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기둥 - 제36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 시집 민음의 시 242
문보영 지음 / 민음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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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식 탐구라면 시보다는 소설이 더 낫지 않을지. 보르헤스처럼. 소설까진 안 되는 시와 시까진 안 되는 소설, 시를 소설이나 산문으로 넓히려는 또는 그 반대의 경향, 이 혼종성과 사유의 확장성을 보며 다분히 읽는 자의 편리에 치우친 장르에 얽매이는 내 습관을 또 탓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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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범선과 양반들 - 정규 3집 방랑가
전범선과 양반들 노래 / 워너뮤직(WEA)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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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각수 <흥보가 기가 막혀>는 잊어라. 전범선과 양반들이 나가신다~ ˝신선놀음이나 하자~지화자지화자♪지화자지화자♪˝ ˝훈장질해서 내 무슨 나랄 구하랴 나 하나 구하기도 바쁜~~뱅뱅사거리 뱅뱅˝ㅋㅋㅋ ˝서울의 밤은 날카로운 칼이 되어 꽂히고 십자가를 진 예수는 홀로 거리에 내앉아 울고 있다 할렐루야~˝ ˝옴 마니 반메 훔˝이 이렇게 멋지게 록이 될 수도 있구나!ㅎㅎ ˝나-그네˝가 ˝롹-이있네˝로 들려ㅋㅋㅋ 참 찰지게 부르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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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리풀말미잘 2018-01-02 20: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게 무슨 쌍팔년도 B급 정서! ㅋㅋㅋㅋㅋㅋㅋ 뭔가 하고 들었다가 뿜었네요.

AgalmA 2018-01-02 20:51   좋아요 1 | URL
넘 재밌지 않아요ㅋㅋ ˝전기성˝(인디밴드 이름임) 들어봤어요? 핵잼ㅋㅋㅋ

뷰리풀말미잘 2018-01-02 20:56   좋아요 2 | URL
전기성 이 도시의 밤 틀었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 왜케 촐랑대 ㅋㅋㅋㅋㅋㅋㅋ 비트도 그렇고 목소리도 그렇고 ㅋㅋ

뷰리풀말미잘 2018-01-02 21:01   좋아요 2 | URL
아, 뭔가 원더버드 생각나네요. 가사 때문인가 정서 때문인가. 아세요? 원더버드? 옛날사람이라는 스몰 히트곡이 있는 인디밴드인데.

술을 마시면 언제나 / 생각이 나는 옛날사람 / 꿈을 찾아서 오늘도 / 기타를 치는 옛날사람!

뷰리풀말미잘 2018-01-02 21:05   좋아요 2 | URL
전기성 사이코메트리-O 듣고있는데 아련합니다 아련해요. 이 90년대 초반 삘이란. ㅠ_ㅠ

AgalmA 2018-01-02 21:07   좋아요 1 | URL
맞아요. 원더버드 비슷하죠. 원더버드가 <사피엔스>라면 전기성은 데이터가 더 축적된 <호모데우스>랄까^^

양철나무꾼 2018-01-03 17: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100자평엔 웬만해선 ‘좋아요‘를 누르지 않는데,
이런 발랄함이라니,
‘좋아요‘하지 않을 수 없지 말입니다~^^

AgalmA 2018-01-03 18:46   좋아요 0 | URL
이 100자평은 엄밀히 말하면 100자 평이 아니라서 가능한 거였죠ㅎ; 무슨 센서의 오류인지 북플로 100자평을 쓰면 내용을 무제한으로 쓸 수 있더라고요.
 

 

절망의 음유시인 에밀 시오랑의 책이 모조리 절판이던 시절 도서관을 이리저리 찾아 빌려 읽으며 그의 문장에 대한 내 열광은 정말 대단했다. 메모가 거의 필사가 됐던 터라 개정판이 나왔을 땐 그다지 필요 없었지만 실물 책으로 갖고 싶긴 해서 중고책으로 모았다.

중고책을 사다 보면 누군가 확신을 담아 책장을 접어둔 표시를 종종 본다.

밑줄만큼이나 눈길을 끌어 그 페이지를 유심히 본다.

누군가 도착했다 떠난 흔적, 
내 책이라 하기 아직 어색한 순간.

그 접힘은 밑줄보다 풍부하며 모호하다.

그러나 어떤 문장 때문이었는지 기어이 짐작하게 되고 ‘당신은 그때 그랬군요‘ , ‘나도 어쩌면‘ , ‘그렇지만...‘ 마음으로 얘기를 건넨다.

