 카르멘 갈라콘서트라는 게 있는지도 몰랐었다. 게다가 갈라콘서트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도 몰랐던 터라, 그냥 예술의전당 같은 곳에서 열리는 오페라 라고 생각한거다. 비제의 카르멘은 직접 오페라로 본 적이 있었는데, 선물받은 비싼 티켓이었음에도 나는 제대로 감상할 줄 몰랐고 책을 읽었으면서도 내용이 어찌됐더라, 하고 갸웃하기만 했다. 뮤지컬과 연극 오페라와 무용공연 등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별로 안하게 되는게, 내가 봐도 돌아서면 완전히 까먹기 때문이다. 텍스트가 전혀 기억나지 않는거다. 물론 그 당시에 노래나 춤을 보고 감흥을 받기는 하지만 정말 그 때뿐, 돌아서서 내가 뭔가 생각하게 되거나 하질 않아서 내게는 그다지 흥미를 주는 장르들이 아니다. 여튼 이번에도 동료가 표를 선물 받았다고 가자고 해서 그래 그럼 가볼까, 했는데 공연이 시작하면서 동시에 해설자가 나오는거다.
으잉? 해설자라니? 나는 내 생각과 다르게 해설자가 나오자 좀 짜증이 났다. 왜 나오지? 그냥 공연 보면 안되나? 게다가 극장은 내가 생각한 그런 극장이 아니었다. 개개인의 의자를 놓고 작은 스크린 앞에 앉는거라 그 무대에서는 도무지 오페라를 상영할 수 없을 것 같은거다. 의자는 마치 걸상의자 같지 않았는가! 여튼, 이래가지고 어떻게 오페라를 상영한단 말인가, 했는데, 역시나 이건 내가 생각했던 보통의 오페라 공연은 아니었다.
1막부터 4막에 이르기까지 해설자가 내용을 해설해주고 각 막의 중요한 노래를 들려주는 형식이었다.
갈라콘서트, 주연급이 등장해 작품의 주요 장면을 부분적으로 공연하는 무대 (출처: 네이버 어학사전)
1막에서는 카르멘의 하바네라가, 2막에서는 에스카미요의 투우사의 노래와 호세의 꽃노래가 나왔다. 3막에서는 미카엘라의 노래가 4막에서는 카르멘과 에스카미요, 호세의 노래가 들려졌는데, 오, 좋은거다! 눈 앞에서 그 노래들을 듣는것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나는 오페라에 문외한인데 해설을 해주니 감상에 더 도움이 되는거다. 몇 년전에 보았던 십만원짜리 공연보다 내게는 더 기억에 남을 것 같았고, 마치 문화교양강좌를 듣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콘서트는 한 시간 동안 진행되어 지루하지도 않았고 지겹지도 않았다. 노래가 좋기도 해서, 나는 집에 돌아가는 길, 트위터로 음악을 잘 아는 분께 카르멘 오페라 앨범을 추천해달라고도 했다. 언젠가 사서 방 안에 틀어놓고 감상해보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왼쪽이 추천받은 시디이고 오른쪽이 추천받은 DVD. 오, DVD 는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그럼 이게 나으려나, 하고 있는데 그 분은 맙소사, 영상까지 보내주셨다. ㅎㅎㅎㅎㅎ
인터넷은 좋은거구나. 이렇듯 내가 모르는 분야에 대해 빠삭하게 알고 있는 분의 도움도 받을 수 있으니. 저 무대를 실제로 본다면 되게 좋을것 같다는 생각이 영상을 보면서 들었다.
콘서트가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 우리 포니정홀에 회원가입해서 정기적으로 이런거 봐줄까, 하고 얘기했다. 동료도 무척 좋았다고 했다. 자신에게도 해설은 공연 감상하는데 오히려 도움이 되었다며. 이런식의 교양강좌 같은 느낌이라면 들어볼만하다고 둘이 신나서 얘기했다. 좋은 경험이었다.
어제 퇴근하는 길에 문자메세지가 왔다. 누군가 내게 이 책을 알라딘의 기프티북으로 보내준 것이다. 안그래도 한창훈의 신간이 나온다고 씐났었는데(!) 생각지도 않게 기프티북으로 날아들다니, 무엇보다 한창훈의 신간이라며 같이 읽어보자고 보내주는 사람이 있다니, 아, 나는 정말 참 괜찮은 인간이야, 이런 사람들을 옆에 두고, 막 이러면서 답장을 보냈다. 좋다, 고맙다는 답장이었다. 그런데 공연이 끝나고 집에 갈 때쯤 다시 문자메세지가 온다. 아까 왔던 것과 똑같은 문자가. 아, 내가 선물 등록을 안해서 못 받은 줄 알고 보냈는가 보다, 싶어서 아까 답장 보냈었는데 도착을 안했나보다, 라는 문자를 띄우려다가 아! 하고 깨달았다. 내가 아까 답장을 보낸다고 한 게 글쎄, 알라딘에 보낸거다.
1544-2514
저기에 내 답장이 간 거다. 이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저 번호는 알라딘에서 중고 알림해주고, 상품 출고 알려주고, 기프티북 도착했다는 거 알려주는 번호가 아닌가. 저 번호가 내 답장을 받아줄 리 없잖..............아? 알라딘, 내 문자메세지 받았어요? 받았다면 우리 문자친구 할까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어제 집에 돌아가 팔찌와 귀걸이와 반지를 뺐다. 빼서 나란히 놓고 보니, 의도하지 않았는데 오, 이것들이 마치 세트같지 않은가! 보다가 흐뭇해져서 찍은 사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