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간다는 것
위화 지음, 백원담 옮김 / 푸른숲 / 2000년 10월
평점 :
품절


왜 어떤 사람들의 인생은 특히 더 가혹할까. 왜 어떤 시대는 누군가에게 특히 더 잔인한걸까. 특별히 더 잔인하고 유별난 게 인생인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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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나무 2013-06-10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어떤 사람들은 특히 더 가혹한 인생을 견뎌내고 마는 것일까요.

다락방 2013-06-11 17:28   좋아요 0 | URL
견디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겠죠. 별 수 있나요. 견뎌야지요.

관찰자 2013-06-10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화가 쓴 <형제>의 작가노트에 보면
작가가 다른 작가의 영향을 받는 것에 대해
(제 기억이 확실치 않아 정확하게 인용할 순 없지만)

'나무가 햇빛의 영향을 받아 햇빛의 형태로 자라는 것이 아니라 나무의 형태로 자라는 것처럼
모름지기 작가 사이의 영향력도 이와 같아야 하는 것이다'라고 하는 부분이 너무 좋아서 밑줄을 쳤던 기억이 있어요.

아마도
지금의 다락방님도
이 서재에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그런 존재인 듯요.

다락방 2013-06-11 17:37   좋아요 0 | URL
관찰자님은 책 내용을 되게 기억 잘하시는 것 같아요. 간혹 어떤책에서 어떤 부분이 있었는데, 하면서 말씀 잘하시잖아요. 책을 집중해서 되게 잘 읽으시는가봐요. 저도 그랬으면 좋겠는데 전 자꾸 까먹어서. 저 책을 읽은 것 같은데 뭔 내용이었지...하고. orz

그나저나 관찰자님, 책의 좋은 내용으로 저한테 과찬하셨네요. 희희.
 
한민형이는 여러모로 나랑 비슷한 데가 많구나.

 

 

 

 

 

 

 

 

 

 

 

 

 

"지금 생각하고 있는 논문 제목은 이래요. '구조주의적 상상력-소쉬르에서 라캉까지'. 제목은 그럴듯하죠?"

"정말 그러네요. 그런데 소쉬르는 언어학자고 라캉은 정신분석학자 아녜요? 그게 인류학이랑 어떻게 관련이 있죠?"

"실제로 쓰게 된다면 레비스트로스를 중심으로 쓰게 될 거예요. 구조주의라는 게 원래 언어학에서 나왔잖아요. 레비스트로스가 구조라는 개념을 배운 것도 언어학자 로만 야콥슨한테서구. 그러니까 구조주의가 언어학에서 다른 분야로 퍼져나가는 과정을 살피면서, 인류학쪽에 비중을 두는 거죠. 만약에 그렇게 되면 일종의 지성사나 지식사회학 논문이 되는 건데, 지도교수가 그걸 흔쾌히 받아줄지 모르겠어요." (pp.135-36)

 

 

이 부분을 읽다가 눈이 팽팽 돌아갔다. 지금....뭐라는거야? 진짜 눈알 돌아간다는 거 말고는 다른 표현을 찾을 수가 없다. 내 무식을 자랑할 생각은 없지만, 내가 만나는 사람이 내 앞에서 저렇게 얘기했다면 나는 그저 앞에 있는 치킨이나 뜯었을 것 같다. 아니면 노가리를 뜯어 먹거나 아니면 멸치똥을 빼면서 집에 빨리 가고 싶다고 생각했겠지. 대체 뭔 말인지 알아먹을 수가 있나. 그런데 소쉬르에서 라캉을 말하는 남자와 함께 저녁을 먹는 여자는 소쉬르가 언어학자인 걸 알고 라캉은 정신분석학자인걸 안다. 그래서, 오, 그런 말이 있는가보다. 끼리끼리 어울려야 한다고. 만약 남자는 씐나서 소쉬르 라캉 운운하는데 나는 그런 남자의 말을 귓등으로도 안듣고 멸치 똥이나 빼면서 말하라고 하면 그들이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아마 없겠지. 남자는 남자대로 이 여자는 무식하군, 할테고 나는 나대로 멸치 똥도 못 빼는게...라고 혀를 차겠지. 암튼 이 책은 아주 빠르게 책장이 넘어가는 책이지만, 소쉬르와 라캉을 말하는 이대리 때문에 내가 잠깐 멈칫, 했다.

