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3:11, 개역)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유리창 같은 밤하늘 위 별은 빛나고, 바람은 차가운 12월의 겨울. 마지막 교사모임을 참석하고 돌아왔다. 해가 바뀌면 교회학교 아이들은 여전히 분반수업을 하고, 우리의 교사들은 여전히 선생님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 교사가 아니다.

 

 교회학교를 위해 내게 주신 달란트를 많이 투자했다. 나 자신을 시험해보고 싶었다. 경험이란 스승을 통해 값진 것을 배웠다. 그리고 지금와서 가장 많이 생각되는 것이 하나있다. 지식, 유능함, 많은 가르침. 덕의 요소는 너무나 많을 것이다. 그러나 리더의 중요한 의무중에 하나는 울타리를 잘 치는 것이었다.

 

 방목하는 양들을 위해 잘 건조된 풀, 고영양식의 사료, 포근한 잠자리. 그 모든 것이 우선되어야 되겠지만 울타리가 없다면 양들은 불안할 것이다. 언제 덮칠지 모르는 이리와 늑대로 인해 편안한 마음으로 고급 양식을 먹지 못하고, 자지 못할 것이다. 좋은 풀, 좋은 잠자리가 그 가치를 잃어버린다.

 

 교사들이 즐거운 마음과 기쁨으로 봉사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나의 가장 큰 의무였다. 그러나 처음엔 그걸 잘 알지 못했다. 그래서 다그쳤고, 원망했고 또, 책망했다. 아니다. 나는 보호해야 했고, 평안한 마음으로 봉사할 수 있도록 힘써야 했다. 오늘 나는 익숙해진 코트를 벗으며 다시금 반성해본다. 위로를 주고 싶었던만큼 주지 못했던 것. 격려를 하고 싶었던만큼 하지 못했던 것. 아이들과 대화하려고 무릎을 꿇지 않았던 것. 그러므로 나는 너무나 해주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시린 마음을 다시 도닥여본다. 언젠가 또 다른 위치에서 앞을 걸어가야 된다라면 나는 초원의 평온한 양들을 바라보며 웃고, 한 손의 망치로 울타리를 고치고 있을 것이다. 단단히 못질을 하고 삐져 나온 못 끝을 망치로 쳐서 구부리며, 그래서 이리가 넘어오지 못하고 양들은 못에 찔려 상처받지 않는. 양들은 나를 보지 않겠지만, 안전하고 평온할 것이다.

 

 시간은 흐르고, 환경은 변해가며 모습들은 달라진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것을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신다. 함께한 시간도, 그렇지 않은 시간도 나와 하나님에겐 모두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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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is my core value?_2011.12.19

 

연말 워크숍 때 유명강사의 교육시간을 가졌다. 유수의 대기업 회장들이 듣는다는 교육기관의 강사였다. ‘가치관 경영에 대한 4시간 강의를 들었다. 심플하면서도 실제 자신이 경험한 사례를 곁들여 유익한 시간이었다.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볼 수 있었다.

 

 기업을 이끌고, 고객을 파악하고 그것을 위해 얼마나 치열한 공부와 연구와 시도와 개발이 이뤄지고 있는지 실로 놀라울 정도이다. 종종 혁신적인 아이디어, 혁신적인 마케팅 등을 통해 기업의 주도권이 바뀌고, 새로운 시장이 열리기도 한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복음의 기업을 확장해가는데 얼만큼 혁신적인 걸까? 많은 전도인들이 깊이 있게 공부하고 연구한다. 사실적인 증거자료를 바탕으로 적극적인 복음전도에 나선다. 충분히 혁신적이다. 더불어 한국을 중심을 복음이 활발히 증거되는 것도 놀랍다. 그러나 좀 더 노력하자.

 

 알카에다는 목숨을 바쳐 그들의 신념을 위해 싸운다. 그들의 신념을 위해 임신부도 폭탄을 매고 자살테러를 감행한다. 그것이 그들에게 영광이며, 사명의 모두이다.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조직을 위해 목숨까지 버리게 하는 것일까? 조직의 신념이 자신의 신념이 되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의 신념은 무엇일까? 우리에게 그것은 정녕 목숨조차 버릴 수 있는 확고하고 위대한 신념이 되었을까? 신념을 액자에 담아 벽에 걸어두는 것으로 안주해버리기에 너무나도 많은 안락과 풍요와 핑계와 유혹이 도처에 가득하다.

 

 가치관 경영의 3가지 요소에 대해 들었다.

