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대하여 - 철학자 장켈레비치와의 대화 철학자의 돌 4
블라디미르 장켈레비치 지음, 변진경 옮김, 이경신 해제 / 돌베개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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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글은 죽음과 불안을 조금씩 다 담고 있다. 아니 결코 떨칠 수 없다는 게 더 정확하다. 현실에서는 노화 방지 시술이나 체력 단련, 노후 대책 등으로 긍정적으로 보이려 애쓰지만 본질로 말하자면 미루고 싶은 몸부림이다. 마음의 상황은 더 난국인데 도망자에 가깝기 때문이다. 연기(延期)와 회피. 이 시점에서 주사, 시술.. 누가 많이 생각난다.

켈레비치 : 우리는 죽음이라는 문제를 깊이 파고들지 않습니다. 거기에는 문제를 막연하게 만들어보려는 일종의 방어 기제가 작동하는데, 죽음을 다른 사람의 문제로 국한하려는 경향이 그것입니다.


다음 대화는 인간의 의미 부여에 대한 장켈레비치의 불가지론(경험을 벗어난 사물의 본질은 인식할 수 없다는 철학적 관점) 면모를 볼 수 있다.

다니엘 디네 : 삶은 죽음에 의해 감염되어 있고 죽음이 삶을 물리친다면, 인간의 미래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장켈레비치 : 그것이 인간 실존의 비애입니다. 실존의 문제들은 삶 안에서, 삶과의 관계 속에서 합목적성을 갖습니다. 그것을 삶에 내재하는 합목적성이라 부를 수 있겠지요. 나의 일과나 내가 구상하는 계획들에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개개의 것의 총체는 의미가 없습니다. 나의 삶은 다른 사람에게 의미가 있을 수 있겠지만, 나의 삶 전체는 나 자신에게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니 너무 깊이 사색에 빠지거나 인간 실존의 일반적 의미나 나의 실존이 나 자신에게 갖는 의미에 대해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더는 그 의미를 찾을 수 없을 테니까요.
아니면 실존에 의미를 되찾아주는 종교적 희망 속에 피신해야 할 겁니다. 분명히 종교적 희망은 우리에게 안도감을 주지만, 문제는 그것이 진실인가 아닌가가 되겠지요.


다니엘 디네와의 대담에서는 죽음을 둘러싼 우리의 인식 여건들을 살펴보았고, 이어지는 조르주 반 우트와의 대담에서는 죽음과 신앙의 관계가 주요 쟁점이다. 신앙의 내세관 속에서 실존적 가치를 얻으려는 인간의 갈망, 죽음과 내세의 지복을 동일시하는 순진한 믿음.
파스칼 뒤퐁과의 대담에서는 안락사가 주요 주제였다. ˝삶에 대한 인간의 바람은 인간의 능력에 따라 자연스럽게 증가했˝다고 장켈레비치는 말했다. 즉 생명연장이든 안락사든 그것은 우리가 죽음을 더 주체적으로 다룰 수 있는 영역에 들어왔다는 걸 시사한다. 변함없는 건 ˝죽는다는 사실의 확실함과 죽는 날짜의 불확실함 사이에서 불명확한 희망˝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 장켈레비치는 현재의 안락사에 대한 논의가 너무 추상적이거나 너무 단순하다고 말하며 세심한 조건들을 거론했다. 치료 가능성을 따져볼 특정한 시기의 의학, 의사의 선택, 질병의 문제, 환자의 역사적 상황 등.
『어떤 육체?』에 실린 대담에서는 다음 문장이 핵심이었다.
˝시체를 다루는 다양한 방식들은 아마도 문명과 종교에 따라 육체가 다른 방식으로 이해된다는 점을 의미할 겁니다.˝
우리는 죽음을 안심할 수 있는 방식으로 가시화하려고 애써왔다. 잘 처리되지 못하면 금기로 닫아버린다. 오귀스트 콩트가 만든 실증주의력이나 그리스도교에서 죽은 자의 얼굴을 본떠 데스마스크를 만드는 관습, 축제와 같은 장례 풍습 등은 산 자의 유희에 가깝다.
(*실증주의력: 오귀스트 콩트가 1849년에 만든 달력. 1월부터 13월에 각각 역사적 인물인 모세, 호머, 아리스토텔레스, 아르키메데스, 카이사르, 성 바울, 샤를마뉴, 단테, 구텐베르크, 셰익스피어, 데카르트, 프레데릭, 비샤가 지정되었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묘사한 플라톤 《파이돈》을 홀로 맞는 죽음의 두려움을 철학적 수다로 푼 죽음이라 말하는 장켈레비치의 표현은 위트가 넘쳤다.
고령의 자연사도 우리의 편의적인 표현일 수 있다. ˝죽음에는 항상 추가적인 원인이 존재하는데 때로 그 원인이 눈에 잘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
육체의 긍정성을 강조하는 스포츠. 평소 내가 불만스럽게 생각하던 스포츠의 폭력성도 아주 적절하게 잘 지적해 주었다. 정치적 이용에 대해서도.
˝텔레비전 뉴스에서 볼 수 있듯이 조금이라도 난처한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면 ˝ 그럼, 스포츠 소식으로 넘어가겠습니다. ˝라고 합니다."
심각한 현안들이 가득한데 갑자기 스포츠 소식으로 바뀔 때 나는 얼마나 분노했던가! 생각해보니 JTBC 뉴스는 그런 게 덜하다.

삶의 희망이 죽음의 불안과 거리를 둘 수 있다 말하는 실존주의 철학자 장켈레비치(1903~1985)의 사상은 종교적 믿음을 철저히 배제하면서 ‘신비‘에 대해 끝없이 사유하는 모습이 독특하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신비 중에는 죽음이 으뜸일 것이다. 대담들을 엮은 이 책을 통해 접할 수 있는 라디미르 켈레비치 《죽음》 (1966) 저서는 비체계적인 사상을 금언으로 풀어내는아포리즘으로 가득하다.
˝죽음이 필연적이라고 믿을 만한 근거들은 충분하지만, 결코 모습을 보이지 않는 신이 존재한다고 단정할 근거는 전혀 없다....... 구조자는 조난자와 전혀 다른 차원에 존재한다˝(《죽음》, p 394)

그의 이러한 경향은 반유대 철학자들(칸트, 피히테, 헤겔, 하이데거)과 독일 철학 체계를 교조적으로 따르던 당시 프랑스 철학을 거부하고 베르그송 등의 비주류 철학에 몰두함과 동시에 러시아 작가에게 많은 영향을 받은 데 기인하는 것 같다, 그는 "나는 환생한 체호프였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국내에 아직 도착하지 않은 그의 《죽음》 저서를 언제 접하게 될지 모르지만, 죽음에 대한 수많은 철학적 · 종교적 기만들을 걷어내고 이성적으로 현실화해 보려고 한 장켈레비치의 사유는 두려움 속에 죽음을 대비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 대한 충실과 행동을 생각하게 하는 좋은 표지(標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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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3 13: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7-01-13 13:48   좋아요 1 | URL
맞는 말씀. 우리는 늘 현실을 매장하면서 의미를 부여하며 일희일비하는 광대들이란 심정의 연속입니다.

