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음악 하나 걸어놓고 시작하자.

 

 

 

 

Oddarrang ㅡThe Sage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까. 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악령》처럼  머릿속을 가득 휘젓는 책을 만났을 땐 떠오르는 질문부터 풀어나가면 쉽다. 나는 평소 완벽한 형식에 얽매이지 말자는 주의다. 보여주기에 매달리는 형식보다 재미라는 내 만족을 추구하며 형식은 내 필요에 의해서 탄생한다.《죄와 벌》,《악령》도 전면적인 개작을 했고 모든 사람을 다 만족시킨 게 아니라는 걸 유념할 것.

 

서재 친구가 재밌는 책 추천을 바라길래 칼비노와 도선생이 실망시키지 않는 실비 보험 같은 책 아니겠느냐고 추천한 김에 마침 도착한 이 책을 읽었다. 원래 도선생의 후기 5대 장편 《죄와 벌》-《백치》-《악령》-《미성년》-《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을 순서대로 읽을 계획이었지만 나는 늘 (필요의) 즉흥성에 더 끌리지. 이 선택은 느슨하고 엉성하며 논리적 인과성이 결여된 듯한 구성을 취해 다소 광란적인 글쓰기로 지적받는 도스토예프스키를 읽는 독자 다운 자세 중 하나 아니겠는가.

 

유발 하라리 《호모 데우스》를 읽고 나서 나는 연계되면서 질문을 확장시켜 줄 책을 바랐는데 이 책을 읽게 돼 좋았다. 결론부터 말하면 《악령》은 유발 하라리의 두 책《사피엔스》와《호모 데우스》의 주요 논점, 신이라는 허구, 자유의지, 인간이 물리적으로 변화될 가능성에 대해서 앞서 많은 걸 말하고 있었다.

 

 

 

"어떤 민족도……." 그는 줄을 따라 마치 책 읽는 것처럼 말을 시작하면서, 동시에 계속해서 스따브로긴을 위협적으로 바라보았다. "어떤 민족도 아직 과학과 이성을 기반으로 해서 건설된 적은 없었다. 그런 예는, 오직 어리석음 때문에 한순간 그렇게 된 것을 제외하면, 단 한 번도 없었다. 사회주의는 그 본질상 벌써 무신론이 되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바로 첫 줄부터 사회주의무신론적인 기반을 갖고 있으며 오직 과학과 이성의 뿌리 위에서 건설될 생각이라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이성과 과학은 민족들의 삶에서 언제나, 지금도, 창세기에도 오로지 부차적이고 보조적인 의무만을 수행해 왔다. 민족들은 명령하고 지배하는 어떤 힘에 의하여 대열을 정비해서 움직이지만, 그것의 기원은 알려지지도, 설명되지도 않았다. 이 힘은 끝에까지 이르려는 채울 길 없는 소망의 힘이며, 동시에 그 끝을 부정하는 힘이다. 그건 자신의 존재를 지칠 줄 모르고 끊임없이 확신시키려는 힘이고 죽음을 부정하려는 힘이다. 성서에서 말하듯, 삶의 정신은〔살아 있는 물의 강〕이며, 묵시록에서는 그것이 마를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철학자들은 미학적 근원을 얘기하면서 그것을 도덕적 근원과 동일시한다. 난 그걸 무엇보다도 더 간단하게신의 추구〕라고 부르고자 한다. 민족의 모든 움직임의 유일한 목표는, 어떤 민족이건, 그 존재의 시기가 언제건, 오직 신의 추구, 틀림없는 자기 민족만의 신의 추구이며, 그리고 그 신을 진실한 유일한 것으로 믿는 것이다. 신은 민족의 시작부터 끝까지 취해진 민족 전체의 종합적인 인격이다. 아직까지 모든 민족, 혹은 많은 민족에게 있어서 하나의 공통 신이 있었던 적은 없었고, 언제나 제각각의 민족마다 개별적인 신이 있어 왔다. 여러 신들이 단일한 공통의 신으로 통합되면 그건 민족성이 파괴된다는 징후이다. 여러 신들이 단일한 공통의 신으로 통합되면 신들과 그들에 대한 믿음은 바로 그 민족과 함께 죽어 간다. 민족이 강할수록 그 민족의 신은 더 특별해진다. 종교를 가지지 못한 민족, 즉 선악의 개념이 없는 민족은 결코 없었다. 모든 민족은 선악에 대한 자신들만의 개념을 갖고 있고, 또 자신들만의 선악을 갖고 있다. 많은 민족들이 선악에 대한 공통의 개념을 갖기 시작하면, 민족들은 죽어 가고 그때는 선과 악 사이의 차이조차도 지워지고 사라지게 된다. 이성은 결코 선악을 정의할 힘이 없고, 근사치로도 그 둘을 구별할 힘조차 없다. 오히려, 언제나 치욕적이고 애처롭게 혼동을 해왔고, 과학은 주먹구구식의 해결책만을 내놓았다. 이것은 특히, 페스트나 기아, 전쟁보다도 더 고약하고 금세기 이전까지는 알려지지도 않는 가장 섬뜩한 채찍인 반(半)과학의 특징이 되어 왔다. 반과학ㅡ 이것은 지금까지 그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폭군인 것이다. 자신의 사제들과 노예들을 가진 폭군, 그 폭군 앞에 한결같이 지금까지 생각도 할 수 없었던 사랑과 미신으로 경배하고, 심지어 과학조차도 그 앞에서 전율하고 수치스럽게 그를 묵인한다. 이 모든 것이 당신 자신의 말입니다. 스따브로긴, 오직 반과학에 관한 말만 제외하고. 이건 내 말이죠. 나 자신이 반과학이고, 그런 까닭에 내가 그걸 유난히 증오하니까요. 당신의 사상, 당신의 말에서 아무것도, 심지어 단어 하나도 바꾸지 않았습니다."