절망을 노래하는 작가의 혼잣말, 우리의 혼잣말.

나는 조금 부끄러워하며 접힘을 조심히 편다.

내가 지금 이 글을 쓰는 것도 다르지 않다.
이 글도 당신이 목격하게 된 하나의 접힘이다.

책은 매 순간 모든 것에 대해 부끄러움을 가르쳐준다.
하나의 옷, 하나의 페이지.

책의 모든 여백은 우릴 위해 마련된 것 같지.
각각의 공간, 각각의 세계.

서로가 서로에게 전달자가 되는 시간, 이 긴 릴레이.

우리는 함께 사는 건 아니었다.

나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영원히 그러고 싶지 않은 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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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02 09: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8-01-02 14:22   좋아요 0 | URL
시오랑은 언제 읽어도 울컥 하게 만드는 게 있어요^^ 하루키 글을 좋아하는 사람들처럼 시오랑도 한 번 빠져든 사람은 잊기 힘들고 다시 찾게 되죠.
↓밑에 계신 pek0501님처럼^^

페크pek0501 2018-01-02 11: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 아침부터 저녁까지 무엇을 하십니까?
- 내 자신을 견딥니다.

에밀 시오랑, <지금 이 순간, 나는 아프다>, 53쪽.
....................

에밀 시오랑의 광팬이 남기고 갑니다.

AgalmA 2018-01-02 14:24   좋아요 0 | URL
잘 알죠^^ 제가 pek0501님께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에밀 시오랑 때문인 걸요. 좋아하는 작가가 같다는 건 얼마나 친근한 일입니까(>_<)!

2018-01-02 23: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8-01-02 23:23   좋아요 1 | URL
제가 언젠가 불면에 대한 책을 읽고 정리를 해드리겠다 말씀드린 적 있는데 다른 책이랑 꼬여서 다 못 읽고 말아서 흐지부지 됐죠. 다시 읽어야 하는데 이것참...
마이클 브레우스 <WHEN 시간의 심리학> 한번 읽어 보시죠. 그 방면 책을 많이 읽으셨을 거 같아서^^; 사지는 마시고 도서관에서 빌려서.
불면이 있을 수밖에 없는 진화적 체질적 이유, 환경적 생활적 개선 방안을 알려 주는데 참고할 부분이 있어요.그 책에 대한 리뷰 함 읽어 보세요. 알라디너들이 쓴 게 몇 개 있더군요^^

2018-01-02 23: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18-01-03 08: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에밀 시오랑을 다시 담으며. 아갈마 님 새해에도 멋진 페이퍼 자주 보면 좋겠습니다. 그동안 제가 좀 뜸했지요. 서재의달인도 그래서 2015 이후 못 들고 ㅎㅎ 무술년 복 많이 받으세요

AgalmA 2018-01-03 18:10   좋아요 1 | URL
책 준비하시느라 바쁘셨을 텐데 뜸하셨다고 섭섭하거나 그렇진 않습니다^^;
제 페이퍼가 멋진 건 잘 모르겠지만 좀 웃기긴 하죠ㅎ?
안부 인사 주셔서 감사드리고 프레이야님도 올해 복 많이 받으시길요^^
 

 

 

 

 

 

 

 

 

 

 

 

 

 

 

"어쩌면 지금이 내 인생을 들여다보려는 단 한 번의 노력을 해야 할 마지막 기회인지도 모르겠다........ 그대로 내가 어제 무엇이었는지 이야기하고, 어떻게 여기에 이르렀는지를 나 자신에게 설명하려 한다."(불안의 책, p31)


