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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평화의 길, 호오포노포노
마벨 카츠 지음, 박인재 옮김 / 침묵의향기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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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오포노포노라는 이름으로 익숙해진 하와이 원주민들의 행복공식을 접한 것은 몇 년 전이었다. 불교처럼 전문적이고 엄격한 수행방법도 아니고 기독교식의 맹목적인 것도 아닌 일반인들이 손쉽게 마음을 정화시키고 행복에 이르는 길을 제시한 것이었다. 누구나가 실천할 수 있고 지금 이 순간 자신의 삶의 태도를 바꿀 수 있는 방법들이 제시되었고 나는 놀랐다. 역사란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모습만 바뀌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그래서 우리는 다시 오래된 길로 돌아가야만 삶의 지혜를 다시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마벨 카츠, 그녀는 휴렌 박사의 호오포노포노 기법을 자신이 삶으로 실천한 수십년의 경험의 기록을 사람들이 알기 쉽게 표현했다. 사랑과 평화에 이르는 간결하고도 단순한 이 방법은 현대인에게 손 쉽게 놓아버리고 쉬는 길을 제시한다. 자신을 둘러싸고 나타나는 환경이나 상황은 모두 자신의 마음의 기억이 되풀이하는 것이므로 그 기억을 정화하면 그 상황에 대한 업이 정화된다. 그래서 모든 것은 자신의 마음이 창조한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 마음을 돌이키면 지금부터의 자신의 업과 삶이 달라질 수 있다. 그 키는 마음이다. 내가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놓아두면 된다.

 

  우리는 오래된 자신의 삶의 습관으로 늘 같은 상황을 되풀이하고 살고 있다. 그러나 용기내어 걸어가는 삶의 모퉁이에서, 삶의 난관에서 우리는 행복을 주울 수 있다. 모퉁이는 방향을 바꾸는 것이며 삶의 관성에서 벗어나 자율의지로 걸어야 하는 걸음이며 또한 스스로의 집착을 놓아버림이다. 그래서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마음으로 떠오르는 것들을 막을 수는 없지만 그 떠오르는 것이 우리들의 마음에 둥지를 틀고 앉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그것은 스스로의 놓아버림으로 가능하다. 그 속에 텅빈 충만이...절대자가 스스로 일을 하게 내버려두면 되는 것이다.

 

  호오포노포노기법의 사용에 따른 궁금증과 의문을 마지막 장을 할애해서 싣고 있다. 가장 일반적이고 오랜 기간의 경험을 통해 궁금증을 가질 수 있는 질문과 답을 통해 일반인들이 쉽게 호오포노포노의 길에 들어서게 한다. 바로 오늘 우리는 스스로 사랑과 평화의 길에 들어설 수 있다.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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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칭 Watching - 신이 부리는 요술 왓칭 시리즈
김상운 지음 / 정신세계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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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많은 생각들로 산다. 그 생각들이 펼쳐져서 우리들이 사는 세상을 만든다. 그러나 우리들의 삶이 생각이라고 한다면 사실 우리는 우리의 진정한 존재에 대해 모르는 것이다. 생각이 멈추어버린 공간, 그 공간에 접속해야만 우리는 진정한 우리들의 삶과 만날 수 있게 된다. 그러면 어떻게 생각을 멈추게 할까? 어떻게 진정한 나와 만나게 될까? 우리는 아직 이러한 말들에 익숙하지 못하다. 그래서 그 말이 가리키는 것을 찾아 자신의 마음 속 무언가를 핀셋으로 집어내듯이 골라낼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늘 그것을 찾기 위한 또 하나의 생각을 만들어내고 스토리를 만들어내고 우리들의 인생은 더욱 피곤해지고 지치게 된다.

