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산 무협 단편집 - 더 이상 칼은 날지 않는다
진산 지음 / 파란미디어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초등학교 시절 무협지를 본적이 있었다.도서관 한 귀퉁이에 숨겨져 있었던 책인데 아마도 읽지 않았었는지 책위에 먼지가 뽀얗게 앉아 있었다.그 당시 책을 많이 있던 초딩이어서 그 책을 뽑아들었다.제목은 소년 군협지!!!
아 소설속의 내용은 내가 그동안 읽었던 책과는 그 궤를 달리하고 있었다.주인공이 장풍을 쏘고 칼 한번 휘드르면 악당들이 쓸어지고 하늘을 날라다니고…,이런 현실과 유리된 세계를 책속에서는 강호라고 불렀다.

나중에 커서야 이 책이 대만의 무협 작가 와룡생이 지은 옥차맹(국내에서는 군협지로 번역되었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이 책이 다시 재간되어 읽었을적에 어린 시절 무협지를 처음 읽었던 희열이 되살아 났다.
그러면서 김용의 영웅문 등등 국내에서 번역된 많은 무협지를 읽었고,또 만화방에 가서 국내 작가들이 쓴 무협지도 읽게 되었다.하지만 국내 작가들의 작품은 만화방용으로 나와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너무 천편 일률적인 전개 방식등으로 수십개의 작품을 보게 되면서 금세 질리게 되어 더 이상 손이 가지 않게 되었다.
이후 책 대여점이 생겨나면서 국내 무협지들도 만화방을 벗어나 대본서로 진출하게 되었고 만화방용 책의 형태에서 일반 도서용 책으로 겉 모습은 변신을 하게 되었지만 그 내용은 예전과 같이 천편 일률적이었다.
그래설까 나의 관심은 무협 소설에서 추리나 SF등 다른 장르 소설로 바뀌게 되고 무협소설을 더 이상 읽지 않게 된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어디선가 국내의 무협 소설작가들도 흔히 말하는 물갈이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국내의 무협 소설은 60년대 중국의 무협소설을 화교들이 초벌 번역해 놓으면 우리 작가들이 윤색한 것들이었다.이들은 70년대 후반부터 자신의 필명으로 창작 무협을 발표하기도 했는데 이들의 작품이 대부분 만화방 대본서에 꽂혀있었고 이들이 바로 우리 무협 소설의 1세대 였다.이들 중 현재까지 그 이름이 알려져 있는 이들이 바로 검궁인이나 야설록등이다.
하지만 요즘 나오는 무협 2세대들은 1세대 작가들의 영향과 중국 무협 소설의 영향을 받았지만 대학에서 영문학 독문학 철학 한문학 등을 전공하면서 문학적 소양을 쌓고 장르에 대한 자부심을 가진 나름 내공이 출중한 인물들로 PC통신 시절부터 활약하던 인재들이다.

이 2세대 흔히 말해 신무협의 대표 작가중의 하나가 바로 이 책의 저자인 진산이다.진산역시 PC통신 시절부터 작품을 쓰기 시작했는데 알고보니 여성 작가란다.무협소설은 대체로 남성들의 전유물인데 어째서 여성이 무협지를 쓰게 됬는지 잘 모르겠다.

이 책은 우연히 접하게 되었는데 무협 단편집이라는 희안한 제목에 끌려서 읽게 되었다.사실 무협지는 장편,그것도 최소 5편이상이 되는 장편들이 주류여선지 단편이란 것이 거의 없는 편이다.내 기억에 그나마 가장 짧은 것이 책 반권 분량이 되는 김용의 원앙도정도 였던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느낀점은 제목이 너무 운취가 없다는 점이였다.제목이 진산 무협 단편집이라니….셜록 홈즈 추리 단편집도 아니고,사실 그간 수 많은 무협지를 읽어 보았지만 이런 성의 없는 제목은 처음이었다.차라리 부제인 ' 더 이상 칼은 날지 않는다'를 그냥 소설의 제목으로 했으면 아마도 더 풍취가 나지 않았을까 여겨진다.물론 나 처럼 진산이 누군인지 모르는 독자들에게 무협 작가라고 알려주는 것은 좋지만 무협지는 담배 연기가 자욱한 어두운 만화방 한가운데 아저씨들이 읽는 책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책의 내용을 보지 않은체 읽지 않으려는 편견을 가지려는 사람들한테 다가가는 마케팅이 좀 부족해 보여 아쉬움이 남는다.