 

-사명(mission) : 왜 사는가? 존재이유. 그것을 생각하면 사명이 된다.

 -핵심가치(core value) : 그렇다면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떤 방식으로 액션 할 것인가?

 -비전(vision) : 무엇이 될 것인가?

 

 성경을 배울 때마다 늘 듣는 주제와 일맥상통했다. 우리의 사명, 우리의 행동방식과 삶의 모습, 우리의 비전. 교회는 이미 가장 모범적인 가치관 경영의 실례였다. 그러나 그것이 내게 새로움으로 다가왔다. 왜냐하면 내가 변했기 때문이었다. 익숙해진 본질을 너무나 잊고 살아가고 있다. ‘나는 누구인가?’란 질문은 정체성를 정립하는 질문이다. 물론, I’m a really Christian. 수학공식처럼 정답이 술술 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되묻게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떤 방식으로 액션 할 것인가? 내게 주어진 사명이 분명하다면, 나의 정체성이 분명하다면 내 삶의 모습은? 내 삶의 표준은? 내 삶의 방식은? 그러므로 나의 궁극적인 질문은,

 

 ‘What is my core value?’

 

 나의 핵심가치는 무엇이란 말인가. 복음에 대해, 전도, 말씀, 기도, 교제, 성결, 뜨거움, 참됨, 순결, 정직, 소망, 사랑, 긍휼, 자비, 은혜, 도덕, 성실, 탐구, 갈망, 회개, 눈물, 호소, 열망, 바라봄, 경건, 겸손.

 

 사명은 있으나 핵심가치는 빠져있지는 않았는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 있으나 그리스도인다운 삶의 방식과 액션은 어디에 있는가. 현재에 만족할 수 없고, 안주할 수 없다. 회개하라 뜨겁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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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점 줄까?_2011.12.08

 

동서고금, 남녀노소,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바쁜 연말이다. 연말 인사고과를 진행중이다. 오늘 내 손에 한 뭉치의 평가표가 주어졌다. 이미 각 부서에서 부서원들이 자신의 팀장 리더십을 평가한 결과물이다. 평가항목별로 부여된 점수를 따라 합계점수가 잘 집계되었는지 검토하란 임무가 던져졌다.

 

 아니나 다를까 몇 군데에서 평가점수가 잘못 집계된 걸 발견할 수 있었다. 차츰 검토가 재밌어졌다. 팀장님이 할 일을 내가 하게 되니 자연스레 각 부서에서 팀장에 대한 평가가 어떤지 알 수 있으니 말이다. 한 장의 평가표에 불과하지만 마치 그 종이 몇 장을 통해 그 부서의 분위기, 팀장과 부서원의 남모를 신뢰와 공감을 다 꿰뚫어보는 것만 같았다. 그러던 와중.

 

 한 가지 의미 있는 현상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이 내게 짧지만 의미 깊은 묵상을 던져준다. 동일한 부서의 동일한 팀장을 놓고 부서원마다 어쩜 그렇게 평가결과가 다른 것인지. 그 중에서도 품질관리팀이 내 사색의 문을 열어준다.

 

 품질관리팀장의 평가 최고 점수 98, 최하 점수 42.

 

 10여평 남짓한 품질관리팀 사무실에서 10명이 모여 근무하고 있다. 동일한 팀장을 놓고도 극적인 평가가 아닐 수 없다. 최하 점수의 곱을 해도 최고점보다 14점이 적다.

 

 사람이 사람을 판단하고 평가하는 기준과 시각이 얼마나 다른가. 동일한 사람이면서도 누군가에게는 롤모델이 되는 뛰어난 팀장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당장 짐 싸고 가야 할 팀장에 불과하다.

 

( 14:10, 개역)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뇨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뇨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사람이 사람을 판단하고 평가하는 것이 정직한 것일까? 앞에 있는 사람은 항상 판단 받는 사람이다. 누군가에게는 98, 누군가에게는 42점 짜리다. 누가 옳은 것일까? 결론은 아무도 옳지 않다는 것. 바울은 자기 자신도 평가할 수 없었다.

 

( 119:137, 개역) 『여호와여 주는 의로우시고 주의 판단은 정직하시니이다』

 

 평가표를 다 넘기고 바닥이 드러날 때 문득 생각이 떠올랐다.그리스도인은 이 제일 뒷장에 하나님의 평가표가 있겠지? 앞에 아무리 98, 42점이 가득해도 마지막에 남은 하나님의 평가표만 정직하겠지.’

