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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두 사람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5월
평점 :
절판
이 책이 잘 읽힌다는 게 과연 장점일까? 유능한 작가는 어디든 대입할 대답도 소설에 담고 있다. 단편 「옥수수와 나」에서 “쓰레기라도 잘 읽힐 수는 있는 거야.” 답을 찾아냈다. 이 책에 대한 내 견해도 그렇다는 뜻의 인용은 아니다. 잘 읽히긴 했는데 무엇을 잘 읽은 건지는 잘 모르겠다. 뭘 먹은 거 같긴 한데 입맛만 자꾸 다시고 있다.
우선 단편들의 배열이 맘에 들지 않는다. 가장 좋았던 「오직 두 사람」이 맨 앞에 있어서 점점 맛없는 부위로 넘어가는 기분이다. 작가가 밝힌 단편의 발표 순서에 따르면 「옥수수와 나」, 「슈트」, 「최은지와 박인수」, 「아이를 찾습니다」, 「인생의 원점」, 「신의 장난」, 「오직 두 사람」이다. 「옥수수와 나」, 「슈트」, 「최은지와 박인수」는 이 책에서도 순서대로 이어져 있고, 출판계 인물이 나온다는 공통점이 있다. 차라리 이 세 작품 먼저 읽고, 「신의 장난」, 「인생의 원점」, 「아이를 찾습니다」, 「오직 두 사람」 순서가 더 나을 거 같다. 아니면 「오직 두 사람」을 중간쯤에 읽어도 좋을 것이다. 냉면 계란 노른자를 먹는 취향에 따라 「오직 두 사람」을 읽으시라 당부하고 싶다.
사은품이던 [김영하 소설 A-Z] 책자에 맞춰 나도 [오직 두 사람 리뷰ㄱ-ㅎ]을 작성해 보았다.
ㄱ 관념, 계획 (「옥수수와 나」)
“그러는 너는? 그 관념을 어떻게 처리해?”
“나는 관념이 아니라 정액을 처리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소설가는 말이야. 현실적이어야 해.
철학이 이의를 제기한다.
“그게 과연 그렇게 간단할까? 너는 관념에서 출발해서 거기에서 사실의 살을 붙여가는 일을 하잖아. 아이디어에서 출발해 거기에 육체를 더하는. 그러니까 네가 뭐라고 떠들든 너 역시 관념을 먼저 처리해야 할 거야.”
“소설은 그런 게 아냐. 매우 육체적인 거야. 심장이 움직이면 마음은 복종해. 우리는 시인이나 평론가와 다른 몸을 갖고 있어. 문학계의 해병대, 육체노동자, 정육점 주인이야.”
“너의 그 확신이 나는 불길해.”
누가 철학자 아니랄까봐 냉소적이기는.
“살인 계획이라는 건 말야. 이민하고 비슷한 것 같아. 한번 그쪽으로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멈출 수가 없어.”
“범죄자와 작가는 비슷한 구석이 있다. 은밀히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실행에 옮긴다. 계획이 뻔하면 덜미를 잡힌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때로는 자기 꾀에 자기가 속는다는 점도 그렇지.”
일종의 메타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불륜과 느와르를 섞었고 소설가가 조현병으로 빠지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것이 뻔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자신을 옥수수라고 여기는 초현실성이 이 단편을 산뜻하게 해준다. 옥수수는 관념도 육체도 아니니까.
ㄴ/ㅈ/ㅅ 농담, 죽음, 신 (「슈트」)
“농담은 죽음의 공포를 처리하는 방식이라고 말한 것이 커트 보니것이었던가.”
“그는 어느새 탐정이 알려준 주소지 앞에 도착해 있었다. 아이폰에 받아둔 구글맵을 따라가니 실수가 없었다. 우주의 인공위성이 자신을 죽은 아버지에게로 인도했다고 생각하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여기에 신은 없다.” 우주 공간으로 올라간 유리 가가린이 말했었지. 신은 없지만 아버지는 있어. 위성의 눈으로 나를 보고 있지.”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아버지가 죽고 나서야 찾아갈 수 있게 된 지훈. 아버지 때문에 화가가 되지 못하고 시인이 되었는데, 아버지도 화가로 살아오지 못했다. 장르 문학 편집자이기도 한 지훈에 걸맞는 스토리가 펼쳐진다. 유머와 죽음을 잘 버무린 단편이다.
ㄷ X
ㄹ X
ㅁ 무지, 믿음 (「아이를 찾습니다」)
“무지는 인간을 암흑 속에 가둔다”
“우리가 네 배내옷에서 찾아낸 머리카락과 네 구강에서 긁어낸 세포에서 나온 유전자가 일치하면 그게 한 사람이라는 증거라는데, 우리는 그걸 믿어야 한다는데, 반드시 믿어야 한다는데, 그럴 수밖에 없다는데, 왜 우리 눈에 보이지를 않을까?”