 

  내가 삶에서 만나는 사건들에 나의 감정을 내려놓고 타자를 들여다보듯이 나를 바라볼 수는 없을까?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을 객관화시켜 나를 바라볼 수 있다면 적어도 나의 모습이 내가 아닌 어
떤 틈이나 간격을 느끼게 되고 그래서 내가 그 사건에 전적으로 휘둘리지 않는 모습을 찾을 수 있게 된다. 그러면 부정적인 감정의 생명력이 90초임을 알게 될 것이고 나는 90초 후 어떤 사건이 나에게 남긴 부정적인 상처와 자국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게 된다. 깊이 바라볼 수 있다면 그것이 가능하다. 어떻게 깊이 바라보는가? 마음을 평화롭고 고요하게 하거나 아니면 깊은 집중으로 자기계시를 가지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그런 가운데에서 자신의 감정과 생각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과정을 그냥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기법을 '왓칭'이라고 부른다. 왓칭은 에고가 일으키는 기계적 반응을 중지하고 내가 나 스스로의 의지로 생활을 나아가 인생을 바꾸어내는 요술이다. 자신의 몸을 개선시키거나 자신의 지능을 올리거나 주어진 과제를 해결하거나 인생에서 만나는 모든 일들에 대한 '왓칭'은 그 과정으로서 지금 이 순간에 우리를 살게 한다, 그래서 내가 가진 더 높은 모습의 나를 보게 만들고 그것이 나를 변화시킨다. 그저 들여다보기만 해도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왓칭을 신이 부리는 요술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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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탈 아이들이 희망이다 - 전 세계 부모들이 공감한 새로운 세대
도린 버추 지음, 최유리 옮김 / 물병자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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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물질세계의 변화를 보면 너무나도 빨라서 정신적인 성숙함이 따라가지 못하는 듯이 보이고 세계는 불평등해서 국가간 계층간 직업간 지위간 인종간 남녀간의 많은 문제를 야기시킨다. 그런데 학교에 있다보면 이런 문제들을 아이들이 과연 미래에 해결해나갈 에너지와 영성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질 때가 많다. 과연 우리 인류의 문제들을 이들이 잘 해결해나가며 지구상의 진화를 이어갈 수 있을 것인지...그리고 우리들의 자녀를 볼 때에도 마찬가지다. 부모로서의 이런저런 걱정들이 많아지는 것이 사실이다.

 

  이 책은 우리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준다. 1995년 이후 태어나기 시작한 영적으로 성숙하고 모든 것을 수용하는 능력이 뛰어난 새로운 세대들.... 그들은 지구상의 영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우주에서 온 영혼들이라고 말한다. 지구에서의 정부조직과 정치지도자들은 영적 수준이 낮은 경우를 많이 본다. 그리고 그들은 지구상의 중요한 의사결정을 독점하는 경우가 많다. 소수의 바른 종교인들은 세상의 문제에서 떨어져 있고 세상에서 성숙한 의사결정을 통해 지구의 운명을 바르게 인도할 수 있는 존재의 필요성이 지구상에 이런 새로운 세대들을 불러들였다고 본다.

 

  크리스탈 아이들은 타고나면서부터 영적인 능력을 깊은 차원의 능력으로 타고났고 세상의 이면에 존재한 영적인 부분들을 보아내는 능력이 탁월하다. 그들은 신과 천사들과 늘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현실계에 존재하는 영적인 코드를 찾아내어 세상의 상처와 아픔에 적응하고 극복할 수 있도록 사람들을 안내하는 영적 가이드의 역할을 한다. 뛰어난 자연친화력을 갖고 있으며 자연과의 교감과 동물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정신을 정화시키고 현실의 순간적인 결정에 대해 영적인 방향제시와 사람들의 영적인 안내를 한다. 나이가 어린 것은 형체일 뿐이고 그들의 정신능력만큼은 성인들보다 더욱 성숙하다.

 

  그들이 성장하여 우리 사회의 리더로서 자리를 잡아가는 세상을 상상하면 즐겁고 희망이 생긴다. 그들이 지구라는 별에 온 이유와 사명을 우리들도 공유하여 그들이 그 역할과 사명을 달성할 수 있도록 도우는 것에 우리 성인세대의 역할이 있다고 한다. 원래의 진화된 존재가 갖고 있는 트랜스 능력이라든지 텔레파시 등 마음으로 상대의 마음을 읽어내는 능력 등 존재의 다른 차원을 투시하는 능력은 우리 인간이 앞으로 진화되어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선가에서 말하는 깨달음과 영성 또는 각 종교가 말하는 신에의 접근이 바로 이러한 정신적 진화방향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세상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생긴다. 세상이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내 마음을 스스로 정화시켜가려는 공부가 필요함을 느끼게 된다. 우리도 주위를 둘러보자. 혹 우리 아이들이 ..... 집에서나 학교에서 만나게 되는 아이들이 이 크리스탈 세대는 아닐까? 그리고 그런 아이들이 가진 수용능력과 정신적 능력에 대한 신뢰를 갖고 어른처럼 대화한다면 적어도 내 일상생활에서 부딪히는 문제들의 어느 부분은 조화롭게 해결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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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기술 - 인생의 교사 크리슈나무르티가 전하는 영원한 삶의 교과서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지음, 박윤정 옮김 / 황금나침반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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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조심껏 들었다.