소아르스가 자신이 "언제까지나 회계사무원으로 살아갈 운명을 타고났을지도 모른다", "시나 문학은 내 머리에 앉은 나비와 같아서, 그것이 아름다울수록 나를 더 우스꽝스럽게 만들 것"(p32)이라고 자조했듯이 여기서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같은 심정이다. 언제나 생각한다. 나는 누구인가. 지금 이걸 왜 하고 있는가. "삶에 동의하는 유일한 방법은 우리 자신에게 동의하지 않는 것"(p35)이라고 페소아이자 소아르스는 말했다. 즉 우리가 원하는 것은 정말 우리가 원하는 것일까. 친밀과 공감대를 얻을 수 없었기에 차라리 철저히 거부했고, 자신만의 고독과 몽상과 영혼을 부르짖은, 모두가 삶의 조건으로 거론하는 미덕의 이면을 파헤쳤던 소아르스, 루소, 알렉시. 진짜 삶이 그런 이들도 있었지만 세상의 많은 작가들은 다들 사생아나 천애 고아인 듯이 굴었고 썼다. 페소아의 異名 소아르스는 자신이 이미 양친의 사망으로 고아이지만 사회적으로도 모두가 고아라고 말했다. 합리적 판단을 요구하는 과학 맹신 세태에 종교라는 의지처가 무력해진 시대 탓도 하면서 말이다. "우리는 신앙이 주는 위로를 조금도 누릴 수 없는 고아로 태어났다"(불안의 책, p386) 루소도 태어나자마자 어머니를 잃고 사춘기 때부터 떠돌이 생활을 했으니 실제로 평생 고아였던 거나 다름없었다. 유르스나르도 어머니가 산욕열로 사망하고 아버지와 방랑생활을 하며 정규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이들의 유년을 획일화해 재단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더욱이 내가. 그러나 그것은 이들 작가의 고백체, 자기 자신에 대한 천착과 전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교육론 에밀을 쓴 저자였기에 비난을 더 피할 수 없었던 루소는 자신의 아이들을 모두 고아원에 보낸 사실이 볼테르에 의해 폭로되자 고백록, 대화:루소, 장자크를 심판하다를 써 자신의 진정성, 정당성을 인정받으려 했다. 사람들에게 교육에 대해 사상에 대해 논하던 사람이었던 터라 사회의 심판과 냉대는 굳건했다. 소아르스는 물고기와 오스카 와일드는 자신의 입 때문에 망한 이들이라고 했는데 루소도 어쩌면 그런 케이스가 된 것인지도 모른다. 결국 타인에 의해 고립된 루소는 그의 사망으로 미완성 유고작이 된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에서 나 자신은 무엇인가를 탐구 주제로 써 내려갔다. 그는 고백록을 통해서도 당시 누구보다 자신을 치열하게 까발린 작가이기도 했다. 페소아는 세상과의 단절을 스스로 원했던 작가였는데, 평생 70개가 넘는 다양한 정체성의 가상 인물을 통해 를 분리하며 자신을 탐구했다. 그의 미완성 유고작 불안의 책속 수백 개의 단상들은 그것을 반영한다. ‘부조리와 역설이 진정한 작가의 임무라고 말하고 있듯이 이 책에는 상반된 의견이 많다. 초반엔 신을 부정하는 무정부주의자처럼 말하고 있다가 후반으로 갈수록 신을 깨부순 세계를 원망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 책은 작가의 어떤 페르소나인지도 불분명하고 여러 편집본도 있는 터라 하나로 규정될 수 없는 자유를 획득했다. 유르스나르 알렉시·은총의 일격에서도 주인공 알렉시는 지극히 개인적인 인물이다. 그는 편지로 아내에게 일방적인 이별 통보를 하고 있다. 그 자체가 쓰는 자의 자유 형태인 독백이자 일기이자 편지인 이들의 글 속에는 세상의 요구에 결코 굴복할 수 없다는 한결같은 자기애, 자유의지가 담겨 있다.   

 

자신의 성향을 따르는 것은, 또한 성향이 우리를 이끌어 선을 행하는 기쁨을 맛보는 것은 미덕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덕은 의무가 우리에게 명령을 내릴 때 그 명령을 행하기 위해 우리 자신의 성향을 억제하는 것에 있으며, 바로 이것이 내가 세상 사람들보다 잘할 줄 몰랐던 것이다.”(고독한 산책자의 몽상p95)
"인간의 자유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절대로 하지 않는 데 있다고 생각했다"(고독한 산책자의 몽상p104)

   

 

루소가 그토록 주장했던 인간의 자유에 대해 유르스나르의 단편 알렉시만큼 잘 표현한 소설도 드물다. 아직도 동성애는 누군가의 허락과 용인이 필요한 일탈로 간주되고 있다. 알렉시에 영감을 준 앙드레 지드 코리동 처음에 익명으로 발표되었다가 1924년에 저자 이름으로 출간되었고, 알렉시(혹은 공허한 투쟁에 관하여)」는 1929년에 출간되었다. 유르스나르는 이 소설에서 동성애 단어나 독자가 기대할 만한 외설스러운 장면을 한 번도 쓰지 않으면서 우리가 당연시하는 관습, 통념 등 모든 것들에 이의를 제기하며 인간의 성적·감정적 자유에 대해 말하고 있다. 동성애자 남성과 두 번 결혼한 유르스나르를 생각할 때 주장이나 옹호보다 객관성에 더 가까웠다.

