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먹는 사람들
로맹 가리 지음, 이선희 옮김 / 마음산책 / 2015년 3월
평점 :
품절


정복자들과 식민 역사 속에 가난하고 무지하기 이를 데 없는 아즈텍 문명 부족 출신 알마요는 악마에게 영혼을 팔고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인디언 독재자가 된다. 악마에게 영혼? 낯익은 설정이다. 로맹 가리는 괴테 파우스트를 염두에 두었다고 했으며, ‘파우스트가 지닌 진정한 비극은 그가 자신의 영혼을 악마에게 팔았다는 점이 아니라 실제로 영혼을 살 악마가 없었다는 점, 그는 악마를 만나지 못했고 영혼을 팔 수도 없었기 때문에 절망한 채 죽었다고 설명한다.’ 로맹 가리는 판타지적 악마가 아니라 현실에 실제하는 악마적 요소들을 적절한 비유와 비판의식으로 보여준다. 알마요가 파국으로 치달으며 하는 다음 생각이 이 소설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갈증은 언제나 우리 곁에 없는 근원의 것을 보게 한다. 요컨대, 아마도 이승은 인간들의 것이고 여기엔 다른 누구도, 강력한 힘도, 신비도 없는 곳일지 모른다. 세상은 빈 정어리 통조림으로, 미국의 설비들로, 코카콜라로 만들어졌을지도 모른다. 세상은 아마도 미국의 잉여 군사 용품들을 풀어놓는 거대한 물류 창고일지도 모른다. 스페인인들은 언제나 거짓말을 하고, 신부들 또한 거짓말을 했을 것이다. 또 선도 악도 없으며 신도 악마도 없을 것이고 진정한, 전지전능한 재능도 없을 것이며 오로지 미국의 잉여 물자를 처리하는 거대한 공간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그는 믿었다.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목적이 분명한 이상주의 장교들과 대학생들이 신이나 악마의 도움 없이 놀라울 정도로 손쉽게 그의 정부를 전복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 그의 적들은 그가 냉소적이라고 자주 비난을 했지만, 그는 이 말에 대해 해명을 해왔다. 그는 냉소적이지 않았다. 냉소적인 사람들은 젊은 장교들이나 대학생들이었다. 그들은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 단지 사람들을 믿을 뿐이다.

지식인들, 엘리트들은 등 위에서 그를 별을 먹는 사람이라고 불렀다. 그것은 쿠혼족 출신임을 빗대어 붙인 말로, 그가 태어난 열대 계곡에서는 마스탈라 혹은 마스칼이라 하고 산속에서는 콜라라고 불리는 식물을 마약처럼 복용하는 인디언들을 의미한다. 인디언들에게는 달리 입안에 넣고 씹을 만한 게 없다. 마스탈라는 그들을 행복하게 해주었고, 기운을 불어넣었으며, 그들 나름으로 신을 볼 수 있게 하고, 자기들 눈으로 보다 나은 세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게끔 해주었다. 알마요의 적들은 그렇게 해서 그에게 모욕감을 주려고 했다. 그들은 별을 먹는 사람들이라는 명칭이 상처를 주는 경멸적인 말이라고 여기면서도, 자기들은 메스칼이나 콜라가 아닌 다른 마약을 하고 있다. 그들 스스로의 재능으로 혹은 사람들의 힘으로, 그들이 문명이라 부르는 것으로, 문화전당을 가지고 마약을 한다. 이제는 온 지구를 덮고 있어서 달로 가져가기도 하는 미국의 잉여 물자를 가지고서, 쓰레기를 쏟아낼 수 있는 새로운 장소를 찾기 위해서 마약을 한다. 그들은 인디언보다 더 많이 마약을 한다. 그들도 마약 없인 살아갈 수 없고, 환영 속에서 전지전능한 우주의 주인을 본다. 그는 깊은 증오심에 사로잡혀 주먹을 쥐었다. 원형경기장 속에 갑자기 다시 들어가 있는 기분이 들었다. 웃음소리와 야유 속에 파묻혀 다시 한 번 쓰러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알마요는 클럽〔엘 세뇨르〕(인디언 부족들이 악마를 부르는 호칭)를 통해 악마적 재능으로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초인을 찾지만 실패한다. 알마요를 둘러싼 인물들은 현실의 우리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재능을 키우려 애쓰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자신이 가장 믿는 신념을 사실 가장 의심하면서 삶에서 늘 놀라운 쇼를 펼치길 바라지만 잘 안 되는 것처럼 그들은 예외 없이 모두 광대이며 인간이다. 누군가는 끝을 보게 되고 누군가는 새로운 시작을 꿈꾸게 되는 시간들이 겹치고 떠난다.

마지막 대사가 멋진 피날레를 장식하며 무대가 끝났다

 

죽음이 뭔가요?” 꼭두각시 올레 옌슨이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재능이 없다는 것, 바로 그거야.”

