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일일생 믿음의 글들 219
우찌무라 간조 지음, 안진희 옮김 / 홍성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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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일일생(一日一生)은 일본의 복음주의자 우찌무라 간조의 묵상집이다. 묵상집으로 흔히 볼 수 있는 하루 1편의 묵상으로 1월1일 부터 연말까지 365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여러 저작들 가운데 임의로 특정 대지를 옮겨와 편집한 묵상집이다. 그래서 묵상의 아래에는 이 글이 언제 어느 책에 쓰였던 글인지 나와있기도 하다.

 

간조의 묵상은 그 나름대로의 특색이 있었다. 우선 그가 일본인이며, 동양인이었다는 것이 하나의 특색일 듯 싶다. 그래서 보편적으로 영국의 청교도적 색체와는 사뭇 다른 동양적인 철학사상이 느껴졌다. 번역상에서도 한자를 토대로 한 일본어의 어감이 주는 특색도 있어 보인다. 한편으로는 그런 특색들로 인해 사뭇 낯설었다. 특히, 그가 신앙과 애국주의를 연계해서 강조하고 있는 부분은 매우 독특했다. 시대적인 영향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그의 사상과 사고방식에서 익숙치 않게 다가오는 것들도 종종 있었다. 그 부분에 대한 판단은 독자 개개인이 해야 할 몫이리라. 어쨌든 여타의 묵상집들에 비해서는 훨씬 사상적이고, 철학적이다. 무게감이 있는 글들이다.

 

결국 간조는 복음주의자이자 사상가이다. 실제로 그는 기독교 사상가로 알려져 있고, 무교회주의 운동가였다. 그런 영향은 당시 한국에도 일정부분 영향을 미쳤다. 한편, 언젠가 어느 형제님과 교제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는 우찌무라 간조의 저작을 탐닉하는 사람이었다. 간조의 모든 전집을 다 읽었노라고 했다. 그리고 그에게도 다분히 무교회주의적인 경향이 강하게 나타났다. 적어도 그 점은 아쉬운 점이었다. 무교회주의가 성경적인 근거는 아니다. 그건 간조의 사상 중 하나였다. 특히, 간조의 무교회주의가 당시 기성교회의 생명력을 잃은 형식주의에 대한 반작용이었다는 점을 생각할 때 더욱 그렇다. 생명을 잃은 교회라면 무의미하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생명을 잃은 교회라는 전제 하에서다. 그러므로 생명력이 있는 교회라면 우리는 무교회주의를 성경적으로 수긍하기는 어렵다. 물론, 그렇다면 누군가는 '요즘 생명력 있는 교회가 어딨나요?'라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그런 반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좁은 길은 아직도 있습니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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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서쪽으로 가자_2013.08.06

(Subject: 그리스도인의 정체성-나는 그리스도인인가79.)

 

( 12:4)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 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라함과 그의 아버지 데라는 갈대아 우르 출신이었다. 특히, 데라는 우상숭배자이자, 우상을 만드는 사람이었다. 데라는 그의 가족들을 데리고 서쪽인 가나안으로 이주하기 위해 여정을 시작한다. 가나안을 가기 위해서는 서북쪽에 위치한 하란을 거쳐서 다시 서남으로 이동해야 했다. 지도상에서 보면 갈대아 우르와 하란, 가나안이 삼각형으로 연결된다. 마침, 데라는 하란에 머물 때 사망하고 만다. 아브라함은 낯선 땅에서 아버지를 잃고 만단. 다시 갈대아 우르로 돌아가야 할 것인가? 그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다. 하나님은 처음 여정이 목적지였던 가나안으로 이주하라고 하신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그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간다. 그리스도인은 여호와의 말씀을 좇는 사람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배척할 때 그 말씀에 순종하는 자가 그리스도인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할 수많은 이유와 핑계들이 생기기도 한다.

 

( 12:10) 그 땅에 기근이 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우거하려 하여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가나안에 당도한 후 그 땅에 지독한 기근이 생겼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생존을 위한 보다 나은 선택으로 애굽으로 이주하게 된다. 그러나 거기서부터 아브라함의 첫 불행은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는 애굽에서 그의 아내 사라를 바로에게 빼앗기고 만다. 오히려 아브라함은 사라를 팔아버렸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매우 소심하고 두려워하며, 조금도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하는 연약함을 목격하게 된다. 이 모든 굴욕과 수치는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던가. 불과 창세기 12장의 4절과 10절 사이에 이 큰 모순은 발생했다.