 

 

 

 

팜므파탈, 스릴러..라는 단어들 때문에 이 영화의 개봉을 기다렸고 그래서 개봉하자마자 후다닥 달려가서 봤는데, 하아 - 팜므파탈, 이라는 단어를 써서는 안되는 영화였다. 팜므파탈하고 별 상관 없는데? 게다가 중간까지는 지루하기도 하다. 그래서 뭐라는건지 좀 얘기해보라고, 하고 싶은 심정. 그리고 영화의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내가 제대로 이해한 게 맞나, 하는 뭔가 불확실한 느낌 때문에 이 영화는 좀 애매모호한 영화가 되고 말았다. 아, 되게 보고 싶었는데..내게는 설명이 충분치 않았던 영화였다. 여하튼 이 여자주인공을 어디서 봤더라, 하고 영화후에 검색해보니 내가 봤던 영화 [스위밍 풀]에 나왔던 여자였다. 게다가 이 영하 [아이, 애나]의 감독은 이 여자의 아들이란다!! 오!!!!!!! 이 사실이 더 재미있다, 영화보다.

 

영화속에서 여자는 손녀까지 봤을 정도로 나이가 있는 여자인데 남자를 처음 만나 전화번호를 가르쳐주고 그로부터 전화가 오기를 기다리는 장면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목욕탕에 들어가 목욕을 하는데도 전화기를 가지고 들어가 기다린다. 그 장면에서는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사랑이란 게, 연애라는 게, 그러니까 설레임이라는 게 국적과 성별과 나이를 가리지 않고 찾아간다는 게 무척 고마웠다. 다행이었다. 좋다. 희희.

 

 

 

토요일에는 이대에서 심규선 콘서트가 있었다. 정말이지 설레이는 마음을 안고 콘서트에 갔는데, 제 시간에 시작을 안하고 지연되서 짜증이 났었다. 20분이 지나고 심규선이 나왔는데 심규선은 노래의 첫 소절도 채 부르지 못한 채로 쓰러지고 말았다. 나는 사람이 맥없이 쓰러지는 모습을 내 눈앞에서 보게 되어 무척 놀랐다. 저래서 늦게 시작한거구나, 새삼 애틋해졌다. 관객도 기대했지만 가수도 역시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었을텐데. 잠시후 음반사 실장이 나와서 죄송하다고 말하며 사실은 심규선이 수액을 맞고 왔다고 했다. 그래서 공연을 말렸지만 오신 분들을 실망시킬 수 없다며 무대에 오른거라고. 그리고 오늘 공연에 대해 취소가 된 만큰 환불을 해주겠다고 했다. 저렇게 쓰러질 정도로 아픈 사람이었는데 나는 그것도 모르고 짜증을 냈다니, 씁쓸하고 미안해졌다. 조금만 더 참아볼걸, 사정이 있으니 지연된 걸텐데...그런데 나가면서 화를 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진작진작 취소했어야지 사람을 여기까지 와서 이렇게 황당하게 만드냐고...어쨌든 오늘 트윗을 보니 오늘 있을 콘서트는 예정대로 진행할거라 했다. 심규선이 많이 회복됐다고.  심규선이 공연할만큼 회복했다니 다행이지만, 그 공연을 정말 많이 기대했던 나로서는 이번에 보지 못해 무척 아쉽고 안타깝다. 규선씨, 앞으로는 너무 무리하지 말아요. 언젠가 제 친구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과잉이 결핍을 불러온다고요. 무리하지 말아요.

