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문장 문학과지성 시인선 504
김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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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집이 우리에게 주는 함의는 크다. 내게 가장 크게 다가온 화두는 우리가 얼마나 독재적인 주체로서 이해하려 드는가였다. 혹은 끌려가고 싶어 하는가에 대해서도.

해설을 한 남승원 평론가가 이 시집을 읽고 당혹했을 독자들에게 풀이를 꽤 잘해 줬다고 생각한다. “보편적 인식 구조의 생성을 저지”(p131) 하려는 문장들에 대해서. 발화자의 권위를 내려놓은(‘서정적 주체의 죽음’(p135)) 시가 질문과 대답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펼쳐놓아 수평적 의미 찾기가 되는 시 읽기에 대해서. 승부가 도저히 날 거 같지 않은 시적 정황 속에서 구조가 아니라 해체로서 의미를 만끽하는 자유에 대해서. 정해진 의미도 의지도 없으므로 이성적 조직화’(p143)가 아니라 감정의 생기’(p143)정념’(p144)을 되살려보는 일에 대해서.

 

그래서 이 시집을 읽으며 계속 유쾌했다. 제목과 내용이 그것에 해당하는 단어들을 가져오는데 다 읽고 나면 그걸 무화 시켜버리는 반전 때문에 흥미가 꺼지지 않았다.

 

결정에서는 ’, ‘’, ‘오래’, ‘자주’, ‘번번이’, ‘한사코’, ‘어서’, ‘깊이같이 우리가 결정을 할 때 주로 쓰는 수식어들이 나오고 있는데, 결정했다거나 결정됐다가 아니라 결정하고 있다는 미완의 혹은 계속 진행 중인 상태로 끝이 난다. 그 끝은 첫 문장 나는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로 되돌아간다.

 

균열에서는 계속해서’, ‘더 가늘고’, ‘희박한’, ‘압박하는’, ‘미루면서 더 미루어 있는’, ‘공활하게 올라가는’, ‘더 가늘면서 퍼지고 있고같은 표현으로 균열을 묘사하고 있지만 발화의 핵심은 안 보이고 있다는 데 있다. 그러나 순간의 속성처럼 균열도 계속될 것이다.

 

그 생각도 아주 재밌는 병치들이 재미를 준다. 생각은 알다시피 불안처럼 막을 수 없다. 이 시에서 육체는 벌벌 떨고 있는 손과 발과 귀', ‘꿈적도 하지 않는 발바닥으로 꼼짝 못하고 있다. 생각이 자유자재로 녹아 이 신체들은 반응하기 바쁘고 어떤 말이 와서 꽝 하고 닫히는것도 감당 못하는 가련한 상태다.

 

김언 시인의 시는 은유와 환유를 넘나들며 상황극을 보여주는 게 정말 재밌다.

 

북방의 말에서는 점점 추워지는 말을 익히고 있다. 익혀서 먹는 말을 배우고 있다처럼 말()이 먹는 대상이자 배우는 대상이 된다. ‘살아남을까?-들려줄까?’, ‘굳어버린-녹여 먹는’, ‘올라가서 싹을 틔울-흩어지듯이 내려오는’, ‘부러지거나 똑바로 서 있는도 유사한 성격과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동강나기 쉬운 무기와 같은 역설처럼 유지하기 어려운 말을 이토록 내뱉고 있음에도 우리는 늘 굶주려 있고 참고 있는 상태다.

 

극도로 배고픈 말이 참고 있는 상태를 보여주는 대표적 예가 나와 이것, 당신과 그것, 그것 없이도」, 나와 저것시들이 될 텐데 이 대명사들이 사물인지 대상인지 상태인지 짐작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것들은 시 속에서 살아서 작동하고 있으며 당신이나 모두를 두루 설명해주고 있다. 정확히 무슨 뜻인지 모르는데 어리둥절한 채 따라가게 된다. 이해할 수 없거나 용납할 수 없다고 생각되는 지점에서 읽기를 이해하기를 멈추고 나가버릴 수도 있다. 즉 공통의 이해는 없다는 소리다.

 

나와 이것은 둘이지만 그 둘을 각각 지시하는 말은 아무런 소용이 없음을 나와 이것은 잘 알고 있다. 서로가 나와 이것을 이해하고 있다. 각자가 나와 이것을 용납하지 못한다면 나와 이것은 더 이상 나와 이것이 될 수 없다. 나와 이것은 함께 다닌다.”

ㅡ 「나와 이것중에서

 

1부가 인간의 고질적인 어떤 상태들을 보여준다면, 2부는 그 근원을 추적하는 고찰, 3부는 그것들이 만나는 관계들(고용, 친구, 가족, 자화상같이 그려진 물 한 잔’에 대한 연작시), 4부에서는 불가능-끝없는 지속-불가지(不可知)에 대한 총체를 보여주는 것 같다.   

 

문제가 되는 곳은 문제가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 완벽한 천체에 봉사하는 시녀가 되기에 충분했으므로 후대를 위해 그들이 남겨놓은 것은 불필요한 논쟁과 질문뿐이었다. 가령, 강철보다 단단한 밤하늘을 별은 어떻게 운행하는가? 안개를 걷어차면서 전진하는 인간의 발걸음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이 원리를 빛이 대답해주는 것도 아니었고 허점과 동격인 먼지투성이 별이 스스로 밝혀주는 것도 아니었다. 이 모든 일들이천국과 지옥의 운행까지 포함하여한 두개골의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도 누가 대신 밝혀줄 것이 아니었다. 그 또한 한 두개골의 캄캄하고 물렁한 내부에서 밝혀져야 할 사실이었다.”