"글쎄요, 바꾸지 않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데요." 스따브로긴이 조심스럽게 지적했다. "당신은 열정적으로 받아들였고, 눈치도 못 채면서 열정적으로 바꾸었습니다. 당신이 신이라는 것을 민족성의 가장 단순한 속성으로 끌어내리고 있다는 하나만으로도 벌써……."

그는 갑자기 유난히 강한 주의를 기울여서 샤또프를 예의 주시했는데, 그의 말을 예의 주시한다기보다는 샤또프라는 인간을 예의 주시했다.

"신을 민족성의 속성으로 낮춘다고요?" 샤또프가 소리쳤다.

"오히려, 민족을 신으로까지 끌어올리는 겁니다. 언제건 그렇지 않았던 적이 있었던가요? 민족, 이것은 신의 육신입니다. 모든 민족은 자신의 특수한 신을 갖고 있으면서 어떤 화해도 하지 않고 세계의 다른 모든 신들을 배제하는 동안만, 오직 그때까지만 민족입니다. 즉, 자신의 신으로 승리하고 나머지 모든 신들을 세계에서 쫓아낼 거라고 믿는 그 순간에만. 창세기부터 모든 사람들은 적어도 조금이나마 두드러졌으며, 인류의 선두에 서 있었던 위대한 민족들은 모두 그렇게 믿어 왔습니다. 이 사실에 반박할 수 없죠. 유대인들은 오직 진정한 신을 기다리기 위해서 살아왔고 세계에 진정한 신을 남겨 주었습니다. 그리스인들은 자연을 신격화했으며 세계에 자신의 종교를, 다시 말해서 철학과 예술을 남겨 주었습니다. 프랑스는 그 기나긴 역사가 지속되는 동안 내내 로마 신의 관념의 현현이었고 발전에 불과했지만, 그 프랑스가 드디어 자신의 그 로마 신을 심연 속으로 던져 버리고서, 당분간 그들 사이에서 사회주의라고 불리는 무신론으로 몰두하게 되었고, 그건 어쨌거나 오직 무신론이 로마 가톨릭보다는 더 건강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위대한 민족이 자기 민족 속에만(그것도 다름아니라 배타적으로, 오직 자기 민족 하나 속에만) 진리가 있다는 걸 믿지 않는다면, 그 민족만이 자신의 진실로써 모든 사람들을 부활시키고 구원할 능력이 있으며 그런 소명을 부여받았다는 걸 믿지 않는다면, 그 민족은 그 즉시 위대한 민족이 되기를 멈추고, 그 즉시 위대한 민족이 아니라 인종 지리학적인 물질로 변해 버립니다. 진정으로 위대한 민족은 결코 인류에서 2차적인 역할을 하는 걸로 타협할 수 없고, 심지어 1차적이 역할만으로도 만족할 수 없으며, 반드시 배타적으로 첫 번째 역할을 수행하는 것만으로 타협할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을 잃어버린 민족은 이미 더 이상 민족이 아닙니다. 하지만 진실은 하나고, 따라서 나머지 민족들은 자신만의 특수하고 위대한 신들을 갖겠지만, 민족들 중에서 유일한 민족만이 진실한 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신의 잉태자〕인 유일한 민족, 바로 이 민족이 러시아 민족이고, 그리고…그리고……  그리고 정말, 정말, 당신은 나를 그따위 바보로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스따브로긴."


