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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받은 그리스도인에게 보내는 편지
진 에드워즈 지음 / 예수전도단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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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공동체에서 종종 일어나고 있는 전체주의 현상에 대한 통찰을 보여주는 책이라 생각된다. 물론, 대부분의 전체주의적 독재는 기독교 이단에서 많이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지만, 그 규모와 현상에서 그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소규모의 기독교 공동체에서도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다.


성경말씀은 진리이지만 인간에 의해 매우 유리하게 수단과 도구가 될 수 있음으로 해서 진리를 가장한 다른 동기와 목적으로 사람들을 권위주의 아래 독재로 가두는 현상을 잘 관찰해내고 있다. 교회가 읽어봐야 할 일종의 기독교 교양서적에 가깝기도 하다. 물론, 상담의 측면에서도 유용한 책이다.


더욱 다행인 것은, 저자가 단순히 이러한 문제점을 비판하고 분별하는 분별력만 제공하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지는 않다. 아무리 올바른 기독교 공동체 모임이라 할지라도 사람이 모이는 조직인 만큼 상처 받는 일과 권위적인 현상은 전혀 분리되지 않을 수 있다. 즉, 저자의 말처럼 지도자 역시 한 명의 인간이기에 그의 기질적인 면이 상당히 많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다른 의미에서는, 지도자의 성숙하지 못한 인격일 수 있다. 그가 올바른 진리의 선포자라 하더라도 미숙한 인격과 기질적 부정적 면모로 인해 상처를 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상처 받는 그리스도인들이 그 상처에만 매몰되어 완전히 망가져 버리는 절망에 이르는 것이 무모하고 위험한 것임을 잘 이해시켜준다.


또한, 상처받은 그리스도인들이 오히려 교회의 독이 될 수 있는 문제까지 나아간다. 반복적으로 그 실패에 갇혀 그것을 선전하고 주위 사람들까지 전염시키는 문제 말이다. 이런 총체적인 관찰을 통해 저자는 균형잡힌 시각에서 접근하고 있고, 더불어 교회를 분열시키는 것 역시 올바른 것이 아님을 잘 이해시켜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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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열애
진 에드워즈 지음, 최요한 옮김 / 죠이선교회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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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서점 매니저들을 대상으로 투표를 한 결과, "20세기에 쓰인 책들 중 시대를 초월하는 가치를 지녔다고 생각하는 책은 무엇입니까? 지금으로부터 100년 후에도 서점의 서가에 꽂혀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책은 무엇입니까? 여전히 발행되는 책은 무엇일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여전히 사랑받는 작품은 무엇일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투표한 결과, 단 세 권의 책이 뽑혔는데 그중 한 권이 바로 이 책 '신의 열애'라고 한다는 소개글이 책표지에 인쇄돼 있다. 그래서 기대를 많이했다.


물론, 소설을 드라마처럼 펼쳐 놓은 이야기꾼다운 작가의 능력과 상상력은 워낙 출중하다. 젊은 이들에게, 초신자들에게도 매우 유익한 책이 되리라 생각한다. 감성적인 사람에게도 좋은 책이다. 그냥 성경으로만 읽었을 때 보통은 느끼기 어려운 감흥의 풍부함을 제공해주는 책이라 생각한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성경 속 이야기 자체만을 풍성한 상상력으로 더욱 감흥을 돋우어주며 다가서기 쉽고 이해하기 쉽게 풀어낸 소설이라면 그 나름대로의 흥미롭군. 성경을 더 이해학 쉽네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마저도 어떤 이들에게는 이럴 거면 그냥 성경을 읽으면 되지. 왜 소설을 읽어야 하지? 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거다.


십자가 죽음과 사망의 권세 사탄의 영적인 영역을 소설로 다루다보니 비록, 이것이 읽는 누구에게나 그냥 소설일 뿐임을 인지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철저히 작가의 상상력에 근거한 영적인 사건들을 너무 많이 다루고 있어서 난감하다. 작가의 상상력이 얼마나 실제와 오버랩이 될지 모르겠으나,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것을 상상한다는 것은 철저히 개인적인 감흥이기에 대중적인 책으로 묘사한다는 것이 얼만큼 유익한 일인지 모르겠다. 


소설을 성경처럼 믿지는 않을 일이지만, 매우 조심스러운 일인 것만은 분명하다. 가령, 천로역정의 경우 철저히 소설이지만, 모든 사건과 인물, 배경이 픽션이기에 그 픽션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드을 픽션그대로 접근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이 책은 성경 사건 자체를 다루면서 작가의 상상력, 픽션이 가미된 것이기에 유감스럽단 의미이다.


