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을 좋아하는 이들이 말하는 큰 기쁨 중 하나는 와인과 음식이 이루어내는 환상적인
매치를 발견하고, 그것을 음미하고 즐기는 것. 자, 이제 그 둘 사이의 은밀한 만남을 지켜보기로 하자.
 
사람과 사람의 관계처럼 와인과 음식의 세계에도 궁합이 존재한다. 프랑스에서는 흔히 와인과 요리를 조화시키는 일을 ‘마리아주(Mariage)’라고 하는데, 이 말이 본래 가진 결혼이라는 뜻에서 알 수 있듯이 와인과 요리의 만남을 사람에 비유한 것이 아닐까. 그러한 점에서 서로의 단점을 보완한다든지 자신이 갖지 못한 점을 상대방으로부터 배워가며 조화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이상적인 커플이라고 한다면, 와인과 요리의 세계에서도 이러한 원리는 통용된다.
와인과 요리가 잘 어울리면 서로가 지닌 좋은 맛을 이끌어내 더욱 맛있는 식사를 즐기게 해준다. 특히 와인은 다른 술, 예를 들면 청주와 비교될 수 있다. 청주도 와인과 마찬가지로 요리와 어떻게 조화시키느냐가 중요한 과제이지만, 그 자신이 요리와의 만남에 있어 늘 주역이라는 점이 다르다. 청주의 본고장인 일본에서는 술의 맛을 더욱 즐기기 위한 `사케 사카나`, 즉 우리말로 해석하면 술안주가 버젓한 요리의 한 장르로 존재할 정도이다. 그러나 와인의 경우에는 때로는 와인이, 때로는 요리가 주역이 되어 대등한 관계에서 서로를 더욱 빛나게 해준다.

그렇다면 어떤 기준으로 와인과 요리를 매치하는 것이 좋을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유럽 문화의 오랜 경험에서 비롯된 상식으로, 생선 요리에는 화이트 와인, 고기 요리에는 레드 와인, 향토 요리에는 그 지방의 와인이라는 간단한 룰이 존재했었다. 하지만 불과 몇십 년이 지난 오늘의 요리와 와인의 세계는 그 당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변화를 맞이했다. 요리의 조리법, 소재의 다양화, 특히 최근의 국경을 넘나드는 퓨전 요리, 그리고 와인의 세계에 있어서도 당 시에는 유럽의 한정된 지역에서 생산되는 와인뿐이었지만 지금은 그뿐 아니라 뉴 월드 등 세계 각지에서 다양한 특징을 지닌 와인이 생산된다. 사실 예전처럼 요리와 와인이 단순했던 시대에는 분명히 누구도 이론을 제기할 수 없는 몇 가지 규칙이 있었다. 그러한 원칙대로 지방분이 많은 육류와 와인을 매치하면 레드 와인이 지닌 타닌 성분이 지방의 느끼함을 중화해주고, 어패류가 지닌 담백한 맛은 화이트 와인과 훌륭한 조화를 이룬다. 하지만 지금은 단지 요리의 소재만으로 와인과의 밸런스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조리법에 따라 요리 전체의 맛이 달라지기 때문에 과거와 같은 가이드 라인은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할 수 있다.
와인과 요리를 매치할 때 다음의 기준을 염두에 두면 도움이 되리라고 본다.

1. 담백한 맛의 어패류에는 가벼운 화이트 와인
2. 강한 소스를 사용한 어패류에는 보디가 있는 화이트 와인이나 가벼운 레드 와인
3. 담백한 맛의 고기 요리에는 라이트 보디의 레드 와인이나, 보디가 있는 화이트 와인
4. 강한 소스를 사용한 고기 요리에는 풀 보디의 레드 와인