범슬라브주의자 샤또프와 무신론자 스따브로긴의 대화

 

 

 

"어쩌겠어요. 모든 사람은 좀 더 좋은 곳을 추구하게 마련인걸요. 물고기는 ……  다시 말해 모든 사람은 일종의 안락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전부 다 그래요. 굉장히 오래전부터 알려진 일이죠."

"네 놈이 안락이라고 말한 거냐?"

"뭐, 말을 가지고서 논쟁을 해야 하다니."

"아냐, 너 말 한번 잘했다. 안락이라고 해두지. 신은 필수 불가결한 거야. 필수 불가결하기 때문에 존재해야만 하지."

"그래, 멋지군요."

"그러나 난 신이라는 것이 있지도 않으며, 있을 수도 없다는 걸 알고 있어."

"그쪽이 더 그럴듯하군요."

"정말로 네놈은, 이런 두 사상을 가진 인간이라면 계속 살아갈 수 없다는 걸 모르겠어?"

"자살해야 된다, 이건가요?"

"정말로 네놈은 오직 이것 때문에 자살할 수 있다는 건 모른단 말이야? 수십억이나 되는 네놈 같은 인간들 중에 단 한 사람이라도 그렇게 살기를 원하지도 않고 그걸 참을 수도 없는 그런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걸 네놈은 이해하지 못하는 거야."


(중략)

 

"난 모든 사람들이 여전히 살아남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 늘 놀라웠어." 끼릴로프에게 그의 지적 따윈 들리지도 않았다.

"음, 뭐 당신 말이 맞을 수도 있겠네요. 관념상으로는 그렇지만…… ."

"이 원숭이야, 네 놈은 나를 복종시키려고 맞장구를 치고 있지. 입 닥쳐. 네놈은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할 테니까. 신이 없다면, 내가 신이야."

"내가 당신한테서 절대 이해할 수 없었던 게 바로 그 사항이라니까요. 왜 당신이 신이 되는 겁니까?"

"신이 있다면, 모든 것이 그의 의지이고 난 그의 의지에서 벗어날 수 없어. 없다면, 모든 것이 나의 의지이고 난 자의지(自意志)를 천명해야 할 의무가 있어."

"자의지라고요? 그리고 왜 그럴 의무가 있는 거죠?"

"왜냐하면 모든 것이 나의 의지가 되었으니까. 정말이지, 이 지구상에서 신을 끝장내고 자의지에 대한 확신을 갖고서, 가장 완전한 지점에서 자의지를 천명할 용기 있는 자가 아무도 없는 것일까? 이런 가난한 사람이 유산을 받고 깜짝 놀란 나머지, 자기 자신은 이런 걸 소유하기엔 너무 박약하다고 생각하여 감히 자루 곁에 다가가지도 못하는 것과 같아. 난 자의지를 천명하고 싶어. 혼자라도 좋아. 그러나 해낼 거야."


