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
러네이 엥겔른 지음, 김문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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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전에 회사 여직원이 노메이크업으로 출근을 해서는 사무실에 도착해 화장을 했던 적이 있다. 그 때 남자 상사가 그 모습을 보고는 크게 혼냈다. '화장은 아빠도, 오빠도 모르게 하는거다!'는게 이유였다. 여직원은 이에 '죄송합니다' 라고 말했다. 만약 그 여직원이 집에서 화장을 하고 왔다면 조금 더 일찍 일어나야 했을 것이다. 일찍 일어나서 화장을 마치고 나와야겠지. 그랬다면 같은 회사, 같은 거리에 있는 남자직원보다 좀 더 수면 시간이 짧았을 것이다. 남자는 잘 시간에 여자는 화장을 해야 하는 이 부조리함(또 퇴근하면 지우기도 해야한다). 게다가 화장을 하는 게 예의라고, 화장한 모습으로 대부분의 여성을 출근하게 만드는 이 사회 분위기에서 그런데 '화장하는 모습을 보이면 안된다!' 고? 이건 너무나 혼란스러운 지점 아닌가. 말 자체가 모순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나. 이건 중학교 시절의 브래지어를 생각나게 한다. 나는 여중을 다녔는데, 학교에서는 반드시 브래지어를 착용하게 했고, 그런데 브래지어 끈이 보이면 안된다고 그 위에 셔츠를 더입게 했다. 더운 여름날 교복 하복을 입기 위해서는 그 안에 런닝셔츠도, 브래지어도 있어야 했던 것. 이거 너무 이상하지 않아? 젖꼭지를 가리기 위해 브래지어를 하고, 브래지어를 감추기 위해 셔츠를 더입고 그 위에 교복을 입고... 왜 우리는 뭔가를 감춰야 하고, 감춘 걸 또 티내지 않아야 하는거야? 브래지어도, 런닝셔츠도 안입고 교복 하나만 슝- 입으면 되는 남학생들에 비해 확실히 효율이 떨어지잖아?


화장하는 모습을 보이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비단 우리 회사 상사뿐만은 아니었다. 지하철이나 버스안에서 화장하는 여자들을 욕하는 글들은 인터넷에 얼마나 많이 올라왔던가. 그들도 그들이 왜 비난하는지는 모르고, 그런데 비난은 해야겠고, 그래서 파우더 가루가 흩날린다..같은 얘기를 했었던 것 같은데......비난을 위한 비난이 아닌가. 베이비 파우더 바르는 것도 아닌데 무슨 가루가 날려... 그러면서 자기 여자 친구나 여자 동료가 화장을 하지 않으면, '그래도 여자가 화장은 하고 다녀야지' 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화장을 하긴 해야하는데, 이동 시간 중에 짬을 내면 안되고, 항상 너보다 먼저 일어나서 잠을 줄여가며 화장을 하고, 그리고 완벽하게 셋팅된 모습으로 너를 만나야 한다는거지? 니가 애인이든, 상사든, 친구든..그게 뭐든?



대학때는 화장을 잘 하지 않고 다니긴 했지만 회사를 다니면서는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이 책의 사례에서도 나오는 것처럼, 내가 일을 잘하는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서는 어떤 면에서나 준비된 모습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했던 거다. 하도 오래 그렇게 살아와서 이제는 화장하는 시간이 처음보다 확 짧아지긴 했지만, 그래도 분명히 시간은 걸린다. 머리가 길고 웨이브졌다면 말리고 고데를 하고 에센스를 바르는 시간도 걸린다. 시간만 걸리나, 돈도 들여야 한다. 돈만 들이나, 에너지와 신경도 그 쪽으로 당연히 쏠린다.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고 피부 당기지 않게 스킨로면만 촵촵 발라주고 옷만 입고 휙- 나오면 삶은 간단할텐데, 거기에 여자들은 화장이 끼어든다.




티비에서도 잡지에서도 어딜 봐도 날씬하고 화려하게 화장한 여자들이 수두룩하다. 그리고 그녀들은 아름답다는 찬사를 받는다. 어쩌다 한 장면, 어쩌다 한 명의 그런 여자를 본다면 심드렁하게 넘어갈 수 있지만, 세상이 하나 되어 그 여자들이 진리인 것처럼 말해버리면, 아무리 심지가 굳은 사람이라도 흔들리게 마련이다. 아, 저렇게 예뻐져야지,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 저렇게 예뻐져야 사랑받겠지, 저렇게 예뻐져야 손가락질 당하지 않겠지. 사회가 정해놓은 미의 기준, 그리고 여자는 아름다워야 인정받는다는 강한 메세지 때문에, 여자들은 먹는 양을 줄이고, 꾸역꾸역 운동을 하고, 좋은 화장품을 여러개 사고, 긴 머리에 바를 좋은 헤어제품을 산다. 예쁜 드레스를 입고 구두를 신으면 당연히 행동은 불편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느라 시간과 에너지와 돈을 들인다. 이 책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텔레비젼에 잔뜩 나오는 저체중 여성은 전체 미국 성인 여자의 3프로밖에 안된다고 한다. 그런데 그 3프로가 되어야 되는 것처럼, 대부분의 여자들이 애를 쓰는 거다. 아무리 해봤자 자신이 완벽하게 생각하는 모습이 될순 없는데!



다이어트는 식이가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 운동은 도울 뿐, 먹는 양을 줄이는 것, 먹는 양보다 활동량이 많아야 체중 감량이 되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지방이 쌓이지 않기 위해서는 탄수화물을 먹지 않아야 한다. 세상 맛있는 게 탄수화물에 얼마나 많은데! 그러다보면 식사는 즐거울 수 없다.