 

하란에 머물 때 아브라함이 가나안 이주를 계속해서 추진할 수 있었던 동기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그때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서 갔던 것이다. 그러나 애굽으로 이주할 때는 아니었다. 그가 애굽으로 이주한 주된 동기는 기근이었다. , 현실적인 어려움. 어떤 곤란이었다. , 아브라함은 그 기근의 순간 하나님의 말씀에 귀기울어여야 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배제했다.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라는 말씀을 위배했다. 기근이라는 현실 앞에서 그는 본능적으로 이 곤란한 현실을 피하고, 보다 나은 생존의 길을 스스로 모색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본능에 충실한 것이었지 그리스도인의 윤리와 가치에 충실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그는 기근은 피했지만 사라의 정조를 버리는 또 다른 구렁텅이로 굴러 떨어졌던 것이다. 그러므로 기억할 것이 있다. 우리가 곤란한 경우를 만나야 한다라면 그것은 피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란 것이다. 곰을 피하다가 뱀에게 물린다. 우리는 필연적인 곤란을 하나님께 의지하고 정면돌파 해야 된다.

 

(12:8) 거기서 벧엘 동편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는 벧엘이요 동은 아이라

 

갈대아 우르에서 가나안을 향하는 여정도 서쪽으로 이동이다. 이주하는 여정에서 아브라함이 장막을 친 곳에서도 서는 벧엘이고, 동은 아이성이었다. 어느 방향으로 갈 것인가. 서쪽이 분명하다. 성경에서 서쪽은 하나님의 방향, 동쪽은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는 방향으로 나타난다. 그리스도인이 나아갈 방향도 서쪽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서쪽으로 하나님의 뜻에 머무는 방향으로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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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번스
스트랭 밀러 지음, 김기찬 옮김 / CH북스(크리스천다이제스트)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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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liam Chalmers Burns.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영특한 인재였다고 한다. 아버지를 따라 목회의 길을 선택하고 글래스고 대학 등에서 신학을 전공했다. 그는 이미 24살의 나이에 복음의 불꽃으로 쓰임 받았다. 그는 처음부터 선교사는 아니었고, 선교를 희망하였지만 영국에서의 그의 사역이 워낙 성공적이었기에 선교가 지연되고 있었다.

 

번스는 잘 알려지지는 않은 인물이지만, 그의 사역은 종종 부흥의 형태로 나타났다. 특히, 잘 알려진 로버트 맥체인 목사를 도와 그의 교회를 담당했을 때, 부흥이 일어났다. 스코틀랜드 던디의 유능한 목사로 알려진 맥체인은 이스라엘 순례의 길에 오르게 되는데, 이로 인해 수 개월간 담임교회를 비워야했다. 그래서 맥체인은 번스에게 교회를 맡아줄 것을 요청했고, 번스는 이를 수락해 던디교구를 맡았다. 그리고 부흥은 일어났다. 이후 번스는 또 다른 교회의 임시직을 청빙받고 떠난다. 번스는 일정한 담임목사직이 아닌 주로 임시직으로 청빙을 받아 순회전도자로 목회를 했다. 아마, 중국선교가 그의 목표였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아무튼 중국선교는 수 년간 지체되었다. 영국 곳곳에서 그는 청빙을 통해 그의 탁월한 목회역량을 보여주면서 많은 교회의 필요를 채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1846년 중국선교에 오르게 된다. 번스는 중국어를 배우기 시작했고, 중국인 복장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천로역정을 중국어로 번역했다. 일반적으로 중국선교의 아버지라고 하면 허드슨 테일러를 꼽는다. 그러나 번스는 드러나지 않은 선구자였다. 그는 먼저 중국선교의 험한 길을 개척했던 인물이다.

 

어느 한 중국선교사 동료는 윌리엄 번스를 아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온 중국이 그를 알지요. 그는 살아 있는 가장 거룩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훗날 번스는 중국 땅에서 죽었다. 영국에 번스의 유품이 도착했을 때 모두가 숙연해졌다.

옷 몇 벌. 성경 두 권. 그것이 전부였다.

윌리엄 번스는 교회사에 있어 숨은 보석이었다. 다만, 이 책의 아쉬움이 있다면 번스에 대한 충분한 연구의 부족과 매끄럽지 못한 문장에 있을 것이다. 번스의 일기를 단순 인용하는 부분이 너무 많아 전기와 일기편집의 경계선이 모호해지는 부분이 많았다. 그래서 번스의 영성을 충분히 전달해주지 못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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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타이밍 - 당신을 들어 쓰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준비 과정
오스 힐먼 지음 / 생명의말씀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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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선물 받았을 때, 기쁘면서 동시에 의심스러웠다. 기뻤다는 것은 책을 선물 받았기에 내 책장에 한 권의 책이 더 생겨서 기뻤고, 의심스러웠다는 것은 전혀 들어본 바 없는 저자와 현대적인 표지디자인으로부터의 당혹감이었다. 대강 책을 훑어봤을 때 과연 이 책의 내용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일까? 이 책의 저자는 거듭났을까? 그런 의구심이 들었다. 책을 선물 받는다는 것은 기쁜 일이었지만 이 책이 얼마나 가치 있는 책인지 여부는 굉장히 의심스러웠다. 그러나 그건 나의 기우일 뿐이었다. 웬만해서는 책을 읽으면서 밑줄을 긋지 않는 게 나의 독서습관이다. 정 필요하다 싶으면 샤프로 문장을 ( ) 표시 정도할 뿐. 밑줄을 그으면 마치 바로 중고책이 되어버린 기분이 들어서 학습교재가 아닌 이상 난 책에 밑줄을 긋지 않는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아예 형광색연필을 손에 쥐고 밑줄을 그으면서 즐겁게 읽었다.