무엇보다 성경 그 자체만 놓고 보더라도. 성경이 하나님과 영적 세계를 매우 선명한 칼라 사진처럼 우리에게 보여주지 못한다. 성경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하나님과 영적인 세계는 물질의 세계와는 차원이 다른 세계이기에 성경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하나님조차도 극히 일부이다. 바울도 얘기하지 않았던가. 지금은 거울을 보듯 희미하다고(당시 청동거울)... 


성경을 이해하는 것에 있어서도 많은 오류를 범할 수 잇는 현실이기에,, 명확한 기독교의 정통 교리? 복음. 십계명 등 명확히 선악을 구분할 수 있는 것들. 삼위일체. 십자가 보혈의 속죄. 명확한 것이 아닌 많은 신앙의 부분들이 동기나 목적에 따라 상황이나 환경에 따라 선이기도 하고 악이기도 할 수 있는 영역들이 신앙 안에 많이 존재한다. 성경이 오류가 있고 말씀이 불안정한 것이어서 아니라 인간의 글과 지식으로 이해할 수 있게 전달된 성경이 하나님과 영적세계 전부를 선명하게 알려줄 수 없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성경을 손에 쥔 우리조차 그 영원하고 끝없는 하나님에 대해 얼마나 알겠는가....


성경의 사건들을 직접 소설화 시키면서 거기에 작가의 상상력으로 빗어진 영적인 세계까지 풀어낸다는 것은 대단한 시도이기도 하지만, 어떤 측면에서도 다소 무모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것이다. 천상에 가서 이 소설을 천상과 비교해볼 때 상당부분 다르다면 어쩔 것인가?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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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다니엘 학습법 - 김동환 목사님의, 개정판
김동환 지음 / 고즈윈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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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신앙서적, 경건서적이라 하면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설교나 지침이 많다. 물론, 청소년을 위한 신앙도서가 있긴 하지만 그 조차도 성인을 대상으로 청소년 사역이나 지침을 주로 많이 다룬다. 그에 반해 이 책은 어린이 본인이 직접 읽을 수 있는 신앙서적이라 할 수 있다.


제목만 놓고 보면 단순히 신앙적 공부법을 안내하는 지침정도로 생각되지만, 그 보다 확장하여 어린이가 어떤 목적과 방향을 가지고 공부를 하는 것이 맞는지 두루 다루고 있다.


십자가에 피흘려 죄값을 갚아주신 예수님께 감사하는 마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함이라는 삶의 목적을 분명히 두고 어떤 마음과 자세로 그리스도인으로서 공부하고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지 알 수 있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성장하고 스스로 책을 읽고 방향을 잡아 갈 수 있을 때가 된다면 꼭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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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 학부모와 자녀가 꼭 알아야 할 25가지 문제 - 내 가족과 한국 교회와 대한민국을 살리고 지키는 방법
김동환 지음 / 하임(도서출판)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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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은 크리스천 학생들이 물어오는 가장 많은 질문 25가지란 명제 하에 철저히 성경말씀에 근거한 신본주의적 지침을 제공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특별히 저자가 인본주의적인 세상문화를 극히 주의하고자 하는 의지가 많이 느껴졌다. 그리고 반복적으로 죄를 위해 피흘려 죽어주시고 핏값으로 구원해주신 예수님을 언급하고 있다. 목사님이 보혈에 기반한 복음을 믿는 믿음으로 신앙을 갖고 있음을 충분히 암시해주는 부분이다.


책을 읽으면서 사춘기를 보내는 자녀가 부모 공경의 도리를 충분히 배우도록 가르쳐야 된다는 부분과 주일을 보내는 방법, 이성친구, 왕따 당할 때, 공부하는 목적 등은 익히 알면서도 유념치 못했던 부분들을 잘 짚어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크리스천 학부모와 자녀들에게 좋은 신앙의 지침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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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의 칠십 이레
알바 맥클레인 지음 / 생명의말씀사 / 198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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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의 대표적인 예언서에 해당하는 다니엘서 중에서도 천사가 알려준 70이레의 기간과 그 사건에 대한 해석을 담고 있다. 성경에 대한 충실한 연구를 바탕으로 세대주의적 시각을 기본바탕으로 해석을 하고 있는데 매우 납득할 만한 적용과 해석을 보여주고 있었다.

 

먼저 70이레는 총 3가지로 구분되어 진다. 첫째, 7이레 둘째, 62이레 셋째 1이레 총 70이레.