 

 

 

콘서트장을 나와서는 친구와 함께 우린 이제 어쩌지, 하다가 그동안 우리 중고샵에 오래 못들렸으니 신촌 중고샵에 가볼까, 해서 신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마침 친구가 나에게 빌렸던 책 세 권을 가져온터라 가방이 더럽게 무거웠다. 그래, 중고샵에 가서 이거 다 팔자, 싶어 중고샵에 가 책을 팔고 구경하다가 책 세권을 다시 사가지고 왔다. ㅠㅠㅠ 다시 무거워졌어 ㅠㅠㅠㅠㅠㅠㅠㅠ 암튼 신촌 알라딘 중고샵 직원들 캡 친절한데, 어제 내게 응대해준 여직원은 미모도 대박이다. 완전 반할만한 미모. 이쁘고 친절한 직원이라니. 흑흑.

 

그리고는 너무 덥고 목이 마르니 맥주나 한 잔 하자, 하고 친구와 치킨집엘 들렀다. 친구와 나는 둘다 배부르니 안주는 간단하게 먹고 가자, 하며 황도를 시켰다. 그런데 황도를 다 먹고 나자 나는 치킨이 먹고 싶어지는거다. 치킨이 먹고 싶은데 배불러서 시키면 곤란하겠죠? 라고 물으니 친구는 시켜요! 한다. 그래서 치킨을 또 시켰다. 제기랄. 이럴거면 황도 시키지 말고 처음부터 치킨을 시킬걸, 안먹을것처럼 황도를 시켜가지고 결국 황도도 먹고 치킨도 먹었네. -- 암튼 어제는 모든것들이 예정에 어긋난 하루였다.

 

 

 

그나저나 일요일이 또 가고있네. 아쉬운 마음에 치킨을 시켜먹을까..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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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eamout 2013-06-09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민형. 으음. 해피 패밀리 읽을 때 눈여겨 봐야겠네요. ^^

다락방 2013-06-11 17:44   좋아요 0 | URL
지하철안에서 책 읽는걸 좋아하고 겨울에 눈 오면 차 막히고 길 미끄럽다고 싫어해요. 술을 좋아하고 학창시절 친구보다는 사회에 나와 자신이 선택한 친구들을 더 좋아하죠. 저랑 공통점이 많은 친구에요. ㅎㅎ 저보다 어리긴 하지만 말이죠. 하핫

단발머리 2013-06-09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ㅎㅎ 다락방님~~
저도 아까 치킨을 시켰더랬죠. 손님이 오셨거든요.. 멀리 아프리카에서 ㅋㅎㅎ 까맣지 않아요. 한국사람들이거든요.
아무튼 치킨이랑 피자 시켰는데, 아무래도 안주인이다보니 맘껏 먹지 못하겠더라구요. 다들 너무 맛있게 먹어서 혹 모자랄까봐요. ㅋㅎㅎㅎㅎㅎ

"해피패밀리" 는 눈팅만 해놓았어요. 작가이름에서 벌써 기대감이~~~솔솔~~
아~~ 치킨 먹고프다~~~~~

다락방 2013-06-11 17:45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님은 세계 각국에 친구를 두고 계시는군요. 아프리카 친구는 언젠가도 한 번 왔다고 했던, 그 친구 아닌가요? 치킨이랑 피자랑 맥주랑 먹으면 정말 너무 좋죠! 그런데 오늘은 날시가 꾸물꾸물해서인지 김치찌개에 소주가 생각나네요. 하아- 낮술 마시고 기절하고 싶어요. 흑흑

L.SHIN 2013-06-10 0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리하지 말아요'

라는 제목에, 마치 물고기가 덥썩 낚시줄을 물듯 들어와 버렸습니다.(웃음)
'나는 혹시 그 동안 무리하고 있었던 걸까..?'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자신과의 대화조차 단절하고 산다는 것은 결코 현명하지 못하다는 생각을 깨닫고 있는 요즘입니다.(웃음)

오랜만입니다, 여전히 아름다운 다락님-

다락방 2013-06-11 17:46   좋아요 0 | URL
엘신님은 그동안 무리해서 알라딘에 들어오질 않았죠. ㅎㅎ
엘신님, 그동안 자신과도 대화하지 않고 살았던거에요? 엘신님은 개미와도 강아지와도 청솔모와도 대화하실 수 있는 분이시잖아요. 그런데 왜 자신과는 대화를 단절하셨어요!