 

 

 

결국 삶 역시 생리적인 비밀일 뿐이니까. 어째서 쾌락이 감각에 지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비난받아야 한단 말이오. 통증 역시 감각이지만 아무도 비난하지 않는데. 우리가 통증을 존중하는 것은 우리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건지, 그저 받아들이는 게 아닌지 따져봐야 하잖소. 그리고 그게 아니라 해도, 우리가 자유롭게 선택하는 것이라 해도, 난 쾌락이 죄가 되지는 않으리라 생각하오.”(알렉시·은총의 일격p31)
 
난 친구들을 사랑하는 게 행복했고, 친구들도 날 사랑하면 좋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도 없소. 사랑은(용서하오, 그대) 그 이후 내가 다시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오. 사랑을 느낄 수 있으려면 너무도 많은 미덕이 필요하다오. 어린 시절의 내가 그토록 부질없는 연모의 감정을, 거의 대부분 거짓이고, 심지어 관능을 위해서도 필요하지 않은 그런 감정을 신뢰할 수 있었다는 게 놀랍소. 하지만 아이들에겐 사랑이 순수의 일부라오. 자기들이 상대를 욕망의 대상으로 갈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기에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거요.”(알렉시·은총의 일격p34)

 

 

 

   

소아르스, 루소, 알렉시 모두 속박을 견딜 수 없어하고 불안과 몽상 속에 있으면서 한결같이 자신의 감각에 집중하고 있다는 게 공통점이다. 이들이 가족처럼 혹은 페소아의 다른 이명들처럼 느껴졌다.

 

"내 말이 앞뒤가 안 맞는다는 건 나도 알고 있소. 과거에 느꼈어야 마땅하기에 정말로 느꼈다고 생각해버리고 마는 예감 같은 건지도 모르겠소. (설사 관습에 순응하기 위해서라 할지라도) 내가 우리의 과오를 범하지 않은 시절의 기억까지도 오염시킨다는 거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난 지금 불안하오.”(알렉시·은총의 일격p23)
살아오는 동안 나에겐 늘 쾌락과 고통이 지극히 가까운 감각이었소. 어느 정도 깊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같으리라 생각하오.”(알렉시·은총의 일격p30)
 
온갖 커다란 충동에 냉담해진 내 영혼은 이제 감각적인 대상들의 영향만을 받는다. 이제 내게는 감각밖에 없으며, 고통이나 기쁨은 오로지 감각에 의해서만 이승에서 나를 자극할 수 있다.”(고독한 산책자의 몽상p112)
자기 영혼 속에 틀어박혀 자만심을 더 고집하게 만드는 외부와의 관계를 끊어버리고 비교와 편애를 단념함으로써, 자만심은 내가 자신에게 선한 사람임에 만족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자만심은 다시 자기애가 되어 자연의 질서로 되돌아가 나를 평판의 굴레에서 해방시켜주었다.”(고독한 산책자의 몽상p135)
 
무능하고 예민한 나는 나쁘든 좋든, 고귀하든 천하든, 난폭하고 강렬한 충동은 다룰 수 있지만 내 영혼의 본질로 파고들어 지속되는 감정과 계속 이어지는 정서에는 속수무책이었다. 내 안의 모든 것은 항상 다른 무엇이 되려 한다. 영혼은 칭얼거리는 어린아이를 못 견디듯 스스로를 못 견디고, 불안은 점점 커지면서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불안의 책, p25)

"나에게 나는 누구인가? 내 감정의 일부에 불과하다.”(《불안의 책》 p202)
아무도 사랑한 적 없다. 내가 사랑했던 것은 나의 감각들, 의식적으로 보고 있는 상태, 귀 기울일 때 받는 느낌, 그리고 세상의 소박한 것들이 과거(과거는 냄새를 통해 참 쉽사리 기억된다)의 일들을 상기시키며 내게 말 걸어오는 방식인 향기 등이다.”(불안의 책p271)

  

 

원하진 않았지만 내가 타고난 감수성의 혼란스러운 밑바닥에 있는 것들의 총체가 바로 나라는 존재다라고 말한 소아르스의 고백처럼 이들의 공통적인 사태는 그들의 타고난 감수성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 그들이 인간이기 때문이겠다.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면서 수많은 이명으로 역설적으로 모든 것이 되려 한 페소아이자 소아르스나, 외부의 영향과 타격에 대응하기 위해 역경에 무감각해지게 만듦으로써 자기를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서 자기 안에서 평온을 찾으려 한 루소나, 자신과 갈라설 수 없어 자신이고 성 정체성으로 더욱 자신이었던 알렉시는, 책임과 의무보다 자신의 천성을 택했다. 
    
