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기다림_2012.02.27
(Subject : 그리스도인의
정체성-나는 그리스도인인가17.)
(시 40:1-3) 『[다윗의 시, 영장으로
한 노래]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 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케 하셨도다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많은 사람이 보고 두려워하여 여호와를 의지하리로다』
다윗은 정말
많이 기다려본 사람이었다. 다윗은 이새의 여덞번째 말째 아들로 태어나 시골의 촌뜨기 목동의 때에 여호와의
기름 부으심을 입었다. 그리고 그가 위대한 다윗왕이 되기까지는 오랜 기다림과 훈련과 연단의 시간을 통과해야만
했다. 그것만 봐도 다윗은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고도 오랜 시간을 인내 가운데 기다렸던 사람이다.
그리스도인에게
많이 기다린다는 것은 사실 가장 그리스도인다운 것이며, 가장 필요한 훈련 중에 하나이다. 기다림이 부족한 채로 무엇인가를 이룰 수 있고, 얻을 수 있다면
우리는 점점 더 인내하고 기다리는 내공을 배울 수 없다. 부족한 기다림은 부족한 완성을 의미한다. 사울은 기다려 본 사람이 아니다. 그는 특별한 훈련의 시간이 없이
기름부음을 받고 이내 왕좌에 올랐다. 그는 기다림의 미학을 배워보지 못했다. 그러므로 그는 처음부터 기다려야 하는 고비가 올 때 실패했다. 사무엘이
이레를 기다리고 할 때 실패했다.
기다림은
겪어본 사람만이 안다. 기다림은 지독한 고독과 외로움의 시간이다. 또한,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고 무기력하게 느껴지는 시간이다. 그러므로 기다림은
사람으로 하여금 가난하게 만들어준다. 자신을 한없이 낮아지게 만들어준다. 욥은 고난의 시간을 인내하고 기다리면서 하나님 앞에서 아무 것도 아닌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다윗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아무도 다윗과 같은 기다림에 대해
배워본 적이 없다. 시편에서 보여지는 다윗의 고독과 절규, 하나님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던 그 갈망을 곁눈질해볼 때. 다윗이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기다리면서 얼마나 한없이
낮아졌고, 심령으로 쏟아졌고 하나님을 찾았는지 모른다. 그리고
알 수 있다. 하나님은 바로 그 부르짓는 다윗을 보고 싶어하셨음을.
하나님은
결코 잔인한 분이 아니셨다. 그러나 잔인하리만큼 지독한 고독과 외로움을 맛보는 기다림을 다윗에게 주셔야만
했다. 왜냐하면 다윗을 진정으로 행복하고 기쁘게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배부른 자에게는 꿀이라도 싫다고 했다. 그것은 부족하지 않은 자의
비정상적인 현상이다. 그들은 만족할 수 없고, 기쁠 수 없고, 행복할 수 없다. 정상적인 감정과 만족을 경험하지 못한다. 주린 자는 쓴 것도 달다고 했다. 참된 가치와 깊은 은혜와 진리를
고난 중에서도 찾아낼 수 있는 것이다.
다윗은 말한다. 한없이 하나님을 구하고 찾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며 자기의 심정을
쏟아부었었다고. 그리고 그 뿌리깊은 기다림을 넘어 하나님을 만났을 때,
하나님은 자신을 기가 막힐 웅덩이에서 건져주시는 하나님이셨다고 말이다. 그것은 탄성이다. 그 기막힐 웅덩이가 무엇일까? 그것은 결코 도무지 아무도 벗어날
수 없는 무저갱 같은 웅덩이인 것이다. 세상의 그 무엇도 구원해줄 수 없는 웅덩이, 하나님 조차도 건져내주시지 않을 것처럼 보였던 그런 심연의 깊은 수렁을 다윗을 경험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기다리고 기다려도 오랜 시간 하나님을 만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을 기대하고 기다리지만 만날 수 없다라는 사실 자체가
우리에게는 모든 수렁으로부터 다시는 벗어날 수 없고, 회복될 수 없는 것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던 다윗은 그 심연의 깊은 수렁으로부터 하나님을 기어이 만났던 것이다. 그리고 그날의 하나님은 곤란과 곤핍, 환란과 눈물, 징계와 고독, 고통의 모든 수렁과 심연의 늪에서 건져주시는
긍휼의 하나님이셨다. 다시는 디디지 못할 것만 같던 그 반석 위에 자신의 걸음을 견고케 해주시는 기적과
은혜와 긍휼의 하나님을 만났던 것이다. 그러므로 다윗은 긍휼의 풍성하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회복되었으며, 웃음을 되찾았으며, 만족과 즐거움을 회복했다. 한없는 기쁨과 은혜에 대한 감사함으로 인해 새 노래와 찬송으로 부르고 또 부르게 되었다. 그렇게 다윗은 그 뿌리깊은 기다림의 시련을 관통하고 지나쳐 승리하였던 것이다.
