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중기 청자 연구 이화연구총서 3
장남원 지음 / 혜안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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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 중기라 하면 주로 12세기 중반에서 13세기 중반까지를 일컫을 것이다. 이 시기 고려청자는 상감기술이 완성되고 조형기술이 극에 달하여 아름다운 비색이 완성되고 서긍의 '선화봉사고려도경'에 나타난 바와 같이 비색의 극찬이 나타나는 청자가 완성되는 시기이다. 이 논문은 장남원 님의 학위논문을 약간의 편집을 가하여 책으로 편찬한 것으로 고려 전성기 청자의 양식과 그 변화에 대해 많은 노력을 들여 추적하고 있다.

 

  다만 이 논문이 씌여진 시기가 2000년대 초반정도이고 그래서 최신의 발굴기물이나 소개기물이 부족한 편이며 또한 도편이나 인용된 기물의 수가 조금 부족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된다. 특히 사진자료가 좀 더 크고 대표적 양식이나 기물을 나타내는 도판을 더욱 상세히 실었다면 조금은 딱딱한 표현으로 고려청자를 따라가기보다는 쉬웠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통해 내가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우선 초기 순청자, 음각청자 중기 양각, 압출양각, 상감청자 후기 퇴화 및 상감기법의 퇴화 등으로 이해하던 도식적 인식의 오류를 깨닫게 되었다. 실제로 수많은 생활기물들은 장식이나 조형이 섬세하지 않고 따라서 대다수의 생활기물은 순청자와 무문청자가 전 시기에 생산되고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둘째는 상감청자의 본격적 제작이 다소 늦은 데 서긍의 고려도경이 씌여진 시기가 1123~4년인데 여기서도 상감기법이 언급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이 이후에야 상감기법이 도입된다고 하는 점이다. 아니면 사신으로서 접대받는 서긍이 접하지 못하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새로운 기법이 보편화되었다면 그가 접할 수 있었던 것이 더 상식적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상감청자의 제작시기가 다소 늦춰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셋째는 백자의 제작이다. 지금도 남아 있는 고려백자의 양이 적고 대체로 중국의 정요백자와의 교류로 고려의 자체제작한 백자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에서는 고려백자의 존재를 고려 중기 전 시기를 통해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로 사진 도판과 함께 더 자세한 설명이 아쉽다.

 

  우리가 지금 박물관에서 접하는 고려 청자는 그야말로 황실 사용을 목적으로 최상의 기술과 조형으로 구워낸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도판에 사용되고 인용된 청자나 도편 역시 대부분이 조질이고 또 완성도가 뛰어나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다. 이는 청자연구가 학위와 관련한 청자 조형 방식과 기법의 변화에 관심을 두고 있고 또한 요지별 청자 생산과 그 분포에 관심을 두고 있어서 조금은 초점이 벗어난 탓도 있다. 하지만 앞으로 이런 연구가 더 활발해져 아직 밝혀지지 않은 중국내 발굴청자나 일본내 발굴청자를 통해 한중일간 도자 교류와 그 양식의 교류 또한 더욱 수면 위로 드러나야만 고려 청자에 대한 더 폭넓고 깊은 이해가 가능하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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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막사발과 이도다완
정동주 지음 / 한길아트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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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의 막사발을 일본에서는 국보로 지정하여 매우 가치있게 대접한다. 그러나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이 다완에 대해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시대적 도자적 특성상 고려청자에서 백자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시기에 분청사기의 한 지류로서 만들어졌던 그릇이라고 알려졌을 뿐이다. 저자 정동주님은 이러한 정호다완의 뿌리와 그 이야기를 찾아 20여년간 차를 마시고 다기를 공부한 이력으로 이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이 한 권의 책으로 나는 일본에서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는 조선시대 다완이 어떤 구조와 빛깔, 그리고 형태와 모양을 가졌는지 조금 알게 되었다.