와인과 음식의 훌륭한 매치

■ 갈비찜 강한 레드 와인, 샤또 뉴프 드 파프, 리베라 델 도에로, 시라즈, Brunello di Montelpuciano 등.
■ 오믈렛 깔끔하면서도 부드러운 화이트 와인, Baden의 바이스브르군다, 알자스의 피노 블랑 등.
■ 굴 드라이한 화이트 와인으로 깔끔한 맛이 나는 발포성 와인, 샤블리, 무스까데, 샴페인 등.
■ 커리 풍부한 향이 나는 스파이시한 혹은 프루티한 화이트 와인, 신세계의 샤도네이, 혹은 드라이한 무스까, 게부르츠트라미네, 타닌산이 적은 와인.
■ 오뎅 깔끔하고 향이 좋은 화이트 와인, 뉴질랜드의 소비뇽, 샤블리, 샤도네이.
■ 송아지 요리 드라이한 고급 화이트 와인, 부르고뉴나 알자스의 토카이 피노그리, 숙성된 고급 레드 와인, 부르고뉴의 포마르, 보르도의 마고, Vouvray 등.
■ 스테이크 보디가 있는 레드 와인, 최고급 까베르네, 시라즈, Rhone, Nebbiolo, San Giovese 등.
■ 생선초밥 깔끔하면서 드라이한 화이트 와인, 오스트레일리아의 드라이한 Riesling, 샴페인, 칠레의 소비뇽, 독일 Riesling Cabinet 등.
■ 스파게티 미트 소스에는 생생하고 상큼한 레드 와인, 키안티 클라시코, 몬텔푸치아노, 크림 소스에는 신선하고 깔끔한 화이트 와인, 피노 그리지오, 코리오.
■ 닭고기 일반적으로 레드 와인, 화이트 와인 등 각종 와인. 요리가 고급스러울수록 고급 와인을 고를 필요가 있다. 베르주라크의 레드 와인에서 상 베랑의 화이트 와인, Pomerol과 같은 숙성된 클라렛까지 다 어울림.
■ 차이니스 퀴진 깔끔하면서 향이 좋은 화이트 와인, Rieslilg Kabinet, 게부르츠트라미네, 뉴질랜드의 소비뇽 블랑 등. Baden의 슈페트브루군다와 같은 레드 와인, Pomerol도 적합.
■ 생선, 야채튀김 깔끔하고 드라이한 화이트 와인, Sancerre, Chablis 등.
■ 피자 신선하고 상큼한 레드 와인, 깔끔한 미디엄 보디의 화이트 와인, Chianti Rufina, 캘리포니아의 Sangiovese, 레포스코, 샤도네이 등.
■ 아이스크림 Muscat의 Fortified Wine, 오스트레일리아 Liquor Muscat.
■ 구운 생선 오스트레일리아의 Semillon, 오크통에서 숙성시킨 와인 등.
■ 삼겹살 미디엄 보디에서 풀 보디까지 각종 레드 와인. 특히 Rioja가 잘 맞는다. 지방분이 적을 때에는 캘리포니아 풀 보디의 화이트 와인도 어울린다.
■ 산낙지 이탈리아의 Verdiccio del Castelli di Jesi라는 아드리아해에 위치한 마르케슈주의 화이트 와인. 미네랄의 섬세한 향이 특징으로, 부드러운 신맛 속에 미묘한 소금의 맛을 느낄 수 있다. 이 미네랄 향 및 소금의 약간 떫은 맛이 산낙지가 갖고 있는 바다의 냄새와 소금기를 더욱더 감칠맛 나게 해준다.

이 중에 몇 가지 우리나라 음식과 와인의 예를 들었지만, 자극성이 강하며 향신료를 풍부하게 사용하는 우리나라 음식과 와인을 맞추기는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의 훌륭한 식문화를 외국에 알리기 위해서라도 와인과 어울리는 우리 요리를 찾아보는 것이 애호가들에게 있어서는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맛있는 와인과 요리만 추구한다면 건강에 마이너스 요인도 있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할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와인이 갖고 있는 좋은 성분을 다시 한 번 살펴보기로 하자. 육류나 유제품 등 동물성 지방 섭취가 많은 구미 국가들 중에서 프랑스인만이 유일하게 심장병에 의한 사망률이 낮은 현상, 즉 ‘프렌치 패러독스’에 관해 프랑스 국립건강의학연구소 소장인 세르주 르노 교수는 레드 와인을 마시는 습관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심장병의 최대 원인인 동맥경화는 혈액 속 악성 콜레스테롤(LDL)의 산화가 주요 원인이나, 레드 와인에는 LDL의 산화를 억제하는 폴리페놀이라는 물질이 풍부하게 포함되어 있다. 폴리페놀은 식물의 잎, 꽃, 줄기, 껍질이나 씨 등에 포함되는 항산화 물질로 녹차나 홍차에도 포함되어 있으나, 잘 숙성된 레드 와인은 다른 음료에 비해 특히 함유량이 많다고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레드 와인뿐만 아니라 화이트 와인에도 양성 콜레스테롤(HDL)을 증가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연구 발표도 있으며, 와인에 발암 억제 작용이나 알츠하이머 예방, 미네랄 보급, 항균 작용, 소화 촉진 등 다양한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와인 애호가들에게는 반가운 이야기지만, 한편으로 무엇이든 양이 지나치면 해롭다는 단순한 진리를 잊지 않고 와인을 즐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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