기다림의 승리!
기다린다거나
참는다거나 인내한다는 것에 대해 우리는 항상 배우고 듣는다. 그러나 단순히 구원을 기다린다든지 은혜와
긍휼을 기다린다라고 생각해버린 오산이다. 우리는 결국 기다린다는 것을 통해, 기다림은 승리라는 공식과 의미를 경험해야만 한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든지 기다림의 승리를 맛보아야 한다. 그것은 진정으로 수렁으로부터 건지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이며, 긍휼의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이며, 궁극적으로 우리의 기다림과 인내는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임을 깨닫는 것이다.
우리의 주어진
환경의 곤란, 사람의 곤란, 육신적인 곤란, 인격적 곤란. 우리의 곤란의 종류와 유형은 너무나 다양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단순히 그러한 다양성의 곤란이 회복되는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물론, 표면적으로는 그렇게 보일테지만. 사실 알고 보면 결국 그 모든 것에 대해서 반석을 주실 수 있는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이 우리 기다림의 궁극적인
목적이다. 우리의 곤란 중에 긍휼의 하나님이 다가와주시는 것을 발견하는 것. 그것이 곤란으로 인해 슬픔 중에 있는 우리가 회복되는 그 처음이며, 최종
완성이다. 우리는 결국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고, 그 긍휼하신
하나님을 노래 부르게 되는 것이 결론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또
생각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왜 그토록 우리로 하여금 곤란 중에 인내하고 기다리게 하시는 것인지.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다리며, 긍휼의 하나님께 부르짖고
회복되는 것을 경험하기를 원하시고 계신 것이다. 얼마나 하나님의 긍휼의 풍성하신 분인지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짖게 만드신다. 그
인내과 고독과 슬픔 속에서 말이다. 그러므로 기다림 끝에 만나는 은혜의 하나님을 경험함으로 기막힐 웅덩이에서
건져질 수 있음을 깨닫게 하시고, 진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며 하나님을 새 노래로 찬양하게
하시길 원하신다. 왜냐하면, 하나님 역시 우리를 한없는 긍휼의
찢어지는 가슴으로 사모하고, 기다리고 계시기 때문이다. 다윗이
그렇게 기다릴 때 하나님은 다윗을 만나주실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다윗을 만나주시고 싶었던
것이다. 긍휼에 사무치는 하나님의 마음이 다윗을 부르짖음에 응답하지 않으실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도 그렇게 다윗을 간절히 기다리셨다.
그러므로
기다림이란 우리 편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편에서도 동일하게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낮아진 심령과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그 간구하는 심령의 순결한 갈망을 얼마나 기다리고 계신지 모른다. 그러므로
우리도 기다림을 배워야 하며, 기다림을 경험하여야만 한다. 그것을
통해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심령도 다시금 깨닫게 된다.
환경에 대한
모든 불필요한 오해와 한계를 상상할 필요는 아무 것도 없다. 우리가 그저 순전한 심령으로 간절히 하나님을
바라고, 기다릴 수 있다고 한다라면 우리는 그저 그 헤아릴 수 없는 깊은 웅덩이와 수렁에서 기가막히게
건지셔서 견고한 반석 위에 놀랍게 세워주실 하나님을 경험하게 될 뿐이다. 그것은 오직 깊은 기다림을
통해서만 경험하게 될 놀라운 환희가 될 것이다. 잠잠히 하나님을 기다린다. 새 노래로 찬양하게 될 그날을 미리 기대하고, 즐거워하며 긍휼의
풍성하시니 하나님의 여린 마음에 하나님을 찾는 뜨겁고 순결한 나의 마음을 전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