나는 먹는 것도 좋아하고 맛있는 것도 좋아한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친근한 사람들과 만나 함께 맛있는 걸 먹고 마시면서 이야기나누는 것도 좋아한다. 만약 내가 탄수화물을, 술을 끊어버린다면, 그건 내 인간관계도 끊어야 함을 의미한다. 한 두번은 만나서 더 적게 먹을 수 있겠지만, 그런 식으로 계속해 살 순 없다. 나는 저체중의 몸대신 좋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선택하는 사람이다.


해나는 음식을 적으로 보라고 배운 적이 없다. 그녀는 "엄마는 정말 좋은 본보기가 되어주셨어요. 엄마는 지나치게 말랐던 적이 없어요. 그리고 건강한 식습관의 모범을 보이셨죠. 그러면서도 때로는 저희가 좋아하는 걸 아낌없이 사주셨어요. 엄마는 '나는 가족들과 이 음식을 즐겁게 먹을 거야. 칼로리 따위는 걱정하지 않아.'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리고 폭식도 하지 않으셨죠."
"음식을 즐겨도 된다고 배운 거군요?" 나는 물었다.
"맞아요." 해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엄마 덕분이에요. 음식에 대한 건강한 태도를 가르쳐주셨어요. 음식은 사람들을 한곳에 모으고 공동체를 만들어 따뜻하게 대접해주는 역할을 해요. 그래서 저는 사람들을 초대해서 요리해주는 걸 좋아해요."
"그게 사람들에게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인가요?" 나는 물었다.
"네. 그래요." 해나는 동의했다. "그리고 친할머니와 외할머니도 요리를 하고 빵을 구워서 사랑을 전하셨어요."
해나는 중요한 부분을 짚어냈다. 다이어트를 하는 여성들은 만성적인 허기에 동반되는 감정적인 괴로움을 겪을 뿐만 아니라 음식을 나눠먹으며 강화되는 사회적 관계에서도 멀어진다. (p.302-303)



당연히 나에게도 외모 강박이 있다. 없을 수 없다. 그러나 나는 내가 갖고 있는 것이 외모강박 이라는 것을 인지한다. 남자랑 여행간다고 가기 전에 겨드랑이에 왁싱을 받고서는, 그 아픔에 놀라 '도대체 내가 이걸 왜 해야되지?'라고 스스로 물었더랬다. 남동생의 결혼을 앞두고는 다이어트를 해야겠다고 결심하면서도 '그런데 내가 왜 그래야하지?'라고 자꾸 되묻게 된다. 어쩌면 나는 외모강박이 심하지 않고 이렇게 스스로 태클을 걸어대서, 사실 내가 그렇게 해야만하는 타당한 이유를 찾을 수 없다는 걸 알고, 그래서 번번이 다이어트에 실패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나에겐 다이어트를 할 굳은 의지 같은 것이 없어. 왜냐하면, 나는, 다이어트를 하지 않고 살아도 행복하니까.




일전에 마른 몸과 성형수술을 원하는 친구와 대화를 하면서 계속 불편했던 경험이 있다. 나 역시 납작한 배를 갖고 싶다고 생각하고, 운동의 목적 중에 다이어트도 있었던 사람으로서(실패중이지만..), 왜 나도 이러면서 저 친구가 저러는 것은 불편하게 느껴질까..에 대해 오래 생각했다. 나도 이러면서 누군가 저러는 것에 대해 불편하다는 것은 내 스스로의 모순을 증명하는 꼴이 아닌가 싶었던 거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서 비로소 그 이유를 알았다. 그 사람과 나의 인생의 우선순위가 달랐던 거다. 외모 강박의 크기가 달랐던 거다. 그 친구는 애인의 첫째 조건도 외모였다. 그러니 자신이 갖추어야 할 첫째 조건도 외모였던 거다. 그런데 나는, 외모가 아닌 다른 것에 더 신경쓰는 사람이고 싶고 또 그런 사람과 친구 혹은 애인이 되기를 바랐다. 나는 인생에 있어서 분명히 더 중요한 목표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친구는 그 중요한 목표가 외모였던 거다. 우리가 각자 생각하는 중요한 목표가 달라서, 그래서 나는 그것이 불편하고 어색했구나. 




우선 말해둘 것이 있다. 나는 여성이 외모를 가꾸는 모든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그건 현실적이지 않으니까. 또한 대부분의 여성이 원하는 바도 아니고 말이다. 우리는 언제나 외모에 신경 쓸 것이다. 이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외모에 신경을 쓰느라 다른 중요한 목표에서 멀어질 때 발생한다. 이제는 외모에 신경을 쓰면서도 그에 맞춰진 눈금판을 조금 낮출 필요가 있다. (p.335)




이 책에서는 시종일관 어릴 때부터 아름답다 혹은 예쁘다고 칭찬하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오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예쁘다'는 말이기 때문에 칭찬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더 예뻐지고 싶고 못생긴 곳은 어디인지, 자꾸만 자기의 외모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는 것. 자꾸만 생각하다보면 신경과 에너지는 당연히 그 쪽으로 쏠릴 수 밖에 없다. 그보다는 다른 이야기를 더 많이 하자고 얘기한다. 외모에 대한 칭찬이나 불평을 언급해 그것을 화제에 오르게 하고 또 그래서 자기 외모를 들여다보게 만들기보다는, 외모 이외의 다른 것들을 이야기하자고. 그런 식으로 이 책에서는 여성들을 대상으로 자신의 몸에 대해 편지쓰기도 시킨다. 그러니까 순전히 '기능적인' 측면에서. 손이 하는 역할, 발이 하는 역할등에 대해 생각하면서. 또한, 트레이너들한테도 '더 날씬한 몸, 비키니를 입기 위한 몸'으로 격려하는 대신, 우리 몸의 기능을 강화시키는 걸로 격려하라고 설득한다. 그 편이 운동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더 동기부여가 된다는 거다.



