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두 사람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5월
평점 :
절판


이 책이 잘 읽힌다는 게 과연 장점일까? 유능한 작가는 어디든 대입할 대답도 소설에 담고 있다. 단편 옥수수와 나에서 “쓰레기라도 잘 읽힐 수는 있는 거야.” 답을 찾아냈다. 이 책에 대한 내 견해도 그렇다는 뜻의 인용은 아니다. 잘 읽히긴 했는데 무엇을 잘 읽은 건지는 잘 모르겠다. 뭘 먹은 거 같긴 한데 입맛만 자꾸 다시고 있다.

 

우선 단편들의 배열이 맘에 들지 않는다. 가장 좋았던 오직 두 사람이 맨 앞에 있어서 점점 맛없는 부위로 넘어가는 기분이다. 작가가 밝힌 단편의 발표 순서에 따르면 옥수수와 나, 슈트, 최은지와 박인수, 아이를 찾습니다, 인생의 원점, 신의 장난, 오직 두 사람이다. 옥수수와 나, 슈트, 최은지와 박인수는 이 책에서도 순서대로 이어져 있고, 출판계 인물이 나온다는 공통점이 있다. 차라리 이 세 작품 먼저 읽고, 신의 장난, 인생의 원점아이를 찾습니다, 오직 두 사람순서가 더 나을 거 같다. 아니면 오직 두 사람」을 중간쯤에 읽어도 좋을 것이다. 냉면 계란 노른자를 먹는 취향에 따라 오직 두 사람을 읽으시라 당부하고 싶다.

 

사은품이던 [김영하 소설 A-Z] 책자에 맞춰 나도 [오직 두 사람 리뷰-]을 작성해 보았다.

 

관념, 계획 (옥수수와 나)

그러는 너는? 관념을 어떻게 처리해?”

나는 관념이 아니라 정액을 처리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소설가는 말이야. 현실적이어야 해.

철학이 이의를 제기한다.

그게 과연 그렇게 간단할까? 너는 관념에서 출발해서 거기에서 사실의 살을 붙여가는 일을 하잖아. 아이디어에서 출발해 거기에 육체를 더하는. 그러니까 네가 뭐라고 떠들든 너 역시 관념을 먼저 처리해야 할 거야.”

소설은 그런 게 아냐. 매우 육체적인 거야. 심장이 움직이면 마음은 복종해. 우리는 시인이나 평론가와 다른 몸을 갖고 있어. 문학계의 해병대, 육체노동자, 정육점 주인이야.”

너의 그 확신이 나는 불길해.”

누가 철학자 아니랄까봐 냉소적이기는.

살인 계획이라는 건 말야. 이민하고 비슷한 것 같아. 한번 그쪽으로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멈출 수가 없어.”

범죄자와 작가는 비슷한 구석이 있다. 은밀히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실행에 옮긴다. 계획이 뻔하면 덜미를 잡힌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때로는 자기 꾀에 자기가 속는다는 점도 그렇지.”

일종의 메타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불륜과 느와르를 섞었고 소설가가 조현병으로 빠지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것이 뻔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자신을 옥수수라고 여기는 초현실성이 이 단편을 산뜻하게 해준다. 옥수수는 관념도 육체도 아니니까.

 

 

//농담, 죽음, (슈트)

농담죽음의 공포를 처리하는 방식이라고 말한 것이 커트 보니것이었던가.”

그는 어느새 탐정이 알려준 주소지 앞에 도착해 있었다. 아이폰에 받아둔 구글맵을 따라가니 실수가 없었다. 우주의 인공위성이 자신을 죽은 아버지에게로 인도했다고 생각하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여기에은 없다.” 우주 공간으로 올라간 유리 가가린이 말했었지. 신은 없지만 아버지는 있어. 위성의 눈으로 나를 보고 있지.”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아버지가 죽고 나서야 찾아갈 수 있게 된 지훈. 아버지 때문에 화가가 되지 못하고 시인이 되었는데, 아버지도 화가로 살아오지 못했다. 장르 문학 편집자이기도 한 지훈에 걸맞는 스토리가 펼쳐진다. 유머와 죽음을 잘 버무린 단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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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 믿음 (아이를 찾습니다)

무지는 인간을 암흑 속에 가둔다

우리가 네 배내옷에서 찾아낸 머리카락과 네 구강에서 긁어낸 세포에서 나온 유전자가 일치하면 그게 한 사람이라는 증거라는데, 우리는 그걸 믿어야 한다는데, 반드시 믿어야 한다는데, 그럴 수밖에 없다는데, 왜 우리 눈에 보이지를 않을까?” 

아이를 유괴당한 한 가정이 파탄 지경에 이르러서야 아이가 돌아오게 된다. 불행에 너무 익숙했던 터라 내일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모두가 상처받았고 되돌릴 수 없다. 이 작품은 세월호 참사가 있었던 2014년 겨울에 발표되었다. 작가에게도 세월호는 여러 가지 삶의 경로가 되었다. 자세한 건 후기에서 읽어보시길.

 

 

아빠, 용서 (오직 두 사람」)

(현주) "특히 현정이는 모든 면에서 논리적이고 명쾌하죠. 외국어 같았어요. 왜 외국어로 말을 하면 좀더 이성적이 된다잖아요. 아빠하고는 달라요. 저에게는 아빠가 모국어예요.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통한다는 느낌이 있어요.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에요. 그냥 운명 같은 거예요.”

(현정) “언니는 내가 아빠한테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는구나. 그런데 어쩌지? 내가 아빠를 버린 거야. 언니는 내가 아직도 아빠한테 사랑받지 못해서 괴로워하고 있다고 생각해? 아빠가 언니한테 준 거, 그게 사랑이야? 그리고 무슨 용서? 용서가 필요한 사람은 아빠, 내가 아니라.” 

가족 간의 이해는 점점 멀어져 결국 한국에서는 아빠와 현주, 뉴욕에서는 엄마와 현정 그렇게 두 사람씩의 어둠으로 커진다. 현주는 뉴욕으로 가 아빠와 담배 둘을 끊기도 하는데 결국 아빠에게 돌아간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현주는 어떤 혼자로 살아가게 될까. 관계의 이합집산이 잘 드러난 단편이다.

(오빠) “현주야,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는 말 있지? 이 말은 영 뒤집을 수가 없네. 뒤집어도 똑같아. ‘산 사람은 살아야지가 돼.”

 

 

추문 (최은지와 박인수)

그냥 감당해. 오욕이든 추문이든. 일단 그 덫에 걸리면 빠져나갈 방법이 없어. 인생이라는 법정에선 모두가 유죄야. 사형선고 받은 죄수가 하는 말이니까 새겨들어.”

문학 용어로 사건이라 불리는 그것은 현실에서 대체로 추문으로 불린다. 그것은 모든 인간을 재밌게 만든다. 자발적으로 미혼모가 되려는 최은지 때문에 주인공은 위선자가 되지 않으려 할수록 추문에 휩쓸린다. 불가항력으로 암 환자가 된 친구 박인수의 삶과 죽음을 통해 그는 위선에서 조금 탈출할 용기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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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출 (신의 장난」)

이게 정상적인 방 탈출 게임이에요?”

시대가 잘 느껴지는 소재다. 소재가 바로 답을 암시할 때가 있다. 탈출 못 하겠군 생각했는데 역시 탈출하지 못 했다. 책의 마지막 단편이었는데 무척 실망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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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회, 회귀 (인생의 원점」)

마음의 은 마음으로 갚는 것인가, 아니면 세상의 모든 것처럼 마음의 에도 값이 있어 돈으로 치를 수 있는 것인가. 알 수 없었다.”

후회 안 해. 너를 다시 만나기 전까지의 삶은 잘 생각이 안 나는 간밤의 꿈 같아. 한밤중에 무슨 꿈을 꾸었든 아침에는 전날 밤에 잠든 곳에서 눈을 뜨잖아.”

서진에게는 인아가 회귀할 원점이었으나 인아에게 서진은 인생이라는 힘겨운 등산길에서 만나게 되는 대피소와 같은 것이 아닐까.”

어릴 적 단짝이다가 성인이 되어 다시 만난 서진과 인아 사이엔 이젠 여러 사람이 얽혀 있다. 구타와 불륜과 자살과 살인과 반신불구이런 것들은 왜 항상 붙어 다닐까. 이런 것들을 지나고 나서 인생의 새로운 원점을 생각하는 건 진부하지만 인생은 또 대체로 그렇지 않던가.

 

  

 

"작가는 팩트를 확인하고 인용할 근거를 찾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이들을 대신하여 '잘 느끼는' 사람이 아니겠는가"라고 김영하 작가는 말했다. 그에게 더 많은 느낌과 새로운 원점들이 찾아오길 바란다. 독자들에게 찾아오지 말라고 해도 찾아가게.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1회 보니 낸 책은 많은데 읽은 독자는 별로 없는 작가라며 자조하시던데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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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nsun09 2017-06-05 13:0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나이가 들어가면서 새로운 작가를 찾기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 위주로만 읽게되네요. 김영하 작가도 그 중 한 분인데,전 이 소설을 읽으면서 그냥 반가움만 앞서서 아무런 비판 정신없이 읽기만 했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술술 읽혀지는 장점도 있었지만^^
아무튼 님 글을 읽다보니 나이듦이 독서에 있어 새로운 도전에 방해가 된다는 핑계는 그저 핑계라는 생각이 듭니다. 반성하고 갑니다~~

AgalmA 2017-06-06 01:30   좋아요 3 | URL
좋아하는 작가 책 열심히 읽는 게 나쁠 리가 있나요^^ 작가에게도 큰 힘이 될 테고요.
제가 너무 기대가 컸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말도 역시 도움이 안 될))

지금행복하자 2017-06-05 13:4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갈수록 잘 안 읽게 되는 작가가 되고 있어요.. 읽으면 재미읽게는 읽는데 선뜻 손은 가지 않아요. 제 취향 탓으로 돌리고 있어요~

AgalmA 2017-06-06 01:12   좋아요 1 | URL
저도 언젠가부터 김영하, 하루키 등의 책을 잘 안 읽게 되었어요. 한 번도 읽어보지 못한 빛나는 작가가 세상에 얼마나 많은지 모두에게 두루 관심을 가지기엔 역부족입니다.
취향 문제도 크죠. 우리가 바라게 되는 것도 점점 많아지니까요.

보슬비 2017-06-05 22:1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갈마님은 읽으시고 평이라도 남기시지 저는 취향이 바뀌는지 예전에 좋아하던 작가의 신작이 나왔는데 감흥도 없고 시큰둥해지네요. ^^;;

AgalmA 2017-06-06 01:14   좋아요 1 | URL
무플보다 악플이 낫다란ㅎ? 이번 김영하 신간은 굿즈 뽐뿌가 컸어요ㅎ;
이번 독서에서도 김영하 작가에게 예전부터 아쉬웠던 게 여전히 해소가 안 되어서 또 한동안 김영하 작가 책 안 보게 될 듯...