아이를 유괴당한 한 가정이 파탄 지경에 이르러서야 아이가 돌아오게 된다. 불행에 너무 익숙했던 터라 내일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모두가 상처받았고 되돌릴 수 없다. 이 작품은 세월호 참사가 있었던 2014년 겨울에 발표되었다. 작가에게도 세월호는 여러 가지 삶의 경로가 되었다. 자세한 건 후기에서 읽어보시길.
ㅇ 아빠, 용서 (「오직 두 사람」)
(현주) "특히 현정이는 모든 면에서 논리적이고 명쾌하죠. 외국어 같았어요. 왜 외국어로 말을 하면 좀더 이성적이 된다잖아요. 아빠하고는 달라요. 저에게는 아빠가 모국어예요.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통한다는 느낌이 있어요.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에요. 그냥 운명 같은 거예요.”
(현정) “언니는 내가 아빠한테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는구나. 그런데 어쩌지? 내가 아빠를 버린 거야. 언니는 내가 아직도 아빠한테 사랑받지 못해서 괴로워하고 있다고 생각해? 아빠가 언니한테 준 거, 그게 사랑이야? 그리고 무슨 용서? 용서가 필요한 사람은 아빠야, 내가 아니라.”
가족 간의 이해는 점점 멀어져 결국 한국에서는 아빠와 현주, 뉴욕에서는 엄마와 현정 그렇게 두 사람씩의 어둠으로 커진다. 현주는 뉴욕으로 가 아빠와 담배 둘을 끊기도 하는데 결국 아빠에게 돌아간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현주는 어떤 혼자로 살아가게 될까. 관계의 이합집산이 잘 드러난 단편이다.
(오빠) “현주야,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는 말 있지? 이 말은 영 뒤집을 수가 없네. 뒤집어도 똑같아. ‘산 사람은 살아야지’가 돼.”
ㅊ 추문 (「최은지와 박인수」)
“그냥 감당해. 오욕이든 추문이든. 일단 그 덫에 걸리면 빠져나갈 방법이 없어. 인생이라는 법정에선 모두가 유죄야. 사형선고 받은 죄수가 하는 말이니까 새겨들어.”
문학 용어로 사건이라 불리는 그것은 현실에서 대체로 추문으로 불린다. 그것은 모든 인간을 재밌게 만든다. 자발적으로 미혼모가 되려는 최은지 때문에 주인공은 위선자가 되지 않으려 할수록 추문에 휩쓸린다. 불가항력으로 암 환자가 된 친구 박인수의 삶과 죽음을 통해 그는 위선에서 조금 탈출할 용기를 얻는다.
ㅋ X
ㅌ 탈출 (「신의 장난」)
“이게 정상적인 방 탈출 게임이에요?”
시대가 잘 느껴지는 소재다. 소재가 바로 답을 암시할 때가 있다. 탈출 못 하겠군 생각했는데 역시 탈출하지 못 했다. 책의 마지막 단편이었는데 무척 실망스러웠다.
ㅍ X
ㅂ/ㅎ 빚, 후회, 회귀 (「인생의 원점」)
“마음의 빚은 마음으로 갚는 것인가, 아니면 세상의 모든 것처럼 마음의 빚에도 값이 있어 돈으로 치를 수 있는 것인가. 알 수 없었다.”
“난 후회 안 해. 너를 다시 만나기 전까지의 삶은 잘 생각이 안 나는 간밤의 꿈 같아. 한밤중에 무슨 꿈을 꾸었든 아침에는 전날 밤에 잠든 곳에서 눈을 뜨잖아.”
“서진에게는 인아가 회귀할 원점이었으나 인아에게 서진은 인생이라는 힘겨운 등산길에서 만나게 되는 대피소와 같은 것이 아닐까.”
어릴 적 단짝이다가 성인이 되어 다시 만난 서진과 인아 사이엔 이젠 여러 사람이 얽혀 있다. 구타와 불륜과 자살과 살인과 반신불구… 이런 것들은 왜 항상 붙어 다닐까. 이런 것들을 지나고 나서 “인생의 새로운 원점”을 생각하는 건 진부하지만 인생은 또 대체로 그렇지 않던가.
"작가는 팩트를 확인하고 인용할 근거를 찾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이들을 대신하여 '잘 느끼는' 사람이 아니겠는가"라고 김영하 작가는 말했다. 그에게 더 많은 느낌과 새로운 원점들이 찾아오길 바란다. 독자들에게 찾아오지 말라고 해도 찾아가게.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 1회 보니 낸 책은 많은데 읽은 독자는 별로 없는 작가라며 자조하시던데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