무정부주의자 뾰뜨르와 무신론자 끼릴로프의 대화


 

 

"당신은 아마도 당신 자신을 보고서 판단하시는 거지요?"

"모든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 따라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빨갛게 달아오르면서 말했다. "사느냐 죽느냐는 것이 아무래도 좋게 되었을 때, 그때야 완전한 자유가 있게 될 겁니다. 바로 그것이 모든 것의 목표지요."

"목표라고요? 하지만 만약 그렇다면, 아무도 사는 걸 원치 않을 게 아닙니까?"

"그렇죠, 아무도."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인간은 삶을 사랑하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제가 이해하는 바로는 그래요." 내가 말했다. "자연은 그렇게 명령했으니까요."

"그건 비열합니다. 바로 거기에 모든 기만이 있는 겁니다!" 그의 눈이 번득였다. "삶은 고통이고 삶은 공포며 인간은 불행합니다. 지금은 모든 것이 고통이고 공포입니다. 지금 인간은 고통과 공포를 사랑하기 때문에 삶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왔지요. 지금 삶은 고통과 공포의 대가로 주어진 것이며, 바로 여기에 모든 기만이 있는 겁니다. 지금 인간은 아직 그 인간이 아닙니다. 행복하고 오만한 새로운 인간이 나타날 겁니다. 고통과 공포를 극복하는 사람, 바로 그 사람이 신이 되는 겁니다. 그러면 그 신은 존재하지 않게 되는 거죠."

"그렇다면, 당신의 생각에 따르면 그 신은 존재하는 겁니까?"

"그 신은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합니다. 돌 자체에는 고통이 없지만 돌에서 비롯된 공포 속에는 고통이 있습니다. 신은 죽음의 공포에서 오는 고통입니다. 고통과 공포를 극복하는 사람, 그 사람이 직접 신이 될 겁니다. 그때는 새로운 삶이, 그때는 새로운 삶이, 그때는 새로운 인간이, 모든 것이 새롭게…… 그때는 역사가 두 부분으로 나누어지게 될 겁니다. 고릴라에서 신의 파괴 이전까지, 신의 파괴에서부터…… ."

"고릴라 이전까지인가요?"

"……지구와 인간의 물리적인 변화 이전까지. 인간은 신이 되면서 물리적으로 변화될 겁니다. 그리고 세계도 변화되고 사건들도 변화되며, 사상과 모든 감정들도 변화될 겁니다. 그때는 인간도 물리적으로 변화되지 않겠습니까,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느냐 죽느냐가 아무래도 좋다면 모두들 자살을 할 테고, 바로 그런 것이 어쩌면 변화일 수 있겠죠."

"그건 아무래도 좋습니다. 기만을 죽이는 겁니다. 지고의 자유를 원하는 사람은 모두 감히 자살을 할 수 있어야 하는 겁니다. 감히 자살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기만의 비밀을 알게 된 것입니다. 더 이상은 자유가 없습니다. 바로 여기에 모든 것이 있고, 더 이상은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감히 자신을 죽일 수 있는 사람, 바로 그가 신입니다. 이제 모든 사람들은 신이 존재하지 않도록,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도록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아무도, 단 한 번도 그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수백만의 자살자들이 있었는데도요."

"하지만 한결같이 그것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한결같이 공포를 안고서 행한 것이지, 그것을 위해서는 아니었습니다. 공포를 죽이기 위해서서가 아니었다는 얘기지요. 오직 공포를 죽이기 위해서 자살하는 사람만이 즉각 신이 되는 겁니다."

"잘 안 될 겁니다, 아마도." 내가 말했다.   

 

합리주의자 안톤과 人神 사상의 허무주의자 끼릴로프의 대화

 

 비가 오려 하는군. 음악 하나를 더 걸자.  

