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운 이름_2011.12.05

(신 6:2, 개역) 『곧 너와 네 아들과 네 손자로 평생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내가 너희에게 명한 그 모든 규례와 명령을 지키게 하기 위한 것이며 또 네 날을 장구케 하기 위한 것이라』

모세가 수없이 반복하고 되풀이하는 교훈은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을 떠나지 말고 평생 동안 순종하라는 것이다. 사실 ‘평생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란 성경구절을 볼 때, 적잖이 놀라게 된다.

아니,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남은 평생을 여호와를 경외하며 산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 아닌가? 그렇다. 당연하다. 처음 구원받을 때부터 배워오고 들어온 너무나 익숙한 가르침이다. 그러므로 익숙하기에 당황하지 않는 것일 뿐. 구원받은 지 만 13년이 다되었다. 내 나이 만 30세. 30년 생애의 절반도 그리스도인이란 이름으로 살아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변함없이 사랑하고, 경외하고 섬긴다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았는지 알고 있다. 많은 순간 경외하지 못했다. 순종하지 못했고, 기도하지 못했고, 겸손하지도 경건하지도 못했다. 때로는 깊은 불신앙과 침체도 있었다.

13년도 순탄치 못하거늘 말씀은 평생에 여호와를 경외하라신다. 당연하다고 인정하면서도 곰곰히 생각해볼수록 너무 높은 요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말씀 앞에 떳떳할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러므로 말씀은 standard, 완전히 지키지 못해도 기준은 분명해야 하니까… 그렇게 자위하면 될까?

휴거나 사망, 불가항력적인 예외를 빼고 나면 앞으로 30년도 더 넘게 살아야 한다. 30년 뒤에도 나는 그리스도인일 것이다. 그리고 그때도 성경을 펼쳐 들면 말씀은 여전할 것이다. ‘네 평생에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때도 말씀은 그저 standard일 뿐이라고 자위할까? 두려워진다. 내게 그리스도인이란 이름을 주신 하나님께서 내게 전적으로 다른 삶의 표준을 요구하신다. 또한, 기대하신다. 30년 뒤에 혹 내가 이방인처럼 살아가더라도 여전히 나는 그리스도인이다. 그 이름이 생명책에 지워지지 않았다!

그러므로 평생에 여호와를 경외하라는 하나님의 직설적인 명령은 그냥 듣고 배워서 될 문제가 아니란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된다.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부단히 연습해야 한다. 경건에 이르는 연습! 싸워야 한다. 혈육의 속한 싸움이 아닌 어둠의 권세와 말이다. 그냥 서있으면 이뤄지는 명령이 아니었다. 끊임없는 자아와의 싸움, 훈련과 연습, 싸움과 승리. 그것을 평생토록 반복함으로 이루어야 할 것임을 말이다.

그 고단한 영적전쟁 앞에서 우리의 변명은 너무나도 많다. 형제, 자매님들의 충분한 공감까지 얻어낼 수 있는 합리적인 변명들도 충분하다. 자신감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30년 뒤에도 하나님은 변함없이 말씀하실 것이다. 어떤 합리적은 변명으로 나의 불법과 태만을 변호할지라도 성경은 영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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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은 사울의 창을 피했네_2011.11.27 

(삼상 19:9-10, 개역) 『[9] 사울이 손에 단창을 가지고 그 집에 앉았을 때에 여호와의 부리신 악신이 사울에게 접하였으므로 다윗이 손으로 수금을 탈 때에 [10] 사울이 단창으로 다윗을 벽에 박으려 하였으나 그는 사울의 앞을 피하고 사울의 창은 벽에 박힌지라 다윗이 그 밤에 도피하매』

다윗의 일생에는 수많은 대적들이 있었다. 처음 그가 목동으로 양을 지킬 때 그는 사자와 곰, 이리로부터 자신의 양을 지켜야 했다. 그가 기름부음을 받자 그의 전쟁은 제2라운드로 접어들었다. 골리앗을 쓰러뜨렸다. 그는 3라운드부터 본격적으로 싸움꾼이 되었다. 실제로 군대장관이 된 그는 전장에 나가는 장수가 되었다. 그의 주요 대적은 블레셋 민족이었다. 사울왕이 이스라엘을 통치하던 시대는 이스라엘과 블레셋의 각축전이었다. 그러므로 이 당시 다윗은 군대장관으로 끊임없는 블레셋과의 국지전에 나아가야 했다. 뿐만 아니라 이 잦은 국지전에서 명성을 얻은 다윗은 제4라운드로 접어들었다. 바로, 그의 일생일대에 가장 지독한 대적 사울과의 전쟁이었다.