북다이제스터 2017-06-05 22: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김영하 소설은 단 한편도 못 읽어보고 수필만 달랑 한 권 읽었는데요, 명성에 비해 몹시 썰렁하더라구요. 내공이 몹시 부족하단 느낌도 들었구요.
김영하 작가의 대표작이 무엇인가요? 더 읽고 판단해야 겠습니다. ㅎㅎ

AgalmA 2017-06-06 01:17   좋아요 0 | URL
썰렁ㅎㅎ 약간 시니컬한 게 김영하 작가 특징이기도 하죠. 본인 자체도 글도.
<아랑은 왜>나 <검은꽃> 같은 건 역사공부도 많이 하고 쓴 거 같던데 북다이제스터님은 역사 좋아하시니 그 책 중 하나 읽어보시죠?

겨울호랑이 2017-06-05 23: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 소설에서 주제 단어 잡기가 쉽지 않을 것 같은데, AgalmA님께서는 잘 묶으셨네요. 저는 소설 읽다보면 생각없이 읽는 경우가 대부분인지라 ㅋ

AgalmA 2017-06-06 01:20   좋아요 2 | URL
분석하는 걸 재미로 여기니까요ㅎ;;
생각없이 읽게 되는 책은 제가 되려 피하는 편입니다. 시간죽이기를 하려면 차라리 어려운 책 보며 골머리 앓는 쪽을 택하겠어요. 그리고 나를 탓하죠;;;

겨울호랑이 2017-06-06 10:37   좋아요 2 | URL
저는 어려운 책을 보는 것보다 잠자는 게 더 좋아요^^: AgalmA님 존경 한 표 헌정합니다

AgalmA 2017-06-07 19:39   좋아요 2 | URL
저도 잠 좋아해요!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치고 우리 좀 언밸런스하네요ㅎㅎ
한사람은 새벽기상, 한사람은 불면증에다가 둘다 잠보다 어려운 책이랑 씨름하는 게 일이고ㅋ

겨울호랑이 2017-06-07 19:38   좋아요 2 | URL
^^: 수면의 ‘양‘보다는 ‘질‘로 승부를.ㅋ 푹 잘자면 자는 시간은 조금 짦아도 되겠지요? ㅋ

AgalmA 2017-06-08 18:42   좋아요 2 | URL
잠도 겨울호랑이님과 저는 좀 다른 관점이네요ㅎ
제겐 잠이 휴식보다는 영감과 모험의 세계입니다. 현실 세계를 벗어나게 해 주면서 이 세계를 살 수 있는 힘과 재료를 주는 곳이죠. 그래서 질보다 양이 더 필요하죠ㅎ 헌데 불면증이라니... 사는 거 참 복잡해요...

커피소년 2017-06-08 23:10   좋아요 1 | URL
잠이 휴식이라서 좋은 점도 있고.. 긍정적인 꿈을 꾸면... 삶의 위안이 될 수도 있고.. 잠이라는 것은.. 여러모로 사람에게 있어서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정말 삶이 힘들고 지칠 때는 잠자는 시간 제외하고는 다 싫다고 느낄 때가 있으니까요... 꿈도.. 많이 꾸면.. 피곤하고 힘든데.. 꿈에서 보여 지는 것들이 생각해보면 정말 좋은 작품이 될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하더군요.. 평소 생각지도 못 했던 영상이 꿈에서는 펼쳐지니까요... 간혹 이 꿈.. 영화로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더군요..ㅎㅎ 너무 주관적이라는 것이 문제지만요..ㅎㅎ

AgalmA 2017-06-09 00:14   좋아요 2 | URL
스트레스를 잠으로 푸는 사람이 많죠. 사람 만나 상담하고 대화하는 것도 상당한 에너지가 소모되는데 그것도 그때 뿐일 때가 많죠. 모든 상처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라 타인이 이해하는 데는 한계가 있고, 트라우마 같은 경우는 그림자처럼 일상을 따라 다니니 자기만의 감당이죠. 술도 체력이 가능해야.... 잠은 큰 노력없이 취할 수 있는 처방이죠.
예술가나 작가들 상당수 꿈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죠. 깨고 나서 이성적으로 생각할 때 개꿈 같은 때도 있지만 그 명작이 기억 안 날 때가 더 문제ㅎ; 초현실주의는 무의식을 전투적으로 현실로 가져오려 했죠. 폴 매카트니는 잠에 취해 일어나 ˝예스터데이˝를 흥얼거리며 잘 복기했죠. 무엇보다 부지런해야 한다능! 꿈 일기도 부지런해야 하고... 어휴, 부지런해야 될 게 넘 많다니까요.

겨울호랑이 2017-06-09 00:25   좋아요 3 | URL
^^: 잠 못 이루시는 두 분 생각도 많으시고, 하시려는 바도 많으셔서 잠을 못 이루시는듯 ㅋㅋ 저는 부지런하게 살지 않고 대충 살렵니다 ㅋㅋ

AgalmA 2017-06-09 00:28   좋아요 2 | URL
말은 그렇게 하시지만... 겨울호랑이님의 다음 리뷰도 부지런이 빠질 수 없음을 예언합지요! 우후후))

겨울호랑이 2017-06-09 00:33   좋아요 2 | URL
^^: 다음 리뷰 주제는 ‘비움‘으로 정했습니다.대충대충 쓰겠습니다.ㅋㅋ ...^^:

AgalmA 2017-06-09 00:41   좋아요 2 | URL
비움이라면 동양철학으로? 곧이곧대로 들을 수 없게 만드셨다고요ㅎ
남이야 뭐라 하든 좋을대로 하십셩~ 겨울호랑이님 성격상 그럴 수 없을 테지만 발로 쓰셔도 정리 칼같이 하실 거 같으니까요ㅎ 그리고 저는 재밌게 읽겠죠^^ 아니, 뭐가 대충이라는 거야! 하믄서ㅋ

겨울호랑이 2017-06-09 00:44   좋아요 2 | URL
발로 쓰려면 더 정성을 다해야할 거 같아 손으로 쓰렵니다^^: 편한 밤 되세요. 전 이만 대박꿈 꿔야겠습니다 ㅋㅋ

겨울호랑이 2017-06-08 18: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 그렇군요. 전 잠자면서는 다 내려놓는 편이라 길몽외에는 취급하지 않으려 해요..ㅋ 이런 AgalmA님 불면증이군요. ㅜㅜ

커피소년 2017-06-08 19:10   좋아요 2 | URL
꿀잠 자는 노하우를 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ㅎㅎ

겨울호랑이 2017-06-08 19:32   좋아요 2 | URL
^^: 제 리뷰 대상 도서 읽기를 추천드립니다. 그래도 잠이 안 오시면 리뷰를 쓰시면 ㅋㅋ 머리를 베개에 대자마자 졸음이 오실거라 생각합니다 .

커피소년 2017-06-08 19:37   좋아요 2 | URL
겨울호랑이님이 추천한 책을 읽는 것이라서 더욱 긴장하고 읽고 글을 써야 할 것 같아서 오히려 불면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있습니다..ㅎㅎ 잠 안 올 때 책을 읽으면 잠이 잘 온다는 분들이 부럽더군요,, ㅎㅎ

AgalmA 2017-06-08 22:05   좋아요 2 | URL
길몽ㅋㅋ 겨울호랑이님은 참 쿨한 마음가짐과 생활을 하시는 거 같아 부러운데요. 저는 참 잡생각이 많아 자려고 누워서 2~3시간이 훌쩍 넘어가는 게 부지기수랍니다. 이럴 거면 차라리 책을 읽자 싶어 책을 읽느라 또 잠을 못자는 악순환ㅎ;
저도 김영성님처럼 잠 안 올 때 책 읽으면 잠 온다는 분 부러워요ㅜㅜ
일전에도 <안티 오이디푸스> 읽다가 잠은 커녕 골똘히 생각하다 머리만 지끈거려 휴식 차 E. H. 카 <도스또예프스키 평전>을 펴들었는데...넘 재밌는 거에요. 그리고 밤을 꼴딱 샜죠ㅜㅜ; 일 독촉하고 있는데 이러고 있으니.... 도선생이 도박빚, 마감에 쫓기며 글을 썼던 심정 저는 정말 공감해요ㅠㅠ
요즘 리뷰쓰기가 어려운 상황이라 괴롭습니다. 내가 재밌게 본 걸 전해 줄 시간이 없엉!

겨울호랑이 2017-06-08 22:30   좋아요 2 | URL
AgalmA님 생각의 속도를 손이 못따라가는 것 같네요. 저는 그처럼 빠르지 못해 천천히 생각하다 잘 잡니다.ㅋ 머리만 대면 잠을 자니..잠자는 숲속의 호랑이? ㅋ

커피소년 2017-06-08 22:33   좋아요 2 | URL
요즘 겨울호랑이님과 아갈마님의 대화를 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과거에는 아갈마님과 그 장소님이 콤비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아갈마님이 그 장소님의 글을 발견하고 기쁨을 주체하지 못 해 댓글을 남기셨던 걸로 기억 합니다..ㅎㅎ

커피소년 2017-06-08 19: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잠에 대해 걱정이 많은 사람 중 하나입니다. 잠에 대한 책을 읽고 있는데 갈수록 자기계발서같은 느낌입니다. 잠을 잘 자려면 행복한 생각을 하면 된다니.. 긍정하면 세상 모든 일이 잘 될 것이라는 말이 가장 무책임한 말 같아서 말이죠..

AgalmA 2017-06-08 21:55   좋아요 2 | URL
저도 잠에 관련한 책들 자기계발서 같을까봐 선뜻 손이 안 가더라고요. 자기 경험담 이런 것도 싫고요.
마음의 시스템이란 게 그리 호락호락 한 게 아니죠.
자기 전에 요가를 하고 마무리 자세에서 ‘송장자세‘를 취할 때 잠자리가 좀 편하더라는. 몸을 최대한 이완시켜 주는 게 좋은 잠을 부르는 최선의 방법인 듯합니다. 그러나 나는 귀차니스트.....에휴)))

김영성님 말씀도 있고 해서 조만간 잠에 대해 읽어보려 한 책 읽고 소개해 보도록 할께요. 요즘 바빠져서 빨리는 못 올릴 거 같아요.

커피소년 2017-06-08 22:31   좋아요 2 | URL

아갈마님은 역시나 잠에 대한 책을 많이 읽으셨나봅니다..,ㅎㅎ 자기 경험담..ㅎㅎㅎ계속 나오더군요.. ㅎㅎ 사례도요.. 그게 또 개인차가 있는 것이라서.. 크게 도움이 안 될 때가 많아서요...

마음의 시스템이 호락호락하지 않죠... 게다가 환경적인 요인을 배제할 수 없으니.. 이 환경적인 문제가 해결이 안 되면.. 절대 마음이 편안해지지 않으니까요... 어릴 적 수면에 대한 트라우마.. 이런 것도.. 문제가 될 겁니다... 저도 태어나고 부터 잠을 제대로 잔 적이 얼마 없어서요..ㅎㅎㅎ누구는 머리만 붙이면 잠이 온다고 해서 어디 가서도 잘 자던데.. 저는 그렇지 못 합니다..

자기 전에 요가와 같은 스트레칭 해주고 자는 것도 굉장히 귀찮은 일이지요.. 그래서 그냥 피곤을 느낄 때까지 버티다가.. 잠을 자는 것 같습니다...

