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개나 벼룩_2010.11.14
(삼상 24:14) 『이스라엘 왕이 누구를 따라 나왔으며 누구를 쫓나이까 죽은 개나 벼룩을 쫓음이니이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늘 그랬지만, 항상 다윗의 일대기는 내게 너무나 많은 것을 보여주며 많은 것을 알게 해준다. 다윗은 언제나 친근하게 느껴진다. 다윗은 너무나 우리 신앙의 리얼리티즘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다윗을 사랑하는지 모른다. 그가 비록 간음죄를 지었음에도 우리는 그를 미워하지 않는다.
다윗은 10년 동안 왕의 칼을 피해 도망 다녔던 유랑자였다. 그러나 그가 처음부터 유랑자였던 건 아니다. 다윗은 종종 이렇게 소개된다. ‘그는 목동이자 시인(또는 음악가), 군인(군대장관), 왕이었다.’라고 말이다. 어쩌면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 다양한 경험이 위대한 다윗왕을 만든 것이 아니겠는가.
아버지 다윗과 아들 솔로몬이 달라도 너무나 다른 신앙의 결과를 남긴 것을 생각해볼 때, 우리는 다윗과 솔로몬이 너무나도 다른 삶을 살았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다윗은 너무나도 많이 부러져본 사람이다. 그는 조금도 하나님 앞에 강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솔로몬은 단 한 번도 부러져본 적이 없었다. 그는 서자이면서도 왕의 지위까지 받았다. 부와 명예, 지식까지 부족함이 없었다. 다윗은 선지자 나단의 한 마디에 꼬꾸라졌지만,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직접 두 번을 나타났을 때도 부러지지 않았다. 그들이 살아온 삶의 반응이다.
다윗, 목동의 말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 역시 목동이었고, 사무엘이 찾아올 때만 해도 그에게 그 어떠한 비전도 없었다. 사무엘의 기름부음은 급격한 전환점의 신호탄이었다. 일개 목동의 말째 아들에게 기름부음이 있었다.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그는 신의 선택을 받았고, 왕의 후계자로 지목되었다. 파란이었다. 그러나 이로 말미암아 그는 얘기치 않은 인생의 파란만장한 파도 속으로 나아가야 했다. 마치,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께서 광야로 나아가셨던 것처럼 말이다.
‘다윗은 만만이요 사울은 천천이니’ 골리앗을 거꾸러뜨린 다윗은 일개 영웅으로 급부상했다. 그는 즉각 군대장관으로 임명되었다. 이때부터 불편한 사울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목동이 기름부음을 받았고, 그는 군대장관이 되었다. 또한, 그는 왕의 사위가 되었다. 사울왕의 딸 미갈은 다윗을 사랑했다. 목동이 군대장관을 넘어 왕의 사위가 되었다. 파란이었다. 다윗은 근본적으로 누릴 수 없는 명예와 지위를 얻었다.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었다.
그러나 왕의 머리 위에 올라서는 그 무엇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것이 왕관이 아니라면 말이다. 사울이 던진 두 개의 창을 피했던 다윗은 아내 미갈의 도움으로 도망친다. 바로, 다윗의 급속한 성공가도가 일시에 꺾인 시기였다. 상상할 수 없는 참혹함이 찾아오고 있었다. 이전의 모든 성공은 잊어버려야 할 만큼 ‘다윗의 잃어버린 10년’이 온 것이다. ‘도피’라고 하면 몸서리 쳐질 만큼 지겨운 겨울이 찾아온 것이었다. 그리고 또 다시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었다. ‘이야, 참 다윗. 목동으로 나서 군대장관에 왕의 사위까지 아주 그냥 쌩쌩 잘 나가더만 이거 완전 왕의 눈에 나가지고 이젠 도망자 신세가 됐어. 참, 사람 일 어찌 될지 모르는 거야. 쯧쯧’
그러나 이 잃어버린 10년 속에서도 유독 다윗의 위대함을 드러내보여 주는 장면이 사울왕을 두 번씩이나 살려주는 모습이었지 않나 생각한다. 다윗의 추종자들이 사울을 죽일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했을 때, 그는 왕의 옷깃을 베고 심히 괴로워했다. 떠나가는 사울의 뒤에서 비명처럼 소리 질렀다. ‘왕을 해하려 한다고 하는 사람들의 말을 왕은 어찌하여 들으시나이까!’ 다윗은 사울을 조금도 해칠 수 없었다. 바로, 사울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았기 때문이다. 나발을 쳐 죽이려 분노했던 다윗이건만 저 철천지원쑤처럼 10년을 추적하며 죽이려는 사울에게는 조금도 어깨를 펼 수 없었다. 오직 하나, 그가 기름 부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굴욕의 다윗, 그 견고한 중심의 위대함이 드러난다.
10년 이란 세월을 칼을 피해 유랑방란 한다는 것은 얼마나 지긋지긋한 고통일까? 누가 그런 극심한 스트레스를 이겨낼 수 있을까? 만약, 나라면 1년 만이라도 그렇게 도망쳐야 할 신세가 된다면 사울을 죽일 기회가 왔을 때 두 번 생각할 것 없이 그를 찔러 죽였을지 모르겠다.
다윗이 사울을 향해 그 억울함을 호소하며 또한, 이렇게 소리쳤다.
‘하나님의 이스라엘 왕이 지금 누구를 쫓아다니고 있는 겁니까! 한낱 죽은 개와 벼룩을 쫓다니요!’
아, 다윗! 이미 기름부음을 받은 자, 위대한 군인이자 민족적 영웅, 왕의 사위. 그가 죽은 개와 벼룩이라니! 그러나 이 비명이야 말로 다윗의 진심이었다. 이것은 진실이었다. 3000년 전 그날 다윗의 모습이었다.
비전 없이 양을 치던 꾀죄죄한 꼬마 목동이 기름 부음을 받고, 골리앗을 쓰러뜨리고 군대장관 되었다. 왕의 딸의 사랑을 받으며 왕의 사위까지 신분상승을 했다. 상상할 수 없는 성공가도를 달리던 다윗이건만 이제는 더 이상 그 화려했던 추억과 승리는 죽은 개처럼 ‘과거란 무덤’에 묻혔다. 뛰어봤지 벼룩이라던, 막아둔 뚜껑에 치이다 더 이상 뛰지 않는 벼룩처럼 칼을 피해 여기저기 뛰어다닐 뿐 더 이상 안락한 삶도 생명도 보장되지 않는 도망자신세. 그의 지원자였던 아내 미갈과도 헤어졌다. 훗날 미갈을 되찾았을 때, 이 모든 어둠을 지나 왕이 된 기쁨으로 춤추던 날 미갈은 다윗을 비웃고 있었다. 그렇게 소원해질 수가...
다윗은 진심을 말했다. 이제 나는 정말 죽은 개나 벼룩일 뿐이라고. 내가 정말 기름 부음을 받았었는지, 내가 정말 골리앗을 쓰러뜨렸었는지, 내가 정말 군대장관이였었는지, 내가 정말 왕의 사위였었는지, 내가 정말 미갈의 사랑을 받았던 것이었는지... 잃어버린 10년을 지나면서 기억조차 할 수 없다라고. 누가 나를 향해 개나 벼룩이라고 조롱할지라도 나 역시 내가 내가 아니며, 할 말이 없다라고.
그리고 그 후 또, 다윗은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이는 비록 반복되는 것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겨울이 유난히 길고, 매서울지라도 봄은 다시 오는 것이며, 나를 죽이지 않는 것은 바로 나를 강하게 하는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