Mephistopheles 2013-06-10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리하지 말아요.

콘서트 장에서 쓰러진 심규선씨나...

예정과는 다르게 책이 잔뜩 들어간 가방을 짊어진 다락방님의 어깨나.

역시나 예정과는 다르게 치킨이 들어간 다락방님 위장이나...

모두모두 무리하지 마세요...ㅋㅋㅋ

다락방 2013-06-11 17:47   좋아요 0 | URL
오늘은 어떤 음식으로 무리를 할까 설레이고 있어요. 희희희희희.
그나저나 다이어트는 그렇다면 내일부터 해야할까요? ㅠㅠ
이놈의 다이어트는 몇년전부터 계속 하고 있는데 언제나 '내일부터' 가 되어버리고 마네요. ㅠㅠ

Mephistopheles 2013-06-11 18:02   좋아요 0 | URL
다.이.어.트....야 말로 무리..(수) 잖아요...

자작나무 2013-06-10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장님. 정말 무리하면 안됩니다. 심규선 씨처럼 쓰러지면 어떡해요.
치킨도 너무 무리해서 드시지 마세요. 무리하는 건 저랑 족발 먹으로 갈때로만 한정.

다락방 2013-06-11 17:47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 안그래도 요즘 족발 먹고 싶어서 조만간 내가 그 족발집에 다시 가리라, 벼르고 있어요. 하고 싶은게 많아요. 일단 지금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대낮에 김치찌게 안주삼아 소주 마시고 기절하기! 흐흐

감은빛 2013-06-12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글을 읽으면 늘 궁금한 게 생겨요.
아마 제가 무식해서 그렇겠죠?

오늘은 '심규선'을 검색했습니다.
마침 콘서트 중 쓰러진 소식이 나오네요.

그런데 저 아마 오래전 학교 다닐때 첫 소개팅 때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처음 만난 여성에게 당시 내가 푹 빠져있었던 사회학 이론에 대해 장황하게 얘기했던 기억이 나네요.
오랜만에 익숙한 이름들을 만났네요. 레비 스트로스, 자크 라깡.

다락방 2013-06-12 14:40   좋아요 0 | URL
사람이 다른 사람을 대함에 있어서 늘 상대적인 것 같아요. 심규선 노래의 [덤덤하게] 에도 그런 가사가 있거든요.


그대 맘에 드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그대가 말한 온갖 작품을
가슴 속에 새기고 듣고 보고 외워도
우리의 거린 좀처럼 좁혀지질 않네요


제가 별 관심이 없는 상대라면 라캉을 말할 때 아, 멸치 똥이나 빼라, 하겠지만 제가 관심을 가진 상대라면 아마도 저는 다음번에 서점에 가서 라캉에 대한 책을 사서 읽으려고 하지 않을까요? 물론 그동안 공부해오고 또 좋아했던 사람을 감히 따라잡을 수는 없더라도 최소한 누구를 말하는 지는 알 수 있게 말이지요.


저도 오래전에 소개팅할 때 상대에게 책이며 영화 공연 얘기를 하는데 상대가 그때마다 다 모른다고 해서 나중엔 짜증나서 집에 가고 싶었던 적이 있었어요. 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기도 했지만, 설사 마음에 들었다해도 언제 이 모든걸 다 알게하나 싶은 마음에 돌아서게 되더라고요. 하하하하하.
 