소아르스는 회계사무원이면서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는 글을 썼다. 루소는 아무도 보지도 듣지도 않으려는 글을 썼다. 훌륭한 음악가가 되지 못한 알렉시는 타인이 원하는 인간이 되지도 못하겠다고 편지를 썼다. 그들의 글은 진정 자신만을 위한 글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철저히 자신만을 위해 쓴 그 글이 내게 힘이 됐다. 인간이기에 가지는 끝없는 불안과 고통을 다스리는 조언이었기 때문이다. 루소는 사람의 행복을 위한 우리의 모든 계획은 공상이라고 말했다. 페르난두 페소아, 장자크 루소,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 작가의 다른 책은 많이 읽지 못했다. 행복하기 위해서라는 말은 내겐 너무 추상적이다. 나는 그들의 책을 더 읽을 것이다. 이 순간의 나를 돌아보기 위해. 그리고 쓸 것이다. 그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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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7-12-16 08: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추억의 테이프가 있네요. 그럼 카세트도 아직 보유하고 있겠지요? ㅋ

AgalmA 2017-12-16 08:22   좋아요 1 | URL
며칠 전에 찍은 따끈한 사진입니다ㅎ! 이사다니느라 테이프 많이 버려서 속이 쓰려요ㅜㅜ 신해철, next(심지어 라이브 실황까지), 015b...지금은 구하기도 어려운.

겨울호랑이 2017-12-16 08:27   좋아요 1 | URL
^^: 오래된 테이프는 늘어져서 나중에는 어학용 카세트로 1.2배속1.5배속으로 들었던 제 과거가 떠오르네요.ㅋ 그리신 그림처럼 투명한 테이프로 이문세의 별밤에 나오는 노래를 DJ라도 된 듯 더블데크로 녹음했던 과거도요.ㅋㅋ
 
아름다운 그런데 창비시선 409
한인준 지음 / 창비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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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을 곳/것이 아닌 게 있을 때 우리는 더 유심히 본다(비문인 '유심해진다'라고 무척 쓰고 싶었다). 한인준 시인은 그걸 시어로 쓰고 함께 산다고 봐야 하겠다.
내가 가족이다/나는 그러므로와 화목하다. 어디서든 자세하게 앉는다. 하지만”(종언_이 문장들을 나는 외톨이로 잘 지낸다는 정도로 해석하면 되나. ‘그러므로가 명사로 거기 있어 존재로서 강력해졌고 자세하게 앉는다는 표현 때문에 화자가 보통 사람과 다른 존재로 느껴진다. “주문진과 바다 하지는 않았다. 아무도 몰래는 왜 자꾸와 함께 닫혀야 했나에서도 지명과 부사가 행위를 하는 낯섦이 이어진다. 이렇듯 우리가 사고하지 않는 방식으로 시인은 말한다. 샤피어 워프 가설에 따라 사람의 언어의 문법적 체계가 그 사람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과 행동을 지배한다고 할 때 우리는 아주 판이한 삶을 살고 있는 게 된다.

 

저기. 저기로 가도 저기를 여기라고 부르고 말 거야. 우리는 자주 여기에 있다. 조금 더 기다려야 할까.”
(중략)
우리는 확신하기 위해 서로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모두들 어디서 내렸을까. 움직이기 위해 움직이지 않는 사람들”(위로)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을 올려다본다. 어제도 오늘도 구름은 구름이라고 불렸다. 구름을 구름같다고 부르는 사람은 없다. 확신하면서 당신에게 문자를 보낸다. 언제쯤 도착할 거 같아?
(중략)
비가 그친 줄도 모르고 우산을 펼쳐 든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는 아직도 비가 내린다”(확신)
 
언제부터 별은 달이 아니고 별과 달이었는지// 나는 빛과 빛나는 것을 구분하는지//지하철 출입구를 왜 자주 출구라고만 부르나//어디로든 어디서든 나가야만 했던 것인지//이곳은 아직도 생각 속이구나//이곳에서 별은 달이 되어가는데”(기대)
 
