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함께 글을 작성할 수 있는 카테고리입니다. 이 카테고리에 글쓰기

  새떼가 오가는 철이라고 쓴다 새떼 하나는 날아오고 새떼

하나는 날아간다고, 거기가 공중이다, 라고 쓴다

 

  두 새떼가 마주 보고 날아서, 곧장 맞부닥뜨려서, 부리를,

이마를, 가슴뼈를, 죽지를 부딪친다고 쓴다

 

  맞부딪힌 새들끼리 관통해서, 새가 새에게 뚫린다고 쓴다

 

  새떼는 새떼끼리 관통한다고 쓴다 이미 뚫고 나갔다고, 날

아가는 새떼끼리는 서로 돌아다본다고 쓴다

 

  새도 새떼도 고스란하다고, 구멍 난 새 한 마리 없고, 살점

하나, 잔뼈 한 조각, 날개깃 한 개, 떨어지지 않았다고 쓴다

 

  공중에서는 새의 몸이 빈다고, 새떼도 큰 몸이 빈다고, 빈

몸들끼리 뚫렸다고, 그러므로 공중이다, 라고 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늘 허투루 나지 않은 고향 길

장에나 갔다 오는지 보퉁이를 든 부부가

이차선 도로의 양끝을 팽팽하게 잡고 걷는다

이차로 간격의 지나친 내외가

도시 사는 내 눈에는 한없이 촌스러웠다

속절없는 촌스러움 한참 웃다가

인도가 없는 탓인지도 모르지

사거니 팔거니 말싸움을 했을지도 몰라

나는 또 혼자 생각에 자동차를 세웠다

차가 드물어 한가한 시골길을

늙어 가는 부부는 여전히 한쪽씩을 맡아 걷는다

뒤돌아봄도 없는 걸음이 경행같아서

말싸움 같은 것은 흔적도 없다

남편이 한쪽을 맡고 또 한쪽을 아내가 맡아

탓도 상처도 밟아 가는 양 날개

안팎으로 침묵과 위로가 나란하다

이런저런 궁리를 따라 길이 구불거리고

묵묵한 동행은 멀리 언덕을 넘는다

소실점 가까이 한 점 된 부부

언덕도 힘들지 않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비자림 2006-07-03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골길, 미화되지 않은 부부의 모습이 실감나게 그려져 정겹네요.
'부부'라는 이름으로 어깨동무해 가는 사람들이 더 사랑하며 살았으면 좋겠어요.
어깨동무하고 짐을 나눠 가져야 인생길을 걸을 수 있는 우리들의 동행.
가장 가까이 살아 서로가 바라보는 그 곳이 바로 똑같은 곳이라는 것도 가끔 잊어버리고 살지요...

달팽이 2006-07-04 0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즈음은 너무 표현하는 사랑만을 사랑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지요..
그렇지만 표현되지 못하고 가슴 속 한 켠에 고이 묻어둔 그런 사랑...
표현하지 않기 때문에 가슴으로 더욱 깊이 파고드는 그런 사랑..
그립군요..
냉랭해 보이던 부부 사이의 그 거리가...
소실점 가까이 한 점 된 부부...
언덕도 힘들지 않다...에서...저는 이 시가 너무 좋아집니다.
 

꽃을 좋아해 비구 두엇과 눈 속에 핀 매화에 취해도 보고

개망초 하얀 간척지 농투성이 농성에 덩달아도 보고

노래가 좋아 기성화장수 봉고에 실려 반도 횡단도 하고

버려진 광산촌에서 중로의 주모와 동무로 뒹굴기도 하고

 

이래서 이 세상에 돌로 버려지면 어쩌나 두려워하면서

이래서 이 세상에 꽃으로 피었으면 꿈도 꾸면서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글샘 2006-07-03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돌이고 꽃입니다.
돌도 아닌 것이 꽃도 아니지만...

달팽이 2006-07-03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푸른 바다 끝없는 하늘을 보니 마음은 편안한데

부서지는 파도 소리에 그대 모습 떠오르네

바위섬은 파도를 맞고 가슴 젖으며

투명한 햇살은 물결 위에서 넘실대는데

깍아지른 절벽 위에 선 우리

제 각각 갈 길은 눈 앞에서 갈라지네

바람은 바위 틈에 자라는 풀잎을 뽑을 듯하고

흔들리는 구름 다리는 앞 길을 흐리네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고 가는 길 위에

개미 한 마리 발에 밟혀 소리도 없이 죽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글샘 2006-06-13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린 게의 죽음, 김광규

어미를 따라 잡힌
어린 게 한 마리

큰 게들이 새끼줄에 묶여
거품을 뿜으며 헛발질할 때
게장수의 구럭을 빠져나와
옆으로 옆으로 아스팔트를 기어간다
개펄에서 숨바꼭질하던 시절
바다의 자유는 어디 있을까
눈을 세워 사방을 두리번거리다
달려오는 군용 트럭에 깔려
길바닥에 터져 죽는다

먼지 속에 썩어가는 어린 게의 시체
아무도 보지 않는 찬란한 빛

달팽이 2006-07-18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명의 빛 어디로 갔을까?

따끔하는 느낌에 반사적으로
마음보다 손이 먼저 가서
짝 하는 소리와 함께
납작해진 모기와 튄 핏방울

그 짝하는 소리와 함께
모기는 어디로 갔을까?

그의 납작해진 허물만 벗어놓고
한 순간에 달라진 생과 사
그 틈새에서 생명의 신비를 엿본다
 

삶이 가장 확실하게 보장하는 것은

죽음

유월의 울타리엔

붉은 선혈이 터지고

그들의 피로 물든 세상이

세상을 밝힌다.

몸이 더욱 붉어질수록

세상은 더욱 흐릿해지고

잎이 한 장 피어날수록

생명의 불씨는 꺼져간다.

삶을 태우며 피우는 사랑에

나는 생명의 절실함을 배운다.

다시 오지 않을 이 곳에서

나는 우주의 단 한 번 뿐인

저 선혈의 외침을 듣는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어둔이 2006-06-05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월이면내혈관속
붉은장미를꺼내다
넝쿨처럼인연자라
징한사랑에엉키다
장미가시에 찔리다

파란여우 2006-06-05 1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답동사거리를 지나
율목교회 뒷담장을 돌면
낡은 붉은벽돌 건물 인천시립도서관
지금은 폐허가 된 그곳에 한창 가방들고 출입을 하던
그 6월에 넝쿨장미 눈부시다 못해 서럽도록 빨개서
도서관 격자 창문 밖으로 시선을 돌리지 못했다.

달팽이 2006-06-05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시없는장미로다
상처투성이가슴도
무상한인연이로다
땅에코박고울다가
문득코가없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