나는 여러가지 이유로 요가를 시작했지만, 당연히 거기에 다이어트도 있었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것처럼, 요가를 했다고 해서 살이 빠지거나 배가 납작해지진 않았다. 그러나 요가를 하면서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요가쌤이 앞에서 계속 코어에 힘을, 코어에 힘을..하고 얘기하는 바람에, 처음 시작할 때보다 코어에 힘이 더 생겼다. 안되는 자세들이 하나씩 그리고 조금씩 되는 걸 느끼면서, 아, 내 몸에 힘이 더 생겼구나, 하는 걸 깨닫는다. 그것은 어찌나 신나는 일인지! 그래서 요가로 납작한 배를 만들 수는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요가를 계속하기로 결심했다. 이것은 내 몸에 힘을 키우는데 확실히 도움이 되니까. 안되는 자세들을 시도하고 시도하고 또 시도하다가 결국 해내고 났을 때의 기분 같은 것을 살면서 계속해서 느끼고 싶다. 예뻐지고 싶다, 저체중이 되고 싶다 같은 생각을 하기 보다는, 건강해지고 싶고 근육을 키우고 싶다는 생각에 더 몰두하고 싶다. 또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친구를 만나고 맛있는 것을 먹는 것에도 내 시간과 에너지를 들이고 싶다. 저자도 이 책에서 주장한 것처럼, 외모를 꾸미는 것보다 더 중요한 목표들이 내게는 아주 많다. 할 일도 많고.



최근에는 같은 방향을 보는 사람, 그러니까 나랑 비슷한 사람들을 곁에 남겨두자는 생각이 좀 더 강해졌다. 인생 가장 중요한 목표가 나와 너무 다른 사람과는 이야기 하면서 불편함을 느낀것처럼, 비슷한 사람과는 이야기하는 게 참 행복하다. 어제 책 읽는 남자사람친구가 책을 읽다 좋은 소식을 전해준 것처럼, 세상 돌아가는 것에 대해 같이 얘기하고 공부하고 또 책을 읽는 것들이 내게는 무척 소중하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런 걸 함께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을 친구로 혹은 애인으로 두고 싶다. 그간 못!생!긴! 남!자!들!만! 사귀었던 것은  (남자들이 다 못생겼기 때문이다...)아마도 이런 영향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게는 외모보다 더 크고 중요한 게 많았어.


더불어 조카에 대해서도 내가 어떻게 해야할지 방향을 잡았다.

그동안 외모품평 해대는 프로그램들이 수두룩하게 나와 저절로 예쁘고 미운 걸 파악하고 언급하는 조카에게 '사람들 앞에서 그렇게 말하면 안된다', '누구나 다 각자의 매력이 있다', '사람은 다 다르다' 는 등으로 얘기해왔었는데, 이제는 그보다는 다른 중요한 것을 언급하고 싶다. 너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 어떤 일을 할 때 재미있어? 어떤 게 즐거워? 등등. 외모 강박에 벌써부터 둘러쌓인 조카에게 그것이 아닌 다른 것의 중요성, 삶의 재미 같은 것들에 대해 언급하며, 외모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조카야, 니가 예쁠 필요도 없고 날씬하기 위해 고통스러울 필요도 없어.



끝으로, 책을 읽는 다는 것에 대해 꼭 언급하고 싶다.

나는 이 책의 책장을 덮으면서 '아, 책을 읽는 것은 너무나 좋다' 하고 또 생각하고 말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비로소 내가 가졌던 미묘한 불편함의 정체를 알게 됐기 때문이다. 내가 모르고 있던 것을 알게 하는 것도 책이지만, 내가 아는 것에 대해서도 시야를 더 넓혀주고 사고를 확장해주는 게 책이다. 도움을 받기 위해 읽은 게 아닌데, 읽고나면 어떻게든 도움을 받는다. 누군가가 시간과 에너지를 들이고 토론을 하고 생각을 해서 고심해 쓴 글을 이렇게 편하게 앉아 읽는 것만으로 이 큰 도움을 받는다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내가 이런 책을 읽는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책을 읽고 그 후의 감상을 글로 남길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게 몹시 흡족하다. 또한 내가 이렇게 글을 남김으로써 나는 여러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나에게는 인생에 있어서 이런 것들이 훨씬 더 중요하다.







"엄마는 ‘모든 걸 할 시간은 없단다.‘라고 말씀하셨어요. 겉모습에 신경 쓰다 보면 내면의 발전에 신경 쓸 수 없다고 하셨어요. 중요하지 않은 것에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고요." 가브리엘은 어머니의 말을 골똘히 생각하며 먼 곳을 응시했다. 이제야 그 말에 담긴 진실을 발견한 것 같았다. "여성이 외모에 신경을 덜 쓰게 된다면 그 시간과 정신적인 에너지를 다른 일에 쏟을 수 있을 거예요, 그렇죠? 직장에서의 지위나 동등한 임금, 아니면 더 나은 교육 같은 것에요." (p.54)

대상화는 당신이 생각과 느낌, 목표와 욕망을 지닌 진짜 사람으로 취급받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대신, 당신은 그저 몸 또는 신체 부위의 총합으로 취급받는다. 심하게는 당신의 몸은 그저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무언가로 취급받는다. (p.63)