ㅡ 「강철보다 단단한 밤하늘을 별은 어떻게 운행하는가?중에서

"말하고 싶었다. 나는 말하지 못했다. 말할 틈을 놓쳤거나 말할 자신을 잃었거나 말할 필요를 못 느꼈기 때문에 하지 않은 그 말을 그는 알까? 그는 내가 어떤 말을 하지 않았는지 모를 것이다. 그는 내가 어떤 말을 하면서 어떤 말을 숨기고 있었는지 모를 것이다. 그는 내가 어떤 말을 밀쳐두고 어떤 말을 대신 하면서 참고 있었는지 몰랐을 것이다. 알았다면 말했겠지. 그게 무어냐고 묻기라도 했겠지. 묻는 것을 참기라도 했겠지. 그는 정말 모른다. 내가 어떤 말을 하지 않고 있었는지를. 나도 모른다. 그가 하지 않고 남겨둔 말을."

ㅡ「하지 못한 말」중에서

 

, 묻고 싶다. 당신이 이해하고 있다는 걸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 많은 것들을 끌어와 제시하는 지성들과 천재들이 맞다고 해서 결론낸 답을 따르고 있는 건 아니고? 이것과 저것 중에 맞다고 생각하는 쪽 편을 드는 건 아니고? 당신의 이해를 이해하는 자는 완벽한가? 그 모든 것에 어떤 결함도 없다는 걸 어떻게 증명할 텐가? 모르긴 몰라도 한 문장으로도 한평생으로도 어려운 일이다. 언어의 기원조차 명확하게 소급하지 못하는데 이 불완전한 언어와 그것을 바탕으로 한 이해로 우리는 참 쉽게 이해한다고 으스대거나 웃거나 말한다. 내게 이해는 너무도 광활하고 어둡고 무겁다. 오늘 나는 여전히 물 한 잔을 이해하기도 어려웠던 거 같다. 그저 밤 벚꽃을 보며 조금 서성이다가 막차를 타고 집에 돌아온 것에 감사했다

 

 

  

 1일 1사진 - 간발의, 곧 간밤의 일이 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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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8-04-03 06: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지금 핀 꽃들도 곧 내릴 비에 씻겨져 내려가겠군요. 많은 꽃이 지겠지만, 이런 아쉬움 역시 ‘봄의 기쁨‘ 중 일부일 것 같네요^^:)

AgalmA 2018-04-03 06:56   좋아요 2 | URL
저 꽃핀 거 어젯밤 제대로 봤는데 그것도 한밤에 막차 안 놓치려고 급하게 가는 와중에ㅡ,.ㅡ)....이렇게 가면 나 어떡해~나 어떡해~에에♪~~♬ 사람은 슬픈 걸 참 다양하게 표현하지요;;

2018-04-03 09: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8-04-03 19:30   좋아요 1 | URL
쓰는 이나 읽는 이나 미로에 갇혀 미로를 즐기는 이상한 게임이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 떠나올 때 우리가 원했던 것
정은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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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더 읽었다. 으레 그렇듯이 첫 독서에서와는 다른 문장이 눈에 들어온다. 내가 놓친 것들, 내 관심을 덜 끌었던 것들이 이것 이었구나 겪게 되는 독서 여행의 또 다른 묘미이다

 

첫 독서에서는 “(19) 불안과 설렘, 그 둘은 늘 함께한다. 불안을 즐기지 못하면 여행도 즐길 수 없다.” 문장이 좋았지만 두 번째 독서에서는 그 위에 있는 먼 곳으로의 여행은 내게 익숙한 모든 것을 무로 만든다.” 문장이 눈길을 끌었다.

 

그는 “(20~22) 선택은 최악의 여건 중에 내가 견딜 수 있는 경우를 고르는 것이라고, “여행도 삶도 결국 선택이 포개진 결과이자, 그것이 옳았다는 것을 정당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증명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며 중요한 것은 무엇을 선택하는가가 아니라 어떤 기준을 세웠는지와 그에 따른 결과를 받아들이겠다는 각오라고 비장하게 말했지만, 독서 여행은 좀 다르다. 앎에 대한 희구와 증명에 매달리는 이도 있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찾고 발견하는 걸 그저 즐..는 행위일 때도 많다. 그래서 책을 읽는 걸 우리는 여행이라고도 말한다. 또한 다른 사람과 같은 책을 읽어도 우리는 자신만의 특..한 여행이고 싶어 한다. 책은 충분히 그렇게 해주었다.

 

책 초반엔 문장에 힘이 많이 들어가 있다. 뭔가 보여주겠다는 듯이. 꽉 찬 계획과 각오로 여행을 떠나듯이 말이다. 그러나 여행의 우여곡절 속에 지쳐가다 어느 순간 낯선 이국이 문득 친숙하게 느껴지고 마음이 풀어지듯이 그의 글도 점점 그러해진다. 바르셀로나에서 토마토소스를 빵에 바른 판 콘 토마테를 먹으며 글루탐산이 공통으로 들어 있는 토마토와 간장의 유사함을 생각하고 친숙한 기억과 고향을 음미하며 웃는다. “(84) 여행하싶다는 바람도 한 꺼풀 벗겨보면 웃고 싶은 마음에 다름없다고 말했듯 독서 여행도 그렇다. 깊은 밤에도 비바람 치는 날에도.

 

“(31) 여행이란, 예전에는 있었지만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그 무엇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그는 그러한 장소와 이야기들을 옮기려 애쓴다.

베를린 전봇대에서 켜켜이 쌓여 역사를 이루는 포스터, 한 민족의 영웅이면서도 소박한 거처 연못가에서 담배를 피우며 잉어 밥 주는 게 취미였던 호치민, 호퍼의 그림과는 대조적인 에드워드 호퍼와 조 호퍼의 돈독한 사랑, 러시아의 예르미타시 미술관을 명작으로 가득 채운 예카테리나 여제의 몰두, 고작 1년 머물렀지만 프랑스 어느 도시보다 루르마랭을 사랑한 카뮈가 아내 프랜신 카뮈와 묻힌 공동묘지, 루마니아를 한 번도 방문한 적 없으면서 드라큘라를 써 많은 이들이 브라쇼브 브란 성을 찾게 만든 소설가 브람 스토커, 애거사 크리스티 오리엔트 특급 살인의 배경이었지만 지금은 낙후된 이스탄불의 시르케지역, 바르샤바 쇼팽 벤치를 찾아 산보를 하며 에튀드가 흐르는 벤치에서 만든 추억, 어느 나라든 실체적 진실을 품고 있을 거 같아 찾아가는 시장과 골목, “(155) 어떤 가이드북도 알려주지 않는 진짜 삶과 역사가 담겨 있다고 생각해 여행지에서 사는 지도, 바로셀로나에서 그가 사지 않아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가 됐을 만년필에 대한 상상 등등.

