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집에 수리 및 도배를 해야 했고 그 일로 엄마가 몹시 힘드셨을 거라 퇴근 후 엄마를 불러 외식을 했다. 엄마 현대백화점 천호점에 내가 가고 싶었던 식당이 생겼어. 탄탄면 먹으러 가자. 나는 퇴근후 백화점에서 엄마를 만나 12층에 있는 크리스탈 제이드로 갔다. 탄탄면과 마파두부밥과 소룡포 그리고 소주를 시켜서 엄마랑 함께 맛있게 먹었다. 탄탄면 먹으러 갈 데가 별로 없었는데 가까운데 생겨서 좋네, 그런 얘기도 했고 아빠의 회복에 대한 얘기도 했다. 다 먹고 계산을 한 후 엄마랑 화장실에 들렀다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12층에서부터 차례로 내려와 백화점 바깥으로 나갔다. 엄마 집까지 슬슬 걸어가자 소화시킬 겸, 그리고 가는 길에 이마트 들러서 키오스크로 상품권좀 교환하자, 그러면서 걸었다. 엄마는 병원에 입원중이신 아빠랑 통화를 시작하셨고 나는 그런 엄마보다 두 걸음쯤 앞서 걸었다. 그런데 저기 앞에 불빛이 환하게 보였다. 저 불빛은.. 뭐지? 하는데, 아니, 그건 자동차의 헤드라이트라는 걸 이내 알게 되었고, 내가 그걸 알게된 이유는 자동차 한 대가 차도에서 인도로 돌진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헤드라이트를 본 건 그 차가 내가 있는 인도 쪽을 향했기 때문이고. 차가 달리고 있다는 걸 안 순간 나는 얼른 뒤를 돌아 엄마를 붙잡고 "도망쳐!"라고 말했다. 엄마는 영문도 모르고 나랑 뒤를 돌아 뛰기 시작했고 나는 그 순간에 '우리는 저 차를 피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이내 쿵 소리가 났고 두려운 와중에 뒤를 돌아보니 인도로 뛰어든 차는 옷가게를 들이박고 멈춰 있었다. 차의 앞부분 중간쯤이 가게에 박혔으니 당연하게도 가게는 다 박살이 나 있었다. 길거리에 유리파편이 널려 있었다. 나는 얼른 그 자리에서 119에 신고를 했다. 내가 있는 위치를 말하고 내가 본 상황을 말했다. 전화를 받고 있는 직원은 내게 사람이 다쳤냐고 물었고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고 했다. 전화를 하는 동안 그리고 끊고 나서도 보았을 때는 다친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흰머리가 조금 있는 차의 남자 운전자는 차에서 내리는데 어디 불편해 보이지도 않았다. 가게 안에도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아무도 다치지 않았나봐, 하면서 가까이 갔다. 사람들이 웅성웅성 하고 차 근처에 두어명이 차 밑을 보다가 사람이 있다고 꺼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차를 들어 올려야 한다고. 나는 얼른 달려갔다. 엄마는 나를 붙잡고 가까이 가지 말라 말리셨는데, 사람이 밑에 있다잖아! 하고는 달려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차를 들어 올렸다. 올리면서도 올려질까 의심했고 그런데 올려야한다 생각했다. 여러명이 차를 들어 올리고 있었고 밑에 깔린 사람을 꺼내려던 사람들은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했다. 