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부터 맛과 향이 뛰어난 특급 와인을 생산해온 프랑스 보르도 지방.
그중에서도 예술적인 가치를 지녔다고 칭해질 만큼 최고 퀄리티의 와인을 선보이는 5대 샤토를 소개한다.
 

보르도(Bordeaux) 와인을 이야기할 때 자주 등장하는 ‘샤토(Ch뎥eau)’라는 단어는 와인 용어로 사용될 경우 포도를 재배하여 와인을 만드는 포도원을 뜻하는 것으로, 보르도에서는 예부터 이 지방의 귀족이나 자본력을 지닌 상인들에 의해 경영되어왔다.
보통 샤토 와인은 고급 와인의 대명사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에서 주의해야 할 점은 모든 샤토 와인이 다 훌륭하다고는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보르도에는 샤토라고 자칭하는 포도원이 4000여 곳이나 있고, 그 품질 또한 최상급에서 최하급까지 존재하는 것이 현실. 이러한 사실을 염두에 두고 공식적으로 등급이 매겨져 있는 샤토나, 그에 버금가는 크뤼 부르주아(Cru Bourgeois)의 지정을 받고 있는 샤토의 와인을 선택한다면 와인을 즐길 때 실패할 확률이 줄어들 것이다. 이들 와인의 라벨에는 반드시 ‘Mis en Bouteille au Ch뎥eau’ 또는 ‘Mise du Ch뎥eau’ 즉 샤토 산지라는 의미의 표기가 있으며, 이는 와인의 재료가 된 포도가 그 밭에서만 나왔다는 표시이므로 신용할 수 있다.
보르도 지방의 와인 산지 중 메독(M럅oc)의 샤토 등급은 1855년 파리 만국박람회 당시 보르도 상공회의소가 특히 평가가 좋은 샤토를 대상으로 토양의 질, 지명도, 거래 가격 등에 따라 5급까지 나누어 등급을 매긴 것으로, 1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권위 있는 등급으로 통용되고 있다. 등급에 오른 샤토의 수는 당초 58개였으나, 그후 분할이나 합병 등의 변화를 거쳐 지금은 61개이며, 메독 이외 지역에서는 단 한 곳 그라브(Graves)의 샤토 오 브리옹이 예외적으로 1급으로 선정되어 있다. 또한 2급 중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던 샤토 무통 로칠드가 1973년에 1급으로 승격된 것이 유일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1급에서 5급까지 등급을 매기면 때로는 ‘겨우 5급 와인 아니야?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나 적어도 이 등급 분류의 범주에 들어간 샤토의 와인은 비록 4급이든 5급이든 결코 2류, 3류 와인이 아니며 이 또한 훌륭한 품질이라고 봐야 한다. 이들 와인의 가격은 2급에서 5급까지는 거의 차이가 없으나, 1급은 대개 2급의 2배에서 3배 정도여서, 1급에 선정된 5대 샤토의 평가가 얼마나 특별한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면 1등급에 해당되는 와인은 무엇일까? 보르도 메독 지구의 ‘샤토 라피트 로칠드(Ch.Lafite-Rothschild)’, ‘샤토 라투르(Ch.Latour)’, ‘샤토 무통 로칠드(Ch.Mouton-Rothschild)’, ‘샤토 마고(Ch.Margaux)’, 여기에 조금 전 언급한 ‘샤토 오 브리옹(Ch.Haut-Brion)’이 말하자면 보르도 5대 샤토에 해당된다. 이들 샤토의 와인 맛은 대단히 뛰어나며 만약 지금 다시 보르도 레드 와인의 등급을 매긴다고 해도 의심할 여지 없이 이들 5대 샤토는 톱의 자리를 차지할 것임에 틀림없다.
1855년 등급 분류에서 1급에 선정된 샤토 라피트 로칠드는 18세기 중엽 베르사유 궁전 연회에서 마셨다는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로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그후, 몇 명의 소유주를 거친 뒤 1868년 유명 은행가인 프랑스계 로스차일드가(家)의 소유가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좋은 빈티지의 라피트는 색의 깊이, 풍부한 향, 섬세하고 매끄러운 맛, 부드럽고 여성적인 우아한 와인으로, 완벽한 밸런스를 지닌 이상적인 클라레(Claret)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수명이 긴 것으로도 정평이 나 있어 1800년대 와인이 자주 경매에 등장, 기록적인 가격으로 낙찰되어 화제를 낳고는 한다. 샤토의 셀러에는 오래된 와인의 컬렉션이 있으며, 그중 가장 오래된 것은 1797년 와인으로 지금도 소중하게 보존되어 있다.
