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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을 끄고도 어둠 속에 얼마 동안

형광등 형체 희끄무레 남아 있듯이,

눈 그치고 길모퉁이 눈더미가 채 녹지 않고

허물어진 추억의 일부처럼 놓여 있듯이,

봄이 와도 잎 피지 않는 나뭇가지

중력마저 놓치지 않으려 쓸쓸한 소리 내듯이,

나도 죽고 나서 얼마 동안 숨죽이고

이 세상에 그냥 남아 있을 것 같다.

그대 불 꺼지고 연기 한번 뜬 후

너무 더디게

더디게 가는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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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6-04-06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시속 10km의 봄인가보군요.
삶도 그러했으면 좋으련만 벌써 40km입니다그려.

달팽이 2006-04-07 0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더딘 하루
빠른 인생
 

비가 내린다.

추억의 빗물

내 가슴 속 기억 창고의 문을

두드리는 비

지난 날의 영상들이 하나 둘씩 되살아나고

그리운 얼굴들 다시 되살아나고

고운 이들 다시 웃음짓네

 

비가 내린다

젖은 바람 불어오고

벚꽃잎 하나 둘씩 떨어지고

꽃향기 머무는 날

그 향기 속에 내마음도 머문다.

떨어질 것은 떨어지고

피어날 것은 피어나고

 

비가 내린다

묘비없는 죽음 위에도

죽지 않는 생명으로 향한

그 염원 위에도

비는 내린다.

봄 비는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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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이름은김삼순 2006-04-02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봄비,,조그맣게 새어나오는 이 한단어가 이 시를 읽고나니깐
더욱 더 사랑스럽게 느껴지네요,,,^^

달팽이 2006-04-02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가슴 속에 고이 사랑하나 피어나는군요..

비자림 2006-04-02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집안의 모든 기계음을 가끔 멈추기도 해요, 비 오는 날엔. 빗소리 듣고 싶어서.
추억의 서랍도 열고, 알싸한 슬픔이 배인 우울의 늪에도 빠져 보고,
노인네처럼 아가처럼 몸을 웅크려 잠을 청하기도 하고...

달팽이 2006-04-03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빗소리를 여유있게 들을 수 있는 주거형태가 사라져버린 도시의 삶이 쓸쓸하지요.
하지만 정작 빗소리를 들을 수 있는 여유마저 사라졌다는 생각이 더욱 쓸쓸하군요..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 좋아하면

두 사람 사이에 물길이 튼다.

한쪽이 슬퍼지면 친구도 가슴이 메이고

기뻐서 출렁거리면 그 물살은 밝게 빛나서

친구의 웃음 소리가 강물의 끝에서도 들린다.

 

처음 열린 물결은 짧고 어색해서

서로 물을 보내고 자주 섞여야겠지만

한세상 유장한 정성의 물길이 흔할 수야 없겠지.

넘치지도 마르지도 않는 수려한 강물이 흔할 수야 없겠지.

 

긴말 전하지 않아도 미리 물살로 알아듣고

몇 해쯤 만나지 못해도 밤잠이 어렵지 않은 강,

아무려면 큰 강이 아무 의미도 없이 흐르고 있으랴.

세상에서 사람을 만나 오래 좋아하는 것이

죽고 사는 일처럼 쉽고 가벼울 수 있으랴.

 

큰 강의 시작과 끝은 어차피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물길을 항상 맑게 고집하는 사람과 친하고 싶다.

내 혼이 잠잘 때 그대가 나를 지켜보아주고

그대를 생각할 때면 언제나 싱싱한 강물이 보이는

시원하고 고운 사람을 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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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림 2006-03-29 1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 시절 과사무실에서 빌려 만났던 마종기님의 시집.
그 시집들을 읽으며 뭔가에 몰두하고 있을 때 동아리 선배가 제 모습을 스케치했더랬어요. 미술과라 아이들 모습을 자주 스케치하거든요. 그 시절이 생각납니다.

달팽이 2006-03-29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생을 살아가다 만나는 고운 사람들..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그 고운 사람들은
내 가슴 속에 조용히 숨쉬고 있습니다.
 

메아리도 살지 않는 산 아래 앉아

그리운 이름 하나 불러봅니다.

먼 산이 물소리에 녹을 때까지

입속말로 입속말로 불러봅니다.

 

내 귀가 산보다 더 깊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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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6-03-26 1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리운 이름....
가슴속에서 터져나와 메아리가 되는 봄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오늘 뒷 산에선 나무들의 떨림을 보았습니다.
아니지, 그것을 바라보는 내 눈이 희 뿌옇던 것이겠지....
아, 박정만 이 사람도 슬픈 눈을 가진 시인이었죠.

달팽이 2006-03-26 2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리운 이름 하나에 온 세상이 녹아내립니다.
아, 무엇입니까? 당신은..
 

아흔의 어머니와 일흔의 딸이

늙은 소나무 아래서

빈대떡을 굽고 소주를 판다

잔을 들면 소주보다 먼저

벚꽃잎이 날아와 앉고

저녁놀 비낀 냇물에서 처녀들

벌겋게 단 볼을 식히고 있다

벚꽃무더기를 비집으며

늙은 소나무 가지 사이로

하얀 달이 뜨고

아흔의 어머니와 아흔의 딸이

빈대떡을 굽고 소주를 파는

삶의 마지막 고샅

북한산 어귀

온 산에 풋내 가득한 봄날

처녀들 웃음소리 가득한 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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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6-03-22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주잔에 동동 띄운 벚꽃의 자태가 떠오릅니다.
매화를 꽃의 으뜸으로치지만 집 앞 도로에는 벚꽃나무가 지천이니
올 봄에는 벚꽃잎 소주잔에 띄워놓고 웃어 봐야겠군요.
풋내 나는 웃음, 세상에 여백으로 남겨놓고.

달팽이 2006-03-22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늘을 덮은 벚나무 아래서 술잔을 들고서
바람불면 잔으로 떨어지는 벚꽃잎들
우리 지난 사랑이야기로 밤을 잊었던
달빛은 가지 사이에서 비춰들고...
세상은 온통 눈으로 덮히고..

비로그인 2006-03-23 0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좋네요.(이 말이 참 촌스럽게 느껴집니다^^;;)

달팽이 2006-03-23 0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ㅎㅎ
그래서 더 좋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