그리고 이제 됐다고 해서 차를 놓았을 때 차 밑에서 꺼낸 사람은 어디에서 났는지 모를 피를 바닥에 흘리고 있었고 숨을 헐떡이는 것 같았다. 살아있어, 살아있어. 나는 얼른 119에 전화했다. 부상자가 있다고 알려야 했다. 그런데 내가 119에 전화를 하자 동일건으로 신고 전화를 한 거라면 끊으라는 안내 메세지가 나왔다. 전화연결이 잘 되지 않는 걸 보니 사람들이 죄다 전화를 걸고 있는 모양이었다. 마침 내 옆의 어떤 여자분과 통화가 된 것 같았다. 그 분은 전화의 상대방에게 규칙적으로 헐떡이시는 것 같다, 엎드려 있다, 여자분이다, 이런 얘기를 했다. 어떤 사람들은 정신 차리세요, 제 말 들리세요, 쓰러져있는 분께 말을 걸었고, 어떤 사람들은 가족에게 알려야 할 것 같다고 옆에 떨어진 가방을 뒤졌는데 거기에선 핸드폰이 나오지 않앗다. 구급대원들이 바로 도착했고 그 자리에서 심폐소생술을 시도했다. 살아있는 것 같았는데, 아무리 심폐소생술을 시도해도 기척이 없었다. 아 어떡해 어떡해, 그렇게 엄마가 계신 곳으로 갔는데, 우리가 차를 들어올렸던 그 자리로 천장에서 커다란 유리가 조각나며 떨어졌다. 아마도 차가 박을 때 금이 갔다가 지금 떨어진 것 같았다. 주변 사람들은 또다시 소리를 질렀고, 나는 방금 내가 거기 있다 온 터라 다시 한 번 놀랐다. 구급대원들은 부상자를 저 쪽으로 옮겨 다시 심폐소생술을 시도했다.
엄마는 사는 거, 저 사람 살아있다는 거 보고 가고 싶어, 라고 하셔서 한참 거기 있었지만 내내 심폐소생술 하는 것만 보았다. 그리고 우리는 집으로 향했다.
가는 길 내내 여러가지 생각들이 휘몰아쳤다. 인도로 향하는 차를 보는 순간 도망치면서도 피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찰나의 그 두려운 감정, 차를 들어올리고 그 밑에서 피 흘리던 부상자를 꺼냈을 때의 그 주저앉을 것 같았던 두려운 감정. 이런 감정들이 휘몰아쳤다. 우리가 화장실에 들르지 않았다면, 에스컬레이터가 아니라 엘리베이터를 탔다면, 그렇게 1,2분만 앞서 나왔다면, 돌진하는 차에 내가 부딪쳤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쓰러져 있는 부상자를 보면서 자꾸 눈물이 났었다. 저 사람 어떡해, 엄마, 저 사람 어떡해, 저 사람 가족들은 어떡해, 이럴 줄 몰랐을텐데 어떡해, 발을 동동 굴렀던 것들까지. 그리고 천장에서 쏟아지던 유리를 내가 간발의 차이로 피했던 것까지. 이런것들이 휘몰아쳤다. 중간에 엄마와 전화를 끊었던 아빠는 무슨 일이냐 다시 전화를 걸어오셨고 나는 동생들에게도 이 소식을 전했다. 여동생은 언니, 청심환 먹고 자, 그리고 한바탕 울어, 라고 했는데, 동생들과 전화를 끊고 여동생이 메세지로 그걸 내게 전한 순간, 엄마는 내게 "너 청심환 사줄까?" 하셨다. 나는 응, 먹어야될것 같아, 라고 말하고 그걸 신호로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길에서 울고 있었다. 엄마, 우리가 피하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게 자꾸 생각나, 인도로 뛰어들던 차의 불빛이 자꾸 생각나, 차를 들어올렸을 때 그 밑에서 사람을 꺼냈던 게 자꾸 생각나, 이러면서 울었다. 엄마는 걷다가 나온 약국에 들러 내게 청심환을 사주셨다.