2017-01-13 13: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7-01-13 13:47   좋아요 1 | URL
이 책 오늘은 반드시 다 읽고 정리할 테다! !해서 저도 늑장 출근ㅜㅜ; 아아, 저도 매일 이놈의 노예생활~ 노래를 부릅니다ㅜㅜ

겨울호랑이 2017-01-13 14: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Memento mori」가 ˝죽음을 기억하라˝인데 ‘잊으라‘ 고 한다면 ‘죽음‘만 남게 되겠네요^^:

AgalmA 2017-01-13 14:22   좋아요 1 | URL
죽으면 나도 사라지니 죽음만 남아서 다른 삶을 받겠지요...^^;
장켈레비치도 말했다시피 우리는 죽음을 살아서는 경험 못 하는데 애초에 모르는 걸 기억한다는 건 부조리하죠.

벤투의스케치북 2017-01-13 15: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죽을(mortal) 삶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말이 아닌가 싶은데요...

AgalmA 2017-01-13 15:38   좋아요 1 | URL
죽음이 있기 때문에 삶이 규정된다는 점에서 메멘토 모리는 말씀하신 뜻이 담겨 있죠. 그러나 종교적 영향이 서구 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곳에 퍼진 상황에서 그것은 성찰보다 위협조로 많이 변질되었죠. 우리의 불안이 그것을 더 가중했을 테고요

벤투의스케치북 2017-01-13 15: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금의 기독교는 죽음 후의 심판을 너무 강조하기에 복음이 아니라 화음(禍音)이라 할 수 있습니다.

AgalmA 2017-01-13 15:39   좋아요 1 | URL
장켈레비치도 이 책에서 그런 점을 내내 비판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을 회유할 뿐이라고.

벤투의스케치북 2017-01-13 15: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그러면 쓰고 싶지 않은 말이지만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세상은 왜 만들어 심판이니 천국이니 난리를 피우느냐고 말합니다. 무엇을 원하느냐는 로마 병사의 질문에 햇볕을 쬐게 비켜달라 했던 디오게네스처럼 삶이 아닌 아예 태어나지 않는 것을 원하는 사람도 있으리라 싶습니다.

AgalmA 2017-01-13 16:14   좋아요 1 | URL
그들은 모든 게 신의 뜻이라는 간편한 말도 만들어 뒀잖습니까. 인간은 집단과 체계를 원하는 시스템적인 동물이죠. 어떻게든 최소한의 집단을 만들려 한단 말입니다? 그러니 내부 규율은 당연히 생길 수밖에 없고.
우리 DNA에 생존요건으로 작동한다고 하니 어쩝니까.

디오게네스 - 알렉산더 대왕 일화는 시원한 구석이 있죠^^
다시 태어나지 않는 열반에 든 이는 부처 말고도 많겠지요. 우리가 모를 뿐.

벤투의스케치북 2017-01-13 16: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 동의합니다. 기독교의 득세는 이해가 되지 않는 면이 강합니다.

AgalmA 2017-01-13 16:31   좋아요 1 | URL
어디까지나 제 짧은 생각입니다만 플라톤부터 이어져오는 이러한 지식 계보를 봐도 그렇고 체계화의 문제 아닐까 싶어요. 체계화되지 못한 이전 사상들은 계보화되지 못했죠. 기독교는 공동체로 묶는 규율 체계가 아주 잘 되어 있죠. 해외 어디를 가든 그런 안전한 공동체 속에 묶일 수 있죠. 동양의 믿거나 말거나 식의 개인적인 자율 세계가 아니란 말이죠. 정치 체계가 모두 와해되어도 인간에게 종교 세계는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장담합니다^^

벤투의스케치북 2017-01-13 17: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 정치도 종교, 신앙적으로 접근하는 사람들을 보면 공감할 수 있는 말씀이라 생각합니다.
 

미술비평가, 사진이론가, 화가, 소설가, 다큐멘터리 작가, 사회비평가 등 수많은 타이틀은 존 버거(1926.11.5~2017.1.2, 런던 태생)에게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태어나 누군가 붙인 이름으로 불리워졌던 것처럼. 내가 삶에 그렇듯 자신이 표현하고자 한 방식이 중요했을 뿐.
결국 그는 방식에 대해 무엇을 수긍했을까. 단지 임할 뿐?



  

˝내가 상상력을 발휘해 이 소설을 써보기로 마음먹은 것도, 이 소설이 그렇게 만져 볼 수 있을 뿐 정확히 알 수는 없는 시간의 특징에 대해 암시하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어둠 속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그의 소설 <G>를 내려다보며...
존 버거, 파스칼 키냐르, 미셸 우엘벡, 필립 로스, 존 파울즈, 곰브로비치 (더더 많겠지) ... 그들은 ‘ 존재가 겪는 섹스(욕망)와 시간과 죽음‘ 사이의 궤적과 밀도를 측정한 작가군일 것이다. 문학의 오래된 주제이지만 그 연결들은 현대에 와서 면밀히 검토되고 있다고 본다. 개인화된 현대를 살고 있는 작가들이 피할 수 없이 닿게 되는 지점 아닐까 싶다. 어둠 속을 더듬거리며 걷고 있던 그들. 존 버거가 소설 <G>를 부르주아 문화가 와해되어 가며 개인의 욕망이 커지던 1886~1915년 사이로 설정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한숨이 나왔다. 아무리 내뱉어도 사라지지 않는 이 암흑. 그리고 각자 발견했던 빛. 다시 어둠.

 

 

 

˝그의 생각에, 미친 사람들은 전부 아니면 무를 요구했다.˝

˝세상의 일 분이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있는 그대로 묘사하라.˝(세잔의 말)

˝모든 역사는 동시대의 역사다.˝(R. G. Collingwood)



 

 



모든 것이 내게 전면적인 재검토를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존 버거 에세이 《존 버거의 글로 쓴 사진》밑줄긋기

 

인간을 뺀 모든 신중한 동물, 그들은 결코 자신들이 누구인지를 내보이려 하지 않는다.

마을은 근년 들어 많이 바뀌었다. 그러나 겨울햇빛 아래 멀리서 보면, 마을은 이 세기가 시작되던 때의 모습 그대로일 것이다 ..... 마을은 신비한 약속들로 가득 차 있었다.


대상과 닮게 그리는 것이 인물화의 조건이라고는 결코 생각지 않는다. 닮을 수도 닮지 않을 수도 있지만, 여하튼 그것은 신비로 남는다. 이를테면 사진의 경우 ‘닮음‘이란 없다. 사진에서 그건 질문조차 되지 않는다. 닮음이란 생김새나 비율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아마도 두 손가락 끝이 만나는 것같이 두 방향에서의 겨냥이 그림에 포착된 것이리라.


벙어리 털실장갑을 끼고 바흐를 연주하는 글렌 굴드


기하학이란, 대상으로부터 오는 것이며, 그것을 보려는 태도를 갖춘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라고, 앙리 까르띠에는 말했다.