이 책은 총 7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1994년에 처음 쓴 광검유정부터 2006년에 쓴 잠자는 꽃까지 이 7작품은 십 수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마치 단기간 걸쳐 쓰여진 것처럼
잘 연결이 되어 있다.
이 작품들 속에는 복수, 성취, 대의, 개인의 완성이라는 무협적인 특징들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곱 개의 단편들은 하나같이 돌연변이들이다.왜 그럴까?
사실 무협 소설과 단편은 잘 어울리지 않는 편이다.무협 소설은 어찌보면 한 개인의 성장사이다.한 소년이 부모를 살해당해 복수를 결심하고 무예를 배우면 그리하고 신공을 성취하고,개인의 복수를 넘어 강호의 평화를 위한 대의의 싸움을 전개하고 드디어 온 강호인에게 존경받은 대협이 된다는…….이런한 길고 유장한 이야기를 단 몇십장에 그릴수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무협 소설은 대하 소설이 아니면 안되는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는데 이에 과감히 반기를 든 이가 바로 진산이다.여성은 무협 소설을 쓰면 안된다는 남성들의 고리 타분한 편견을 깨고 싶어서 그랬을? 아무튼 무협 단편이란 것은 매우 파격적인 것이다.

이 책은 비록 단편집이라고는 하나 사실 세편의 단편과 한편의 중편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후반부 4편인 고기만두,웃는 매화,날아가는 칼,잠자는 꽃은 실제로는 한 주인공이 주역인 연작 단편이기 때문이다.진산의 단편은 디테일한 묘사와 스토리의 균형이 매우 잘 잡혀있는데 특히 후반 4편을 보게 되면 네 편 개개가 독자적인 작품이지만 연결해서 읽게 되면 더 큰 감동을 받을수 있기에 진산의 필력이 대단하다고 느껴진다.

나중에 알고보니 진산이 무협 소설을 절필했다고 한다.이 정도의 실력을 가지는 작가가 절필한다니 아쉽기 그지없다.(완전 절필이 아니라 무협 소설만 절필한단다)
이 작품은 여성 무협작가의 감수성과 문학성을 겸비한 책이라고 할수 있다.게다가 국내에서 다시 나올수 없는 무협 단편집이다.비록 무협 소설을 멀리하는 분들이라도 진산의 무협 단편집을 읽으면 아마 무협 소설의 세계에 눈을 새로이 뜰것이라고 자신한다.

by cas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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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넷 2009-11-15 2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게 읽었던 책이예요. 진산의 다른 책은 읽지 않았지만... 그래도 여성 무협작가로 이름을 알렸는데, 왜 절필했는지 궁금하네요. 로맨스 소설은 취미가 없으니, 이제 더이상 글으로 만날 기회는 없을 것 같네요.

남편인 좌백은 열심히 무협을 쓰고 있던데 말이죠.

카스피 2009-11-15 20:41   좋아요 0 | URL
여성 작가여서 그런지 일반 남성 작가와 다른 시각으로 무협지를 쓰신분이죠.약간의 페미적인 느낌도 나는 작품도 있읍니다.다른 작품도 한번 읽어보세요^^

야클 2009-11-15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사천당문> 읽고서 팬이 되었었는데... 이 단편집도 꽤 재미있죠. ^^

카스피 2009-11-16 10:25   좋아요 0 | URL
ㅎㅎ 야클님 먼저 장편을 읽으셨네요.이 단편집도 꽤 재미있읍니다.

무해한모리군 2009-11-16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야 내용은 전형적인듯한데 또 재미가 있군요.

카스피 2009-11-16 10:24   좋아요 0 | URL
사실 진산의 무협지는 일반 남자 작가들이 쓴 것과 뭔가 다른 느낌을 많이 줍니다.여성분들이야 무협지를 많이 안 읽으셔서 무협지의 그 천편 일률적인 느낌을 잘 모르시겠지만 이 작가의 작품에는 감수성이 녹아들어가 있읍니다^^

보석 2009-11-16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분이 쓴 로맨스소설도 꽤 재미있답니다.ㅎㅎ 것도 나온 지는 좀 된 거 같은데..요즘은 뭐 쓰시는지 모르겠네요.

카스피 2009-11-16 10:52   좋아요 0 | URL
요즘은 로맨스풍이 살짝 가미된 판타지 소설을 준비 중이라고 하시네요^^

다락방 2009-11-16 12:54   좋아요 0 | URL
저도 재미있게 읽었어요. 특히 커튼콜은 최고였죠. 물론 무협과 판타지가 가미된 [가스라기]도 재미있었지만 말입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