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100세 시대의 투자경제학 미래에셋 투자교육총서 15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 엮음 / 김&정 / 2011년 1월
평점 :
절판


회사에서 미래에셋 지점장님이 가져다 놓고 간 책 중 하나다. 틈틈히 읽어보았다.

이 분야에 대해 아직 학습이 많이 부족해 뭐라고 하긴 어렵지만, 그렇게 두껍지도 않아서 그나마 좀 다가서기 쉬웠던 것 같다. 내용도 투자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아우르고 이써서 입문서 정도로도 괜찮을 것 같다. 더구나 값도 저렴하다.

 

주안점은 앞으로 다가올 100세 시대를 대비해 어떻게 준비하고 투자할 것인가를 다루는 것이다.

처음부터 겁을 준다. '생각보다 오래 산다.'

2008년 기준 우리나라 평균수명은 80.1세. 의학발전을 고혀할 때 환갑까지 살아남으면 평균 남자는 91세 여자는 97세 정도 살 수 있다고 전망한다. 반면, 퇴직시기는? 평균 57세.

문제는 퇴직이후 생활비. 자녀리스크. 인플레이션. 유병장수. 독거장수. 무전장수.

(글쎄, 근데 또 십 수년 후엔 어떤 정책의 변화가 있을지? 라이프패턴이 바뀔지는 고려하지 않았다.)

이런 미래예측의 상황에서 연금이나 펀드. 보험. 자산분배 등 전반적으로 어떻게 자산을 만들고, 유지하고, 관리할 것인지 조언해주고 있다. 아무튼 어렵다. 전문용어 좀 나오고, 숫자계산이나 프로테이지 좀 나오니까 멍하다. 뭐 있어야 분산투자를 하지-_-;;

 

몇 가지 팁이 었다면, 예금금리가 낮은 요즘 소위 주식이나 펀드의 수익률이 좋은 걸 많이 하는데 결과적으로 보면 꼭 그렇지 만은 않다고 한다. 주식이나 펀드는 기폭이 크기 때문이다. 종착지점에서의 평균수익률은 오히려 정기예금보다 못한 경우가 많다. 그리고 뭐든 장기간 투자해야 되는데 평균 펀드기간은 1년6개월이란다. 펀드 뿐이겠는가. 보험도 마찬가지겠지. 결국 상품이나 수익률만 보고 덜컥 물었다가는 중도에 하차하면서 업체만 배불리는 꼴. 차라리 얇고 길게 가고, 굻고 짧게 가는게 키포인트 같다.

 

그리고 복리투자. 이건 항상 나온다. 그만큼 기본이고 중요하단 애기겠지. 쉽게 접고 가자. 투자해서 이자붙어서 상환되면 다시 올 투자. 그러면 그게 복리투자다. 꼭 복리상품에 가입 안 하더라도. 투자 이전에 절약. 또는 keeping. 다만, 인플레이션이 있으니까 keeping 이상의 조치가 요구될 뿐이다.ㅠ.ㅜ

 

어쨌든 이 책을 읽고 사람들이 난리법석을 피우는 주식. 펀드 그게 그닥 그렇지 만도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연금이 좋다는 것도. 또, 보험은 사고확률보다 사고가 났을 때 손실을 많이 발생시키는 것을 드는게 좋다는 것.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주님은 나의 최고봉 (반양장) - 오스왈드 챔버스의 365일 묵상집 오스왈드 챔버스 시리즈 2
오스왈드 챔버스 지음, 스데반 황 옮김 / 토기장이(토기장이주니어) / 200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책표지에 이 책에 대한 호화로운 광고가 포함되어 있다.

'미국 기독교 역사상 60년 최장기 베스트셀러'

왠지 조금은 상업적인 냄새가 나는 문구가 사실 불편했던 건 사실이다.
단언컨대 오스왈드 챔버스도 이러한 표지가 매우 불쾌했을 것이다.
비록, 편집자의 의도는 그것이 아니었겠지만.

 

이 책은 한마디로 '영혼에 충만히 흐르는 향유'였다.
처음 몇 페이지를 읽으면서부터 이미 나는 챔버스의 영혼과 교감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새 타락해버린 내 영혼의 탁류에서부터 악취를 맡았다.

 

묵상으로 편집된 그의 설교들은 처음부터 묵상이었다. 즉, 그의 설교는 묵상 그 자체였던 것이다.
직감할 수 있었다. 이것은 영혼을 쏟아내는 기도, 끊임없는 신령한 갈망과 고뇌로 부터,
그 가운데서 아로새겨진 은쟁반의 금사과들이란 것을.