잠에 대한 책 소개와 리뷰 기대 되네요. 저는 많은 책을 읽어 본 것도 아니고 대충 손에 잡히는 책 읽은 것이라 제대로 된 책을 읽었다고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ㅎㅎ

리뷰는 천천히 기다리죠.. 뭐..ㅎㅎ 책 읽고 글 쓰는 것이 쉬운 일도 아니니까요.. 게다가 아갈마님처럼 장문의 정성스러운 글을 쓰려고 하면...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죠..

AgalmA 2017-06-09 03:27   좋아요 1 | URL
˝시간대를 넘나드는 여행을 통해 우리는 수면과 각성이 태양에 맞추어져 있다는 것을 안다. 우리의 거의 모든 기관, 조직, 세포 내부는 낮과 밤이라는 리듬이 맞춰져 있다. 신장은 밤에 활동이 느려진다. 그것은 이불 바깥으로 나가야 하는 상화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싶은 이에게 너무도 좋은 특징이다. 북극권에서 침낭 안이 있을 때에도 아주 유용하다. 또한 체온도 시간대에 따라 달라진다. 오전 3시에 체온이 가장 낮아진다. 간의 기능도 마찬가지로 달라진다. 사람의 간은 아침 시간에 가장 활동이 느리다. 그러니 가장 저렴하게 데이트를 하고 싶다면, 아침 식사를 하면 된다.˝
ㅡ 닐 슈빈 <DNA에서 우주를 만나다>

리뷰로 알려 드리겠다는 그 책은 아니고, 이 책을 재독하다가 관련 사항이길래 옮겨요. 생체 시계를 바로 잡는 게 가장 관건 되겠네요. 생체 시계 유전자에 문제가 생긴 거라면 답이 없는....
 
별을 먹는 사람들
로맹 가리 지음, 이선희 옮김 / 마음산책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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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정복자들과 식민 역사 속에 가난하고 무지하기 이를 데 없는 아즈텍 문명 부족 출신 알마요는 악마에게 영혼을 팔고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인디언 독재자가 된다. 악마에게 영혼? 낯익은 설정이다. 로맹 가리는 괴테 파우스트를 염두에 두었다고 했으며, ‘파우스트가 지닌 진정한 비극은 그가 자신의 영혼을 악마에게 팔았다는 점이 아니라 실제로 영혼을 살 악마가 없었다는 점, 그는 악마를 만나지 못했고 영혼을 팔 수도 없었기 때문에 절망한 채 죽었다고 설명한다.’ 로맹 가리는 판타지적 악마가 아니라 현실에 실제하는 악마적 요소들을 적절한 비유와 비판의식으로 보여준다. 알마요가 파국으로 치달으며 하는 다음 생각이 이 소설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갈증은 언제나 우리 곁에 없는 근원의 것을 보게 한다. 요컨대, 아마도 이승은 인간들의 것이고 여기엔 다른 누구도, 강력한 힘도, 신비도 없는 곳일지 모른다. 세상은 빈 정어리 통조림으로, 미국의 설비들로, 코카콜라로 만들어졌을지도 모른다. 세상은 아마도 미국의 잉여 군사 용품들을 풀어놓는 거대한 물류 창고일지도 모른다. 스페인인들은 언제나 거짓말을 하고, 신부들 또한 거짓말을 했을 것이다. 또 선도 악도 없으며 신도 악마도 없을 것이고 진정한, 전지전능한 재능도 없을 것이며 오로지 미국의 잉여 물자를 처리하는 거대한 공간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그는 믿었다.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목적이 분명한 이상주의 장교들과 대학생들이 신이나 악마의 도움 없이 놀라울 정도로 손쉽게 그의 정부를 전복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 그의 적들은 그가 냉소적이라고 자주 비난을 했지만, 그는 이 말에 대해 해명을 해왔다. 그는 냉소적이지 않았다. 냉소적인 사람들은 젊은 장교들이나 대학생들이었다. 그들은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 단지 사람들을 믿을 뿐이다.

지식인들, 엘리트들은 등 위에서 그를 별을 먹는 사람이라고 불렀다. 그것은 쿠혼족 출신임을 빗대어 붙인 말로, 그가 태어난 열대 계곡에서는 마스탈라 혹은 마스칼이라 하고 산속에서는 콜라라고 불리는 식물을 마약처럼 복용하는 인디언들을 의미한다. 인디언들에게는 달리 입안에 넣고 씹을 만한 게 없다. 마스탈라는 그들을 행복하게 해주었고, 기운을 불어넣었으며, 그들 나름으로 신을 볼 수 있게 하고, 자기들 눈으로 보다 나은 세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게끔 해주었다. 알마요의 적들은 그렇게 해서 그에게 모욕감을 주려고 했다. 그들은 별을 먹는 사람들이라는 명칭이 상처를 주는 경멸적인 말이라고 여기면서도, 자기들은 메스칼이나 콜라가 아닌 다른 마약을 하고 있다. 그들 스스로의 재능으로 혹은 사람들의 힘으로, 그들이 문명이라 부르는 것으로, 문화전당을 가지고 마약을 한다. 이제는 온 지구를 덮고 있어서 달로 가져가기도 하는 미국의 잉여 물자를 가지고서, 쓰레기를 쏟아낼 수 있는 새로운 장소를 찾기 위해서 마약을 한다. 그들은 인디언보다 더 많이 마약을 한다. 그들도 마약 없인 살아갈 수 없고, 환영 속에서 전지전능한 우주의 주인을 본다. 그는 깊은 증오심에 사로잡혀 주먹을 쥐었다. 원형경기장 속에 갑자기 다시 들어가 있는 기분이 들었다. 웃음소리와 야유 속에 파묻혀 다시 한 번 쓰러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알마요는 클럽〔엘 세뇨르〕(인디언 부족들이 악마를 부르는 호칭)를 통해 악마적 재능으로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초인을 찾지만 실패한다. 알마요를 둘러싼 인물들은 현실의 우리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재능을 키우려 애쓰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자신이 가장 믿는 신념을 사실 가장 의심하면서 삶에서 늘 놀라운 쇼를 펼치길 바라지만 잘 안 되는 것처럼 그들은 예외 없이 모두 광대이며 인간이다. 누군가는 끝을 보게 되고 누군가는 새로운 시작을 꿈꾸게 되는 시간들이 겹치고 떠난다.

마지막 대사가 멋진 피날레를 장식하며 무대가 끝났다

 

죽음이 뭔가요?” 꼭두각시 올레 옌슨이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재능이 없다는 것, 바로 그거야.”

 

 

 

덧)

심각한 주제를 무겁지 않으면서 흥미진진하게 끌고 가는 로맹 가리, 공쿠르 상 두 번 받으실 만 하다능! 

 

상담받은 정신과 의사의 설명에 따르면 성인이 되어서도 유아기가 지속되는 전형적인 경우, 경이로움을 향한 유아기의 잔재인지, 정신분석학이 그것을 치유할 수 있을지 물어보았다. 의사는 그 점에 대해 지극히 당황스러워했지만 찰리 쿤은 인간 영혼의 욕구들 가운데 정당한 것도 있고, 그 도중에 길을 달리하는 것이 있음을 이해했다.

성공한 갱스터는 언제나 특별한 사람으로 보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특별하게 보이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성공이다. 알마요라는 사람의 물리적 영향은 그가 처한 상황 때문이 아니다. 정글에서 맨발에 긴 칼을 손에 든 그를 만난다면 마찬가지로 충격적이면서 어느 정도 신화적인 인상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 그는 만족스럽게 그 요란한 소리를 듣고 있었다. 사랑받는다는 것은 불행을 자초한다.

범죄 안에는 형이상학적 욕망의 실추를 의미하는 허무주의가 있었다. 심지어 즉흥적으로 일을 벌이는 도적들한테도, 어떤 사람의 목에 아무렇지도 않게 총알을 박는다든지 실실 웃으면서 목을 벨 때에도 ‘인간은 아무것도 아니다, 대수롭지 않다, 아무도 없다’는 의식이 어느 정도 들어간 신념 같은 것이 우선 필요하기 마련이다. 라데츠키는 자기 시대의 가장 위대한 모험가들을 여러 명 알고 있었다. 악의 힘과 폭력에 대한 그들의 깊은 믿음은 언제나 라데츠키를 매우 유쾌하게 해주었다. 학살이라든지 잔인함, ‘권력’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일정량의 순진함이 필요하다.

.... 그래서 안 될 이유도 없겠지. 트루히요는 베개 밑에 추잡한 마스코트를 넣어두고 한 번도 꺼내지 않았다. 뒤발리에는 아이티의 보두 神을 자청하고 전국에 그의 초상화를 걸어두고 제례를 진행했다. 히틀러는 점성술사에게 의견을 물었고, 과테말라의 후엔테스는 한창 닭을 숭배하는 의식 중에 아르벤스 부하들의 손에 쓰러졌다.

인디언 농부들이 자기네 운명, 착취와 부당함, 스페인 계층, 군대와 경찰 엘리트 조직의 손에 굳게 결탁되어 있는 모든 부패를 잊기 위해서 끊임없이 테오나나카틀(멕시코 인디언들이 먹는 환각성 버섯), 페요테, 올롤리우키(멕시코산 메꽃과 덩굴성 식물, 종교의식에서 환각제로 사용)에서 추출한 마스탈라, ‘별’을 씹으며 바보가 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누가 진짜 주인인지 알아볼 수 없는 그런 잘못된 장소에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가치 있는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서라면 언제나 무슨 일이든 다 했다. 신은 오로지 하늘에만 계시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재능을 인정받아 얻은 권력의 정상에서 느끼는 평온함 그리고 수년간의 성공적 행보 이후에는 뭔가가 잘못 돌아갔고, 뭘 해도,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도 소용이 없었다. 그가 내놓는 모든 담보물, 끊이지 않는 모든 노력이 무시당하는 것처럼 보였다. 요컨대 그가 충분히 사악하지 못해서, 충분히 잔인하지 않아서일지도 몰랐다.

그들은 멀리 떨어져 무시되고 잊히길 원했다. 새로 건설한 도로는 그들만의 세계의 종말, 이번엔 기계와 엔지니어와 전기를 들고 찾아온 새로운 콘키스타도르들을 의미했다. 그들이 끊임없이 기다려온 고대의 신들에게 되돌아가는 건 이런 도로들을 통해서가 아니다. 전화와 도로는 경찰과 통제와 세금 징수원과 군대를 의미했다.

영혼이 없는 인간들이라는 이유로 사제들이 인디언을 개처럼 다루었듯, 정복자들이 자부심과 자존심을 빼앗아 간 것은 그들이 별 볼 일 없음을 반증하는 것이었다.

화장실 청소부나 사장, 종업원이나 접대원들은 나이를 먹어도 기자들이 찾아오면 젊었을 적에 보았던 신기에 가까운 묘기에 대해 점점 더 확신을 가지고 묘사를 할 것이다. 거꾸로 생각해보면 그들이 진정한 기적을 만들 것이다. 잭에게 신화적인 성격까지 부여하면서 계속 과장을 할 것이다. 영원히 존재할 전설이 탄생하는 것이다.