해피 패밀리
고종석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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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사람'이라는 말은 확실히 과장된 격언이다. 글쓰기는 그 주체를 미화하기 마련이다. 이것은 심지어 자학적 글에서도 마찬가지다. 자학적 글의 저자는 그 자학으로서 자신을 미화한다. 자기혐오를 제 윤리석의 증거로 내세우는 것이다. 글을 보고 반한 사람은 많지만, 만나본 뒤에도 여전히 매혹적인 사람은 좀처럼 없었다. 거의 예외 없이 실망하게 된다. 그러다보니, 이제 고작 서른을 조금 넘겼을 뿐이지만, 사람이라는 종(種)에 대한 신뢰가 점점 옅어진다.-12쪽

가끔 어울려 술을 마시는 친구들은 있다. 그들 가운덴 허물없이 지내는 친구도 있다. 그러나 이들은 학연과 무관하다. 학교 다니던 시절 지방을 여행하다가 우연히 사귀게 된 친구들, 군대에서 가까워지게 된 친구들, 사회생활을 하면서 알게 된 친구들이다. 말하자면 이 친구들은 학교 동창들과 달리 내가 고른 친구들이다. 미리 구축된 동아리 안에서 서로 호감을 강요받은 친구들이 아니다. 그러니 어느 정도는 마음이 맞는 친구들일 수밖에 없다. 나이도 들쭉날쭉하다. 그 가운덴 가족보다 더 친밀감을 느끼는 친구도 있다. 더는 아닐지 몰라도 거의 가족만큼 친밀감이 느껴지는 친구들.-14쪽

눈을 쳐들어보니 창밖으로 눈이 내린다. 올겨울 들어 눈이 몇 차례 오긴 했지만, 눈다운 눈은 처음인 것 같다. 내가 겉늙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어려서처럼 눈에서 어떤 낭만 비슷한 감정을 느끼지는 못한다. 그저 길이 미끄러워질까봐 걱정일 따름이다. 집에서 출판사까지 가자면 비탈길을 두 번 지나야 해서 더욱 그렇다. 길이라기보다는 골목이라고 하는 것이 더 옳을 좁은 비탈들인데, 눈이 내리면 항상 얼음길이 되고 만다. 그 동네 사람들이 게으르거나 무심한 탓인지, 눈이 와도 도무지 치울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눈 온 뒤 얼음길이 된 그 비탈들을 오르내리려면, 혹시라도 넘어질까 두려워 장갑을 끼고 발에 힘을 잔뜩 준 채 엉금거려야 한다. 이따가 출판사로 들어갈 때 그 비탈들이 얼음길이 돼 있을까봐 벌써부터 염려스럽다.-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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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무리하지 말아요.
    from 마지막 키스 2013-06-09 19:24 
    "지금 생각하고 있는 논문 제목은 이래요. '구조주의적 상상력-소쉬르에서 라캉까지'. 제목은 그럴듯하죠?""정말 그러네요. 그런데 소쉬르는 언어학자고 라캉은 정신분석학자 아녜요? 그게 인류학이랑 어떻게 관련이 있죠?""실제로 쓰게 된다면 레비스트로스를 중심으로 쓰게 될 거예요. 구조주의라는 게 원래 언어학에서 나왔잖아요. 레비스트로스가 구조라는 개념을 배운 것도 언어학자 로만 야콥슨한테서구. 그러니까 구조주의가 언어학에서 다른 분야로 퍼져나가는 과정을
 
 
자작나무 2013-06-10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이건 어렵군요. 어려워. 전, 족발이나 먹을래요.

다락방 2013-06-11 17:47   좋아요 0 | URL
족발 좋죠!
 

나에게 가장 처음 피자를 사준 사람은 막내이모였다. 국민학교 5학년 때였던것도 같고 중학교 1학년 때였는지도 모르겠다. 제과점에 들어가 팥빙수와 빵을 제일 처음 먹어보았을 때도 막내이모와 함께였다. 막내이모는 피자를, 팥빙수를, 제과점 빵을 사줬고 샤프와 노트를 사주기도 했다. 영화를 보러 극장에 데리고 가 준 사람도 막내이모였다. 나는 막내이모 덕에 극장에 가서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라는 영화를 봤다. 샤프와 노트를 사주는 건 우리 엄마도 해 준 일이었지만, 극장에 데리고 가고 제과점에 데리고 가고 피자를 사다 준 사람은 엄마가 아니라 이모였다. 