 

일상을 특별한 여행처럼 여기려 하지만 그는 부인할 수 없다.

“(181) 가서 보지 못하면 영원히 깰 수 없었을지도 모를 내 안의 틀, 여행은 낯선 것을 우리 안에 받아들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189) 여행이란 떠나기 전의 설렘부터라는 말을 많이 한다. 그렇다면 일상으로 돌아온 후 추억을 떠올리는 일 역시 여행이라 부르지 못할 이유가 없다.라고 한 말처럼 이 책을 펼치며 독자들도 설렜을 것이다. 책을 덮고 여운을 즐긴다. 이제 이 책은 퇴근길에 들르는 단골집이나 여행 기념품처럼 남는다. 우리는 각자의 추억을 지닌 채 다른 여행을 꿈꾼다. 그 여행은 모두 다를 것이다. 어디 있든 굿 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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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8-04-01 00: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을 읽고 나니 정말 독서와 여행은 공통점이 많네요. 낯선 곳으로의 여행이 설레임을 주는 것처럼 새로운 책을 읽는다는 것 또한 기대감을 주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다른 한 편으로 항상 여행만 갈 수 없기에 대부분의 삶을 일상에서 보내는 것처럼, 우리 삶에 주도적인 책들은 ‘인생의 책‘이라할 몇몇 권인것 같기도 하구요^^:)

AgalmA 2018-04-01 00:43   좋아요 1 | URL
그래서 제가 이렇게 책욕심이 많고, 1일 1그림, 1일 1사진 등등 온갖 여행을 하고 싶어하는 게지요ㅎㅎ;

2018-04-01 02: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4-01 05: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북프리쿠키 2018-04-01 1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갈마님의 봄날을 응원합니다^^

AgalmA 2018-04-01 19:11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북프리쿠키님도 화사한 봄날 만끽하는 시간되시길/
 
굴드의 물고기 책
리처드 플래너건 지음, 유나영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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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물학자 닐 슈빈은 인간 몸속에 물고기의 일부가 남아 있는 진화 흔적을 찾아냈다. 인체 해부 구조가 물고기와 유사하다는 이야기는 사실 놀라운 이야기는 아니다. RNA로 시작한 단세포 생명체가 DNA가 있는 다세포 생명체로 진화한 장구한 시간의 역사를 우리가 잘 모르면서도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이 더 놀라운 일이다. 내 눈이, 내 손가락이 처음 어떻게 생겨났는지도 모르면서 인간의 권리와 나라는 주체의 고귀함을 의기양양해 하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 순간에도 생명은 또 탄생하고 있을 것이다
  
관광객에게 사기나 치며 하루하루를 임시변통으로 살아온 시드 해밋은 그리 멀지 않았던 19세기 초 기결수이자 예술가였던 윌리엄 뷜로 굴드(빌리 굴드)가 남긴 물고기 책을 우연히 발견한다. 해밋은 그 기록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이곳 인간의 역사가 끝없이 환생하고 있는 이상한 기적을 본다. 끔찍할 정도로 뒤죽박죽인 물고기 책은 굴드가 캥거루 피에서 얻어낸 붉은 잉크, 훔친 보석에서 얻어낸 파란 잉크, 성게에서 얻어낸 자주색 잉크로 꿈처럼 악몽처럼 써 내려간 기록이었다. 해밋은 색의 경이가 그가 속한 세계의 참상을 상쇄해주었을까?”생각했지만 우리가 이 소설에서 확인했듯이 그 색은 삶을 닮았고 담았을 뿐 어떤 해결과도 연결되지 못한다. 해밋은 이 책이 도서관에 전혀 다른 모습으로 한 권 더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도서관 책은 굴드가 비굴한 부역으로 그렸던 삽화만 담겨 있는 침묵과 가려진 역사의 권위라면, 해밋이 발견한 굴드 책은 죄수에게 금지된 것을 기어코 남기려 한 말과 폭로의 권위의 책이다그런데 해밋은 물고기 책을 잃어버린다. 필연적이게도 그 책은 사라져 버린다. 마치 물고기처럼 잽싸게. 과연 무엇이 기억이고 무엇이 계시이며 무엇이 역사인가. 광기 안에 진실이 있거나 진실 안에 광기가 있듯, 일체의 선도 일체의 악도 똑같이 불가피한 것이라는 듯 풀잎 해룡은 물속에서 우주를 헤엄치고 있는데
  

한 장의 그림, 한 권의 책은 기껏해야 한 채의 빈집으로 여러분을 초대하는 열린 문에 불과할 뿐, 일단 그 안에 들어가면 나머지 부분은 여러분 스스로가 최대한 만들어서 채워넣어야 한다. 내가 조금이라도 확신을 가지고 여러분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이라곤 여기서 일어난 일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 무슨 이유로, 이런 것은 분 바른 가발과 검은 법모를 쓴 판사들, 엉터리 비평가 부류에게는 그야말로 장황한 헛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죄의식, , 동기, 영감, 선악 따위를 누가 알며, 누가 신경이나 쓰겠는가?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이라곤, 구타와 만조를 번갈아 겪는 와중에 간수 팝조이가 등기소에서 빼돌린 싸구려 종이 몇 장을 가져다주고는 컨스터블풍의 목가적이고 행복한 풍경화유쾌한 건초 작업, 팝조이 자신과 똑같은 시골 바보들, 햇빛이 아른거리는 잉글랜드 시내를 건너는 우마차 따위가 등장하는, 판매하거나 다른 물건과 교환할 수 있는 회화를 그리라고 시켰다는 것뿐이다.”(p60~61)

당시 비천한 사생아의 삶이 으레 그랬듯 굴드도 이런저런 죄명에 세라섬으로 끌려온다. 떠돌이 생활을 하며 배웠던 미술 재능으로 선장의 애인을 위한 그림을, 세라섬 외과의사의 야심을 채워줄 물고기 삽화를, 섬을 통치하는 사령관의 치하를 꾸미는 여러 작업을 하지만 그가 예술에 대해 처음 느꼈던 것처럼 덧없는 작업이었다.