사람들한테 믿지 말라고 하는 건 그의 일이 아니었다. 반대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별을 먹은 사람들의 입안에 뭔가를 넣어주는 게 그의 일이다. 사람들의 믿음과 희망과 쉽게 믿어버리는 마음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음을 느꼈다.

"이 사람이 중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나? 좋은 사람이야?" 그때 그는 넥타이를 풀어헤치고, 눈은 잠을 못 자서 벌겋게 되어 탁자 위로 두 팔꿈치를 무겁게 내리누르면서 라데츠키에게 물었다.

"이상주의자입니다. 아주 아름답게 중요한 별들을 향해 높은 곳으로 눈을 들어 올려서 자기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려고도 하지 않는 사람이에요. 그는 자신을 생각하지 않아요, 인류만을 생각하지요. Sprechen Sie deutsch, Herr Baron?(독일어 할 줄 아세요, 헤르 남작님?)"

"이상주의자가 뭐요?" 알마요가 물었다.

"세상은 자기에게 그다지 좋은 곳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빌어먹을 인간입니다."

사실 그는 자기들이 생존할 확률이 여기 진을 치며 명령을 내리는 장교들의 이상주의와 교육과 교양의 정도에 직접적으로 비례하는지 계산했다. 그들이 단호하게 결단을 내리고 완전 정치화되어서, 전적으로 현실만을 본다면 주저하지 않고 총을 쏘아댈 것이고 그러면 도망자들은 끝장나는 것이다. 반대로, 감정이 한껏 고양되어서 인간 생명을 존중하고, 고귀하고 낭만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다시 말해서 인도적인 성향이 그들의 정치적 이념보다 더 강력하다면, 그때는 총을 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또한 젊은 혁명가들이 권력을 공고히 하고 그것을 지속할 가능성이 정확하게 어느 정도 되는지 계산할 방법이 있다고 판단했다. 단지 젊은 여자와 몇몇 부인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지금 발사하기를 거부한다면, 인도적인 나약함과 생명에 대한 그리고 그들 자신의 위엄에 대한 존중을 표현한다면 그들은 이제 의심의 여지없이 전복되고 소탕되어 처형될 것이고 이 나라의 모든 것은 예전으로 돌아갈 것이다. 여자들과 아이들의 피 앞에서 주저하는 혁명은 실패로 돌아가게 되어 있다. 理想이 부족한 혁명이다.

독재자보다 더 나쁜 게 한 가지 있다면, 그것은 실추한 독재자였다.

자기 역할에 충실한 배우들과 자기 쇼에 충실한 광대들이 무대에서 사라지면, 그제야 연극에는 진정성이 나타난다. 그건 나폴레옹과 마찬가지로 드골에게서도 사실이다. 아마 더 멀리, 수천 년 전 뮤직홀의 역사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바위 위에 올라선 앙투안 씨의 길고 검은 윤곽이, 별이 가득한 하늘을 배경으로 뚜렷이 드러났다. 빠르고 규칙적으로 팔을 움직였다. 앙투안 씨는 곡예를 하고 있었다. 은색 공들이 달을 향해서 아주 높이 날아갔다. 앙투안 씨는 야심이 있는 사람이었다. 일곱, 여덟, 아홉, 열 개의 공이라고 목사가 세었다. 인간의 손으로 할 수 있는 아주 뛰어난 성과였지만, 수천 년 전부터 이어온 인간 재능의 온갖 발현을 굽어보는 저 수백만 개의 별에게는 도대체 그게 무슨 작용을 하는지 의문이었다.

"프랑스 사람들이란!" 그녀가 말했다. "항상 큰 말에 올라앉아 있지, 그것도 언제나 백마에. ‘인간적 삶’이란 말을 들으면 뭐 자기들이 그 말을 만든 것같이 그런단 말이야. 인간적 삶은 여기저기 다 있다고요. 사실 세상에는 인간적인 삶이 너무 많다고 생각해서 뭔가 좀 바꿨으면 하죠. 깨끗한 어떤 거랄까……."

심지어 애국적이면서 정화 작용을 하는 한껏 격앙된 분위기에서 자기 몸이 타는 냄새가 민중의 기쁨을 담은 첫 발의 폭죽에 섞이는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시신의 몰골은ㅡ한 폭군이 몰락하고 다른 폭군의 시대가 왔음을 축하하는 영원한 방식인 것이다ㅡ개조차도 그 옆에 다가오지 않을 그런 상태이리라.

결국, 이 세상에는 마술 같은 것이 있다고, 단 하나가 있다고 생각했다. 인간들은 모두 하늘로부터 각자 특별한 하나의 재능을 받는데 그것을 마음속에 아무렇게나 방치해두었다. 하지만 이제 그것이 마음속에서 깨어나 그가 여자를 바라볼 때마다 점점 커가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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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7-06-05 11: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로맹 가리 책들은 꾸준하게 사서 모으고
있는데 막상 읽은 책은 얼마 안되는 그런
느낌입니다.

AgalmA 2017-06-05 13:19   좋아요 0 | URL
예, 마음산책에서 나온 책이 상당하죠. 다른 데에서도 많이 나오고. 저도 따라가기 벅차네요ㅎ;
 
최후의 세계 열린책들 세계문학 45
크리스토프 란스마이어 지음, 장희권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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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비디우스의 이야기처럼 모든 것이 위치를 바꾸며 돌이 되거나 새로 변신하는 게 아무렇지도 않는 곳, 유배자와 도망자들의 땅 토미. 끝없이 돌들이 무너져 내려도 늑대의 울음소리가 그 속에 파묻히는 것에 더 마음이 진정되는 백일몽 같은 곳. 로마법과 이성 같은 것이 굳건히 서 있을 수 없는 세계를 그린 소설이다. 굶주린 독수리가 가장 연하고 부드러운 부위를 가장 먼저 공격하듯이 인간의 부주의, 무지, 가장 연약한 지점부터 무너진다.

 

벌레가 득실거리는, 구역질 나고 악취 나는 유기체의 부패 과정에 비하면 화석의 운명은 얼마나 다행스럽고 또 인간의 품위에 어울리는 일인가. 이런 역겨움에 비하면 화석이 된다는 것은 오히려 구원이며, 언덕과 협곡과 황무지로 이루어진 낙원에 이르는 과정이다. 유성과 같은 인생의 영화는 무에 불과하다. 돌의 위엄과 지속성만이 최고의 것이다...... 하고 오비디우스가 말했다고 했다.”

 

 

짐승들조차 화석이 되는 것이 존재의 혼돈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었다.

 

˝, 언제나 돌이었어요. 유배자의 이야기는 언제나 화석이 되는 것으로 끝났죠. 때때로 저는 오비디우스가 돌아가고 그가 지펴 놓았던 불이 꺼진 뒤에도 그가 불속에서 읽어 준 슬픈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동굴의 바위벽에 몇 시간씩 어른거리는 것을 보았어요. 항아리 위에, 또는 아궁이의 시뻘건 불속에 돌로 된 코와 뺨과 이마와 입술과 슬픈 눈들이 어른거렸어요. 오비디우스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놀랍고도 신기했어요. 그는 마른 개울 바닥의 침적물과 자갈에서도 시대와 생명을 읽어 냈어요.˝

 

 

혼돈 속에서 유일하게 살아남는 돌을 만드는 여정. 파도에 모두 휩쓸려가는 걸 재차 겪더라도. 작가는 이 여정에서 피타고라스가 오비디우스의 하인일 수밖에 없다고 결정했다.

 

 

피타고라스는 오비디우스의 대답과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에서 점점 자신의 생각과 느낌 일체를 다시 발견할 수 있었다. 피타고라스는 그 일치감이야말로 후세에 전수할 만한 가치가 있는 어떤 조화(調和)라고 믿었다. 그리하여 그는 이제 모래에 글쓰기를 멈추고 어디를 가나 비문(碑文)을 남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지하 술집의 책상에만 손톱과 주머니칼로 글을 새겨 넣더니, 나중엔 점토 파편으로 집 벽에 글을 쓰거나 백묵을 가지고 나무에 글을 남겼다. 때로는 길 잃은 양이나 돼지의 몸에도 글을 써넣었다.”

 

  

유배 당한 오비디우스를 찾아 코미에 온 코타는 그리스인 피타고라스가 그의 주인 오비디우스의 운명을 따르려 한 것과 닮았다. 그가 토미 해안에서 모두의 운명이 공통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점차 깨닫게 되는 건, 신화 속 인물을 통해 세계를 재해석한 이 소설, 이 소설을 읽으며 세계의 진면목을 보려 하는 독자의 상황과 동일하다. 모두가 결국 미치는 것, 미치지 않는 세계란 없다는 것은 진실일까 비유일까. 꿈꾸지 않는 사람이 없다면 미치지 않는 사람, 세계도 없다는 소리겠다. 아무튼 독자 각자가 판단할 몫이다.

소설은 코타도, 독자도 자신이 되기 위해 왜 이렇게 힘든가를 생각하게 한다. 돌에서 이야기를 읽는 일과도 비슷할 것이다.   

 

 

덧)

신화를 독특하게 재해석한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존 바스 키메라도 추천한다. 이 작품과 견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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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05 00: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7-06-05 01:15   좋아요 0 | URL
「호모 데우스」 보니까 고고학이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려 인공지능도 쉽지 않은 영역이라 미래 유망직종일 거라고 그러더군요ㅎ 인공지능도 따분해 하는 영역에서도 인간은 재미를 찾는 종족이니 지질학도 어련하겠습니까ㅎ;

레삭매냐 2017-06-05 11: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래 전에 <빙하와 어둠의 공포>라는 책으로
알게 된 작가였는데 다른 책도 있었네요.

신화와 현대의 이종교배가 빚어낸 이야기가
참신해 보입니다.

AgalmA 2017-06-06 04:24   좋아요 0 | URL
저도 <빙하와 어둠의 공포> 인상적으로 읽고 이 책 기대하고 읽었는데요. 잘 안 읽혀서 몇 년만에 다시 펼쳐 들게 되었죠ㅎ; 그 책과 상당히 다른 색채였어요. 말씀하신 부분이 포스트모던한 점이라 할 수 있는데요. 헌데 전 신화 우려먹기를 그닥 좋아하지 않아서^^;
 

 

밀 뒤르켐 《자살론》에 따르면 19세기(1854~ 1880) 자살 동기로 압도적인 원인은 ‘정신 질환과 종교적 맹신‘이다. 남녀, 직업적 차이도 없다. 그는 이렇게도 말했다. ˝관습이 그 기원을 상실하고 모호해져 새로운 필요에 상응하지 못할 때 사람들은 빛을 찾게 된다. 이것이 바로 종교가 호소력을 잃자마자 지식의 최고 종합적 형태인 철학이 가장 먼저 등장이유다. ˝ 뒤르켐은 자연조건이 자살에 영향력 있는 조건이 아니라고 말했지만 왜 여름에 가장 자살률이 높은지 명확히 설명하지 못했다. 낮이 긴 만큼 사회 활동이 더 많기 때문일 거라는 견해를 조심스럽게 제시했을 뿐이다. 여전히 살인율도 여름에 가장 높은데 이 잣대로 보면 일견 타당할 것이다. 

