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급,조급,경솔_2012.04.09
(Subject : 그리스도인의
정체성-나는 그리스도인인가31.)
사울은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 가운데 대표적인 신앙의 실패자였다. 안타깝게도 우리가 사울에게서 부터 신앙적인 미덕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은 오직 기름부음을 받을 그 초창기 몇 장에서 밖이다. 실제적인 대관식이 있은 이후
그의 행보는 끊임없이 반복되는 실책과 끝없는 추락이었다. 사울을 살펴보면 좀 상식적으로는 이해되지 않을
만큼 허술함이 곳곳에서 발견되는 오점투성이였다.
사울의 행보
속에서 우리는 그의 인격적인 부분들 중에서 유독 두드러지는 결함들을 충분히 발견할 수 있다. 물론, 그것들 중에는 평생을 다윗을 투기함으로써 죽이기 위해 평생을 소모하는 무모함과 지나친 투기심도 해당된다. 또한, 사울의 철저한 성급함과 조급함, 경솔한 성품이 그것이다.
왕으로서
대관식을 치르고 공식적인 왕권을 행사하기 시작한 후 기록된 첫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사울은 그의 성급하고 조급한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내며 그의 미래를
구부러뜨리고 말았다. 3대 급박한 상황에 직면한 사울은 사무엘이 오기가지 이레를 기다려야 한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된다. 너무 정확히 이레에 맞춰 왔던 사무엘 덕분에 사울은 시험에 빠져버렸다. 상황이 너무나 급박하다고 느껴졌던 사울은 이레가 찬 마지막 날 사무엘의 코빼기가 보이지 않자 심히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마지막 이레까지 기다렸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최종 사무엘이 당도하기까지는 기다리지 못했다. 그는 스스로 오직 제사장만 드리는 제물을 번제로 드려버렸다. 그럼으로써
그의 나라는 영영히 서지 못하게 되었다.
(삼상 13:12-13, 개역) 『[12]
이에 내가 이르기를 블레셋 사람은 나를 치러 길갈로 내려오겠거늘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치 못하였다 하고 부득이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 [13]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영히 세우셨을 것이어늘』
사무엘의
책망은 조금도 긍휼이 섞이지 않았다. 냉혹히 단정했다. 부득이고
뭐고 핑계 댈 것 없이 망령되이 행했노라고 단죄했다. 절대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다고 확언했다. 그의 나라가 서지 못할 것임을 결론 지어버렸다. 사울은 유독 심리적으로
매우 쫓기는 사람이었다. 흔히 ‘빨리빨리’에 가까운 스타일의 인물이었다. 즉,
사울은 성품적으로 굉장히 성급하고, 조급한 성격으로 매사에 있어서 지나치게 성급하게 판단하고, 행동해버림으로써 스스로의 품위를 떨어뜨리고 자신을 궁지에 빠트렸으며 더불어 스스로를 시험에 빠지게 했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바로 사울의 이러한 인격적인 단점이 현대인에게는 매우 익숙한 결함이란 것. 세상이 너무나 빠르게
변화되어 가기에 도태되면 버려질 정도가 되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 조차 ‘빨리’라는 것은 습관적이 되어야 할 정도이다. 우리는 세상을 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렇게 배우고 훈련 되어지고 있다. 그
가운데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그리스도인이 잠잠히 기다려야 된다라는 본연의 의무를 충분히 배우지 못하게 된다. 배우기에
앞서 너무 조급하게 굴게 된다.
(삼상 14:24, 개역) 『이 날에 이스라엘 백성이 피곤하였으니 이는 사울이
백성에게 맹세시켜 경계하여 이르기를 저녁 곧 내가 내 원수에게 보수하는 때까지
아무 식물이든지 먹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지어다 하였음이라 그러므로 백성이 식물을 맛보지 못하고』
사울의 성급하고
조급한 성품은 결과적으로 그의 판단과 언행에 있어서 경솔함을 야기시켰다. 블레셋과의 전투가 치열해질
때 사울은 이 전쟁에서 승리하기 전까지 아무 식물도 먹지 말고 전쟁에 올인 하라고 하면서 ‘금식령’을 선포했다. 지금보다도 더 과거의 전장에서는 체력전의 양상이 두드러졌다. 칼과 창으로 맞부딪혀야 했다. 그런 병사들에게 금식령을 내린다는
것이 과연 지휘관의 올바른 판단이었을까? 천만의 말씀. 배고픈
병사들이 힘을 다해서 싸울 수 없었음은 당연지사. 즉, 사울은
전쟁에 총력을 기울인다는 명목 하 어리석은 금식령을 선포한 것이다. 바로, 이 점이 사울의 가진 경솔함의 단면이었으며 동시에 이러한 그의 어리석은 결정은 그의 신중하지 못한 성급함과
조급한 성향에서 비롯된 것임을 추측할 수 있다. 그는 차분히 신중히 충분히 고려해서 이 전쟁에서 지휘관으로서
어떤 결정을 내려 주는 것이 병사들의 사기를 진작시킬 것인지 숙려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매우 즉흥적이었다. 그리고 맹목적으로 모든 병사들을 대신해 금식령을 내려버림으로써 모든 병사들로 하여금 올무에 걸리게 만들었다. 배가 고프고 지친 병사들은 결국 블레셋을 완전히 소탕할 수 없었고. 남은
블레셋 군대를 놓침으로써 훗날 블레셋 군대가 재기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해주었다.