같은 포이약 마을에서 선정된 샤토 라투르는 오래 전부터 ‘가장 남성적인 힘있는 와인’이라는 평가를 얻고 있다. 젊은 시기에는 타닌 성분이 많아 떫고 딱딱함이 느껴지므로 좋지 않고, 마시기에 적당한 시기가 오기를 기다리는 데 상당한 인내가 필요해 ‘죽기 전에 마셔볼 수 있을까’라고 말할 정도로 숙성에 시간이 걸리는 와인이었다. 하지만1963년 영국에서 자본이 들어와 설비를 근대화함으로써, 종래 라투르의 특징을 간직하면서도 숙성이 빨리 진행되는 와인 만들기에 성공했다. 라투르 와인의 장점은 일반적으로 흉작이나 평작 빈티지일 때도 다른 샤토에 비해 훌륭한 와인이 만들어지며, 결코 애주가들을 실망시키지 않는 샤토라는 점이다.
메독의 마고(Margaux) 마을에서 선정된 샤토 마고는 라투르와는 대조적으로 나긋나긋하며 여성적인 상냥한 와인으로, 세계적인 문호 헤밍웨이가 제일 좋아했던 와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후 영화배우로 활약했던 손녀의 이름을 따 와인명을 마고 헤밍웨이라 지은 것은 유명한 일화.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보르도의 와인 상인인 제네스테가(家)가 경영했지만 1973년 보르도의 와인업계에 닥친 불황으로 매물시장에 나와, 한때는 미국 자본가에게 넘어갈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부가 이를 허가하지 않았고, 결국 프랑스의 대형 슈퍼체인 소유주인 맨츠로프로스가(家)가 구입, 그의 정열에 힘입어 샤토 마고의 1978년과 79년 빈티지는 최고의 평가를 받았으며 예전의 영광을 되찾아가고 있다.
1855년 등급 책정 당시, 메독 이외의 지구에서는 유일하게 그라브의 샤토 오 브리옹이 1급을 받았다. 현재의 소유주는 1935년에 이 샤토를 구입한 미국의 금융업자이면서 대부호인 데이론가(家)로, 보르도에서도 가장 이른 1961년에 스테인리스 발효탱크를 사용하는 등 근대화를 도모하고 있다. 와인 스타일도 오래되고 메마른 와인보다는 젊고 특징적이며, 마시는 시기가 빠른 와인을 만들기 위해 계속해서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작황이 좋은 해의 오 브리옹은 그라브 지구의 양질 토양으로 탁월한 개성을 지니고 있어, 오 브리옹이 아니면 와인을 마시지 않는다는 골수 팬들도 많다.
샤토 무통 로칠드는 1853년 영국의 로스차일드가(家)에 팔려, 2년 뒤 메독의 등급 결정 때 당연히 1급에 선정되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소유주의 변화와 기타 이유로 2급 필두라는 순위로 밀렸다. 1922년 무통의 4대 주인인 바론 필립은 남에게 맡겨두었던 샤토의 관리개선에 힘을 쏟고, 품질향상을 도모함과 동시에 1급으로의 승격을 호소했다. 제1급 승급이 공식 인정된 것은 그후 반세기가 경과한 1973년. 바론 필립의 아이디어는 품질관리와 판매정책 양면에 걸쳐 발휘되었다. 이전까지 샤토에서는 와인을 나무통 속에 담긴 채 출하하고 중개상인들에 의해 병 속에 담겨졌는데 샤토에서 직접 병 속에 넣는 작업을 선구적으로 실시했다. 와인 에티켓에 브라크, 다리, 미로, 샤갈, 피카소 등 초일류 화가의 작품을 등장시킨 것도 그의 아이디어. 이제까지 동양인으로는 일본 작가의 작품만이 채택되었으며, 채택된 작가에게는 현금이 아니라 그해의 와인으로 답례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무통의 특징은 카베르네 소비뇽 품종의 비율이 다른 샤토보다 높고, 색이 짙은 중후하고 단단한 장수 와인이며, 좋은 해의 것은 매혹적이고 풍부하며 무게가 있는 향으로 밝고 따뜻한 분위기를 만들어준다는 점이다. 이상이 이른바 보르도 지방의 1급 5대 샤토 와인이다.
이러한 와인들은 다른 명품과 마찬가지로 그 가치를 알고 소중히 하는 사람에게 자신이 가진 훌륭한 맛을 느끼게 해준다. 물론 이들 명품 와인을 즐기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일이겠지만, 저렴하면서도 맛있는 와인을 발견하는 것도 또 다른 기쁨이 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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