 

Thrupence - Conversations (feat. Edward Vanzet)

 

 

등장인물 이름과 조사를 제외하면 이 책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헛소리"다. 그에 버금가게 많이 나오는 단어는 "광기", "기만" 등이 있다. 서로에게 헛소리라고 악을 쓰는 이 소설 속 인물들은 대부분 광기와 허위와 기만에 빠져 있다. 소설이라는 장르가 허구라는 헛소리 성격이 있고,《악령》이 1인칭 관찰자 시점과 전지적 시점을 번갈아가며 이야기를 진행하는 형식이며, 위 대화 인용을 봐도 알겠지만 인물들이 도선생의 관념적 캐릭터라는 점에서도 이건 정말이지 헛소리 카니발이다. 지금 내 헛소리는 좋은 뜻에서 썼다-ㅅ-; 

 

러시아 사상가 S. N. 불가꼬프가 작품 평론 속에서 밝힌 통찰처럼 《악령》은 출간 사반세기 후 일어난 러시아 혁명을 예견한 듯한 정치적 혁명의 혼란과 내용이 아니라 정신적인 본질을 다룬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처음 도선생은 '위대한 죄인의 생애'라는 작품 구상 중에 ㅡ 급진적 모임 속에서 사상 전환을 이유로 탈퇴하려던 회원을 네차예프가 살해한ㅡ〔네차예프 사건〕을 접하고 그것을 플롯으로 한 무정부주의자들의 희극적인 한판 소동으로 집필할 계획이었다. 이 줄기는 샤또프 - 뾰뜨르 휘하 5인조 이야기로 전개된다. 그러나 뾰뜨르가 아닌 '위대한 죄인'으로 스따브로긴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소설 구조가 바뀌게 되면서 정치극에서 심리적이고 형이상학적 비극으로 변모했고 19세기 리얼리즘 정통 소설과 다른 특이한 소설이 탄생하게 됐다.

귀엽지만 삶에 무한히 게을러서 학자라고 부르기도 뭐한 스쩨빤 뜨로피모비치의 다음 말은 당시 사회의 정신성을 보여준다. "도대체 이건 뭣 때문인 거요, 내 한마디 하리다. 이 모든 절망적인 사회주의자들과 공산주의자들이 동시에, 그토록 대단한 구두쇠이며 치부에 눈이 어두운 자본주의자인 건 도대체 뭣 때문인가요? 그가 철저한 사회주의자일수록,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 철저한 자본가가 되는데 도대체 뭣 때문에 그런 걸까요? 이것도 또한 예민한 감수성 때문이 아닐까요?" 스쩨빤은 스따브로긴의 유년 시절 가정 교사로 그에게 우수(toska, 비애와 슬픔과 고뇌를 포함한 복잡한 감각)의 정신성을 안겨준 인물이다.

 

이 소설의 모든 인물, 모든 사건들은 스따브로긴과 (위치적으로나 오염 정도로나) 방사선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대부분 스따브로긴의 외모와 재력, 귀족적 분위기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한다. 악행에서도 오스카 와일드의 미남 악마 도리언 그레이보다 한수 위다. 이를 간파한 뾰뜨르가 스따브로긴을 조직에 이용하고 싶어하지만 호락호락하지 않다. 내가 《악령》에서 본 가장 대비되는 기둥은 악-욕망에 대한 열광(스따브로긴, 뾰뜨르)과 신-관념에 대한 열광(끼릴로프, 샤또프)이다. 영화 《검은 사제들》에서 강동원이 악령이 든 돼지를 들고 한강으로 달려가던 장면으로 재현되기도 한 '루가의 복음서'는 이 소설에서 중요한 상징이다. 특히 허무주의와 무신론이라는 관념-악령에 먹혀버린 돼지로 묘사된 스따브로긴과 끼릴로프는 아이러니하게도 이 소설에서 가장 흥미롭고 카리스마 넘치는 인물로 눈길을 끈다. 끼릴로프는 신을 부정한다기보다 '부재' 자로 판단해 신의 자리에 인간을 둬 결과적으로 신이라는 관념에 사로잡힌 채 광인으로 종말을 맞는다. 끼릴로프가 순수한 허무로써 극복하려 했다면 스따브로긴은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음에도 악행의 허무 속에서 파멸한다.