그 뿐만
아니었다. 요나단과 그의 일행이 블레셋 군대를 격파하고 수플에 들어갔을 때 꿀을 본 요나단이 그것을
먹게 되었다. 그러나 사울의 금식령을 들은 다른 병사들은 군침만 흘릴 뿐. 요나단은 사울의 금식령을 못 들었기에 먹을 수 있었노라고 했다. 여하튼. 전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심한 탈진과 탈수 상태에 이르게 된 병사들은 탈취한 짐승들을 그 피 있는 채 먹고, 소와 송아지를 아울러 취하였다.
즉, 지나치게 허기진 그들은 금식령도 잊어버린 채 미친 듯이 먹었던 것이다. 그럼으로
피 있는 채로 먹지 말라고 하신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게 되었다. 또한,
어미와 새끼를 동시에 취하지 말라는 율법도 어기게 되었다.(레22:28) 이 모든 것이 사울의 경솔한 판단으로 말미암아 시험에 든 병사들의 비참한 퇴보였다.
(삼상 14:39, 개역)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노니
내 아들 요나단에게 있다 할지라도 반드시 죽으리라 하되 모든 백성
중 한 사람도 대답지 아니하매』
병사들이
금식령을 어기고 먹었을 뿐만 아니라 피 채 먹었다는 소식이 사울에게 들렸다. 그러자 사울은 진노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그들을 심판하겠노라고 했다. 그와 동시에 누구든지 이 죄가 드러나면 죽일 것이되 자기
아들 요나단이라도 죽이겠노라고 했다. 실제로 요나단은 금식령을 어겼다.
그것도 제일 먼저. 그러나 최종 요나단이 죽었을까? 아니다. 백성들이 블레셋 군대를 이기도록 하나님이 쓰신 요나단을 죽여서는 안 된다고 주장함으로써 요나단을 죽음에서 면케
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무엇인가. 사울은 금식령을 어긴 자는 아들 요나단 일찌라도 죽이겠노라고 호언장담하며 으르렁 거렸다. 그러나 결국 그 큰소리도 허공에 울리는 것으로 끝나고 말았다. 속된
말로 쪽 팔린다.
즉, 사울은 성급,조급,경솔함의
대명사였다. 그는 신중하고 숙려해서 비중 있게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조급하고 성급한 그의 기질적인 부족은 종종 그의 행동에 있어서 기다림을 걷어 차버리고 경솔히 행동하게 했으며, 동시에 경솔하게 말을 내뱉곤 했던 것이다. 그럼으로써 그는 정황에
맞지 않는 금식령을 선포해 병사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또한, 병사들이 피 채 짐승을 먹는 시험에 들게
하였으며, 더불어 요나단을 죽이겠다는 경솔한 호언장담을 내뱉었다가 실천하지 못하는 수치를 자초했다. 왕으로서 군대의 지휘관으로서 신중하고 무게 있는 존재감을 드러내야 했을 그였지만 그의 인격적인 부족은 결국
오점을 남기는 것들 것 드러나고 말았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울의 이러한 인격적인 부족과 경솔함을 생각해볼 때, 과연 오늘을 그리스도인이라는 비중 있는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어떤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것인지 반성해보지 않을 수 없다. 나 역시 그 부끄러움에
대해서는 자유롭지 못하다. 좀 기다리면서 결정하고, 판단하고, 행동하고 말해야 했어야 했을 때, 쉽게 단정해버림으로써 경솔하게
결정하고 말해 버리곤 했다. 스타트 총성이 울리기 전에 뛰쳐 나가려 했다가 부정출발에 대한 경고의 휘슬을
들어야 했다. 성급함과 조급함, 그리고 경솔함은 친구이다. 그것들은 함께 동고동락하는 형제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미덕은
진득함과 기다림이다. 하나님께 묻고 답변을 충분히 기다리는 인내와 느긋함이다. 그것은 나태하거나 무관심하란 것이 아니다. 믿음으로 하나님께 의지하고
비중 있게 사물과 현상을 살펴보고 결정하란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지 않을 때, 우리가 성령 안에서 다스림을 받지 않고 성령께 의탁하지 않을 때 우리는 육체가
가진 가장 기본적인 기질을 따라 성급하고 조급하게 행동해버리고 만다. 그것은 죄인의 본성이다. 원래 우리는 잠잠하고 진득한 부류의 사람이 아니다. 우리는 즉흥적이고, 너무 자기 주관적이다. 그러므로 다스림이 필요하다. 성령께 의탁하자. 그리스도인의 미덕을 생각하자. 항상 하나님을 앞에 두고 반 템포 느리게 가자. 때로는 한 템포를
늦춰도 보자. 오직 하나님의 뜻이 나타나고 분별되어질 때 충분히 부족함 없이 신속하게 행동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