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토요일.
외출을 하려는 내게 조카는 '이모 타미도 같이가자' 라고 했다. 나는 '아, 거기는 타미를 데려갈 수 없는 곳이야' 라고 말했고 조카는 서운해했다. 조카의 손에는 망가진 나의 머리띠가 들려있었다. '이모가 오면서 머리띠 새로 사와야겠다' 라고 말했더니 조카가 좋아한다. '타미야, 이모가 오면서 이모 머리띠랑 타미 머리띠도 같이 사올까?' 라고 물으니 '응! 타미는 토끼 머리띠로 사와' 라고 한다. 알았다고 답하고 외출을 했다. 광화문에 내려 제일 처음 눈에 띄는 악세서리 가게로 들어갔다. 사람들을 만나고 집에 돌아갈 때는 머리띠를 미처 사지 못할지도 모르니 일단 미리 사두고 만나자, 고 생각해서였다. 내것은 저렴한걸로 금세 골랐는데 조카의 것은 마땅한 게 없다. 토끼는 커녕 다른 캐릭터도 보이질 않아 리본 장식으로 살까 하다가, 조카가 잠시잠깐 하는건데 저 비싼 리본장식을 굳이 사서 뭘하나 싶어 그냥 내 것과 똑같은 단순한 걸로 샀다. 나는 하늘색 조카의 것으로는 노란색으로 계산을 마치고 사람들을 만났다. 그리고 시간이 좀 흘렀는데, 여동생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언니, 타미 머리띠 사온다고 했어? 타미가 계속 이모가 머리띠 사온다고 기다려. 안사오면 너무 실망할 것 같아. 오다가 간단한 머리끈이라도 사다줘.] 란다.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사뒀어. 걱정하지마. 내가 좀 늦을텐데 타미가 잘까봐 그게 걱정이네.] 라고 답을 보냈다.
그리고 집에 돌아갔다. 타미와 여동생이 자는 방문을 살짝 노크를 하고 빼꼼 열어보니 불이 꺼져있었다. 작게 속삭였다. 타미 자니? 라고. 그러자 여동생은 '타미야 자?' 물었고 조카는 벌떡 일어나더니 "이모!" 라고 부른다. 나는 얼른 불을 켜고 가방에서 머리띠를 꺼내며 내밀었다. 머리띠 사왔어, 타미야. 라고. 조카는 신나하며 해줘, 라고 말한다. 나는 조카의 머리에 머리띠를 꽂아주었고, 조카는 거울을 보며 활짝 웃는다. 아, 사오길 잘했다, 라고 생각했다. 단순한 머리띠인데 조카가 하니 나보다 훨씬 이쁘다. 조카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여동생과 잠시 얘기를 나누고 나는 내 방으로 돌아가 가방을 놓고 옷을 갈아입고 샤워를 했다. 여동생이 조카 잠들었다고 말하길래, 자는 모습을 보고싶어져 들여다보았다. 옆으로 누워 자는 조카의 두 손에는 내가 사준 머리띠가 들려있었다. 하아- 머리띠를 꼭 쥐고 자는 조카라니!!!!!! 사랑스러워서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
그건그렇고, 그 날.
광화문 교보문고(여기까지 쓰는데 오타냈다. '광화문고' 라고.)에 갔다가 음악소리가 들려 그 쪽으로 가보았다. 핫트랙스 CD 파는 곳 앞에 진열대가 나와있었고, 거기에서 클래식 CD 를 판매하고 있었다. 들려오는 음악소리도 역시 그곳에서 들리는거였는데, 그 음악이 무척 좋아 나는 스맛폰의 음악검색 어플로 그 앞을 왔다갔다하며 검색해봤다. 그런데 음악검색에서는 인식할 수 없다는 메세지가 자꾸 떴다. 클래식은 인식하지 못하는걸까. 쭈볏거리며 그 앞을 왔다갔다하는데, 그런 나를 눈치채신건지 판매하시는 분이 시디 한장을 들어 내게 건네시며, 지금 나오는 음악은 이겁니다, 하시는거다. 나는 그걸 받아들고 앨범명을 읽으려고 했는데 영어로 많은 단어들이 써있었다. 가격을 보니 19,000원. 살까, 하다가 인터넷으로 주문하자 싶어 그만두고, 대신 인터넷에서 사기 위해 앨범명을 외워두자 싶었다. 가장 굵게 보이는 단어를 외워야지. 순식간에 가장 굵은 단어를 외워두고는 CD 를 얌전히 제자리에 두었다. 그리고는 그 단어를 까먹을새라 스맛폰의 메모장을 꺼내어 적었다. 그 단어는 이것이었다.
goldberg variations
그리고 어제. 이 시디를 사야겠다고 생각해서 검색해봤다. 그리고 기겁했다.
무려 268개!!!!!!!!!!!!!!!!!!!!!!!!!!!!!!!!!!!!! 세상에.
그러니까 내가 메모한 저 뜻이 '골드베르크 변주곡' 인거다. 그걸 나는 몰랐고, 그 연주가 아주 여러사람의 시디로 나와있을 거라는 것도 미처 몰랐던 사실이다. 젠장. 클래식에 대해 알지 못해 일어난 일. 하아-
만약 내가 시디의 재킷 그림을 외워두었다면 이 문제는 아주 간단하게 처리됐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림을 잘 인식하지 못하고 외우지도 못하는 사람. 그래도 설마, 보면 알겠지 싶어 훑어 내려갔지만 도무지 내가 본 시디가 어떤 시디인지를 모르겠는거다. 지금 틀어뒀다면 최근에 나온게 아닐까 싶어 출간일순으로 정렬해보았지만 그래도 모르겠더라. 제기랄. 그러다 얼핏, 표지에서 '첼로 연주'란 말을 본 것 같았다. 그리고 내가 들은 게 현악기 소리였다는 것도 기억났다. 그래서 나는 'goldberg variations 첼로' 라고 검색해보았다. 해당 검색결과가 없다고 나온다. 아, 첼로를 영어로 써야 하나 싶어 영어사전으로 첼로를 검색했다. 첼로는 영어로 cello 였다. 그래서' goldberg variations cello' 검색했다. 검색결과가 없다고 나온다. 니미..
다시 goldberg variations 로 검색했다.
하아- 아득하다. 아득하다. 내가 아는건 '글렌 굴드는 확실히 아니다' 라는것. 하아- 아득하고 아득하다. 대체 뭐야, 뭐냐고. 한 네 개쯤 클릭해 보다가 토할것 같아서 관뒀다. 내 방에 미니 콤포넌트가 고장났고, 생일을 맞아 다시 들일 생각이었다. 그리고 첫 시디로 이걸 걸고 싶었다. 하아- 근데 대체 뭔지 알 수가 없어 살 수가 없잖아. 나는 왜 클래식을 모를까. 내가 이런쪽으로 뭔가 상식이 있는 사람이었다면 연주자의 이름을 외워두었을텐데. goldberg variations 라는걸 외우지 않아도 아, 이거구나, 한 다음에 바로 연주자의 이름을 봐두었을텐데. 아니, 내가 그림을 잘 외우는 사람이기만 해도 검색결과의 자켓을 보고 골라낼 수 있었을텐데.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내 옆에 있었던 적도 없지만, 손에 잡힐듯하다 금세 멀어지고야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