산 위에 조금만 있어 보면 외롭다는 생각은 사라진다. 발가벗고 살기 때문에.
발가벗은 사람은 또 다른 차원의 동반자가 함께 있음을 알게 된다. 왜 그런지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다. 물론 마르셀이 옷을 벗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밤에 옷을 입고 잔다. 그럼에도 알파주에서 혼자 한 주 두 주 지내다 보면, 영혼은 윗도리를 벗기 시작하고 이윽고 알몸이 되면서, 혼자가 아님을 깨닫게 된다. 그의 눈에서 그것이 읽힌다.
영혼은 그렇다 쳐도, 가축들이 잘못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은 늘 있었다.
두 마리의 개가 소들의 이름을 죄다 알고 있을 정도지만, 그럼에도 소가 길을 잃거나 다리가 부러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곳 산에서는 개연성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어떤 때는 소나무 숲이 지금 막 걸음을 멈춘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은하수가 마치 모기장처럼 가깝게 보일 때도 있다.
어느 8월 아침에는, 우유 짜는 헛간에서 똥 치울 때 쓰는 외바퀴차의 손잡이가 얼어버리기도 한다.


사람들이 너무 빽빽해 걷기가 힘들었다. 사람들은 조약돌 사이의 빈틈을 찾는 작은 물줄기처럼 앞으로 나아간다. 그 물줄기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조약돌이 된다. 인구 통계 그래프야 신문에서 보면 되지만, 이런 군중들 속에서는 손등에서 퍼져 나오는 따뜻함과 연료와 배기가스의 냄새, 시멘트 가루와 생선, 예피, 똥 냄새, 플라스틱 타는 냄새, 요오드팅크, 꿀과 식초 등 이런 모든 것이 어우러진 냄새에 의해 장강의 흐름과도 같은 끈질기고 격렬한 생육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 아크로폴리스 바로 아래 아테네의 오모니아 구역에서, 삶은 제 스스로를 강조하고 있다.  


햇빛에 구운 흙과 돌멩이, 풀, 엉겅퀴, 도마뱀, 조개 껍데기 화석, 또 야생 꽃상추, 비가 쏟아지고 천둥이 치고, 그런 후 햇빛에 반짝이는 은빛의 젖은 올리브 잎, 다음날 길을 따라 걸을 때면 발목에 감겨 오는 따가운 이른 오후의 정적, 마치 유년기 그 자체처럼 끝없이 이어지던 이런 일상들, 그것들은 하루와 함께 길 저쪽끝으로 꿈틀거리며 사라진 후 다음날 어김없이 다시 돌아왔는데, 어느 것 하나도 오래 붙잡을 수 없었기에, 길은 늘 경이로 가득 차 있었다.

 

 

 

 

 *마리사와 존(사진: 마리사 카미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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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7-01-04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천했다는 소식 들었습니다..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AgalmA 2017-01-04 10:55   좋아요 2 | URL
˝선생님˝을 또 잃고 시작하는 한 해입니다....

이름 2017-01-04 1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기사를 보고 당황스러웠어요. 이제 존 버거의 새 글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마음을 아프게 하더라구요.

AgalmA 2017-01-04 17:28   좋아요 0 | URL
저도 소식듣고 읽지 않았던 그의 책이 퍼뜩 생각나더라고요... 읽을 책이 늘 산더미니 이럴 때 챙겨 보게라도 된 달까.

시이소오 2017-01-04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년부터 존 버거의 부음이라니, 왠지 울컥하네요 ㅠㅠ

AgalmA 2017-01-05 02:26   좋아요 0 | URL
존 버거 소설은 에세이랑 많이 다르더라고요. 몰라도 많이 몰랐다는ㅜㅜ;
 
벌목꾼
토마스 베른하르트 지음 / 현대미학사 / 199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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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적절한 순간에 한 인간을 만나고 이 인간에게서 우리에게 중요한 모든 것을 취한다고 생각했으며 또 적절한 순간에 다시 이 인간을 떠난다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아주 적절한 시기에 자니 빌로트를 만났고 또한 적절한 시기에 다시 그녀를 떠났다고 생각했다. 마치 아주 적절한 시기에 모든 사람들을 떠났듯이 떠났다고 나는 이제 생각했다. 우리는 자니와 같은 인간의 정신 상태, 그녀의 감정 상태와 정신 상태를 따르고 한동안 이 정신 상태와 감정 상태만을 받아들이다가는 거기서 충분히 받아들였다고 믿어지면 이 인간과의 관계를 끊는다. 마치 내가 자니와의 관계를 미련 없이 끊어버린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그런 인간에게서 수년 동안 모든 것을 빨아먹고는 갑자기 우리가 거의 전부를 먹어버린 이 인간이 우리를 빨아먹었다고 말한다. 그리고서 우리는 평생 이 비열함을 감내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나는 이제 생각했다.』

ㅡ 마스 베른하르트 <벌목꾼> 中 (현대미학사, 1993, 절판, 재출간 미지수)

 

 

■ 장은수 씨가 쓴 ‘베른하르트의 작품 세계‘ 편집 발췌

‘과장의 대가‘, 세계 종말의 희구자‘, ‘알프스의 베케트‘,‘ 自家모독자‘ 등의 별명이 붙어 있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토마스 베른하르트(Thomas Bernhard, 1931~1989)

그의 작품의 주 경향이기도 한 ‘인간 사회의 치부를 폭로하기 위해 극단적인 욕설과 대담한 조소‘를 서슴지 않았던 그런 정력적 비판가의 이면에, 청년 시절부터 갖가지 폐 질환과 합병증으로 시달려온 병약하고 외로운 삶의 주인공이 존재하고 있었다. 어울리지 않게 그가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죽음의 고통과 요양원 생활의 무료함을 잊으려는 의도에서였다고 한다.

시인으로서는 별로 빛을 보지 못했던 그가 첫 소설 작품인 <서리>(1963)와 그에 뒤따른 <혼란>(1967)의 발표로 주목된 이래 독어권에서 선풍적 인기를 모으며 읽혔고, 60여 권에 이르는 그의 작품 중 상당수가 프랑스, 이태리 서구 각지에도 번역되어 널리 소개되었다. 베른하르트 사망 전후 그의 인기가 절정에 달했을 때는 그의 작품이 일 년 365일 공연되지 않고 지나는 날이 하루도 없다는 말이 돌 정도였다.

그의 수상 경력도 화려한데, 독일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뷔히너상]을 비롯해 프랑스의 [세귀에 문학상], 이탈리아의 [세계문학상] 등 다수의 상을 받는 한편, 수상기관이나 상의 성격이 맘에 들지 않을 경우는 이를 거절하는 것은 물론 공개서한으로 비판적 공박을 가하곤 했다.

토마스 베른하르트가 1968 그의 소설 <혼란>으로 오스트리아 문학대상을 받게 되었을 때에도 감격 어린 어조의 수상소감을 기대하고 앉아있던 문화계 인사들은 수줍은 청년작가가 내뱉는 어처구니없는 독설에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세상엔 찬양할 아무것도 없고, 저주할 것도, 고소(告訴)할 것도 없습니다. 다만 우수꽝스러운 것이 많이 있을 따름입니다. 죽음을 생각하면 모든 것이 우스꽝스럽기만 합니다˝라는 말로 베른하트트는 수상소감을 대신했다.

