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의 장애_2012.02.16

(Subject : 그리스도인의 정체성-나는 그리스도인인가13.)

 

(사무엘상15:30) 사울이 가로되 내가 범죄하였을찌라도 청하옵나니 내 백성의 장로들의 앞과 이스라엘의 앞에서 나를 높이사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나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다윗의 보석이 정직함이라 한다면 반대로 사울의 장애는 체면이었다. 우리는 다윗과 사울이 얼마나 서로 대조적인 두 사람인지 발견할 수 있다. 다윗과 사울은 하나님 앞에서 성패가 나뉘어지는 두 종류의 인간상을 절묘하게 엮어낸다.

 

다윗은 왕이었다. 그러나 다윗은 왕자는 아니었다. 그는 일개 시골촌뜨기 말째 목동이었다. , 그는 아무 것도 내세울 것이 없는 변변찮은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어떤 특별한 감수성이 있었다. 그는 인간적인 감수성 뿐만 아니라 영적인 감수성을 겸비한 다재다능한 면을 갖고 있었다. 하나님은 다윗을 유심히 보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다윗에게 비전을 주신다. 그러나 하나님의 방법은 그에게 보여주신 비전과는 전혀 반대로 상황을 만들어갔다. 하나님은 다윗의 가시밭을 예비하셨다. 하나님은 그를 불러서 세우시기 전까지 특별한 훈련을 통과케 하셨다. 왜냐하면 다윗에 대한 하나님의 특별한 애정 때문이었다. 그 수난의 기간을 통과하면서 다윗은 그의 천부적인 감수성을 하나 더 갖추게 되었는데, 바로 그것이 정직함과 상한 심령이었던 것이다. 다윗은 너무나 곤란을 많이 겪었기에 하나님의 엄위하신 징계를 두려워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엄하심을 몸소 체험하면서 결코 하나님 앞에서는 강할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배웠으며, 하나님 앞에서 부정직할 수 없다는 것을 배웠다. 그는 결코 하나님을 속일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연약함으로 범죄하기는 했지만 정말 하나님의 징계를 두려워했고, 그래서 두렵고 상한 심령으로 하나님 앞에서 무릎 꿇고 정직하게 자신의 죄를 자백하곤 했다.

 

그러나 사울은 달랐다. 사울도 변변찮은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는 어떤 특별한 수난의 과정을 겪어보지 못했다. 성급히 왕좌에 오른 사울은 너무나 쉽게 권력과 부와 명예를 얻고 말았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의 기득권, 자신의 명예를 잃는 것에 특별한 공포심을 가졌다. 하나님보다 그것이 더 두려웠던 것이다. 그럴만 한 것이 사울은 낮아짐을 겪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윗이 왕이 되기 전까지 비참해져 봤다면 그리고 군대장관이면서도 도망자 신세가 되어보고, 왕이면서도 도망자 신세가 되어보면서 하나님의 징계와 엄위하심을 체험하면서 겸손을 배워봤다면. 사울은 그런 적이 없었다. 그는 어느날 갑자기 굴러 떨어진 왕좌와 권력과 부와 명예로 인해 드높아진 자신의 위상에 익숙해져가면서 차츰 그것을 잃는 것을 심하게 두려하기 시작했다. 그 두려움에서부터 평생에 다윗을 죽이려는 그릇된 야망도 생기게 되었던 것이다. 사울에게 추락이란 것은 죽음보다 더 끔찍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사울의 마지막 죽음의 장면도 생각해보자. 할례 받지 않은 자의 칼에 죽는다는 것이 자기 체면을 깎을 것 같아서 자살을 선택한 사람이다.

 

그것이 바로 사울의 장애였다. 사울에게 정직함이란 것은 거의 무모한 것이었다. 사울은 거의 정직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해보지 않은 사람일 것이다. 대부분의 상황 속에서 사울은 자신의 체면에 병적으로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부정직하고, 불순종하는 것을 조금도 망설이지 않으면서 극단적인 체면유지에 목을 매다시피 했다. 사울이 아말렉을 진멸하지 않았을 때도 어떠한가. 그가 불순종한 것은 백성들의 바람에 부합하면서 자신의 인기를 떨어뜨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무엘이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분명한 불순종임을 책망하고, 동시에 하나님 앞에 버림받게 될 것이라고 조차 저주를 예언하는데도 고작 사울의 답변은 이것이었다.

 

내가 비록 범죄하였을찌라도내 백성의 장로들의 앞과 이스라엘의 앞에서 나를 높이사

 

,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범죄했다는 사실에 대해 사울은 조금도 개의치 않았던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한다든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지 않다든지 자신을 속이고 기만한다든지 그 모든 것이 사울에게는 부차적인 문제였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오직 자신의 체면을 지켜내는 것이었다. 사울은 하나님의 종이 아니라 자기 체면의 종이었던 것이다. 사울은 그렇게 하나님 보다도 자신을 더 높이고, 자신을 깊이 사랑했다. 사울은 결코 초라해지고 싶지 않았다. 초라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놀랍지 않은가?