 

요즘은 범죄자와 범죄에 있어 환경 문제에 더 방점을 두고 있다. 학대받았던 불우한 어린 시절, 좋지 못한 주거 환경이나 주변 인물들, 제대로 받지 못한 교육, 사회 냉대와 무관심 등등. 범죄 예방에 있어서도 cctv, 체계적 시스템 등 환경 조성으로 실질적으로 범죄를 줄이는 효과를 보기도 한다. 그러나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라는 용어의 탄생처럼 사람의 본성적 영향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스토예프스키 인간의 파괴력을 인간의 본성에서 더 찾는 듯하다. 
내가 에밀 뒤르켐을 통해 가져온 내용들은  《죄와 벌》에서 라스꼴리니꼬프의 살인에 대한 설명에도 잘 맞아떨어진다. 그는 살인 전에도 후에도 정신 질환자의 모습이다. 그 범죄에 관한 논문에서 ˝범죄의 실행은 언제나 병을 동반한다˝고 밝히기까지 했다. 종교적 맹신을 비웃는 라스꼴리니꼬프는 사회 개혁을 위해 나폴레옹처럼 비범인(非凡人)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고 계몽적 사상 실천으로 사회의 해충 ˝이˝같은 존재인 전당포 노파를 살해했다. 이는 ‘모방‘ 자살과 비슷한 ‘모방‘ 살인으로 볼 여지가 있다. 7월의 무더위와 궁핍과 더러운 뻬쩨르부르크의 환경도 그의 살인을 부추겼다. 이성을 강조했지만 그의 살인은 충동과 우연적인 불협들로 가득하며 스스로 그 살인은 악마가 시켜서 한 짓이었다고 말할 정도로 자유 의지에 회의적이다.

라스꼴리니꼬프 이름의 어근 ‘라스꼴raskol‘은 ˝17세기에 러시아 정교회의 개혁에 반발하여 옛 신앙의 전통을 지키고자 기존 교회에서 분열되어 나온 구교도 혹은 분리파 교도를 일컫는 말˝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인간의 ‘분열성‘을 중심에 두고 이 이야기를 시작한 셈이다. 라스꼴리니꼬프는 어렸을 때부터 몽상가였고 꿈과 미신에 열중하는 인물이다. 그와 전당포 노파의 방이 노란 방인 것도 우연이 아니다. 라스꼴리니꼬프의 관 같은 노란 방은 고흐의 분열적인 노란 방이 연상되기도 하는데 전당포 노파를 해충 이로 생각한 그도 시기심 많고 알게 모르게 타인에게 해를 끼치며 고독한 삶을 사는 범인(凡人)에 지나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 이 소설의 문제적 인물들도 대개 그렇다. 가족 부양을 저버리고 장녀 소냐가 매춘부가 되어 생활을 책임지게 만들고 알코올 중독자로 인생을 망치다 끝내 술 때문에 숨지게 된 퇴역 관리 마르멜라도프, 자신의 비참을 시종일관 남의 탓으로 돌리며 자존심을 내세우지만 모두에게 폐만 끼친 그의 아내 까쩨리나, 자신의 재력으로 타인을 누르고 존경을 받으려 한 속물 루쥔, 타인을 이용하며 죽이며 욕망만을 좇는 스비드리가일로프 등.
도스토예프스키는 이런 문제적 인물들 양편에 상반된 인물을 배치한다.
이성적으로 영향을 주는 인물 유형
라주미힌(라스꼴리니꼬프의 친구, 앎을 전파하는 번역 일, 인간미를 가장 잘 보여주는 인물),
뽀르피리(예심판사, 라스꼴리니꼬프의 허점을 끊임없이 폭로하며 자수할 것을 설득),
두냐(라스꼴리니꼬프의 여동생, 가난 때문에 타인에게 의지하려고도 했지만 결국엔 주체적인 삶을 사려는 인물, 라스꼴리니꼬프에게 살인의 권리가 없다고 반박, 그녀를 순종적 아내로 만들려고 한 루쥔에겐 망신을, 그녀에게 안락을 줄 수 있는 스비드리가일로프에게 굴복하지 않음으로써 그가 그토록 두려워 한 자살할 의지 제공) 있다면,
유로비지 인물 유형
니콜라이(살인 사건 당시 주변 현장에 있었던 우연으로 말미암아 라스꼴리니꼬프의 죄를 덮어쓰게 되는데, 종교적 반성으로 자신의 죄로 받아들임)
소냐(타인에게 절대적 이해와 사랑을 줌으로써 깨닫게 하는 성녀와 같은 존재)가 있다.

유로비지는 상식을 벗어난 기묘한 생활태도를 취하거나 미치광이 짓을 하며 완전한 고독을 얻는 동방 정교의 수행 방법 중 하나이다. 시궁창 인생이면서도 삶을 긍정하는 유로비지를 라스꼴리니꼬프는 이성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무신론에 경도되어 있으면서 기이한 행동과 독단적 이성의 맹신에 빠져있는 그의 모습과 반대되면서도 유사하다. 인간을 구할 수 있는 것은 이성이 아니라고 보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의도가 명확히 느껴진다. 공산주의식 공동체를 말하면서도 여성 해방, 자유주의를 추종하는 레베쟈뜨니꼬프가 이런저런 사상을 혼란스럽게 받아들인 인물로 묘사된 것에서도 그런 의도가 느껴진다. 유형지에 도착하고도 라스꼴리니꼬프는 자기 이성의 허약함만을 탓하며 자신의 죄를 내면적으로는 인정하지 않는다. 마침내 그가 깨닫는 상황은 이성적 판단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는 그날 밤 무엇에 대해서도 오랫동안 생각할 수 없었고, 어떤 것에든 생각을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는 당시에 아무것도 의식적으로 해결할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다만 느꼈다. 변증법 대신에 삶이 도래했고, 의식 속에서 무언가 전혀 다른 것이 형성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이성의 상징이라고 할 ˝변증법˝을 넘어선 무언가를 느끼고 그는 소냐에게 달라고 했지만 펴보지는 않았던 복음서를 꺼낸다. 그는 종교가 아니라 소냐의 신념에 더 주목한다. 세계를 온통 분열적으로 보고만 자신을 돌아보며 ˝한 사람이 점차로 소생되어 가는 이야기, 그가 새롭게 태어나는 이야기, 그가 한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옮겨 가는 이야기, 이제까지는 전혀 몰랐던 새로운 현실을 알게 되는 이야기˝를 꿈꾼다. 이렇게 라스꼴리니꼬프가 삶을 정면으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이 소설은 끝난다. 나는 이 결말을 종교적 귀의로 해석하지 않는다. 《죄와 벌》은 이후 도스토예프스키 작품 속에서 라스꼴리니꼬프와 유사한 여러 인물들(미쉬낀 공작, 스따브로긴, 베르실로프, 이반 까라마조프)을 통해 끝없이 탐색하는 존재론, 자의식의 투쟁, 人神 사상의 포문이다. 유감스럽게도 모든 끝이 비극이라는 결말을 알고 우린 출발한다.


 


덧)
《악령》에서 보았던 것들을 《죄와 벌》에서도 발견하며 도스토예프스키의 특징, 편집광 면모를 재검토해보다.
1. 밀도가 떨어지는 부주의 - 사고로 다친 마르멜라도프를 옮기느라 피투성이가 된 라스콜리니꼬프를 보고 경찰 서장 니꼬짐 포미치가 놀라며 지적했는데도 이후 그를 만난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그를 대해서 개연성이 너무 떨어졌다.
2. 죽음, 인간의 숙명 등을 말할 때 늘 거미 등장한다. 드니 빌뇌브 영화 《에너미》에 나왔던 거미도 떠올리며 이것은 서양인의 무슨 심리적 원형인가 생각했다.
3. 주인공이 흥미를 가지는 여성은 대개 콤플렉스 가지고 있다. 매춘부, 절름발이, 못생김, 가난한 아이.
4. 《악령》에서와 마찬가지로 롤리타 증후군 서술을 여럿 발견했다. 스비드리가일로프의 행적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이쯤 되면 당시 풍속 반영으로 봐야 하나. 이후 소설에도 계속 이 소재가 나온다면 작가가 인간 본성의 변태성으로 강조하고 있다고 결론을 지을 생각이다.
5. 꿈, 심령, 초현실성이 빠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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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7-05-28 19: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부럽습니다. 전 <죄와 벌> 몇 번 시도했는데 전부 실패했습니다. ㅠㅠ
역시 종교적 의미의 소설은 저와 맞지 않는 것이라는 나름 결론입니다. ㅠ

AgalmA 2017-05-28 19:40   좋아요 1 | URL
종교적인 문제는 고전 소설에서 빠지지 않는 논쟁점이라^^;
철학이나 역사에서도 종교가 빠지지 않고 나오는데 소설에서는 왜 그렇게 적응이 어려우신지 모르겠네요ㅎ;

북다이제스터 2017-05-28 19:55   좋아요 0 | URL
종교 얘기긴 하지만, 아마도 종교 비판이 아닌 찬향이라 그런 것 같습니다. ㅎ

AgalmA 2017-05-28 19:48   좋아요 1 | URL
문제적으로 접근하면서 결국엔 종교성에 동화되어 간다고 볼 수도 있겠죠. 객관적인 사실로 따지고 들면서 신비주의로 빠지는 많은 과학자들의 예처럼.

2017-05-28 21: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7-05-28 22:27   좋아요 1 | URL
최근 자료는 제가 못 찾아서요. 아마 10년 단위로 조사한다면 2006년부터 해서 지금까지 측정한 자료도 나왔을 만도 한데 말이죠^^

2017-05-28 22: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겨울호랑이 2017-05-28 22: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AglamA님께서 말씀하신 통계 자료가 눈에 들어와 몇 자 적어 보게 되었습니다. 자료 중 여름의 비중이 다소 높은 편은 사실입니다. 다만, 평균 수준이 25%임을 감안해 본다면, 계절적 차이가 있는지는 선뜻 말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래프가 ‘살인 범죄‘를 의미하기에 ‘자살+타살‘을 모두 포함한 경우여서, 자살을 설명하는 내용과 약간 차이가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드네요.. 개인적인 생각이니 혹 언짢게 생각하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죄와 벌>을 어렸을 때 청소년용으로 편집된 책을 읽었는데 많이 어려웠습니다. 벌받는 기분으로 읽었던 생각이 나네요. ㅋ

AgalmA 2017-05-29 02:37   좋아요 2 | URL
말씀하실 만한 걸 하시는 터라 전혀 불쾌하게 생각하지 않는데요^^ 댓글 오픈하셔도 될 거 같은데요?
뒤르켐도 겨울호랑이님과 비슷한 논지였죠. 자살률이 여름에 가장 많긴 하지만 봄도 오차 범위 내에 있거든요.
자살률과 살인율을 동률로 해서 여름 발생에 주목한 건 제 주관적 견해라는 거 저도 인지하고 있습니다. 저는 제 나름의 해석을 하는 것일 뿐^^;

저도 죄와 벌 벌 받는 기분으로 읽었어요ㅎ 하권은 속도감 있고 재밌는데 상권은 배경 설명을 너무 많이 해서 많은 독자들을 초반에 나가 떨어지게ㅋ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겨울호랑이 2017-05-28 22: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 좋게 생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AgalmA님. 저는 문학적 소양이 낮기 때문에 좀 더 쉬운 문학부터 접근해야할 것 같네요. <죄와 벌>을 비롯한 도선생 도전에 서평 대회와 더불어 응원 보냅니다. AgalmA의 위대한 도전 or 무한도전? ㅋ

AgalmA 2017-05-28 22:15   좋아요 2 | URL
AgalmA의 무모한 도전요ㅋㅋㅋ
이상 시와 상대성 이론 비교하시믄서 무슨 겸손을^^

cyrus 2017-05-29 06: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도 셰익스피어의 희극, 카프카의 소설처럼 무궁무진한 해석이 가능한 텍스트입니다.