 

 

늦여름의 지독한 열기 속에서 사암으로 지은 온갖 흉측한 창고와 세관, 쇠사슬로 엮인 죄수들과 군인들이 득시글한 밴디스먼스랜드의 저 추레한 근대 세계에 도착하자, 나는 이 섬 북부의 수도로 취급되는 론서스턴의 마차 제조공 파머 밑에 배속되었다. 거기서 가문의 반짝이는 문장들을 마차에 그렸고, 구세계의 우스꽝스러운 제복을 차려입고 싶어하는 신세계의 사생아들을 위해 휘장을 고안했다. 뒷발로 일어선 사자, 상록 떡갈나무, 피에 젖은 손, 영원히 우뚝 서 있을 검들이 별다른 이유도 없이 설명할 필요도 없이 마차 문짝 위에서 어수선하게 뒤섞였다. 수간으로 복역중인 한 아일랜드인 성직자가 작문해준 우스꽝스러운 라틴어 문구들, 과거에 악덕이었던 것이 지금은 예의다. 호바트를 보고 죽으라, 봄이라고 항상 꽃이 피는 건 아니다 같은 걸 그 아래 달고서 말이다. 이는 내가 최초로 얻은 값진 예술적 교훈이었다. 즉 식민지 예술이란 새것을 낡은 것으로, 미지의 것을 기지旣知의 것으로, 대척지(오스트레일리아)를 유럽으로, 경멸스러운 것을 존경스러운 것으로 만드는 희극적인 요령이다.”(p84~85) 

처음엔 살기 위해 굴드가 그리던 물고기는 서서히 만물에 대한 귀 기울임, 깨달음을 얻는 대상이 된다. 그의 그림을 보고 취하는 이들이 자기 식대로 감탄하고 취할망정.

내가 그린 것은 훈훈한 것, 행복한 것이 아니라 차가운 것, 추하고 무시무시하고 겁에 질린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내게 원한 것은 위안이었지만 이 그림은 절망이었다. 나는 잠재된 폭력도, 광기에 찬 환상도 포착해내지 못했다. 그들은 희망과 진보를 원했지만, 두렵게도 내가 본 것은 부루퉁하게 마주 응시하는별바라기(한국에서는 통구멍이라 부르는 어류)였다! 그들은 새로운 신을 원했지만, 나는 엄청난 혼돈 속에서 그들에게 물고기를 주었다!”(p192~193)
 
"그림을 끝내고 이제 탁자 위에 죽은 채로 놓인 불쌍한 쥐치를 보았을 때, 나는 물고기 한 마리가 죽을 때마다 그 피조물이 품은 사랑의 양만큼 세상이 줄어드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고기 한 마리가 그물에 끌려올라갈 때마다 세상에 감도는 경이와 아름다움도 그만큼 줄어드는 게 아닐까? 우리가 포획과 약탈과 살해를 계속한다면, 그래서 세상에 사랑과 경이와 아름다움이 점점 더 결핍된다면 결국에는 무엇이 남게 될까?“(p221)
 
"그토록 오랜 시간을 물고기와 함께 보내면서 그들의 차가운 눈과 떨리는 피부의 무언가가 공기 중을 거쳐 내 영혼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란 불가능해 보였다.“(p236) 

이 소설에서 묘사되는 죄수들의 비참한 삶, 터무니없는 철도역 건설이나 마작의 전당건설, 제국주의 시대 야비하고 잔인한 지배자들의 면모, 그 실상을 폭로하고 증언하려 한 이들의 기록, 굴절되어 남는 역사는 역사학을 공부하고 논픽션 집필에 주력했던 플래너건이 12년 뒤 쓴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과 맥이 닿는다.

그것은 그 모든 피물고기 눈깔의 피, 몸이 찢긴 반란 노예들의 피, 모레파의 못 박힌 어깨에서 철철 흐르던 피, 우리가 짚자리를 걷었을 때 기계 파괴범의 눈에 맺혀 있던 피였다. 또 그것은 나와 그들과 모두를 가두어놓은 이 깨진 세상에 대한 나 자신의 공포였다. 우스운 일이었지만, 그때는 이 모두가 잠시 하나로 묶여 죽어가는 한 마리 켈피(비늘돔의 일종)로서 존재한다는 것이 그리 우습게 느껴지지 않았다.”(p108)  

섬의 모든 기록이 담겨 있다는 비밀 장소 등기소를 우연히 발견한 굴드는 섬에 대한 모든 것이 날조된 것을 확인한다. 사령관이 호러스 대위로 사칭해 신분을 세탁하고 이 섬으로 흘러 들어와 사령관이 되고 토마스 드 퀸시가 사령관의 가족 앤 누나라고 사칭해 그를 농락한 것이 섬을 광기의 장소로 만든 것만큼 어이없었지만 기록으로 남는다면 그것이 사실이고 역사가 되는 걸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서류란 기억에 대한 신의 농담이자, 현재에 대한 해석 가운데 미래에 전해질 유일한 것이니까.“(p409)

“인생이란 역사화에서 관습적으로 묘사되는 식의 진보도 아니고, 적절한 순서에 따라서 열거되고 이해되는 사실의 연속도 아니다. 그것은 변형의 연속이다. 어떤 변형은 즉각적이고 충격적이며, 어떤 변형은 감지되지 않을 정도로 느리지만 너무나 철저하고 무시무시해서, 우리는 삶이 끝날 때쯤 노망든 자아와 어린 시절의 자아가 일치하는 순간을 찾아 기억을 헛되이 더듬게 된다.
세라섬에서 보낸 오랜 시간이 실은 무한히 느린 변형의 과정이었음을 내가 언제 처음 깨달았는지는 말할 수 없다."(p333)