 

  우선 도판 사진이 매우 훌륭하고 뚜렷해서 눈공부는 잘 된다. 일본에서도 알현하기 힘든 귀한 그릇을 하나 하나 찾아다니거나 좋은 도판사진을 구해서 실은 정성만 하더라도 대단하다. 그래서 이 책만 보고도 정호다완과 조선다완에 대한 느낌을 뚜렷하게 지닐 수 있게 된다. 왜 조선에서는 한 때의 그릇에 불과했던 것에 일본의 문화는 생명력을 불어넣고 스토리를 가미해서 세계 최고의 그릇으로 만들었는지에 대해 이 책을 일본의 사무라이 문화와 함께 설명하고 있다.

 

  왜 '이도'라고 부르는 걸까? 저자는 1578년 10월 25일 [센노리큐 연보]에서 처음 이 명칭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깊은 우물'모양이어서 이도라고 한다는 설, 이도 와가사노가미라는 자가 임진왜란 때 출병했다가 막사발을 모아 일본으로 가져갔다는 설, 우리 나라 경상도 지명에서 유래되었다는 설 등이 있지만 저자는 일본인이 이름을 지을 때는 출생지의 특성이나 츨생할 때의 환경을 지닌 상황에 따라 정한다는 이유를 들어 이도라는 일본말이 새미, 샘, 샘물, 우물, 소 등의 뜻을 가진다고 본다. 그래서 새미골설이라고 부른다.

 

  문제는 한국 남부지방에도 이런 새미골이란 지명을 가진 곳이 많다는 곳이다. 그 중 도자기터로 사용되었던 곳을 추정해들어가며 저자는 자신의 논지를 편다. 다소 민족주의적인 색채를 풍겨가면서도 나름대로 날카롭고 객관적인 듯한 설명은 사람들을 수긍시키기 쉽다. 이도다완의 제작이 가능한 세 가지 요건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첫째, 민요여야 하고, 둘째, 진주 동남쪽이어야 하고, 셋째, 14~16세기에 제작된 것이어야 한다. 그리하여 저자가 지명한 곳은 사천시 사남면 구룡리 구룡요지이다.

 

  또한 저자는 야나기 무네요시의 생활잡기설을 부정한다. 그 근거로 이 이도다완이 제작될 당시에는 서민들이 도자기를 생활식기로 사용할 수 없던 시절이었다는 점을 든다. 그렇다고 제기로 볼 수도 없다고 본다. 왜냐하면 제기는 엄격한 유교절차에 따라 백자만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완의 제작과정이 아무런 흙으로 수비과정을 거치지 않고 아무렇게나 만든 것이 아니라 '매화피'나 '비파'색이나 시원하게 깍은 '굽'이 기술적으로 상당히 어렵다는 점이다. 그래서 숙련된 도공이 무위나 무심의 혼으로 구워낸 걸작품이기에 생활잡기로 사용되었을 리가 없다고 본다.

 

