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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 - 양장본
마크 해던 지음, 유은영 옮김 / 문학수첩 리틀북 / 2005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브루스 윌리스는 눈동자의 초점이 맞지 않는 작은 소년의 손을 잡고 어딘가로 급히 걸어가고 있다.
무언가에 쫒기는 듯 불안한 시선으로 움직이는 브루스의 복잡한 마음과는 달리 어린 소년은 세상을
바라보고 있지만, 그의 눈엔 그 어떤 편견이나 잣대없이 '공정한' 표정으로 평온에 잠겨 있다.
그 아이는 남들이 보지 못 하는 것을 본다. 그래서 도저히 알 수 없는 글자들로만 구성된 페이지에서
국가기밀 암호도 거뜬하게 건져내는 능력 때문에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12년 전 영화 <머큐리>의 한 장면이다.
나는 머리에 피가 막 마르기 시작할 무렵의 나이에 이 영화를 보았고, '자폐증' 혹은 '자폐아'란 단어를
나의 뇌 속에 각인시키게 된 계기가 되었었다. 사람들은 대게 자폐아를 볼 때 이런 시선을 던진다.
눈이 왜 저래?
어머, 바지에 오줌 쌌어.
아휴- 쟤는 왜 저렇게 소리 지르고 난리야.
사람 말을 안 듣네. 너 나 무시하니?
얘가 말하는 게 좀 이상해....
불쌍하다. 부모가 고생이 심하겠네.
뭐야, 그런 얘는 특수학교에 보내야죠!
글쎄요... 여기서는 일 못 할 것 같은데요...
그러나 내가 느꼈던 자폐아에 대한 정의로는,
특정 능력이 비범하게 발달한 아이
자폐아의 뜻이 뭘까. 스스로 자(自), 닫을 폐(閉)를 쓴 것이라면, 과연 이 표현이 올바로 지칭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스스로 안에 갇힌 아이' 혹은 '스스로를 안으로 닫은 아이'라니.
겉으로 보기에는 그러한 아이들이 마치, 세상과 단절하고 자기 세계 속에서만 사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그들의 부모를 제외한 수 많은 타인들 중 누구라도 선뜻 손을 내밀어 그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이는 몇이나 될까. 그저 동정하거나 기피하기만 하지는 않았는지.
자폐아들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능력은 대부분 뇌 영역 중 어느 한 부위가 유난히 발달한 데서 온다.
성장하면서 뇌 영역이 골고루 발달해야 하는데, 선천적 혹은 후천적 영향으로 그러지 못하게 된 것.
어떤 아이는 한 번 본 장면을 사진처럼 정확하게 기억해내는 능력이 있는가 하면, 어떤 아이는 수학
같이 복잡하고 논리적인 문제를 푸는 것에 탁월함을 발휘하기도 하며, 또 어떤 아이는 신기할 정도로
한 번 들었던 소리들을 기억해서 그대로 음악으로 연주하는 신공을 발휘하기도 하는 등 그들은 정말
어느 특정 부위만 발달해 있다. 그들의 그 놀라운 능력들은 가히 천재적이며 인간의 한계를 넘은 듯
해서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들의 그 '다름'을 그릇된 시선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이렇듯 능력을 끄집어낼 수 있게 도와주면
자폐아가 아닌 예술가가 될 수 있다. 나는 그들의 놀랍도록 뛰어난 능력을 볼 때 마다, 인간의 능력이
어디까지인지 혹은 뇌를 얼마만큼이나 활용할 수 있는지 보여주고자 하는 DNA의 '과시' 내지 신의
'알려주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책 주인공, 크리스토퍼는 소위 사람들이 말하는 자폐아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책을 중간 정도 읽을 때 까지 그가 자폐아란 사실, 특수학교에 다닌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 했었다. 화자가 '나'이고, 그 '나'는 주인공 크리스토퍼인데, 그의 시선으로 서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눈치를 진작에 못 챘느냐고? 당연하다. 우리가 '다르다'고 생각했던 그들도
우리와 전혀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외모에서, 행동에서, 말투에서 조금 특이해 보일지는
몰라도 감정을 느끼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단지 그들은 좋고 싫음이 다른 이들보다는 더 분명하며, 조금 더 생각의 표현을 하는데 있어 솔직할 뿐
이다. 그리고 우리보다 조금 많이 낯설은 것, 낯설은 사람, 낯설은 환경을 무서워할 뿐이다.
