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끼인 날이라고 쉬라고 했지만... 난 이런 날일수록 꿋꿋이 회사에 나와 자리를 지킨다. 물론 이런 날 출근을 해야 한다니.. 라며 사방에 투덜거리긴 했지만, 그것은 뭐.. 그냥 해대는 소리이고 실상은 팀장도 없지 사무실에 사람이 별로 없어서 한산하지, 이만한 근무여건이 없다. 냐하하~ 덕분에 아침부터 커피를 사발로 세 잔째 퍼마시고 점심은 멀리 나가 즉석 떡볶기까지 섭취하고 왔다는 사실. 그리고 이렇게 남은 커피를 홀짝거리며 알라딘에 글을 올리고 있는, 비연.

 

요즘은 연말이라고 조금 느슨해져 있는 게 사실이지만, 어쨌거나 일이 없는 것도 아니고 나름 평온하면서도 바쁘게 지내고 있다. 머릿속은 복잡복잡하긴 해도 몸은 거뜬하고 마음은 상쾌하다고나 할까. 올 한해 돌아보며 정리하는 건 다음 주에나 올리겠으나 뭐랄까. 나이가 들수록 나의 현재 status에 만족하는 퍼센트가 높아지는 것 같다. 예전처럼 안달복달하고 남과 비교하고 내 처지를 힘들어하고 그런 날들이 점점 줄어들고, 지금의 나를 받아들이고 하루하루 즐겁게 살기 위해 노력하는 날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어쩌면, 포기해서인지도 모르겠지만... 포기가 행복을 부른다면 그것도 할 만 하지 않겠는가. 자기비하나 좌절이 아니라면.

 

*

 

연말에는 장르소설 읽는 게 철칙 아닌 철칙이라서 열심히 읽어대고 있다. 지금 읽는 건 플라비아 둘르스 시리즈 4. 그림자라면 지긋지긋해.

 

 

아니 이게 작년 12월에 나왔었는데 난 왜 몰랐냐 이거지. 이 시리즈 왜 안 나오는 거얏 하면서 뒤졌더니 내가 읽지 않은 이 책이 툭 튀어나와서... 혹시 사놓고 잊어버렸나 싶어 책장을 전부 낱낱이 살폈더랬다. 근데! 정말 안 사둔 거였다는 거지. 그래서 그날로 바로 샀고 이틀 전에 와서 크리스마스에 벗하며 지냈다. ㅎㅎ

 

처음에 이 시리즈를 읽을 때는 그냥 그랬다. 좀 유치하다는 생각도 있었고 너무 어린 여자아이 얘기다 싶은 생각도 있었고. 근데 이게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재미있고 유쾌해서 말이다. 그냥 읽다보면 키득키득 웃게 되어서... 좋다. 내가 단순해지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르나 뭐 그러면 어떤가. 단순한 게 나쁜가. 단순하면 할수록 좋은 거지... (라고 마구 우겨대는 이 대목 =.=;;)

 

암튼 이 시리즈 계속 나왔으면 좋겠다. 아직도 얘기가 무궁무진할 것 같은데 끝날까봐 걱정이 슬며시. 애초에 6권까지만 쓰려고 했다던데. 번외로 4개 더 쓴다고 했다니 기다릴 수밖에.

 

 

 

이 책들은 사자마자 다 읽어버렸고. 역시나 하면서 읽었었고. 마츠모토 세이초나 요코미조 세이시나 참 대단하다 싶다. 사람의 심리를 이렇게 밑바닥까지 헤치다니. 이 정도 경지이면 사람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글들이 나오겠는가 싶다. 조금 음산한 분위기이고 너무 강렬해서 읽는 내내 마음이 밝아지진 않지만, 그래도 읽고 나면 아 잘 읽었다 싶은 게 이런 책들이다.

 

 

 

<인터스텔라> 본 여파로 계속 찾아 읽고 있는 과학도서 시리즈 중 하나이다. 물리학은 내가 고등학교 때 대학교 때 꽤 좋아했던 과목이라 흥미가 확 당기는 책들이긴 하다. <인터스텔라> 이전에 이미 사두었던 책들을 하나씩 내놓고 보고 있다.