이런 세계관의 기본 명제로 시작된 베른하르트의 연설은 곧 오스트리아에 대한 자성적 비판으로 이어졌고, 그의 신랄한 비난을 더 이상 참고 들을 수 없게 된 문화성 장관이 격분해서, ˝그래도 우리는 자랑스러운 오스트리아인이오! ˝라고 소리치며 식장을 나가는 바람에 시상식장은 아수라장이 되었고, 덕분에 당시까지만 해도 무명이었던 베른하르트는 급기야 도전적 신예로 부상하는 화제의 인물이 되었다.

제임스 조이스의 작품 등 현대 유럽 소설에서 종종 볼 수 있는 것처럼, 베른하르트의 작품에도 딱히 줄거리라 할 만한 것이 없고, 있어도 단 몇 마디로 요약될 수 있을 정도로 지극히 단순하다.
줄거리를 대신하는 것은 주인공이 넋두리하듯 주워 섬기는 독백이며 대부분의 작품들에서는 소설의 화자가 이 독백을 듣고 보고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소설 <벌목꾼>에서도 관찰하고 보고하는 화자인 ‘나‘가 동시에 주인공이며, 재미있는 것은 화자의 관찰대상이 자신을 비롯해 저녁식사에 초대된 모든 예술가 동료들로 확대되어 있다는 점이다. ‘나‘는 마치 극장의 관객처럼 객석에 앉아 ‘예술적 만찬‘에 초대된 그들이 우아하게 등장하는 것에 대비시켜, 껍데기 속에 가려진 그들의 기회주의적인 태도, 진실을 외면하는 허영과 허위를 시종일관 비판적인 눈으로 관찰하고 고발한다. 그는 그들의 위선적인 행위에 분노하며 초대를 받아들여 그가 증오하는 무리의 일원이 된 것을 후회하지만, 한편으론 그들의 파티에서 벌이고 있는 희극을 호기심 있는 관객의 눈으로 감상하는 재미도 부인하지 못한다.

이 작품은 발표 직후 한동안 오스트리아 전 국민의 토론 주제로 부상했다. 이는 우선 소설의 인물을 통해 명예훼손 당했다고 주장한 작곡가 람페르스베르크의 고소를 필두로 이 소설을 실화소설로 본 비평가와 매스컴이 ‘Who‘s Who?‘ 놀이에 발동을 걸면서 세인의 관심을 집중시켰고, 이로 인해 베른하르트는 이제까지의 정치적 성격의 스캔들과는 또 다른 형태의 물의를 일으키는 주인공이 되었다.

베른하르트의 작품을 잘 이해하고 오랫동안 손에 놓지 못하는 이들은 그러나 그의 매력을 또 다른 곳에서 찾고 있다. 그의 모든 희곡의 초연을 거의 도맡다시피한 연출가 클라우스 파이만도 그중 한 사람으로, 베른하르트를 읽는 즐거움을 그의 개성적인 문체에서 찾는다며 ˝모차르트의 음악이 세 박자만 들으면 알아챌 수 있듯이, 베른하르트의 작품도 세 문장만 읽으면 금방 알아챌 수 있지요˝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파이만이 베른하르트 문체의 개성을 강조하기 위해 음악에 비교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무엇을 어떻게 쓰느냐에 앞서 어떻게 쓰느냐에 비중을 둔 문학관을 강조한 베른하르트의 작품은 정선된 언어와 반복을 통해 리듬감을 살린 음악적 구조물이라 볼 수 있다. 그의 희곡들을 전문적으로 공연해 온 연출가와 배우들은 바로 이 점에서 그의 작품의 예술적 강점과 현실적 난점을 동시에 본다.



§
브뉘엘 영화 <부르주아의 은밀한 매력>(1972), <욕망의 모호한 대상>(1977)이 떠올려지기도 하는 토마스 베른하르트 《벌목꾼》.
토마스 베른하르트 책을 읽은 지 한참 지나서도 종종 ˝지금의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로 끝맺는 그의 문체를 은연중 쓰고 있는 나를 만나곤 한다. 좋아하는 음악의 후렴구를 따라 부르듯.

새해가 되었고 우리는 또 만나고 헤어질 것이다. 적절한 관계란 어떤 것일까. 그것은 누구에게나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영역이다. 인간과 관계에 대한 끝없는 회의감은 토마스 베른하르트 전 작품에 나타나는 기조이다.
넋 놓고 살 수 없게 만드는, 끊임없이 항체를 만들어야 하는 관계들 속에서 나는 그의 글에 매번 깊이 공감했다.(이 책을 빌려 줬다가 못 받은 것도 내 회의감에 +1 더해짐) 니체, 카프카, 카뮈의 책을 읽으며 그랬듯이.(이들 책도 빌려 줬다가 못 받은 게 있다...) 그들의 책을 꺼낼 때면 내 시선은 병든 개모냥 헤집고 다니고 싶어 했지만 긴장감과 무게를 오래 짊어지지 못 했다. 정신은 쉬이 피로해지고 어느 날 필라멘트가 끊기듯 툭 놓아버리고 애써 삶에 임했다.
누구나 자신의 인간으로서의 나약함과 부족함을 부끄럽게 말하지만 글로 적나라하게 말하진 않는다. 더 정확히 말하면 보다 나은 사람처럼 보이게 꾸미면서 들키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 점에서 토마스 베른하르트는 누구보다 당당한 작가였고 사람이었다.
하루키를 좋아하는 이유는 나는 그렇게 글을 쓸 수 없기 때문이다. 하루키를 얕잡아 보는 사람들은 하루키 글만의 당당함을 모르는 사람들이다.

내가 환상 속에 사는 것은 당신들 영역의 경쟁자가 되고 싶지 않다는 배려이자 무능이며, 내가 이 생에서 꾸리고 선택할 수 있는 최소한의 삶의 모습이다. 그러나 나 또한 누군가의 피해 의식 대상일지 모를 일, 그럴 때면 정말이지 세상의 모든 불을 끄고 싶다.
삶에 대한 무한한 긍정을 요구하는 시기에 나는 이런 생각을 자주 한다. 밤낮으로. 그리고 이런 생각과 느낌을 소설로 표현해 준 토마스 베른하르트에게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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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7-01-03 08: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베른하르트를 잘 모릅니다만, 그가 살던 시기가 2차 세계대전 전후인 것을 보면 오스트리아의 자성적 비판은 전쟁책임에 관한 내용인 것 같네요^^:...Agalma님늘 좋은 작가, 좋은 작품 소개 감사합니다.

AgalmA 2017-01-03 21:09   좋아요 2 | URL

네, 베른하르트의 마지막 소설 <소멸>은 특히 나치에 동조한 오스트리아의 비열함에 대한 조소가 신랄합니다. 문화와 예술의 나라라고 자부하는 그 속엔 허위가 가득하다고 치를 떨며 오스트리아에 자기 작품 출판을 거부하기도 했고요.