문장은 담백하고 깊이 있는 사색과 묵상들로 가득했다. 그리고 어렵지 않으면서도 고상했다.
또한, 영혼의 깊은 곳에서 흘러나온 성령의 향유로 부터 얻은 날카로운 통찰력과 깨달음이 감춰져 있었다. 딱딱한 것을 부드럽게 싸서 내게 건네주었다.
오랜만에 내 심령과 영혼에 위로를 주었다. 동시에 나를 도려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일일일생 믿음의 글들 219
우찌무라 간조 지음, 안진희 옮김 / 홍성사 / 202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일일일생(一日一生)은 일본의 복음주의자 우찌무라 간조의 묵상집이다. 묵상집으로 흔히 볼 수 있는 하루 1편의 묵상으로 1월1일 부터 연말까지 365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여러 저작들 가운데 임의로 특정 대지를 옮겨와 편집한 묵상집이다. 그래서 묵상의 아래에는 이 글이 언제 어느 책에 쓰였던 글인지 나와있기도 하다.

 

간조의 묵상은 그 나름대로의 특색이 있었다. 우선 그가 일본인이며, 동양인이었다는 것이 하나의 특색일 듯 싶다. 그래서 보편적으로 영국의 청교도적 색체와는 사뭇 다른 동양적인 철학사상이 느껴졌다. 번역상에서도 한자를 토대로 한 일본어의 어감이 주는 특색도 있어 보인다. 한편으로는 그런 특색들로 인해 사뭇 낯설었다. 특히, 그가 신앙과 애국주의를 연계해서 강조하고 있는 부분은 매우 독특했다. 시대적인 영향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그의 사상과 사고방식에서 익숙치 않게 다가오는 것들도 종종 있었다. 그 부분에 대한 판단은 독자 개개인이 해야 할 몫이리라. 어쨌든 여타의 묵상집들에 비해서는 훨씬 사상적이고, 철학적이다. 무게감이 있는 글들이다.

 

결국 간조는 복음주의자이자 사상가이다. 실제로 그는 기독교 사상가로 알려져 있고, 무교회주의 운동가였다. 그런 영향은 당시 한국에도 일정부분 영향을 미쳤다. 한편, 언젠가 어느 형제님과 교제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는 우찌무라 간조의 저작을 탐닉하는 사람이었다. 간조의 모든 전집을 다 읽었노라고 했다. 그리고 그에게도 다분히 무교회주의적인 경향이 강하게 나타났다. 적어도 그 점은 아쉬운 점이었다. 무교회주의가 성경적인 근거는 아니다. 그건 간조의 사상 중 하나였다. 특히, 간조의 무교회주의가 당시 기성교회의 생명력을 잃은 형식주의에 대한 반작용이었다는 점을 생각할 때 더욱 그렇다. 생명을 잃은 교회라면 무의미하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생명을 잃은 교회라는 전제 하에서다. 그러므로 생명력이 있는 교회라면 우리는 무교회주의를 성경적으로 수긍하기는 어렵다. 물론, 그렇다면 누군가는 '요즘 생명력 있는 교회가 어딨나요?'라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그런 반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좁은 길은 아직도 있습니다.'일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서쪽으로 가자_2013.08.06

(Subject: 그리스도인의 정체성-나는 그리스도인인가79.)

 

( 12:4)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 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라함과 그의 아버지 데라는 갈대아 우르 출신이었다. 특히, 데라는 우상숭배자이자, 우상을 만드는 사람이었다. 데라는 그의 가족들을 데리고 서쪽인 가나안으로 이주하기 위해 여정을 시작한다. 가나안을 가기 위해서는 서북쪽에 위치한 하란을 거쳐서 다시 서남으로 이동해야 했다. 지도상에서 보면 갈대아 우르와 하란, 가나안이 삼각형으로 연결된다. 마침, 데라는 하란에 머물 때 사망하고 만다. 아브라함은 낯선 땅에서 아버지를 잃고 만단. 다시 갈대아 우르로 돌아가야 할 것인가? 그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다. 하나님은 처음 여정이 목적지였던 가나안으로 이주하라고 하신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그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간다. 그리스도인은 여호와의 말씀을 좇는 사람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배척할 때 그 말씀에 순종하는 자가 그리스도인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할 수많은 이유와 핑계들이 생기기도 한다.

 

( 12:10) 그 땅에 기근이 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우거하려 하여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가나안에 당도한 후 그 땅에 지독한 기근이 생겼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생존을 위한 보다 나은 선택으로 애굽으로 이주하게 된다. 그러나 거기서부터 아브라함의 첫 불행은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는 애굽에서 그의 아내 사라를 바로에게 빼앗기고 만다. 오히려 아브라함은 사라를 팔아버렸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매우 소심하고 두려워하며, 조금도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하는 연약함을 목격하게 된다. 이 모든 굴욕과 수치는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던가. 불과 창세기 12장의 4절과 10절 사이에 이 큰 모순은 발생했다.