몸이 성숙해지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지만 때론 그 몸을 감춰야 안전하다는 것을 딸에게 어떻게 가르칠 수 있을까. 생식을 위해 성숙해진 몸이 자신을 위험하게 만들 수도 있고 동시에 성인 남성을 유인할 수도 있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시킬 수 있을까. 그리고 어떻게 딸에게 성에 대한 긍정적이고 건강한 태도를 가르칠 수 있을까. 이는 모두 미지의 영역이다. (p.68)

에린은 지하철 안에서 희롱을 당한 적이 있다. 한 남성이 에린에게 그녀가 얼마나 섹시한지 이야기했다. 이에 에린은 재미없다고 대꾸했다. 그리고 "제발 꺼져줄래."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다른 칸으로 옮기지 않았다. 그러자 그 남성은 계속 "넌 정말 못생긴 X야. 아주 토 나오게 못생겼어. 이런 못생긴 X에게 말을 걸었다니 말도 안돼."라는 말을 했다. 정말 모순적인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이 남성은 그녀가 섹시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접근했다. 그런데 거부당하자 그녀를 못생겼다고 한 것이다.
우리가 젊은 여성에게 가장 중요한 자산은 외모라고 교육한다면 당연히 남성(그리고 여성)은 여성에게 심리적으로 상처를 입히고 싶을 때 어디를 공격해야 하는지 알게 된다. (p.76)

내가 스물네 살의 대학원생 강사였던 시절 첫 교수 평가를 지금도 기억한다. 그중에는 "교수님, 파란 스커트를 자주 입으세요. 예뻐 보여요."라는 코멘트가 있었다. 나는 당황스러웠다. 교수 평가는 익명으로 이뤄졌지만, 누가 썼는지 알아내기 위해 출석부를 계쏙 훑어보았다. 내가 어떻게 하면 수업을 잘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동안 내 다리만 생각했던 학생은 누구였을까? 심지어 그 수업은 ‘젠더 심리학‘ 이었다. 그 수업이 끝날 때까지 그 학생은 여전히 그런 식의 코멘트가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점에서 내가 뭔가 잘못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p.87)

사춘기 이후 에린은 자신이 몸을 움직이는 모습이 어떻게 보이는지에 극도로 신경 쓰게 됐다. 에린은 움직일 때마다 가슴이 출렁거리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했다. 그녀와 쌍둥이 여동생은 성숙한 몸을 감추기 위해 남자처럼 옷을 입으면서 어린 시절을 연장했다. 나는 에린이 소년과 같은 외모로 살기로 결심함으로써 무엇을 얻었는지 궁금했다.
에린은 자신의 몸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좀 더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그녀는 "제 몸을 사용하는 것이 좀 더 편안하게 느껴졌어요."라고 설명했다.
"남자들은 그런 신체적 자유를 계속 누린다고 생각하나요?" 나는 물었다.
에린은 화가 나서 고개를 저었다. "그게 바로 제가 남자 친구들과 자주 하는 이야기예요. 지하철에 앉아 있는 남자들만 봐도 그렇잖아요. 그들은 자신의 몸이 얼마나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 남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지, 남의 신체에 접촉하고 있는지 따위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아요. 그리고 그게 부러워요." (p.101)

몇 년 전 나는 강의실을 가득 채운 심리학자들 앞에서 자기 대상화에 관해 발표했다. 여성의 자기 대상화가 어떻게 신체 혐오로 이어지는지, 그리고 이를 막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토론하고 있었다. 그러다 한 심리학자가 질문을 던지며 끼어들었다. "잠깐만요, 어쩌면 여성들이 자신의 몸에 혐오를 느끼는 건 좋은 일이 아닐까요? 몸무게가 늘어나서 기분이 나빠지는 게 나을 수도 있어요. 비만을 막아줄 테니까요."
그날 이후 비슷한 질문을 여러차례 들었다. 대부분은 무례한 말투였다. (p.105)

최근에는 《뉴욕 타임스》페이스북이 ‘살찐 느낌‘이라는 이모티콘을 없애고 한 결정에 관해 쓴 글이었다. 분노에 찬 이메일을 보낸 사람들은 모두 남성으로 신체 혐오는 옳지 않다는 나의 주장을 몹시 비난했다. 이들은 신체 혐오는 비만을 방지하는 훌륭한 예방책이라고 주장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프랑스 여성은 모두 날씬하다면서(어쨌든 이는 진실이 아니다) 그 이유는 프랑스 문화가 효과적으로 살찐 여성에게 창피를 주기 때문이라고까지 말했다. 또 다른 사람은 여성이 자신의 몸에 대해 지속적으로 부끄러움을 느껴야 미국의 미래가 밝다고 했다. 나는 여성이 자신을 혐오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만으로 내 나라를 위험에 빠뜨렸다! (p.105-106)

M.K. 는 심리적 상처에도 불구하고 ‘종교적인 죄책감‘ 대문에 지금도 계속 부모님과 연락하며 지낸다고 말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중증의 파킨슨병을 앓고 있다. 최근 아버지는 그녀가 너무 짧게 머물다 간다고 화를 냈다. M.K.는 아버지에게 용서해달라고 했지만, 아버지는 이를 거부했다. 그러자 그녀는 평정심을 잃었다.
"나는 다 용서했다고요!" 그녀가 소리 질렀다.
"뭐?" 아버지는 딸이 무엇 때문에 자신을 용서했는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M.K.는 그 자리에서 모든 것이 봇물 터지듯 터져 나왔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제가 10대였을 대 제게 뚱뚱하다고 하셨잖아요!" 그녀는 울었다.
"뚱뚱했잖니." 아버지는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 말 한마디로 M.K. 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녀는 집으로 돌아와 2주 동안 폭식을 했고 5킬로그램이나 늘었다. "아빠의 말 한마디가 절 그 지경으로 만들었죠." 그녀가 말했다. (p.110-111)