가끔 내가 조르면 엄마도 책을 사 주셨지만, 나는 내가 골라서 읽는 책 보다 이모네 집에 갔을 때 이모 책장에 꽂힌 책을 빼내어 읽는게 더 좋았다. 내가 고른 책들은 기껏해야 어린이신문에 실린 책들이 전부였지만 이모네 집에 가면 어른들의 소설이 있었다. 지금은 기억나지도 않는 책들을 그 때는 빼내어 읽었다. 어떤 책이었더라, 밀크 초콜렛, 하얀 겨울, 겨울나그네, 뭐 이런 뉘앙스의 제목이었는데, 그 책을 읽을 때는 이모가 그건 아직 네가 읽으면 안될 것 같은데, 라고 했다. 그래도 나는 읽었고, 이모는 더이상 말하지 않았다. 이모의 책장에 책은 결코 많지 않았다. 그렇지만 내가 가면 언제나 꼭 읽고 싶은 책들은 있었다. 


잘 때는 주로 이모 옆에서 누워 잤는데, 그 때 이모가 조용히 틀어두었던 음악들을 기억한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건 '신승훈'의 [보이지 않는 사랑] 이었다. 그 뒤로 나오는 노래는 신승훈의 노래가 아니었던걸로 보아, 그 테입은 아마도 최신인기가요 테입이었던 것 같다. 이모는 나랑 고작해야 십년남짓 나이차이가 날 뿐이었고, 내가 어느 정도 자랐을 때는 이모에게 더티댄싱의 오리지널사운드트랙 노래를 들려주기도 했다. 내 기억속의 이모는, 엄마가 내게 해주지 못한 부족한 것들을 채워주었던 사람이다. 지금은 딱히 그렇게 살갑거나 친한 사이는 아니지만.



요즘의 나는 내 조카에게 그런 이모인 것 같다. 제 엄마가 채워주지 못하는 것들을 채워주는 환상의 존재. 아직 36개월도 채 되지 않은 이 작은 아이가 내 모든 것을 따라하고 싶어한다. 샤워를 하고난 후의 내게 찰싹 달라붙어 화장품의 뚜껑을 열어준다. 외출하려는 나에게 이모 예쁘다, 라고 말하고 같이 외출하려하면 나에게 구두를 신으라고 말한다. 제 엄마는 그렇게 높은 구두를 신질 않으니까. 간혹 내 구두에 제 발을 쓰윽- 밀어넣고는 신발장에 달린 거울을 보기도 한다. 항상 책이 들어 있어 무거운 내 핸드백을 조카는 들어보려 한다. 아이쿠 무거워 들지마, 라고 말해도 기어코 한번 들어올린다. 며칠전 어린이집의 한 아이가 손에 매니큐어를 바르고 왔는가보다. 집에 돌아온 조카는 제 엄마에게 매니큐어를 발라달라 했단다. 여동생은 엄마는 매니큐어가 없어, 라고 말했고, 조카는 이모는 있어, 라고 말하고난 후 이모에게 발라달라 할거야, 라고 했단다. 우리집에 오면 내 방을 가장 좋아하는 조카는 내 화장대에 뭐가 있는지 깜찍하게 다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나다를까, 어제 우리집에 온 조카는 내 발에 칠해진 매니큐어를 보고는 자신이 매니큐어를 바르고 싶었단 걸 기억했다. 이모, 매니큐어 발라줘, 란다. 



