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여러가지 일들이 있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무리 행복해보이는 사람도 이런 일 저런 일 겪으며 살아가는 것이고, 그게 좋은 일일 수도 있고 나쁜 일일 수도 있고 그런 것이지. 특히나 나쁜 상황들 속에서 스스로를 담대히 지켜나가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살아보니 그렇다. 남의 얘긴 하기 쉬워도 내 일이 되면 아주 작은 고통도 크게 느껴지고 힘들어지는 법. 좋은 일에 좋아라 웃고 기뻐하고 그러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나쁜 일에 절망하고 힘들어하고 서러워하는 것도 누구나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런 일들의 성격이 나의 감정을 결정하기 때문이고, 특별히 나쁜 일의 경우는 내 자신의 일이 되면 더 심하게 느껴지는 게 인지상정. 이럴 때 담담하게 현실을 직시하고 하나하나 대응할 수 있는 사람을 보면, 아.. 이 사람 정말 내공이 있구나 싶다.
내 주위의 어떤 사람은, 본인이 돌연히 갑상선암 초기라는 것을 알게 되어 수술을 받아야 했다. 갑상선암이 남들이 말할 땐 별 거 아니야, 그냥 감기 같은 거지, 수술만 받으면 그만이야.. 라고 해도 자신에겐 큰 충격일 테다. 내가 '암환자'로 분류된다는 자체. 우린 이런 것을 '낙인'이라고까지 얘기하곤 한다. 그리고 수술을 받는 것도 두렵고 그 이후 결과도 두렵고. 이 분은 수술을 받고도 부위가 나빠서 두 차례의 방사선 치료도 받아야 했다. 그걸 받기 위해서는 암 수술 후 계속 먹어야 하는 약을 끊어야 하고 철저한 식이요법에 들어가 2주 정도 버텨야 하는데, 이게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얼굴이 붓고 (쟁반만 해지더라) 물론 몸도 붓고, 무엇보다 엄청난 피로감에 시달려야 했다. 남들은 수술로만 끝나는 걸 자신은 방사선 치료까지 받아야 하는 것. 그래도 꿋꿋이 받아내었다.
그리고 얼마 후 그 분의 아내가 림프암 4기임이 발견되었다. 젊었고 그냥 배가 아팠을 뿐인데... 이유를 찾지 못하다가 결국 알아낸 것이 림프가 부어올라 소화기관을 압박하고 있다는 것. 그래서 조직검사를 해보니 악성이고 4기라는 것. 여러 번의 항암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그 이후 결과는 반반이라는 것. 서럽게 울고 힘들어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분. 정말 대단한 것이 그 와중에도 자신의 생활을 성실히 유지했다. 변함없이 출퇴근을 했고 무리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모임도 참석했다. 그러나 아내가 병원에 가야 하거나 아이들의 학교 관련 일이 있으면 조용히 시간을 내었고... 질문을 받으면 (사람들은 정말 조심스럽게 물어보게 된다. 이게 더 힘든 일일 수 있다) 그냥 대수롭지 않게 얘기해주었다. 그 속엔 많은 아픔이 담겨 있는 것 같았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아내는 7번인가의 케모테라피를 받았고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 분은 그런 아내가 인내해줌에 감사하면서 묵묵히 옆을 지켰고 아이들을 돌봤다.
일년 여가 지난 지금. 며칠 전, PET-CT를 찍어보니 암세포가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 치료는 성공적이었고 이제 유지만 잘하면 된다는 결론이 나왔다. 축하. 축하. 그 분은 아내에게 큰 꽃다발을 선물했다. 평소에는 꽃다발에 돈 쓰는 걸 정말 우습다고 얘기하던 사람이 이 기쁨을 꽃으로 표시하고 싶어했다. 꽃은 너무나 예뻤고 그 축하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었다. 진심으로, 마음에서 우러나 축하한다고 말했다. 한 톨의 다른 생각 없이. 정말.
그 긴 시간을 옆에서 동료로 지켜보면서 진정 내공 있는 사람은 이런 사람이 아닌가 싶었다. 자신의 생활을 평소대로 유지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었을까. 간병휴가도 있고 여러가지 방법이 있었을텐데 그러지 않았다. 그렇게 하면 오히려 아내가 힘들어질 거라는 이유도 포함되었다. 자신이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가족들이 힘을 낸다고 했다. 우울해하거나 쳐져 있거나 그런 모습을 보인 적은 거의 없었다. 유머러스했고 자신의 상황을 담담히 설명했고 그리고 솔직하게 양해를 구했다. 이런 사람이고 보니 주변 모든 사람이 이 분을 좋아한다. 사람마다 느끼는 것은 비슷한 게지. 알 사람은 다 아는 거다.
요즘 내가 여러가지 일이 있다보니 나와 친한 이 분의 상황이 얼마나 힘들었을 지 다시 한번 가늠이 되어 마음이 짠하기도 하고, 내공이 필요한 시기에 내공있는 사람을 주변에 둔 것이 얼마나 행운인가를 고마와하게 된다. 보고 배우고 느끼고... 인생은 그렇게 호들갑스럽게 대응해선 안된다는 것을. 현실을 받아들이기는 하되, 차근차근 하나씩 대응해 나가며 인내해야 한다는 것을. 살면서 이런 사람을 곁에 둘 수 있다는 건 큰 행운이 아닌가 라는 생각까지 한다.
어려운 일에 처해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이해득실이 관계된 일에 함께 처해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진정으로 내가 배워야 할 사람, 주변에 둬야 할 사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神은 우리에게 고난이라는 것을 부여하면서 담금질을 시키는 모양이다. 그렇게 이해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