 

하란에 머물 때 아브라함이 가나안 이주를 계속해서 추진할 수 있었던 동기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그때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서 갔던 것이다. 그러나 애굽으로 이주할 때는 아니었다. 그가 애굽으로 이주한 주된 동기는 기근이었다. , 현실적인 어려움. 어떤 곤란이었다. , 아브라함은 그 기근의 순간 하나님의 말씀에 귀기울어여야 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배제했다.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라는 말씀을 위배했다. 기근이라는 현실 앞에서 그는 본능적으로 이 곤란한 현실을 피하고, 보다 나은 생존의 길을 스스로 모색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본능에 충실한 것이었지 그리스도인의 윤리와 가치에 충실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그는 기근은 피했지만 사라의 정조를 버리는 또 다른 구렁텅이로 굴러 떨어졌던 것이다. 그러므로 기억할 것이 있다. 우리가 곤란한 경우를 만나야 한다라면 그것은 피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란 것이다. 곰을 피하다가 뱀에게 물린다. 우리는 필연적인 곤란을 하나님께 의지하고 정면돌파 해야 된다.

 

(12:8) 거기서 벧엘 동편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는 벧엘이요 동은 아이라

 

갈대아 우르에서 가나안을 향하는 여정도 서쪽으로 이동이다. 이주하는 여정에서 아브라함이 장막을 친 곳에서도 서는 벧엘이고, 동은 아이성이었다. 어느 방향으로 갈 것인가. 서쪽이 분명하다. 성경에서 서쪽은 하나님의 방향, 동쪽은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는 방향으로 나타난다. 그리스도인이 나아갈 방향도 서쪽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서쪽으로 하나님의 뜻에 머무는 방향으로 나아가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윌리엄 번스
스트랭 밀러 지음, 김기찬 옮김 / CH북스(크리스천다이제스트) / 2005년 12월
평점 :
절판


William Chalmers Burns.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영특한 인재였다고 한다. 아버지를 따라 목회의 길을 선택하고 글래스고 대학 등에서 신학을 전공했다. 그는 이미 24살의 나이에 복음의 불꽃으로 쓰임 받았다. 그는 처음부터 선교사는 아니었고, 선교를 희망하였지만 영국에서의 그의 사역이 워낙 성공적이었기에 선교가 지연되고 있었다.

 

번스는 잘 알려지지는 않은 인물이지만, 그의 사역은 종종 부흥의 형태로 나타났다. 특히, 잘 알려진 로버트 맥체인 목사를 도와 그의 교회를 담당했을 때, 부흥이 일어났다. 스코틀랜드 던디의 유능한 목사로 알려진 맥체인은 이스라엘 순례의 길에 오르게 되는데, 이로 인해 수 개월간 담임교회를 비워야했다. 그래서 맥체인은 번스에게 교회를 맡아줄 것을 요청했고, 번스는 이를 수락해 던디교구를 맡았다. 그리고 부흥은 일어났다. 이후 번스는 또 다른 교회의 임시직을 청빙받고 떠난다. 번스는 일정한 담임목사직이 아닌 주로 임시직으로 청빙을 받아 순회전도자로 목회를 했다. 아마, 중국선교가 그의 목표였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아무튼 중국선교는 수 년간 지체되었다. 영국 곳곳에서 그는 청빙을 통해 그의 탁월한 목회역량을 보여주면서 많은 교회의 필요를 채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1846년 중국선교에 오르게 된다. 번스는 중국어를 배우기 시작했고, 중국인 복장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천로역정을 중국어로 번역했다. 일반적으로 중국선교의 아버지라고 하면 허드슨 테일러를 꼽는다. 그러나 번스는 드러나지 않은 선구자였다. 그는 먼저 중국선교의 험한 길을 개척했던 인물이다.

 

어느 한 중국선교사 동료는 윌리엄 번스를 아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온 중국이 그를 알지요. 그는 살아 있는 가장 거룩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훗날 번스는 중국 땅에서 죽었다. 영국에 번스의 유품이 도착했을 때 모두가 숙연해졌다.

옷 몇 벌. 성경 두 권. 그것이 전부였다.

윌리엄 번스는 교회사에 있어 숨은 보석이었다. 다만, 이 책의 아쉬움이 있다면 번스에 대한 충분한 연구의 부족과 매끄럽지 못한 문장에 있을 것이다. 번스의 일기를 단순 인용하는 부분이 너무 많아 전기와 일기편집의 경계선이 모호해지는 부분이 많았다. 그래서 번스의 영성을 충분히 전달해주지 못해 아쉬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