조카는 내게 열 손가락을 내밀고 나는 거기에 차곡차곡 매니큐어를 칠해줬다. 조카는 이내 발도 내민다. 나는 조카의 발톱에도 차곡차곡 매니큐어를 발라줬다. 움직이면 안돼, 이거 다 마를 동안 가만히 있어야 돼, 라고 하니 조카는 이내 얌전해진다. 마치 짓궂은 사내아이처럼 온 집안을 뛰어다니며 소리지르고 노래부르고 구르는 조카인데, 손가락을 쫙 펼쳐서는 조심조심 걷는다. 조카야, 이제 다 말랐어, 손가락 움직여도 돼, 라는데도 굳이 쫙 펼치고는 조심조심한다. 여동생은 이 모습을 보고는 잘됐다고 한다. 얌전해졌다고. 



여동생과 조카와 내가 외출을 했다. 외출후에 돌아오니 온 몸이 끈적거린다. 여동생은 조카와 샤워를 하기 위해 들어갔는데 곧이어 조카의 벼락같은 울음소리가 들린다. 여동생은 계속해서 말한다. 안지워져, 안지워진다고, 이거봐 안지워져. 나는 똑똑 노크를 한 후 욕실에 얼굴을 빼꼼 들이민다. 왜그래, 무슨일이야? 조카는 자신의 열 손가락에 물이 닿자 울어대기 시작한거다. 매니큐어 지워진다고. 나는 조카에게 지워지지 않는다고 말하고, 조카야, 지워지면 또 발라줄게, 라고 말했다. 그래도 조카는 좀처럼 울음을 멈추질 않는다. 



샤워를 하고난 조카가, 발톱의 매니큐어를 다시 칠해달라 한다. 내가 칠해준 매니큐어는 보라색 반짝이었는데, 아까 조카가 발라주자마자 움직여 이불에 묻었고 그에 연해졌던 것. 아마도 샤워후에 다시 보니 그게 보였는가보다. 나는 알았다고 다시 발라준다. 다시 발라준 매니큐어는 처음보다 좀 더 진해졌다. 조카도 이 사실을 알아챘다. 다시 열 손가락을 내민다. 손도 또 발라줘, 라고. 나는 조카의 손에 다시 매니큐어를 발라준다.



매니큐어를 바른 조카는 연신 자신의 손가락을 들여다보며 예뻐, 예쁘다, 한다. 아직 자신의 아이를 갖지 않은 이모는, 아직 누군가의 부모가 되지 않은 이모는, 여자조카에게 환상의 존재, 되고 싶은 존재가 아닐까, 꿈을 이뤄주는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내 어린 조카를 보면서 한다. 나는 높은 굽의 구두를 신고, 핸드백을 들고 다니며, 화장을 하고 외출하고, 매니큐어를 발톱에 바르는 이모다. 


아, 어제는 내 방 책장에서 책을 두 권 꺼내들고 와(예의 그 수키시리즈) 한 권을 내게 읽어보라며 내밀고는 자기도 펼쳐든다. 글을 읽지 못하는 조카는 중얼중얼하고 나는 글씨를 읽는다. 읽기를 멈추면 조카는 고개를 들고 나를 본다. 계속 읽어, 라고 말한다. 


나는 높은 굽의 구두를 신고, 핸드백을 들고 다니며, 화장을 하고 외출하고, 매니큐어를 발톱에 바르고, 책을 읽는 이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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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13-06-07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카의 성별이 궁금합니다.

다락방 2013-06-07 17:07   좋아요 0 | URL
조카의 성별은 제 성별과 같습니다. ㅎㅎ

2013-06-07 17: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6-11 17: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기억의집 2013-06-07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쁘다~ 신발 신어보려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귀여워요^^
어제 어린이집에서 일하는 울 언니 만나 이야기 했는데, 어린이집에서 일하지만
애들 절대 어린이집 보내면 안된다고 강조하더군요. 울 언니는 애들 이뻐해요. 그래서 안아주고 달래주려고 하면
원장이 너무 싫어해서 눈치 많이 본다고, 어제 원장 욕을 한웅큼 했어요.
정말 원장은 아이들 하나 하나가 돈으로만 보인다고..안 그런 사람도 있겠지만,
어린이집에서 일하는 울 언니도 굉장히 회의적으로 어린이집 원장 바라보던데,
다락방님 조카는 엄마랑 이모의 사랑 듬뿍 받으니 얼마나 좋아요~