 

이 책, <나의 행복한 물리학 특강>은 내용도 내용이지만, 지은이인 월터 르윈에 대한 감탄이 이어지는 책이다. 물리학 교수인데, 정말 물리학이라는 학문을 사랑한다고밖엔 여겨지지 않는 열정이 있다. 일상 속에서 물리학을 찾고 그 속에서 신비함을 느끼고 그로 인해 기쁨을 얻고 그 기쁨을 나누고자 강의를 한다. 얼마나 좋으면 저럴까 싶을 정도로. 그 열정이 부러워서 마음이 아프다. 사람이 태어나서 자기가 하고 있는 일, 자기가 배운 것에 그렇게까지 감동받고 열정을 쏟아부을 수 있는 것만큼 행복한 일이 있을까. 난 과연 지금 그러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계속 할 필요가 있는가. 라는 생각이 계속 들게끔 하는 책이다.

 

물론, 물리학 각 분야별 설명도 훌륭하다. 교양서적으로 손색이 없다. 제대로 아는 사람이 제대로 그 원리를 가르칠 때 느껴지는 해박함과 진지함과 전문성이 느껴진다. 좋다. 한 챕터씩 아껴가며 읽고 있는데 읽는 내내 머리를 가만 놔두지 않을 수 있어서 더 좋다.

 

*

 

올 한해는 바쁘다는 핑계로 책을 안 읽기도 했지만, 사는 것도 게을렀다. 사는 게 빡빡하다는 이유로 나를 놓아버려서는 안되는데. 반성이 많이 된다. 그 마음의 정리는 다음 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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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마지막날이 일요일이라는 것은,

12월의 첫날이 월요일이라는 것이고... 그래서 왠지 꽉찬 느낌이랄까.

 

혼자서 집에서 도닥거리고 있으려니 괜한 상념들이 마음에 들어찬다. 가끔 이렇게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한다. 철학적이라고까지는 말 못하겠지만, 꽤나 사색적이 되곤 해서 마음이 정리되는 느낌이다. 정리할 게 뭐 그리 많누.. 라고 하면 뭐... 사는 게 워낙 정신없고 대책 없고 임기응변적인지라 가끔씩 이렇게 '청소'라는 걸 안 해주면 힘들다.. 라고까지 말해두자. 가끔 그런 생각도 든다. 스마트폰의 클리너 앱과 같은 게 내 머릿속에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그래서 생각날 때 꾸욱 눌러주면 쓸데없는 것들이 싸악 사라지고 청정지대가 도래했으면 좋겠다고.

 

하긴, 그게 안되니 사람인가.

 

오늘은 최근에 못 샀던 추리소설들을 샀다. 요즘엔 도대체가 읽을 만한 게 없어 투덜거리고 있던 차 (사실 넌 넘 읽었어 라고 스스로에게 말하기도 한다 ㅜ) 일본 사회파소설 거장들의 책이 줄줄이 나와있길래 오늘 바로 구매에 들어갔다.

 

 

 

 

 

 

 

 

 

 

 

 

 

 

 

 

 

마츠모토 세이초야... 다 읽어버려야겠어! 라는 생각이 드는 작가다. 대체로 작품수가 많으면 어느 한켠 시시해지기 마련인데 이 사람은 읽을수록 좋다.

 

 

 

 

 

 

 

 

 

 

 

 

 

 

 

요코미조 세이지도 마찬가지. 이 사람의 이 검정색 표지 책들은 하나도 중고로 내다 팔지 않고 얌전히 책장에 차곡차곡 쌓아두었다. 이번 작품은 10년만에 다시 내었던 책으로, 추리 부분은 좀 약해졌지만 (긴다이치 코스케가 사건해결도 못한다네?) 갈등구조에 대한 섬세한 묘사가 돋보인다고 하니 기대가 된다.

 

어느날, 회사에서 점심시간에 책을 펼쳐들고 음악과 함께 (온갖 고상을 다 떨어대며) 읽고 있는데 옆에 앉아 있는 동료가 요코미조 세이지의 소설을 들고 심취해 읽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세상에!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반가와서 물어봤더니 알라딘 중고 서점 갔다가 발견하고 사서 읽고 있는데 재미있다고 좋은 거 추천해달란다. 바로, 그 즉시 뒤져서 주루룩 리스트를 안겨 주었다. 비슷한 책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의 기쁨은, 십년만에 친구를 만난 기쁨보다 더하더라..

