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지의 세계 민음의 시 214
황인찬 지음 / 민음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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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친척의 별장에서 겨울을 보냈다 그곳에서 좋은 일이 많았다 이따금 슬픔이 찾아올 때는 숲길을 걸었다 그러나 여기서 그때의 일을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보다는 어떤 기하학에 대해, 마음이 죽는 일에 대해, 건축이 깨지는 순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이 시는 지난여름 그와 보낸 마지막 날로부터 시작된다

  "이리 나와 봐, 벌집이 생겼어!"

​  그가 밖에서 외칠 때, 나는 거실에 앉아 있었다 불 꺼진 거실에서 한낮의 빛이 들이닥쳐서 여러 가지 무늬가 바닥에 일렁였고

  "어쩌지? 떨어뜨려야 할까?"

  그가 물었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벌집은 아직 작지만 벌집은 점점 자란다 내버려 두면 큰일이 날 것이다 그가 말했지만 큰일이 무엇인지는 그도 나도 모른다

  한참 그는 돌아오지 않는다 벌이 무섭지도 않은 걸까 그것들이 벌집 주위를 바쁘게 날아다니고 육각형의 방은 조밀하게 붙어 있고 그의 목소리가 언제부턴가 들리지 않아 무섭다는 생각이 들 때

  "하지만 벌이 사라지면 인류가 멸종한댔어"

  돌아온 그가 심각한 얼굴로 말하던 것을 기억한다



 

  그때쯤 여름이 끝났던 것 같다


 

  여름의 계곡에 두 발을 담근 두 사람이 맨발로 산을 내려왔을 때,

  늦은 오후에 죽어 가는 새의 체온을 높이려 애썼을 때,

  창을 열어 두소 외출한 탓에 침대가 온통 젖어 어두운 거실의 천장을 바라보며 잠들었을 때,



 

  혹은 여름날의 그 어느 때,

  마음이 끝났던 것 같다

  다만 ​나는 여름에 시작된 마음이 여름과 함께 끝났을 때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이 정확히 언제였는지는 도무지 알기가 어렵고



 

​  마음이 끝나도 나는 살아 있구나

 


  숲길을 걸으면서 그가 결국 벌집을 깨뜨렸던 것을 떠올렸다 걸어갈수록 숲길은 더 어둡고

  가끔 무슨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그리고 이 시는 시간이 오래 흘러 내가 죽는 장면으로 끝난다



 

  그때는 아름다운 겨울이고

  나는 여전히 친척의 별장에 있다



 

  잔뜩 쌓인 눈이 소리를 모두 흡수해서 아주 고요하다

  세상에는 온통 텅 빈 벌집뿐이다



 

  그런 꿈을 꾼 것 같았다


 

 

ㅡ 황인찬

 

 

Abelardo Morell - Camera Obscura Image of the Grand Tetons in Resort Room (1997)

 


 

§ 종로와 소설과 원형


황인찬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을 접하며 문득 상수를 떠올린다. 그를 홍상수 시 버전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시「건축」은 홍상수 감독의 서사 구성이나 호접몽 특징과 유사하다. 일상을 이야기하면서도 현실과 꿈의 경계를 모호하게 남겨두는 그런 거 말이다.

황인찬 시인의 대부분의 시들은 자조와 회고성을 띄는데, 「건축」은 그의 시 세계 건축 구조성을 들여다보게 한다. 일상은 기본 리듬으로 작동하고, 꿈과 죽음과 환상이 주재료이며 동률의 필수 재료이다.

 

이 시집의 특장이라 할 수 있는 로 연작시를 보며 종로에 대해선 나도 여러 시도를 하고 싶던 게 겹쳤다. 글이든 영상이든. 오래전부터 청계천, 명동, 인사동 등 종로는 서울 창작자들에게 터전이자 노스탤지어 역할을 해왔다. 노인들이 모이는 곳이 많아 퇴색되어 보이긴 하지만 종로는 홍대가 뜨기 전까지 문화 중심지였다.

내가 홍상수 감독 영화에 관심을 둔 것은 눈여겨보던 종로 일대 숨은 풍경을 잘 담는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시도되지 않은 것이 아직 많다. 계속 바뀌어가고 있는 이 풍경만 담아도 얼마나 할 말이 많은가. 언젠가 성일 평론가가 ㅡ인과응보처럼 자기를 씹을 많은 이들을 염두에 두고 찍은ㅎㅡ 첫 영화로 《카페 느와르》를 찍고 나서 술회를 밝힐 때 영화 속 풍경이 이젠 많이 바뀌었다며 영화의 좋고 나쁨을 떠나 보존적 가치에 대해 말한 바 있다. 그 영화에서도 종로 풍경이 꽤 담겨 있다. 정은 소설 『백의 그림자』에서는 고가도로가 있던 옛 청계천 전자상가 풍경을 잘 보여줬다. 글을 쓰는 순간은 누구나 사건 순간을 전하는 기자가 되는 셈이다.   


많은 작가들이 설과 시의 경계를 깨고 싶어 하지만 자기만의 스타일이 돋보이는 이는 그리 많지 않는데, 황인찬 시인은 이 부분에서도 뛰어나다. 시와 소설의 장점을 각각에서 잘 수렴하고 있다.

그런데 세간에서 상찬하는 이 시 세계가 신선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황인찬 시를 "포스트모던"이라고 말하는 건 외형상에 따른 단순한 평가 같다. 

두 번째 시집『희지의 세계』 마지막 시 「인덱스」마지막 문장은 인덱스란 뜻과 뉘앙스처럼 이렇게 끝난다.


"이제부터 평생 동안 이 죄악감을 견딜 것이다"


황인찬 시에서 계속 목도되는 것은 모던한 스타일 뒤에 정제되어 있는 형성(原型性)이다. 우화 같은 카프카의 소설 저변이 그러하듯이.

통상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게 황인찬의 살아있는 세계엔 말라 있는 것들이, 저편 세계는 젖어 있는 것이 가득하다. 그 중간쯤에 일어나는 불, 문학의 세계가 있다.