요즘 홈즈 주석판을 읽으면서 ‘주석 달린 도스토예프스키‘, ‘주석 달린 카프카‘가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주석판으로 읽어보면 정말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

AgalmA 2017-05-29 14:58   좋아요 0 | URL
예. 좋은 아이디어입니다. 워낙 유명한 작가라 외국엔 그런 시도가 이미 있었을 거 같은데 국내엔 안 알려진 건가 싶기도 하네요.

2017-05-30 01: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7-05-30 02:25   좋아요 0 | URL
살인이 압도적으로 많이 일어나는 곳이 대개 더운 나라입니다. 더위 자체보다 사회 환경적 영향이 더 크다는 걸 감안해야 겠죠.
(top 10 소말리아, 시리아, 이라크, 아프카니스탄, 파키스탄, 아이티, 베네수엘라, 짐바브웨, 콩고, 콜롬비아)
더운 날씨라 작물이 잘 자랄 수도 없고 척박한 환경에 자원도 없다보니 더 그런 것일테고(자원이 있으면 그로 인해 더 각축), 제국주의 시절부터 강대국의 패권 다툼에 휘말려 더 혼란한 상황을 겪는 것이기도 하고요.

저도 오늘 첫 모기에게 물렸습니다. 여름 생각하니 좀 끔찍하긴 하네요ㅎ;

종이달 2021-10-11 1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일단 음악 하나 걸어놓고 시작하자.

 

 

 

 

Oddarrang ㅡThe Sage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까. 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악령》처럼  머릿속을 가득 휘젓는 책을 만났을 땐 떠오르는 질문부터 풀어나가면 쉽다. 나는 평소 완벽한 형식에 얽매이지 말자는 주의다. 보여주기에 매달리는 형식보다 재미라는 내 만족을 추구하며 형식은 내 필요에 의해서 탄생한다.《죄와 벌》,《악령》도 전면적인 개작을 했고 모든 사람을 다 만족시킨 게 아니라는 걸 유념할 것.

 

서재 친구가 재밌는 책 추천을 바라길래 칼비노와 도선생이 실망시키지 않는 실비 보험 같은 책 아니겠느냐고 추천한 김에 마침 도착한 이 책을 읽었다. 원래 도선생의 후기 5대 장편 《죄와 벌》-《백치》-《악령》-《미성년》-《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을 순서대로 읽을 계획이었지만 나는 늘 (필요의) 즉흥성에 더 끌리지. 이 선택은 느슨하고 엉성하며 논리적 인과성이 결여된 듯한 구성을 취해 다소 광란적인 글쓰기로 지적받는 도스토예프스키를 읽는 독자 다운 자세 중 하나 아니겠는가.

 

유발 하라리 《호모 데우스》를 읽고 나서 나는 연계되면서 질문을 확장시켜 줄 책을 바랐는데 이 책을 읽게 돼 좋았다. 결론부터 말하면 《악령》은 유발 하라리의 두 책《사피엔스》와《호모 데우스》의 주요 논점, 신이라는 허구, 자유의지, 인간이 물리적으로 변화될 가능성에 대해서 앞서 많은 걸 말하고 있었다.

 

 

 

"어떤 민족도……." 그는 줄을 따라 마치 책 읽는 것처럼 말을 시작하면서, 동시에 계속해서 스따브로긴을 위협적으로 바라보았다. "어떤 민족도 아직 과학과 이성을 기반으로 해서 건설된 적은 없었다. 그런 예는, 오직 어리석음 때문에 한순간 그렇게 된 것을 제외하면, 단 한 번도 없었다. 사회주의는 그 본질상 벌써 무신론이 되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바로 첫 줄부터 사회주의무신론적인 기반을 갖고 있으며 오직 과학과 이성의 뿌리 위에서 건설될 생각이라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이성과 과학은 민족들의 삶에서 언제나, 지금도, 창세기에도 오로지 부차적이고 보조적인 의무만을 수행해 왔다. 민족들은 명령하고 지배하는 어떤 힘에 의하여 대열을 정비해서 움직이지만, 그것의 기원은 알려지지도, 설명되지도 않았다. 이 힘은 끝에까지 이르려는 채울 길 없는 소망의 힘이며, 동시에 그 끝을 부정하는 힘이다. 그건 자신의 존재를 지칠 줄 모르고 끊임없이 확신시키려는 힘이고 죽음을 부정하려는 힘이다. 성서에서 말하듯, 삶의 정신은〔살아 있는 물의 강〕이며, 묵시록에서는 그것이 마를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철학자들은 미학적 근원을 얘기하면서 그것을 도덕적 근원과 동일시한다. 난 그걸 무엇보다도 더 간단하게신의 추구〕라고 부르고자 한다. 민족의 모든 움직임의 유일한 목표는, 어떤 민족이건, 그 존재의 시기가 언제건, 오직 신의 추구, 틀림없는 자기 민족만의 신의 추구이며, 그리고 그 신을 진실한 유일한 것으로 믿는 것이다. 신은 민족의 시작부터 끝까지 취해진 민족 전체의 종합적인 인격이다. 아직까지 모든 민족, 혹은 많은 민족에게 있어서 하나의 공통 신이 있었던 적은 없었고, 언제나 제각각의 민족마다 개별적인 신이 있어 왔다. 여러 신들이 단일한 공통의 신으로 통합되면 그건 민족성이 파괴된다는 징후이다. 여러 신들이 단일한 공통의 신으로 통합되면 신들과 그들에 대한 믿음은 바로 그 민족과 함께 죽어 간다. 민족이 강할수록 그 민족의 신은 더 특별해진다. 종교를 가지지 못한 민족, 즉 선악의 개념이 없는 민족은 결코 없었다. 모든 민족은 선악에 대한 자신들만의 개념을 갖고 있고, 또 자신들만의 선악을 갖고 있다. 많은 민족들이 선악에 대한 공통의 개념을 갖기 시작하면, 민족들은 죽어 가고 그때는 선과 악 사이의 차이조차도 지워지고 사라지게 된다. 이성은 결코 선악을 정의할 힘이 없고, 근사치로도 그 둘을 구별할 힘조차 없다. 오히려, 언제나 치욕적이고 애처롭게 혼동을 해왔고, 과학은 주먹구구식의 해결책만을 내놓았다. 이것은 특히, 페스트나 기아, 전쟁보다도 더 고약하고 금세기 이전까지는 알려지지도 않는 가장 섬뜩한 채찍인 반(半)과학의 특징이 되어 왔다. 반과학ㅡ 이것은 지금까지 그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폭군인 것이다. 자신의 사제들과 노예들을 가진 폭군, 그 폭군 앞에 한결같이 지금까지 생각도 할 수 없었던 사랑과 미신으로 경배하고, 심지어 과학조차도 그 앞에서 전율하고 수치스럽게 그를 묵인한다. 이 모든 것이 당신 자신의 말입니다. 스따브로긴, 오직 반과학에 관한 말만 제외하고. 이건 내 말이죠. 나 자신이 반과학이고, 그런 까닭에 내가 그걸 유난히 증오하니까요. 당신의 사상, 당신의 말에서 아무것도, 심지어 단어 하나도 바꾸지 않았습니다."

"글쎄요, 바꾸지 않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데요." 스따브로긴이 조심스럽게 지적했다. "당신은 열정적으로 받아들였고, 눈치도 못 채면서 열정적으로 바꾸었습니다. 당신이 신이라는 것을 민족성의 가장 단순한 속성으로 끌어내리고 있다는 하나만으로도 벌써……."

그는 갑자기 유난히 강한 주의를 기울여서 샤또프를 예의 주시했는데, 그의 말을 예의 주시한다기보다는 샤또프라는 인간을 예의 주시했다.

"신을 민족성의 속성으로 낮춘다고요?" 샤또프가 소리쳤다.

"오히려, 민족을 신으로까지 끌어올리는 겁니다. 언제건 그렇지 않았던 적이 있었던가요? 민족, 이것은 신의 육신입니다. 모든 민족은 자신의 특수한 신을 갖고 있으면서 어떤 화해도 하지 않고 세계의 다른 모든 신들을 배제하는 동안만, 오직 그때까지만 민족입니다. 즉, 자신의 신으로 승리하고 나머지 모든 신들을 세계에서 쫓아낼 거라고 믿는 그 순간에만. 창세기부터 모든 사람들은 적어도 조금이나마 두드러졌으며, 인류의 선두에 서 있었던 위대한 민족들은 모두 그렇게 믿어 왔습니다. 이 사실에 반박할 수 없죠. 유대인들은 오직 진정한 신을 기다리기 위해서 살아왔고 세계에 진정한 신을 남겨 주었습니다. 그리스인들은 자연을 신격화했으며 세계에 자신의 종교를, 다시 말해서 철학과 예술을 남겨 주었습니다. 프랑스는 그 기나긴 역사가 지속되는 동안 내내 로마 신의 관념의 현현이었고 발전에 불과했지만, 그 프랑스가 드디어 자신의 그 로마 신을 심연 속으로 던져 버리고서, 당분간 그들 사이에서 사회주의라고 불리는 무신론으로 몰두하게 되었고, 그건 어쨌거나 오직 무신론이 로마 가톨릭보다는 더 건강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위대한 민족이 자기 민족 속에만(그것도 다름아니라 배타적으로, 오직 자기 민족 하나 속에만) 진리가 있다는 걸 믿지 않는다면, 그 민족만이 자신의 진실로써 모든 사람들을 부활시키고 구원할 능력이 있으며 그런 소명을 부여받았다는 걸 믿지 않는다면, 그 민족은 그 즉시 위대한 민족이 되기를 멈추고, 그 즉시 위대한 민족이 아니라 인종 지리학적인 물질로 변해 버립니다. 진정으로 위대한 민족은 결코 인류에서 2차적인 역할을 하는 걸로 타협할 수 없고, 심지어 1차적이 역할만으로도 만족할 수 없으며, 반드시 배타적으로 첫 번째 역할을 수행하는 것만으로 타협할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을 잃어버린 민족은 이미 더 이상 민족이 아닙니다. 하지만 진실은 하나고, 따라서 나머지 민족들은 자신만의 특수하고 위대한 신들을 갖겠지만, 민족들 중에서 유일한 민족만이 진실한 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신의 잉태자〕인 유일한 민족, 바로 이 민족이 러시아 민족이고, 그리고…그리고……  그리고 정말, 정말, 당신은 나를 그따위 바보로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스따브로긴."