 

 

 

요 책도 같이 샀다. IoT니 하는 것들이 요즘 급부상하고 있고 - 사실 요즘이 아니라 오래전부터였다. 지금 기술들이 마구 터져 나와서 그렇지 - 이것이 경제의 새로운 국면을 열 것이라는 것은 예측되고 있는 바. 제레미 리프킨의 이 책은 그런 내용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넘 두꺼워서 어느 세월에 들고 읽을 지 모르겠지만서도.

 

12월에는 사두었던 좀 생각해볼 만한 책들을 읽는 시간으로 삼아볼까 한다. 넘 머리를 안 썼더니 머리가 굳다 못해 이젠 거의 석기시대 유물같은 느낌이 되고 있다. 생각하지 않으면 사는 게 윤택하더라도 천박한 일상이 이어진다는 것을 잊지 말자...

 

 

 

 

 

우리 조카를 위해서 이 책도 샀음을 덧붙이며..ㅎ 

 

사실 이런 책 사면서도 서운한 생각이 든다. 이제 초딩 4학년이라 아무리 어리다 어리다 해도 몇 년 뒤에는 이런 만화책은 거들떠도 안 보겠지. 그럼 난 무슨 책을 사줘야 하나..

 

그래서 내가 사둔 책들 중에서 조카가 중학교 때 읽을 만한 책들을 앞에다 두도록 책장정리를 할까 싶다. 지금은 내 관심사 위주인데.. 조금 분류를 할 필요가 있겠다 는 생각이다.

 

내가 중학교 때 어떤 책을 읽었더라..를 생각해보니 사실 어른들이 읽는 책들 중에 못 읽을 책은 없었던 것 같다. <데미안>,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등의 헤르만 헤세의 책들도 읽었고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같은 철학책들도 읽었었고 A.J.크로닌의 <천국의 열쇠> 류의 책들도 읽었었다. 추리소설도 아가사 크리스티니 코난 도일 이런 류는 1,2 학년 때 다 읽었던 것 같고...

 

그 당시만 해도 책이 이렇게 많지 않아서 전집을 사서 읽는 경우가 많았었다. 그래서 한국문학전집 (김동리, 김동인...)이나 세계문학전집 (우리가 아는 많은 작가들... 까뮈, 프루스트...)을 탐독했었고 가끔 엄마가 사오는 프랑스 소설들도 즐겨 읽었었다...

 

아마 우리 조카도 책을 좋아한다면 이런 책들을 전부 읽을 수 있을 것이고, 요즘은 책이 끝도 없이 출판되고 있으니 읽고 싶은 책이 있다면 내가 데리고 나가서 같이 살 수도 있을 것 같다.

 

아이가 자라고 성장하여 나와 비슷한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된다는 건, 놀라운 일이고 기적과 같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사람이라는 존재를 키우는 어른들의 기쁨이자 보람이겠지. 우리 조카는 남자애라, 어쩌면 게임에 더 빠질 지도 모르지만, 내가 잘 데리고 다니면서, 내 책장에 책들을 선보이면서 책을 사랑하는 어른으로 커갈 수 있게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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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2년 후배가 갑자기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학교 다닐 때 안경 쓴 똘똘한 얼굴로 누나를 부르던 후배였는데... 열심히 해서 고시도 패스하고 중앙 부처에서 열심히 근무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듣기도 했었고. 그 어느날인가 연락이 닿아 이야기도 나누었었고. 그냥 그렇게 잘 지내는 줄 알고 있었는데 죽었다고 하니 이건 뭐... 드라마도 아니고 영화도 아니고 그냥 내 주위에서 벌어진 일 맞나 싶은 아뜩함만.

 

위암이라고 하고, 선고받았을 때는 이미 손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고 그래서 고향으로 돌아가 쉬고 있었는데 그냥 덧없이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나는 아픈 줄도 몰랐고 그러니까 아무리 같은 시간을 함께 공유했던 사람일지라도 잘 살겠지 라는 믿음만 있지 실제 어떻게 사는 지는 정말 알 수 없는 거로구나 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장례식장이 지방이기도 했지만, 그래서 평일에 이동하는 게 부담이기도 했지만, 사실 도저히 갈 수가 없었다는 게 내 솔직한 심정이다. 가서 그 아이의 영정사진을 보고 파도처럼 밀려올 그 회한과 슬픔과 허무함을 감당할 자신이, 지금의 나에겐 없었다. 그래서 가는 편에 조의금만 맡기고 그냥 집에 가 조용히 고인을 기억해보았다.