바슐라르 식으로 물, 불, 공기, 흙의 로 그의 시 경향을 살펴볼 수도 있을 것이다.

떠나기 직전의 새와 물속에서 금속같이 느껴지는 손 같은 그런 것.


하지만 이런저런 분석 노력이 나는 귀찮지. 도무지 너무 귀찮지. 시인이 그렇게 쓰든 안 쓰든 무슨 상관인가. 그러고 싶으면 그리 쓰면 된다. 고해성사를 받는 신부가 그렇듯 사실 독자의 몫은 그냥 듣는 역할이다.


오늘 비가 오거나 해가 뜨거나 우리는 감당할 수밖에 없다. 그게 삶이며 일상인데 문학이라고 다른가.

도무지. 도무지....

기어이 무너질 것을 짐작하는 이들은 죄악감에 싸여 살아가는 건지도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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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7-09-17 06: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처음 읽은 시지만, 뫼비우스의 띠같은 느낌을 주는 군요. 끝나도 끝나지 않은 듯한. 어쩌면 시작도 없었을지도 모르는 듯한 느낌이 드네요. 마침 AgalmA님께서 올리신 사진의 느낌이 시의 이미지와 잘 맞다는 생각이 드네요.이 부분이 앞선 글 중의 ‘대칭성‘과도 맞닾아있는 것 같기도 하구요. AgalmA님 덕분에 여러 생각을 해봅니다. 다만, 제 머리 용량이 별로 크기 않기에 너무 여러 생각하다가는 과부하가 걸릴것 같아 적당히 하렵니다.ㅋ

AgalmA 2017-09-17 01:30   좋아요 1 | URL
겨울호랑이님 느낌처럼 저도 그래서 <건축> 시가 참 좋더라고요. 끝모를 어떤 지점을 향하고 있는 거 같은데 화자는 계속 끝났다고 말하면서 꿈으로까지 환치하려 하죠. 여전히 풀리지 않은 게 남은 거에요. 문학은 어쩌면 이런 잉여, 초과 상태를 풀려는 무모함이자 고집인지도 모릅니다.
겨울호랑이님은 본인 공부만으로도 벅차실 거 같은데요. 제 서재 글은 쉬엄쉬엄 보세요^^
 
러시아의 맥베스 부인
니콜라이 레스코프 지음, 이상훈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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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언 반스 시대의 소음은 내게 3가지 선행을 했는데, 쇼스타코비치를 자세히 보게 만들었고, 전도 유망하던 쇼스타코비치가 스탈린 눈 밖에 났던 문제의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or 카테리나 이즈마일로바)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토마스 만과 발터 베냐민이 러시아의 천재적 스토리텔러로 인정한 니콜라이 레스코프 원작 소설을 찾게 했으며, 마지막으로 책 많이 사서 읽으라고 격려해 줬다.

 

《러시아의 맥베스 부인 역자는 작품 해설에서 이지적이며 행동력 있는 투르게네프의 아가씨들이나, 도스토옙스키의 팜므파탈적 여성들, 혹은 체호프의 다양한 아름다움을 지닌 여인들과 달리 레스코프의 촌부들은 러시아 벽촌 풍경과 함께 러시아인들의 원시적 특성을보여 준다고 말하며, “문학사가 미르스키는 러시아를 알고자 하는 독자라면 도스토옙스키나 체호프가 아닌 러시아 작가 가운데 가장 러시아적인 작가레스코프를 읽어야 한다고 추천한 것을 인용했다. 레스코프가 존경했고 같은 시기에 작품 활동했던 톨스토이(1828~1910)도 도스토옙스키(1821~1881)에 비해 레스코프(1831~1895)가 읽히지 않는 것에 대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하며 레스코프를 미래의 작가라고 평했다. 레스코프에 대한 이런 격찬에 공감하기엔 이 작품집 한 권 읽기로는 어림없다.

레스코프가 잘 알려지지 않은 건 1860년대 이후 러시아의 정치 사회적 분위기 탓이 크다. ‘슬라브주의자와 서구주의자, 보수주의자와 자유주의자 간의 논쟁이 잡지와 신문 지상에서 끊임없이 이어졌고, 1862년 페테르스부르크에 대규모 화재가 일어났을 때 저널리스트이기도 했던 레스코프의 기고글이 학생들을 방화범으로 몰아 체포하도록 경찰을 충동질하는 걸로 자유·진보주의자들에게 오해되어 큰 고초를 겪었다. 휴양을 위해 레스코프는 외국으로 떠났고, ‘스체브니츠키라는 가명으로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을 풍자하는 안티니힐리즘 소설을 쓰게됐다. 자유진영과 반목하는 작품들을 자주 썼고 격렬한 반응에 비해 호응을 얻지 못한 거 같다. 문단도 이념 갈등이 한창이라 중장년기 레스코프의 창작 초기러시아의 맥베스 부인, 쌈닭, 플로도마소보 마을의 옛 시절(1869)은 주목받지 못했다.

레스코프가 대중에게 작가로 인정받기 시작한 것은 그의 창작 중기시기인데 돈키호테와 산초같은 인물을 통해 러시아의 성직자 생활을 그린 성직자들(1872) 때부터다. 봉인된 천사(1872), 신들린 순례자(1873)도 러시아의 종교적 삶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레스코프 작품 중 러시아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작품으로 꼽히는 왼손잡이(1881)는 국내에도 번역되었는데 천재적 기술을 가진 대장장이가 외국에서는 대접받지만 조국에서는 인정받지 못하고 냉대 받다 죽어가는 이야기를 레스코프 특유의 풍자와 유머로 그린 작품이다. 이 시기에는 의인 시리즈도 그의 특징으로, 그리스도교의 삶의 이상을 실현하는 괴짜들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외골수(1879), 불사신 골로반(1880), 사관학교 수도원(1880), 청렴한 기술공(1887) .