겨울호랑이님, 좋은 하루 되세요/

달걀부인 2017-01-03 09: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언급하신 개인적 상황 혹은 심경 같은 것들에 살짝 동의하면서(저도 요즘 그러네요) 잘 읽고 갑니다.

AgalmA 2017-01-03 21:00   좋아요 1 | URL
달걀부인님은 어찌하여...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사람에 대한 고민은 여전한 거 같아요. 앞으로도 내내 그렇겠죠.
거기도 많이 춥지요. 건강 잘 챙기세요. 달걀부인님.

2017-01-03 16: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03 21: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물고기자리 2017-01-03 22: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읽으면 읽을수록 달콤한 희망보단 더 처절한 고독과 고통을 마주하게 되는데도 계속해서 읽게 되는 이유는 뭘까요. (인간관계에 치이면서도 새로운 관계를 맺는 것도요..)

현실의 문제들이 정리되면 읽어야지 했는데, 그것과는 상관없이 이미 작은 틈을 내어 읽고 있고, 이런저런 고통들이 흘러가면 써야지 했는데, 한 가지가 지나가면 또 다른 것이 오더라고요.

심란한 맘에 일기를 끄적거리다가 문득 체호프의 어느 단편이 떠올랐고, 나의 현실을 책으로 재해석할 지경이라면, 나는 어쩔 수 없는 읽는 인간이며, 쓰는 인간이구나 싶었어요 ㅎ

어떤 작가들을 집중적으로 탐구하듯 읽다 보니 비슷한 상황에선 특정 작가의 고민이 같이 떠올라요. 그럴 때마다 나에게도 달려갈 오랑의 해변이 있었다면, 제밀라의 바람을 맞을 수 있었으면 좀 더 다른 답을 찾았을까.. 이런 생각을 해보기도 해요.

어떤 날은 정말 스위치를 내려버리고 싶기도 한데, 끄고 싶어도 꺼지지 않는 게 고통인지, 축복인지 모르겠어요 ㅎ 어떤 문장들 덕분에, 다른 누군가가 밝혀 놓은 빛을 보며 견디는 거겠죠. 아갈마 님의 빛을 보며 말없이 쉬어가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AgalmA 2017-01-04 10:32   좋아요 2 | URL
라깡의 주이상스라는 표현처럼 고통 속에서도 쾌락을 느끼는 거라 그렇겠죠.

사랑과 열등감이 동률이었던 사람이 있었어요. 제 앞에서 보여준 건 사랑이었지만 헤어질 때는 열등감만 보여 주더군요. 숨겨온 상처를 칼날로 되갚아주더군요. 본문의 인용한 저 문장처럼 정말 그랬어요. 너라서 사랑했고 너라서 증오한다....

저도 모든 연애에서 어느 정도 열등감은 있었던 거 같아요. 누구나 자신만의 뛰어난 장점이 있으니까. 그런데 그걸 견디지 못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걸 속에 품고 있다가 어느 순간 터뜨리죠. 사랑한다 말했던 사람들에게 그걸 몇 번 겪다보니 인간에게 사랑이라는 건 대체 뭘까 싶습니다. 우리는 늘 자신에게 없는 것을 갈망하는 존재들. 예수에 대한 사랑도, 신에 대한 상처도 그런 성격이 있는 거 같아요. 우리는 늘 어떤 범주 속에 있고 또한 그 범주 속에 안주합니다. 시간, 나이, 성별, 계절, 공간, 여러 관계들 속에서의 경험.... 나라는 범주가 가장 강력할 테고요. 나 라는 범주 없이 삶은 연장되지 않을 거니까요. 작가들이 백치의 삶을 꿈꾸는 건 나 라는 고통의 감옥을 벗어나고 싶다는 뜻이죠. 베른하르트는 그걸 아주 고민한 작가였어요.

문학은 한밤에 불켜진 방 같아요^^ 잘 찾아간다면 아늑한 은신처 같은 곳. 우리들이 쓰는 글은 그런 아지트를 그리는 거 겠죠.

물고기자리 2017-01-04 10:24   좋아요 2 | URL
누군가가 나의 존재를 알아봐 줄 때, 그걸 사랑이라 착각하는 것도 같아요. 사실은 그 상대도 나와 똑같은 착각을 하며 자신의 에고를 충족시키는 것일 뿐인데도 말이죠. 더 이상 에고를 충족시킬 수 없을 때 사랑이란 착각도 끝나는 게 아닐까 싶은요.

하지만 비교적 에고를 내려놓게 되는 그런 사랑도 있는 것 같아요. 나의 정신 속에서 일어나는 (쾌락 같은) 고통이 아닌, 다른 종류의 고통이요. 어떻게 해도 해결되지 않는 그런 종류의 아픔이요..

책(문학)을 읽는 건 결국 삶은 고통이란 걸 알아차리는 과정이고, 계속해서 읽고, 쓰는 과정에서 그 고통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를 배워가는 것도 같아요. 나라는 좁은 범주에서 벗어나길 바라며 말이죠. 그러는 과정에서 제 자신에게 많이 낙담하는 게 힘들지만 이미 생각하기 시작했다면 앞으로 나아가는 수밖엔 없지 않나 싶어요..

새해부터 너무 진지한 댓글로 아갈마 님을 괴롭혀드린 건 아닌지, 잠은 좀 주무시는 지도 걱정이네요;; ㅎ
불빛을 따라 와보니(늘 반짝거리고 있어) 이곳에 도착했더란 말이죠^^

AgalmA 2017-01-04 10:40   좋아요 2 | URL
네. 착각의 연속이죠~_~;

말씀처럼 사랑의 위대함을 말할 때 에고를 내려놓은 융화를 가장 최고라고 말하죠. ‘나‘ 라는 걸 점점 강조하는 어려운 현실 속에 점점 희박해지고 있는 가치가 되고 있죠. 이런 불씨들을 계속 살리려고 글을 쓰고 보는 거 아니겠습니까.
요즘의 글들은 쓰기에 너무 치중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생각은 얕고 말이 더 먼저 나간다고 할까. 저도 반성할 부분이고요...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한 말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물고기자리님의 이런 말씀이 정말 필요했어요. 감사드려요.

물고기자리 2017-01-04 11:05   좋아요 2 | URL
아놔 ㅋ

제가 감사 받으려고 댓글을 단 건 아닌데;;

아무튼 갑작스레 진지해져도 받아주셔서 감사해요 ㅎ

사담이지만 제 서재에 오셔서 댓글을 달아주시는 모든 분들께 ‘좋아요‘를 눌렀다 안 눌렀다 하는 게 미안해서 일괄적으로 누르지 않는 이상한 공평함을 시전하고 있거든요 ㅋ 이렇게 외출을 할 땐 못 보시겠지만 막 더블클릭을 하며 누르고 있어요^^

AgalmA 2017-01-04 11:14   좋아요 2 | URL
공평하려고 그러신다는 거 알고 있었어요ㅎㅎ
너무 신경쓰지 않으셔도 돼요^^ 이런저런 거 신경쓰이는 게 많은 공간인 거 저도 잘 알죠ㅎ 생각 많으신 물고기자리님 맘이 더 편하셨으면 합니다. 가끔 이렇게 얘기 나눌 수 있는 것만으로도 기쁨이라는. 바라고 바랄수록 욕심만 되는 것도 알고.
머리가 너무 무거운 아침입니다. 사는 게 참 만만치 않아요...
 