그에 대한 아픈 상처가 있기 때문이다.

크리슈 나무르티란 로고가 적혀진 책을 드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가 쓴 몇 권의 책을 읽었지만 한번도 제대로 읽었던 기억이 없다. 그가 사용하는 개념의 구멍들 속에 빠져 허우적 대다가 책 밖으로 뛰쳐 도망나오기가 일쑤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음을 단단히 먹고 책의 표지부터 훑어갔다.

역시 그의 책은 쉽지가 않다.

개념 하나가 나의 뒷발목을 붙든다.

"사랑"이다.

사랑을 하지 말라. 그것은 우리의 집착만을 부풀릴 것이다.

사랑하라 비로소 그대는 진정한 사랑을 알게 될 것이다.

듣는다는 것도 나의 짧은 점프 실력으로 넘지 못하는 말이다.

그가 이렇게 교묘하게 숨겨둔 장치들은 각 장마다 나의 발목을 잡기도 하고,

질퍽한 늪속으로 나를 빨아들이기도 한다.

때로는 날카롭게 날아오는 창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옅은 가스처럼 천천히 나를 질식시키게 만든다.

그의 책을 이번에도 도저히 다 읽어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은 소득이 있다면

그것은 그가 놓은 덫들을 알아차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시 그의 책을 들게 될 때에는 그의 장치들에 좀 더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기를 바래본다.

삶의 질퍽한 구멍.

그 속에 모든 사람들이 빠져 산다.

때로는 자신이 빠져 있는 지도 모르게..

때로는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허둥대는 삶의 질퍽한 늪..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칼날이 순식간에 코를 베어 가기도 하고

온몸 채로 자루 속에 집어던져지기도 한다.

할!

 

다시 당신을 찾겠다.

 

p.s : 번역은 그런대로 읽는데 큰 무리는 없었지만..

제목의 번역은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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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07-03-21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덫을 알아차릴 수 있는 경지...아~ 부럽슴다. 쩝쩝...

달팽이 2007-03-21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아이가 너무 귀엽습니다. 이카루님.
오랫만에 뵙습니다. 반가워요.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
얀 케르쇼트 지음, 김기협 옮김 / 꿈꾸는아침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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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음은 우리 존재의 시작을 '지금 이곳'에서 알게 한다. 키보드에 올려놓은 손가락들이 가볍게 이곳저곳을 타고 옮겨다니는 것들을 통해서 가벼운 누름이 느껴지고 눈은 흰 여백에 새롭게 채워져가는 글씨들을 지켜본다. 주위에서 들려오는 크고 작은 사람들의 목소리는 나의 귓속으로 스며들어 사라지고 나는 이 모든 것을 느끼고 있는 내가 존재하고 있음을 안다. 하지만 이러한 나의 있음은 내 의식이 몸에 붙어있을 한시적인 시간과 공간내에서일 뿐이다. 내가 늦은 밤 잠자리에서 희미해져가는 의식을 쫓아가다 어느새 나를 떨쳐버리고 가버린 그가 텅 빈 껍데기만을 남겨놓은 채 사라질 때 있음도 내게서 사라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내게 온 풍경들은 시시각각 쓰러져 사라져가고 내게 들려온 소리들도 순간순간 잡을 수 없는 소리의 블랙홀로 빨려들어간다. 그것을 느끼는 마음의 나를 찾아 생각을 가라앉혀서 내면을 들여다보면 '나'라고 부를 그 무엇은 없다. '있음'은 어느듯 '없음'으로 변하고 만다. 있음과 없음은 존재의 양면인 것일까? 문득 존재의 의문하나가 마음을 차지한다.