  다완 한 점 한 점을 들여다본다. 한참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참 자연스럽게 눈에 거슬리는 점이 없다. 또한 시원시원하고 굽에서는 당당함이 전해진다. 정말 잘 만든 그릇이다. 그냥 쉽게 제작하기는 어려웠을 듯 하다. 그래서 근대이후로 현대도예가들도 이를 완전히 복원하지 못한다. 특히 정말 제작기술이 많이 들고 힘들다는 이유로 무위 또는 무작위의 미를 비판하는 점들도 온당치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는 미를 보는 관점의 차이이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우리가 만들어낸 그릇을 일본인들이 그 미감으로 세계 최고의 가치를 지닌 그릇으로 만들었고 그것이 가진 미감이 보편적인 것이라면 그 비밀과 뿌리를 밝히는 작업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과제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그 미지의 밀림에 하나의 길을 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저서를 바탕으로 이도다완에 대해 좀 더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복원되어 나도 저런 다완 한 점을 소장하여 차를 따라 마시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를 제작했던 도공의 예술혼이 무엇이었는지 그들의 정신세계가 어떠했는지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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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의 나라 조선 (반양장) - 야나기, 아사카와 형제, 헨더슨의 도자 이야기
김정기 지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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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에 와서 약탈 문화재의 한국반환 문제가 많이 조명받고 있다. 임진왜란과 한일병합, 그리고 미군정을 거치며 한국의 주권이 유린 당한 시절, 한국의 중요문화재가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반출된 것에 대한 정당한 환수는 필요하다. 하지만 그 시기 한국을 떠난 문화재가 모두 약탈 문화재인 것만은 아니다. 때로는 수출자기로, 때로는 한국의 미를 사랑하여 한국에서 정당한 거래로 수집한 것들까지 포함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국의 주권상실의 역사 속에 이러한 부분은 간과되기 쉽다. 그 중에서도 특히 한국의 문화재와 미술품의 미에 눈을 떠서 외부인이고 타자이지만 진정한 한국의 정신 속에 살았던 인물들을 소개하고 그들에 대한 비판이 어떻게 잘못되었는가를 다루고 있는 책이다. 하지만 이 책의 중심은 어디까지나 그들의 비판에 대한 부분이 아니라 그들이 한국의 도자기와 미술품에서 본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밝히고 있으며 그들의 시각을 통해 우리는 한국의 미를 내부자로서 더욱 다양하고 폭넓은 시각에서 재정립하고 반성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될 것이라 확신한다.

 

  일제강점기 우리나라 도자기에 눈을 뜬 첫 일본인들은 아사카와 형제였다. 형인 노리타가는 공예를 전공하였으나 한국도자기를 접하고부터 한국의 미에 빠져 살았으며 동생 다쿠미는 한국과 한국인을 사랑한 나머지 한국 땅에서 한국옷을 입고 한국적인 삶을 자발적으로 선택했다. 그들의 삶이 개인적 의미를 떠나 한국도자사에 중요성을 가지는 것은 세계 최초로 조선도자미술관을 건립하고 그동한 조명되지 못했던 조선의 민예품이 가진 아름다움을 재발견해낸 데에 있다. 그들을 통해 야나기 무네요시와 그레고리 헨더슨으로 이어지는 조선 도자기에 대한 사랑과 미의식은 고려와 조선의 뛰어난 공예품으로서의 도자기의 우수성을, 특히 조선민예품에 깃든 미를, 타인을 통해 검증받고 확인하는 기회가 되었다는 점이다.

 

  야나기 무네요시는 아사카와 형제의 조선 사랑과 민예품의 도자기 사랑에 공감했고 함께했고 삶의 열정을 바쳤던 일본인이다. 그는 1914년 노리타카로부터 한국도자기 한 점을 선물받은 것을 계기로 그의 삶이 달라졌다. 그는 이후 조선을 22차례 오가면서 조선의 민예도자기를 수집햇고 1918년 이후부터는 조선에서의 삶을 시작했다. 전국 수백곳의 도예지를 답사하며 도편을 수집하고 정리하고 공부하였고 고려에서 조선으로 이어지는 분청사기에서 조선도자기의 '무위의 미', 무계획의 미, 비균형성의 미, 소박미, 자연미 등의 표현으로 나타나는 조선이 가진 미감을 발견했다. 그는 공예가 가진 미는 실용, 즉 '쓰임'의 미라고 공언했다. 장식성보다는 실용에서 그 중요성을 찾았고 장식이 부차적이 되면서 획일화되고 작위적인 것에서 벗어나 미의식을 이룰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일본의 한국침략을 비판하고 나아가 무엇보다 조선의 문화재 파괴와 침탈을 비판하였다. 그는 일본이 이웃인 조선과 상호 존중과 평화 속에 서로의 미의식을 교유하기를 원했고 일본인들에게는 이와 같의 인식 변화를 위해 조선인에게는 그들이 원래가진 일본보다 더 우월한 미의식의 깨우침을 통해 이를 실현하고자 했다.