 

뭔가 함께 한 일들이 많았던 것 같은데, 억지로 기억을 더듬어보아도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아마 2년 후배들 우루루 몰려 있는 사이에서 난 선배랍시고 뭐라뭐라 했을 것이고 그렇게 왁자지껄한 분위기에서만 함께 했었던 모양이다. 특별한 이벤트를 함께 했던 것은 아니었구나 라는 씁쓸함도 있다. 그래서 더 서글프게 느껴진다면 내가 너무 센치한 것일까.

 

한 사람이 세상에 있었고 열심히 살았고 결혼을 해서 아이도 낳았고 그렇게 매일을 평범하게 지내다가 어느날 날벼락같은 선고에 자신의 인생을 정리해야 했다는 것이, 소름끼치는 공포로 다가온다. 사는 건 뭘까. 그냥 너무 우스운 거 아닐까.

 

올해 여러가지 안 좋은 일들이 많았다. 누군가는 많이 아프고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마음을 크게 다치고... 그 옆에서 지켜보는 입장으로서의 나는 어쩌면, 참 안전한 지역에 있는 것일테고, 이 안전이라는 울타리가 얼마나 허약하고 부서지기 쉬운가를 그럴 때마다 느낀다. 그래서 요즘은 매일이 고맙다. 살아 있음에, 내 주위 사람들이 건강함에... 구태여 큰 욕심 따위 떠오르지 않는 한 해였던 것 같다. 이렇게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죽음 앞에서 약자가 되고 그래서 비루한 일상을 행복으로 받아들이고 소소한 감사로 매일을 포장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이겠지. 그렇다.. 어쩌면 세상이 끝내는 공평한 것은, 누구나 죽는다는 대전제가 있기 때문일테고, 그 죽음은 잘났다고 안 오고 건강하다고 늦게 오는 그런 것이 아니라, 그냥, 문득, 뜻없이 밀어닥치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하나 빠짐없이 죽음 앞에 약자일 수밖에 없으리라. 참... 심란한 세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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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 뜬 <속사정쌀롱>의 구구절절한 내용들을 읽어보니 (이게 다 신해철이 나왔기 때문이지만. 평소에는 거들떠도 안보는 내용이건만...) 이런 글이 있었다.

 

신해철은 "아내가 유머를 재밌어하냐?"는 윤종신의 질문에 “결혼할 때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내가 잘 웃길 수 있는 여자, 내가 잘 웃어주는 여자였다”며 “내가 쉽게 행복함을 줄 수 있는 여자. 작은 일에도 고마워하는 사람과 결혼했다”며 아내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내가 생각하는 것과 일치해서... 여기 옮겨보았다. 나도 누군가와 사귈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유머코드' 이다. 내가 한 말이 재밌는 사람, 그 사람이 한 말이 재밌는 나.. 가 가장 훌륭한 조합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다른 사람에게 재밌어도 나는 하나도 안 웃기면 그 사람이랑 어떻게 평생을 함께 하겠으며 내가 열심히 나불나불 얘기하는데 무표정한 얼굴로 "입도 안 아프나.." 라고 하는 사람이랑 무슨 대화와 소통을 하겠는가.

 

내가 하는 말이 다 재밌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결국엔 남는 것 같다. 친구든 애인이든. 특히 애인이라면 정말 필요한 요건 아닐까... 신해철의 부인은 이런 사람 하늘나라로 보내고 어떻게 살까. 다시한번 마음이 짠해지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추신) 서점에 가보니 이 책이 베스트셀러에 올라 있었다. 사람의 죽음이 남기는 것은, 사람들의 기억 되새김질과 이런 상업적 피드백인가 싶어서 조금 씁쓸해지기도 했지만... 그만큼 신해철의 영향력(?) 이랄까 하는 것이 컸었다는 반증인 듯도 하여 또.. 마음이 아팠다. 그저 가수가 아니라, 세상을 향한 울림이 있었던 사람이었구나.