레스코프는 창작 중기 이후 점차 러시아정교회의 형식적이고 교조화된 종교의식에 대한 비판 어조를높였고, 성직자들의 부정적인 면들을 풍자적으로 그린 주교의 사생활(1878)은 국가검열에 걸려 창작과 건강에 치명상을 입기도 했다. 정부 당국의 지속적인 검열 대상이 되면서 이전엔 불편한 관계였던 자유 진영에서 작품을 출판하게 됐다.

그의 창작 후기종교와 사회의 권력자에 대한 비판과 풍자가 주제라고 볼 수 있는데, 제도화된 교회에 왜곡된 그리스도교의 참모습을 찾으려고 한다. 국내에도 소개된 광대 팜팔론(1887)은 속세를 떠나 높은 석탑 위에서 자기 영혼의 구원만을 갈구하는 옛 집정관 예르미가 속세에 파묻혀 다른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는 광대 팜팔론을 만나 가르침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그리고 있고, (1890)믿음이 산을 옮긴다는 성경 구절에서 모티프를 빌려왔는데 그리스도교 초대 교회와 이집트 이교도 간의 대결을 귀금속 세공사인 제논과 그를 유혹하려는 절세미인 네포라 사이로 비유해 그리고 있다. 이 외에도 성자의 실체를 보게 만드는 야행성 기질의 사람들(1891), 인간 삶에 대한 회의감이 짙게 묻어나는 겨울날(1894) 등이 있다.

전집 발행과 관련된 검열로 받은 충격 탓에 피폐한 상태에서 폐렴이 겹쳐 레스코프는 1895221일 사망했다. 그는 병든 재능을 가진 작가로 불리며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으나 체호프, 고리키, 레미조프, 자먀친 등 20세기 초반 문학 양식주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특히 레스코프 문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특색은 스카즈skaz. 고골에서 시작된 것으로, 현장감 넘치는 구어체를 재현하려는 일종의 문체 양식이다. 청자를 향해 직접 이야기하는 효과를 내려는 서술 방식인데 음악 장르에서 힙합의 랩과 비슷하다. 스카즈 기법이 잘 반영된 레스코프의 작품이 쌈닭왼손잡이. 짧은 글로는 잘 와닿지 않을 거 같아 쌈닭에서 내가 인상적으로 본 장면을 인용해 보겠다. 길지만 읽어 볼만한 가치가 있다.

 

 

나는 기도하는 것도 잊어버리고 계속 갈대를 바라보았어. 마치 생전 처음 보듯이 말이야.

그런데 불현 듯 내 눈으로 들어오는 저것은 무엇일까? 나는 호수에서 안개가 피어오르는 것과, 그 가벼운 회청색 안개가 꼭 무슨 수의처럼 온 들판을 뒤덮는 것을 보았어. 그런데 그 안개 아래, 정확히 호수 한가운데에 갑자기, 마치 물고기 한 마리가 철석거리기라도 한 것처럼, 작은 동그라미가 생기더니, 그곳에서 한 사람이 튀어나오는데, 얼마나 작은지, 크기는 아마 수탉만 했을 거야. 아주 작은 얼굴에 암청색 카프탄(예전에 러시아 남자들이 외투처럼 입던 길고 헐렁한 상의)을 입고, 머리에는 녹색 모자를 쓰고 있었어.

참 신기한 사람이네, 꼭 예쁜 인형 같아.’ 이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눈을 떼지 않았지. 전혀 무섭지 않더라고. 정말이지 일말의 공포도 느끼지 않았다니까.

그런데 그게 조금씩 올라오더니, 나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거야. 그러더니 급기야는 내 가슴으로 곧바로 뛰어오르는 게 아니겠어. 정확히 말하면 내 가슴 위가 아니라, 가슴 위쪽 허공에 서서 몸을 숙였어. 그러고는 아주 진지하게 모자를 벗더니 인사를 하는 거야.

정말 웃겨 죽을 뻔했어. 나는 생각했지. ‘아니, 도대체 어디서 이런 웃긴 녀석이 튀어나온 거지?’

그런데 그놈이 다시 모자를 척 쓰더니, 뭐라고 말을 하는 거야……. 그런데 말이지. 그게 무슨 말을 했는지 알아!

돔나 아줌마, 우리 사랑 한번 할까요!’

나는 웃겨서 속이 다 뒤집힐 뻔했어.

에고, , 꼬마야! 네가 어떻게 나랑 사랑을 하려고 그러니?’

그랬더니 갑자기 그놈이 내 뒤로 돌아가더니, 젊은 수탉 같은 소리를 내는 거야.

꼬끼오 꼬꼬!’

그러더니 갑자기 딸랑거리는 소리, 두들기고 연주하는 소리가 들리는 거야. 거기에 신음 소리까지 들렸어. 하느님 맙소사, 내가 생각했어. 이게 무슨 일이지? 개구리들, 잉어들, 붕어들, 게들이 나와서 어떤 놈은 바이올린을, 어떤 놈은 기타를, 어떤 놈은 작은 북을 치는 게 아니겠어. 이놈은 춤을 추고, 저놈은 뜀뛰기를 하고, 또 다른 놈은 공중으로 뛰어오르는 거야!

아이고, 이건 나쁜 징조야! 이이고, 이건 불길한 징조라고! 기도로 나를 지켜야겠다.’ 나는 생각했어. 그래서 하느님이 부활하셨다, 라고 기도문을 외우려는데, 내 입에서 이런 말이 튀어나오는 거야.

뛰어올라, 더 높이 뛰라고.’

이와 동시에 내 배에서 이런 소리가 들리는 거야. 붐부룸붐, 붐부룸붐.

어떻게 된 거지? 타르반(줄을 퉁겨 소리를 내는 러시아의 고대 현악기)이 된 거야. 그리고 내 위에 아까 그 작은 인간이 서서는, 써레질을 하고 있는 게 아니겠어.

아이고, 성자들이시여! 아이고, 거룩한 순교자들이시여!’