“이야기꾼은 자기 삶의 심지를 이야기 불꽃에 태워버리는 사람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선량한 트리스트럼 샌디처럼 나는 누구의 규칙에도 얽매이지 않을 것이다. 내 그림 곁에 단어들의 모닥불을 지펴, 초라한 그림에 담긴 진실의 하찮은 순간이라도 비추는 말이라면 무엇이든지 할 것이다.”(p109)

굴드는 탈옥해 이 잘못됨을 바꿔줄 사람으로 섬의 반란자이자 혁명가로 여겨지는 맷 브레이디를 찾아 나선다. 천신만고 끝에 그가 찾아낸 것은 그것 또한 사람들이 꿈꾼 허상이라는 사실이었다. 다시 잡혀서 감옥으로 온 굴드는 이 세계를 진짜 뒤바꾸는 것은 한낱 인간이 아니라 세계 자체의 힘임을 목도한다. 그의 교수형을 코앞에 두고 불길이 식민지 전체를 덮친다.

“우리는 각자가 사는 다양한 세계의 연장으로만 불을 언급했을 뿐, 그것이 이 세계의 종말이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p396)

교수대에서 탈출한 굴드는 풀잎 해룡으로 변신한다. 전혀 이상하지 않다. 오랜 시간 동안 우리가 물고기에서 인간으로 진화했다면 왜 그 역은 되지 못하는가. 그것을 막는 것은 지금 우리의 직선적이고 합리만을 추구하는 시간관념뿐일 수도 있지 않을까. '먼먼 옛날에'로 시작하는 이야기로만 가능한 일일까. 

“그래서 이 두 가지. 이 둘을 나는 도저히 화합시키지 못하고, 그것이 내 몸을 둘로 찢어 놓는다. 세상이 너무나도 끔찍하다는 인식, 삶이 너무나 특별하다는 감각ㅡ이 두 가지 감정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사람이 물고기가 될 수 있을까? 나의 신비를, 이 질문을, 이 고통을, 이 선과 악을, 이 사랑과 증오를, 이 삶을 풀기 위해 이렇게 멀리까지 찾아온 그대 잠수부들이여, 나를 위해서 이것을 해결하고, 내 이야기를 헤아리고, 나를 이 삶과 결합시켜서, 이것이 내 본성의 불가분한 일부가 아니라고 말해달라ㅡ제발……”(p434)

그러나 역사의 서류철은 우주의 카오스만큼이나 이 모든 걸 뒤섞는다.

 

 

 

웬만해서 오타 지적 안 하는데요. 매우 중요한 오타가 있습니다.
p27 "1928년 그는 세라섬 유형지의 외과의사로부터, 아마도 과학 연구가 목적이었을 텐데, 이곳에서 잡히는 모든 어류를 그림으로 묘사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ㅡ 그때가 19세기 초라는 설정인데 “1928”말이 안 되죠. 굴드 사망 연도가 1831년이니 1828이 맞습니다.

 

이 환상적 이야기를 책 표지가 충분히 표현해주지 못하는 거 같아 제 그림으로 좀 바꿔 봤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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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입니다 무엇일까요 현대문학 핀 시리즈 시인선 2
이장욱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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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랐으면 좋았을 것을 안 기분이다. 마치 이 시처럼.


 

너의 마음을 읽었는데 / 그랬기 때문에 너와 멀어졌다. / 나의 잘못인가.”

(독심, 동물입니다 무엇일까요(2018))  

그의 첫 시집부터 오래된 독자이자 팬으로서 나는 그를 유령 산책자로 분류하며 읽고 있었다.

 

 "살아 있는 듯하지도 않지만 죽어있는 것도 아닌 듯한, 이 고장의 살벌한 아늑함에 대해 나는 지치고 넌더리를(중략)산책할 때마다의 발병. 나는 센치해진다.” (구토」)

이곳에서 모든 것은 / 단 하나의 소실점으로 완강하게 사라진다. (중략)전봇대 꼭대기에 겨우 제 집을 완성한 까치의 눈빛으로 보면 나와 당신은 비행기와 구름 사이에 피고 지는 희미한 풍경 같아서.” (객관적인 아침)

 

 내 잠 속의 모래산(2002)

갑자기 나타난 곳에서 / 갑자기 살아가는 것들이 있다 / 골목이 끝나면 펼쳐지는 / 오래된 신세계” (복화술사」)

나는 여행 중이고 자꾸 몸이 지워져” (여행자들」)

골목, 이라는 발음을 반복하자 서서히 골목이 사라진다” (나의 우울한 모던 보이)

나는 내 바깥에서 태어났다. (실종 )

 

정오의 희망곡(2006)

조금 덜 존재하는 밤, / 안개 속에서 뼈들이 꿈틀거린다 / 처음 보는 얼굴이 떠오른다 (뼈가 있는 자화상」)

누군가 쎈터링한 공이 정점에 도달하는 일요일. / 나는 어디까지가 나인가, / 힘껏 발을 뻗어보기도 하는. / 달려간다는 것에는 수많은 허공이 필요하다. / 근육질의 허공이”(우연을 위한 장소)

 

생년월일(2011)

나는 잠처럼 완전히 흩어지지 못하고 / 목적지처럼 자꾸 멀어지지 못하고 / 그저 조금 기울어진 채 // 이상한 마음으로 생활을 했다.”(튀어나온 곳」)

나는 천천히 표백되었다. 조금씩 모든 것이 되었다. 당신이 서 있는 바로 그곳에서”(표백 )

 

영원이 아니라서 가능한(2016)

 

나는 더 너머를 봐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답은 간단했다. 내가 그렇게 보고 싶었기 때문에. 그의 시에 왜 코끼리나 악어, 원숭이 같은 동물들이 난무하고 왜 모든 게 무너지면서 되돌아오는지 나는 본능적으로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나도 그렇게 세계를 보고 있기 때문에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가 설명하기 시작했다.