간만에 컴 켜고 들어오니 댓글도 길게 달고 좋네요. 모바일로는 덧글 진짜 안 달게 되더라구요~

다락방 2013-06-11 17:52   좋아요 0 | URL
저는 서운하기도 해요, 기억의집님. 너무 빨리 자라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지금 너무 예쁜데, 이 예쁘고 순수한 모습이 사라지고 어른이 되어갈 거란 걸 생각하면 좀 천천히 자랐으면 좋겠다 싶고 그래요.

조카도 지금 어린이집 다니고 있는데, 처음엔 적응 안되서 가기 싫어 하더니 이제는 어린이집 가는거 되게 좋아해요. 게다가 좋아하는 친구까지 생겼나봐요. 이성으로...orz
빨리 가고 싶다고 하고 막 그래요. 어린이집에서 잘 지내는건지 어쩐건지 하루종일 어떻게 노나 지켜보고 싶기도 해요. 조카 보고싶네요, 기억의집님. 흑흑.

레와 2013-06-07 1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다.... ^^

다락방 2013-06-11 17:52   좋아요 0 | URL
나도. 히히 :)

비로그인 2013-06-08 0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가끔씩 우리 집에 와서 이모 좀 해주세요~ㅎㅎ

다락방 2013-06-11 17:52   좋아요 0 | URL
저 여기 대기하고 있다가 둘째조카 나오면 또 힘 센(응?) 이모 되어주어야 해요. 둘째 조카가 여동생 뱃속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답니다. 흣.

자작나무 2013-06-08 0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기억 속의 이모는 만날 때마다 만원을 주셨지요.

다락방 2013-06-11 17:53   좋아요 0 | URL
오! 완전 좋은 이모네요. 이모가 부자셨나봐요. 만원 씩이나....부럽........습니다.

치니 2013-06-08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왕, 이 포스팅 눈물나게 좋네요.

다락방 2013-06-11 17:53   좋아요 0 | URL
눈물까지나;; 히히.
아 조카가 너무 좋아서 미치겠어요 치니님 ㅠㅠ

오로라 2013-06-10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이모가 저한테 딱 그런 존재였어요.예쁘고 엄마보다 더 다정한! ㅎㅎ 이모가 보고싶어져 문자 한번 보내야겠네요~

다락방 2013-06-11 17:54   좋아요 0 | URL
흐음. 예쁜거로 치자면 저는 조카의 엄마에게 밀려요. 하하하핫
다정한거로도 밀리는 건 아닐까...
저는 그저 회사다니는 이모일 뿐이네요. 하하하하

이모님께 문자는 보내셨나요, 오로라님?
 
한눈팔기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62
나쓰메 소세키 지음, 조영석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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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절을 잘하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가. 인정에 이끌려 조금이라도 휘청거리면 이내 거기에 매달려 질질 끌려가게 되고야 마는것이다. 아, 이, 빌어먹을, 돈. 누구에게도 없는 그 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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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나무 2013-06-07 1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 님. 돈 좀 꿔주세요.

다락방 2013-06-07 16:42   좋아요 0 | URL
돈 없습니다! (단호)

자작나무 2013-06-08 08:23   좋아요 0 | URL
그 단호함 너무 매력적이네요 하하하하하하

치니 2013-06-08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음 왜 별 하나를 빼셨을까, 전 소세키의 책을 거의 다 좋아하는 편인데 이 책은 어떨지 모르겠네요. (다락방 님을 마치 나의 개인 북 쇼퍼처럼 만들어가고 있음 ㅋㅋ)

다락방 2013-06-09 19:27   좋아요 0 | URL
뭐 딱히 별다섯을 줄 만큼 막 좋지는 않았어요. 그렇지만 소세키의 책은 다 좋은것 같아요. 제가 읽은건 이 책을 포함하여 고작 세 권 뿐이지만 말입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