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함께 글을 작성할 수 있는 카테고리입니다. 이 카테고리에 글쓰기

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

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네

청룡 흑룡 흩어져 비 개인 나루

잡초나 일깨우는 잔바람이 되라네

뱃길이라 서울 사흘 목계 나루에

아흐레 나흘 찾아가 박가분 파는

가을볕도 서러운 박물장수 되라네

산은 날더러 들꽃이 되라 하고

강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산서리 맵차거든 풀 속에 얼굴 묻고

물여울 모질거든 바위 뒤에 붙으라네

민물 새우 긇어넘는 토방 툇마루

석삼년에 한 이레쯤 천지로 변해

짐부리고 앉아 쉬는 떠돌이가 되라네

하늘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고

산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 신경림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사랑도 벗어 놓고 미움도 벗어 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내 마음이 팍팍하게 메말랐을 때

자비로운 소나기와 함께 오소서.

삶에서 자비가 사라졌을 때, 오소서,

터져나오는 노래를 들고.

 

소란스러운 일이 그 소리를 높여

사방에서 그리고 위에서도 나를 가둘 때

나에게 오소서, 내 침묵의 주여,

그대의 평화와 안식을 가지고 오소서.

 

내 가난한 마음이 웅크리고 앉아 있을 때,

구석에 갇혀 있을 때, 문을 부수어 여소서,

나의 왕이여, 왕답게 장엄하게 오소서.

 

욕망이 미망과 먼지로 내 마음을 더럽힐 때,

오 그대, 거룩한 이여, 늘 깨어 있는 이여,

그대의 빛, 그대의 천둥과 함께 오소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내 노래는 스스로의 장식을 벗어버렸습니다.

이제는 의상과 치장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장식품들은 우리의 결합을 손상케 할 것이며,

나와 님 사이를 벌려 놓을 것입니다.

그 짤랑거림은 님의 속삭임을 지우고 말 겁니다.

님을 뵈올 때면 시인으로서의 허영은 부끄러워 꼬리를 감춥니다.

오, 최고의 시인이시여!

나는 님의 발치에 앉아 있습니다.

오직 내 삶을 단순하고 똑바르게 가꾸도록 해주소서.

음악으로 님이 채울 갈피리처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사나운 뿔을 갖고도 한번도 쓴 일이 없다

외양간에서 논밭까지 고삐에 매여서 그는

뚜벅뚜벅 평생을 그곳만을 오고 간다

때로 고개를 들어 먼 하늘을 보면서도

저쪽에 딴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는 스스로 생각할 필요가 없다

쟁기를 끌면서도 주인이 명령하는 대로

이려 하면 가고 워워 하면 서면 된다

콩깍지 여물에 배가 부르면

큰 눈을 꿈벅이며 식식 새김질을 할 뿐이다

 

도살장 앞에서 죽음을 예감하고

두어 방울 눈물을 떨구기도 하지만 이내

살과 가죽이 분리되어 한쪽은 식탁에 오르고

다른 쪽은 구두가 될 것을 그는 모른다

사나운 뿔은 아무렇게나 쓰레기 통에 버려질 것이다.

 

 

 

'과연 우리들의 뿔은 무엇인가? 아니 나의 뿔은 무엇인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