 

식물들은 대개 보이지 않는 통일된 전체를 환기하기 위해 우리 곁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동물들은 이에 반대한다. 동물들은 언제나 우리의 바깥에 있다. 동물들은 영원을 가르치지 않고 반대로 유한함과 필멸을 가르친다. 동물들은 개체성과 운동성과 생존 본능의 담지자들이다. 그들은 회귀하거나 반복하지 않는다. 그들은 사멸한다. 그들은 일회적인 종말을 향해 나아간다. 그들은 희로애락을, 오욕칠정을, 마침내 죽음의 불가피성을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듯하다. 개체성과 생존 본능에 압도된 동물들은 통일된 전체 같은 것을 알지 못한다. 다만 본능과 육체성과 타자성을 가르치기 위해 동물들은 인간의 시야로 들어온다. (중략)그러니 시인의 시는 동물원의 시가 아닐 수 없으며 동물원의 시는 인간사의 시를 뒤집고 누비고 돌려 보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에세이동물원의 시, 동물입니다 무엇일까요(2018))

 

그는 이 에세이 말미에 니체의 차라투스트라가 동물들 앞에서 영원회귀를 말하던 것을 언급한다. “만물은 흩어지고 만물은 다시 만난다. 존재의 수레바퀴는 영원히 자기 자신에게 충실하다.” 그러므로 세계와 동물들은 영원회귀 속에서 모든 영원을 부수며 일회적으로 살아가고 일회적으로 죽는다고 밝힌다. 그들은 죽음을 제 안에 이미 지니고 있어 두려울 것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세계관은 그 자신에게서 벌써 부조리하다. 인간과 동물을 끝없이 이종교배하며 상징과 비유의 시를 숱하게 써왔으면서 결론적으로 인간과 동물을 가른다. 동물들이 개체성과 생존 본능에 압도되어 있다는 그의 인식은 하이데거 사유-‘얼빠짐, 마비 상태 Benommenheit'-를 계승하고 있다. 동물성으로 긍정을 말하고 있지만 그 또한 니체의 사유 자장 안이다. 이렇게 사유를 습득하고 이어가면서 나 자신의 개체성을 얼마나 주장할 수 있는 걸까. 그들은 동물들도 자살한다는 걸 알고 있을까.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동물들에게서 나는 모든 존재들의 비밀스러운 통일성이 보이는데? 동물만이 아니라 세계의 모든 것들은 바깥이고 안이면서 연결된 채 가고 있는 거 같은데?

 

다시 한 번 몰랐으면 더 좋았을 거라고, 이건 다 내가 이 시집을 읽고 있는 꿈일 거라고 생각하고 싶다. 아니다. 차라리 잘 된 일이다. 우리 모두 산산조각 난 꿈에서 깨 다시 살고, 다시 시를 읽고 쓰는 시작인지도 모른다. 실패여도 뭐 어떤가. 어차피 우리가 혼자라면. 우리가 전체로 연결된 존재라면 누군가 대신 이 문제를 또 풀 테지. 그런데 이 모든 게 슬픈 건 어쩔 수 없군. 영원회귀와 시작이 이렇게 맞물려서. 

 

 

 

“끝나지 않는 것은 너무 쉬운 것이 아닌가?”(「종말론사무소의 일상 업무영원이 아니라서 가능한)

 

 

죽음은 방어선의 국경일까, 버리기 위한 결말일까.

 

 

 

※ 이 시집에 대한 내 별점은 그의 세계관과 사유에 대한 동의가 아니다. 그로 인해 내가 하게 된 사유 기회에 대한 일종의 보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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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8-03-06 13: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동물은 비교적 운동량이 많은 대신 식물보다 생명력이 짧은 것 같습니다. 굵고 짧게 사는 것과 가늘고 길게 사는 것에 다름은 있을 수 있어도, 우열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인간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AgalmA 2018-03-06 13:58   좋아요 1 | URL
이 시집에서 화자가 자신을 유물론자라고 하고 있는데요. 만물회귀를 말하고 다중우주 같은 시들을 보여주고 있지만 어쩐지 (당연히)제가 모르는 시인의 인식은 굉장히 유물론적인 게 아닐까... 말씀하신 대로 우열적인 그 가름도 좀 충격적이고 해서 .... 이 시집 읽고 굉장히 쓸쓸해졌어요 ...

겨울호랑이 2018-03-06 15:09   좋아요 1 | URL
흠.. 이제 드디어 AgalmA의 「1일 1그림 & 1시집」이 세상에 나올 때가 되었군요...

AgalmA 2018-03-07 06:12   좋아요 1 | URL
읭?...게...게을러서...^^; 나온다기 보다 제가 만들어야 가능할 거 같아서ㅎㅎ; 만들게 되면 겨울호랑이님은 5순위 안에 드는 분이죠^^ 물론 공짜로! ㅋㅋ