 

이런 멋진 사람의 시신이 오늘 부검되었고.. 제발 진실이 밝혀지길. 부검까지 했는데 그냥 그렇게 넘어가지 않길 기원하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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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가는 여행. 이런 거 해본 지 백만년은 된 것 같다. 작년 5월인가. 일본에 가서 음악회 참석했을 때가 마지막. 그 이후로는 가족과 여행을 가거나 친구와 여행을 가거나 선후배와 여행을 가거나 동료와 출장을 가거나. 

 

사실, 그걸 원했는 지도 모른다. 나이가 드니까 혼자 가는 여행이 좀 적적한 건 사실이니까. 누구랑 얘기는 하지 않아도 뭘 먹을 지 의논하고 어디를 갈 지 상의하고 밤에 잘 때 같이 와인이나 맥주나 홀짝거릴 상대가 심히 필요해지는 나이가 되었음을 실감한 게 좀 되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인가 가급적 누구를 꼬셔서 여행을 가는 방향을 선택해왔던 것 같다.

 

이제, 혼자 가는 여행을 다시 해야 할 시기가 된 듯 싶다. 다 좋은데, 생각하고 책읽고 할 시간이 부족하다, 누구와 함께 하는 여행은. 여행의 종류별로 행선지별로 같이 가는 여행이 좋을 때가 있고 혼자 가는 여행이 나을 떄가 있고 하니까. 이번엔 혼자 가는 여행을 택하고 싶다.

 

그러나, 뭐. 휴가내기도 여의치 않은 판국이라. 과연 내 뜻대로 될런지는 미지수다. 그냥 요즘 많이 상상하고 있다. 어딜 갈까 하면서 여기저기 인터넷이나 책이나 기웃거리고... 언제쯤 휴가를 낼 수 있을까 하며 달력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다. 행선지는 기간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조금 끌리는 데가 있어서... 한번 추진해봐야겠다 라고 맘먹는 중이다.

 

 

<인튜이션>은 절반 정도 읽다가 집어치웠다. 그닥 재밌지도 않은 내용을 어지간히 자세히도 쓴 책이더라. 의사결정이라는 것에 대해서 상당히, 많은, 지대한 관심이 있지 않고서는 끝까지 읽기 힘들지 않을까 라고 내맘대로 생각하면서 덮어버리고 이 책을 집었다.

 

 

 

 

 

 

 

 

 

 

 

하지만 대체 왜? 통증은 행복의 대가였을까, 행복을 누린 벌이었을까? 통증의 어원은 '처벌'을 뜻하는 라틴어 '포이나' (poena), '갚다'를 뜻하는 그리스어 '포이네' (poine), '지옥에 떨어진 영혼이 겪어야 하는 처벌과 고통'을 뜻하는 고대 프랑스어 '펜' (peine)이다. (p37)

 

통증의 어원에는 은유가 담겨 있음을 알았다. 예전에 수전 손택의 <은유로서의 질병>을 읽을 때도 비슷한 내용을 봤을 지도 모르겠지만, 새삼 느껴본다. 통증이든 질병이든 생물학적인 객관적 주체라기보다는 뭔가 의미를 담아 바라보는 그 무엇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내가 아무리 그것을 벗어나려고 해도 객체들의 그러한 시선을 벗어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임을 기억하고.

 

내가 좋아하는 류의 책이다. 뭔가 주제를 잡고 역사적 사회적 철학적 문학적 등등의 다방면에 걸친 지식들을 총동원하여 자신의 관점을 설파하는 책. 쉽게도 쓰였고 해서 두껍지만 술술 넘기고 있다.

 

하지만 통증을 이렇게 이해했더라도 은유는 사라지지 않는다. 통증이 지속되면 생물학적 질병은 나 자신의 앓이로 바뀐다. 앓다 보면 사람이 바뀐다. 사람이 바뀌면 자신의 삶, 경험, 성격, 기질에 비추어 앓는 상태를 재해석하게 된다. 자기 자신, 주변 상황, 문화, 역사와 연관된 온갖 의미가 떠오른다. (p26)

 

정확한 지적이다. '재해석'이라는 말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아.. 일해야 하는데 이 책에 매달리고 싶어지는 이 느낌은 뭐지. (뭐긴. 일하기 싫은 도피지.ㅜ)

근데 이거, 여행가고 싶다고 제목달고 얘기하다가 책 얘기로 빠지는 이 삼천포는 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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