그런데 그놈은 계속 활로 나를 톱질하듯 문질러 대면서 왈츠도 연주하고, 또 온갖 종류의 카드리유를 다 연주하는 거야. 그런데 다른 놈들은 더 성화였어.

더 거칠게 연주해. 더 거칠게 하라고!’

자네에게 하는 말이지만, 배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아팠어. 그런데도 나는 계속해서 끙끙거려야 했어. 그놈들이 나를 그렇게 밤새도록 두들겨댔다니까. 동이 틀 때까지 온 밤을 세례 받은 인간인 내가 그놈들, 그 악마들에게 타르반 대용으로 놀림을 당한 거야.“

무서운 일이네요.” 내가 말했다.

정말 무서운 일이지, 친구. 그런데 더 무서운 것은, 그놈들이 나를 가지고 마음껏 음악을 연주하고, 날이 밝아 아침이 되었을 때였어. 주위를 살펴보니, 내가 전혀 모르는 장소더라고. 초원이 있고, 꼭 호수 같은 커다란 웅덩이가 있었어. 그리고 갈대도, 다른 모든 것도 내가 본 그대로였어. 그런데 하늘에서는 태양이 옷 밖으로 드러난 내 살을 구워삶을 듯이 내리쬐고 있었어. 보니까 내 아마포 보따리와 가방도 그 자리에 있었어. 모든 게 다 그대로 있더라고. 멀지 않은 곳에 마을이 보였어. 나는 일어나 겨우겨우 마을까지 갔어. 거기서 농부를 한 명 고용해서 저녁녘에 집에 올 수 있었지.”

그런데 돔나 플라토노브나, 당신이 정말 이 모든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고 확신하세요?”

그게 아니면, 자네 혹시 내가 거짓말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아니에요. 내 말은, 정말로 모든 일이 꼭 그랬느냐는 거예요.”

모든 게 내 말 대로라니까. 자네는, 내가 어떻게 그들에게 알몸을 보여주지 않고 견뎌냈는지가 더 궁금하겠지.”

그 말에 나는 정말로 놀랐다.

그래, 이렇게 나는 악마도 견뎌냈다고. 하지만 교활한 인간들 앞에서는 상황이 전혀 달랐어.”

무슨 일이 있었는데요?”

잘 들어봐. 한 번은 어떤 상인 부인을 위해 고로호바야 가에서 이사를 나가는 사람들에게서 가구를 산 적이 있었어. (후략)”

(p240~243) 

 

 

 

악마에게 조롱당한 일화라고 들려주는 이야기는 돔나가 마차를 같이 탔던 무리들에게 윤간당한 상황을 환상으로 처리하고 있음을 읽을 수 있다. 얀 마텔 파이 이야기가 난파선에서 동물과의 사투인지 식인과의 사투인지 완전히 다른 표류이야기로 읽을 수 있듯이. 이야기를 음미하며 따져 생각하기도 전에 돔나는 또 다른 이야기 속사포로 나아간다. 이런 레스코프의 스카즈는 정말 매력적이다. 쌈닭이나 왼손잡이두 작품 중 하나는 꼭 읽어보길 권한다.

 

 

  

《레이디 맥베스》(2017, 국내 포스터) 

작가 레스코프 이야기만으로 이미 리뷰가 가득일세;; 영화 개봉에 맞춰 소담출판사에서 재출간된 러시아의 맥베스 부인(2017)에는 러시아의 맥베스 부인(원제: 므첸스크 군의 맥베스 부인, 1865), 쌈닭(원제: 여전사戰女士, 1865) 두 단편이 실려 있다. 여주인공들은 모두 므첸스크 군 출신이다.

러시아의 맥베스 부인(1865)이 죄와 벌(유형)’로 구분되는 구성과 도스토옙스키의 잡지 세기에서 처음 발표된 것 때문에 도스토옙스키 죄와 벌(1866)과의 연관성을 많이 생각하게 됐다. 돈이 궁했던 도스토옙스키가 급하게 죄와 벌을 쓴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레스코프의 이 작품도 어떤 모티프가 되었던 건 아니었을까 매우 의심 간다;;

 

 

 

 

 

 

 

 

 

 

러시아의 맥베스 부인은 여주인공 카테리나가 애인 세르게이와의 사랑을 위해 가족들을 살인한 게 발각되어 두 사람이 유형을 떠나게 되고 유형길에 세르게이에게 그녀가 갖은 수모를 당하다가 그의 새로운 애인을 끌어안고 투신하는 이야기다. 전체 내러티브도 그렇고 마지막 장면도 러시아의 맥베스 부인을 추천한 박찬욱 감독이 딱 좋아할 장면ㅎ

쌈닭은 공식적으로는 레이스 상인이지만 중매쟁이, 가구 구매 대행, 중고 의류 판매, 자금 조달, 직업 알선, 포주 역할 등을 하는 오지랖 넓은 돔나 플라토노브나의 수다를 통해 당시 페테르스부르크 사람들의 삶을 볼 수 있는 소설이다. 결말에서 돔나는 뜻밖의 이유로 파멸한다. 역자는 레스코프가 두 작품에서 러시아 여성의 의지적 본능과 원시성을 드러냈다고 평하고 있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카테리나가 세르게이에게 집착하는 본능 너머에는 다른 것은 보지 못하는 애착 장애징후를 읽을 수 있었고, 돔나가 사랑을 믿지 않고 물질과 수다로 삶을 영위하다가 어린 소년을 사랑해 외롭게 죽음을 맞는 것 또한 그녀가 자주적 여성이었다고 볼 수 없는 함의를 제공한다. 물론러시아의 맥베스 부인 경우 레스코프의 어린 시절 체험(뛰어난 미모의 며느리가 시아버지 귀에 납을 부은 엽기적인 살인 사건)과 형법재판소 사서로 일할 때의 경험을 토대로 한 이야기라는 걸 주목해야 한다. 이런 경험들 때문에 그가 고향 오룔 부근의 여성들을 유형별로 분류하여 열두 편의 시리즈를 쓸 생각을 한 거 같은데 실현했다면 문학적 가치를 넘어 미르스키의 평대로 러시아인을 잘 알 수 있는 사료적인 가치로도 뛰어났을 것이다. 계획이 미완으로 끝나 아쉽게 됐다. 그러나 19세기에 이런 여성상을 그린 작품은 흔치 않고 매우 현대적으로 썼다고 생각한다. 레스코프가 잘 알려지지 않은 눈여겨볼 러시아 작가인 건 분명하다.