겨울호랑이 2018-03-07 08:22   좋아요 1 | URL
^^:) 4부 찍으실 계획이시군요 ㅋㅋ

2018-03-07 22: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3-07 22: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3-08 0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얼어붙은 바다
이언 맥과이어 지음, 정병선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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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 맥과이어는 수를 보여주면서 교묘했다.
1851년 작 허만 멜빌《모비 딕》의 후예임을 자처하듯 《얼어붙은 바다》가 펼쳐지는 시대는 1859년이다. 《모비 딕》의 주인공 이슈메일이 우울과 폭력성을 잠재우기 위해 ‘권총과 총알’ 대신 바다를 택했던 것처럼 《얼어붙은 바다》의 두 주인공 패트릭 섬너와 헨리 드랙스도 바다로 향한다. 이 두 주인공에게는 《모비 딕》의 인물들 특성이 고루 배합되어 있다. 외다리인 에이허브 선장의 특징과 삶에 회의적이지만 야만인 퀴퀘그와 우정을 나눌 줄 알았던 인간적인 이슈메일을 절묘하게 섞은 절름발이 패트릭 섬너, 이슈메일처럼 섬너도 포경선을 타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자기만의 삶의 법칙으로 사는 야만인 프로 작살수 퀴퀘그를 더 잔인하게 변형한 헨리 드랙스. 이 외에도 두 작품에서 겹치는 인물과 설정이 꽤 많다. 뱃사람치고 이상하게 양심적이고 자연계에 깊은 경외감을 가지고 있어 거친 바다에서의 쓸쓸한 생활 속에 미신에 경도되어 있던 일등항해사 ‘스타벅’(《모비 딕》)은 《얼어붙은 바다》의 작살수 오토와 닮았다. 피쿼드호에서 선원들의 장난과 유흥거리 취급받던 흑인 소년 ‘핍’이 바다에 빠져 죽는 첫 주검이었듯 드랙스에게 성폭행과 살해당한 소년 ‘조지프’는 볼런티어호의 첫 주검이었다. 《모비 딕》을 안 읽은 사람이라면 안 읽은 대로, 읽은 사람이라면 읽은 대로 유사함과 차이를 느끼며 《얼어붙은 바다》를 따라가게 된다. 책 속에서 펼쳐지는 추적과 같은 이 책의 매력은 무엇인지 한참 생각했다. 
실감 나는 고래잡이 현장을 압도하는 에이허브 선장의 모비 딕을 쫓는 기이한 집념이 《모비딕》 전체를 꿰뚫고 있었듯 《얼어붙은 바다》는 많은 포획으로 멸종되어 가는 고래와 함께 사양길에 접어든 포경 산업을 보여줌과 동시에 여러 인간 군상의 욕망과 남루한 밑바닥을 끝까지 쫓는다. 에이허브 선장이 모비딕에 대한 복수와 집착을 숨기면서도 드러내며 선원들을 착취하고 모두의 파멸을 자초했듯이 《얼어붙은 바다》의 인물들도 하나같이 그렇다. 보험 사기로 배를 침몰시킬 작당을 한 선주 백스터와 브라운리 선장은 각각 예상외의 실패와 어이없는 죽음을 겪는다. 그들의 음모 때문에 북극 빙하 속에 갇힌 선원들은 서로에 대한 증오와 살기 위한 협력을 저울질하며 악전고투한다. 섬너는 다리 부상을 입게 된 인도 전투에서 이미 이런 상황을 겪었다. 상관의 지시로 부대를 이탈해 보물을 찾아 나섰다가 동료들이 모두 죽고 자신만 살아왔는데, 군법회의에 회부되어 연금도 못 받고 쫓겨났고 방황하다 아편 중독까지 되었다. 그는 전장에서 자신을 구해준 소년을 구해주지 못했듯 볼런티어호 사환 소년 조지프도 구해주지 못한다. 뭍에서도 물에서도 여린 존재들은 살아남기 힘들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까. 헨리 드랙스와 패트릭 섬너의 대결은 선과 악의 대결이 아니다. 정도와 상대가 다를 뿐 그들도 이용할 수 있다면 최대한 이용하는 자들이다. 드랙스와 섬너의 중요한 차이는 나만 살아남겠다는 이기심의 정도 차이라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유유자적 배의 주치의 역할만 하려 했던 섬너는 약품을 몰래 취하긴 했지만 의료 행위까지 허투루 하진 않았다. 조지프의 심각한 상태를 보고 사태를 바로잡으려 노력도 했다. 인도 전투에서의 트라우마와 죄책감이 영향을 미쳤다 해도 피할 수 있는 상황을 피하지 않았다. 불명예제대를 하게 된 원인이자 기념품인 반지를 조난 당한 상황에서 모두를 위한 식량과 교환하기 주저하지 않았다. 자신과 신념이 다르지만 그를 돌봐준 성직자를 수술할 때도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 임했다. 고난과 시련을 스스로 자초했다 생각하면서도, 무슨 의미가 있어서 사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사실상 그는 최선을 다해 살았다. 돈이나 명예 같은 것들이 아니라 주어진 삶 자체에.《모비 딕》에서 이슈메일이 유일한 생존자였듯 《얼어붙은 바다》에서 섬너가 최후로 살아남은 이유는 그들이 매우 운 좋은 이들이었기 때문이라기보다 파도를 타듯 살았던 그들 삶의 기술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섬너가 탈출 끝에 만난 동물원 북극곰처럼 운도 어느 순간 다할지 모른다. 그는 사는 내내 도망 다녀야 할 악조건과 운명에 처해 있지 않은가. 《모비 딕》의 ‘이슈메일’ 이름은 구약성서 「창세기」 16장에 나오는 이스마엘에서 유래한다. 이스라엘인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하녀 하갈 사이에서 태어났으나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집에서 쫓아낸 인물이다. 그래서 ‘방랑자’, ‘세상에서 추방당한 자’라는 뜻을 지녔다. 세상에 태어난 이상 우리도 ‘이슈메일’ 이름의 뜻을 나눠가진 자들이다. 삶의 파도와 작살은 계속 날아들 것이고 배신의 모습이든 죽음의 모습이든 결국 우린 잡힐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두려움과 고독과 결핍을 이겨낼 의지를 끝없이 살려내야 한다. 모든 바다가 얼어붙기 전에. 모든 바다가 얼어붙더라도. 결국 패트릭 섬너를 거듭 살려냈던 건 운을 부르는 그러한 의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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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8-02-14 18: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즐겁고 행복한 설 명절 보내세요. ^^

AgalmA 2018-02-15 03:25   좋아요 1 | URL
전 일 땜에 설 지나 쉴 거 같아요ㅜㅜ...즐거운 연휴되시길/

겨울호랑이 2018-02-15 14: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리 주변의 상황이 절망적이더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결국 자신의 길을 가는 것 같네요... 어둠 속에서 빛을 그리기는 쉽지 않겠지만, 그렇에도 그러한 희망의 끈마저 놓는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겠지요... AgalmA님 하시는 일 잘 마무리 하시기 바랍니다. ^^:

