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보석_2012.02.14
(Subject : 그리스도인의 정체성-나는 그리스도인인가12.)
(시편7:10) 나의 방패는 마음이 정직한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있도다
정직에 관한 가장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성경인물이 있다면 분명 다윗일 것이다. 우리에게는 수많은 성경의 위인들이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특별히 다윗의 일생과 삶의 은밀한 부분까지 우리로 하여금 들여다볼 수 있게 성경을 기록해주셨다. 마치 그것은 경주 대릉원에 가서 천마총을 보는 것처럼 느껴진다. 고분들을 그저 밖에서 보고 있는게 아니라 그 안으로 들어가 고분의 내부를 들여다보면서 감상할 수 있듯이.
다윗은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은 사람이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역시 다윗을 사랑한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다윗은 참으로 사랑을 많이 받는 사람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다윗만큼 수많은 대적과 많은 위협을 겪은 인물도 많지 않다. 어찌보면 다윗은 수많은 대적과 위협을 지나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 남았기에 마지막 그가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것일 게다.
한편, 우리가 다윗을 보는 것과 반대로 다윗이 자신을 바라볼 때는 어떨까? 우리가 다윗을 사랑하는 이유는 그의 허물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정직에 집중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사실 다윗의 입장에서 보면 그의 적나라한 죄상이 적나라하게 까발라진 입장에서 자신의 허물을 생각할 때 많은 고통도 감수해야 했다.
유독 다윗이 우리에게 많은 위로를 주는 이유가 있다. 그의 특별한 범죄에도 불구하고 그의 정직한 회개와 양심이 하나님 앞에 열납되었고, 보통의 사람들보다 더 귀하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의 반열에 올라갔다. 그러나 반대로 다윗의 위대한 대적 사울을 생각해보자. 성경을 보면 사울이 도덕적으로 범죄했다는 기록을 찾아볼 수 없다. 물론, 실제로 그가 얼마나 도덕적이었는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사울의 삶에서는 어떤 눈에 띄는 범죄의 행적이 없다. 다만, 사울은 하나님 앞에서 전혀 정직한 사람이 아니었다. 사무엘을 대신에 제사를 지낸 것, 아말렉을 진멸하지 않은 것, 다윗을 죽이려고 한 것 등 그는 순종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것이 그가 망하게 된 가장 치명적인 원인이다.
그러나 다윗을 보자. 그는 수없이 실패했다. 그의 잘못들을 유심히 보면 그는 참으로 그 답지 못할 때가 너무 많은 사람이었다. 그는 위대한 장군이자 시인, 왕이자 하나님의 사람이면서도 때때로 그릇된 판단과 무절제로 오점을 남기곤 했다. 그러나 그가 사울보다 더 위대해졌다. 이유는 단 하나. 그가 정직했기 때문이다. 다윗은 늘 자신의 실패와 잘못에 대해 하나님 앞에서 상한 심령으로 나아간 사람이다. 그는 범죄하고는 이내 자신의 상태와 문제에 대해 하나님 앞에서 탄원했다. 긍휼을 구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우리는 알게 된다. 하나님은 강하고 유능하고 조금도 흠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연약함을 알고, 늘 자신의 양심과 마음을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쏟아내고 무릎을 꿇을 줄 아는 사람을 사랑하신다. 다윗은 그러한 하나님을 경험함으로 이렇게 말했다.
(시편51:17)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이 말씀 속에서 우리가 찾아야 할 중요한 진리가 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이다. 우리가 늘 완전하여서 하나님 앞에 조금도 꿀릴 것이 없는 완전함을 갖춰야만 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완전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의무는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충분히 아신다. 오히려 하나님은 오점이 있지만 하나님 앞에서 상한 심령으로 나아갈 줄 아는 사람을 더 사랑하신다. 사울은 하나님 앞에 상한 마음으로 나아가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바리새인과 세리가 성전에서 기도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행위가 의로웠던 바리새인은 조금도 상한 심령으로 하나님 앞에 나갈 필요가 없었다. 그는 떳떳했다. 그러므로 그는 상한 심령을 배우지 않았다. 하나님은 그런 의로운 마음을 서글프게 바라보신다. 왜?
(욥22:3) 네가 의로운들 전능자에게 무슨 기쁨이 있겠으며 네 행위가 온전한들 그에게 무슨 이익이 있겠느냐
우리가 의롭다고 해서 하나님 앞에서 당당하고 떳떳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 오만이다. 우리는 늘 겸손해야 한다. 우리는 완전함 속에서도 자신의 부족과 연약을 재발견하는 가운데 하나님 앞에서 상한 심령을 가질 줄 알아야 한다. 그런 사람이 진정한 의인이다.
욥이 왜 그 많은 고난을 받았던가. 바로 앞서의 욥기서의 고백이 욥이 깨달은 진리였던 것이다. 욥은 바리새인처럼 의로웠다. 적어도 욥 역시 하나님 앞에 바리새인처럼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정말 정직하고 순전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럼으로 그는 자신의 순전함을 의지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었다. 그럼으로 해서 그는 상한 심령으로 자신의 부족과 연약함을 체험하지 못했다. 하나님은 그런 욥을 사랑하셔서 그로 하여금 고난을 통해 그가 자신의 의를 의지하지 않고, 상한 심령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오며 모든 자신의 완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 것도 내세울 것이 없음을 깨닫게 하셨던 것이다. 즉, 단련하여 정금같이 되게 하신 것이다. 정금. 의로울 뿐만 아니라 상한 심령과 연약함을 알고 자신을 낮추며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된 것이다.
모든 것이 완벽해보이고 잘 갖춰진 사람은 늘 일등이고, 우월해보이지만 부족해서 늘 상심하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고 다시 노력하며 자신을 만들어가는 사람. 그 사람에게 특별한 아름다움이 있다. 바로, 그런 넘어짐과 세워짐의 반복을 통해 삶과 자아와 인생에 대해 깊은 것을 통찰해간다는 것이다. 그것은 늘 일등만 하는 우월한 인자의 사람은 배울 수 없는 것이다. 정말 우리 심령의 깊은 곳을 감성하는 사람이 누구인가?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많이 부러졌지만 끊임없이 재기해본 사람이다. 마치, 사울이 아니라 다윗처럼. 그래서 우리는 다윗에게서 위로를 받는다. 그의 시편은 우리 신앙의 가장 큰 위로의 시(時)이다.
그리스도인. 우리가 정말 배워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정직함이다. 그리고 상한 심령이다. 다윗은 정말 수치스러운 죄를 우리에게 들켰다. 그러나 그가 아름다워진 것은 그 모든 것에서 하나님 앞에서 정직해졌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그의 허물조차도 아름다움으로 재기되었다.
내가 가장 크게 고통 받는 게 있다. 내가 정말 정직하지 못하다는 진실이다. 내 삶의 많은 모양과 구석에서 나는 정말 정직하지 못하고, 위선적이다. 그러므로 그것이 나를 상하게 한다. 나의 거짓에 대해 무릎을 꿇을 때 나는 내가 정말 그리스도인인가 되묻곤 했다. 그리고 다윗에게 도움을 청한다. 나는 정말 떳떳하지 못한 위선과 거짓말쟁이지만 나 역시 다윗 당신처럼 하나님 앞에서 다시 정직해지게 해달라고 말이다. 그리고 긍휼을 입을 수 있게 해달라고 말이다. 다윗이 가진 정직한 양심 그것이 나에게도 동일한 소유가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