범슬라브주의자 샤또프와 무신론자 스따브로긴의 대화

 

 

 

"어쩌겠어요. 모든 사람은 좀 더 좋은 곳을 추구하게 마련인걸요. 물고기는 ……  다시 말해 모든 사람은 일종의 안락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전부 다 그래요. 굉장히 오래전부터 알려진 일이죠."

"네 놈이 안락이라고 말한 거냐?"

"뭐, 말을 가지고서 논쟁을 해야 하다니."

"아냐, 너 말 한번 잘했다. 안락이라고 해두지. 신은 필수 불가결한 거야. 필수 불가결하기 때문에 존재해야만 하지."

"그래, 멋지군요."

"그러나 난 신이라는 것이 있지도 않으며, 있을 수도 없다는 걸 알고 있어."

"그쪽이 더 그럴듯하군요."

"정말로 네놈은, 이런 두 사상을 가진 인간이라면 계속 살아갈 수 없다는 걸 모르겠어?"

"자살해야 된다, 이건가요?"

"정말로 네놈은 오직 이것 때문에 자살할 수 있다는 건 모른단 말이야? 수십억이나 되는 네놈 같은 인간들 중에 단 한 사람이라도 그렇게 살기를 원하지도 않고 그걸 참을 수도 없는 그런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걸 네놈은 이해하지 못하는 거야."


(중략)

 

"난 모든 사람들이 여전히 살아남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 늘 놀라웠어." 끼릴로프에게 그의 지적 따윈 들리지도 않았다.

"음, 뭐 당신 말이 맞을 수도 있겠네요. 관념상으로는 그렇지만…… ."

"이 원숭이야, 네 놈은 나를 복종시키려고 맞장구를 치고 있지. 입 닥쳐. 네놈은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할 테니까. 신이 없다면, 내가 신이야."

"내가 당신한테서 절대 이해할 수 없었던 게 바로 그 사항이라니까요. 왜 당신이 신이 되는 겁니까?"

"신이 있다면, 모든 것이 그의 의지이고 난 그의 의지에서 벗어날 수 없어. 없다면, 모든 것이 나의 의지이고 난 자의지(自意志)를 천명해야 할 의무가 있어."

"자의지라고요? 그리고 왜 그럴 의무가 있는 거죠?"

"왜냐하면 모든 것이 나의 의지가 되었으니까. 정말이지, 이 지구상에서 신을 끝장내고 자의지에 대한 확신을 갖고서, 가장 완전한 지점에서 자의지를 천명할 용기 있는 자가 아무도 없는 것일까? 이런 가난한 사람이 유산을 받고 깜짝 놀란 나머지, 자기 자신은 이런 걸 소유하기엔 너무 박약하다고 생각하여 감히 자루 곁에 다가가지도 못하는 것과 같아. 난 자의지를 천명하고 싶어. 혼자라도 좋아. 그러나 해낼 거야."


무정부주의자 뾰뜨르와 무신론자 끼릴로프의 대화


 

 

"당신은 아마도 당신 자신을 보고서 판단하시는 거지요?"

"모든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 따라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빨갛게 달아오르면서 말했다. "사느냐 죽느냐는 것이 아무래도 좋게 되었을 때, 그때야 완전한 자유가 있게 될 겁니다. 바로 그것이 모든 것의 목표지요."

"목표라고요? 하지만 만약 그렇다면, 아무도 사는 걸 원치 않을 게 아닙니까?"

"그렇죠, 아무도."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인간은 삶을 사랑하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제가 이해하는 바로는 그래요." 내가 말했다. "자연은 그렇게 명령했으니까요."

"그건 비열합니다. 바로 거기에 모든 기만이 있는 겁니다!" 그의 눈이 번득였다. "삶은 고통이고 삶은 공포며 인간은 불행합니다. 지금은 모든 것이 고통이고 공포입니다. 지금 인간은 고통과 공포를 사랑하기 때문에 삶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왔지요. 지금 삶은 고통과 공포의 대가로 주어진 것이며, 바로 여기에 모든 기만이 있는 겁니다. 지금 인간은 아직 그 인간이 아닙니다. 행복하고 오만한 새로운 인간이 나타날 겁니다. 고통과 공포를 극복하는 사람, 바로 그 사람이 신이 되는 겁니다. 그러면 그 신은 존재하지 않게 되는 거죠."

"그렇다면, 당신의 생각에 따르면 그 신은 존재하는 겁니까?"

"그 신은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합니다. 돌 자체에는 고통이 없지만 돌에서 비롯된 공포 속에는 고통이 있습니다. 신은 죽음의 공포에서 오는 고통입니다. 고통과 공포를 극복하는 사람, 그 사람이 직접 신이 될 겁니다. 그때는 새로운 삶이, 그때는 새로운 삶이, 그때는 새로운 인간이, 모든 것이 새롭게…… 그때는 역사가 두 부분으로 나누어지게 될 겁니다. 고릴라에서 신의 파괴 이전까지, 신의 파괴에서부터…… ."

"고릴라 이전까지인가요?"

"……지구와 인간의 물리적인 변화 이전까지. 인간은 신이 되면서 물리적으로 변화될 겁니다. 그리고 세계도 변화되고 사건들도 변화되며, 사상과 모든 감정들도 변화될 겁니다. 그때는 인간도 물리적으로 변화되지 않겠습니까,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느냐 죽느냐가 아무래도 좋다면 모두들 자살을 할 테고, 바로 그런 것이 어쩌면 변화일 수 있겠죠."

"그건 아무래도 좋습니다. 기만을 죽이는 겁니다. 지고의 자유를 원하는 사람은 모두 감히 자살을 할 수 있어야 하는 겁니다. 감히 자살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기만의 비밀을 알게 된 것입니다. 더 이상은 자유가 없습니다. 바로 여기에 모든 것이 있고, 더 이상은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감히 자신을 죽일 수 있는 사람, 바로 그가 신입니다. 이제 모든 사람들은 신이 존재하지 않도록,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도록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아무도, 단 한 번도 그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수백만의 자살자들이 있었는데도요."

"하지만 한결같이 그것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한결같이 공포를 안고서 행한 것이지, 그것을 위해서는 아니었습니다. 공포를 죽이기 위해서서가 아니었다는 얘기지요. 오직 공포를 죽이기 위해서 자살하는 사람만이 즉각 신이 되는 겁니다."

"잘 안 될 겁니다, 아마도." 내가 말했다.   

 

합리주의자 안톤과 人神 사상의 허무주의자 끼릴로프의 대화

 

 비가 오려 하는군. 음악 하나를 더 걸자.  

 

Thrupence - Conversations (feat. Edward Vanzet)

 

 

등장인물 이름과 조사를 제외하면 이 책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헛소리"다. 그에 버금가게 많이 나오는 단어는 "광기", "기만" 등이 있다. 서로에게 헛소리라고 악을 쓰는 이 소설 속 인물들은 대부분 광기와 허위와 기만에 빠져 있다. 소설이라는 장르가 허구라는 헛소리 성격이 있고,《악령》이 1인칭 관찰자 시점과 전지적 시점을 번갈아가며 이야기를 진행하는 형식이며, 위 대화 인용을 봐도 알겠지만 인물들이 도선생의 관념적 캐릭터라는 점에서도 이건 정말이지 헛소리 카니발이다. 지금 내 헛소리는 좋은 뜻에서 썼다-ㅅ-; 

 

러시아 사상가 S. N. 불가꼬프가 작품 평론 속에서 밝힌 통찰처럼 《악령》은 출간 사반세기 후 일어난 러시아 혁명을 예견한 듯한 정치적 혁명의 혼란과 내용이 아니라 정신적인 본질을 다룬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처음 도선생은 '위대한 죄인의 생애'라는 작품 구상 중에 ㅡ 급진적 모임 속에서 사상 전환을 이유로 탈퇴하려던 회원을 네차예프가 살해한ㅡ〔네차예프 사건〕을 접하고 그것을 플롯으로 한 무정부주의자들의 희극적인 한판 소동으로 집필할 계획이었다. 이 줄기는 샤또프 - 뾰뜨르 휘하 5인조 이야기로 전개된다. 그러나 뾰뜨르가 아닌 '위대한 죄인'으로 스따브로긴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소설 구조가 바뀌게 되면서 정치극에서 심리적이고 형이상학적 비극으로 변모했고 19세기 리얼리즘 정통 소설과 다른 특이한 소설이 탄생하게 됐다.

귀엽지만 삶에 무한히 게을러서 학자라고 부르기도 뭐한 스쩨빤 뜨로피모비치의 다음 말은 당시 사회의 정신성을 보여준다. "도대체 이건 뭣 때문인 거요, 내 한마디 하리다. 이 모든 절망적인 사회주의자들과 공산주의자들이 동시에, 그토록 대단한 구두쇠이며 치부에 눈이 어두운 자본주의자인 건 도대체 뭣 때문인가요? 그가 철저한 사회주의자일수록,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 철저한 자본가가 되는데 도대체 뭣 때문에 그런 걸까요? 이것도 또한 예민한 감수성 때문이 아닐까요?" 스쩨빤은 스따브로긴의 유년 시절 가정 교사로 그에게 우수(toska, 비애와 슬픔과 고뇌를 포함한 복잡한 감각)의 정신성을 안겨준 인물이다.

 

이 소설의 모든 인물, 모든 사건들은 스따브로긴과 (위치적으로나 오염 정도로나) 방사선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대부분 스따브로긴의 외모와 재력, 귀족적 분위기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한다. 악행에서도 오스카 와일드의 미남 악마 도리언 그레이보다 한수 위다. 이를 간파한 뾰뜨르가 스따브로긴을 조직에 이용하고 싶어하지만 호락호락하지 않다. 내가 《악령》에서 본 가장 대비되는 기둥은 악-욕망에 대한 열광(스따브로긴, 뾰뜨르)과 신-관념에 대한 열광(끼릴로프, 샤또프)이다. 영화 《검은 사제들》에서 강동원이 악령이 든 돼지를 들고 한강으로 달려가던 장면으로 재현되기도 한 '루가의 복음서'는 이 소설에서 중요한 상징이다. 특히 허무주의와 무신론이라는 관념-악령에 먹혀버린 돼지로 묘사된 스따브로긴과 끼릴로프는 아이러니하게도 이 소설에서 가장 흥미롭고 카리스마 넘치는 인물로 눈길을 끈다. 끼릴로프는 신을 부정한다기보다 '부재' 자로 판단해 신의 자리에 인간을 둬 결과적으로 신이라는 관념에 사로잡힌 채 광인으로 종말을 맞는다. 끼릴로프가 순수한 허무로써 극복하려 했다면 스따브로긴은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음에도 악행의 허무 속에서 파멸한다.

