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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에 관한 이론이 단지 지루하고 따분한 것이라고만 단정짓지 말기를. 이것이야말로 와인이 지닌 깊은 묘미에 한걸음 다가서는 지름길이 될 테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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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데칸타주’라는 용어가 있는데, 무슨 뜻인가?
데칸타주(D럄antage)란 카라프(피처)에 와인을 옮기는 작업을 말하는데, 그 목적은 오랜 시간 동안 생긴 색소 등의 침전물을 없애기 위함이다. 와인을 옆으로 눕힌 채 조심스럽게 마개를 뽑은 후, 촛불이나 전구 빛을 병의 어깨 부분에 비추어 병 속 침전물의 움직임을 보면서 가능한 한 와인이 남지 않게 카라프로 옮긴다.
데칸타주를 하는 또 다른 목적은 와인에 공기를 넣음으로써 잠에서 깨어나도록 하기 위함인데, 사실 이 두 번째 목적이 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침전물이 많아도 데칸타주를 하여 좋은 향을 잃어버린다면 침전물이 움직이지 않게 조심하면서 직접 글라스에 따르는 편이 낫다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보르도 와인은 데칸타주가 필요하며, 부르고뉴산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알려져 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원칙적으로 그렇다는 것뿐이다. 부르고뉴 와인의 에티켓 하단에 논필터링(non-filtering)이라고 적혀 있는 것은 보르도 와인과 마찬가지로 데칸타주를 하는 것이 좋다.
Q. 가정에서 데칸타주용 용기가 없을 경우에는 어떻게 하면 되나?
와인을 공기에 접촉시킬 필요가 있을 경우, 면적이 넓으면 넓을수록 즉효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입구가 넓은 용기 또는 유리 볼(Bowl)도 좋은데, 일단 와인을 그릇에 옮겨 담은 뒤 곧바로 와인병에 되돌리면 데칸타주를 한 것과 거의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Q. 레드 와인은 코르크를 빨리 오픈해야 한다던데, 그 이유는?
와인은 공기와의 접촉을 통한 산화환원 반응을 거치면서 다양한 맛의 변화를 일으킨다. 샤토에서 출하된 지 얼마 안 된 젊은 와인을 맛있게 즐기려면 인위적으로 공기와 접촉을 시켜줄 필요가 있다. 데칸타주도 하나의 방법이 되겠지만, 코르크를 빨리 오픈하는 것으로도 같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다만, 이러한 방법은 마실 시간을 고려해 와인의 특성에 따라 사전에 오픈하는 시간을 조절해야 한다. 어떤 와인이 빨리 오픈해야 할 필요가 있는지는 어느 정도의 경험을 필요로 하나, 오픈했을 때 철이나 잉크, 콩을 삶은 듯한 향이 많이 나는 와인은 산소가 필요하다는 증거이다. 이 경우 마시기 전 적당한 시간에 공기를 접하게 해주면 점차적으로 그 냄새는 사라지고 와인 특유의 매력적인 향이 살아난다.
Q. 그렇다면 화이트 와인은 빨리 오픈할 필요가 없는 것인가?
출하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숙성 타입의 좋은 화이트 와인도 레드 와인처럼 빨리 오픈하거나 데칸타주를 하는 것이 본래의 맛을 즐기는 데 도움이 된다. 다만, 그 판단은 레드 와인보다 어려우며 자칫하면 향을 잃게 될 수도 있다. 처음 마시는 와인일 경우, 글라스에 따라 빙글빙글 돌리면서 공기와의 접촉을 통해 점차 변하는 그 맛과 향을 즐기는 것이 좋다.
Q. 와인의 타입에 맞는 와인 글라스의 모양이나 용량은?
와인은 자연스럽게 향기를 맡으면서 마시게 되는데, 이때 글라스 속에 향이 머물러 있는지 아닌지에 따라 맛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 예를 들어, 나팔 모양으로 입구가 벌어져 있는 글라스는 마실 때 와인 향의 상당 부분이 날아가버리므로 별로 좋지 않다. 입구 부분이 곧은 형태의 글라스나, 공처럼 내부로 굽어 있는 것도 있는데, 곧은 모양의 글라스는 향을 바로 느끼기 쉽다. 또한 향이 약하고 가벼운 와인을 용량이 큰 부푼 형태의 글라스에 따르면, 원래 향이 약한 탓에 더욱더 약하게 느껴진다. 이처럼 향의 강약에 따라 글라스의 크기를 선택하는 것이 맛있게 마시는 요령이다.