 

 

 

덧)

심각한 주제를 무겁지 않으면서 흥미진진하게 끌고 가는 로맹 가리, 공쿠르 상 두 번 받으실 만 하다능! 

 

상담받은 정신과 의사의 설명에 따르면 성인이 되어서도 유아기가 지속되는 전형적인 경우, 경이로움을 향한 유아기의 잔재인지, 정신분석학이 그것을 치유할 수 있을지 물어보았다. 의사는 그 점에 대해 지극히 당황스러워했지만 찰리 쿤은 인간 영혼의 욕구들 가운데 정당한 것도 있고, 그 도중에 길을 달리하는 것이 있음을 이해했다.

성공한 갱스터는 언제나 특별한 사람으로 보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특별하게 보이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성공이다. 알마요라는 사람의 물리적 영향은 그가 처한 상황 때문이 아니다. 정글에서 맨발에 긴 칼을 손에 든 그를 만난다면 마찬가지로 충격적이면서 어느 정도 신화적인 인상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 그는 만족스럽게 그 요란한 소리를 듣고 있었다. 사랑받는다는 것은 불행을 자초한다.

범죄 안에는 형이상학적 욕망의 실추를 의미하는 허무주의가 있었다. 심지어 즉흥적으로 일을 벌이는 도적들한테도, 어떤 사람의 목에 아무렇지도 않게 총알을 박는다든지 실실 웃으면서 목을 벨 때에도 ‘인간은 아무것도 아니다, 대수롭지 않다, 아무도 없다’는 의식이 어느 정도 들어간 신념 같은 것이 우선 필요하기 마련이다. 라데츠키는 자기 시대의 가장 위대한 모험가들을 여러 명 알고 있었다. 악의 힘과 폭력에 대한 그들의 깊은 믿음은 언제나 라데츠키를 매우 유쾌하게 해주었다. 학살이라든지 잔인함, ‘권력’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일정량의 순진함이 필요하다.

.... 그래서 안 될 이유도 없겠지. 트루히요는 베개 밑에 추잡한 마스코트를 넣어두고 한 번도 꺼내지 않았다. 뒤발리에는 아이티의 보두 神을 자청하고 전국에 그의 초상화를 걸어두고 제례를 진행했다. 히틀러는 점성술사에게 의견을 물었고, 과테말라의 후엔테스는 한창 닭을 숭배하는 의식 중에 아르벤스 부하들의 손에 쓰러졌다.

인디언 농부들이 자기네 운명, 착취와 부당함, 스페인 계층, 군대와 경찰 엘리트 조직의 손에 굳게 결탁되어 있는 모든 부패를 잊기 위해서 끊임없이 테오나나카틀(멕시코 인디언들이 먹는 환각성 버섯), 페요테, 올롤리우키(멕시코산 메꽃과 덩굴성 식물, 종교의식에서 환각제로 사용)에서 추출한 마스탈라, ‘별’을 씹으며 바보가 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누가 진짜 주인인지 알아볼 수 없는 그런 잘못된 장소에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가치 있는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서라면 언제나 무슨 일이든 다 했다. 신은 오로지 하늘에만 계시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재능을 인정받아 얻은 권력의 정상에서 느끼는 평온함 그리고 수년간의 성공적 행보 이후에는 뭔가가 잘못 돌아갔고, 뭘 해도,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도 소용이 없었다. 그가 내놓는 모든 담보물, 끊이지 않는 모든 노력이 무시당하는 것처럼 보였다. 요컨대 그가 충분히 사악하지 못해서, 충분히 잔인하지 않아서일지도 몰랐다.

그들은 멀리 떨어져 무시되고 잊히길 원했다. 새로 건설한 도로는 그들만의 세계의 종말, 이번엔 기계와 엔지니어와 전기를 들고 찾아온 새로운 콘키스타도르들을 의미했다. 그들이 끊임없이 기다려온 고대의 신들에게 되돌아가는 건 이런 도로들을 통해서가 아니다. 전화와 도로는 경찰과 통제와 세금 징수원과 군대를 의미했다.

영혼이 없는 인간들이라는 이유로 사제들이 인디언을 개처럼 다루었듯, 정복자들이 자부심과 자존심을 빼앗아 간 것은 그들이 별 볼 일 없음을 반증하는 것이었다.

화장실 청소부나 사장, 종업원이나 접대원들은 나이를 먹어도 기자들이 찾아오면 젊었을 적에 보았던 신기에 가까운 묘기에 대해 점점 더 확신을 가지고 묘사를 할 것이다. 거꾸로 생각해보면 그들이 진정한 기적을 만들 것이다. 잭에게 신화적인 성격까지 부여하면서 계속 과장을 할 것이다. 영원히 존재할 전설이 탄생하는 것이다.

사람들한테 믿지 말라고 하는 건 그의 일이 아니었다. 반대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별을 먹은 사람들의 입안에 뭔가를 넣어주는 게 그의 일이다. 사람들의 믿음과 희망과 쉽게 믿어버리는 마음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음을 느꼈다.