그러나 이 사울과의 전쟁에서 다윗은 지난 모든 전쟁에서 보다 전적으로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다. 그는 결코 칼을 빼들지 않았다. 이것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양상이 다른 전쟁이었기 때문이다. 불가능한 전쟁에 그는 휩쓸려야만 했다. 다윗은 오랜 세월 동안 자신의 대적을 의심해야만 했다. 사울은 자신이 섬기는 주인이자, 이스라엘의 왕, 기름부음을 받은 자. 또한, 그의 장인이었다. 바로 그가 그의 일생의 가장 지독한 대적이라니.

한편, 사울은 어째서 다윗의 가장 지독한 대적으로 자처한 것일까? 물론, 그것은 사울의 질투와 시기심, 왕권에 대한 기득권. 명예욕과 체면 때문이었다. 사울은 왕의 자리에 오른 뒤 유독 자신의 체면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경향을 보인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사실 처음부터 그가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 기스의 아들 사울로 소개되는 그의 초반 사역을 보면 그는 매우 평범하고, 근실하고, 겸손한 청년 사울로 묘사된다. 그러나 왕이라는 자리가 사울을 바꿔놓았다. 왕권을 소유한 사울은 차츰 백성들 앞에서 왕으로서의 자신의 지위와 명성과 권력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었다. 모든 독재자들이 지녔던 공통된 변화이다.

사울은 다윗의 영성과 유능함을 발견했다. 백성들이 다윗의 능력을 드높였다. 그러므로 그것은 사울의 관점에서 정당한 현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왕권이 존재하는 현실에서 질서에 반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왕인 자신의 위치에 대한 하나의 도전적인 병폐였다. 사울은 다윗을 정직하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때부터 사울은 교묘한 방책과 계략으로 다윗을 궁지에 몰리게 했다. 왕의 체면을 깎는 도전자는 용납해서는 안 될 일! 사울이 사무엘로 부터 버림받음을 선언 받는 장면 속에서 사울이 얼마나 자신의 체면에 중독된 사람인지 발견할 수 있다.

사울은 다윗을 미워하면서도 교묘한 속임수로 왕의 사위가 되어줄 것을 청했다. 정녕 다윗을 사랑해서가 아니었다. 자기 딸 미갈을 아껴서도 아니었다. 심지어 딸 미갈을 팔아서라도 다윗을 올무에 걸리게 만들고 결국에 그의 수중에서 암살하고자 했다. 사울은 다윗을 짓밟고 싶었다. 자신에게 명성과 체면에 흠집을 준 다윗에 대한 숨은 적의와 복수심을 버리지 못한 사람이었다. 처음 다윗은 순진했다. 그는 사울의 은밀한 계략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몇 번의 죽음의 손길에도 불구하고 요나단의 중재로 말미암아 끝까지 왕궁에 머물고 있던 다윗의 순진한 모습에서 그것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초월해 가장 궁극적인 사실을 주목해야 된다. 사울과 다윗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정직함이었다. 사울은 정직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그것이 그를 그릇된 욕망에 집착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다윗은 수많은 허물과 실수와 그릇됨에도 불구 철저히 정직하기 위해 무릎을 꿇은 사람이었다. 다윗은 자신의 명예와 체면보다 하나님 앞에 정직에 대해 심각하게 반응할 줄 아는 양심을 갖고 있었다.

그 옛날 사울이 다윗을 벽에 박고자 창을 던졌다. 그 창의 이름은 체면과 권력, 명예와 기득권. 그러나 정직한 다윗은 그 창을 피했다. 권력이 없는 자의 유일한 무기는 정직함. 오늘 나도 그 창을 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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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사랑이란 혹사_2011.11.25

(고후 11:23-28, 개역) 『[23]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24]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25]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26]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27]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28]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바울은 처음부터 하나님을 향한 열심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처음 그는 그리스도인을 잡아 죽이는 일을 자신의 최대 사명인냥 받아들이고 외국의 성까지 가서 그리스도인을 몰살시키는데 주력했다. 신약성경에서 비록 바울의 등장이 매우 잔혹하긴 하지만 하나님은 그를 향한 특별한 뜻과 목적을 갖고 그의 인생에 개입하시기 시작했다.