여기서 7이레와 62이레가 합해져 69이레가 될 때 메시야 왕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 이레의 시작은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명령이 날 때부터라고 명시되어 있음을 주목한다. 69이레 이후에는 장차 올 또 다른 왕이 묘사되는데 그는 성전을 훼파한다. 그리고 유대민족과 언약하지만 그 1이레의 절반에 언약을 깨고 유대인의 제사와 예물을 금지시키면서 가혹한 핍박을 한다. 마지막으로 이 70이레 이후에는 죄악이 영속되며 영광스러운 미래가 열린다.

 

이레는 한 주로 이해되는데 7일의 기간이나, 성경에서는 정확히는그냥 일곱이다. 즉, 70 이레는 '70 일곱'이다. 통상 1이레를 7년. 70이레를 490년으로 본다. 유대인의 성력에는 날수를 나타내는 일곱도 있지만 연수를 나타내는 일곱도 있기 때문이다. (다른 의미에서 단순히 1이레를 한 주로 해석해서 1일을 1년으로 환산했다는 말이 아니란 것이다. 이런 설명을 하지 않으면 보편적으로 1일을 1년으로 간주해서 490년이 되었다고 인식해버리기 때문이다. 1일이 1년으로 단순 환산하는게 부적절한 이유로 저자는 단10장2-3절에 3이레 동안 자신이 금식했다고 했다는 표현에서 21년 동안 금식했을리는 없다는 것을 내세운다.)

 

490년의 일수에 대해서는 1년이 360일로 계산된다고 본다. 창세기 대홍수가 2월17일~7월17일 정확히 5개월인데 150일로 표현된다. 즉, 한 달이 정확히 30일로 계산된 것이다. 또한, 삼년 반, 마흔 두달, 1,260일이 정확히 한 표현임을 볼 때도 한 달은 30일로 계산되어 있다.

 

그렇다면 69이레*7년*360일=값+윤년 -> 합 173,880일. 이레의 최초 시작이 중건의 명령이라 되어져있는데 느헤미야가 중건명령을 받았다고 한 시기가 아닥사스다 21년인 주전 445년3월14일이다. 여기서 69이레의 일수를 더하면 정확히 주후 32년4월6일. 즉, 예수님이 나귀를 타고 왕으로 선포되시면서 예루살렘을 입성하신 날이 된다. 그러므로 최초 69이레는 이미 성취된 일이다.

 

문제는 마지막 1이레인데. 69이레의 다음에 바로 이어지는 연속적 견해와 공백기 견해가 있다. 저자는 공백기 견해를 변호한다. 연속적견해로 보자면 이미 사도행전초기 해당될 시기인데 이후에 있는 영광스러운 일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과 성전의 훼파가 주후 70년 이뤄진 점에서도 시기가 일치하지 않는 점 등을 근거로 든다. 특이할지라도 1이레는 69이레와의 사이에 어떤 유동적인 공백기가 있다는 것. 이미 현 시간으로 보자면 공백기는 2,000년을 지난 것이다.

 

그러므로 1이레는 아직도 미래에 있을 예언이다. 그 기간에 왕이 오는데 그는 성전을 훼파하고 유대인의 제사와 예물을 금지시킨다. 1이레의 절반인 3년반에 말이다. 그는 계시록의 적그리스도로 비유된다. 예수님도 다니엘이 말한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설 것이라고 했다. 살후 2장1-9절에 보면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할 이 가증한 존재가 활동을 하더라도 막는 자가 있어 그 중에서 옮길 때 까지 하리라고 했다. 즉, 성도들이 이 땅에 머무름으로 그의 전면등장을 막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는 휴거 이후 적그리스도가 등장할 것이라고 믿는다. 이후 나머지는 계시록에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적그리스도의 활동에 대해서는 말이다. 3년반 동안 조약을 통해 평화를 유지하지만 그 가운데 그 조약에 동의하지 않는 유대인도 있고, 두 선지자가 증거하기도 한다. 그러나 죽임을 당할 것이다. 조약의 파기 후 유대인의 대환란이 있다. 1이레가 종식되면 영원한 의가 드러난다. 영광스러운 천년왕국이다. 세대주의적 시각에서 말이다.

 

개인적으로 다니엘의 70이레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지만, 무엇보다 적그리스도의 등장을 막는 자가 바로 성도란 사실에 매우 인상깊었다. 즉 성도의 존재가 공백기의 기간을 좌우하고 있는 하나님의 key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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