 

 

 

 

Lew - Baby Ste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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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7-09-02 00: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러시아의 맥베스 부인」은 제목부터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연상시키네요. 셰익스피어의 레이디 맥베스는 악마와 교감을 나누려하는 전형적인 악녀로 그려지는데, AgalmA님의 글을 통해서 본 러시아의 맥베스 부인은 수난-부활 또는 구원의 서사 구조 안의 인물로 느껴지네요^^: 짐작이라 아닐 가능성이 매우 높겠지만요 ㅋ

AgalmA 2017-09-02 16:06   좋아요 1 | URL
셰익스피어 맥베스 부인이 남편을 이용해 신분상승하려 한 것처럼 레스코프의 맥베스 부인도 가족을 죽여 재산과 자유를 모두 가지려 한 야심가, 악행을 적극적으로 행하는 자였다는 게 두 맥베스 부인의 큰 공통점이죠. 겨울호랑이님 너무 깊게 나가시는 거 아닙니까ㅎ; 레스코프가 예수의 참된 삶, 종교에 깊은 관심을 가진 작가이긴 한데 적어도 이 작품에서 그 정도 깊이까지는 저는 못 느꼈어요^^; 스스로 맞는 수난은 맞는데 맥베스 부인이 자신을 구원할 여지를 레스코프는 전혀 안남겼죠. 연적을 죽이고 바다 속에서 살아 남는다면 탈출이 되긴 하지만ㅎㄷㄷ

겨울호랑이 2017-09-02 16:05   좋아요 1 | URL
^^: 그렇군요.. 제가 잘못 넘겨짚은 듯 합니다. 기회가 되면 레스코프도 읽고 싶어집니다. 다만, 대기번호표가 이미 많이 발급되어서...ㅋ

2017-09-02 16: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겨울호랑이 2017-09-02 16:15   좋아요 1 | URL
^^: 계획대로 된다고 하기보다 ‘테트리스‘게임처럼 쌓인 책들이 빠지는게 제 현실인듯 합니다 ㅋ
 
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면 내가 돌아보았다 창비시선 411
신용목 지음 / 창비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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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에 가면 물속 돌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보석 같기도 물의 알 같기도, 나 같기도 전혀 다른 타자 같기도 한 그것을 꺼내 보기도 하다가 어떤 것은 집에 가져왔다. 내가 생각한 돌, 내가 가진 돌에는 내 기억과 환상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그러나 누군가 각각의 돌에 대해 묻는다면 나는 뭐라 답할 수 있을까. 내 경험과 인상에 대해서 말할 수도 있고, 돌이 있었던 장소나 성분에 대해 말할 수도 있지만 돌의 처음과 끝 그리고 본질에 대해서는 결코 말할 수 없으리라.

신용목 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면 내가 돌아보았다시집도 그런 궁지를 말하고 있다. “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면 내가 돌아보았다시구가 있는 모래시계에서 모래시계과 같은 형국이다. 모래시계는 끝없이 자리바꿈으로 시간을 재는 기계다. 모래시계는 자체가 시간을 말해주지 않는다. 그것을 움직이고 바라보는 주체에 의해 시간은 측정되고 경험된다. 주체도 환상이라는 문제까지 가져오면 앞으로 나아가기 더더욱 어렵겠지. 이런 복잡한 지경에 대해나는 알고 있거든시는 서사로서 보여주고 있다면, 모래시계시는 환상성으로 그 교차와 중첩의 풍경을 그려내고 있다. 화자는 잤던 잠을 또 자고 꿨던 꿈을 또 꾸며 모래시계에서 모래알들이 떨어지듯 이름이 부서지는 것을 목격한다. 모래는 해변으로 바뀌고 이 모래가 다 어디서 온 건지 알 수도 없다. 모래처럼 누가 누군지 알 수 없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지 않아도돌아보았다. 비슷한 정황을 일찍이 이장욱 시에서도 본 적 있다.

 

 

삼 분 전의 잠


 용서를 빌러 그곳에 갔네 발밑으로 흘러내리는 모래들 내 잠 속에 쌓이고 있었네 삼 분 전의 잠에서 깨어 삼 일 전의 잠을 추억하는 자 삼 일 전의 잠에서 깨어 삼 년 전의 잠을 추억하는 자
  
 그때 그 오래된 눈빛은 우연한 것이었으나 아, 이런 바람은 괜찮은데, 모든 우연을 우리는 미리 알고 있었네 삼 년 전의 문 열리고 삼십 년 전의 그대, 마른 등 보이네 눈뜨면 그때인 듯 상한 눈발 날리고 모래처럼 우연한 노래들 내 잠 속의 모래산, 모래산에 쌓이네
   
 용서를 빌러 그곳에 갔네 그곳에 오래 앉아 있었으나 깔깔한 모래들 아직도 내 잠 속 떠나지 않네 삼 분 전의 잠에서 깨어 삼 일 전의 기슭을 배회하는 자 삼 일 전의 잠에서 깨어 삼 년 전의 독백을 기억하는 자 그리고 모래산 바람 부는 그대의 모래산

 

 

이장욱 (내 잠 속의 모래산, 민음의 시 111, 2002)

 

 

 

누군가가 누군가를, 무언가가 무언가를 계속 가져오며 일어나는 충돌, 거기서 일어나는 환기는 창작의 강력한 자장(磁場)이기도 하지만, 신용목은 이 시집 첫 시 후라시부터 내내 하나의 화두로 추적하고 있다.