다메섹 도상에 일어난 그의 회심은 아마, 기독교 역사사상에서도 가장 극적인 회심 중 하나일 것이다. 그는 기독교의 가장 지독한 박해자처럼 등장했지만 신비주의적인 경험을 통해 전적으로 회심에 성공한 사람이었다. 더불어 그 이후 그의 삶의 전향 또한, 놀라울 정도로 극적이다.

바울은 바리새인이었고, 가장 엄격한 파를 쫓았다. 정통 유대인이면서 기독교의 박해자였다. 그런 그가 회심한 이후 그리스도의 종으로 자신의 생명을 바치고 오히려 박해 받음을 자처하며 그의 태생이 지니는 모든 부귀영광을 포기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는 다메섹 전후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았다.

거짓 사도의 농락당한 고린도 교인들에게 보내는 그의 서신에서 그의 울분석인 항변에서 바울의 수난을 엿보게 된다. 그는 자신의 수고에 대해 ‘수고를 넘치도록 하였다.’라고 말한다. 감옥에서의 생활, 수없는 구타와 폭행을 당했다. 심지어 그는 돌에 맞아 기절하기도 했다. 배를 타고 여행을 하는 동안 세 번씩이나 풍랑으로 인한 파선으로 생명을 잃을 뻔했다. 그의 여정에는 항상 무시무시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거의 그는 알몸으로 오지에 내몰린 모험가처럼 살았다. 강, 시내, 광야, 바다의 위험, 강도와 동족, 이방인의 위험, 거짓 형제의 위험 등등 그가 직면한 모든 환경과 인간관계에서 조차 그는 위험천만한 곡예의 줄을 탔다. 심히 피곤한 인생이었다. 또한, 그는 제대로 자지 못할 때도 많았다. 굶주리며 갈증에 허덕이며, 추위와 헐벗음과도 다퉜다.

어떤 의미에서 그는 기독교 신앙의 위인이기보다 사지에 내몰린 저주받은 인간 같았다. 다메섹에서 만난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그의 삶은 거의 불구덩이 속에 던져졌다. 도대체 그에게 예수가 무엇이었기에 그의 삶은 그토록 처참해진 것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했던 바울. 다른 모든 것이 그저 배설물이 되어버린 해괴망측한 사람.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아무도 바울을 제정신이라고 말하지 못할 것이다.

바울의 수난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이, 사람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함으로 완전히 혹사를 당한 사람이구나!’ 분명, 바울은 특별히 훈련 받고 연단 받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나는 바울의 훈련을 생각할 때 사실상 그가 훈련이기보다 완전히 혹사를 당한 사람이란 것을 재차 발견할 따름이다. 정통 유대인으로 베냐민 지파요 바리새파의 가문의 촉망 받는 청년 바울은 극적인 회심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께 자신을 헌신한 후 지나칠 정도로 혹사당하는 삶을 살았다. 그러나 바울에게는 그것이 정당한 사랑의 반응이었을 것이다. 그것이 더 놀라운 사실이다. 바울은 낙심하지 않았다. 바울은 후회하지도 않았다. 바울은 포기하지도 않았다. 그 혹사당하는 삶에 대해 조금도. 어째서?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내가 그리스도를 사랑한다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어진다. 사랑은 이토록 다를 수 있단 말인가. 나는 고백하게 된다. 나는 정직한 의미에서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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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ty life
 

얼마 전 목사님의 설교에서도 언급되었지만, 사실 가장 그리스도인다워지는 중요한 방편은 말씀과 기도이다.(딤전4:5) 나는 이 원리를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런 의미에서 기도와 말씀의 부족은 우리 영적 침체의 가장 실제적인 원인일 것이다.