창문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것을 통해 들어온 외부의 세상이 눈과 마음을 채운다. 옷을 벗어버린 채 추운 바람에 떨고 있는 나무와 그 위로 한 줄기 햇살을 비추고 있는 빛, 그리고 보이지 않는 뿌리가 그것을 지탱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과 더불어 나는 보이는 세상과 보이지 않는 세상을 상상한다. 마음을 통해 '있음'으로 들어가는 창문도 있다. 마음의 번다한 생각들을 가라앉히고 자신의 본래 모습을 찾기 위해 우리가 들여다보아야 하는 창이 있다. 그 창문은 어떤 특정한 모양도 형태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형태와 모습을 할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값진 보석을 숨기는 방법은 모든 곳에 아무렇게나 두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 어디서나 그 존재의 보석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그것을 찾을 생각을 못한다. 마음으로 열린 창을 통해 그것을 찾아가려는 나의 마음은 이 곳에서 시작되어 창문 너머의 세상을 꿈꾼다.

벗어나라. 자신의 본래 모습을 알기 위해 승복을 입어야 할 필요도 없다. 주어진 시간에 교회에 앉아 기도를 해야 할 필요도 없다. 그렇다고 참된 스승을 찾아 그를 본받아야 할 필요도 없다. 그 외부로 주어진 마음을 돌려 스스로의 마음 안에서 길을 찾는다면, 외부로 뻗은 마음의 에너지를 자신을 비추는 빛으로 만들어낸다면 비로소 그 모든 형식과 겉치레는 산산조각이 난다. 더불어 세상이 모두 공부거리가 되는데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하랴. 그것이 공부거리가 아님을 알기까지, 뭔가를 추구하는 그것마저도 없음을 알기까지 스스로를 탐구하자. 모든 종교와 영적 전통과 권위로부터 벗어나라. 그 권위가 그 전통이 그 모델이 나에게 하나의 족쇄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안다. 더불어 어떤 이상현상이나 신비한 체험이 하나의 관념이 되어 나를 사로잡는것에서부터도 자유로워져야 한다. 비로소 참된 의문이 나에게서 일어난다.

대담은 이렇게 알게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람들과 나누는 자리이다. 토니파슨스와 더글라스 하딩과 네이선 질과 크리슈나무르티와 나눈 대화들은 바로 그들이 자리한 곳에서 이루어지는 하나의 놀이이다. 진리의 자리에서 시비를 다투는 것 자체가 하나의 불완전한 집착일 수 있지만, 완전하고 바른 깨달음이라는 것이 , 그 없는 깨달음이라는 것이 없지 않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나에게 맞는 옷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몸이 없으면 애초에 옷도 필요없는 법, 그 옷의 색깔과 크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바가 조금씩은 달리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들이 노는 자리에 말을 모두 버리고 앉아 있으면 어떻게 될까?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다. 잠을 자다 문득 깨다. 오줌이 마려웠기 때문이다. 문득 이것을 아는 자는 누구인가? 하는 마음이 든다. 그리고 내가 깊은 잠을 자는 내내 더 이상 참을 수 없기 전까지 괜찮다는 것을 아는 자도 동시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마음을 통해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세상이 아무런 생각없이 그저 주어지는 대로 받아들일 수 있기 위해서는 나라고 불리우는 존재의 참모습을 알아야 한다. 모든 풍경이 들고 사라지는 그 자리 모든 소리가 들어오고 소멸하는 그 자리 그 모든 감각과 그 모든 비감각의 것들을 받아들이고 알아차리는 그것이 바로 지금 키보드를 옮겨다니는 내 손가락의 느낌을 있게 하고 채워져가는 글들을 바라보고 이해하게 한다. 무엇인가? 그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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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12-02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기인식'은 인간의 특성이겠지요.

달팽이 2006-12-02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의 본성이기도 하지요.

어둔이 2006-12-04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추운 겨울
어디서 방황하는가?
봄조차 겨울의 방황이거늘
겨울의 문턱에서
봄을 기다려 무엇하랴?

집없는 자여!
겨울을 떠도는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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