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발현상과 아비가일식 통찰력

어느 고교야구선수가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그는 프로야구에 데뷔하고 싶었지만 어느 구단도 그를 선택하지 않았다.  고교시절 3할을 훨씬 넘는 타율을 갖춘 선수였음에도, 달리기가 느리고 수비가 약하다는 평가받았기 때문이다. 결국 그 선수는 지명타자로 프로에 데뷔하지 못하고 두산의 연습생으로 최저연봉을 받고 입단하게 된다. 현재 그 선수는 두산의 4번 타자 김현수이다. 기아의 조범현 감독은 김현수를 놓고 ‘한국프로야구의 모든 기록을 갈아치울 선수’라고 평했다. 

한 축구선수가 있었다. 왜소한 체격에 명문코스를 밟지 못한 선수였다. 그는 프로축구에 입문하고 싶었지만 그 역시 아무도 불러주지 않았다. 그는 대학축구로 방향을 바꿨다. 그리고 또 대학을 졸업할 때 그는 프로구단의 콜을 받지 못했다. 결국 그는 일본의 클럽팀 교토퍼플상가에 입단했다. 국내에서는 그 선수를 거의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히딩크는 무명의 박지성을 불러 들이며 말했다. ‘나는 그의 정신력에 반했다.’라고. 오늘날 박지성은 세계 최고의 축구리그이자 최고 클럽팀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맨유의 중심선수이다.

이와 같이, 훌륭한 가능성과 잠재력을 갖고 있음에도 드러나는 적은 단점이 갖춰진 많은 장점을 가리는 현상을 나는 ‘나발현상’이라 이름 붙여본다.

(삼상 25:10-11, 개역) 『[10] 나발이 다윗의 사환들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다윗은 누구며 이새의 아들은 누구뇨 근일에 각기 주인에게서 억지로 떠나는 종이 많도다 [11] 내가 어찌 내 떡과 물과 내 양털 깎는 자를 위하여 잡은 고기를 가져 어디로서인지 알지도 못하는 자들에게 주겠느냐 한지라』

나발은 부자였고, 소출이 많았다. 그리고 그것이 다윗과 그 일행들의 도움으로 가능하다는 것도 알았다. 또한, 나발은 이미 다윗을 잘 알고 있었다. 그의 과거, 그의 명성, 그의 현재까지. 다윗이 그에게 긍휼을 구했을 때 나발은 차갑게 거절하며 말했다. ‘다윗? 그 녀석 예전에 사울왕 밑에 있다 기어나온 놈이잖아. 한때 잘 나갔지. 근데, 지금은 완전 나가리 됐잖아. 내가 왜 그런 녀석한테 아까운 내 소출을 줘야 돼?’라고. 결국 나발은 하나님이 쳐서 죽음을 자초했다. 왜? 나발은 다윗에게 긍휼을 베풀지 않았을까? 바로, 다윗의 현재에만 집착했다. 도망자 신세로 전락한 다윗의 초라함과 무능력에 주목했다. 그래서 다윗 정도 무시하는 건 하등의 문제도 아니라고 판단했다.

한편,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은 달랐다. 아비가일은 분노한 다윗을 그 길 위에서 대면하여 분노를 삭히게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다윗이 아비가일의 총명함을 보고 아내로 삼고자 할 때 다윗의 청혼을 받아들였다.

(삼상 25:42, 개역) 『급히 일어나서 나귀를 타고 따르는 처녀 다섯과 함께 다윗의 사자들을 따라가서 다윗의 아내가 되니라

우리는 다윗이 위대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아비가일의 선택에 아무런 의구심을 품지 않는다. 그러나 아비가일이 다윗의 청혼을 받을 그 당시 다윗은 정말 위대했을까? 다윗이 그렇게 매력적인 상황이었을까? 오히려 정반대였다. 아비가일이 다윗의 청혼을 받았을 때 다윗은 한낱 파리 목숨에 불과한 도망자였다. 제 명에 죽을지도 모르는 남자, 심지어 왕의 칼이 쫓아다니는 남자와 결혼하고 싶은 여자는 그 누구인가? 만약, 아비가일이 나발의 눈으로 다윗을 봤다면 당장의 화를 모면하기 위해 다윗을 길에서 만나 중재했을지는 몰라도 다윗의 청혼은 거절했을 것이다. 그런데 아비가일은 왜 다윗의 청혼을 받아들였던 것일까? 

만약, 나발의 아내가 된 것이 아비가일의 자의적인 선택이 개입되었을 경우 그녀는 이미 자신의 오판을 뼈저리게 경험했을 것이다. 나발은 외적으로는 매우 좋은 배경을 갖추고 있었다. 그는 거부였다. 그러나 무자비하고 속이 좁은 사람이었다. 아비가일은 나발과 살면서 자신의 그릇된 판단과 결정을 후회하고 뉘우치며, 새로운 가치관을 갖게 되었는지 모른다. 반면, 나발의 아내가 된 것이 그의 부모님의 의지로 인한 것이었다면 그녀는 원래 총명한 여자였지만 그 부모님의 무지함으로 인해 무자비하고 속이 좁은 남자와 살게 된 것이다. 그것은 큰 고통이었을 것이다.  

아무튼 어떤 정황이 됐든 아비가일에게 있어서 나발과의 결혼생활은 후회와 괴로움이 가득한 생활이었을 것임이 분명하다. 결국 아비가일은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체득하고 있었다. 그것은 외적인 것이 아니며 잘 갖춰진 배경도 아니며 사람 그 자체란 것을 알았다. 비록, 현재의 다윗은 파리 목숨처럼 도망치는 도망자일 뿐이지만 다윗이 갖춘 어떤 장점을 관통해보고 있었다. 이처럼 드러나는 결정적인 단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단점 너머의 장점을 볼 수 있는 것. 또한, 단점을 관통하고 그 사람의 장점을 통찰해낼 수 있는 능력 나는 이것을 ‘아비가일식 통찰력’이라고 이름 붙여본다.

우리는 어떤 시각을 가지고 있을까? 장점보다는 단점에 주목하는 ‘나발현상’에 감염된 것은 아닌지. 그래서 장점에 대한 의미부여와 가치부여는 소홀히 하고 단점에 대한 가치부여만 잔뜩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면서 ‘다윗은 용맹하고 군대장관도 했고, 감수성도 풍부하고 훌륭한 시인이요 음악가이기도 하지만 지금은 칼에 쫓기는 도망자 신세일 뿐이지.’라고 말하면서 적은 단점이 많은 장점을 상쇄시킨 채 단점에 악센트를 주고 있진 않은가? 반면, ‘아비가일식 통찰력’처럼 ‘비록 지금은 도망자 신세에 불과하지만 다윗은 저 험한 상황 속에서도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의 사람이야. 그에게 얼마나 많은 장점들이 있어!’라며 장점에 악센트를 줄 것인가?

그리고 기억하자. 나발은 죽었지만 아비가일은 왕의 아내가 되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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