앞집, 시어즈 부인의 개인 '웰링턴'이 어느 날 밤에 쇠스랑에 찔려 죽었다.
크리스토퍼도 그 개를 좋아했기 때문에, 그는 개를 죽인 범인을 찾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까짓 개'
가 죽은 것에 무슨 그리 유난을 떠느냐는 반응을 보이지만 크리스토퍼에게는 개도 생명이고, 그 개도
원치 않는 죽음을 당하고 싶어하지 않았던 '친구'였다. 나는 그의 마음을 이해한다. 나라도 범인을 찾고
싶었을 것이다. 도대체 인간이 언제부터 다른 생물들보다 더 존중받는 우위에 선 생물이었던가?
인간은 단지 다른 동물보다 조금 더 영리할 뿐이다. 지구상 그 어떤 생물보다 월등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 우주에 인간들 뿐이다. 나는 그런 멍청한 사람들을 볼 때 마다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온다.
크리스토퍼는 자신을 탐정이라고 지칭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누가 개를 죽였는지 보았느냐고 탐문하고
다닌다. 그걸 안 아버지는 불같이 화를 내면서 '아무데나 코를 들이밀지마'라고 충고를 한다.
하지만 '개 탐정 놀이'에 즐거움을 맛본 크리스토퍼, 이 '수사 일기'를 책으로 만들겠다는 목표 아래 계속
조사를 해 나가고 그는 아주 생각하지도 못 했던 놀라운 사실을 만나게 된다.
모든 것은 '웰링턴을 죽인 범인이 누구인가'에서 시작한다.
한 아이의, 자폐아라는 '그저 남들보다 세상과 소통하는 법이 조금 느린, 그러나 어느 한 능력이 특출나게
발달한 아이'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은 환상적이거나 기괴하거나 이상한 것이 전혀 아니었다.
우리도 일상에서 흔히 보는 그런 것들이었다. 애정이 식어버려 서로 별거하는 부부, 친절하게 길을 가르쳐
주다가 난데없이 외계어를 하는 동네 아줌마(악,정말, 이 작가는 정말 엉뚱하다! [쾅! 지구에서 7만 광년]
이라는 책에서 외계인들이 사용하던 언어인 '고든 베넷'을 이 아줌마 입을 통해 내뱉게 했다! ㅡ.,ㅡ.......
만약 작가가 일부러 그런 것이라면, 그 유머러스함에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다,쯧), 다정한 선생님과 그렇
지 않은 선생님, 언성을 높이며 싸우는 부모님, 기차역의 경찰 아저씨, 좋아하는 음식과 싫어하는 음식들,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 그렇지 않은 사람들, 매일 보던 풍경, 난생 처음 보는 풍경, 자신의 안전을 신경쓰지
않고 도와주는 사람, 인심이 각박한 사람, 아름다운 밤, 정신없는 밤 등등.
다른가? 우리가 보고 느끼고 접하는 세상과 이 아이가 긴 여정 동안 접했던 것들과 차이점이 있는가?
영화 <제 8요일>에는 다운증후군의 남자가 나온다. 대체로 통통한 체격에 돼지 얼굴처럼 순한 표정을 가진
그들은 얼굴과 어눌한 언행 때문에 '장애인'의 딱지가 붙는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모자른 듯한' 그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왜?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자신에게 피해를 준 것도 없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자른 듯한' 그 얼굴 표정을 보면 웃던 얼굴이 싸해지면서 냉담해진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가 좋았다. '조지'가 상상 속에서 '마마'라는 노래를 부르는 멋쟁이 남자를 끄집어
내는 동화적이고 아름다운 장면이 좋았고, '아리'가 힘들어 할 때 따뜻하게 안아주면서 위로를 해주는
장면을 좋아했다. '조지'는 '아리'의 상처입은 영혼을 치료해주러 온 천사였다.
우리는 모두 어릴 때, '조지'와 같이 순수했으며 '크리스토퍼'처럼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아이들이었다.
거짓말을 하지 않고, 세상에 대한 편견을 갖지 않으며, 낯설은 사람이나 환경을 무서워하고, 좋아하는
것에만 놀랄 정도의 집중력과 집착을 가지는 것이 자폐증의 특징이라면 우리도 한 때는 다 '자폐아'였다.
안 그런가?
나는 사람들이 장애아나 자폐아 등을 보면서 싫은 내색을 하기 전에 스스로 자문해주기를 원한다.
어느 날 밤 죽은 것은 개, 웰링턴이 아니라 순수했던 우리 자신은 아니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