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사람'이라는 말은 확실히 과장된 격언이다. 글쓰기는 그 주체를 미화하기 마련이다. 이것은 심지어 자학적 글에서도 마찬가지다. 자학적 글의 저자는 그 자학으로서 자신을 미화한다. 자기혐오를 제 윤리석의 증거로 내세우는 것이다. 글을 보고 반한 사람은 많지만, 만나본 뒤에도 여전히 매혹적인 사람은 좀처럼 없었다. 거의 예외 없이 실망하게 된다. 그러다보니, 이제 고작 서른을 조금 넘겼을 뿐이지만, 사람이라는 종(種)에 대한 신뢰가 점점 옅어진다.-12쪽
가끔 어울려 술을 마시는 친구들은 있다. 그들 가운덴 허물없이 지내는 친구도 있다. 그러나 이들은 학연과 무관하다. 학교 다니던 시절 지방을 여행하다가 우연히 사귀게 된 친구들, 군대에서 가까워지게 된 친구들, 사회생활을 하면서 알게 된 친구들이다. 말하자면 이 친구들은 학교 동창들과 달리 내가 고른 친구들이다. 미리 구축된 동아리 안에서 서로 호감을 강요받은 친구들이 아니다. 그러니 어느 정도는 마음이 맞는 친구들일 수밖에 없다. 나이도 들쭉날쭉하다. 그 가운덴 가족보다 더 친밀감을 느끼는 친구도 있다. 더는 아닐지 몰라도 거의 가족만큼 친밀감이 느껴지는 친구들.-14쪽
눈을 쳐들어보니 창밖으로 눈이 내린다. 올겨울 들어 눈이 몇 차례 오긴 했지만, 눈다운 눈은 처음인 것 같다. 내가 겉늙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어려서처럼 눈에서 어떤 낭만 비슷한 감정을 느끼지는 못한다. 그저 길이 미끄러워질까봐 걱정일 따름이다. 집에서 출판사까지 가자면 비탈길을 두 번 지나야 해서 더욱 그렇다. 길이라기보다는 골목이라고 하는 것이 더 옳을 좁은 비탈들인데, 눈이 내리면 항상 얼음길이 되고 만다. 그 동네 사람들이 게으르거나 무심한 탓인지, 눈이 와도 도무지 치울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눈 온 뒤 얼음길이 된 그 비탈들을 오르내리려면, 혹시라도 넘어질까 두려워 장갑을 끼고 발에 힘을 잔뜩 준 채 엉금거려야 한다. 이따가 출판사로 들어갈 때 그 비탈들이 얼음길이 돼 있을까봐 벌써부터 염려스럽다.-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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