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서쪽으로 가자_2013.08.06
(Subject: 그리스도인의 정체성-나는 그리스도인인가79.)
(창 12:4)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 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라함과 그의 아버지 데라는 갈대아 우르 출신이었다. 특히, 데라는 우상숭배자이자, 우상을 만드는 사람이었다. 데라는 그의 가족들을 데리고 서쪽인 가나안으로 이주하기 위해 여정을 시작한다. 가나안을 가기 위해서는 서북쪽에 위치한 하란을 거쳐서 다시 서남으로 이동해야 했다. 지도상에서 보면 갈대아 우르와 하란, 가나안이 삼각형으로 연결된다. 마침, 데라는 하란에 머물 때 사망하고 만다. 아브라함은 낯선 땅에서 아버지를 잃고 만단. 다시 갈대아 우르로 돌아가야 할 것인가? 그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다. 하나님은 처음 여정이 목적지였던 가나안으로 이주하라고 하신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그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간다. 그리스도인은 여호와의 말씀을 좇는 사람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배척할 때 그 말씀에 순종하는 자가 그리스도인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할 수많은 이유와 핑계들이 생기기도 한다.
(창 12:10) 그 땅에 기근이 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우거하려 하여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가나안에 당도한 후 그 땅에 지독한 기근이 생겼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생존을 위한 보다 나은 선택으로 애굽으로 이주하게 된다. 그러나 거기서부터 아브라함의 첫 불행은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는 애굽에서 그의 아내 사라를 바로에게 빼앗기고 만다. 오히려 아브라함은 사라를 팔아버렸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매우 소심하고 두려워하며, 조금도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하는 연약함을 목격하게 된다. 이 모든 굴욕과 수치는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던가. 불과 창세기 12장의 4절과 10절 사이에 이 큰 모순은 발생했다.
하란에 머물 때 아브라함이 가나안 이주를 계속해서 추진할 수 있었던 동기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그때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서 갔던 것이다. 그러나 애굽으로 이주할 때는 아니었다. 그가 애굽으로 이주한 주된 동기는 기근이었다. 즉, 현실적인 어려움. 어떤 곤란이었다. 즉, 아브라함은 그 기근의 순간 하나님의 말씀에 귀기울어여야 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배제했다.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라는 말씀을 위배했다. 기근이라는 현실 앞에서 그는 본능적으로 이 곤란한 현실을 피하고, 보다 나은 생존의 길을 스스로 모색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본능에 충실한 것이었지 그리스도인의 윤리와 가치에 충실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그는 기근은 피했지만 사라의 정조를 버리는 또 다른 구렁텅이로 굴러 떨어졌던 것이다. 그러므로 기억할 것이 있다. 우리가 곤란한 경우를 만나야 한다라면 그것은 피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란 것이다. 곰을 피하다가 뱀에게 물린다. 우리는 필연적인 곤란을 하나님께 의지하고 정면돌파 해야 된다.
(창12:8) 거기서 벧엘 동편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는 벧엘이요 동은 아이라
갈대아 우르에서 가나안을 향하는 여정도 서쪽으로 이동이다. 이주하는 여정에서 아브라함이 장막을 친 곳에서도 서는 벧엘이고, 동은 아이성이었다. 어느 방향으로 갈 것인가. 서쪽이 분명하다. 성경에서 서쪽은 하나님의 방향, 동쪽은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는 방향으로 나타난다. 그리스도인이 나아갈 방향도 서쪽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서쪽으로 하나님의 뜻에 머무는 방향으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