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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너도나도 지브리 풍 일러스트 만들기 열풍이다.



라고 시작되는 기사도 이미 너무 많이 읽었다. 끙.ㅡ.ㅡ


본래 신문물에 대한 관심보다 의심이 앞서는 타입이라 '챗GPT? 흥 그게 뭔데!' 하며 무시했지만,

너도나도 지브리 프사를 올려대는 통해 나도 그만...... 

접속해보았다.


램프의 요정 지니처럼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는 흑백의 글씨와 대화창 하나가 덜렁 등장한다.


이건 약간, 문화적 차이인가?

로고 하나도 어떻게든 아기자기 하게 꾸며야 직성이 풀리고, '무슨무슨 날'을 기념해서 계속 새롭게 바뀌는 네이버 홈페이지와 비교해보면 너무 간단한 것 아닌가 싶다. 



하긴..


검색할 것이 있어 네이버에 접속했다가 딴 길로 빠지는 바람에 허비된 시간과

알고 싶지 않은 일이 자꾸만 메인 화면에 기사로 뜨는 바람에 시달렸던 것을 생각하면,

내가 알고 싶고, 찾아야 할 내용을 직접 입력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는 저런 디자인이

오히려 사용자 중심의 디자인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생각해보니 구글도 그런 디자인이구만.

흠. 그래. 이쪽이 훨씬 편안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


아무튼,

내가 '챗GPT'에게 


'지브리풍과 슬램덩크풍으로 그려줘'라는 명령어를 넣고 그림을 부탁한 결과

지브리에서도 슬램덩크에서도 나는 주인공은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지브리에서는 

주인공 여자아이가 고민이 생겼을 때, 

옆에서 깨방정 떨며 조언해주는 이모나 옆집 아줌마 같고




슬램덩크에서는

뭔가... 흠... 적절한 비유가 잘 생각나지 않지만

뭔가. 브로커나 탐정...스파이... 뭐 그런거. 역시 주연은 아닌. 실마리를 주고 일찍 죽는..




같은 사진을 넣었는데,

화풍에 따라 이렇게 다르다구요? >.<


암튼.


한번은 해보니 재미있었는데,

이렇게 올려진 내 원본 사진은 과연 어디로 가는 것일까를 생각하니

갑자기 우울해질려고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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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물이다 - 어느 뜻깊은 행사에서 전한 깨어 있는 삶을 사는 방법에 대한 생각들, 개정판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지음, 김재희 옮김 / 나무생각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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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법을 배운다‘는 말이 진정으로 뜻하는 바는 어떻게 생각하는가와 무엇을 생각하는가에 대해 선택하는 방법을 배운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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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나는 아직 '폭싹 속았수다'를 한 편도 보지 않았다.


처음에는 드라마가 다 끝난 후에 몰아서 보는 습관때문에 이 드라마가 끝나기를 기다렸고,

그 다음에는 우리 회사 사장님이 하도 '보라고, 보라고' 권하셔서 보기가 싫었다.


그런데, 아마도 이 드라마가 이슈이긴 한가보다.


오늘 <한겨레21> 사이트에 들어갔다가 이런 제목의 글을 보았다.

클릭도 하기 전에 겁부터 났다. '이거 제목 괜찮은거야?'


요새는 어디에 가서 '페미니스트'인 것을 말하기가 무섭다.


점심시간에 있었던 일이다.


"아 근데, 그 교수, 이름이 김조OO 아니었어?"

누군가 물었다.

"아 맞을걸요?"라고 내가 대답함과 동시에 27살이 된 남자 직원이 "당연 꼴페미겠네?"라고 말했다. 순간 내 귀를 의심했지만 모두 다 웃고 지나가고 있어 나는 혼자만 몰카를 당하는 기분이었다.


상대와 논리적으로 의견을 나눌 수 없을 때, 비난과 경멸만을 주고 받아야 할 때, 

정말 말하고 싶지 않아진다.


직전에 그 경험 있었기 때문에, 저와 같은 제목으로 쓰여진 글에 달린 댓글이 벌써 부터 두려웠다.


드라마를 보지 않았지만,

글쓴이가 말하고 있는  "엄마의 사랑을 무시해서가 아니다. 무거워서 그랬다. 그 사랑은 나를 살게 했지만, 살면서 두고두고 갚아야 하는 부채이기도 했다. 내 인생이 부모의 희생 값이라 생각하면 나는 온전히 ‘나’로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부모 사랑의 깊이와 자식 마음에 얹힌 부채감은 비례하는 법이다. 결국 자식의 인생 일부는 그 부채를 갚기 위한 담보가 될 수밖에 없다." 는 이 말에 깊게 공감했다. 때문에 나역시 부모로서의 삶을 살아가면서 매일 주문처럼 외는 것은 아이들이 가뿐한 마음으로 가볍게 제 둥지를 떠나는 날까지 서로 웃으면서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하는 것이다.


그런데 댓글은 이렇다.


"어이구 원하는 페미 사상이 안들어가서 실망하셨어요? 아니면 원하는 여성우월주의가 안들어가서 화가 나셨어요? "


이글 쓴 사람 부모는 그러질 못 한것 같네요.부모가 앵벌이 시키던가요?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사람이란건 확실히 잘 알겠네요


엄마 없어 이런 글 쓰나보다.. 다들 이해 좀 해쥬라...


이로써 페미니즘은 부모님의 존재자체를 부정하는 반인륜적 범죄자들의 사상임을 다시 입증하네요ㅋㅋㅋ 가족주의가 그렇게 엿같으신가봐


더 심한 것들 천지이지만 몇 개 옮겨 본 것이 저 정도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아직 이 드라마를 보지 못했다.

때문에 글쓴이가 쓴 내용 중 유난히 공격의 대상이 되고 있는 저 텍스트만을 가지고 이야기 하자면, 한 사람이 누군가를 위해 일방적으로 희생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면 나는 그것이 비록 부모 자식의 관계라 할지라도 올바르지 못한 관계라고 생각하며,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에게는 사랑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부채일수도, 더 나아가서 폭력일 수 있음을 정말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인가.


한마디 더 덧붙여, 왜 그것이 항상 엄마여야 하며, 여자여야만 하는지 정말로 이 불합리함을 깨닫지 못하는 것일까. 페미니즘이 여성우월주의와 같은 말이 아니며,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말하는 사람들이 사랑받지 못한 사람, 가정에 문제가 있는 사람, 남자로 인해 상처를 받은 사람들의 공동체가 아님을 언제까지 말해야 하는가.


마지막으로 말하지만 나는 아직 '폭싹 속았수다'라는 드라마를 보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지점으로 읽을 수도 있는 드라마라면, 끝까지 볼 자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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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신형철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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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꺼내 읽으면서, 10년 동안 세상은 하나도 변하지 않은 것 같아 착잡하다. 물론 나쁜 의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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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짐승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9
모니카 마론 지음, 김미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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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을 사랑한 이후로 남은 인생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은 어떤것일까. 그건 그 사람으로 인한 결과일까 아니면 나의 안에서부터 발아된 것일까. 얼핏 보면 사랑이야기 같지만 한 사람의 삶을 관통하는 시대적 흐름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묻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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