 

 

 

 


 

동그라미는 왼쪽에서 태어납니까/ 오른쪽으로 태어납니까//왼쪽으로 태어난 동그라미의 고향은 오른쪽입니까 어디서부터/ 오른쪽은 시작됩니까// 동그라미를 그리는 자는 동그라미의 부모입니까후라시

 

누가 돌을 던져서, 허공의 어디쯤 깨져나간 것이 내 머리는 아닐까? 세계의 뚫린 구멍이 내 생각은 아닐까? 그 둥근 틈으로 모든 침묵이 날아가버려서//우리는 취하고//하나씩 가로등에 매달려 떨어지지 않는 불빛처럼,//끔찍한 일이다.// (중략) // 유리창이 깨지듯 잠이 깨 손으로 얼굴을 감싸쥐면, 오래전 날아온 돌멩이가 잡힌다.” 취이몽(醉以夢)

 

이 불판을 데우는 것은 타오르는 단풍 같습니다. 저 접시에 담겨 나오는 것은 / 갓 떨어진 낙엽 같습니다./ 놀랍게도, 고기는 연기의 빛깔로 익는군요./ 재의 색깔인가요? // (중략) // 어느날, 내 몸속의 잎들이 한꺼번에 지는 날이 있을 겁니다./ 내 몸을 찢고 나온 슬픈 식사가 있을 겁니다. 송별회

 

누군가 느낌을 담아가기 위해 사람을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마트에서 부엌까지 비닐봉지에 비린내를 담아가듯 꿈과 꿈 사이로 이어진 생활을 지나가려고/ 누군가 내 뺨을 후려치고 그 손을 내 손목에 담아놓았는지도 모른다흐린 방의 지도

 

끓는다는 말 속에는 불꽃의 느낌이 숨어 있다 비 오는 날 지붕이 끓는 것처럼/ 냄비 바닥의 불꽃 속에 숨어 있는 빗소리의 느낌을 라면가닥으로 삼킨다는/ 말 속에는 또 비처럼 흘러내리는 몸의 느낌이 있다산책자 보고서

 

왜 여름과 가을이 가을과 여름이 방을 따로 쓰지 않는지 몰랐다 왜 밤과 낮이/ 한몸으로 뒤엉켜 나뒹구는지// (중략) // 왜 몸과 몸이 마음과 마음이 그 시간을 견딜 수 없었는지 몰랐다 왜 너와 내가/ 그 방에 갇힐 수밖에 없었는지사과

 

   

자신을 돌멩이[*]에 투영하며 존재론적 울분과 슬픔(“이 슬픔엔 규격이 없다”, “슬픔은 대규모로 일어난다”)의 긴 운구 행렬을 보여주는 시인의 연유는 모래시계만큼 오래된 인류의 질문ㅡ“나는 누가 이렇게 오래 들어올리고 있는 술잔일까?”(귀가사(歸家辭))과 다르지 않다. 자주 거론하는 아버지의 죽음이 물음을 더 깊게 만든 이유 같다. 종교가 지금껏 작용하고 있는 것처럼 이 시집에 답을 물어볼 만한 존재-신이 자주 등장하는 것도 마찬가지 연관성이 있다. 입 없는 목소리들이 이름을 부르는 것을 계속 듣는 연유도 그러하겠다.

 


 언제나 부르는 사람의 바닥이 가장 깊어서 그 아래 낮에도 고여 있는 밤처럼그림자 섬

   

 


 

  

돌멩이[*] : 많은 시인과 작가들이 '돌멩이'에 비상한 관심을 기울이며 많은 작품을 썼는데 가장 낯설게 표현한 사람은 사르트르 아녔나 싶다. 구토에서 로캉탱이 바닷가의 돌을 집어 들고 구토를 느끼는 대목은 아직도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데 이해되는 게 신기하다.

 

※ 이 시집에 대한 허수경 시인의 추천글은 장 그르니에 《섬》의 서문을 쓴 카뮈의 글만큼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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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7-08-26 22: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 ⏳ 모래시계를 보니 디지털과 아날로그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됩니다. 아날로그 시계는 바늘의 움직임으로 시간을 표시하고, 디지털 시계는 숫자로 시간을 표시한다는 사실을 새삼 떠올립니다. 디지털은 ‘존재‘의 있고 없음을 통해 인식을 하고, 아날로그는 변화‘ 또는 ‘현상‘을 통해 세상을 설명하는 것은 아닌가 싶어요^^:

AgalmA 2017-08-26 22:12   좋아요 1 | URL
네, 사고 전환으로 삶을 다르게 인식할 수 있듯이 내부적 갈등, 해결방법도 연관되겠지요.

서니데이 2017-08-26 22: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진 처음 보고 고기 말린 건 줄 알았...^^;
돌이라고 하면 하얀색 회색 검은 색이 익숙해서 그런 걸지도요. 근데 어디서 발견(?)하셨어요, 저 돌??

AgalmA 2017-08-27 00:32   좋아요 1 | URL
육포 색깔이기도 하지만 배고픈 거 아닙니까ㅎㅎ 낙엽과 고기를 환유로 연결한 신용목 「송별회」시 같은 상황이네요ㅎ;; 여행 한참 다닐 때 군산 바닷가에서 가져 왔지요.

서니데이 2017-08-26 22:57   좋아요 0 | URL
그런 걸까요.^^

2017-08-27 08: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어디로 갈 수 없기에(정말?) 매 순간 어딘가를 꿈꾼다. 그런 열망 속에 펼친 백민석 《아바나의 시민들짧은 여행의 단맛처럼 순식간에 끝났다. 책에 이런 표현이 있지.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지금 보니 그가 절망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절망에 대한 감각은 현장이 아니면 느끼기 어려운 찰나적 감각이다. 인간은 절망을 그리 오래 견디지 못한다. 인간은 잠시도 절망을 견디지 못하고, 금세 자신을 속이기 시작한다. 절망은 쉽게 휘발된다.”(《아바나의 시민들》, p198)

 

 

 《아바나의 시민들

 

작가라서 더 그런 걸까백민석 사진은 황량한 소설 인상과 달리 의외로 다감한 시선으로 찍은 인물 사진이 많다. 특히 노인들. 저 문장은 그가 아바나에서 자주 본 자세라고 말하며 손으로 머리를 감싼 노인이 성당 계단에 앉아 있는 사진을 찍고 남긴 단상이다. 그러나 절망만 그럴까. 희망도 그렇지 않은가. 희망을 꿈꾸지만 우리가 하루 중에 그것을 꿈꾸는 건 찰나다. 우리는 많은 일상을 원하지 않은 것들로 채우면서 아직은 괜찮다고 자신을 타이른다. 속인다.