오르한 파묵에게 포크너란......
새로운 인생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4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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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선천적인 전도사이다

      

 벌써 10년이 다 되어가는 2007년 끝머리에 오르한 파묵 《새로운 인생 》을 읽었다. 제목이 시기와 맞아떨어져서라기 보다 첫 문장 때문이었다.

 

"어느 날 한 권의 책을 읽었다. 그리고 나의 인생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보자마자 나는 이런 문장으로 시작되는 글을 꿈꾸었다고 생각했다. 어떤 책은 한 개인의 연상과 치밀한 우연과 사건들 속에 접전을 벌인다. 나도 책 한 권으로 인생이 뒤흔들려 보았지만, 어떤 식으로도 끝을 보지 못한터라 이 문장은 더욱 호기심을 자극했다. 대체 무슨 내용이길래 이렇게 서두가 거창한 거야?라고 한다면 이미 당신도 이 책에 다가갈 확률이 높아진 것이다.

저 문장의 비밀 중 하나는작가란 무엇인가 1》(파리 리뷰)에서 밝혀졌다. 파묵이 리엄 포크너 소리와 분노》를 읽고 그렇게 표현했다는 것을. 그런데 나는 아직 소리와 분노》 다 읽지 못해 왜라는 나머지 비밀을 알지 못한다. 나는 탐정되긴 글렀어. 그러면서도 <그것이 알고 싶다>나 범죄심리학엔 관심이 많다. 쯧쯧, 사칭 탐정도 못되고 시청자나 독자나  해야 하나;_;)

 

 

 

 

인생은 장소의 문제?

 

"그에게 이 모든 것들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묻자 그도 나에게 '이 모든 것들'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나는 그에게 모든 것의 시작인 문제가 무엇인지를 물어보았다. 그는 내가 찾아야 할 것은 시작과 끝이 없는 장소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어쩌면 그에게 물어볼 수 있는 질문조차 없는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무엇이 있을까? 그것은 사람이 무엇을 어떻게 보느냐에 달려 있다. 때로 정적이 흐를 때, 사람은 그것으로부터 무언가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때로는 지금 이곳에서 우리 둘이 하는 것처럼, 아침에 찻집에서 차를 마시며 즐겁게 이야기하고 증기기관차와 기차들을 구경하고 호도애새들이 지저귀는 것을 듣곤 한다. 어쩌면 이것들은 모든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어떤 머나먼 곳으로 그렇게 오래 여행을 했는데도 그가 본 새로운 나라는 없었던가? 어떤 곳이 있다면 그곳은 글 속에 있다. 그러나 글에서 찾았던 것을 글 바깥에서, 인생에서 찾는 것은 쓸데없는 짓이라고 그는 결론을 내렸다. 세상 또한 글만큼이나 한계가 없고 결점투성이에, 불충분했기 때문이다."

 

 

 

 

● 퍼즐 맞추기 좋아합니까?

  

인간은 잊힌 것들에게 회기 하는 순간을 계속 경험한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 표지에는, 그림이 있었다. 나뭇잎 하나하나가 공들여 그려져 있었지만 인쇄가 잘못된 탓에 초록색 선 밖으로 삐져나와 있었다."

 

어린 날의 만화책들을 회상하는 주인공 기억 중 하나다. 이 문장은 만화책을 그저 읽어치우기 바쁘던, 혹은 관심 없던 사람들에겐 별다른 공감을 줄 수 없을 것이다. 인쇄선 밖으로 비어져 나간 것이 몹시 속상했던 그러한 심정...애정... 이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세계에서나 가져올 수 있는 기억이고 책 속에서 내내 말하는 아주 오래전에 닫힌 어떤 세계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다. 그림에 재능이 뛰어났던 오르한 파묵의 경험이 담긴 것이라는 것도 이젠  안다.

 

책을 읽을 때 당신은 어떤 문장에서 멈췄다가 다시 읽기에 진입하게 된다. 그러나 책을 덮고 나서도 그 문장으로 다시 돌아가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면 거기엔 당신만의 어떤 퍼즐이 있다는 소리다.  당신은 어떤 퍼즐의 짝을 찾기 위해 노력했는가?

    

 

● 책

  

"나는 책이 무엇을 의미하냐고 그에게 물었다. 그는 "좋은 책이란 우리에게 모든 세계를 연상시키는 그런 것이야. 어쩌면 모든 책이 그럴 거야. 그래야만 하고."라고 말했다. 그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책은 실제로 책 속에 존재하지는 않으면서도, 책에 쓰여 있는 말을 통해 내가 그 존재감과 지속성을 느낄 수 있는 무언가의 일부분이야."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설명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세상의 정적 또는 소음으로부터 벗어난 그 무엇일 수도 있지. 그렇지만 정적과 소음도 그것 자체는 아니야." 이렇게 말한 다음, 그는 내가 자신이 헛소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할까 봐 다시 한번 다른 말로 설명하고자 했다. "좋은 책은 존재하지 않는 것, 일종의 , 일종의 죽음을 설명하는 글이지……그렇지만 단어들 너머에 존재하는 나라를 글과 책 밖에서 찾는 것은 헛일이야." 

 

 

그때도 지금도 나는 하루가 지나가듯 책을 집어 든다. 한 권의 책을 다 읽기도 전에 그러는 것도 이제 버릇이 되어 버렸다. 그것은 어느 날은 비겁한 모습이고, 어느 날은 슬픔의 모습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긴 장정을 놓지 않는다면 내가 바라는 어떤 세계를 만나는 날이 분명 올 것이라는 믿음. 아마 진실은 끝끝내 내 것이 아닐 것이지만. 그렇게 계속 새로운 인생을 만드는 지도 모른다.

 

 

일이 잘 안 풀린다고 생각되거나 연말이면 제목 때문에 종종 떠올리는 소설이다. 같은 제목으로 단테 알리기에리의 책도 있는 걸 보면 "새로운 인생"이란 인간의 영원한 염원인지도 모른다. 인간에게 영원이란 없잖아!로 얘기를 풀진 말자구.