집에 돌아오니 머리도 아픈 것 같고 뱃속 가득 커다란 돌덩이가 들어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맥이 풀렸다. 청심환 먹었으니 괜찮겠지, 아빠는 너 괜찮냐고 전화를 걸어오셨고 여동생도 안부를 묻는 전화를 해왔다. 나는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웠다. 아무 생각하지 말고 자야지. 엄마는 내게 수면제를 먹겠냐 물으셨고, 청심환을 먹은 마당에 수면제까지 먹으면 안될 것 같아 됐다고 말했다. 그런데 잠이 오질 않았고 머릿속에 반복해 자동차의 헤드라이트, 우리가 차를 들어올리던 장면, 엄마에게 도망치라고 소리치던 장면들이 자꾸 떠올랐다. 나는 울지 않는데 눈물이 자꾸 흘렀다. 나는 안우는데 왜 눈물이 나오고 있지. 그리고 밤새 잠을 설쳤다.
삶이 허무하다는 생각을 했다. 엄마랑 집으로 돌아오는 길 신호가 초록색으로 바뀌길 기다리면서, 엄마 이게 다 무슨 소용이야, 내가 아무리 신호를 잘지켜도 인도로 돌진하는 차가 있으면 사고가 나는 건데, 내가 아무리 조심해도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잖아, 다 부질없네. 나는 이렇게 허무주의자가 되는걸까, 생각했다.
알고 보니 부상자는 자전거를 타고 그 가게 앞을 지나던 터였다. 나중에야 흩어진 파편들 중에 자전거가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저 사람, 저렇게 자전거 타고 가던 사람, 저 사람은 인도로 돌진한 차에 치어 부상을 입을 줄 알았을까. 가족들은 집에서 기다리다가 이 소식을 알게 되면 얼마나 놀라고 당황스러울까.
잠을 한숨도 못자고 심장이 쿵쿵 거리는 걸 느껴야 했다.
나 괜찮을까? 나는 괜찮은걸까? 이게 나를 지배하게 될까? 나는 내가 잘 때 곧잘 하던 가슴 쓸기를 했다. 손바닥을 펴고 내 가슴을 쓸어내렸다.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그런데 뭐가 괜찮지?
나는 괜찮지 않았다.
오늘 아침 일어나서 출근 준비를 하면서, 오늘은 집에 돌아오면 신경안정제 한 알을 먹고 자야겠다고 생각했다. 청심환 처음 먹어본 거였는데 나한테 아무런 도움이 안된 것 같아. 신경안정제 한 알 먹고 자자. 사실은 아침부터 먹고 싶었지만 그걸 먹으면 졸린 터라 먹을 수 없었다. 회사 근처에 도착했을 때 엄마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그 사람 사망했대, 라고 엄마가 소식을 전해주었다. 아 어떡해 엄마, 어떡해. 그 사람 살려야 돼서 차를 들어올렸는데.. 살기를 그렇게 바랐는데. 그 사람 어떡해. 그렇게 죽을 줄은 몰랐을텐데 어떡해.
엄마랑 전화를 끊고 나자 그 사람을 차에서 꺼내지 말아야 했던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책이었던가 아니면 방송이었던가, 사고난 그대로 사람을 두는게 더 나빠지는 걸 방지한다는 걸 본 것 같은데, 만약 차 밑에서 꺼내지 않았다면 살았을까? 잘못한걸까? 온갖 생각이 휘몰아쳤다.
[단독]천호역서 SUV차량 상가로 돌진…1명 사망·2명 부상 - 노컷뉴스 (nocutnews.co.kr)
오늘 아침, 친구에게 문자로 이 소식을 알렸다. 친구야, 나 괜찮은걸까?
친구는 내 얘기를 듣고난 후 너는 니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으니 조금만 슬퍼해도 될 것 같다, 라고 답해주었다.
그런데도 자꾸 울지않는데 눈물이 난다.
이것도 시간이 지나면 차츰 잊혀질까. 도망치라고 말하던 일과 도망칠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일과, 차를 들어올리던 일과, 그 밑에서 피 흘리던 사람이 나왔던 일을 생각하며 살지 않을 수 있을까. 이 사람 어떡해, 어떡해, 안타까워하던 그 마음을 잊고 살아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