 

바보 같은 이유로 카메라를 여러 대 잃어 버리기도 하고 인터넷이 잘 안 되는 쿠바에서 와이파이가 되는 장소에서 자조하기도 하면서 정처없이 헤매는 백민석을 놔둔 채 나는 우디 앨런 카페 소사이어티영화섬에 다녀오기도 한다. 1930년대 뉴욕과 할리우드 풍경이 아련히 펼쳐진다. 송년 파티 장면에서 합리적 공산주의자 Leonard는 이렇게 말한다.

 

 

 

 

음미할 시간도 경험도 갖지 못한 인생이면 어쩌나. 카페 소사이어티 전형적인 할리우드 로맨스 영화 양식을 따른다. 성공을 꿈꾸며 할리우드로 온 바비(제시 아이젠버그)와 보니(크리스틴 스튜어트)는 사랑에 빠진다. 보니는 불안정한 미래 때문에 바비의 청혼을 거절하고 자신을 버렸던 재력가인 그의 삼촌을 택한다. 뉴욕으로 돌아온 바비는 갱스터였던 형의 나이트클럽 카페 소사이어티영업에 재능을 발휘해 크게 성공한다. 바비와 보니는 여유로운 삶을 누리게 되었지만 서로가 함께 하는 사랑을 다시 누릴 수는 없게 되었다. 그들은 이뤄지지 못한 사랑의 공허를 내내 음미할 것이다.

이 영화는 같은 해 개봉한 데미언 샤젤 《라라랜드와 흡사한데 두 영화의 판도가 판이하게 갈린 건 우리가 음미하고자 하는 게 달라진 걸 말하는 걸까, 데미언 샤젤이 우리가 음미하고픈 걸 더 정확히 짚어냈다고 봐야 하는 걸까. 두 영화 다 재즈 굿~ㅎ

삶의 많은 것에 대해 음미를 너무도 잘해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음미되고 있는 소크라테스는 《아바나의 시민들에도 등장한다.

 

소크라테스의 연인들은 그를 아토포스atopos’라고 불렀다. 아토포스라는 별명은 마르지 않는 사랑의 매력이 어디서 비롯되는지를 알려준다. 장소를 의미하는 'topos'에 결여, 부정을 나타내는 접두사 ‘a’가 붙어 어떤 장소에 고정될 수 없다, 더 나아가 정체를 헤아릴 수 없다는 뜻의 아토포스가 된다. 롤랑 바르트에 따르면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의 대상을 아토포스로 인지한다.”(《아바나의 시민들》, p270)

 

영화 속 Leonard처럼 백민석도 이의 제기한다.

 

하지만 아토포스는 또한 사랑하는 이의 입장에서는 불행의 언표일 수 있다. 사랑하는 이는 소크라테스처럼 아토포스가 될 수 없다. 그는 사랑하는 이라는 정체에 기꺼이 고착되어야 하고, 사랑하는 대상이 잘 바라다보이는 장소에 정주해야 하며, 변덕을 부렸다간 사랑을 잃을 것이라고 매 순간 자신을 닦아세워야 한다. 이것이 오늘도 넋을 앗길 순간을 기대하며 아바나 비에하를 걷는 당신의 정체이자, 불행이다. 아바나만 한 다른 아토포스를 찾기 전까지 당신은 한국에 가서도 사랑의 이름으로 아바나에 붙들려 있을 것이다.”(《아바나의 시민들》, p271)

 

"죽은 자의 넋 앞에서 한 가지 감정만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할 만큼"(《아바나의 시민들》, p22) 세상을 살아도 우리는 어떤 장소, 아토포스에 대한 열망을 접을 수 없다. 우리의 마음이 고정되지 않는 속성이라 그런 것일까. 아토포스란 표현처럼 쿠바의 날씨도 정체를 알 수 없는 강렬함이 있다. '미친 태양이 내리쬐면서 동시에 미친 폭우도 쏟아‘(p66)지는 쿠바. 기상학적인 합리적 분석으로 볼 땐 그 위도에 맞는 그 기후겠지만 그 속엔 어떤 음미할 것들이 가득 있다. 집을 두고 여행을 하는 우리의 오랜 습성과 사색과 관찰이 소용돌이치는 공간들이 그렇게 곳곳에 있다. 그리고 모두가 찾아 나선다. 여유가 있든 없든 자기가 꿈꾸는 아토포스에 대한 열정으로. 백민석의 첫 여행 에세이집은 이병률의 첫 여행 에세이 끌림을 떠올리게 했다. 사진에서 엿보이는 현지 사람들에게 가지는 애정, 한국적 감수성, 작가적 필치 등등. 끌림을 좋아한 사람들은 《아바나의 시민들도 좋아할 것이다. 이병률이 아기자기하고 풍부한 인상파 화풍이라면 백민석은 권태와 단절감이 묻어나는 굵은 터치의 정물화 같달까.