 

  그레고리 헨더슨은 원래 일본에 관심이 있었으나 아사카와 형제와 야나기 무네요시와의 인연으로 한국도자기에 눈을 뜨게 되고 미군정기 자원하여 한국대사관에 머물고 여러 직책을 맡으며 한국도자기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수집한 한국역사통이다. 야나기 무네요시와 다른 점이 있다면 무네요시는 조선의 민예품에서 그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분야를 그 곳에 한정하였다면 그는 고려청자와 조선백자의 아름다움까지 포기하지 않으면서 주된 관심분야를 민예품에 두었다는 점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힘들게 번 월급으로 한 점 한 점 한국도자기를 수집하여 정당한 방법으로 소장하게 되었고 또 조선을 떠날 때에도 국립박물관에 보고하고 필요한 것을 자신이 산 가격에 팔 의사를 표현했다는 점이다. 헨더슨은 박정희 독재정권을 비판하고 미의회에서 참고인 자격으로 그 실상을 고발한 대가로 한국에서 추방당했던 인물로 평생을 아내와 함께 조선의 미을 발견하고 누리고 살았으며 그의 소장품은 1986년 로스엔젤레스 카운티 미술관에 기증되었다.

 

  그들의 수장품 중 가장 내 마음을 끈 것은 아사카와형제가 조선의 수백 군데의 도예지를 다니며 모은 도편컬렉션을 헨더슨이 우연한 기회로 얻게 되었고 그것이 한국도자사에 시대별 도요지별 특성을 망라하여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자료적 가치를 가진다는 점이다. 내용이라도 잘 정리되어 한국이 그것을 쓸 수 있다면 한국도자사를 밝히는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다.

 

  그들을 향한 수많은 비판들이 있지만 나는 그들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조선을 사랑했고 조선의 도공들을 이해했으며 그들이 만든 도자기의 진정한 아름다움에 선구적인 깨달음을 가졌던 그들....조선인조차 제대로 발견하지 못했던 그 아름다움의 표현은 국내에서 무시당했던 조선 도공들의 영혼을 위로하며 한국도자사의 앞날을 비춰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무위의 미에서 발견한 깊은 선적인 미의식은 아름다움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그들 때문에 나의 도자기 소장도 조금은 시각이 달라졌고 그로 인해 몇 점의 민예품을 소장하게 되었고 또 앞으로의 수집방향이 달라질 것이라 생각된다.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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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권력과 욕망을 말하다 - 역사를 담은 건축, 인간을 품은 공간
서윤영 지음 / 궁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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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에 두번 갔었다. 그 곳에서 건축적으로 관심을 끄는 것은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우선 눈길을 끈 것은 퐁피두 건물이었다. 모든 기둥과 전선 및 엘리베이터를 겉으로 다 드러내고 안의 공간은 기둥하나 없는 빈 공간을 연출한 것이었다. 어찌보면 건축물은 내부는 공간과 기능을 외부는 장식과 화려함이라 볼 수 있는데 그런 상식을 깨뜨린 건물이 퐁피두였고 그래서인지 기능을 위해 뽑아내었던 모든 것들이 저절로 시각적 효과를 거두게 되었다. 펑~~하고 뚫린 그 넓은 공간을 다니면서 건물은 인간의 마음이 창조해낸 공간구조임을 새삼 알게 되었다.

 

  집 하나를 짓는데에서부터 도시를 설계하는 것에는 많은 인간의 마음과 의도가 작용한다. 파리도 그런 도시다. 물을 가져오기 위해 수많은 거리의 배수관을 설치하고 계획도시를 만들기 위해 고안하고 개선문을 통해 본 방형적 거리와 구조에는 감시와 권력이라는 인간의 마음이 작용한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하나의 건축물 속에서도 권력은 실현되는데 사무실의 시끄러운 출입구쪽에는 신입사원이 그리고 안쪽의 창가로 갈수록 직급과 계급이 올라가는 구조이고 높이도 계단으로 조금 올라가게 설계할 수도 있다. 앞에 놓인 테이블이나 의자의 수도 그가 거느리는 권력의 범위에 맞게 조정된다고 한다.