 

 그렇다. 사람의 평가를 들으면 낙심하기 쉬워지지만, 하나님의 평가를 들을 땐 거룩한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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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부한 자여 조심하라!_2011.12.05

(신 6:10-14, 개역) 『[10]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향하여 네게 주리라 맹세하신 땅으로 너로 들어가게 하시고 네가 건축하지 아니한 크고 아름다운 성읍을 얻게 하시며 [11] 네가 채우지 아니한 아름다운 물건이 가득한 집을 얻게 하시며 네가 파지 아니한 우물을 얻게 하시며 네가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 나무를 얻게 하사 너로 배불리 먹게 하실 때에 [12] 너는 조심하여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를 잊지 말고 [13]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섬기며 그 이름으로 맹세할 것이니라 [14] 너희는 다른 신들 곧 네 사면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좇지 말라

어쩜 그리도 앞날의 비극을 보고 말하는 것처럼 콕 짚어 주는 걸까?
광야를 통과하는 것만큼 가장 지루하고 고독스러운 시험은 없었다. 광야, 그 자체로 이가 갈리는 여정이다. 그 고통의 여정이 필요했던 이유는 하나님 앞에서 오만하고 불순종하는 모진 마음이 낮아져야 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마음을 연단하고 시험하셨다. 그러나 그것이 목적은 아니었다. 결국 마지막에는 젖과 꿀의 땅 가나안이 있었다. 모든 것이 풍족하고 아름다운 땅. 복에 겨운 땅.

환상의 땅으로 그들은 나아갔다.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이 모진 광야를 지나면 아무런 수고 없이 소득과 풍요를 누린 모든 것이 갖춰져 스스로 열매와 소득을 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이다. 고진감래라고 했던가.

그러나 그것이 영원한 안전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유일한 단점이 있다면 바로 이것일 것!

건축하지 않아도 이미 건축되어진 성읍들을 얻는다. 스스로 수고로이 채우지 않았다. 채움을 입는다. 고역스럽게 우물을 파지 않아도 우물에서 물을 깃는다. 심지 않아도 소출을 얻는다. 그저 배부르다.

그러므로 무려 40년의 기막힌 눈물의 골짜기, 그 광야의 수난과 가난과 낮아짐을 너무나도 빨리 망각해버린다. 그리고 하나님마저도. 그 기막힌 고난의 끝에 풍부와 안락과 만족함을 얻었거늘 그러므로 그것이 여호와를 망각하는 시작이 된다. 따라서, 모세는 조심스럽게 그러나 견고히 말한다. 조심하라!

요한계시록은 오늘날의 교회를 라오디게아 교회의 모습을 통해 언급하고 있다.

(계 3:17, 개역)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고난과 희생의 때를 지나 이제 안락할 수 있다한다면. 가난과 궁핍의 때를 지나 이제 풍족할 수 있다한다면. 마냥 즐거워할 일이 아니다. 이제 또 다른 가시가 돋을지 모를 일이다. 조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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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오는 날개를 펼치고_2011.12.06

옛날 유난히 크고 보기 싫게 태어난 오리새끼 한 마리가 있었다. 그 이름은 미오(미운 오리 새끼).
미오는 형제들과 다른 외모 때문에 항상 구박을 당하고, 엄마에게도 사랑을 받지 못했다. 그러다가 자기가 자란 농가를 뛰쳐나와 숲속의 작은 새들을 만나지만 역시 미오를 상대해주지 않았다. 외로운 미오. 그는 물가에 비친 자기를 본다. 그 호수는 물결이 일렁이고 미오의 모습은 일그러져 있었다. 미오는 그 물결에 비친 자기의 모습을 보며 눈물을 흘린다.

그러던 어느 날 미오는 푸른 하늘을 날아가는 한 무리의 백조떼를 본다. 우아한 자태와 품위 있는 비행으로 하늘을 수놓는 백조의 무리를 말이다. 그 아름다움에 반한 미오는 자신의 날개를 펼치고 그 백조의 아름다운 비행에 함께 승차한다. 그리고 미오는 자신이 미운 오리 새끼가 아닌 한 마리의 아름다운 백조였음을 알게 된다.

오리들의 틈에서 자신이 백조인지도 모른 채 외롭고, 방황하던 미오는 자신의 정체성을 되찾고 자기에게 찾아온 행복을 자만하지 않으며 기쁨을 누리며 살아가게 되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 속의 미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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