 

광신을 대표하는 샤또프와 무신을 대표하는 끼릴로프가 관념과 애증이 뒤섞인 불가분의 관계로 옴짝달싹 못하고 현실에 못 박힌 존재라면(이들은 함께 아메리카 모험을 했고 뾰뜨르의 조직에 가담해 음모에 빠졌으며 서로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면서도 한집에 살며 같은 날 죽음을 맞는다), 사회를 파괴하는 악인 뾰뜨르와 타인을 파괴하는 악인 스따브로긴도 상반되는 성격임에도 현실을 돌아다니며 들쑤시는 존재라는 점에서 쌍을 이룬다. 모두 도선생의 특징들을 가진 분열적인 캐릭터들이다. 이 이야기에서 아무런 해도 벌도 받지 않고 살아남는 건 뾰뜨르가 유일하다. 뾰뜨르가 사회악, 스따브로긴이 개인악을 상징한다고 볼 때 뾰뜨르라는 존재는 이 세상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았고 않을 것이란 상징성으로 짐작된다.

 

여기서 잠깐, 라디미르 나보코프《악령》을 반복해서 읽어도 재밌다고 말했다.

일전에 나는 도선생과 나보코프의 관련성을 분석한 바 있다.(http://blog.aladin.co.kr/durepos/8815151)

 

 

 

 

 

《악령》을 읽으며 10살 소녀 마뜨료샤와 스따브로긴의 일화에서 나보코프가 《롤리타》의 모티프를 얻었을 거란 의심을 지우기 어렵다. 그리고 도선생 작품 속 악행 연대기에서도 많은 영향을 받았으리라. 도선생 《악령》에서 뚜르게녜프, 셰익스피어 등의 영향을 느낄 수 있듯이. 스따브로긴의 여성 버전이라 할 수 있는 리자가 스따브로긴에게 희롱당하고 군중 폭력 속에 진흙탕에 처박혀 죽음에 이르게 되는 광경에서 오필리아가 햄릿에게 버림받고 연못 속에 빠져 죽는 장면이 스쳐가는 걸 막을 수 없었다. 읽어보면 알겠지만《악령》은 셰익스피어 비극과도 견줄 만하다. 강렬하고 다양한 캐릭터들과 비극적인 스토리 때문에 읽는 내내 연극을 보는 기분이다. 

 

 상트 페떼르부르크 말리 극장 로비, 《악령》연극을 형상화한 작품

[출처: http://press.sac.or.kr/_press/000-2004/2004%20gull/200306%20mally%20theatre.htm]

 

 

 

 

 

 

 도선생은 뚜르게네프 아버지와 아들을 염두에 두고 《악령》을 구상했다고 한다. 이상주의자인 스쩨빤과 무정부주의자 뾰뜨르는 부자지간인데 어수룩한 광대와 교활한 마귀로 대조적이다. 아들을 버렸던 구세대 스쩨빤의 시련은 당연할 수밖에 없고 아버지와 결별한 세대인 뾰뜨르의 거침없음도 일견 이해된다.

그러나 뾰뜨르와 스따브로긴의 문제점은 타인과의 불화라든지 어떤 갈등에 있지 않고 보다 본질적인 데 있다. 그들을 통해 자유의지와 마찬가지로 강조되는 인간의 큰 특징을 생각하게 되는데 그들에겐 반성적 사고’가 없다. 뾰뜨르는 아예 없고, 스따브로긴은 그것을 계속 기만하고 부정한다. 뾰뜨르와 함께 사회 위협과 샤또프 살해에 참여한 5인조(럄신, 비르긴스끼, 리뿌찐, 똘까첸코, 쉬갈료프)가 체포되고 각각 반성적 사고를 거치는 인간적 모습과는 확연히 다르다.. 이 이해 불가능한 인간의 상태를 도선생은 최종적인 "악령"으로 본 게 아닌가 싶다.

