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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연결되어 있습니까 교양 100그램 10
고미숙 지음 / 창비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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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만의 방에 갇혀 먹방을 보고 자기 계발에 관한 영상과 노래를 듣고

사람들의 지혜를 엿보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게 됐다.

알고 싶은 타인의 생각도 검색을 통해 대충은 어림짐작하게 되었다.

이렇게 많은 정보가 넘쳐나고 쉽게 타인과 연결될 수 있는 스마트한 세상에서

왜 나는 자꾸 혼자가 되어가고 있다고 느끼는 걸까?

아니 혼자가 되어 가고 있는 걸까?


나쁜 관계는 정리해야 한다. 나쁜 관계에 안착하기 보다는 혼자가 낫다. 시절인연이다.

나를 설득할 수 있는 누군가의 말들이었다. 티브를 켜면 혼자서 아주 잘 살아가는 연예인들이 등장해 오늘 하루 혼자서 잘 먹고, 혼자서 잘 놀고, 혼자서 잘 견뎌냈다는 프로가 등장한다.

그들이 사는 삶은 아주 풍족해 보인다. 

하지만 그들이 그 하루를 혼자서 잘 보낼 수 있는 것은 타인과 공존하며 일하고 소통한 다른 

많은 날들이 있었기에 가능하다. 이 책을 읽으며 '고독'과 '고립'에 대해 잘못된 정의로 살아왔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고립되는 것을 고독이라 우기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은 비단 나 뿐만은 아닐 것 같다.


작년 12월 밤중에 뉴스를 보다가 눈을 비볐다. 계엄령이 내려졌다는 문구를 보고 이게 뭐지? 방송 사고인가 한참을 보다가 지인에게 문자를 보내니 무슨 장난을 치냐고 했다. 불안한 마음에 뉴스를 끄지 못하게 내내 봤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더 놀라웠던 것은 이름도 모르는 시민과 시민들이 그곳으로 달려가 소리를 내고 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연대를 보며 마음이 울컥했다. 내 마음의 한 구석도 이미 달려가 그들과 연대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 연결에서 희망을 보았다. 


이 책에서도 그 광장의 연대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아마 저자도 그때 희망을 보지 않았을까 우리는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이미 연결되고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준 사건이며 앞으로도 우리는 그렇게 손에 손을 잡고 고립을 벗어나 더 큰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이다.


저자는 우리가 세대를 넘어 서로 연결될 수 있는 방법으로 읽고, 쓰고, 말하기를 말하고 있다. 

하지만 독서량이 많지 않은 이 시대에 이것은 좀 어려운 일일 수도 있다. 독서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광장이 아니더라도 광장같은 곳에 나와 서로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하리라 본다. 그 양식이 다르더라도 우리의 추구미는 맞닿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에 대한 성찰을 하다보면 내 안에 무수한 타자들이 공존한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자연스럽게 ‘나‘를 넘어 타자, 타자에서 다시 인간 일반, 그리고 생명으로 나아가게 되는 거죠. 나라는 존재가 세계와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게 된다는 뜻입니다. -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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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눈 

 

김재훈 

 

가장 위험한 상처는 적막 속에서 태어난다 

총성이 울리고 
공중의 새가 통째로 떨어지는 밤에는 어떤 짐승이든
전속력이라는 말을 이해하지 

아름다운 옛 애인들은 항상 전속력으로 떠났고
아름답다는 말 속에는
숨 가뿐 동물들이 살고 있다 

숨:
한 아름다움이 다른 아름다움 속으로 파고드는 것
(당신은, 당신이 잠결에 스스로의 얼굴을 어루만지는 모습 본 적 있는지)
혹은
갑자기 열리는 하나의 상처,
구름들 

구름이 하나 흘러가고 

나는 구름에 취해 

감정, 
그리고 감정의 정치를 감정적으로 생각해본다 

입술을 물게 하는 어떤 감정은,,
生을 통째로 삼키거나 차라리 던져버리겠다는 생각을 불러일으키고
뭉쳐진 눈과 흙 속의 감자와 우리의 뿔을
동일한 각오로 단단하게 만들지 

무엇이든 상하게 하고 싶은 날이 있다 

몸통보다 커다란 뿔을 세우고 돌진하는 짐승들
마치 그 뿔이 부러지길 바라는 듯이 

하지만 누구도 다치지 않길 바라면서
그런 걸 정말 각오라 말해도 좋을까  

간신히 희미해지는 구름의 전속력
겨우 그만한 각오를 품고
내가 나를 뭉쳐 공중으로 던져버릴 수 있다면 
 

해 저무는 늦은 오후의 주택가에
아무도 모르게 검은 눈이 날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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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읍小邑을 추억함 