"이 사람이 중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나? 좋은 사람이야?" 그때 그는 넥타이를 풀어헤치고, 눈은 잠을 못 자서 벌겋게 되어 탁자 위로 두 팔꿈치를 무겁게 내리누르면서 라데츠키에게 물었다.

"이상주의자입니다. 아주 아름답게 중요한 별들을 향해 높은 곳으로 눈을 들어 올려서 자기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려고도 하지 않는 사람이에요. 그는 자신을 생각하지 않아요, 인류만을 생각하지요. Sprechen Sie deutsch, Herr Baron?(독일어 할 줄 아세요, 헤르 남작님?)"

"이상주의자가 뭐요?" 알마요가 물었다.

"세상은 자기에게 그다지 좋은 곳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빌어먹을 인간입니다."

사실 그는 자기들이 생존할 확률이 여기 진을 치며 명령을 내리는 장교들의 이상주의와 교육과 교양의 정도에 직접적으로 비례하는지 계산했다. 그들이 단호하게 결단을 내리고 완전 정치화되어서, 전적으로 현실만을 본다면 주저하지 않고 총을 쏘아댈 것이고 그러면 도망자들은 끝장나는 것이다. 반대로, 감정이 한껏 고양되어서 인간 생명을 존중하고, 고귀하고 낭만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다시 말해서 인도적인 성향이 그들의 정치적 이념보다 더 강력하다면, 그때는 총을 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또한 젊은 혁명가들이 권력을 공고히 하고 그것을 지속할 가능성이 정확하게 어느 정도 되는지 계산할 방법이 있다고 판단했다. 단지 젊은 여자와 몇몇 부인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지금 발사하기를 거부한다면, 인도적인 나약함과 생명에 대한 그리고 그들 자신의 위엄에 대한 존중을 표현한다면 그들은 이제 의심의 여지없이 전복되고 소탕되어 처형될 것이고 이 나라의 모든 것은 예전으로 돌아갈 것이다. 여자들과 아이들의 피 앞에서 주저하는 혁명은 실패로 돌아가게 되어 있다. 理想이 부족한 혁명이다.

독재자보다 더 나쁜 게 한 가지 있다면, 그것은 실추한 독재자였다.

자기 역할에 충실한 배우들과 자기 쇼에 충실한 광대들이 무대에서 사라지면, 그제야 연극에는 진정성이 나타난다. 그건 나폴레옹과 마찬가지로 드골에게서도 사실이다. 아마 더 멀리, 수천 년 전 뮤직홀의 역사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바위 위에 올라선 앙투안 씨의 길고 검은 윤곽이, 별이 가득한 하늘을 배경으로 뚜렷이 드러났다. 빠르고 규칙적으로 팔을 움직였다. 앙투안 씨는 곡예를 하고 있었다. 은색 공들이 달을 향해서 아주 높이 날아갔다. 앙투안 씨는 야심이 있는 사람이었다. 일곱, 여덟, 아홉, 열 개의 공이라고 목사가 세었다. 인간의 손으로 할 수 있는 아주 뛰어난 성과였지만, 수천 년 전부터 이어온 인간 재능의 온갖 발현을 굽어보는 저 수백만 개의 별에게는 도대체 그게 무슨 작용을 하는지 의문이었다.

"프랑스 사람들이란!" 그녀가 말했다. "항상 큰 말에 올라앉아 있지, 그것도 언제나 백마에. ‘인간적 삶’이란 말을 들으면 뭐 자기들이 그 말을 만든 것같이 그런단 말이야. 인간적 삶은 여기저기 다 있다고요. 사실 세상에는 인간적인 삶이 너무 많다고 생각해서 뭔가 좀 바꿨으면 하죠. 깨끗한 어떤 거랄까……."

심지어 애국적이면서 정화 작용을 하는 한껏 격앙된 분위기에서 자기 몸이 타는 냄새가 민중의 기쁨을 담은 첫 발의 폭죽에 섞이는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시신의 몰골은ㅡ한 폭군이 몰락하고 다른 폭군의 시대가 왔음을 축하하는 영원한 방식인 것이다ㅡ개조차도 그 옆에 다가오지 않을 그런 상태이리라.

결국, 이 세상에는 마술 같은 것이 있다고, 단 하나가 있다고 생각했다. 인간들은 모두 하늘로부터 각자 특별한 하나의 재능을 받는데 그것을 마음속에 아무렇게나 방치해두었다. 하지만 이제 그것이 마음속에서 깨어나 그가 여자를 바라볼 때마다 점점 커가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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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7-06-05 11: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로맹 가리 책들은 꾸준하게 사서 모으고
있는데 막상 읽은 책은 얼마 안되는 그런
느낌입니다.

AgalmA 2017-06-05 13:19   좋아요 0 | URL
예, 마음산책에서 나온 책이 상당하죠. 다른 데에서도 많이 나오고. 저도 따라가기 벅차네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