 

그리스도인은 좋은 군사로 부르심을 입고, 이제 날마다 훈련 받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우리 역시 훈련을 싫어한다. 우리는 낮아진다거나 고난이나 징계로 인해 초라해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만약,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그런 훈련과 낮아짐을 경험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언젠가 사울이 되어 있을 것이다. 초라해지는 자신을 견딜 수 없으며, 사람들의 시선을 견딜 수 없게 된다. 사울은 불행한 사람이었다. 그에게 다윗과 같은 수난과 모욕의 시기를 거쳐 영광을 얻는 뿌리 깊은 경험들이 있었더라면 적어도 사울은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런 사람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윗은 비록 초라할 때가 많았지만 그가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훈련을 통과했기 때문이다. 그의 훈련은 훗날 그가 왕이 되어서도 낮아지는 것을 겸허히 받아들 수 있게 해주었다. 다시 하나님을 의뢰하고 그 앞에서 통회하고, 정직해질 수 있도록 해주는 밑거름이 되었다. 언제든지 유능한 사람은 결핍을 경험해본 사람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유능함을 얻는다면 그는 곧 장애를 소유하게 되는 것이다. 바로, 체면이라는 장애. 그 체면 때문에 결코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정직해질 수 없는 장애를 겪게 된다.

 

하나님은 다윗과 사울의 대조적인 모습을 통해서 우리에게 분명 교훈해주실 수 있다. 훈련을 싫어하고 낮아지고 초라해지는 것에 익숙해지지 않는 우리 자신으로 하여금 다윗을 거울 삼아 그 훈련을 배우도록 하라고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나 자주 그런 곤란을 겪는 것에 대해 어려워한다. 우리는 사실 많은 모습 속에서 다윗이기 보다는 사울적이다. 사실 우리는 우리의 명성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모른다. 우리는 너무나 자주 정직하지 못하다. 사울처럼 체면 때문에 거짓을 선택하곤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참됨은 분명 정직함이다.

 

하루를 살아가면서 또는 나의 생활을 돌이켜볼 때 나 역시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왜냐하면, 나의 명예와 체면, 나의 안전과 이익을 위해 너무나도 익숙하고 자연스럽게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거짓말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곳이 교회이든 형제, 자매이든. 회사이든 이방인이든 가리지 않고 나는 나를 위해 거짓말을 한다. 마치, 사울처럼 말한다. ‘내 백성의 장로들의 앞과 이스라엘의 앞에서 나를 높이사’.

 

얼마 전에도 나는 나의 실수를 교묘히 감추기 위해 꾀를 냈다. 정직하게 그것에 대해 재검토를 거치지 않았다. 왜냐하면 책망이 두렵고, 내가 쌓아둔 신뢰에 금이 갈까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나는 마치 장로들과 백성들 앞에 있는 사울과도 같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절묘하게 나의 부정직함을 드러나게 하셨다. 그러므로 정말 내 신뢰에 금이 가게 되었다. 그 순간 나는 그것을 뭍어 둘 수 있게 해주지 않은 하나님에 대해 처음엔 난감해했다. 그러나 이내 내가 부정직함에 대해 난감해하지 않고, 부정직을 감출 수 있게 돕지 않은 하나님을 난감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면서 기겁을 했다. 나는 완전히 사울이었던 것이다. 정말 믿을 수 없게도, 사울의 모습 그대로 나는 부정직이라는 그리스도인에게 걸맞지 않는 범죄는 아랑곳 않고 하나님을 난감해하면서 사람들 앞에서 나의 체면을 지키지 못할까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것이 내 생활의 곳곳에서 아기자기하게 반복되는 거짓과 타락과 위선들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헤아릴 수 없는 나의 소소한 부정직함에 대해 슬퍼하면서 그리고 어찌할 수 없는 거짓의 조합들 앞에서 한없이 슬퍼하고 괴로워했다.

 

나는 정말 그리스도인일까?’ 그러면서 말이다. 공중전화 부스에 있는 그 스튜처럼 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위선으로 감추고 꾸미며, 속고 속이는 게 내게 있어서는 내 삶의 한 구석에 있는 비참한 단면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모든 이들에게 죄송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내가 당신을 속였던 것만큼 나를 용서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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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 2012-02-24 1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자신의 부도덕함과 결점들을 드러내기 싫어할때가 많이 있습니다.
어떻게든 하나님이 드러내시겠지만..그 이후에 나의 태도가 사울이냐 다윗이냐가 중요한것 같습니다. 하나님앞에 정직하면 사람들 앞에서도 정직히 행할 수 있으며 당당해집니다.
그러나 사람들과 형제자매님 앞에서 정직하지 못하면 하나님과의 관계도 정직하지
못함을 발견하곤 합니다. 결코 다를 수 없기 때문이죠.
이번 묵상을 통해서 나의 태도를 되돌아보게 되어 감사가 됩니다.
그리고 말씀으로 자신의 사울 된 모습을 반성하고 되돌아보는 당신이야말로 다윗의 태도를 가졌네요.

BH,G 2012-02-25 1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ㅎㅎ 격려해주셔서 감사해요. 다윗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