왠지 책 제목에 걸맞지 않은, 연말이라고 이 책 리뷰를 올리려 한 의도와 동떨어진 글이 되어 버렸다. 그냥 매력이라고 우겨보자. 나 말고 이 책의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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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25 10: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6-12-25 22:10   좋아요 0 | URL
순간을 놓치면 그다음 순간이 오는 거잖아요. 우리가 느끼는 삶의 안정성도 우리의 생각일 뿐인데 말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미움이나 욕심도 연기 같기만 한데, 사람 속에 살다보면 그게 물질로 만져지게 다가오니 이거참 어렵다는 말 밖에^^,

겨울호랑이 2016-12-25 11: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 진리를 깨달으신 분들은 ‘호흡‘의 순간에 죽음과 삶을 느낀다는데, 저와 같은 일반사람들은 적어도 1년마다 끊어줘야 인생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AgalmA 2016-12-25 22:15   좋아요 1 | URL
시간 전체가 우리가 계획한 것이죠. 하루를 24시간으로 정한 것도, 1년을 12달로 만든 것도... 사람은 맞추기 나름이라 깨닫고자 하는 사람들도 포기하지 않고 어려운 수행을 계속하는 거겠죠^^...
저는 하루에 주어진 일을 처리하는 것만도 숨이 찹니다. 누구나 하루의 삶을 꾸려나간다 생각하면 참 눈물겨울 때가 있어요

오거서 2016-12-25 13: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덕분에 이 책의 매력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또한 Agalma 님의 매력이지 않을까요. ^^

AgalmA 2016-12-25 22:16   좋아요 1 | URL
워낙 유명한 작가 책이라 제 리뷰는 모래알 하나 정도밖에 안 될 거 같습니다만 정겹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16-12-26 01: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2-26 05: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moonnight 2016-12-26 15: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루가 지나가듯 책을 집어든다는 말씀이 참 와닿습니다. 갖고 있지만 아직 못 읽은 수많은 책들 중 한 권이네요. 슬쩍이라도 들춰봐야겠어요. ^^

AgalmA 2016-12-27 11:35   좋아요 0 | URL
슬쩍 보려다가 왕창 읽는 수가 있죠ㅎㅎ 그럴 때가 책이 가장 재밌게 읽는 순간인 듯. 일상에 치이다 보니 그게 잘 안되는 게 늘 속상합니다. 그럼에도 읽고 싶은 책이 집에 있다는 건 행복^^ 그래서 우린 계속 책을 사는 거겠죠.
 
변신하는 분신들의 고백들
절망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1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최종술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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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코프 절망은 도스토예프스키 분신에서 좀 더 진화한 자아상을 보여준다. 두 소설에서 주인공이 분신 때문에 파멸을 맞는 결과는 같지만 당연히 과정은 다르다. 도스토예프스키 분신》의 주인공인 골랴드낀은 사회 속 노예의 삶에서 스스로 벗어나지 못해 몰락을 맞았다면, 나보코프 절망의 주인공인 게르만은 자신이 노예의 삶을 살지 않는 영리한 주체라는 자기도취에 빠져 몰락을 맞는다. 더 풀어서 말하면, 골랴드낀은 자신과 닮은 분신의 음모에 당해 정신병원으로 가게 되고, 게르만은 부랑자인 분신 펠릭스를 자신으로 위장해 보험금을 타 자유와 돈을 모두 얻으려 했으나 교수대로 향하게 된다.

근본적인 요인은 우리 안에 있는 파토스일 것이다. 우리는 타인을 향해 선의와 악의를 잘 구분해 표현한다고 생각하지만 무의식중에 혼재되어 있을 때도 많고 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판단들은 상당수 불완전하고 합리적이지 않다. 골랴드낀과 게르만과 나보코프는 상당히 오만하게 느껴진다. 우리들은 그보다 나을까. 아니, 나와 타인을 끝없이 구분하며 온갖 차이에 비분강개하며 여러 감정들의 크기를 다르게 표현할 뿐 우리는 매우 닮았다. 사회 속에서 우리는 곧 다른 이들에 의해 대체된다. 게르만과 펠릭스를 겔릭스와 페르만이라고 해도 본인들 외에 누가 그리 신경 쓸 것인가. 닮음의 익명성. 존재의 익명성.

 

 

신체상의 이 놀라운 유사성은 아마 내게 미래의 무계급 사회에서 사람들을 결집시킬 저 이상적인 닮음을 약속하는 징표로 (무의식적으로!) 비친 것 같다. 그리고 특정한 경우를 이용하고자 애쓰는 가운데, 아직 사회에 눈을 뜨지 못하고 있던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호하나마 어떤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내가 이 닮음을 완벽히 실현하지 못한 이유는 순전히 사회적 원인들로만 해명이 가능하다. 나와 펠릭스가 분명히 구분된 상이한 계급에 속했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특히 계급투쟁이 타협이 불가능한 첨예한 지경에 이른 오늘날에는 단독으로 계급융합을 기대하기는 불가능하다. 사실 내 어머니는 태생이 천했고, 친할아버지는 젊었을 때 거위를 길렀다. 그래서 나 같은 기질과 습성의 인간이 내면에 지니게 되는, 비록 아직 완전히 발현되지는 않았지만 강렬한, 진정한 인식에 대한 염원이 어디에 기인하는지 바로 나 자신이 잘 이해하고 있다. 신세계를 꿈꾼다. 그곳에서는 모든 사람이 게르만과 펠릭스처럼 서로서로 닮았을 것이다. 겔릭스들과 페르만들의 세상. 장비 곁에 쓰러져 죽은 노동자를 그의 완벽한 분신이 평온한 사회적 미소를 지으며 즉시 대체하는 세상. 그래서 나는 소비에트의 젊은이들이 이 책을 읽고, 경험이 풍부한 마르크스주의자의 지도 아래 이 책이 담고 있는 사회적 메시지의 기본적인 행보를 따라가보는 것이 상당히 유익하리라 생각한다. 다른 민족들에게도 내 책을 번역하게 할 것이다. 그러면 내 책을 읽은 미국인들은 유혈과 폭력에 대한 갈증을 풀 것이다. 프랑스인들은 부랑자에 대한 나의 특별한 애착에서 소돔의 신기루를 감지할 것이다. 독일인들은 반()라브적 영혼의 광적인 변덕을 즐길 것이다. 여러분, , 더 읽으시라! 전적으로 반기는 바올시다.”

 

나보코프 절망

 

 

러시아에서 온 망명자라는 설정부터 러시아 전통 문학에 대한 조롱 등 게르만과 나보코프는 또 다른 분신 관계이다. 펠릭스와 게르만의 관계처럼 게르만을 다루고 있는 나보코프가 자꾸 느껴져서 불편하기도 했다. 그리고 나보코프의 글을 바라보고 있는 나. 사슬처럼 연결된 우리의 시선들, 추측들, 판단들. 그러나 나는 나보코프에게 미안한 마음은 들지 않는다. 하찮은 내 글에 상처받지 않게 작가가 이미 사망했기 때문이 아니라 나보코프에게 진정한 독자는 바로 작가 자신”(p262)이었다는 해설에 동의하기 때문이다.

덕담으로 끝내려는 건 아니고, 나보코프 절망》은 이 소설이 어떤 것을 분신들의 재료로 썼는지 보여주는 향연이기도 하다. 유명 작가들의 작품 뿐만 아니라 각종 문학 모티프들('천재와 죄악', 재능과 거짓', '죄와 벌', '범죄와 분신')이 이 소설에서 어떻게 이용되고 있는지 독자에게 노골적으로 보여주며 자신의 게임을 만드는 데, 나보코프가 대단한 작가라는 걸 인정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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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22 09: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6-12-22 22:32   좋아요 2 | URL
우병우 나온다 그래서 하루종일 청문회 보다가 고혈압과 심장병의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었습니다; 밥 먹으면서 보다가 소화도 안 되던...