 

내용은 아주 대중적이고 쉬웠다. 동시에 누구나 익히 알고 있는 내용들로 시작되었다. 전혀 특이할 것이 없었다. 그럼에도 너무나 즐겁고 유익한 포도주 창고였다. 요셉의 소명에 대해 이야기는 시작된다. 요셉이 비전을 얻은 후 그의 인생이 어떻게 낭떠러지로 떨어졌는지 그 과정에서 요셉이 어떻게 인내하고 승리자가 되었는지. 그리고 바로 그러한 패턴이 오늘날에도 이뤄지고 있다고 말이다. 하나님께서 누군가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드실 때 그러한 과정을 거친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테스트 과정을 4가지로 언급한다. 유다시험, 성실성시험, 인내시험, 성공시험. 모두 성경의 인물을 통해서. 무엇보다 이 책은 매우 대중적인 지침서인 동시에 성경말씀을 전방위적으로 인용하고 적용하고 있다. 당연히 저자의 성경자체에 대한 박식한 면모를 유감없이 볼 수 있다. 아주 철학적이고 심오한 책은 아니지만, 굉장히 현실적인 통찰력과 적용력을 보여준다. 쉽게 읽을 수 있는 보기 드문 수작이란 느낌을 읽는 동안 계속 생각할 수 있었다.

 

이 책의 특별한 가치가 더해 진대는 무엇보다 저자의 요셉소명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목사가 아니며, 원래 저술가도 아니다. 그는 컨설팅 회사의 CEO였다. 사업이 안정되고 어느 정도 기반에 올라섰을 때 그는 가장 큰 배신과 실패를 맛보게 된다. 유다시험이 언급하는 부분이다. 그의 부사장이자 크리스천 동료로부터 배신당한다. , 가장 큰 거래처로부터 거래중단을 선고받는다. 이후 그는 이혼까지 당하고 재정적인 실패와 가정의 실패 모든 것에서부터 회복되기까지 7년의 시간을 채웠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의 신앙의 멘토 올나르 군슨을 만나 거기서부터 요셉의 소명에 대한 교훈을 받고, 자기 삶에서 그 소명을 이루며 다시 재기한다. 사업도 재건하고, 경제계에서 크리스천 모임을 주도하고, 일터사역자이자 저술가로 강연자로 활동하게 된다. 그는 죽고 싶은 그 절망의 끝까지 갔다고 다시 재기하는 그 과정 속에서 요셉을 배웠다. 그리고 모든 시험받고, 절망하는 크리스챤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바로, 당신을 들어쓰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준비과정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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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맥체인 - 작은 예수처럼 살다 간 사람
이중수 지음 / 부흥과개혁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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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 던디지역 목회자로 스코틀랜드에서는 흔치 않은 부흥을 경험했던 로버트 맥체인. 우리에게는 오히려 맥체인 성경읽기표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비록 고질적인 심장병으로 29세의 젊은 나이로 미혼인채 요절하였지만 그의 경건을 향한 노력과 삶은 큰 은혜로 채워졌다. 무엇보다 맥체인 목사는 사람들의 인기와 명성을 누리고 싶은 욕망과 싸웠다. 그는 이것을 칭송의 정욕이라고 불렀다 한다. 그러고보면 우리 마음에 사람들에게 높아지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많은가 새삼 생각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마음을 간과하지 않고 항상 책망하면서 겸손을 갈구했다. 그의 경건이 돋보이는 부분이었다. 무엇보다 사람들은 그의 설교 메시지도 은혜였지만, 그가 강단에 올라설 때부터 느껴지는 비상한 거룩함이 큰 감동이었다고 말한다. 정말 인상적이었다. 말 뿐인 경건이 아닌 그의 모습에서부터 후광처럼 퍼져나는 그런 경건의 능력이 있었고 그것이 부흥의 큰 원동력이었다. 부흥은 분명 성령님의 강한 역사이다. 그러나 부흥은 필연적으로 경건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주님의 크신 역사를 보고, 그 일을 원하는 사람에게 경건은 얼마나 필요한 노력인가 다시금 상기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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