AgalmA 2018-02-15 14:11   좋아요 1 | URL
나 자신을 사랑하고 반성하며 끌어주지 못한다면 세상 무엇에도 그러하지 못할 거라 생각합니다. 물론 자기애와 이기심은 구분되어야 겠지요.
겨울호랑이 님 말씀 들으니 에릭 호퍼 <길 위의 철학자>의 한 대목이 생각나네요.
˝자기기만이 없다면 희망은 존재할 수 없지만 용기는 사물을 이성적이고 있는 그대로 본다. 희망은 소멸할 수 있지만 용기는 호흡이 길다. 희망이 분출할 때는 어려운 일을 시작하는 것이 쉽지만, 그것을 마무리하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전쟁을 이기고, 대륙을 제압하고 나라를 세우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희망이 없는 상황에서 용기가 의지를 발휘할 수 있게 해줄 때 인간은 최고조에 달할 수 있다.˝
이 말이 전적으로 옳다고 생각되지 않지만, 희망과 용기가 함께 가야 한다는 데에는 동의합니다.

연휴 잘 보내세요 :)

겨울호랑이 2018-02-15 16:08   좋아요 1 | URL
^^: 그렇군요..다른 한 편으로는 상황에 따라 흔들림없이 살아가는 삶이 의도적으로 용기나 희망을 가지며 살아가는 것보다 더 바람직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물론 쉽지 않겠지만요.. AgalmA님께서도 행복한 설 연휴 되세요^^

AgalmA 2018-02-15 16:28   좋아요 1 | URL
저는 용기나 희망을 추상적 관념이나 판타지로 여기지 않습니다. 그것은 제 생각엔 삶의 자세이자 행동력에 더 가깝습니다. 언어가 우리 삶의 이해를 좌우하듯이 삶의 성찰과 행동도 그러한 것들의 바탕없이 모아지지 않습니다. 뇌과학이나 행동심리학이 그런 것들을 단순히 인간 생물의 작동방식으로 평가절하한다 해도 그것들은 이성과 결합해 기나긴 역사 속에서 늘 크게 작동했지요. 수많은 혁명과 지금의 metoo 운동만 봐도.
겨울호랑이 님이 말씀하시는 흔들리지 않는 삶은 어떻게 잡을 것인지요? 손잡이 없이 수레를 끌고 가겠다는 말씀같이 들렸습니다ㅎ? 서로 화두로 생각해 볼 일이네요^^;

겨울호랑이 2018-02-15 16:54   좋아요 1 | URL
흠... 저는 무엇인가 목적하거나 추구하는 것은 인위적인 부분이 강하기에 꾸준히 나가기 어렵다는 생각이 드네요. 행복한 삶, 용기있는 자세 등등.. 그런 부분은 쉽게 규정하기 어렵기도 하고 사람마다 다른 정의를 내릴 수 있기에 더 어려운 문제라 여겨지네요. 제가 말씀드린 ‘흔들리지 않는 삶‘이란 어떻게 해야한다는 당위의 문제라기보다는 그냥 일상의 문제라는 편이 더 잘 표현된 것 같아요. 배고플 때 먹고, 졸리면 자는 문제는 굳이 잡을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제 개인의 생각이고 사람마다 삶의 철학은 다를테니 정답은 없겠지요.. AgalmA님의 의견 역시 일리있다고 생각합니다.^^:

AgalmA 2018-02-15 18:59   좋아요 1 | URL
오늘도 일하고 낼도 일할 거라 제 심사가 참 편치 않은데요. 쉴 때 쉬지 못하고 잘 때 제대로 잘 수 없는 삶을 사는 제 선택을 탓하는 연속이죠. 그렇듯 우리 삶은 1:1 대응식으로 물흐르듯 산다기 보다 문제와 돌발 상황의 연속이고, 더더 복잡해지는 세상에서 우리는 자신을 잡아줄 의지와 자세가 지속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렇기에 사람들이 자기계발서나 이런저런 지침서를 읽으려는 것이기도 할 테고요. 의도에는 부정적인 혹은 긍정적인 모든 면이 있을 테지만 그 추동 자체는 본능에 가깝지 않나 생각합니다. 결과의 감당은 각자의 몫이 되겠죠. 다른 이들의 삶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선택이지 않길 바라지만 모두가 연결된 세상이라 참 만만치 않네요... 그래서 저는 이런저런 것에 휩쓸리지 않고 삶을 긍정하고 살아갈 수 있는 힘은 차라리 용기나 희망이지 않겠나 하는 것이죠.
생각을 정리해 볼 말씀 감사드립니다

겨울호랑이 2018-02-15 19: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각자의 삶속에서 자신만의 생각이 모여 개인의 철학이 되듯 AgalmA님의 말씀 또한 삶 속에서 나온 지혜라 여겨집니다. 자신의 삶을 보다 의미있게 보내기 위한 각자의 대처는 그런 면에서 다른 빛깔로 빛난다고 생각되네요. AgalmA님 연휴기간 기운내셔서 좋은 마무리 하시길 바랍니다.. 화이팅^^!

AgalmA 2018-02-16 04:09   좋아요 1 | URL
요며칠 ‘길 위의 철학자‘ 에릭 호퍼를 읽으니 평생 떠돌이 일용직 생활을 하면서도 이렇게 지성을 키워 나가며 자유로운 삶도 가능하구나 싶어 그가 참 존경스럽더군요. 말씀처럼 에릭 호퍼의 삶과 지혜는 그의 아포리즘에 단단히 녹아 있더군요. 울상 짓지 말고 좀 더 힘을 내야겠다 싶었습니다.
그런 차에 겨울호랑이 님과의 대화도 참 뜻 깊었습니다! 거듭 감사드려요🙏

2018-02-15 21: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2-16 04: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2-16 08: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18-02-15 22: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AgalmA님, 즐거운 설연휴 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AgalmA 2018-02-16 14:14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도 설연휴 맛난 거 많이 드시고 즐거운 시간 보내시길요^^
새해 복 1 플러스 1 되시길 바라며 :)

2018-02-23 17: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2-25 18:2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