 

유홍준 

 

그해 봄날, 나와 함께
차에 치여 죽은 개를 뜯어 먹던 사내들은
안녕하신가
혹시나
차에 치인 개처럼
절뚝거리거나 신음 소리를 내뱉는 아이들을 낳진 않았는가
아직도 그때처럼 아내들을 패 닦으며 살진 않는가 

영업 끝난 동부이발관에서
포르노 테이프를 돌려 보던 사내들이여 

아직도 살아서 
개처럼
이 마을 저 마을 떠돌고 있진 않는가 

오늘도 개평 뜯어 막걸리 한 잔 허한 목구멍에 던져 넣으며
왕소금 몇 알로 서러운 몸뚱어리 염장을 하며 살고 있진 않는가 
그렇게 밥 대신 막걸리로 배를 채우며 살고 있진 않는가 

그해 봄날, 나와 함께
차에 치여 죽은 개를 삶아 먹던 사내들은 모두 안녕하신가 

빨간 이발소 의자에 앉아 들여다보던
포르노처럼 엉덩이를 들썩이며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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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문 

  손미 

 

 두 개의 달이 뜨자 언니의 서신이 왔다. 긴 머리카락이 말려 있는 양피지. 탕탕 썰자 아파 아파 꿈틀거리는 글자들. 
 어젯밤엔 몸에 찍힌 점마다 못을 박았다고, 쓰여 있다. 

 모소리가 있는 것들은 모두 화형당하는 저녁. 우리는 벽장에 갇혀 있었다. 언니는 달이 마려워 물혹을 싼다. 질퍽한 비명이 떠다니는 아름다운 광경을 보며 두 다리를 다림질한다. 우리의 뼈는 언제나 직선이었지. 빗자루처럼.
 곱슬곱슬 아버지 우리에겐 다른 살을 주세요.
 벽장 밖, 밥상이 엎어지는 궤도, 다양한 반찬이 정확한 무지갯빛 곡선으로 떨어지는 지점에서 

 언니는 벽장에 남고 나는 그 벽장에서 태어나기로 한다. 우리의 이름은 잃어버린 모서리. 이 얼마나 아름다운 먹잇감인가. 

 내 백 겹의 그림자로 벽장을 덮자 모서리를 짚고 일어선 아버지가 붙은 손가락으로 벽장을 눌렀다. 바스락거리며 꺼지는 둥근 물방울, 그 밑동에서 잠시 곧게 즙이 흘러나왔다. 

 곱슬곱슬 아버지가 기어 나온 곱슬곱슬 나를 보며 웃었다. 

 다시 두 개의 달이 뜨자 달 사이로 긴 머리카락이 삐져나왔다. 꿈틀거리는 글자들.
 뭉개지지 않는 몸에선 자꾸만 모서리가 자란다고, 쓰여 있다. 

 *블루문 : 중세에는 두 개의 달이 뜨면 마녀를 사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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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는  

 이시하 

 

 낡고 어두운 그림자를 제 발목에 묶고 생의 안쪽으로 타박타박 걸어들었을 테지 비에 젖은
 발목을 끌며 어린 날개를 무겁게 무겁게 퍼덕였을 테지, 가느다란 목덜미를 돌아 흐르는 제 절박한 울음소리를 자꾸자꾸 밀어냈을 테지 여물지 못한 발톱을 내려다보며 새는, 저 혼자 그만 부끄러웠을 테지, 그러다 또 울먹울먹도 했을 테지  

 어둠이 깊었으므로
 이제, 
 어린 새의 이야기를 해도 좋으리 

 나지막이 울음 잦아들던 어깨와 눈치껏 떨어내던 오래된 흉터들을 이제, 이야기해도 좋으리 잊혀져간 전설을 들려주듯,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린 낯설고 차가운 이국의 신화를 들려주듯 이제, 당신에게 어린 새를 이야기해도 좋으리 

 새는, 
 따스운 생의 아랫목에
 제 그림자를 누이고
 푸득푸득, 혼잣말을 했을 테지
 흥건하게 번지는 어둠을
 쓰윽, 닦아내기도 했을 테지 

 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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