그런데 현실적인 문제는 여기서 좀 더 나아가게 된다. 기도와 말씀을 충분히 누릴 시간적인 여유가 있느냐는 것. 어쩌면 이것은 근본적으로 다른 어려움이다. ‘우리는 왜 이렇게 분주할 수밖에 없는가?’

오늘날의 이 분주함. 복잡함. 다양함. 거대함을 생각해볼 때, simple life를 살아야 할 그리스도인에게 분명 최대의 위기가 온 것만은 분명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는 시간이 나더라도 너무 많은 것을 배우고 익히고 활용하고 개발하기 위해 시간을 소모해야 하기까지 하다. 현대인으로서 정상적인 삶을 영위하고, 사회적 인간으로 부합되기 위해 우리는 일반적인 생활에서조차 컴퓨터, 스마트폰, 운전, 세탁기, mp3, 네비게이션, 각종 기계와 기구 조작법, 법률과 상식 등 속지 않고 살기 위해서라도 배워야 한다. 그런 것들을 포기하면 낙오자에 가까워진다. 세상의 낙오자가 그리스도인인 것은 아니다. 어쩌면 서글픈 현실일지 모르겠다. 차라리 머리 밀고 속세를 떠난 중이 되면 세상의 낙오자가 부처가 될지 몰라도. 목사님 말씀처럼 문명의 역기능이다. 문명이 발전하는 만큼 영적, 정신적 세계도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후퇴한다.

영혼이 피폐해지는데도 세상의 연을 끊지 못하고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세상을 사랑해서? 적어도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라면 세상을 사랑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세상이 밉지만. 미워도 다시 한번. 어쩔 수 없는 굴레와 같다.

오늘의 시대가 바로 문명이 만들어 놓은 소비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돈이 없어도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기 하루를 직장에 쓰는 시간보다 봉사를 하는 더 써야 되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저축이 필요 없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자동차나 집, 노트북이나 스마트폰이 필요 없는 것이 아니다. 이방인이나 우리나 그것들이 다 필요하다. 그것을 소유하려면 지불이 요구된다. 지불을 하려면 벌어야 된다. 벌이를 하려면 세상에 나가 일해야 한다.

더 이상 자급자족하던 시대는 없다. 오늘날의 life style은 자급자족을 거의 전멸시켜 놓았다. 디자인과 기능의 발달. 거기에 날개를 달아준 대량생산과 교통의 발달은 거대한 도시문명을 이룩시켰다. 그리고 이 도시 위에는 오직 소비만이 생존하게 되었다. 메이커 자동차를 대체하기 위해 직접 차를 만들어 타고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파트를 대체하기 위해 손수 터를 취하고, 오두막을 지어서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제는 겨울 스웨터 하나도 손수 짜서 입는다는 것이 현실적이지 않다. 오늘의 시대는 구매와 소비의 시대이다. 모든 것이 디자인과 기능성을 갖춰야 제격이 된 시대가 되었다. 그러므로 투박하고 기능성이 미달되는 자급자족은 city life의 밸런스를 깨트린다. 도시의 기반시설을 유지하기 위해 막대한 자본이 해마다 소비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도 이 소비의 시대에 예외는 아니다. 어쩌면 이것이 마귀가 만들어 놓은 도시문명의 미학 뒤에 숨어있는 노림수 일 것이다. 어쩌면 이 소비의 시대가 바로 오늘을 사는 현대 그리스도인들을 위협하는 가장 큰 영적 침체의 원인 중 하나이진 않을까?

가나안 점령 때, 단 지파는 가장 비옥한 땅을 소유했지만 가장 먼저 우상숭배에 빠졌다. 기독교의 비율이 높은 나라가 잘 산다는 일반적인 통계가 있다. 하나님을 믿고, 우상을 적게 숭배하고 문명이 발달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 문명의 발달이 우상숭배를 야기시키고 있다는 것은 실로 놀랍다. 예기치 않은 어느 순간에 뒤집힌다. 어쩌면 이미 우리도 예외가 아닌 길로 접어들었는지 모른다. 문명의 발달이 편리와 만족과 자부심과 영광을 주었지만 차츰 그것을 유지하고 버티고 지키기 위해 허덕이고 있다. 영광을 지키기 위한 막대한 사회 간접자본의 충당을 위해서라도 소비와 자금의 유동이 촉진되어야 한다. 브레이크가 마모되기 시작한 미친 소비의 시대가 파멸로 몰아가고 있다. 마치, 오늘날 위태로운 미국이 최초의 실례가 될지도 모른다.