또 와인이 입 안에 들어오는 순간 흘러드는 형태, 즉 글라스 속에서 혀에 닿는 액체의 형상(타원형)이 넓은지, 좁은지에 따라서도 맛의 느낌에 차이가 난다. 혀끝에서는 단맛을, 양 측면에서 신맛을 느끼므로 타원의 폭이 좁으면 첫맛이 달고, 반대로 넓으면 주로 신맛이 느껴진다.
Q. 와인의 향이나 맛을 확인하기에 적합한 방법은 무엇인가?
작은 글라스에 가득 따르기보다는 용량이 큰 글라스에 조금씩 따라 마시는 방법을 권한다. 글라스의 절반 이하로 와인을 따르고, 향이 머무는 공간을 남겨둠으로써 향을 듬뿍 포함한 공기도 함께 마시는 것이다. 가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밖으로 퍼진 글라스와 브랜디 글라스가 어떤 맛의 차이를 보이는지 시험해보기 바란다. 글라스 모양에 따라 맛이나 향에 차이가 난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스파클링 와인의 경우도 향이 중요하므로 입구가 넓은 쿠프 글라스가 아닌, 입구가 오므라진 모양의 작은 와인 글라스나 그다지 깊지 않은 플루트형 글라스에 따라 향을 즐겨보자. 또한 입구가 넓은 글라스는 거품이 금방 사라져버리므로 적합하지 않다. 스파클링 와인의 매력은 액체 속에 녹아든 거품이 입 안에서 기분 좋게 퍼져가는 데 있으므로, 거품이 가능한 한 날아가지 않는 글라스가 이상적이다.
Q. 글라스의 재질과 와인의 맛은 관련이 있을까?
유리와 크리스털을 비교할 때 미각상의 차이는 거의 없다고 본다. 다만, 광택 면에서는 빛의 영향에 따라 크리스털 비율이 많은 글라스는 푸른빛이 느껴진다. 푸른빛이 나니까 좋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며 오히려 푸른빛이 깨끗한 느낌을 주는 경우도 있다. 또한 테이스팅에는 투명한 글라스를 사용하나, 컷 글라스도 와인을 아름답게 보이게 하므로 시각적으로 즐기고자 할 때는 좋을 듯하다. 글라스의 소재보다는 입술에 닿는 부분의 형태나 두께가 중요하다. 다만 소다 글라스의 경우, 시간이 지나면서 변색하기 쉽다는 단점이 있다.
Q. 와인을 마시다가 남았을 경우 어떻게 보관하면 좋은가?
와인은 한번 따면 그날 다 마셔야 하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데, 그렇지 않다. 코르크로 막은 다음 세운 채로 그늘지고 서늘한 곳에 보관하면 다음날 마셔도 크게 맛이 변하지 않는다. 세워서 보관하는 이유는 옆으로 뉘어두면 기체 부분과의 접촉면이 넓어져서 산화가 빨리 진행되기 때문. 와인은 공기에 닿으면 맛이 변하고, 또 그 변화를 즐기는 것이므로, 곧바로 다 마셔버려야 한다는 편견은 버려야 한다. 특히 젊고 과실미가 풍부한 와인일수록 시간에 따른 변화의 정도가 적으므로, 다음날이라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만약 더욱 오랜 시간 즐기고 싶다면, 하프 사이즈 병을 준비하여 깨끗하게 씻어 말리고 코르크도 씻어둔다. 남은 와인을 병에 가득 차도록 담아서 마개를 꼭 끼어둔다. 와인이 공기와 접하는 면적을 가능한 한 작게 하기 위해 작은 병에 가득 담는 것으로, 밀폐도를 더욱 높이려면 코르크에 랩을 감아두면 효과적이며, 냉장고에서 일주일 정도는 괜찮다.
Q. 마시고 남은 와인을 요리에 이용하려면?
와인을 조미료로 이용하는 것인데, 이 경우 와인의 자연스러운 신맛을 요리에 살릴 수 있다. 화이트 와인의 경우에는 마셔보았을 때 신맛이 부드러운 타입보다는 신맛이 강하게 남아 있는 와인이 적합하다. 레드 와인을 요리에 사용하는 이유는 색과 신맛에 있다. 색이 짙은 와인을 사용할 경우, 오래 끓이지 않아도 광택이 있는 좋은 색으로 마무리된다. 레드 와인을 맛이 강한 찜류나 데리야끼 양념에, 그리고 화이트 와인을 샤부샤부의 양념이나 튀김용 간장에 약간 넣어도 좋다. 다만, 식초는 기본적으로 와인과 궁합이 맞지 않는다. 그러므로 와인과 간장을 반반, 혹은 3:1, 1:3의 비율로 섞어 조리하거나 불에 살짝 끓여서 알코올 성분과 간장 특유의 냄새를 없앤 다음 보관해두면 폰즈(어패류나 야채를 먹을 때 사용하는 소스)보다 부드러운 맛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