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턱 이야기_2010.12.30

(잠 17:19, 개역) 『다툼을 좋아하는 자는 죄과를 좋아하는 자요 자기 문을 높이는 자는 파괴를 구하는 자니라

얼마 전 한참 어린 자매님과 이메일로 교제를 나눈 적이 있다. 자매님은 나를 위한 조언을 많이 해주었다. 매우 조심스러워 하고 한편으론 자신의 행동에 대해 걱정도 하면서 말이다. 나는 그녀를 안심시켜주고 싶었다. 오히려 마음을 터놓고 얘기하고, 조언을 해주는 것은 나에게 더욱 좋은 일이다.

세상에서 언제부턴가 ‘열린경영’이란 말이 보통명사처럼 쓰이고 있다. 그룹 총수들이 앞다투어 직원들의 게시판에 글을 남기고 언제든지 자기에게 메일을 넣어달라고 이메일 계정을 개방해둔다. 직급의 수직관계가 주는 부자연스러움과 권위를 벗고 동일한 위치에서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하겠다는 것이다.

우리도 더더욱 그러하다. 부장교사? 그건 교회학교 안에서 봉사를 위한 하나의 질서 차원에서 주어진 것일 뿐 계급과는 전혀 어울리지도 않는 호칭이다. 그러므로 언제든지 어느 교사에게든지 ‘교제를 한다.’라는 대원칙 앞에서 우리 서로는 그저 형제요, 자매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내게 조언과 권면을 해주는 어린 자매님이 좋다. 누군가는 후환을 두려워해서 말하길 꺼린다. 그러나 나는 정말 그런 건 싫다. ‘어른’이란 개념, ‘부장’이란 개념. 그런 것이 교제를 막는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그것은 ‘저는 당신의 복수가 두렵군요.’, ‘저는 당신을 불편하게 생각해요.’란 의미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나의 문턱을 낮추어 놓고 누구든지 가벼운 마음으로 넘어 들어와 교제할 수 있었음 좋겠다. 그것이 나를 안전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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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2011-01-04 1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형제자매님들이 불편해하지 않고 편하게 나에게 교제를 청한다?!
정말 기쁜일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