최근 몇 년간 여성이 생각하는 아름다움의 이상은 크기, 키, 머리 색 등으로 다양해졌다. 그러나 단 하나 변하지 않는 것은 바로 날씬함이다. 이상적인 ‘풍만한‘ 몸매를 가졌다고 손꼽히는 여성들조차 배는 납작하고 셀룰라이트는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상적인 날씬함에서 이탈할 경우 종종 적대감이나 조롱을 마주하게 된다. (p.111)

‘건강‘을 위해 강조되는 것들은 대부분 ‘건강‘의 가면을 쓴 ‘아름다움에 대한 우려‘인 경우가 종종 있다. 2015년 애팔래치안주립대학교와 켄트주립대학교 연구팀은 2006년부터 2011년 사이에 발간된 잡지 《위민즈 헬스Women‘s Health》와 《맨즈 헬스Men‘s Healte》의 표지 108장에 실린 제목을 분석했다. 《위민즈 헬스》표지에 쓰인 가장 큰 제목중 83퍼센트는 외모나 다이어트의 관점에서 작성됐다. 《위민즈 헬스》의 기사 타이틀 역시 《맨즈 헬스》에 비해 외모를 강조하는 경향이 더욱 높았다. 두 잡지 모두 건강에 직접적으로 초점을 맞춘 제목은 없었다. 잡지명에 ‘건강‘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는데도 말이다.
몸무게에 따른 차별은 증가하고 있지만 차별이 비만을 방지할 것이라는 징후는 보이지 않는다. (p.117)

여성의 건강을 걱정하기 때문에 비만을 혐오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에게, 여성의 건강을 향상시킬 다른 방법을 정중히 제안하려 한다. 병원에서 자원봉사를 하자. 국경 없는 의사회에 기부하자. 여성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연구와 법률 제정을 지원하자.
잔인함은 건강에 개입하는 방식이 아니다. 이는 그저 자신의 자존감을 북돋아 주기 위한 독선적이고 그릇된 시도일 뿐이다. 왜 몸을 걱정하고 존중하는 대신 몸을 한탄하고 건강을 방해하는가. 왜 여성이 자신의 사적이고 중요한 부분을 스스로 미워하기 바라는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몸을 돌보는 일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p.117-118)

외모 강박은 단순히 여성의 정신적·정서적 건강만 위협하는 것은 아니다. 도둑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여성의 가장 중요한 자원인 돈과 시간을 너무도 자주 앗아가 버린다. (p.121)

내 시선은 설문 참여자의 성별을 가장 정확하게 구분 지어주는 항목으로 향했다. "무슨 옷을 입을지 한 시간 이상 고민한다"라는 항목이었다. 여성은 대체로 남성보다 이 문장에 동의할 가능성이 높았다. "이걸 봐봐. 네가 흥미를 가질 거라 생각했어." 그가 말했다.
여성과 남성을 구분하는 모든 심리적 특성과 관심사 가운데 무슨 옷을 입을지를 고민하는 시간만큼 두드러진 특징도 드물다. 이는 여성의 인생이 얼마나 아름다움에 대한 걱정으로 이뤄지는지를 밝혀줄 강력한 증거가 된다.
나는 결과물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재미있네. 그리고 좀 화도 나고." 빌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외모 강박의 대가에 관해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신체적 자유와 인지적 자원의 감소, 그리고 신체적·정신적 건강의 저해 외에 여성은 외모 강박에 대응하기 위해 시간과 돈을 써야 한다. 우리는 대가를 치르고 또 치르게 된다. (p.122-123)

분명히 말해두자면, 나는 여성이 아름다움을 위한 비용과 행위를 포기해야 할 도덕적 의무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몇 년 전 언어학 교수인 친구가 눈썹을 다듬어주는 동네 가게에 학생들과 함께 가기로 약속햇다. 이는 단합을 도모하는 행사였고 학생들은 여자 교수가 함께한다는 것에 기뻐했다. 친구는 모임을 함께하자며 나를 초대했다. 나는 고마웠지만 초대를 거절했다. "‘미모관리용‘ 뭔가를 또 늘리고 싶지 않거든." 나는 설명했다. 이후 우리 테이블에서는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학생들이 이 만남을 무척 기대하고 있어. 눈썹 다듬기를 강요하는 게 아니야. 그리고 비싸지도 않아. 겨우 10달러라고." 친구는 말했다.
(중략)
당시 나는 눈썹을 다듬기가 싫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내가 그걸 좋아하게 될까 봐 걱정됐다. 눈썹을 다듬은 후 더 예뻐 보인다고 느낀다면, 그때부터 눈썹 다듬기는 외모를 유지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해야 할 일로 추가됐을 것이다. 나는 기종의 ‘해야 할 일‘ 목록에 그 어떤 것도 추가하고 싶지 않았다. 여러 방식으로 내 외모를 감시하고 있는 또 다른 나를 부추기고 싶지 않았다. (p.128)