그 소비의 거친 물결 속에서 함께 조급해지고, 다급해지고 허덕이기 시작한 우리 역시 영혼을 돌아볼 삶의 여유는 너무 부족해 보인다. 무서운 징조의 시작이다. 더 많은 복음의 역사가 이제 중국에 있고, 몽골에 있고, 파키스탄에 있고, 도시문명과 소비시대의 파도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저 가난한 나라들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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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잉글랜드발 복음열차는 불타고 있다. 

인류역사상 복음의 가장 큰 수혜지는 어디였을까? 부족하나마 나의 지식으로는 아마 잉글랜드와 미국이 아닐까 싶다.  

오늘날 개신교 신학의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은 프랑스 출신의 존 칼빈(이것 역시 영어식 이름이다. 프랑스식 그의 본명은 장 칼뱅)이지만 정작 청교도의 나라, 복음주의 신학의 최대 활동지는 항상 영국이었다. 정말 청교도의 나라라고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영국은 복음에 있어서 굉장한 수혜자였다.

뿐만 아니다. 청교도 혁명과 청교도 주의를 기반으로 18c 영국대각성 운동. 그 중심엔 야외집회로 명성을 떨친 조지 휫필드와 감리교의 창시자로 잘 알려진 존 웨슬리가 있었다. 물론, 역사적 고증은 휫필드가 실제적인 감리교의 창시자라고도 한다. 아무튼 이 위대한 두 인물이 버틴 영국은 18c 복음의 왕국이었다. 전 세계에 복음의 빛을 비추는 뜨거운 곳이었다. 수많은 복음주의자들이 배출되었다.

영국에서 시작된 대각성운동과 복음의 파워는 훗날 미국으로 건너간 청교도 후대로 인해 미국에까지 복음주의를 꽃피웠다. 조나단 에드워즈, 디엘 무디, 좀 다른 노선을 걷긴 했지만 부흥사 찰스 피니까지. 언제든지 신약성경의 시대 이후를 논한다면 우리는 영국과 근세기의 미국을 빼놓을 수 없다. 그러므로 나는 항상 해외여행을 갈 기회가 있다면 영국의 복음주의 흔적을 찾아 가보고 싶었다.

조지 휫필드가 웅장한 목소리로 야외로 청중을 불러모아 영혼을 구원했던 곳 해넘산. 그 산 아래 2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운집해서 휫필드가 외치는 복음을 들었다. 그러나 오늘은 어떠한가. 이제는 정말 추억하고 싶지 않은 두 나라가 되어버렸다.

미국은 아직도 70%가 개신교도이며, 청교도적 분위기가 있다고는 하지만 모든 것이 너무나 변했다. 크리스마스라고도 부르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대통령은 여전히 성경책에 손을 얻고 선서하지만 세계 전쟁을 불사한다. 마약, 살인, 범죄, 도덕적 붕괴 사회 곳곳이 병들어 있다. 메가처치 교회들은 부정 축재로 무너지기도 한다. 국회는 동성애를 합법화 했다. 교회마저도 동성애 결혼을 인정하는 추세로 거의 변질되고 있다.

영국은 더 심하다. 복음이 전해졌던 교회당은 이제 술과 향락이 가득한 클럽으로 바뀌고 있다. 교회들이 급속히 사라져 간다. 교회학교는 거의 씨가 말라간다. 10대들의 문화 속에는 ‘임신’이 하나의 유행이 되기도 한다. 교사와 제자들이 부정한 관계를 수시로 맺는다. 영국에서 자주 쇼킹한 사건들이 들려온다. 거의 도덕적으로 붕괴된 것 같다. 심지어 영국의 모 국회의원도 10대들의 잦은 임신 등의 문제를 놓고 ‘영국은 모든 것이 가능한 나라’라고 꼬집었다.

기독교 역사에서 봤던 위대한 부흥과 복음의 수혜지였던 나라가 이제는 없다. 잉글랜드에서 출발한 복음의 폭주기관차는 영국을 이미 한참 떠났다. 이제 영국발 복음기관차는 불타고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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