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의 나라 조선 (반양장) - 야나기, 아사카와 형제, 헨더슨의 도자 이야기
김정기 지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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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에 와서 약탈 문화재의 한국반환 문제가 많이 조명받고 있다. 임진왜란과 한일병합, 그리고 미군정을 거치며 한국의 주권이 유린 당한 시절, 한국의 중요문화재가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반출된 것에 대한 정당한 환수는 필요하다. 하지만 그 시기 한국을 떠난 문화재가 모두 약탈 문화재인 것만은 아니다. 때로는 수출자기로, 때로는 한국의 미를 사랑하여 한국에서 정당한 거래로 수집한 것들까지 포함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국의 주권상실의 역사 속에 이러한 부분은 간과되기 쉽다. 그 중에서도 특히 한국의 문화재와 미술품의 미에 눈을 떠서 외부인이고 타자이지만 진정한 한국의 정신 속에 살았던 인물들을 소개하고 그들에 대한 비판이 어떻게 잘못되었는가를 다루고 있는 책이다. 하지만 이 책의 중심은 어디까지나 그들의 비판에 대한 부분이 아니라 그들이 한국의 도자기와 미술품에서 본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밝히고 있으며 그들의 시각을 통해 우리는 한국의 미를 내부자로서 더욱 다양하고 폭넓은 시각에서 재정립하고 반성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될 것이라 확신한다.

 

  일제강점기 우리나라 도자기에 눈을 뜬 첫 일본인들은 아사카와 형제였다. 형인 노리타가는 공예를 전공하였으나 한국도자기를 접하고부터 한국의 미에 빠져 살았으며 동생 다쿠미는 한국과 한국인을 사랑한 나머지 한국 땅에서 한국옷을 입고 한국적인 삶을 자발적으로 선택했다. 그들의 삶이 개인적 의미를 떠나 한국도자사에 중요성을 가지는 것은 세계 최초로 조선도자미술관을 건립하고 그동한 조명되지 못했던 조선의 민예품이 가진 아름다움을 재발견해낸 데에 있다. 그들을 통해 야나기 무네요시와 그레고리 헨더슨으로 이어지는 조선 도자기에 대한 사랑과 미의식은 고려와 조선의 뛰어난 공예품으로서의 도자기의 우수성을, 특히 조선민예품에 깃든 미를, 타인을 통해 검증받고 확인하는 기회가 되었다는 점이다.

 

  야나기 무네요시는 아사카와 형제의 조선 사랑과 민예품의 도자기 사랑에 공감했고 함께했고 삶의 열정을 바쳤던 일본인이다. 그는 1914년 노리타카로부터 한국도자기 한 점을 선물받은 것을 계기로 그의 삶이 달라졌다. 그는 이후 조선을 22차례 오가면서 조선의 민예도자기를 수집햇고 1918년 이후부터는 조선에서의 삶을 시작했다. 전국 수백곳의 도예지를 답사하며 도편을 수집하고 정리하고 공부하였고 고려에서 조선으로 이어지는 분청사기에서 조선도자기의 '무위의 미', 무계획의 미, 비균형성의 미, 소박미, 자연미 등의 표현으로 나타나는 조선이 가진 미감을 발견했다. 그는 공예가 가진 미는 실용, 즉 '쓰임'의 미라고 공언했다. 장식성보다는 실용에서 그 중요성을 찾았고 장식이 부차적이 되면서 획일화되고 작위적인 것에서 벗어나 미의식을 이룰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일본의 한국침략을 비판하고 나아가 무엇보다 조선의 문화재 파괴와 침탈을 비판하였다. 그는 일본이 이웃인 조선과 상호 존중과 평화 속에 서로의 미의식을 교유하기를 원했고 일본인들에게는 이와 같의 인식 변화를 위해 조선인에게는 그들이 원래가진 일본보다 더 우월한 미의식의 깨우침을 통해 이를 실현하고자 했다.

 

  그레고리 헨더슨은 원래 일본에 관심이 있었으나 아사카와 형제와 야나기 무네요시와의 인연으로 한국도자기에 눈을 뜨게 되고 미군정기 자원하여 한국대사관에 머물고 여러 직책을 맡으며 한국도자기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수집한 한국역사통이다. 야나기 무네요시와 다른 점이 있다면 무네요시는 조선의 민예품에서 그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분야를 그 곳에 한정하였다면 그는 고려청자와 조선백자의 아름다움까지 포기하지 않으면서 주된 관심분야를 민예품에 두었다는 점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힘들게 번 월급으로 한 점 한 점 한국도자기를 수집하여 정당한 방법으로 소장하게 되었고 또 조선을 떠날 때에도 국립박물관에 보고하고 필요한 것을 자신이 산 가격에 팔 의사를 표현했다는 점이다. 헨더슨은 박정희 독재정권을 비판하고 미의회에서 참고인 자격으로 그 실상을 고발한 대가로 한국에서 추방당했던 인물로 평생을 아내와 함께 조선의 미을 발견하고 누리고 살았으며 그의 소장품은 1986년 로스엔젤레스 카운티 미술관에 기증되었다.

 

  그들의 수장품 중 가장 내 마음을 끈 것은 아사카와형제가 조선의 수백 군데의 도예지를 다니며 모은 도편컬렉션을 헨더슨이 우연한 기회로 얻게 되었고 그것이 한국도자사에 시대별 도요지별 특성을 망라하여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자료적 가치를 가진다는 점이다. 내용이라도 잘 정리되어 한국이 그것을 쓸 수 있다면 한국도자사를 밝히는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다.

 

  그들을 향한 수많은 비판들이 있지만 나는 그들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조선을 사랑했고 조선의 도공들을 이해했으며 그들이 만든 도자기의 진정한 아름다움에 선구적인 깨달음을 가졌던 그들....조선인조차 제대로 발견하지 못했던 그 아름다움의 표현은 국내에서 무시당했던 조선 도공들의 영혼을 위로하며 한국도자사의 앞날을 비춰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무위의 미에서 발견한 깊은 선적인 미의식은 아름다움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그들 때문에 나의 도자기 소장도 조금은 시각이 달라졌고 그로 인해 몇 점의 민예품을 소장하게 되었고 또 앞으로의 수집방향이 달라질 것이라 생각된다.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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