내가 이 책을 위해 인터뷰했던 성인 여성 가운데 상당수가 출근길에 화장한다고 대답했다. 그런 행동은 전혀 특이한 것이 아니다. 이는 여성이 매일 아름다움을 위해 당연히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는 압박의 상징이었다. NBC의 뉴스 프로그램인 <투데이Today>는 외모에 들이는 시간적 비용을 추정하기 위해 비공식적 조사를 실시했다. 조사에 따르면 미국 여성은 하루 평균 55분을 외출 준비에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1년으로 치면 2주나 되는 시간이다. 영국의 한 마케팅 설문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는데, 여성은 평생 거의 2년의 세월을 화장하는 데 쓴다고 한다. (p.142-143)

‘아름다움의 심리학‘을 수강하는 학생들에게 아름다움에 얼마나 돈을 쓰는지 계산하게 한 뒤 다시 일주이란 외모에 쓰는 시간을 모두 계산해보게 했다. 여학생과 남학생 간의 차이가 일주일에 두 시간에서 다섯 시간까지 벌어지는 것은 뻔한 일이었다. "남는 시간에는 뭘 하나요?" 나는 남학생들에게 물었다. 비디오 게임을 하거나 잠을 잔다는 것이 가장 흔한 대답이었다. 수업을 함께 듣는 여학생들은 부러워했다. (p.143)

지난 몇십 년간 여성의 평균 몸무게가 증가하는 동안 미스 아메리카 선발 대회, 플레이보이 화보 등에 등장하는 여성은 더욱 날씬해졌다. TV 에 나오는 장면도 다를 바 없다. 프라임 시간대에 방송되는 시트콤 열여덟 편에 등장하는 여주인공을 분석한 결과, 76퍼센트는 저체중이었다. 56개 프로그램의 275개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1,000명 이상의 주요 등장인물을 대상으로 한 또 다른 연구에서 여주인공 세 명 가운데 한 명은 저체중이었다. 참고로 미국 성인 여성 중 저체중이 차지하는 비율은 3퍼센트 미만이다. (p.155-156)

불행히도 비판적 논쟁이 여성에게 정말로 도움이 되는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미디어 리터러시의 수준이 높다 해도 외모 강박에 대해 아무런 면역력도 생기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더욱 우려되는 점은, 마지막 유형(광고주는 여성을 괴롭힌다)에서 높은 점수를 기록한 여성은 낮은 점수의 여성보다 자신의 외모에 덜 만족스러워한다는 점이다. 내가 의심하는 부분은 이런 이미지에 맞서 여성이 만들어내는 주장은 대개 이미 심리적 손상을 입은 후에야 등장한다는 점이다. 즉 우리는 이미지에 한 방 맞은 후에야 응전을 시작한다는 것이다. (p.206)

(도브의 ‘아름다움을 선택하세요 Choose Beautiful‘광고를 언급하며) 오히려 이 캠페인은 여성이 외모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한다. 광고주들의 의도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이런 광고들은 실질적으로 신체 모니터링과 자기 대상화를 부추긴다. 좋은 의도로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신체 모니터링의 영향력은 반反직관적이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외모를 칭찬하면 여성들이 자신의 외모에 대해 더 긍정적으로 느낄 것이라고 가정한다. 그러나 외모에 대한 칭찬은 여성의 관심이 외모로 옮겨가게 하거나 자신의 몸이 평가받고 있다고 느끼게 하여 심하면 신체 혐오로 이어질 수 있다. "와! 이 남자가 날 섹시하다고 생각하네!"라는 생각에서 "잠깐, 이 남자가 내 배를 보고 있는 것 같아. 이 셔츠를 입었을 때 내 배가 납잡해 보이던가? 그럼 내 다리는 어떻게 보이지? 내 머리는?"이라는 생각으로 옮겨간다. 절대로 도달할 수 없는 이상적인 미를 기준으로 자신의 몸을 점검하게 되는 것이다. (p.223)

나는 베스에게 그녀의 아버지가 여성과 아름다움에 대해 무엇을 가르쳐주었냐고 물었다. 그녀의 대답은 예상 밖이었다. 그녀는 아버지가 외적인 아름다움을 전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아버지가 그렇게 생각하는지 어떻게 알았어요?" 나는 물었다.
"아빠가 엄마를 대하는 모습을 보고 알았어요. 엄마는 옷을 찾거나 유행을 좇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지 않았거든요. 그런 엄마를 존중하는 ㅐ도나 엄마한테 외모의 기준을 내세우지 않는 모습에서 아버지가 외모를 중시하지 않는다고 느끼게 된 것 같아요." 다시 말해 베스 아버지의 행동은 "당신은 아름다워요"라는 메시지보다 훨씬 강력했던 것이다. (p.224-225)

아름다움에 무관심하려는 베스의 노력이 일상생활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궁금했다. 그녀에게 SNS를 하냐고 물었다. 베스는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활발히 하고 있다고 했다. "SNS에서 다른 여성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나요?" 나는 물었다.
"제 친구들을 포함해서 많은 사람이 이것저것 바꿔요. 더 예쁘게 보이기 위해 앱을 사용하죠. 저는 그런 걸 하지 않아요. 제 SNS 를 보여드릴게요. 저도 제 사진을 올리기는 해요. 하지만 제가 웃기게 나온 사진이나 제 성격이 드러나는 사진을 올려요." 베스가 대답했다.
나는 그녀의 SNS 사진을 둘러보고 그녀의 말을 이해했다. 환한 웃음과 바보 같은 표정이 가득한 사진이었다. (p.225)