 

  대형마트와 백화점 구조를 보면 그 권력과 욕망이 뒤섞이는 구조를 더욱 잘 알 수 있다. 상류층은 타인과 구별짓는 자신만의 소비패턴을 갖고 중산층은 상류층을 모방한 모방소비를 하고, 하류층은 중산층을 모방한 소비를 한다. 상층의 사람들에겐 다른 계층이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배제정책을 써야 효과가 있고 중산층이하의 사람들에게는 수용과 개방의 정책을 써야 효과가 있다고 말한다. 백화점은 입구를 하나두고서 들어가면 가장 편한 곳에 매출이 가장 많은 보석과 귀금속류를 두고 그 위에 여성용 옷과 엑세서리, 그리고 남성용 옷과 스포츠 웨어, 가전, 침구 이불 그릇류 등으로 비슷하게 배치된다. 사람들은 그 공간안에서 식사도 해결하면서 계획된 충동구매를 하게 된다.

 

  무엇보다 아파트라는 주거공간도 빼놓을 수 없다. 우리나라는 정말 획일화된 아파트 공화국이다. 그것도 브랜드 아파트 공화국이라서 다른 주거형태나 주거주권을 찾아볼 수 없다. 2.5미터의 층구분은 그것도 층간 공간을 제외하고는 2.25미터의 높이로 똑같은 구조로 지어진 아파트는 그야말로 답답한 공간이다. 가로 세로 구성비로 보니 정말 이 높이의 공간은 24평 이하의 아파트에서는 안정감을 주지만 40평대이상의 아파트 구조에서는 천장이 답답할 정도로 낮은 느낌을 준다. 그래서 집을 옮겨보니 천정이 높아져서 정말 시원한 느낌이 든다. 오늘날 다국적 기업과 대기업이 만들어낸 이윤의 욕망구조 속에서 우리는 주거주권을 상실하고 닭장의 병아리처럼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주거공간 안에서의 구조의 분할도 생각해보게 된다. 아파트내의 사적 공간인 침실과 방, 그리고 방에 부속된 드레스룸과 화장실은 그 사적 공간을 더욱 사적이고 은밀하게 만들었고 주방과 거실은 가족들 간 또는 손님과 공간을 공유하는 공적인 공간이 된다. 더 상류층으로 갈수록 서재나 다실과 같은 꼭 필요하지는 않지만 부가적인 공간이 늘어나고 이는 사적 공간은 사적 공간대로 공적 공간은 공적인 공간대로 분화하고 사적이고 공적인 공간이 겹치는 반사적 또는 반공적 공간으로 분화되면서 더욱 넓어진다.

 

  사적 공간에 주로 강력 범죄가 발생하기 쉽기 때문에 cctv를 설치하면 범죄예방을 할 수 있지만 건축을 할 때 공간구조의 공적화를 통해 그것을 실현할 수도 있다. 물론 그런다고 세상의 범죄가 다 없어지지는 않지만 범죄가 많은 골목에 벽화를 그린다든지 조명을 아주 밝게 한다든지 하는 일련의 의도들이 그런 범죄율을 낮출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결국 건축은 권력과 욕망을 반영하기도 하고 성당이나 교회처럼 권력구조를 수직적으로 하여 복종하게 하고 경건하게 만들기도 한다. 따라서 건축은 인간의 마음이 만들어낸 사회적인 것이며 그 인간의 마음이 실현된 것이다. 어떤 인생의 가치를 구현해내려고 하는가에 따라 건축물의 구조와 그 속에 담긴 공간분할과 배치, 장식 등이 달라질 것이다. 역사 속에서 그런 건축물의 상징을 읽어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다. 앞으로 여행을 다니게 되면 건축물을 다시 보게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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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건축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청미래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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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축이란 무엇일까? 행복한 주거지는 무엇을 담아내야 할까? 건축의 의미는 무엇일까? 유럽의 대표적인 작가 알랭 드 보통이 이 문제에 답했다. 건축가가 아니면서 아름답고 행복한 주거지를 꿈꾸는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 책을 썼다. 나도 이 문제에 관심이 있었다. 문제는 행복한 주거지와 행복한 집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행복한 집이란 어떤 집인가를 묻는 방식이 철학적이기도 하지만 문학적이라는 점이다.