 

 

 

 

The Acid - Red (Official Audio)

 

 

 

 

 

 

좀 더 쓸까.... 뭔가 떠오르면 또.

 

 

 

 


덧)

열린책 도선생 전집 중 《악령》 번역은 김연경 씨가 했는데, 번역과 특히 해설이 좋았다. 《죄와 벌》,《까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김연경 씨 번역은 민음사에서 나왔기 때문에 민음사 판으로도 꼭 읽어야 될 것으로 사료됨~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양철나무꾼 2017-05-23 17: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금 이상태로도 충분히 좋고,
게속 수정을 하셔도 좋을 것을 장담하면서어~‘좋아요‘ 빵~!

AgalmA 2017-05-24 01:51   좋아요 0 | URL
나혼자 골머리 분석 아닌가 몰라요ㅎㅎ 응원 감사요^--^

페크pek0501 2017-05-23 22: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좋아요를 이미 빵 했어요.

저도 덧붙이면서 계속 쓰는 페이퍼를 구상한 바 있습니다. 날이 갈수록 길어지는 페이퍼를요.ㅋ
이 방법, 신선해 좋습니다.

오래전, 두꺼운 책으로 ‘죄와 벌‘을 읽고 도선생이 천재라고 생각했죠.
‘지하생활자의 수기‘(이건 그리 두껍지 않음)를 읽고 역시 경이로운 작가라는 데 한 표 던졌죠. 몇 번이고 반복해 읽었던
몇 군데가 지금도 생각납니다.

이젠 세 권짜리 작품은 읽을 엄두를 못 냅니다.

AgalmA 2017-05-24 11:34   좋아요 1 | URL
해설 보니 도선생 소설에 있어서《지하로부터의 수기》는 중요한 분수령이더군요. 이 저작 이후에 씌어진 모든 장편소설은 否定과 부정적 인물들을 그려내는데 집중하게 되었다고요. 일명 ‘지하인‘들이라고 할. 《악령》은 후기 소설 중에서 그 부정성의 밀도는 좀 떨어지지만 스따브로긴은 부정의 극단을 가장 잘 보여준 인물이라고. 이 인물 정말 매력적.

도선생 후기 장편소설은 다 2권 이상이라 부담스럽긴 하죠ㅎ; 열린책은 자간도 촘촘해서 더 압박되는 느낌입니다;;;
《악령》 읽었으니 3권짜리는 이제《카라마조프 형제들》만 남았네요. 저번에 1권만 읽고 끝나서ㅎ;; 저도 이번에 재도전이요.ㅎㅎ

북다이제스터 2017-05-23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극과극은 통한다고 하던데요.
유발 하라리와 토스토옙스키는 상극 아닌가요?^^

AgalmA 2017-05-24 02:27   좋아요 1 | URL
아까 뉴스보니 E.H. 카 《역사란 무엇인가》˝우연이라고 취급된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다˝ 말을 인용하더군요.
˝필연은 우연의 옷을 입고 온다˝고도. 상극이라 생각하는 건 우리 각자 판단 범주이고, 그 연결들-필연을 보는 것은 역사가나 소설가나 일반 대중이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

레삭매냐 2017-05-24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끼 선생 책들은 예전 열린책들 도끼 전집
으로 하나둘씩 컬렉션하고 있지만 정작
읽은 건 <죄와 벌> 하나 뿐인 것 같아요.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도 읽다 말고...

AgalmA 2017-05-24 12:02   좋아요 0 | URL
레삭매냐님은 도끼선생으로 부르시는군요^^
도선생 책은 처음에서 한 100 페이지까지 진입장벽이 힘들어서 그렇지 어느 정도 읽다 보면 폭 빠져 읽게 되는 거 같아요^^ 인물도 많은데 생소한데다 길고 헷갈리는 이름ㅡ 따로 부르는 애칭, 약칭도 넘 많고; ㅡ때문에 매번 괴롭습니다ㅎㅎ;;


저도 2권 이상 넘어가는 장편은 피해서 읽다가 이래선 안 되겠다 싶더군요; 배울 게 많은 작가라 힘들어도 5대 장편은 반드시 다 읽으려고요^^

겨울호랑이 2017-05-26 0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서양문화에 있어 ‘신 god ‘문제는 빼놓을 수가 없군요. 수학과 철학에서만 나오는 줄 알았는데 심지어는 문학의 주요 소재가... 신의 존재가 모든 서양문화의 주제가 될 정도로 중요한지는 모르겠네요...