머리나는 잠시 말을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 그려는 청소년기와 20대에 접어들 무렵에는 화장을 했었다. "일을 시작할 때 ‘화장을 해야겠구나. 왜냐하면 프로답게 보여야 하니까.‘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화장을 조금 했죠. 그러다 화장이 지겨워졌고 그만뒀어요. 그러니까…그래요. 화장을 하지 않기로 의식적으로 결정한다는 게 뭔지 알아요. 외모에 대한 규범의 일부를 어기는 거죠.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그거 알아? 사람들은 내가 화장을 하지 않아도 일을 잘한다는 걸 알아. 그러니 그만해! 라고요." 그녀는 말했다.
머리나는 화장을 재미있어하는 여성들이 있다는 것을 안다. 화장은 예술이 되거나 개인적인 표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는 "어떤 여성들은 자신을 결점투성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얼굴의 얼룩덜룩한 부분을 화장으로 감추지 않으면 창피해서 밖에 나가지 못하죠." 라고 했다. 그리고 "여성이 화장을 하는 데엔 수많은 이유가 있어요. 하지만 저는 휘둘리지 않을 거예요." 라고 재차 강조했다. (p.242)

행복 연구가 에드 디너Ed Diener는 대학생 200명을 조사한 결과, 가장 행복한 학생이 평균 수준의 행복 지수를 보인 학생보다 반드시 매력적인 것은 아니라는 점을 발견했다. 신체적 매력은 전반적인 행복과는 낮은 상관관계를 보엿다. 그러나 이를 해석할 때는 주의해야 한다. 행복한 사람은 행복하지 않은 사람보다 스스로를 신체적으로 더 매력적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사실 외모와 행복 간의 약하고 일관된 연관성은 일상생활에서 큰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신체적 아름다움보다 더 강력한 행복의 예측 요인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인간관계나 일일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이 당신을 대할 때, 외모의 영향력은 생각만큼 크지 않다. 아름다움에 대한 편견은 당신에게 영향을 미치거나 당신을 파괴하지 않는다. 아름다움은 마법의 총알이 아니다. (p.245)

우리가 우리 몸을 비하하려는 것은 다른 이들에게 내 몸을 비하해도 좋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 된다. 부정적인 보디 토크는 여성이 항상 외모에 대해 걱정해야 하고 자신의 몸을 싫어하는 것이 ‘평범한‘ 일이라는 메시지를 준다.
그러나 우리의 말은 우리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 외모 강박적인 문화에 맞서는 가장 쉬운 방법의 하나는 외모에 대한 대화를 바꾸는 것이다. 이는 외모에 대해 생각하고 느끼는 방식을 개선하기 위한 첫걸음이다. 가장 좋은 것은 주제를 완전히 바꿔버리는 것이다. 대화의 주제는 매우 많다. 굳이 우리가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는 없다. (p.270-271)

대학을 졸업하고 2년이 지난 어느날 에이미는 세일 제품이 쌓여 있는 상점 앞을 지나게 됏다. 그녀는 100퍼센트 순면이라는 여성 속옷에 주목했다. 전환점이라 말하기에는 이상한 장소였지만 중요한 순간은 언제 어디서 찾아올지 모르는 법이다. 그리고 그날은 그녀가 성인이 되어서 직접 속옷을 사본 적이 없다는 사실에 종식을 고하는 날이 되었다. 그동안은 그녀의 어머니가 속옷을 사다 주셨다. "항상 잘못된 사이즈에 작고 불편한" 속옷이었다. 에이미는 순면 속옷을 두 장 구입했다. 그리고 회의에 들어가기 전에 그 속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녀는 그 순간의 즐거움을 생생히 기억한다. "처음으로 저에게 맞는 커다란 할머니 속옷을 입었어요!"
"어떤 느낌이었나요?" 나는 그녀의 말에 희한하게 기쁜 마음이 들엇다.
"정말 좋았어요! 정말 편안했거든요. 그동안 속옷이 불편해서 내가 까칠하게 굴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제 속옷은 언제나 약간 작았어요. 하지만 그 검은색 할머니 팬티를 입었더니 정말 편안했어요." 에이미는 그날을 떠올리며 쓰러질 정도로 웃었다. (p.291-292)

"계속 그 옷을 입었나요?" 나는 물었다.
"와, 당연하죠." 에이미가 대답했다. "계속 입어요. 그건 스스로에게 관대해지는 거였어요. 제 몸을 받아들이는 행위였죠. 다시는 제게 맞지 않는 옷에 제 몸을 억지로 끼워 넣지 않을 거예요." (p.292)

해나는 음식을 적으로 보라고 배운 적이 없다. 그녀는 "엄마는 정말 좋은 본보기가 되어주셨어요. 엄마는 지나치게 말랐던 적이 없어요. 그리고 건강한 식습관의 모범을 보이셨죠. 그러면서도 때로는 저희가 좋아하는 걸 아낌없이 사주셨어요. 엄마는 ‘나는 가족들과 이 음식을 즐겁게 먹을 거야. 칼로리 따위는 걱정하지 않아.‘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리고 폭식도 하지 않으셨죠."
"음식을 즐겨도 된다고 배운 거군요?" 나는 물었다.
"맞아요." 해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엄마 덕분이에요. 음식에 대한 건강한 태도를 가르쳐주셨어요. 음식은 사람들을 한곳에 모으고 공동체를 만들어 따뜻하게 대접해주는 역할을 해요. 그래서 저는 사람들을 초대해서 요리해주는 걸 좋아해요."
"그게 사람들에게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인가요?" 나는 물었다.
"네. 그래요." 해나는 동의했다. "그리고 친할머니와 외할머니도 요리를 하고 빵을 구워서 사랑을 전하셨어요."
해나는 중요한 부분을 짚어냈다. 다이어트를 하는 여성들은 만성적인 허기에 동반되는 감정적인 괴로움을 겪을 뿐만 아니라 음식을 나눠먹으며 강화되는 사회적 관계에서도 멀어진다. (p.302-303)