 

  유럽을 여행하면서 특히 눈길을 끈 건물 중 하나가 성당이다. 누구나 유럽여행을 통해 수많은 성당을 다니지만 그 성당의 건축이 담아내려고 하는 것은 신의 존재이다. 따라서 건축이란 그것을 통해 어떤 것을 담아내려하느냐에 따라서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어떻게 만들고 구조를 어떻게 하고 창을 어떻게 꾸미고 하는 것들이 달라진다. 가우디가 사그라다 파밀리아에서 구현하려고 했던 의미도 그것이었다. 나아가 공간을 통해서 진리를 꿈꾸고자 하는 사람은 그 상징성과 의미를 어떤 식으로든 공간에 담아내고 구현하려고 한다. 사찰이 그러하고 사원이 그러하듯....

 

  일반적으로 우리 사회는 아파트로 획일화된 주거문화를 갖고 있다. 그것이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되면서 그 지역의 자연환경과 지형과 식생과 상관없이 서양식의 아파트가 어디에서나 똑같은 형태로 지어진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 괴물은 탄생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한 번만 집이란 무엇인가? 하고 묻고 그것이 담아내야 할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하고 고민한다면 주거지로서의 아파트는 그것과는 아주 거리가 먼 구조물임을 알게 된다.

 

  행복한 주거건물에 있어야 할 것은 무엇일까? 빛과 채광, 사생활 보호, 아늑함. 자유로움, 포근함. 정서적 안정, 위안, 평화 등등의 의미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로부터 접근하여 우리는 건축물을 그려나갈 수 있다. 나에게 책이 중요하다면 서가와 그 서가를 비추는 빛의 활용과 책읽는 공간 구조와 편하게 읽을 수 있는 공간배치와 효율성을 생각해낼 것이다. 보통은 우리에게 이렇게 행복한 집이 무엇으로 이루어져야 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고려해서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집의 수요자로서 또 매매가격을 지불하는 집의 주권자로서 우리는 응당 그런 요구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늘 단독주택의 꿈을 꾸어왔다. 입체적인 공간과 빛과 대기를 언제든 내 주거지 속에서 고루 느낄 수 있는 공간...계절의 변화와 기상의 변화를 주거지에서 바로 느낄 수 있는 집.... 그것이 나의 행복한 주거지였다. 그리고 조용히 책을 읽고 나만의 독송 공간을 가질 수 있는 공간이 있는 집... 그리고 몸을 조금 움직일 수 있는 정원과 땅.... 내가 꿈꾸던 단독주택은 못되어도 그런 집에 대한 생각으로 그와 비슷한 주거지에 정착하게 되었다. 하지만 한 번 더 내가 주거지를 옮기게 된다면 작은 땅으로도 3,4층의 공간에서 이런 것을 누릴 수 있는 나의 아름다움과 행복을 만끽할 수 있는 거주의미를 건축가와 소통을 통해 짓고 싶다.

 

  책에 나오는 건축물과 주거건물을 한참 들여다보며 참으로 우리는 집의 행복함을 모르고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이란 어떤 공간인가? 라는 물음을 던지게 해준 것만으로도 이 책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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