 

광신을 대표하는 샤또프와 무신을 대표하는 끼릴로프가 관념과 애증이 뒤섞인 불가분의 관계로 옴짝달싹 못하고 현실에 못 박힌 존재라면(이들은 함께 아메리카 모험을 했고 뾰뜨르의 조직에 가담해 음모에 빠졌으며 서로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면서도 한집에 살며 같은 날 죽음을 맞는다), 사회를 파괴하는 악인 뾰뜨르와 타인을 파괴하는 악인 스따브로긴도 상반되는 성격임에도 현실을 돌아다니며 들쑤시는 존재라는 점에서 쌍을 이룬다. 모두 도선생의 특징들을 가진 분열적인 캐릭터들이다. 이 이야기에서 아무런 해도 벌도 받지 않고 살아남는 건 뾰뜨르가 유일하다. 뾰뜨르가 사회악, 스따브로긴이 개인악을 상징한다고 볼 때 뾰뜨르라는 존재는 이 세상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았고 않을 것이란 상징성으로 짐작된다.

 

여기서 잠깐, 라디미르 나보코프《악령》을 반복해서 읽어도 재밌다고 말했다.

일전에 나는 도선생과 나보코프의 관련성을 분석한 바 있다.(http://blog.aladin.co.kr/durepos/8815151)

 

 

 

 

 

《악령》을 읽으며 10살 소녀 마뜨료샤와 스따브로긴의 일화에서 나보코프가 《롤리타》의 모티프를 얻었을 거란 의심을 지우기 어렵다. 그리고 도선생 작품 속 악행 연대기에서도 많은 영향을 받았으리라. 도선생 《악령》에서 뚜르게녜프, 셰익스피어 등의 영향을 느낄 수 있듯이. 스따브로긴의 여성 버전이라 할 수 있는 리자가 스따브로긴에게 희롱당하고 군중 폭력 속에 진흙탕에 처박혀 죽음에 이르게 되는 광경에서 오필리아가 햄릿에게 버림받고 연못 속에 빠져 죽는 장면이 스쳐가는 걸 막을 수 없었다. 읽어보면 알겠지만《악령》은 셰익스피어 비극과도 견줄 만하다. 강렬하고 다양한 캐릭터들과 비극적인 스토리 때문에 읽는 내내 연극을 보는 기분이다. 

 

 상트 페떼르부르크 말리 극장 로비, 《악령》연극을 형상화한 작품

[출처: http://press.sac.or.kr/_press/000-2004/2004%20gull/200306%20mally%20theatre.htm]

 

 

 

 

 

 

 도선생은 뚜르게네프 아버지와 아들을 염두에 두고 《악령》을 구상했다고 한다. 이상주의자인 스쩨빤과 무정부주의자 뾰뜨르는 부자지간인데 어수룩한 광대와 교활한 마귀로 대조적이다. 아들을 버렸던 구세대 스쩨빤의 시련은 당연할 수밖에 없고 아버지와 결별한 세대인 뾰뜨르의 거침없음도 일견 이해된다.

그러나 뾰뜨르와 스따브로긴의 문제점은 타인과의 불화라든지 어떤 갈등에 있지 않고 보다 본질적인 데 있다. 그들을 통해 자유의지와 마찬가지로 강조되는 인간의 큰 특징을 생각하게 되는데 그들에겐 반성적 사고’가 없다. 뾰뜨르는 아예 없고, 스따브로긴은 그것을 계속 기만하고 부정한다. 뾰뜨르와 함께 사회 위협과 샤또프 살해에 참여한 5인조(럄신, 비르긴스끼, 리뿌찐, 똘까첸코, 쉬갈료프)가 체포되고 각각 반성적 사고를 거치는 인간적 모습과는 확연히 다르다.. 이 이해 불가능한 인간의 상태를 도선생은 최종적인 "악령"으로 본 게 아닌가 싶다.

 

 

 

 

The Acid - Red (Official Audio)

 

 

 

 

 

 

좀 더 쓸까.... 뭔가 떠오르면 또.

 

 

 

 


덧)

열린책 도선생 전집 중 《악령》 번역은 김연경 씨가 했는데, 번역과 특히 해설이 좋았다. 《죄와 벌》,《까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김연경 씨 번역은 민음사에서 나왔기 때문에 민음사 판으로도 꼭 읽어야 될 것으로 사료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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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7-05-23 17: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금 이상태로도 충분히 좋고,
게속 수정을 하셔도 좋을 것을 장담하면서어~‘좋아요‘ 빵~!

AgalmA 2017-05-24 01:51   좋아요 0 | URL
나혼자 골머리 분석 아닌가 몰라요ㅎㅎ 응원 감사요^--^

페크pek0501 2017-05-23 22: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좋아요를 이미 빵 했어요.

저도 덧붙이면서 계속 쓰는 페이퍼를 구상한 바 있습니다. 날이 갈수록 길어지는 페이퍼를요.ㅋ
이 방법, 신선해 좋습니다.

오래전, 두꺼운 책으로 ‘죄와 벌‘을 읽고 도선생이 천재라고 생각했죠.
‘지하생활자의 수기‘(이건 그리 두껍지 않음)를 읽고 역시 경이로운 작가라는 데 한 표 던졌죠. 몇 번이고 반복해 읽었던
몇 군데가 지금도 생각납니다.

이젠 세 권짜리 작품은 읽을 엄두를 못 냅니다.

AgalmA 2017-05-24 11:34   좋아요 1 | URL
해설 보니 도선생 소설에 있어서《지하로부터의 수기》는 중요한 분수령이더군요. 이 저작 이후에 씌어진 모든 장편소설은 否定과 부정적 인물들을 그려내는데 집중하게 되었다고요. 일명 ‘지하인‘들이라고 할. 《악령》은 후기 소설 중에서 그 부정성의 밀도는 좀 떨어지지만 스따브로긴은 부정의 극단을 가장 잘 보여준 인물이라고. 이 인물 정말 매력적.

도선생 후기 장편소설은 다 2권 이상이라 부담스럽긴 하죠ㅎ; 열린책은 자간도 촘촘해서 더 압박되는 느낌입니다;;;
《악령》 읽었으니 3권짜리는 이제《카라마조프 형제들》만 남았네요. 저번에 1권만 읽고 끝나서ㅎ;; 저도 이번에 재도전이요.ㅎㅎ

북다이제스터 2017-05-23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극과극은 통한다고 하던데요.
유발 하라리와 토스토옙스키는 상극 아닌가요?^^

AgalmA 2017-05-24 02:27   좋아요 1 | URL
아까 뉴스보니 E.H. 카 《역사란 무엇인가》˝우연이라고 취급된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다˝ 말을 인용하더군요.
˝필연은 우연의 옷을 입고 온다˝고도. 상극이라 생각하는 건 우리 각자 판단 범주이고, 그 연결들-필연을 보는 것은 역사가나 소설가나 일반 대중이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

레삭매냐 2017-05-24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끼 선생 책들은 예전 열린책들 도끼 전집
으로 하나둘씩 컬렉션하고 있지만 정작
읽은 건 <죄와 벌> 하나 뿐인 것 같아요.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도 읽다 말고...

AgalmA 2017-05-24 12:02   좋아요 0 | URL
레삭매냐님은 도끼선생으로 부르시는군요^^
도선생 책은 처음에서 한 100 페이지까지 진입장벽이 힘들어서 그렇지 어느 정도 읽다 보면 폭 빠져 읽게 되는 거 같아요^^ 인물도 많은데 생소한데다 길고 헷갈리는 이름ㅡ 따로 부르는 애칭, 약칭도 넘 많고; ㅡ때문에 매번 괴롭습니다ㅎㅎ;;


저도 2권 이상 넘어가는 장편은 피해서 읽다가 이래선 안 되겠다 싶더군요; 배울 게 많은 작가라 힘들어도 5대 장편은 반드시 다 읽으려고요^^

겨울호랑이 2017-05-26 0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서양문화에 있어 ‘신 god ‘문제는 빼놓을 수가 없군요. 수학과 철학에서만 나오는 줄 알았는데 심지어는 문학의 주요 소재가... 신의 존재가 모든 서양문화의 주제가 될 정도로 중요한지는 모르겠네요...

AgalmA 2017-05-27 02:29   좋아요 2 | URL
니체는 도선생을 자신이 무언가 배울 수 있었던 단 한 사람의 심리학자라고 했죠. 도선생이 작품에서 꾸준히 논의하는 무신론, 인신사상, 허무주의는 니체에게 대단히 고무적이었을 겁니다.
프로이트에게도 도선생은 인간의 심리에 대해 많은 자료가 되었죠. 문학은 인간 정신의 보고니까요.
그리스 신화부터 해서 가톨릭, 기독교 등 서양 문화는 신을 중심으로 움직여왔죠. 바흐부터 해서 서양 대부분의 음악, 건축, 예술도 종교가 주요 소재죠. 역사를 들여다보면 그들의 종교가 어떻게 세상을 움직여 왔는지 겨울호랑이님도 느끼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종교 전쟁 뿐 아니라 선교를 목적으로 타국에 들어가는 흐름을 봐도. 초창기 미국 이민자들도 종교 때문에 그리 넘어간 거 아닙니까.
시오니즘, 슬라브주의, 이슬람... 그들의 선민사상은 신없음 애초에 말이 안 되죠.
서양의 언어 발달도 종교 영향이 매우 컸죠. 인쇄술의 발달로 가장 널리 퍼져 나간 출판물은 성서입니다. 현재까지 가장 많이 팔린 책도 성서입니다.
종교는 모든 생산-소비에 대단한 주재료였죠.
걸작이라 일컬어지는 대부분의 작품들은 신-종교적인 걸 다루죠. 영웅담쯤으로 알고 있는「돈키호테」조차 결말은 돈키호테가 그간의 모험을 인간의 어리석음이었다고 고해성사하고 신에게 귀의하는 걸로 끝나요. 이 결말이 제게 얼마나 큰 충격을 줬는지...
근대 이후 자아, 인권이 크게 대두되면서 신과 인간의 대결로 확대되긴 했지만,
이성의 산물처럼 여겨지는 진화론, 과학조차 여전히 가장 큰 적은 신, 종교적 믿음 아니던가요? 아인슈타인조차 신을 믿었잖아요.
알면 알수록 인간은 나약합니다. 자신을 지탱해 줄 무언가를 본능적으로 찾죠. 신 없는 허무를 우리는 너무도 극복하기 어려워 합니다. 돈으로는 현실적 만족밖에 얻지 못하니까요. 오죽하면 위안을 얻기 위해 면죄부를 살 생각까지 했겠어요. 종교의 세속화라는 걸 알면서도 십일조로 여전히 남아있죠.
이 모든 우울한 상황은 우리 관념이 원흉이죠. 수학과 철학, 예술이 거기서 나왔다고 해도.
이렇게 말하는 저야말로 참으로 허무주의자인지도요.

겨울호랑이 2017-05-26 10:49   좋아요 1 | URL
^^: AgalmA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에 동의합니다. 한편으로, 세계에 있는 여러 문명 중에서 인도-유럽문명에서 나타나는 신중심(神中心) 문화는 여러 가지를 생각나게 합니다. 하늘의 뜻을 그대로 받아들이는가와 하늘의 존재를 의심하는가의 차이로 나타나는 ‘신 존재‘ 문제는 쉽기도 하고 어렵기도 한 문제라는 생각이 드네요.^^:

북다이제스터 2017-05-26 20:52   좋아요 0 | URL
AgalmA 님, 십일조가 면죄부라니 좀 쎈 표현 아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