긍정적인 신체 이미지를 지닌 여성들은 음식을 즐길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p.303)

해나는 성인이 되어 앞서 말한 그 캠프에서 상담사로 5년간 일했다. 그녀는 "여자애들이 계속 저를 찾아와서 ‘누군가가 저에게 관심을 가질까요? 누군가가 저를 사랑하게 될까요?‘라고 물어요." 라고 말했다.
"그러면 무슨 말을 해주나요?" 나는 물었다.
"저는 ‘네 모습을 모두 살펴봐! 네 모든 면을 봐봐!라고 해요. 너 자신이 되라고 이야기하죠. 나이가 들면서 누군가를 매력적이라고 느낄 땐 그의 본래 모습 자체에서 편안함을 느끼거든요." (p.314-315)

우선 말해둘 것이 있다. 나는 여성이 외모를 가꾸는 모든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그건 현실적이지 않으니까. 또한 대부분의 여성이 원하는 바도 아니고 말이다. 우리는 언제나 외모에 신경 쓸 것이다. 이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외모에 신경을 쓰느라 다른 중요한 목표에서 멀어질 때 발생한다. 이제는 외모에 신경을 쓰면서도 그에 맞춰진 눈금판을 조금 낮출 필요가 있다. (p.335)

대부분의 소녀에게는 옷을 차려입고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이 학교 댄스파티에 가는 재미임을 나도 알고 있다. 그러나 기억하자. 소녀들이 입은 드레스는 너무 짧아서 편안히 저녁을 먹을 수조차 없었다는 것을. 옷이 단 몇 센티미터만 길어져도 뇌 공간의 상당한 부분을 되찾을 수 있고 소녀들도 예뻐 보일 수 있다. 분명 행복한 중간 지대가 존재한다. 우리가 매력적이라 느기면서도 옷 때문에 집중력을 잃지 않을 수 있는 지점 말이다. 인생을 살다 보면 장애물을 넘어야 한다. 우리 삶을 온전히 살아가는 데 방해가 되는 옷을 굳이 선택함으로써 더 많은 난관을 만들 필요는 없다. (p.338)

외모 강박적인 문화가 수천 번 할퀴고 지나간 작은 상처가 소녀나 여성을 무너뜨릴 수 있듯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수천 번의 작은 걸음이 소녀와 여성을 일으켜 세울 수도 있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부터 여성의 외모에 집중하지 않는 자세를 갖추고 다른 이들도 이에 동참하도록 격려함으로써 의미 있는 문화적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그리고 대상화하는 행동이나 광고에 앞장서는 조직을 저지함으로써 더 큰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우리는 다르게 행동해야 한다. 자신을 느끼고 주체적으로 자신을 정의해야 한다. 우리의 돈과 시간을 다르게 써야 한다. 우리의 몸은 더 건강해져야 한다. 우울증과 분노가 흔한 것이 되어서도, 심각한 것이 되어서도 안 된다.
이제 여성은 시선을 받는 대상이 되는 것을 거부하고 멀리 내다보아야 한다. 저 럽은 세상에는 봐야 할 것이 아주 많다. 해야 할 일이 아주 많다. (p.34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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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16 15: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16 15: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16 17: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17 10: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올리브 2018-05-17 0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의 이런 글이 너무너무너무 좋아요. 어린 아가 키우는 중인데 아기 잠자는 시간에 다락방님 글 야금야금 보는 게 얼마나 큰 낙인지! 많이 읽고 또 많이 써보며 언젠가는 저도 다락방님처럼 저만의 글도 써보고 싶어융- 맨날 읽기만 하고 가다가 오늘은 흔적도 살짝 남겨요! 아줌마되고 살도 찌고 화장도 잘 안하게 되면서 괜히 주눅들도 마음 불편했는데 저도 이 책 읽으면서 제 느낌의 실체? 를 파헤치고싶네요.ㅋㅋ

다락방 2018-05-17 10:22   좋아요 0 | URL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라는 어마어마한 과정을 겪었는데도 그 사람에게 한결같이 날씬하고 예쁜 모습을 기대하고 바란다는 것 그리고 그렇지 않으면 죄책감을 느껴야 한다는 것도 너무 이상하잖아요. 그쵸? 왜 그 어마어마한 과정을 겪었는데도 변함없이 꾸밈노동에 몰두해야 하나요? 일단 몸을 추스리고 돌보는 게 먼저지요. 앞으로 아이랑 함께 지내려면 무엇보다 건강해야 하는데, 괜한 죄책감으로 건강 해치지 마세요, 배유미님.

지금처럼 아가 잠든 시간에 읽고 싶은 글 읽고 생각도 하고 글도 쓰면서 그 날 그 날의 감정을 정리하고 돌보는 게 훨씬 유익할 것 같아요. 스스로에게도요. 그리고 앞으로 아가랑 함께할 날들을 생각해서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근육을 단단하게 만들기 위한 운동을 하는 게 도움이 될거라고 생각합니다. 고통스럽거나 스트레스 받지 않는 선에서요. 건강하자고, 행복하자고, 즐겁자고 하는 거니까요.


천천히 책 읽어보시면 도움이 될거예요.
그리고 배유미님께 읽는 재미를 드릴 수 있는 글을 쓴 제가 참 자랑스럽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흔적 남겨주셔서 더 감사하고요. 앞으로도 종종 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