아니야 이 길이 맞아. 생각이 드는 것과 생각이 나는 것을 어떻게 구별했을까”(이륙)

   
우리는 사실 적당히 이해하고 넘어가고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지적하는 틀림과 다름은 과연 어느 정도로 명확한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하기는 쉽다. 비가 내린 뒤 한참 비를 생각하는 것도 드문 일이지만 여전히 비가 내린다고 생각하고 더 나아가 비를 계속 경험한다면? 미친 게 아니라면 철학 아니면 예술이다. 어렵다는 건 시인도 안다. “식탁 위에 놓인 빨간색은 내가 먹을 수 있는//하지만인가//느낌은 한입으로 쪼개질 수도 있는데/어렵다/어렵다를 뱉는다”(종언_) 알면서도 한인준 시인은 굳이 어렵게 뒤꿈치처럼 생각”(윤곽) 해보기도 하고, 천천히 제발과 부탁을 더해버리지 않는 방법에 대해”, “불어오지 않는 바람도 바람이라고 생각하는 힘에 대해”(종언_하늘 위에 별이 있는 것이 아니라) 골몰하고 말한다. “육하원칙을 내 인기척으로 두 손을 꼭 쥐고 악다구니로/내 살을 내가 씹을 때마다/상처는 여기구나, 하고 나를 가만히 눌러”(퍼포먼스) 주면서. 시인은 이 모든 게 결국 아무것도 아닌 연극이 아닌가 생각하는 듯도 하다(끝날 때까지 기다려, 연출 연습), 데자뷔). “혼자 많은 생각으로 얼마나를 하고”(종언_) 있어 다른 이의 얼마나도 생각하는 건 수순일까. “목숨은 왜 혼자 배우는 거요//당신 혼자 알았다고 전부가 아니야. 우리 모두 배울 때까지 기다려주자”(게스트하우스) 절대로와 함께라면 모든 것은 이곳으로 도착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하면서도 절대로와 함께라도 모든 것이 이곳으로 도착할 것이다”(종언_할 말 잃어버리기」)라고 말하는 건 바람일까 의지일까
    
한인준의 이 고집스러운 실험은 자신의 고립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김나영 평론가의 표현처럼 우리의 합의와 확신에 문제 제기이기도 하다.
    
이 화자의 말은 그 자체의 속성 상 어떤 대상을 있는 그대로설명하지 못할뿐더러, 지시하고 설명하는 말이 생겨나는 순간에 그 대상은 말하는 자와 듣는 자의 것으로 편갈라진다는 것을 알고 있는 자다. 그뿐 아니라 그는 말의 그 역설적인 능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이 화자의 의심은 말하는 자와 듣는 자, 나와 너의 입장과 관점의 차이는 애초부터 분명하게 있었던 것이라기보다는 말의 대상에 대한 지시와 설명과 부연 같은 말의 발생 이후에 나타나서 거꾸로 말의 의미를 다르게 해석하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지도 모른다는 데에 있다. (중략) 이 시집 속에서라면 생각하는 일은 예를 들어 이별의 경우, 그것을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보편적이고 상투적인 경험으로 통칭하기를 거부하고, 그러한 통칭에 깃들어 있는 오해를 해소해서 유일무이한 사건으로 스스로가 만들어 갖는 과정이다. 따라서 그것은 모든 사전적인 정의로 포괄되어 의미를 벗어나는, 관념으로서 취득해야만 하는 고정적인 이해에 저항하는, 이를테면 자신을 가장 잘 설득할 수 있는 순수한 생각을 얻는 일이다.”(p106)
    
언어의 힘을 얻기 위해 고투하기보다 거기서 자유로워지고 싶은 이들에게 권하는 시집이다. 한인준 시인은 이미 그러고 있다. 이 시들이 이해가 안 된다고 해도 당신 잘못은 아니다. 서로 다른 세계에 살고 있으니까. 그러나 전혀 이해되지 않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쩌면 좋다고 생각할 확률이 더 높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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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2 15: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7-12-02 17:26   좋아요 2 | URL
요즘은 아는 사람만 아는 마술이 돼가고 있어서^^;;

cyrus 2017-12-02 16:4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름다운(?) 아재 개그 : 시집 제목을 보자마자 ‘아리아나 그란데’가 생각났습니다. 저만 그런 건가요? ^^;;

AgalmA 2017-12-02 17:26   좋아요 0 | URL
ㅎㅎ 경상도 식으로 ˝그란데 와 그라노?˝ 는 안 떠오르시고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