겨울호랑이 2016-12-22 14: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절망」을 읽으려면 배경지식이 탄탄해야할 것 같습니다..문학의 세계는 심오하다는 것을 Agalma님의 글을 통해 또다시 느끼게 됩니다.^^-: 읽을 책이 참 많다는 생각이 드네요 ㅋ

AgalmA 2016-12-22 22:38   좋아요 2 | URL
그냥 봐도 재밌지만 나보코프가 워낙 편집증적으로 소설을 쓰는 사람이라 배경지식이 좀 있으면 더 재밌기도 합니다. 아는만큼 머리 아플 수도ㅎ;; 이건 어디서, 저건 어떻게 이런 식으로 찾아서 연결해보고 싶어져서 즐겁게 소설 읽기가 힘듭니다 ^,ㅜ...
주석과 인용 찾아보는 철학서를 보는 게 아니잖아요ㅎㅎ;;

2016-12-23 00: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2-23 00: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2-23 00: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2-23 00: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2-23 01: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2-23 01: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2-23 01: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2-23 01: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2-23 01: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2-23 01: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2-23 01: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2-23 19: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장소] 2016-12-23 19: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2016서재의달인 ㅡ발표가 났네요! 휘리릭 가셔서 좋아요 좀 눌러주셔요!^^

AgalmA 2016-12-23 20:23   좋아요 1 | URL
오~ 전 올해 알라딘 서재의 달인 안될 줄 알았는데 됐네요^^;;
북플마니아 2관왕도 기쁨ㅎㅎ

[그장소] 2016-12-23 20:27   좋아요 1 | URL
저도 마찬가진걸요 . 듬성듬성 해서..그런데 보니 우리 많이 떠들긴 했나봐요!^^ㅋㅋㅋ 축하드려요!^^

AgalmA 2016-12-23 20:40   좋아요 1 | URL
그장소님은 리뷰 왕창왕 아닙니까ㅎㅎ 여러 이웃 가셔서 말씀도 많이 나누시고. 올해는 제가 서재를 비운 기간이 많아 수다꾼 역할 많이 못했는데 서재 기네스 기록 보니 이웃들이 제 서재 와서 말씀 더 많이 해주셔서 그게 특히 감사하더라는^^

[그장소] 2016-12-23 20:42   좋아요 1 | URL
ㅎㅎㅎ리뷰 왕창 ~댓글도 그런데, 그건 안쳐줍니꽈~^^ 그분이 오시는 날이 따로있거든요! ㅋㅋㅋ
Agalma 님 서재는 늘 도타운 대회로 북적북적 한걸 압니다~^^ 멋진 이웃님들이 많은거죠!
누가 멋져서 그렇더라~^^?

AgalmA 2016-12-23 21:24   좋아요 1 | URL
서재 기네스 보니까 댓글 달인으로도 떠 있으시더만요 ㅎㅎ 제가 6개월 안 쉬었으면 저도 아마 거기 있었을 테지만ㅎㅎ;;
제 서재에서 그장소님이 댓글러 1인자이시죠ㅎㅎ 그장소님 서재는 팬들이 많아 제가 댓글러 1인자가 못되지만^^; 그래도 제가 가장 댓글을 많이 남긴 곳이 그장소님 서재~
일상사 얘기 나누는 것도 좋지만 책과 생각에 대한 대화, 그게 알라딘 서재 매력이랄까요. 좋은 친구를 만나면 더 풍성해지고~
사람이 보석같을 수 있는 곳^^

[그장소] 2016-12-24 09:49   좋아요 1 | URL
댓글의 달인 ㅡ이건 따로 축하해줘야한다는!^^ 푸하핫~ 우리 자축해요. ㅎㅎㅎ
Agalma님 일년간 같이 떠들어줘서 감사했어요 ! 새해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AgalmA 2016-12-24 10:16   좋아요 1 | URL
와~ 댓글의 달인이 나타났당~ ㅋㅋ 그장소님이랑은 실시간으로 떠들어야 맛인데 시간이 안맞는 게 흠ㅎ;;
댓글의 달인 이렇게 만나기 어려워서야ㅎㅎ
책 보다가 쓰러지실까 걱정입니다. 몸과 댓글 쓸 손가락 두루 건강 잘 챙기셔야 합니다ㅎㅎ/

북다이제스터 2016-12-23 21: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즐거운 크리스마스 되세요. ^^

AgalmA 2016-12-23 21:22   좋아요 2 | URL
전 케익 퍼먹으며 일할까봐욧ㅋㅋ;; 요즘 감기 유행이던데 건강 잘 살피시고요. 나라가 하두 어수선해서 조류독감 사람에게 전이될까 걱정됩니다;
암튼 북다이제스터님도 크리스마스 즐겁게 보내시길요^^ 이웃들에게 찾아가 이런 인사하는 것도 다 정성인데^^

북다이제스터 2016-12-23 21:24   좋아요 2 | URL
넘 슬픈 노동자 현실 ㅠㅠ
조만간 좀 한가해지시면 좋은 책으로 좌담회 한 번 하시죠. ^^

AgalmA 2016-12-23 21:29   좋아요 2 | URL
연말이고 1월1일이고 뭐 상관없이 마구 일하는 작업환경을 제가 받아들인 꼴이니^^;; 싫어도 마땅히 갈 데가 없어요. 아하하;;;
가끔 그런 생각합니다. 꾸준한 독서모임은 좀 부담스럽고 단발성으로 시리즈(문학과 사회의 예술사 같은) 책 모임 한 번 해볼까 싶더라고요^^
암튼^^/

서니데이 2016-12-23 22: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agalma님, 2016 서재의달인 축하드립니다.
행복한 크리스마스 되세요.^^

AgalmA 2016-12-23 23:13   좋아요 2 | URL
축하드릴 분이 많아 저는 인사하러 다니는 거 생략ㅎ
고맙습니다. 한해동안 서니데이님 이웃 사랑 저도 많이 받았죠^^

서니데이 2016-12-23 23:1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간단한 인사 드리고 왔어요.
이웃분이 많아서 간단하게 썼습니다.^^ 아마 내일은 더 많은 이웃의 축하를 받으실것 같습니다.^^
좋은밤되세요.^^

AgalmA 2016-12-23 23:17   좋아요 3 | URL
최다 댓글 작성자, 최다 댓글 수해자이시라 서니데이님은 축하도 많이 받고 하셔야 할 듯ㅎ;
모두 흐뭇한 밤^^/

서니데이 2016-12-23 23:21   좋아요 2 | URL
제가 그렇게 많이 썼을 줄은 저도 몰랐습니다.^^;

겨울호랑이 2016-12-24 02: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Agalma님 서재의 달인 축하드려요^^: 즐거운 성탄 되세요

AgalmA 2016-12-24 03:10   좋아요 2 | URL
겨울호랑이님도 축하드려요^^
작년엔 선물로 오는 도라에몽 다이어리 아이들에게 뺏긴 이웃들 있으시던데ㅎ 올해는 캐릭터 다이어리 없어서 연의가 탐 안 낼테니 다행인가 불행인가ㅎㅎ;

가족과 즐겁고 따뜻한 크리스마스 보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