 

 

 

《아바나의 시민들

 

"아바나에서 끝없이 걷는다는 것은, 당신에게는 아바나에 대한 독서 행위나 마찬가지다. 낱말을 읽듯 집집마다 기웃거리고, 행간을 읽듯 골목마다 헤집고 다니고, 문단을 읽듯 지역을 훑는다. 나중엔 책 전체의 흐름을 이해하는 듯 아바나 전체를 알게 되거나, 알게 되었다고 자신을 속이게 된다. 당신은 글을 쓰는 사람이라기보다 읽는 사람에 더 가깝다. 읽는 걸 더 좋아하고, 읽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들이고, 쓰는 건 포기해도 읽는 건 포기할 수 없다. 당신은 당신에게 주어진 것이라면 무엇이든 일단 읽으려 든다. 사람이든, 책이든, 음악이든, 영화든, 도시든. 그래서 낯선 도시에 도착해서 서점을 만나면 고향처럼 살가운 마음이 드는 것이다. 비록 당신이 읽을 수 있는 책이 한 권도 없을지라도."(《아바나의 시민들》, p107)

 

이병률 끌림에 대해서는 ...  http://blog.aladin.co.kr/durepos/7333525

이병률 다른 산문집도 찾아서 읽어봐야겠다. 새삼 여행 에세이 참 잘 쓰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아아, 해가 떠버렸다. 나의 아토포스는 어디 있는가. 카피톨리오의 늙은 사진가가 거리에서 가장 오래된 카메라로 찍어주는 나를 만나고 싶은 아침이다. 단 한 곳에서만 찍을 수 있고 세상에서 단 한 장뿐인 단색조의 나를. 


《아바나의 시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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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7-08-17 09: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양반 소설로 재미를 못 보시니까
이제 아예 여행작가로 전업을 하신 모양입니다.

나름 유쾌한 비급 정서를 담아내서 좋았는데
말이죠 ㅋㅋ

AgalmA 2017-08-19 07:23   좋아요 0 | URL
절필까지 할 정도로 소설 쓰기 지긋지긋해 했잖아요. 그런데 에세이는 힘이 나서 좋다네요. 이번 에세이는 출판사 기획으로 쓰신 거 같은데 이 책 잘 되면 앞으로 더더 쓰실 듯^^

요즘 소설쓰신 건 예전만 못해서 좀 아쉽더라는ㅎ;

2017-08-17 09: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7-08-19 07:25   좋아요 0 | URL
핸폰으로 찍은 사진도 많던데 뭘 찍어도 작품이 되는 곳 같아요ㅎ
유네스코 문화 지정되어서 옛모습이 많아 더욱 그런 듯요. 문화적인 자유로움도 사진에 가득~^^
경비원 아저씬데도 모델급 포즈더라는ㅎㅋㅋ
 

 

 

거울 속에도 바람이 일었다
거울도 바람도 그림도 자유의지도 다 아닌 착각이고
Cogito, ergo sum도 신념일 뿐이고
 나는 이 세계를 도통 이해하지 못해서
그렇다 이렇다
그리고 말한다

맘에 안 든다고?

나보다 더 그럴 수 없다고 말한다


말은 적게
시집에 파란 손자국을 가득 남겼다

 

 

 

 


 개들의 밤


  
간유리를 지나 방 안으로 출몰하는 빛은 누운 사람에게 천장을 새삼스럽게 만든다. 자식을 낳으면 더 오래 사는 기분입니까
어두운 곳에서는 끊임없이 누군가 키스를 한다 끊임없이 누군가 오줌을 눈다
골목을 빠져나가는 비명이 들린다면 어떤 사람은 자기만을 쳐다보던 짐승을 견디지 못했다는 것 그가 사라진 방향으로 짐승의 목은 어둠 속에서 계속 자란다는 것
 
빛으로 다가갈 땐 똑바로 걸을 수 없다
기계는 어두운 곳으로 불빛을 낸다 그쪽으로 행진하는 자들을 낸다
오늘 한쪽 눈을 가리고 내일은 그 반대쪽의 세계를 가리듯이
언젠간 낮에서 밤으로만 걸어가는 아이를 낳을래 제 그림자 같은 건 사랑할 수 없는
이런 나를 반복할 수 없고 하나의 연인만을 가질 수 있는
 
당신과의 전말은 다음과 같다; 가로등 빛 아래서 더러운 물을 핥으며 욕망하는 검은 개들을 보았습니다. 그런 밤이면 우리는 서로의 가슴을 입속에 넣었지만 아무도 심장 뛰는 소리에 밤새 귀를 기울일 수는 없습니다
너의 왼쪽 눈에서는 비가 내렸고 내 오른손 바닥엔 차가운 결정이 쌓였다
개는 슬프지 않다 개는 그럴 때 주먹을 쥘 수 없다
 

 


ㅡ 김상혁


 

 

 

 

Loro's 오랜만/

  '너의 왼쪽 눈에서는 비가 내렸고 내 오른손 바닥엔 차가운 결정이 쌓였다' (김상혁) 싯구 때문에 생각나 가져왔다.

 

Loro's - 너의 오른쪽 안구에서 난초향이 나

 

Loro's - 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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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11 08: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7-08-11 16:24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저건 어떤 나가 투영된 걸까요^^;

겨울호랑이 2017-08-11 08: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 파란 테두리 거울에 갇혀 있는 사람이 그려진 것 같아요. 순환하는 운명 같기도 하고, 무한한 시간 속에 안타까운 표정을 보니, 한밤과 잘 어울립니다^^: 오랫만에 1일1그림보니 좋네요.

AgalmA 2017-08-11 16:26   좋아요 1 | URL
저런 테두리 창은 비행기 같기도 하고 우주선 같기도 하고 어디 갇힌 느낌을 주는 데이터가 우리에게 많이 쌓인 거 같아요. 그리자 생각하고 그리면 슥삭 나오는데 1일 1그림 그리는 건 왜 이렇게 어려운지 모르겠어요^^;;

잠자냥 2017-08-11 10: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Loro‘s 의 음악과 앨범이 있어서 반가운 마음에 댓글 달아봅니다. ^^

AgalmA 2017-08-11 16:29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로로스 처음 나왔을 때 많은 사람들이 와~ 우리나라에도 드디어...! 그런 생각을 했죠.
2집을 끝으로 해체됐다고 들었습니다. 음악계야 능력있는 친구들 이합집산하는 거 흔해서 다른 모습으로라도 계속 만날 수 있길 바랍니다.

2017-08-11 14: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11 17:3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