AgalmA 2017-05-27 02:29   좋아요 2 | URL
니체는 도선생을 자신이 무언가 배울 수 있었던 단 한 사람의 심리학자라고 했죠. 도선생이 작품에서 꾸준히 논의하는 무신론, 인신사상, 허무주의는 니체에게 대단히 고무적이었을 겁니다.
프로이트에게도 도선생은 인간의 심리에 대해 많은 자료가 되었죠. 문학은 인간 정신의 보고니까요.
그리스 신화부터 해서 가톨릭, 기독교 등 서양 문화는 신을 중심으로 움직여왔죠. 바흐부터 해서 서양 대부분의 음악, 건축, 예술도 종교가 주요 소재죠. 역사를 들여다보면 그들의 종교가 어떻게 세상을 움직여 왔는지 겨울호랑이님도 느끼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종교 전쟁 뿐 아니라 선교를 목적으로 타국에 들어가는 흐름을 봐도. 초창기 미국 이민자들도 종교 때문에 그리 넘어간 거 아닙니까.
시오니즘, 슬라브주의, 이슬람... 그들의 선민사상은 신없음 애초에 말이 안 되죠.
서양의 언어 발달도 종교 영향이 매우 컸죠. 인쇄술의 발달로 가장 널리 퍼져 나간 출판물은 성서입니다. 현재까지 가장 많이 팔린 책도 성서입니다.
종교는 모든 생산-소비에 대단한 주재료였죠.
걸작이라 일컬어지는 대부분의 작품들은 신-종교적인 걸 다루죠. 영웅담쯤으로 알고 있는「돈키호테」조차 결말은 돈키호테가 그간의 모험을 인간의 어리석음이었다고 고해성사하고 신에게 귀의하는 걸로 끝나요. 이 결말이 제게 얼마나 큰 충격을 줬는지...
근대 이후 자아, 인권이 크게 대두되면서 신과 인간의 대결로 확대되긴 했지만,
이성의 산물처럼 여겨지는 진화론, 과학조차 여전히 가장 큰 적은 신, 종교적 믿음 아니던가요? 아인슈타인조차 신을 믿었잖아요.
알면 알수록 인간은 나약합니다. 자신을 지탱해 줄 무언가를 본능적으로 찾죠. 신 없는 허무를 우리는 너무도 극복하기 어려워 합니다. 돈으로는 현실적 만족밖에 얻지 못하니까요. 오죽하면 위안을 얻기 위해 면죄부를 살 생각까지 했겠어요. 종교의 세속화라는 걸 알면서도 십일조로 여전히 남아있죠.
이 모든 우울한 상황은 우리 관념이 원흉이죠. 수학과 철학, 예술이 거기서 나왔다고 해도.
이렇게 말하는 저야말로 참으로 허무주의자인지도요.

겨울호랑이 2017-05-26 10:49   좋아요 1 | URL
^^: AgalmA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에 동의합니다. 한편으로, 세계에 있는 여러 문명 중에서 인도-유럽문명에서 나타나는 신중심(神中心) 문화는 여러 가지를 생각나게 합니다. 하늘의 뜻을 그대로 받아들이는가와 하늘의 존재를 의심하는가의 차이로 나타나는 ‘신 존재‘ 문제는 쉽기도 하고 어렵기도 한 문제라는 생각이 드네요.^^:

북다이제스터 2017-05-26 20:52   좋아요 0 | URL
AgalmA 님, 십일조가 면죄부라니 좀 쎈 표현 아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